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많은 식구들

w. 별유






쓰담쓰담-



“으응..?”


“쉬이.”



잠든 ㅇㅇ을 보는 진욱의 눈빛이 따듯하다.
밤새 침대 옆에 엎드려 있던 ㅇㅇ가
기특하기도 하고, 미련하기도 하고.


“흐음...”


빈 병실을 둘러보니 한숨만 나왔다.


아침 일찍, 정우와 수혁은 집으로 향했다.
공항에 가기 전 총과 칼을 챙겨 차에 둘 생각이었다.
물론 들킬 확률이 높지만
뭐라도 준비해야 하는 게 맞으니까.


‘ㅇㅇ이 여기다 둘 거야? 가서 재우지’


‘집이 개판인데 어디서’


‘그런가...’


‘집 치우고 고칠 때까진 다른 데 둬야 될 것 같은데…
마땅한 곳이 없네.’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계속 뒤돌아보던 정우의 염려 섞인 혼잣말.
진욱도 그 의미를 잘 알고 있기에
같이 인상을 찌푸렸다.


가장 지켜야 할, 가장 다치면 안 될 사람이니까.


“후우…”


한참 ㅇㅇ의 머리칼만 쓰다듬던 진욱이
머리맡에 있던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때마침 울리는 진동



토라이
[형 오늘 술 한잔 콜?]



“환자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말은 이렇게 해도 씨익 웃는 진욱이다.
간밤에 무슨 일 있었는지 알면 놀라 자빠질 녀석인데…
어떻게, 말을 해줘 말어.


아 씨, 칼 맞은 건 진짜 쪽팔린데....



닥터 욱
[형님 바쁘시다]



토라이
[형이 그렇게 노래 부르던 독약 주려고 했는데]



“오!! 아....”


진욱이 팔을 번쩍 들려다가 힘겹게 다시 내린다.
꿰맨 곳에서 쓰라림이 느껴졌을 터.


“....... 아 잠깐만”


입을 삐죽 내밀던 것도 잠시, 진욱의 표정이 싹 돌변한다.


그는 기억을 되돌리고 있었다.


어찌됐든 ㅇㅇ은 비밀번호로 잠긴 방에서 나왔고
플레이어 버튼을 눌러 놈을 찔렀으며


결정적으로 토이를 안다고,
심지어 만났다고 했다.


“이 씨발놈 이거”


급히 통화 버튼을 누르는 진욱.
길어지는 신호음만큼 그의 표정도 굳어져갔다.


“네 형”


“야”


“넵”


“너, 너...”


“근데 형님 진짜 술 안 하실 거예요?
거하게 쏠 생각인데?”


“지금 술이 문제가 아니라 너,”


“수혁이네로 가시죠. 아, 오늘 안 나오겠구나...”


“야 토이”


“형 그럼 저희 집으로?
이왕이면 마스터도 데리고 오세요”



“새끼야 형 말 좀 하자”


“아 넵”


“너 나한테 할말 있어 없어”


“에?”


“나한테 해야될 말 있잖아”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숨기고 있는 거 다 말해”


“뭘 숨겨요 내가. 있는 거 없는 거 다 말했구만”


“지랄하지 말고 빨리 말해.
지금 말하면 용서 해줄게, 아니다
그래도 용서 못해 이 개새끼야”


“형님?”


“형님이고 나발이고, 야 너 이씨,
너 당장 우리 병원으로 와”


“병원이요? 지금?”


“그래 인마 지금!!!”



“움.... 오빠아.......”



“네 뭐, 진료실로 가면 되죠?”



“아니. 5104호로 와 새끼야”



툭-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내려놓는 진욱.
그 소리에 깬 ㅇㅇ가 살짝 고갤 든다.


“오빠아...”


“어? 일어났어?”


“뭐해…”


“어... 나 잠깐 통화”


하암- 하품하며 고개를 들던 ㅇㅇ가 이내 어깨를 주무른다.


“엎드려 자니까 아프지. 저기 간이침대에서 자던가”


“어제 잠깐 오빠 옆에 앉아있었던 건데
잠들었어. 엄청 피곤했나봐”


“피곤할 만하지”


진욱이 ㅇㅇ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는다.
둘은 그 웃음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치?”


“그럼~”


“두 번 피곤했다간 죽겠어 아주”



“푸흐”


진욱을 따라 웃던 ㅇㅇ가 주변을 둘러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삼촌은?”


“갔어. 수혁이랑”


“어디?”


“집에”


“집? 왜?”


“음... 물건 좀 챙기고.......”


ㅇㅇ의 눈치를 보는 진욱.
말하기 망설이는 얼굴이다.


“엄...”


“공항 가는 거야?”


“어?”


“어제 그 사람이 오라고 했잖아. 공항”


“그렇긴 한데...”


“…….”


“갔다가 금방 올 거야!”


“대표 말대로 할 거래?”


“어?”


“여자... 죽일 거냐고”


ㅇㅇ의 말에 깜짝 놀란 진욱이
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돌린다.


ㅇㅇ은 남자의 말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더 많은 부분까지도.


“오빠”


“응”


“나 다 안다니까?”


“…….”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해도 돼”


“…….”


ㅇㅇ의 말에 살짝 입술을 달싹이더니
결국 꾹 다물고 만다.


아직 어색했다.
항상 ㅇㅇ에겐 숨겨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이젠 다 털어 놓으라니.


ㅇㅇ의 눈을 보며 이런 얘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오빠”


“응..”


“우리 진실게임 할까?”


“어?”


“진실게임. 하나씩 털어 놓는거지, 뭐가 됐든”


“…….”


역시나 망설이는 진욱 앞에서
먼저 목을 풀더니,


“나 사실 오빠 방에 몰래 들어간 적 있어”


진실을 꺼내기 시작한다.






KAP

Hidden Truth







“알아”


하지만 건조한 반응을 보이는 진욱


“엉?”


“안다고. 너 내 방 자주 들어왔잖아”


“어떻게 알아?”


“그냥. 느낌으로 알아.
뭐... 연필 위치가 변한 적도 있었고”


“그대로 놨을텐데?”


“내가 좀 예민해 그런 부분에서”


“말도 안돼”


“가구 틀어진 것도 귀신같이 잡아내는데?”


“아 맞다...”


“근데 들어와서 뭘 했는진 모르지.
대충 예상만 했을 뿐.
예를 들어... 뭐, 노트북을 빌렸다거나”


“전혀”


“침대에 누워봤다거나”


“노노”


“책! 책을 봤을 수도 있고”


“풉. 아니거든?”


“그럼 뭐했어”


“오빠 달력 봤지. 표시해 둔 날짜 확인”


진욱이 할 말을 잃었는지 넋 놓은 채 ㅇㅇ만 바라봤다.


“거봐, 나 많이 알고 있다니까?”


“너 정말...”


“다음, 오빠 차례야”


싱긋 웃는 ㅇㅇ을 보니 더 복잡해지는 진욱이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까,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한참 고민하더니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일단 약속해. 뭐가 됐든 충격받지 않겠다고”


“알았어”


“진짜로”


“응. 진짜”


“후….”


“빨리!”


“...나 이 일 한지 8년 됐어”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데?”


“뭐야, 한 번에 하나씩 까는 거 아니었어?”


“내 맘이야”


“그런 게 어딨어. 그리고,
내가 네 질문에 꼭 답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


“쳇. 갑자기 똑똑한 척 하냐?”


“그럼 나도 질문하나 할게. 대답해”


“그래!”


“토이랑 만나서 뭐했어”


“.......어?”


“만났다며”


“아 그게...”


생각지도 않은 질문인 듯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ㅇㅇ.


“그 사람 집에 갔었어”


“뭐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네, 네가 찾아 간거야? 어?”


“응”


“하아....... 그 새끼 집이 얼마나 위험한데”


“그래도 살아 나왔잖아!”


“자랑이다. 자랑이야”


“히이.......”


“그래서 뭐했어 집에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얘기 듣고”


“구경까지 시켜주셨어? 그 잘난 토이께서?”


“응”


“개새끼 죽여버릴거야.......”


ㅇㅇ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당황스럽고 이상한 건 ㅇㅇ도 마찬가지였다.
맨날 ‘모르는 척’만 하고 살다가
갑자기 ‘아는 척’을 하라니.


그래도 ㅇㅇ은 정우가 아닌 걸 감사하게 생각했다.
만약 정우였다면, 당장 토이를 찾아가
뒤집어 엎어놨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이제 오빠도 대답해.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미국에서 정우 형 만난 뒤로”


“삼촌이 왜? 삼촌이 뭔데?”


“...마스터”


“그건 알아”


“그것도 알아?”


“응. 오빠가 ‘블러디’라는 것도 알아”


“헐. 토이가 알려줬어?”


“응”



“하아... 진짜 죽여야겠다”


“흠흠. 아무튼, 삼촌이 뭔데?
왜 삼촌 때문에 시작하게 된 건데”


“형은,”


“응”


“…….”


“빨리 말해라”


“후....... 이건 그냥 형한테 들으면 안돼?”


“삼촌이 말해줄 것 같아?”


“응. 분명히 말해줄거야”


“아 오빠!!!!”


“나 못하겠어. 도저히 입이 안 떨어져”


“이러기야?”


“나는 그냥 네가 모르는 걸로 알고 있을게.
넌 아무 것도 모르는 거야.
알아서도 안 되고, 알고 싶어 해서도 안 돼”


“이미 다 안다니까?"


“몰라. 나 몰라. 모를래! 모를 거야!!!!”


진욱이 양손바닥으로 귀를 막곤
고갤 세차게 흔들었다.


“헐.......”


“아무 말도 하지마”


“나 오빠 방에 시크릿룸 있는 것도 아는데?”


“아아아아아 아무 것도 안 들린다아아아”


“아, MP3플레이어 있잖아.
그거 나 토이한테 선물 받아놨다?”


“....아아아아.......”


“내 방 비밀번호도 토이가 알려줬어!”


“씨...발...새끼.......”


“참, 오빠 자켓 안주머니에서 총알도 보고”


“…….”


“첩보영화 보자고 한 거 일부러 그런 거야. 헤헤”


진욱이 살며시 손을 내려놓더니
ㅇㅇ을 빤히 쳐다봤다.



“ㅇㅇ아”


“응”


“우리 밉지 않아?”


“어?”


“징그럽고 무섭고. 안 그래?”


“안 그래”


“왜”


“…….”


“왜 안 그래. 그래야 정상인데”


“삼촌이랑 오빠들이니까”


“…….”


“무슨 일을 하든... 괜찮아. 이해할 수 있어”


“맨날 사람 때리고 죽이는데
그게 왜 괜찮냐고 대체”


“나는 오빠,”


“…….”


“떠나지만 않으면 돼”


“…….”


“누구처럼.”




누구처럼.’

진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ㅇㅇ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이내 고갤 숙이고 말았다.


둘 다 알고 있는 슬픔이었다.
진욱이 익히 걱정하고 염려하던 슬픔이기도 했다.


ㅇㅇ은 꽤 오랜 시간 아빠의 외도를 묵과하며
 ‘회피하는 법’을 배웠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그 호기심 많고 재잘대기 좋아하던 꼬마 아이는
엄마를 위해 아빠를 위해,
어쩌면 자신을 위해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마음의 병은 시작됐고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엄마까지 떠나던 순간


ㅇㅇ은 무너졌다.
아닌 척 했을 뿐.



ㅇㅇ은 또 다시 그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7년간 이어진 아빠에 대한 ‘모르는 척’이
엄마를 살렸으니까,


이번에도 모르는 척 해야겠지.
그래야 떠나지 않을테니.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아



“내가 토이를 찾아간 이유는 하나야.
뭔가를 알아야 모르는 척도 할 거 아냐”



“ㅇㅇ아”


“그래야 지킬 수 있잖아. 내 옆에서, 내 곁에서”


“…….”


“아빠를 말릴 순 없으니까
최대한 엄마한테 들키지 않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끝을 흐리는 ㅇㅇ.


“삼촌이랑 오빠들을 말릴 수 있는 방법도 없잖아.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어.
또 최대한 들키지 않게,
혹시 해코지라도 당하면 뒤에서 도울 수 있게..”


차오른 눈물을 벅벅 닦으며 말을 잇는다.


“...내가 7년을 참고 버텼는데도 결국 둘 다 떠났잖아.
이번에도 다 가버리면... 정말 내 잘못이 되는 거야.
다 내 탓이 되는 거라고”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ㅇㅇ을 보곤
진욱 또한 입술을 깨물었다.


“근데 다 끝나버렸어. 이제 모르는 척도 못해.
소용 없어져버렸어, 다”


ㅇㅇ의 손을 붙잡는 진욱.
가만히 쳐다보던 ㅇㅇ가 나머지 손으로
그의 손등을 감싸며 애처롭게 전했다.


“그러니까 약속해, 떠나지 않겠다고.
미안하다 한 마디 하고
괜히 나 위해서 사라지지 않겠다고.
누구처럼.”



그러니까 그녀의 삶에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






*







수혁이 창밖으로 지나는 풍경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ㅇㅇ에 대한 생각이었다.


애달픈 입맞춤 뒤 수혁은 ㅇㅇ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머릿속엔 당장 후회가 들어찼고
이내 좌절감으로 변질됐다.


그는 좌절했다.


ㅇㅇ의 흔들리는 눈을 보며 느낌 감정이 그랬다.


좌절스럽고 슬펐다.





                                                         

(♪Believe - The Bravery)





갑자기 들리는 음악 소리에 정우를 쳐다보는 수혁.

말없이 운전에만 열중하던 정우가 살짝 웃음 짓는다.


“너무 심각해서”


수혁은 입술을 깨물며 반대편으로 고갤 돌렸다.

왠지 정우의 얼굴을 보니 더 심란해지는 것 같았다.



ㅇㅇ은 젖은 눈망울로 수혁에게 말했다.


이 순간만큼은 지키고 싶었어.’

 

시간이 멈추길 바랐고

 

근데 아주 잠깐은, 멈췄던 것 같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너와 같은 기분이라고,
온 만물은 멈췄는데 내 심장만 뛰고 있어 무섭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대신 이 말을 전했다.



‘'미안해.’


수혁은 늪에 빠진 거라 확신했다.
나아가지도 돌아가지도 못할 늪에 빠진 거라고.
너랑 나, 모두.



사실 그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ㅇㅇ의 입술이 닿았을 때

잠시 헛된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이 차디찬 늪에 같이 빠지길 바라는.

너도 나도 아무 생각 못하게

이곳에 빠져버리길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길.



“노래가 더 심각하네”


“그러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냐. 아무 것도”


“수혁아”


“어”


“독일 못 가서 어쩌냐”


“상관없어”


“어렵게 결정했을텐데”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마”


수혁이 고갤 숙이며 손가락을 만지작거린다.
그냥, 침묵이 주는 갑갑함이었겠지만
정우는 그게 퍽 안쓰러웠다.



“인마, 손이 그게 뭐야.
명색이 피아노 치는 놈이”


이제 하얗고 곱던 손은 없었다.
열 손가락 어딘가에 상처 하나 쯤은 남을 터.
정우는 그게 속상했다.
손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는데.


ㅇㅇ이만큼이나 지키고 싶었던
진욱과 수혁이었다.


“형”


수혁의 시선 또한 핸들을 잡고 있는
정우의 손에 닿아있다.


투박하고 거칠기 그지없는 손이었다.


“왜”


“우리 이 짓 그만 할까?”


수혁을 돌아보는 정우



“그만 죽일까”


혼잣말 하듯 나지막이 읊는 소리에
침묵이 꼬리를 문다.


정우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고 수혁은 창밖을 내다봤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이번 일만 끝나면”


“…….”


“독일로 넘어 가”


이런 말이면 될까



“ㅇㅇ이랑 같이”



“...... 형”


표정없는 정우가 의아할 뿐이다.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차분했다.


“그만해도 돼 이제”


“…….”


“그게 좋을 것 같아. 너한테도, ㅇㅇ이한테도”


“형, ㅇㅇ이는...”



“잘 부탁한다 했잖아”



그러니까, 우리 조카 잘 부탁한다.

피아노는.... 꼭 쳤으면 좋겠는데



정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그때 그가 던진 말은 온전히 진심이었다.
수혁의 독일 행을 축하해준 마음 또한 모두 진심이었다.


“내가 어디 가서 쉽게 뭐 부탁할 놈은
아니지 않아? 그것도 너한테”


“…….”


“딸 가진 부모 심정이 이런 건가.
‘부탁’이란 단어가 의외로 쉽게 나오네. 짜증나게”


“무슨 생각 하고 있는 건데 대체”


“너희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생각”


“…….”


“제발 그 놈의 빌어먹을 기억 좀 버리고
웃기만 했으면 하는 생각”


“형…”


“지금 내 기분이 어떤 줄 알아?”


“…….”


“엿같애”


정우가 입술을 깨문다.
찰나의 고요가 모든 걸 설명해주는 듯했다.


그에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뜻대로 된 게 하나도 없잖아.
진욱이는 수술까지 받고, 너도 다치고.
심지어 ㅇㅇ이는…”


“…….”


“혼자 괴로워하고 있었어.
열심히 숨긴다고 숨겼는데 망한 거지.
멍청하게 그냥, 넋 놓고 산거야.
웃기지 않냐”


“왜 이래 형 진짜, 답지 않게”



“ㅇㅇ이 목에 칼이 닿았었다고 수혁아”



“…….”


핸들을 부여잡는 정우가 마음에 걸린다.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이었다.


“난 그것도 지켜보기 힘든데...
그 자식 다리를 찔렀을 땐 정말,”


“…….”


“당장이라도 총으로 내 머릴 날리고 싶었어”


수혁도 생각에 잠긴다.
ㅇㅇ가 놈의 다리를 찔렀을 땐
정말 예상치도 못한 일이라 놀랄 겨를도 없었다.


그냥, 용케 잘 빠져나와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 한편이 아렸다.


누구든 사람을 찌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ㅇㅇ에게는 더욱 쉽지 않았을 터.


정우는, 자신이 아닌 ㅇㅇ이에게까지
칼을 쥐게 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 상처를 준 것 같아서,
자꾸 힘겨운 짐만 주는 것 같아서


“상처가 무뎌지면 괜찮은 것 같잖아.
근데 아니야. 전혀 안 괜찮아.
괜찮을 리가 없어”


정우가 엑셀을 세게 밟는다.


“너도, 진욱이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시작한 일이겠지만,”


“형, 나는 적어도…”


“독이야 이제.
그만 할 때도 됐어. 맞아, 그게 맞아”



I'm hiding from some beast

but the beast was always here,

Watching without eyes

Because the beast is just my fear.



“세상 모든 짐 혼자 짊어지고 가는 놈들한테
더 큰 짐을 맡겼으니
니들이 제대로 살 수 있었겠냐.
.......
그래서 엿같다는 거야.
내 기분이, 내가.”



So give me something to believe

Cause I am living just to breathe

And I need something more

to keep on breathing for

So give me something to believe







*






벌컥-



“형님!!!....... 어?”


“어...!”


병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토이가
놀란 눈으로 ㅇㅇ을 쳐다봤다.


“무슨 운명의 상대 만난 것처럼
어어 거리지 말고 빨리 튀어 와라”


“아... 네”


ㅇㅇ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인사해. 토이라고,
내 주변 놈들 중에 제일 또라이야.
아 참, 둘이 구면이지?
이런 우연같은 인연이. 하하하!!”


썩은 표정으로 토이와 ㅇㅇ을 번갈아 쳐다보는 진욱.
영문을 모르는 토이는 마냥 자리에 서서 눈치만 볼 뿐이다.


“저기 형?”


“자 이제 할 말 있음 해봐.
아까 말했지만 용서란 없다”


토이가 오묘한 표정으로 ㅇㅇ을 쳐다봤다.
그러자 살짝 고갤 끄덕이는 ㅇㅇ


“둘이 뭐 수신호 보내?”


“아니요, 그게...”


“..... 다 알아요”


“에?”


“다 안다고요. 우리”


“아.......”


“아... 하면 다 해결되냐?”


“어떻게?”


“네?”


“어떻게 알게 됐는데요”


“그게 그러니까,”


“얀마,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뭐
이런 말부터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유부터 알고요”


“헐”


“제가 말했어요. 솔직하게”


“왜?”


“그럴 일이...”


“너 지금 나 환자복 입었다고 무시하는 거지”


“아니요? 어? 진짜 그러네? 형 왜 누워있어요?”


“하아... 저 토라이”


“어디 다쳤어요?”


“됐어 인마, 둘이 의견 정리해서
제대로 브리핑 해. 한 번에 이해하게”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젓곤
옆에 뒀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카톡창을 열어 누군가에게
한 자 한 자 적는 중간 들리는 둘의 대화.


“이제 안 숨겨도 돼요. 삼촌도 다 알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고”


“어젯밤에 누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


“집에?”


“네”


“형, 집에?”


“어”


“누가?”


“어떤 개호로자식들 있어”



닥터 욱
[정 선생 나야]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었는데...”


“형 싸웠어요?”


“아 그렇다고”



닥터 욱
[나 오늘만 병가내면 안 될까]



“Wow...”


“근데 거기서 제가... 그 MP3 플레이어를 썼거든요”


“뭐, 곰돌이?”


“네”


“칼을 썼다고?”


“네”



닥터 욱
[진짜 아픈 거니까 화내지마라]
[환자복 입고 있다고]
[원한다면 사진도 보내줄수 이썽]




“방에서 기어나왔나 보네”


“네?”


“비번 괜히 가르쳐줬어”


“그래 이 새끼야.
내가 그거 때문에 너 오늘 족칠 예정이야.
딱 기다려”



닥터 욱
[꾀병 아니니까 오해 노노]
[놀러와]
[5104호로♪]



"비밀로 해달라 할 땐 언제고 직접 풀고 나와요 그걸?”


“그게...”


“근데 뭐, 나쁘진 않네요”


“네?”



“숨기기 답답했걸랑. 아, 그건 그렇고”


실실 웃더니 문 쪽에 있던 의자를 들고
진욱의 곁에 가 앉았다.


“형님”


“뭐하냐”


“제가 재밌는 얘기 해드릴게요”


“싫어. 저기 가서 머리 박고 있어”


“진짜 중요한 건데?”


“머리 박고 얘기해”


“에이. 형 날 뭘로 보고”


“또라이”


“후...”


진욱의 냉담한 표정에도 기죽지 않던 토이가
오히려 씽긋 웃어 보였다.
설레 보인다고 해야 할까.



“This is really, really interesting”


“interesting 같은 소리하네. 어? 이 새끼가”


“형 알잖아요. 그 집 아무나 못 들어가는 거”


“말 돌리지 마라”


“근데 어떻게 들어갔을까요?
형 상태 보니까 아무 것도 몰랐던 것 같은데.
경보음도 안 울리고. 맞죠”


“…….”


토이의 웃음과 반대로 점점 굳는 진욱의 표정


“뭘까요?”


“설마,”


“설마?”



“너냐?”


ㅇㅇ가 동그래진 눈으로 토이를 돌아보던 찰나,
진욱이 베개 밑에서 칼을 꺼내
토이의 목에 가져다 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빠!!”


“너야?”


“…….”


“너냐고”


“형”


“사실대로 말해”


“진짜 이럴 거예요?”


“씨발 나 너 믿었다”



“계속 믿어봐요 그럼. 이런 거 들이밀지 말고”


진욱의 손목을 쳐내곤

퍽 인상쓰며 말을 이었다.


“전에 말했죠. 형 배신하면 진짜 쓰레기라고”


“나도 말했잖아.
넌 이미 쓰레기라 상관없을 거라고”


“shit...”


“보안시스템 설치한 건 너야.
그걸 풀 수 있는 것도 너고”


“그러니까 재밌다는 거예요!!”


“…….”



“누가 내 걸 풀었다니까?
감히? 내가 머리 써서 해놓은 걸?”


본인도 기가 차다는 듯 피식피식 웃었다.
왠지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만약에 너, 지금 연기하는 거면...”


“죽여요 그럼. 형이 직접”



“진짜 죽일 거야”


“네”


“진짜로”


“오빠...”


토이가 ㅇㅇ을 돌아보더니 씨익 웃으며 답했다.


“진짜 나 아니에요. 형 배신 안 해, S 걸고”


“S? S가 뭐야”


“저, 저기..!”


“아.. 거기까진 말 안했구나? 우리 셜록”


“셜록?”


“저기요!!”


“크흐...”



“웃음이 나와?”


“형, 잘 생각해봐요.
내가 정말 형들 배신할 거였음
그렇게 허술하게 했겠어요?
내 성격 알잖아. 얼마나 지랄같은지”


“…….”



“그리고 나 형들 되게 좋아하는 거 알면서.
자꾸 이러면 나 섭섭해?”


“....미친놈”


이제서야 한숨 돌리는 진욱.
들고 있던 칼을 내려놓으며 ㅇㅇ의 표정을 확인한다.


“ㅇㅇ아 넌 나가있어”


“싫어”


“ㅇㅇ아,”


“또 비밀 만들려고?”


“…….”


“이제 다 아는 사실인데 까고 하죠?”


“다물어 넌”


“넵”


“후.......”


보란 듯이 의자에 걸터앉는 ㅇㅇ.
결국 못본 척 고갤 돌려버리는 진욱이다.


“야”


“넵”


“계속해봐”


“네? 아, Okay. so... that system was..”


“한국말로 해라”


“아... 그러니까 그 시스템은 러시아에서 가져온 거거든요.

우리나라에는 없어요. 이런 게”


“근데”


“근데 그것도 원래 코드 몇 개만 풀면 해결되는 장치라서
내가 수 백 개 코드로 바꿔놨거든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그러니까 나만큼 머리 좋은 놈 아니면
못 풀어요 절대. NASA 정도면 풀려나?

FBI? 안 될걸?”


“그래서”


“그 복잡한 프로그램을 어떤 또라이가 풀어냈다는 거죠.
어떤... freaking fucking bitch가”


“짐작 가는 사람도 없고?”


“없어요”


“후.......”




토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즐기는 듯하면서도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운,
마치 구미가 당기는 것처럼.


“새벽에 웬 처음 보는 놈들이 무더기로 들어왔어.
다짜고짜 덤비길래 상대해주다 찔린 거고”


“마스터는요?”


“형이랑 수혁이도 좀 다치긴 했는데 괜찮아.”


“우리 셜록은... 괜찮아 보이네”


ㅇㅇ을 훑어보며 고갤 끄덕이는 토이


“ㅇㅇ이도 큰일 날 뻔 했지.
비밀번호만 몰랐어도, 아니 니가
그런 얘기만 안 했어도 잘 넘어갈 수 있었는데.”


“무슨 큰일? 방에서 나오기만 한 거 아니었어?”


“그렇긴 한데...”


“어떤 놈이 위협했어. 칼로”



“진짜?!?!!”


벌떡 일어나더니 ㅇㅇ의 앞으로 가 이곳저곳 훑어본다.


“괜찮아? 어? 어디 다친 데 없어??”


“에? 어, 저기...”


“뭐하냐?”


“그 방을 왜 나와 그러니까!!
내가 인큐베이터만큼 안전하다 했잖아!”


“깡패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그쪽이 뭘 할 수 있는데? 지킨다는 게 이런 거야?
상황 구분 못하고 뛰어드는 거?”


“저기요,”


“뭐하냐고 너”


“형, 지금 얘가,”


“너 지금 되게 이상한 거 알아?
그 말은 내가 해야 되는 거거든?”


“…….”



“웃기는 놈일세”


“후.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니가 알려준 칼로 그 새끼 다리 찔렀지”


“…….”


“이건 칭찬해줘야 되는 부분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푸흐...”


웃음이 터진 듯 어깨까지 들썩이더니
ㅇㅇ을 향해 손바닥을 내민다.
그러자 살짝 하이파이브를 하는 ㅇㅇ


“잘했어”


“네가 뭔데 잘했대.
니네 생각보다 많이 친한가본데?”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야?”


“그래. 이런 놈이랑 친해지지마”


“아니야 진짜?”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왜 아니지? 내가 학교까지 데리러 가기도 했는데”


“뭐어어?!?!?!”


“헙”


“내 차 타고 우리 집까지 갔으면서.
가서 맥주도 마시고”


진욱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ㅇㅇ을 쳐다봤다.


“막둥아 이게 다 뭔 소린지 설명 좀 해줄래?”


“술은 안 마셨잖아요!!!”


“공장도 둘러보고, 비밀 얘기도 속닥속닥 하고”



“막둥아?”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잖아!!!!”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ㅇㅇ의 외침이 병실을 메웠다.


“난 이게 제일 중요한데”



“나도”


“나 칼로 위협했던 사람 기억 나?”


“…….”


“그 저승사자 같은 놈?”


“난 그 사람이 수상해”


“어땠는데”


“너무 자연스러운 것도 이상하고...
내 이름도 알고 있고.......”


“이미 다 알고 왔겠지”


“우리 경보기도?”


“…….”


“왠지 그 사람일 것 같아. 프로그램 뚫은 거”


“어떻게 생겼는데 뭐하는 놈인데?
형, 뭐예요 그 새끼?”


“그냥 키 큰... 못생긴 놈이긴 한데.”


“…….”


“대성그룹 대표 수하야.
말하는 거 들어보니
대표 지척에서 일하는 거 같아. 비서처럼”


“이름은?”


“몰라. 생긴 것만 기억나”


“무섭게 생겼어요”


“무섭게 생긴 대성그룹 대표 수하...
이렇게 말하면 내가 뭐 알아듣나”


“알아봐”


“그런 건 마스터 전문 아닌가?
어, 근데 어디 갔어요? 마스터?”


“지금쯤.......”


벽시계를 응시한 채 말을 잇는다.


“도착했을 걸?”


“어디요?”


“공항”






*






“넌 여기 있어”


“뭔 소리야”


“위험할지도 몰라”


“가만히 있을 거면 따라오지도 않았어”


“이수혁”


수혁이 정우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곤 차밖으로 나갔다.



쿵-



“야”


“걱정하는 건 알겠는데 보호자처럼 행동하지마.
형 보호 받을 나이는 지났어”


“그런 말이 아니잖아”


“괜히 죄책감 갖지 말란 소리야.”


입을 꾹 다무는 정우.
수혁이 트렁크를 열어 총을 확인하자 살며시 그 옆에 선다.


“대표는 내가 만나 볼테니까 넌 날 감시해”


“어?”


“내 뒤에 붙는 놈들 보라고”


“아, 어”


“무슨 일 생기면 연락하고”


“알았어”



쿵-



수혁이 트렁크 문을 닫곤
담배를 입에 무는 정우를 향해 물었다.







“누구 죽일거야?”


“…….”


“둘 중 하나는 죽여야 끝나잖아”


“아닐 걸”


“어?”


“하나 죽인다고 끝나겠어?”


“그럼”


“다 죽여야지”


“…….”


“마지막 임무치곤 거창하네. 맘에 들어”


“형”


“살려놔 봤자 평생 우리 옭아맬 놈들이야.
또 ㅇㅇ이 목숨 가지고 장난치겠지”


“…….”


“그전에 손 써두는 수밖에 없어”


“괜찮을까?”


“뭐가”



“유명한 놈들인 것 같던데.
다 죽으면 좀 시끄러워질수도…”


“원래 정글은 시끄러워. 근데,”


“…….”


“그게 다 비웃음이야”


“…….”



“누군가가 짓는 비웃음.”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그의 얼굴이 서늘하다.
그가 뱉는 말이 허무하듯 표정 또한 허무해 보였다.


“그래서 상관없어. 세상은 또 누군가를
그 자리에 앉힐거고 더 악랄하게 지키려 하겠지.
그 땐 아마... 우리도 평범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수혁이 고갤 숙인다.


정우는 마음을 정한 듯 보였다.
그는 모든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이 일을 끝내고 싶었다.
자의든 타의든, 그는 더 이상 식구 중 누군가가
위험에 처하는 걸 원치 않았다.


물론, 자기 목숨은 제외하고.









정우가 공항 안으로 들어섰다.


밤낮 가리지 않고 붐비는 공항이지만
오늘따라 왠지 더 그래 보였다.



들뜬 얼굴을 한 젊은 여자

피곤해 보이는 중년 남자

동생의 손을 꼭 잡은 남자아이

이미 잠들어버린 갓난아기



그의 눈이 바빠졌다.
이 안에 있는 사람 모두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린 아이든, 여자든, 노인이든
모두 그의 감시 대상에 들어갔다.


모든 존재로부터 위협을 느껴야 했다.



지이잉- 지이잉-



때마침 울리는 진동,



‘유인영’



정우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곧바로 전활 받는다.



“왜”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자주 통화할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누군 하고 싶어서 해요? 일 때문이죠. 일”


“하잖아 일, 지금”


정우의 걸음이 빨라진다.
어느덧 시간은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공항이에요?”


“알면서 묻지 말지?”


“혼자?”


“....... 어”


“그 사람, 되게 예민하고 경계도 심하니까
괜히 얼쩡대거나…”


“그런 소리 할 거면 끊는다”


“잠깐만요!!”


“…….”


“당신 조카”


“…….”


“병원에 있는 것 같던데,”


“그래서,”


“어디 아파요?”


“아프든 말든”


“…….”


“...걱정해주는 건 아닐테고. 왜, 뭐 이상해?”


“이상하죠. 어디다 꼭꼭 숨겨둘 줄 알았는데
기껏 데려간 게 병원이니까”


“그래서, 지금 병원 앞인가?”


“아니요.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거든요?”



“그럼 뭐가 문젠데. 왜 자꾸 쓸데없이 전화질이냐고”


“흠흠, 아무튼,
나도 사람 붙였으니까 허튼짓 할 생각은 말라고요.”


“같잖은 협박 할 시간에 그쪽 처신이나 잘 하지”


“뭐라고요?”


“허튼 짓은 내가 아니라 그쪽이 하고 있으니까”



툭-



전화를 끊곤 자리에 멈춰서는 정우.
전광판에 뜬 ‘도착’이란 단어를 확인한 뒤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섞인다.


귀국장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끄러웠고, 복잡했으며
도리어 해맑았고, 혹은 슬펐다.


아무 표정이 없는 사람은 정우뿐이었다.




이제 그는 온 신경을 이따금씩 열리는 게이트에 쏟았고,
주변에서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든
감격의 아우성을 내뿜든
아무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 때, 게이트 문이 열리고
검은 옷을 입은 무더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을 하던 그들 사이에서,
정우는 깔끔한 캐주얼 차림을 한
젊은 남자를 발견했고


그 순간


양팔에 가해지는 강한 압박을 느꼈다.





.
.
.





못다한 이야기





(♪귀여운 넌 - 정아)




<좋은 방은 내 옆방>



오빠의 메시지를 본 려원 언니는
곧바로 병실로 뛰어왔고


둘은 또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대충 이런 식으로




.
.




“네가 뭔데 싸움판에 나서!!”



“야 그럼 연약한 할머니가 고딩들한테
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있냐?”


(오빠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지만)
(놀라운 건)
(언니가 철석같이 믿었다는 것이다)


“니가 무슨 슈퍼맨이라도 돼?”


“슈퍼맨만 착한 일 하란 법 있냐고”


“경찰을 불렀어야지!!!
어우 이 병신 새끼 진짜”


“야!!! 넌 정의로운 환자 앞에서까지
욕을 하고 싶냐? 병신이 뭐야 병신이”


“병신한테 병신이라 하는데 뭐 이 병신아”


“헐? 이거 봐라?”


“내일 모레면 마흔 되는 놈이
쪽팔리게 칼이나 맞고. 그것도 등에!!”


“마흔 되려면 한참 멀었거든?”


“아오, 입만 살았지 아주?”


“아 몰라!!! 나 아프다고!!! 나 아파!!!!”


“하아.......”


“엄청 많이 꼬맸다니까?”




.
.




둘 사이에 오고가는 쌍욕을 차마 들을 수 없던 나는
밖으로 슬금슬금 도망 나올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의 장벽은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그쪽 영웅담 좀 얘기해봐”


배고프다며 식당으로 끌고 간 토이는
자리에 앉자마자 간밤의 ‘영웅담’을 요구했다.


하는 수 없이 난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밤새 겪은 일들을 일일이 설명해줘야 했고
그때 마다 그는
“오...”, “와우...” 등 여러 감탄사를 내뱉었다.


특히 수혁오빠 방에서 쫓길 때 즘엔
주먹을 꽉 쥔 채로 테이블을 내려 쳐
주변 사람들에게 꾸벅 사과까지 해야 했다.


“갈비탕 나왔습니다”


그의 입맛은 의외로 나와 맞았다.
비싼 음식만 좋아할 줄 알았던 그는
백반도 좋아했고, 분식도 좋아했다.
심지어는 휴게소에서 파는 통감자 구이도 좋다고 했다.


“많이 먹어요”


“네”


“형은 알아서 먹겠지?”


“음.. 언니 있어서 괜찮을 거예요”


“근데 두분이... 그렇고 그런 사인가?”


“누구요? 언니랑 오빠요?”


“응”


“아니요? 친구예요 친구”


“그냥 친구같진 않은데?”


“음... 오래된 친구라던데”


“잘은 모르겠지만 눈빛이 그게 아니어서”


“어떤데요? 눈빛이?”


“뭐랄까. 내가 그쪽을 보는 눈빛이랄까”


“....... 그게 뭔데요?”


“그것도 몰라?”


“네”


“.... 밥이나 먹어”


뭔가 실망한 표정을 짓는 토이.
이내 뜨거운 갈비를 한 입에 넣더니 다시 뱉어낸다.


“아 Fuck!!!”


“크흐...”


“아아… 뜨거워 씨”


“무식하게 그걸 한 번에 넣는 사람이 어딨어요?”


“후.......”


“뭔가 부족하다니까...”


혀를 차며 마주앉은 그를 쳐다봤다.
인상을 팍 쓰며 갈비탕을 노려보는 모습이
왠지 귀여워 보였다.


“근데 있잖아요”


“네”


“왜 오빠 앞에선 안 무서워져요?”


“응?”


“평소엔 좀 무서운 편이잖아요.
말이나.. 행동이나”


“…….”


“근데 진욱오빠한텐 되게 착하게 구는 거 같아서..”


“그쪽한테도 착하게 굴어줄까?”


“아, 아니요!!”


“왜. 그거 바라고 말하는 거 아니었어?”


“아닌데요?”


“푸흐...”


화들짝 놀란 날 보곤 피식 웃는다.

그 쪽이 착해지면 더 무서울 것 같아 그래요.’


“아까 말했잖아. 나 형들 되게 좋아한다고”


“왜요?”


“몰라. 외로워서 그런가”


“흠.......”


“형들만큼 나한테 잘해준 사람도 없었어.”


“어떻게 잘해줬는데요?”



“.......가족처럼”


그가 숟가락을 내려놓곤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참, 가족은 다 어딨어요?”


왠지, 멈칫하는 그를 보니
괜히 질문했단 생각이 들었다.


“어... 아, 다들 어딘가에 잘 계시겠죠? 하하..”


“죽었어”


“네에?”


“죽었다고”


“…….”


“아니 사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
죽었으면 죽은 거고 살았으면 산 거지 뭐”


“아.......”


“내가 형들이랑 수혁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


“유일하게 나에 대해 다 알고 있고,
알아주고, 이해해주니까”


이들 사이는 생각보다 끈끈했다.


“사람 잘 죽여서 그런 것도 있고”


“허어.......”


“나는 뭐든 최고가 좋거든.
근데 KAP이 최고야, 적어도 이 나라에선”


“그거 칭찬인거죠?”


“당연하지”


“네.......”


그래, 이제야 좀 토이답다.
저렇게 알 듯 말 듯한 얼굴로 쳐다봐야 안심이 된다고.
너무 착한 것도 귀여운 것도 안 어울려.


“근데 아까 보니까 그쪽 지낼 데가 문젠 것 같던데”


“아... 저요?”


“우리 집으로 와”


“네에?!?!!”


“잘해줄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왜요???!”


“갈 데 없잖아”


“어, 어디든 가면 되죠!!”


“위험해서 안 될 걸?”


“거기도 위험하잖아요!!”


“우리 집? 음... 그렇긴 한데 공장만 안 내려오면 괜찮아”


“오빠들이 완전 반대할 걸요?”


“이유는?”


“그냥, 거기는.... 거기는 좀.......”


“우리 집이 엄청 튼튼하다는 거 정도는 인정할 걸?”


“…….”


“시답잖은 집들보다야 낫겠지”


“그래도...”


“좋은 방 줄게”


“…….”



“내 옆방”


“헐!!!!!!”


“히히”



.......



아까 한 말은 취소다.
착한 게 나은 것 같다.





.
.
.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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