“오랜만이야?
못 본 사이 그댄 얼굴이 좋아 보여.”



“예뻐졌다 넌 항상 내 눈엔 원래 고와 보여”



“근데 오늘따라 조금 달라 보여
유난히 뭔가 더 차가워 보여
나를 보는 눈빛이…”




?



“신났네 신났어.”


신나보여. 너무 신나서 승천할 것 같아.
아… 뭐지? 왜 얘가 맥주병을 들고 있지?


“마담, 얘 왜 이러고 있어?”


“네가 해놨잖아”


“내가?”


“그래. 일본 가는 날 아침에”


“아… 그랬나?”


“너 없이 외로울 거니까 술독에나 빠져있으라고.
 기억 안 나냐?”


“내가 그런 거 기억할 여유가 어딨어.
할 일이 산더민데”


“어련하시겠어”


“앞으로 파티는 자제해야겠어.
You should have a little more self-control, David”


“어우 저 화상,”


“쉿. I'm so tired madame”


“그렇게 놀고 들어오니 몸이 남아돌아?”


“나 놀다온 건 어떻게 알았대?”


“엊그저께 들어온다는 놈이
지금 들어오니까 하는 소리다”


“원래는 마담, 더 늦게 들어오려고 했거든



“…….”


“근데 아-주 중요한 전화가 왔더라고.”


“그러든지 말든지”



“아주 솔깃한 전화가.”


“잘나셨어 아주”


2시 21분을 가리키는 시계


“3시에 손님 오기로 했어.
그런 줄 알고 있어 마담”


“네 맘대로 하세요”


“아 그리고 맥주 좀 갖다 줘”


“또 술 먹게?!?!?”


“아니거든. 얘 줄거거든”


“…….”


“맥주 다 마셨을 거 아냐. 갈아줘야지. 그치 알렉스?”




.......



“별 지랄을 다…
어우, 어우 머리아파. 어우 머리야..!!”


“두병 줘”



쾅-



세차게 문 닫고 나가는 마담을 보니
이 노래가 떠오르는 군.


“빰 빠빠빰 빳! 빰 빠빠빠빠빠”









TOY FACTORY TOY
T의 이야기






스피커 볼륨은 최대로
탱고 리듬은 내게로



“알렉스, 너 나 없는 동안 집 잘 지켰냐?”


차라리 쟤가 진짜 곰이었음 좋겠다.
적어도 울부짖긴 할테니


“너한테 뭘 바라겠냐 내가”


4분의 2박, 춤추기 좋은 박자다.
스텝만 밟아도 흥이 나는 리듬


“망할 불어라~ 뭐라는지도 모르겠고오~”


뭐라는지 모르겠어도 난 몸을 흔든다.
아 신나


“여기에 여자만 있으면 딱인데 그치”


여자, 여자라…
여자 하니까 아까 그 전화가 생각난다.


“여자…”


흔하디흔한 여자는 아니지
날 ‘토이’라 불러준 첫 번째 여잔데.


목소리만 들었을 땐 꽤 예뻤는데 실물도 예쁘려나.



벌컥-



“어 마담, 나랑 춤 한번 땡기자”


“…….”


“마담도 신나지 않아? 탱고 좋아하잖아”



“너랑 추긴 싫어”



쾅-



“크흐, 역시. 도도하기 이를 데가 없는 우리 마담”


마담이 테이블 위에 두고 간 맥주 하나를 따
목을 축이니 금방 기운이 뻗는다.


“야 알렉스. 내가 말야,
아주 기가 막힌 설계도를 구했거든?”


그게 뭐냐면,


“퍼커션 캡 피스톨. 일명 플린트록.
몇몇 장인들만 만든다는 그거”


총은 클래식할수록 멋있는 법이지.


하나 사서 해부해 보려고 했는데
이놈들이 나한텐 안 팔겠다네.
어쩌겠어. 직접 만들어야지


“내가 이거 구하려고 얼마나 뛰었는지 알지”


이탈리아 전역을 내내 돌아도 못 찾던 걸
일본에서 만나다니. 참 거지같지만,



“아무튼 나 지금 기분 완전 좋아”


세상이 다 교향곡으로 들려.
가우디가 성당 지을 때 이런 느낌이었나 싶어.
히치콕 영화를 극장에서 본 사람들 기분이 이랬을까.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기분이 열라 좋단 뜻이야.
말도 안 되게-



“기분이 열라 좋아요- 좋아-”


음악에 취해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방안을 둘러본다.


과도하게 큰 규모를 자랑하는 집무실에는
더불어 과도하게 큰 책장이 있다.
이 집을 지을 때부터 가장 신경썼던 부분,
한 쪽 벽을 꽉 채운 책장.


물론 그 안엔 각종 서적들이 빼곡이 들어차있다.
의학 서적도 있고 각 나라 언어 책도 있고
경제학, 경영학 서적에 저 구석에는 시집도 있고.


“만화책도 있지롱~”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켜다 알렉스를 쳐다봤다.
자식, 줄게 맥주. 그렇게 빤히 보지마
형 설렌다?


“자, 빈 병은 니꺼 새 병은 내꺼”


알렉스 옆에 앉아 새 맥주를 뜯었다.
허공에 대고 손 흔드는 것도 잊지 않고
쿵짜작 쿵짝♪


“신이 말이야, 날 참 좋아하는 거 같아.
안타깝게도 일방통행이지만”


“새엄마가 맨날 그랬거든,
난 하나님이 지켜주실 거라고.
근데 그 말이 맞긴 한가봐.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았잖아?
지옥같은 감방 생활도, 잔인한 갱단 생활도”


“내가 대단한 건지 그분이 대단한 건지.
알렉스, 넌 어떻게 생각해”


“어려워? 그럼 이건 어때”




“내가 이 좆같은 토이가 된 건
그분 뜻일까 내 뜻일까”


“내가 형을 죽인 건 그분 의지였을까 내 의지였을까.”


“나는 아직도, 존나게 머리를 굴려 봐도
답을 모르겠거덩. 기도하면 알려주려나.
아니면 시주? 아 그건 불교지.”


피식, 새어나온 웃음을 뒤로하고
책상 위 널브러진 설계도를 다시 들여다봤다.


“이거는 한... 일주일 걸리려나.
아 안 되는데. 종이폭탄 마무리해야 되는데”


블러디 형 오기 전에 끝내놔야지.
잔소리 듣기 싫어-


“잔소리 살벌한 형. 그치 알렉스”




대답없는 녀석.
품에 안은 맥주병에 내 맥주병을 가져다 댔다.


“짠-”



.......




 “원샷해 새끼야”






*






나는 내 과거를 사랑한다.
남들 앞에서 내 얘길 할 때면 마치
개츠비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는데,
이유는 글쎄. 위대해서 그런가?


‘The Great Gatsby’, My favorite.


난 태어날 때부터 특별했던 것 같다.
특별히 버려져 특별히 채택된 몸.


운좋게 미국으로 건너가 아

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줄 알았으나
현실은 ‘Son of a bitch’가 되어버린 놈.


친구들이 날 때린 이유는 얼굴색이 달라서가 아니었다.
집에서 맞고 오기 때문에 그냥 때린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맞았다.


그 누군가는 내가 벌써 죽였고
나는 이제 자유롭다.


그는 죽기 전 내 얼굴을 보고 이렇게 얘기했다.


“You, son of a bitch”


정말 악마였을까?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악마?


내가 봤을 때 그는 신을 너무 믿었던 것 같다.
매주 일요일 교회에 가서 두 손 모아 기도하면
천국 근방엔 가겠지, 이렇게 생각한 거 같은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신은 그보다 나를 더 좋아한다는 것.
즉 그도 나와 함께 지옥문을 두드릴 거라는 말씀.


 내가 계속 신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날 괴롭히던 형이, 내가 죽인 Justin이
독실한 크리스찬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 인생엔 꽤 아이러니한 상황이 많았다.


첫 번째는 내가 그 수많은 일을 겪고도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형을 죽인 이유가
죄를 뒤집어 씌워서가 아닌
자꾸 내 꿈에 나와서였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여전히 그가 내 꿈에 나온다는 것이다.


한 번은 블러디 형에게 상담을 받아봤다.
내 주변에 의사라곤 그 형뿐이었으니까,
영 못 미더웠지만 물어나 봤다.


형이 자꾸 꿈에 나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물었더니
그는 기발한 답을 던져줬다. 아주 무심하게



“또 죽여”


푸하.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배꼽 잡고
쓰러졌던 기억이 난다.
역시 형은 돌팔이야. 확실해


하지만 그를 또 죽일 순 없었다.
내 생애 살인은 단 한번으로 남겨 놓고 싶은 마음이랄까
Limited edition처럼.


살인은 내 전문이 아니니까.
형의 커피에 약을 넣는 순간에도
손을 벌벌 떨던 나였으니까.


그래서 난 잠을 자지 않는 쪽을 택했다.
잠을 피하기 위해선 어딘가에 열중해야 했고
그러려면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다.
공대생의 전형이라 해두자.



시작은 교도소였다.
거기서 배운 불장난이
지금은 무기 제조가 되어버린 셈이다.


미국 교도소는 보통의 것과 많이 다르다.
굉장히 거칠고 잔인하고 변태스럽다.
웬만한 흉악범들은 약 4~50년 형을 받고 수감된다.
거의 무기징역과 다름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좌절하지 않는다.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 입을 모으며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기본적으로 남을 괴롭혀야 직성이 풀리는 인자들은
자신의 불행한 삶은 뒤로 한 채
또 다른 상대를 찾아 ‘괴롭힘’을 행한다.
원래 생겨 먹은 게 그렇다 그들은.


난 그곳에서 또 두들겨 맞았다.
한 달 정도 맞고나니 그들도 단물이 빠졌는지
더 이상 건들지 않더라.
그래도 난 약과였다.
나에게 독약 제조법을 알려준 Harry는
덩치 큰 녀석에게 강간당한 적도 있다고 했으니…



하필이면 먼지 털듯 맞은 다음날
새엄마가 찾아오곤 했다.
그녀는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왜 우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냥 미안해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같이 울어줄 걸 그랬나 싶다.
‘어린 아들’이었을 땐 가식적인 눈물이라도 흘렸었는데.
나이 먹으니 연기도 잘 안 되더라.


어찌 됐든 당신 새끼가 날 이렇게 만들었으니.


어쩌면 모든 불행은 그들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이럴 바엔 고아원에서 자라는 게 나을 뻔 했지.
아니, 아니다.
이들을 탓할 게 아니네
날 낳아준 부모를 탓해야지, 이들은 잘못이 없다.
불쌍할 뿐



Harry와 Andrew는 MIT를 다니는 수재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교도소에 온 이유는 꽤 단순했다.
사람을 죽였다. 뭘로? 약으로.


이 괴짜들은 B-를 준 교수에게 약을 먹였다.
하, F도 아니고 B- 때문에 사람을 죽이다니.


주로 C를 맞은 나로선 전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그 교수는 멍청했어.
내 질문에 단 한 번도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고.
그런 놈이 나한테 B-를 준거야.
웃음이 나더군”


그 약은 섭취 후 정확히 48시간 만에 효력을 발휘했다.
당시 운전 중이었던 교수는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했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못했고
잠정 심장마비로 잘 마무리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자수했다.


자기들도 알고 있었다. 얼마나 병신같은 짓이었는지.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고 했다.


“그 새끼가 얼마나 억울해 하겠어.
우리 손에 죽은 거 알면”

 


그게 그렇게 재밌나?
웃음이 빵 터질 만큼 재밌었나?


나도 해볼까?


감옥에 갇힌 1년 동안 형은 끊임없이
내 꿈에 나타났다.


차라리 꿈에서라도 ‘미안해’ 한 마디 했으면
죽일 생각까진 안 했을텐데,
그는 꿈에서도 날 때렸다.
뭐랄까… 마치 때리는 기계처럼 날 팼다.


나는 병신같이 맨날 맞으면서도 맨날 아파했다.
맞다보면 어떻게 해야 덜 아픈지,
어딜 맞아야 상처가 덜 나는지 알게될텐데.
아니 알면서도, 형이 때리는 족족 맞았다.
이쯤 되면 내가 그냥 맞아‘준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아니, ‘맞아주지’


무튼 난 앞서 말했 듯
편한 잠자리를 위해 형을 죽였다.
죽어가는 형 앞에서도 내가 한 말이라곤 고작,



“Don't appear in my dream”


이거였다.


‘나한테 왜 그랬어’든 ‘이제야 복수를 하는 군’이든.
그런 멋들어진 말 하나는 할 줄 알았는데
고작 “꿈에 나오지마.”라니
존나 한심한 새끼


But he still shows up in my dream.
It sucks, doesn't it?



똑똑-



“네”


“손님 오셨습니다”


3시다. 그녀가 오기로 한 시간






*






아쉽다. 모자 때문에 얼굴이 잘 안 보여.



“어서오세요”


그래도 예쁘다. 예쁜 건 느낌으로도 안다.
서있는 폼이 예쁘다.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는 것도 예뻐.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한 걸음 멀어지는 그녀


“앉으시죠”


새어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삼키고 소파에 앉았다.
젠장, 따라 앉는 모양도 예쁘다.


“반가워요. 저는 아시다시피 ‘토이’라고 합니다.
죄송한데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


음. 통화할 땐 벙어리가 아니었는데.


“아, 성함 말고. 닉네임?”


“.....S”


“S라… 혹시 Sherlock?”


“…….”


빙고. 셜록이네



“아님 SEXY의 S인가?”


모자에 가려진 얼굴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표정은 안 봐도 비디오지.
놀랐거나-화났거나


“농담이에요.”


“흠흠”


“하아.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절 왜 찾으셨죠?”


“물건을... 보러 왔어요”


“물건?”


“그 쪽.... 물건들”


“아…”


내 공장이 보고 싶으시다?


“가시죠”


“네?”


“보러 가자고요. 물건들”


 “…….”


그럼 안내해드려야지. 친절하게





“공장에 있어요. 그 물건들은”


“…….”


내 뒤를 슬금슬금 따라오는 모양새가 퍽 웃기다.
고개는 푹 숙인 채 발만 보고 따라오는데,
내가 갑자기 멈추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라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귀엽네 이 여자.


“사실 진짜 공장은 아니고 내가 부르는 거예요.
마음대로”


“네...”


“연구실은 좀 지루하잖아요?  내가 과학자도 아니고”


“…….”


“안 그래요?”


“네”


“별로 말씀이 없으시네요. 목소리는 예쁜데”


“언제까지 가야 되죠?”


“에이, 쉽게 갈 수 있으면 그게 공장이겠어요?
이래 뵈도 비밀 공간인데”


“…….”


“좀 어려 보이는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그런 것까지 알려줘야 됩니까?”


“아니요. 그럴 필욘 없는데 그냥...
제 고객이시니까 그 정도는 알아야 될 것 같아서.
싫으면 안 가르쳐주셔도 돼요”


“…….”


“설마 경찰은 아니죠?”


“아니에요”


당연히 아니다. 딱 보면 알지
또한 그녀는 킬러도 아니다.
그것도 딱 보면 안다.


그럼 이제 남은 궁금증은,
‘당신은 날 어떻게 알았을까’와 ‘왜 날 찾아왔을까’인데...
난 ‘어떻게’ 보다 ‘왜’가 더 궁금할 뿐


“만약 경찰이라 하더라도
제 공장은 꼭 보여드리고 싶네요”


“왜요?”


“그냥. 왠지 그 쪽이 좋아요”


에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우리 마담이


“근데 정확히 어떤 물건을 찾으시는 거죠?”


“....... 일단 보고 얘기하죠”


“좋아요”


화장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문을 열어 안으로 안내했다.


“가시죠”


“…….”


아무 미동이 없는 그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결국 입을 뗀다.


“가기 전에 손이라도 씻으란 뜻인가요?”


“네?”


“…….”


세면대만 넌지시 쳐다보는 그녀를 보고
늦게나마 알아챘다.


“아... 하, 하하하하하!!”


푸하. 뭐지 이 기가막힌 발상은?
아니 왜, 이왕이면 샤워해주지.


“푸흐. 그런 거 아니에요”


“…….”


“따라 오시죠”


내가 먼저 안으로 들어가자 쭈뼛쭈뼛 따라 들어온다.


“손은 나도 잘 안 씻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되고.

자, 여기 들어가세요”


“네?”



“여기”


“…….”


그녀의 커진 동공이 날 짜릿하게 한다.
이 반응을 기대했다. 속일 수 없는 원래 모습을


하긴, 누구나 놀랄만 하지.
갑자기 샤워 부스에 들어가라니


“여기는 왜?”


“믿기 어렵겠지만 여길 들어가야 공장에 갈 수 있거든요”


“…….”


“진짠데? 이거 엘리베이터예요”


“장난치지 마시죠”


“장난인지 아닌지는 일단 들어간 후에 얘기하도록 합시다”


내가 먼저 들어가 손을 내밀었다.
Take my hand lady-


하지만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는 내 도움없이
부스 안으로 들어왔다.



“까칠하시네”


“…….”


“그럼 가볼까요?”


“만약 장난이면,”



철컹-



“읍”


“풉”


그녀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샤워기 헤드 잠금을 풀었다.
그러자 우리의 몸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무서운 거 아니니까 떨지 마요”


“…….”


“숨도 좀 쉬시고”


“후아.......”


“지하에 있어요. 지하 3층”


“후.......”


“일부러 깊게 팠거든요.
물건들이 워낙 다이내믹 하다 보니”


좁은 공간.
나와 그녀는 서로를 마주한 채 숨만 공유하고 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예쁘다.
얼굴이 다 보이진 않지만 얇은 입술만 봐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괜히 한번 만지고 싶다.


“그.......”


“.......”


“좀 떨어지시죠”


“아, Sorry”


나도 모르게 더 가까워졌나보다.
정신차려보니 정말 코앞에 그녀가 있었다.


“거기 가는 통로가 여기 밖에 없나요?”


“아니요?”


“그럼...”


“당연히 또 있죠”


“근데 왜 하필 여기로,”


“이건 여성 전용”


“…….”



“여성이랑 함께하는 전용 엘리베이터랄까”


“저기요,”



철컹-




"Voila-"


도착했습니다 고객님
그런 어이없는 표정 치우고 얼른 내리시죠.


떨떠름한 표정으로 부스에서 나온 그녀는


“Welcome to Mystery.
아, 제가 영어를 좀 많이 써요.
미국의 잔재죠. 폐해? 이 말 맞나?”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공장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떤 물건을 찾으시는진 모르겠지만
웬만한 건 다 있을 거예요.
상상하는 거 이상으로”







TOY FACTORY

Welcome to Mystery

It's my Story
and I know this Style



한 쪽 벽면에 설치된 전광판은
하루 종일 저 네 문장만 읊어댄다.
저 문장들의 뜻은 곧,
이곳은 나만의 공간이란 의미.


여기에 들어온 이상
당신은 온전히 나갈 수 없다는 말


 

여보세요

 

…….’

 

여보세요?’

 

…….’

 

말씀하세요

 

좀 만나죠.’

 

?’

 

…….’

 

전화 잘못 하신 거면

 

토이

 

…….’

 

만나자고요.’

 

…….’

 

…….’

 

좋아요. 장소는 따로 보내드리죠

 

저기,’

 

 

‘3시에 봐요. 내일

 

‘3. 알겠습니다



당신은 좀 이상하게 생각했어야 해.
이름도 모르는 여자를 집에 들일 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어야지.
이렇게 아무 준비 없이 오는 건 반칙이야


내가 당신의 전화를 받고 설렌 이유는
단지 예쁜 목소리 때문만이 아냐.
대한민국에서 이 번호로 전활 걸어
나에게 ‘토이’라 부를 사람은
딱 세 사람 밖에 없거든.


당신이 날 어떻게 알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말했잖아.
난 ‘어떻게’ 보다 ‘왜’를 더 좋아한다고.


당신은 왜 날 찾아왔을까.
뭐가 그렇게 궁금했던 걸까



“맘에 드는 거 있으세요?”


말없이 둘러보기만 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건... 뭐죠?”




“아 그건 마시멜로우예요. 딸기맛”


“…….”


“근데 먹으면 죽어요. 폭탄이거든”


“네에?”


“하하, 엄청 놀라시네?”


“…….”


“폭탄 아닌 것도 있어요.
근데도 먹으면 죽어요, 거품 물고”


벙찐 얼굴이 모든 걸 말해주는 듯하다.


당신은 여길 오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당신같이 순진한 사람은 여길 들어와선 안 됐어.


“저기 보이는 구슬들은 산소를 없애줘요.
서서히 죽이기 딱이죠”


“…….”


“음... 또 뭐가 있으려나.
아, 저기 구석에는 살인로봇도 있어요.
작동시키면 사람 심장만 보고 덤비거든요.
이름은 Agent Murderer”


“…….”


“이름이 참 섹시해, 그쵸?”


뭐라고 말 좀 해봐.
계속 그렇게 입 다물고 있으면
더 놀리고 싶어지잖아.


“이, 이거는…”




“아하. 이런 거 좋아하시는구나.
역시 여성분이라 보는 눈이 다르시네요.
이건 이름이 따로 있죠.
Afternoon Gun.”


“Afternoon...”


“Gun”


“...Gun”


“네. 영국 Afternoon tea에서 착용한 거예요.
거기 여자들이 수다 떨면서 홍차 마시는 거, 아시나?”


“…….”


“이 총의 가장 좋은 점은 ‘자동’이라는 거죠.
홍차 마시면서 우아하게 죽일 수 있거든요.
총의 손잡이를 컵 손잡이라 생각하고
가만히 들고 있으면? 알아서 빵! 오케이?”


“…….”


“물론 주인의 손금을 인식해야 작동됩니다.
원하시면 해드릴까요?”


“아, 아니요...”


왜. 그 손으로 총 들면 꽤 섹시할 거 같은데.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쳐다봤다.
눈동자는 이미 길을 잃어 방황 중이고
주먹 쥐고 있는 거 보니 무섭기도 하고.


나가고 싶은데 출구는 모르겠고. 그치?


“이거 설명해 드릴까요?”


“아니…”


“여기 걸린 이 면류관은 살을 녹이고,”


이곳은 나만의 공간이니까


“이 가루는 뼈까지 녹이고,”


함부로 해도 되는 곳이니까


“이 물은 장기도 녹이고”


 당신을 죽여도 되겠지.
아무도 모를테니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돼요. 근데
이런 거 저런 거 다 귀찮아서 그냥 총으로 만들었어요.
이거 한방이면 흔적까지 없애게 되는 거죠.”


그러니 이제 진실을 말해야 할 거야.


“그러니까 S"


“…….”


“넌 누구야?”


“…….”



“누구냐고”


누군데 감히 내 이름을 불러.
겁만 잔뜩 든 어린 애 주제에






*






“마담”


“.......”


“커피 두 잔”


“.......”


“마담?”


그렇게 쳐다보지마.
안 죽여. 안 죽일 거야
살아서 내보낼테니까 그렇게 보지 말라고.


마담이 내 눈빛을 읽었는지 순순히 방을 나간다.
탁- 문소리가 들리자 또 다시 몸을 떠는



“처음부터 시작해봅시다. 자기소개”


“…….”


“묵비권은 미란다원칙에서나 나오는 거 아닌가.
아, 취조실 같아서 그러나?
아닌데. 그냥 질문하는 건데”


헤헤. 최대한 바보같은 웃음을 보였다.
이 정도면 통하려나


“S.......”


“S인건 이미 알잖아요.”


“…….”


“셜록인 거 다 알아요.
음… 그런 거 말고 그러면, 직업이 뭡니까?”


“킬러…”


“킬러라,”


킬러래
킬러셨구나


“그럼”





탁-



“쏴봐요 나”


“네?”


“킬러라면서. 그럼 잘 쏠 거 아냐.
아, 이거 아닌가? 그쪽도 누구처럼 칼 쓰나?”






탁-



“이걸로 해요 그럼”


“…….”


“어디를 찌르냐면, 어, 내 심장.
그래야 한 방에 가지 않겠어요?”


또 다시 말이 없다.
테이블 위에 놓인 총과 칼만 쳐다보는 그녀



“하아. 지금 그쪽이 나 안 죽이면
내가 죽일 수도 있어요.
나는 뭐, 무서울 게 없거든”


“…….”


“어떻게, 그냥 처음부터 다시 할까요?
이런 건 다 치워놓고?”



벌컥-



“에이 마담, 노크는 하셔야지”



“너, 너…”


“커피는 내려두고 이것들만 가지고 나가줘”


“…….”



.......



“아 왜 다들 대답이 없어!!!!!”


성질나게. 난 시끄러운 게 좋다고


“빨리”


나의 외침에 그제서야 움직이는 마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내려놓더니
이내 총과 칼을 집는다.


“아무도 들이지마. 연락도 받지 말고”


마담의 눈은 온통 그녀를 향해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저 여자가
꽤나 신경 쓰였나본데.


“나가”


“…….”



“나가 빨리”


마담이 간신히 뒤돌아 나간다.
이제 이곳에는 정말 저 여자와 나, 단 둘뿐이다


“다 필요 없어. 앞뒤 자르고 물을게요.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토이라는 거”


“…….”


“나를 아는 사람이 이 나라에 딱 셋 있거든요, 세 명.
우린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라
약속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해요.
무슨 말인지 알겠죠”


“...네”


“근데 처음 약속이 이거였어요.
내가 ‘토이’라는 걸 발설하지 않기.”


“…….”


“약속을 어길시에는, 뭐,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 사람들은 잘못 없어요”


오호. 드디어 입을 여시겠다?


“그럼”


“내가 알아낸 거예요”


“어떻게”


“휴대폰을... 봤어요”


“누구 휴대폰을 봤는데요”


“…….”


“셋 중 하나?”


“…….”


“그 사람이랑은 어떻게 알지?
여자친구? 동료? 아니면 원수?”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


“아… 맞다, 내가 직접 물어보면 되지?”


“저, 저기!”


“병신, 손 안에 든 정답을 두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셋 중 누구 이름을 누를까 고민하던 찰나,


“조카예요. M이라는 사람의”


“조카?”


꽤나 솔깃한 대답이 돌아왔다.


“네”


“마스터 조카라고?”


“마스터.......”



순간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마스터와 대화하던 도중 울리던 휴대폰,
그리고 액정에 뜬 이름


‘우리 ㅇㅇ’


마스터 성격 상 누군가를 그렇
다정하게 부를 사람이 아니었기에
꽤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그 이름이.



“ㅇㅇ?”


“네?”


“맞아요? ㅇㅇ?”


“제 이름을 어떻게...”



“우와. 대박”


대박. 진짜 대박인데?
마스터 조카라고?
조카가 자기 발로 날 찾아왔다고?


“살다살다 이런 혈연관계는 또... 와, 대박”


“네?”


킬러의 가족이 찾아온 케이스는 처음인데”


“…….”


“아무튼 반갑네요. 마스터 조카 씨.
아니, ㅇㅇ씨”


“네.......”


“마스터한테 이런 조카가 있었나?
안 닮았는데? 마스터보다 예쁜데?”


“네?”


“푸하.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래. 이제야 뭔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전에 블러디 형이 그랬었지.



빨리 가야 돼. 네티가 기다려

 

네티요?”

 

 

그게 뭔데요?”

 

천사소녀 네티만화 몰라?”

 

모르죠 당연히

 

. 네 인생도 참 기구했구나

 

아 뭔데요

 

있어, 네티라고.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애

 

, 만화 보려고 집에 가는 거였어요?”

 

미쳤냐?”

 

그럼

 

진짜 네티 보러간다고.

나같이 불쌍한 사람 품어주는 우리 네티



그 네티구나? ㅇㅇ씨가.



“삼촌한테 제가 여기 왔었단 얘긴 하지 말아주세요”


“왜요?”


“몰래 왔으니까요”


“음”


“오빠들한테도…”


“왜 비밀로 해야 되는데요?”


“그거야,”


“…….”


“그분들은 제가 모른다고 생각하거든요”


“뭘”


“...킬러”


“아하”


그러니까 당신 말은,
당신이 직접 KAP 뒷조사를 하셨다?


“셜록 맞네”


“.......”


“실력이 엄청난데요? 아님 마스터가 실수했거나”


“아무튼 꼭 비밀로 해주세요 꼭.”


“날 찾아온 이유는 뭔데요”


“네?”


“왜 굳이 나한테까지 찾아 왔냐고요.
이미 많이 아는 거 같은데”


“그, 그건...”


“어떻게 날 만나러 올 생각까지 했지?”


“궁금했어요”


“뭐가요”


“뭐하는 분인지”


“아.......”


“대충 예상은 했었어요. 근데 실제로 보니까..”


“보니까,”


“무서워요”


“크흐. 내가 딱 좋아하는 단언데 그거. ‘무섭다’”


“…….”


“근데 생각할수록 신기하네.
나 같으면 도망갔을 것 같은데,
같은 집 식구들이 킬러인 거 알았으면”


“안 무서워요, 오빠들은”


“나는”


“.......”


“나만 무서워요? 뭐야, 갑자기 섭섭해졌어”


“삼촌이나 오빠들은 저한테 총을 겨누지 않으니까요”


“대신 다른 사람을 죽이잖아요”


“…….”


“KAP이 뭔지는 알죠?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집단인지”


“…….”


“모르나?”


“자세히는 몰라요”


“그럼 어디까지 아는데요”


“닉네임 첫 자만 알아요. M, B, C 인것만.
마스터는 방금 알게 됐고.”


“의외로 많이 모르시네”


“…….”


“그거 알고 싶어서 나 찾아왔구나”


“...네”


“진짜 알고 싶어요?
이왕이면 그냥 모른 척 하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알아야 돼요”


“왜요”


“그래야,”


“…….”


“지킬 수 있거든요. 그 사람들을”




.
.
.




못다한 이야기




<I wanna be your Rocketeer>





“안녕 이 사장”


“어, 형 웬 일이야?”


“술 마시러”


“딴 데 가지 왜”


“조용하고 좋잖아”


“문 닫아야 되는데”


“오늘도 일 있어?”


“없어 오늘은”


“그럼 나랑 더 놀아. 쩨쩨하게 그러지 말고”


늦은 새벽.
잠이 오지 않아 수혁이가 하는 재즈바에 갔다.
정말 문 닫을 참이었는지
구석구석 정리하는 직원들이 눈에 띈다.


“30분만 있다가 가”


“너무하네”


“돈은 내고”



“푸하. 아 안 떼먹어 새끼야”


녀석이 피식 웃으며 위스키를 건넨다.


“야”


“왜”


“피아노 한번만”


“가서 쳐”


“나 말고”


“나?”


“엉”


“싫어”


“한번만, 어?”


“안 쳐”


“치사하게 이럴 거냐?
플린트록 구하면 너 줄게. 어?”


“필요없어”


“야... 너 그거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



“알고 싶지 않은데”


“후-”


이 자식 싸가지 없는 건
블러디 형한테 익히 들어서 잘 알지.


“그럼 나 피아노 가르쳐 줘”


“싫어”


“왜 또”


“형이랑 안 맞아”


“나랑 피아노가 왜 안 맞아”


“몰라서 물어?”


“어. 진짜 모르겠는데”


“아무나 치면 그게 피아노냐”


“내가 ‘아무나’야?”


“어”


아니 왜,
이 새끼 싸가지 없는 거 아는데도 열이 받지?


“형 성격 상 피아노 세 대는 부술 걸”


“나 그렇게 난폭한 놈 아니거든”



“그래 그럼”


“웃지마 이씨”


형 말 틀린 게 하나도 없어.
염장 지를 때만 웃어 이수혁 저거는


“야 그럼 아무 음악이나 틀어줘 봐”


“어떤 거”


“형 스타일 모르냐? 힙합”


“그런 사람이 피아노는 무슨…”


“참나”


“여기에 힙합 같은 건 없으니까 알아서 틀어”


“아 씹, 여기 다신 안 와”


“제발”


“야!!!!!!!!”


수혁이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곤 바(bar) 밖으로 나간다.
와, 쟤 왜 저렇게 말 잘하지? 말싸움 전문인가?


“저 개새끼 저거…”


아씨, 뭔 놈의 재즈바가 음악도 안 틀어주고.
아무리 문닫을 시간이라지만
손님 대우는 해줘야 될 거 아냐.


안 그러냐 알렉스?
.......
너 없구나 참.


“형”


“왜”


“휴대폰”


뜬금없이 나타나 휴대폰을 달라는 녀석


“왜”


“음악 틀어달라며”


“진짜?”


“빨리 줘”


“잠깐만. 선곡 좀 하고”


뭐가 좋을까.
지금은 왠지… 하늘로 날아가고 싶으니까.
이왕이면 어느 누군가와,
이왕이면 내가 사랑하는 어느 누군가와-


“이걸로 틀어줘 이 사장”


수혁이가 휴대폰을 들고 무대 옆으로 향한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들리는,







‘Here we go, come with me
There's a world out there that we should see
Take my hand, close your eyes
With you right here, I'm a rocketeer’



.
.




“Let‘s Fly”


지금 기분도 왠지 하늘을 날고 싶으니까.


이왕이면 어느 누군가와,
이왕이면


너와.



‘You want the moon, girl watch me grab it
See I ain't never seen the stars this close
You got me struck by the way you glow’


네가 달을 원하면 따다줄게.
자, 난 이렇게 가까이서 별을 본 적이 없어
내가 꼼짝 못할 정도로 넌 반짝이네



“Hey Alex,
It's not that I'm totally into her,
but I think we are meant to be together.”



.......




“Whatever”




.
.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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