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주 보고 선 우리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갔다.


내 대답을 끝으로 선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 또한, 선배의 일렁이는 눈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으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뭐지? 이 오묘하고도 아찔한 분위기는?
뭐랄까, 마치...


“저기, ㅇㅇ 씨”


꼭 ‘그’ 타이밍인 것 같은데
설마


“그게...”


자꾸 더듬거리는 모양새가 어째...


.......


“사실은,”


“아, 하하하!!!!
이런 길은 여럿이 걷는 게 좋죠!!!!
지나랑 진운 오빠도 다같이!!”



.......



“네?”


“지, 지나도 걷는 거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


“오빠야 원래 잘 걷고. 하하하...”


“아...”


어색한 미소로 선배를 쳐다보다 시선을 돌렸다.
먼저 앞장 서 걸으니 선배가 천천히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


“.......”


발연기 대박이었다 ㅇㅇㅇ
마른하늘에 날벼락 직격으로 맞아도
넌 할 말 없다


.......


누가 봐도 고백 타이밍이었는데.


선배도 어렵게 용기 낸 걸 텐데
왜 난 그 순간을 견디지 못했을까


왜 피하고 싶었을까


“후...”



“야!!! 너네 빨리 와!!!!!!”



저만치 앞서 걷던 진운오빠가 돌아보며 소리 질렀다.


네.. 갑니다 가요...





.
.
.





“벌써 다 와있었어?
하여튼 자식들 이럴 때만 빨라요”


선수들에 치어리더들까지
족히 스무 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들을 둘러보다
오빠가 나를 보며 말했다.


“우린 그럼 여기 앉아야겠다.
지나야 이리와
너네 둘은 저기 앉고”


“어?”


“둘이 앉으라고”


“.......”


친절히 나와 선배를 가리키며 말하는 오빠


나보고 선배 옆에 앉으라고?
안 그래도 민망하고 어색하고 창피해서 죽을 거 같은데
옆에 앉으라고???


아, 아니다.
마주 보는 것보단 나은가?
나란히 앉으면 얼굴 마주칠 일은 없으니까...


미치겠네 정말


“뭐해. 빨리 앉아”


“어어...”


뭉기적거리며 선배 옆에 앉았다.
그나마 테이블 끝에 앉은 게 다행이었다.
도주로를 만들어놔야 마음이 편하니까.


근데 왜 도주로가 필요하지?
아 몰라!!!!!!!


“자 그럼, 일단 건배부터 할까?”


“네!!!!”
“좋습니다!!!!”
“주장이 선창해라!!!!!!!!!”


“오케이 갑니다. 다들 잔 들엇-!!”


“잔부터 채워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아 그래야 되나? 옆 사람이 알아서 따라주면 안 돼?”


“선배님이 따라주십쇼!!!”


“야 누가 진영이 술 좀 따라줘라”


“내 술 받아라!!!!!!”


조용할 틈이 없는 테이블.
살짝 눈치보다 소주를 집어든 순간,


“술 잘 해요?”


선배가 대신 받아들며 물었다.


“네? 아, 네”


“잘 해요?”


“네”


“잘 하지도 못하면서 빼지도 않아요 쟤”


지나야 조용히 해라


“왜요”


“...그냥요. 좋아해요 술”



“.......”


“왜, 왜요?”


“아니에요”


말없이 내 잔을 채우는 선배.
오빠와 지나에게도 술을 따라준 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잔을 채우며 내게 말했다.


“억지로 마실 필요 없어요. 편하게 해요”


“네”


그리곤 말없이 자신의 물 컵을 내 앞으로 밀어 두었다.


“.......”


“야 다 채웠지? 어? 그럼 건배한다!!”


“가시죠!!!!”


신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진운오빠.
잔을 높이 들며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흠흠. 일단, 다 필요 없고 천하대 이겨서 존나 좋아!!!”


“오빠?”


“아, 어. 너무 좋아. 매우 좋아.
천하대 이겨서 진짜 짱 대박 완전 좋아!!!”


“끼얏-!!!!!”
“천하대 발랐다!!!!!!!”


“그래서 우리한테 발린 천하대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 전하고 싶고,”


“미안해 천대~”
“노오력을 하란 말이야~”


“우리 자랑스러운 선수들한테도
잘했다고, 수고했다는 말 하고 싶다”


“TOB 짱!!!!!!!”


“물론 열심히 응원해준 우리 치어리더들한테도
감사의 인사 전하면서!!!!”


“예!!!!!!!!!!”


“다같이 건배!!!!!!!”


“건배!!!!!!!!!!!!!”


고깃집이 떠나갈 듯 소리지르는 그들을 보니
퍽 웃음이 나왔다.
기특하면서도 귀엽고 뭉클하면서도 민망했다.
특히 신난 오빠를 보니 더 그랬다.


“야 오빠 완전 하이 텐션인데?”


“제 정신 아니야”


“크흐흐”


마주앉은 지나에게 작게 한번 더 짠을 하고
바로 털어 마시자,


“으으”


몸이 부르르 떨렸다.


으, 역시 소주는 써
인생의 참맛을 보는 기분이야.


?


ㅇㅇㅇ 정신 차려
이제 시작이야. 취하면 안 된다고
못 볼 꼴 보여주지 말자


“그럼 이제 오늘의 MVP,
버저비터의 주인공 정해인 님의 건배사가 있겠습니다”


“뭐?”


“정해인! 정해인!”
“형 한 말씀 하시죠!!!!”


“내가 무슨... 안 할래. 형이 해”


“빼지 말고 하지? 승리의 주역인데”


“아 형,”


“에이 형 여자친구 앞이라 쑥스러우신가 보다”
“어? 해인이 여친 있었어?”
“오빠 연애해요???”


헐?


“아~ 옆에 계셨구나~”
“와, 정해인 너 여친 있으면서 티도 안 내고”
“대박사건”


당황한 듯 날 쳐다보던 선배가
다짜고짜 일어나더니 술잔을 들며 말했다.


“다, 다들 수고 많았고, 앞으로도 열심히 해서
가을 경기도 이깁시다”


“아... 벌써 가을 경기 걱정하는 너란 놈”


“건배”


“일단 건배!!!!!!”
“예!!!!!!!!!!”


거사를 치룬 듯 한 표정으로 털썩 앉더니
말없이 원샷하는 선배


그런 선배를 곁눈질 하며 소주만 홀짝거리는 나


그런 날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는 지나


“.......”


“.......”


“.......”


“우리도 이제 고기 먹자!!!!!”


“.......”


“.......”


“.......”


“뭐야. 왜 이래 다들”


“오빠”


“엉?”


“고기 뒤집어”


“엉”


오빠가 허둥대며 불판에 올려둔 삼겹살을 뒤집었다.


“근데 너네 왜 부쩍 말이 없어졌냐? 어색하게”


“안 어색한데?”


“어색해 보여. 특히 너”


“나?”


“어. 너처럼 말 많은 애가 그러고 있으면 무섭다고”


“뭐, 뭐가 무서워!!!”


“뭔 일 있는 거 같잖아”


“그게 아니라, 오빠가 괜히 거짓말해서
양심에 찔리니까 그러지!!!”


“그런 거야? 정해인 너도?”


“.......”


“야 뭐 그런 거 갖고 그러냐?
괜찮아. 신경도 안 써 애들”



“해인이 형!!! 여자친구 분 소개 안 해주세요?”
“맞아!!!!”
“언제부터 만났어요?”
“예뻐요!!!!!!”



“.......”


“.......”


“쓰네?”


“으유...”


“기다려봐”


오빠가 집게를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얘네 낯 많이 가리니까 되도록 질문하지 마!!!!
행복하다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
미친


“풉”


“...형”



“그래도 소개는 해줘야 되는 거 아니냐?”
“맞아요!!!”



“지나 친구야. 이름은 ㅇㅇㅇ. 끝!!”



“그럼 소개로 만난 거예요?”
“해인이 형 어디가 좋아요???”
“형이 잘해줘요!!!!?”



여전히 쏟아지는 질문에
오빠가 어깰 으쓱거리며 선배를 쳐다봤다.


“그런 거 아니니까 그만 해”


그러자 선배가 사람들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오- 정해인-”
“내 여자는 내가 지킨다 이거냐??”



“아니라고”


“누나라고 불러도 돼요??”


“안 돼”


“그럼 뭐라고 불러요?”


“부르지마”



“와... 정해인 성격 나오는데?”
“철벽 철벽”



“야야, 고기나 먹어. 다 탔다 거기”


“어어?”
“안 돼!!!!!”


간신히 고기로 주의를 돌린 오빠가
나와 선배를 보며 헤벌쭉 웃어 보였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겠지 생각했나 본데
그 눈코입을 소주에 처박아 소독시키려다
보는 눈이 많이 간신히 참았다는 것 또한 생각해줬으면 좋겠네.


“지나야 ㅇㅇ 눈 무서워”


“왜?”


“이글거려”



“그럴만 해. 놔둬”


“조만간 나 한대 칠 것 같아”


“그걸로 끝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


“무서워...”


“알면 가만히 있어라”


“쳇...”


“그만들 째려보고 고기 먹어.
선배님도 드세요”


“네”


선배의 대답을 끝으로 이어진 침묵.
옆 테이블의 소란과
보미의 고기 굽는 소리만 들릴 뿐
우리 테이블엔 정적만이 흘렀다.


으, 불편해


분한 마음에 상추쌈을 입에 욱여넣고 조용히 씹다가
진운 오빠를 휙- 째려봤다. 그러자,


“아 씨...”


오빠가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너네 소개팅은 확실히 시켜줄 테니까
그만 화 풀고 고기 먹어. 알았지?”


“소개팅?”


“어. 내가 해주겠다고 했었잖아”


“보류라며”


“아... 그게,”


나와 선배를 번갈아 쳐다보며 눈치보는 오빠


“보류 안 해도 될 거 같아”


“왜?”


“아닌 거 같아. 내가 물어보니까,”


“물어봤어?!!?!??”


“아니. 직접적으로 물어보진 않았고 떠봤어. 그랬는데,”


“근데”


“아니야. 아닌 거 같아. 보류 안 해도 될 거 같아”


“....확실해?”


“어”


순간 오빠와 지나가 동시에 날 쳐다봤다.
내 표정이 궁금했겠지.


나도 그런 걸


나도 지금 내 표정이 어떤지 궁금해 죽겠는데
저 둘은 어떻겠어.


더군다나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포장해야 될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겠지.


“.......”


“나 소개팅 해달라고 한 적 없는데”


“뭔 소리야. 내가 해줄까 물어보니까,”


“필요 없다고 했잖아”


“이쁘고 착하고 매력있고 귀엽고, 어?
밝고 명랑한 여자 없냐고 그랬었잖아”


“그건,”


“이 세상에 없는 여자 찾던 놈이 이제 와서 발뺌을 해?”


“.......”


“물론 한 명 있긴 하지. 우리 지나”


“오, 오빠...”


“엉?”


“조용히 해...”


지나가 내 눈치를 보며 오빠를 말렸다.
그러자 입술을 꽉 깨물며 시선을 돌렸다.


“...크흐”


웃겼다. 그 모습이


내 처지가.


그래. 이게 맞지.
애초에 무슨...
선배가 날 좋아한다는 가설 자체가 오류투성이였어.


그래놓고 김칫국은 혼자 다 마신 꼴이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따로 없네.


재밌다 재밌어
개콘보다 웃겼어


“ㅇㅇ아”


“소개팅 시켜줄 거면 빨리 해줘.
기다리다 목 빠지겠다”


피식 웃으며 소주를 털어 마셨다.
오빠는 어색한 웃음을 보였고
지나는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선배는,


“형 잠깐 나 좀”


“어?”


“할 얘기 있어”


“뭔데?”


“팀 얘기야. 나와”


“야, 야!!”


오빠를 데리고 고깃집 밖으로 나갔다.


“...괜찮아?”


“안 괜찮을 건 또 뭐야. 괜찮아”


“.......”


“지금이라도 안 게 다행이지.
속도 모르고 먼저 고백 했어봐.
개쪽 당할 뻔 했어 아주”


“.......”


“잘 된 거야. 이게 맞아”


“그래도...”


“오히려 마음 편하고 좋아.
아까까지만 해도 막 불편하고 그랬는데
이제 좀 편해졌어.
신경 쓸 이유도 없어졌잖아”


“.......”


“긴장 풀리니까 술 땡긴다. 마실래?”


“어어...”


“이왕이면 소맥으로 먹자.
이걸론 취하지도 않을 거 같아”


당황해서 어버버거리는 지나를 외면하며 맥주를 주문했다.
그리곤 소주 반 맥주 반을 채워 벌컥벌컥 들이켰다.


“야!!! 소주 너무 많이 넣었잖아!!!!”


“크으- 이 정도는 돼야 소맥이지.
맥주 향 첨가로는 안 돼”


“고기라도 먹든가”


“술 마실 배도 없는데 고기는 무슨”


“.......”


“너 안 마실 거야? 그럼 내가 마신다?”


“어우 마실게 마실게!!! 천천히 좀 해!!!”


“헤헤, 짠-”


연달아 두 잔씩 소맥을 마시니 띵- 하고 신호가 왔다.
세상이 돌았고 나도 돌았다.


둥글게둥글게, 지구는 둥그니까 앞으로 걸어 나가자!
헤헤. 헤헤헤. 헤헤헤헤


“아 씨... 아무리 봐도 내가 맞는데...”


“뭐라고?”


“그럼 그 핸드크림은 뭐냐고 대체...”


“뭐? 아 뭐라는 거야”


“야, 너 진짜 소개팅 할 거야?”


“당연하지. 할 거야 소개팅.
이번 봄엔 솔로 탈출 한다 내가!!”


“흠...”


“그런 의미로 소맥 한 잔 더!!”


“야 천천히 마시라고”


“어깨춤을 추게 할 순 없지. 빨리 마셔야 돼”


“.......”


조금씩 풀려가는 눈으로 소맥을 제조한 뒤
마시려는 순간,



“저도 주세요 소맥!!!”



눈앞에 나타난 아까 그 후배.
이름이 뭐라더라... 주혁이랬나?


“여기 앉아도 돼요?”


“네네. 앉으셔도 됩니당”


내 옆에 바짝 붙어 앉는 그를 향해 씨익 미소 짓자
그가 따라 웃으며 말했다.


“벌써 취하신 거예요?”


“네, 뭐. 그렇게 됐습니다”


“근데 소맥 마셔요? 더 빨리 취할텐데”


“술은 취하려고 먹는 거죠. 자!”


완성된 소맥을 건네자 쭉쭉 들이켜기 시작한 후배님


“오오- 나도 나도!!”


나까지 원샷한 뒤 잔을 내려놓자
그가 당근을 손에 쥐여 줬다.


“헤헤 고맙습니당”


“아, 저는 남주혁이라고 합니다.
해인이 형 친한 동생이에요”


“아... 그러시구나?”


“제가 형 사생활은 웬만큼 꿰고 있는 편인데
연애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서...”


“연애 안 해요”


“네?”


“연애 안 해. 안 해요 그거”


“형 여자 친구라고...”


“여자 후배. 후배예요 나”


“아... 혹시 과 CC예요? 신방과?”


“아니요. 난 국문과. 쟤도 국문과”


지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헤헤 웃는 나와 달리 지나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후배님은... 아, 후배 맞나? 몇 살이에요?”


“후배 맞습니다. 17학번이에요”


“그렇구나. 후배님은 무슨 과예요?”


“저 사학과입니다”


“사학과? 우와, 멋있다아- 인디아나 존스!!!!”


“그, 그런 느낌은 아닌데... 하하”


“빰빠밤빰 빰바밤- 빰빠밤빰 빰빠 빰밤빰!”


“ㅇㅇ아 작작해라...”


“푸흐... 재밌으시네”


“그런 의미로 소맥 한잔 더!!!”


“야 그만 마셔. 너 취했어”


“아 왜!! 여기 우리 후배님도 계신데... 그쵸 후배님?”


“네.. 하하...”


“이번엔 후배님이 말아보실라우?”


“네? 네”


살짝 웃으며 내 잔을 가져가더니
소맥 제조에 돌입한 후배님
그런 그를 턱에 손을 괸 채 빤히 쳐다보다 물었다.


“사학과 재밌어요?”


“그럭저럭요”


“에이... 나도 사학과 복전할 걸 그랬나봐.
괜히 신방과 해가지고...”


“신방과는 재밌잖아요.
저희 과는 하루 종일 한자만 읽다 끝나요”


“어?!?!? 우리 과도 그런데!!!!”


“진짜요? 국문과가요?”


“완전 우리랑 똑같아. 그치 지나야”


“.......”


“예로부터 세종대왕께서, 아... 잠깐,”


“네?”


“흠흠.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예?”


“미친...”


“이런 젼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홇배이셔도
마참내 제 뜨들 시러 펴디 몯핧 노미하니라”


“.......”


“그만해라”


“내 이랄 위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듦자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 니겨 날로 쑤메
뼌한킈 하고져 할 따라미니라-”


“아...”


“이렇게 우리 세종대왕님께서
친히 스물여덟 자를 만드셨는데...
왜 국문과에선 한자만 주야장천 읽냐 이 말이야..
안 그래요?”


“그, 그러게요”


“국문과나 사학과나 다 바보같아...
한자 진짜 싫은데...”


“저기, 선배님”


“아! 술!!! 잘 탔어요? 황금비율?”


“네 그렇긴 한데...”


“그럼 원샷!!!!!”


“야!!!!!”


짠- 잔을 부딪치곤 지체 없이 원샷을 때렸다.


“크으- 맛있다”


“그만 마시라고 했다. 얘 술 그만 줘요 이제”


“저기 혹시... 두 분 싸우셨어요? 사랑싸움?
그래서 분위기가 좀 이상한 건가?”


“하... 그게 아니고,”


“아니라니까요? 그런 거 아니라고오...”


“.......”


“안 사귄다고요. 난 다른 남자랑 소개팅 할 거고요,
그 분도 다른 여자랑 소개팅 할 거고요...”



“너 뭐야”



열심히 설명하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갤 돌리니,


“여기서 뭐해”


잘난 선배가 떡하니 옆에 서있었다.
쳇. 그렇게 인상 쓰면 누가 무서울 줄 아나


“형 여자 친구 분... 아니, 여자 후배 분이랑
한 잔 하던 중이었,”


“가”


“네?”


“가라고”


“아, 넵”


“어어-? 어디 가요?? 마저 마시고 가야지!!!”


“ㅇㅇ 씨 이미 많이 마셨어요. 그만 해요”


“왜요?”


“네?”


“그냥 마시게 놔둬요. 그래도 돼요”


“.......”


“앉아요 후배님. 가지 말고”


“저... 가봐야 될 것 같은데...”


“왜요!! 소맥 황금비율 알려줘야죠!!!!”


어쩔 줄 몰라 하던 후배님이
선배와 눈이 마주친 순간 바로 도망가 버렸다.


아 씨... 분위기 다 깨졌네...


“ㅇㅇ 씨 얼마나 마셨어요?”


“소주 다섯 잔에 소맥 네 잔이요.
한도 초과예요.”


“.......”


“오빠는요?”


“통화 중이에요.”


“이모 여기 맥주 한 명 더요!!!”


“야 너 내일 알바 안 가?”


“갈 거야. 알바는 무조건 가”


“밤새 고생할 거 뻔한데 잘도 가겠다”


“나 고생 안 해. 지금 정신 멀쩡해”


“네 속이 고생한다고 기집애야”


“괜찮아~ 별 거 아냐”


씨익 웃으며 소주병을 드는 순간 낚아챈 선배.
날 한동안 쳐다보더니 다짜고짜 물을 건네며 말했다.



“마셔요”


“싫어요”


“마셔요”


“싫어요”


“마셔요 빨리”


“싫어요”


“후... 마셔줘요 한 번만”


.......


“...이건 그냥 물이에요”


“맞아요. 물이에요”


“아무 것도 아니고 그냥 물”


“응. 물”


“다른 건 없는 거예요. 그냥 물인 거야”


“.......”


그가 내민 물 컵을 들고 마시려다


“.......”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지나 컵에 들어있던 물을 마셨다.


“됐죠?”


“.......”


입술을 깨물며 날 쳐다보는 선배.
그렇게 서로 아무 말 없이 쳐다만 보던 찰나,


“나 왔다~ 술 먹자~”


진운 오빠가 불쑥 나타나 선배 옆에 서며 말했다.


“너네 뭐해? 눈싸움 해?”


“.......”


“.......”


“뭔 눈싸움을 그렇게 살벌하게 해?”


“오빠 조용히 해”


“맨날 나한테만 조용히 하래...”


후...
그래. 살벌하게 눈싸움해서 뭐하냐.
부질없고 의미없다...


“오빠”


“어?”


“그 사람 번호 줘”


“번호? 누구?”


“나랑 소개팅 할 사람”


“어??”


“내 번호도 주고”


“아... 그치. 그래야지”


“얼굴도 좀 보여줘 봐. 얼마나 잘생겼나”


“저기, 그게 있잖아...”


“키도 크다며. 성격도 좋고”


“그렇긴 한데,”


“어디 하나 빠지는 데 없댔잖아”


“그게 사실은,”


“상남자라며. 나 좋아 그런 스타일”


“안 될 거 같아”


“...어?”


“걔, 걔가 그 사이에 여친이 생겼다네?”



“얼마 안 됐대. 한... 1일?”


“.......”


“타이밍이 참... 그렇지? 하하하...”


“확실해?”


“어”


“하,”


이젠 얼굴도 안 보고 까이는 경지에 이르렀구나.
대단하다 ㅇㅇㅇ


마가 꼈나? 아님,
나한테 ‘까임’ 페로몬이라도 있는 건가?


어떻게 다들 이래?


“ㅇㅇ아...”


지나의 안쓰러운 눈빛이 나에게 닿을 때 쯤
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 마셨다.
그리곤,


“먼저 간다-”


그곳을 박차고 나왔다.






My Type






(♪ 나의 밤 - 에피톤 프로젝트)





“.......”


일부러 한적한 데로 걸었다.
벚꽃도 있고 가로등도 있는 그 길이 좋았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선
신나는 노래와 슬픈 노래가 번갈아 나왔고,
그에 맞춰 내 걸음 속도도 바뀌었다.


아-
그 마지막 한 잔
걔 때문에 완전히 취했네.
막잔은 마시는 거 아니라더니...


“후...”


자꾸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견디며
힘겹게 걷던 순간 맞닥뜨린 횡단보도.
신호도 나갔고, 사람도 없고, 차도 없길래
무심코 건너려는데,


“.......”



붙잡혔다.



몸과 마음이




“.......”


“.......”


그는 한동안 날 지그시 쳐다봤다.
서서히 감기려는 내 눈을.


그러다 손목을 붙잡고 횡단보도로 향했다.


성큼성큼 걷는 그에 비해 느렸던 나는
그저 그의 뒷모습만 보며 끌려갈 뿐이었다.


이렇게 걸음이 빠른 사람이었나.
전엔 내 보폭에 맞춰주더니 이젠 안 그러네.


나 음악도 크게 듣고 있는데
그것도 뭐라 안 하고...


치사하게.



참, 이거 아니지



“잠깐만요”


자리에 멈춰 서서 그를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잡혀있던 손목을 빼냈다.


“혼자 갈게요”


“.......”


“괜찮아요.”


나름 괜찮은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봤을 땐 아니었나 보다.


그는 다시 날 붙잡더니
천천히 이어폰을 빼 카디건 주머니에 넣어주며 말했다.


“안 돼요”


“.......”


“같이 가요”


“.......”


“같이 걸어요.”


“싫어요”


“왜요”


“그냥 물이 아니잖아요.”


“.......”


“진짜 물이더라도, 난 물로 안 보여요.
그래서 안 돼요”


“뭘로 보이는데요?”


“.......”


“뭐가 됐든, 보이긴 보여요?”


“.......”


“나 봤어요?”


“선배님,”


“물 아니에요 나. 물 되기 싫어”


“.......”


“제대로 다시 봐요. 봐줘요”


“.......”


“.......”


“.......”


“억지로 물 먹이지 말고”


그가 어렴풋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웃을 타이밍은 아닌 것 같은데
속도 없이 저러는 걸 보니


왠지 미웠다.


“쉽게 말해요”


“먼저 시작한 건 ㅇㅇ 씨였어요”


“알아요. 나 이제 취해서 머리 잘 안 돌아가니까
쉽게 말하라고요”


“소개팅 하지 말아요.”


“놀려요?”


“진심이에요”


“.......”


“이번에 간신히 막았으니까
다음부턴 절대 하지 말아요. 쭉”


“네?”


“그리고 내일 데이트해요 우리”


“.......”


“시간 남으면 과제도 하고”


“.......”


“안 남을 것 같긴 하지만”


“지금 이거,”


“.......”


“...선배 설마 진짜로,”


“.......”


“진짜예요?”


“네”


“.......”



“ㅇㅇ 씨 좋아해요. 진짜로”





.
.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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