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녈 처음 본 건 두 달 전이었다.


2월, 한창 방학 중일 때
난 학교 근처 자취방을 구하기로 결심했고,
열심히 발품을 판 결과
신입생이 더 몰리기 전
나름 괜찮은 방을 구할 수 있었다.


1층에 카페가 있는 좋은 건물이었다.
비록 한 번도 제대로 이용해보지 못한 카페였지만.


이유는 카페 주인이 심각하게 게을러서였다.
점심시간 쯤 돼야 커피 향을 맡아볼 수 있을 정도?
장사를 취미로 하는 것이 분명했다.


난 주로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스타일이라
헬스를 가는 길엔 무조건 커피를 손에 들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두 눈 뜨고 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기로 이사 온 덕에
아침부터 헬스를 다닌 덕에
카페 주인이 게으른 덕에
모닝커피를 좋아하는 취향 덕에


그녈 만날 수 있게 됐다.





커피스트


방학이라 학생은 없고
온통 직장인들뿐인 이 동네에서
이 카페는 나름 인지도가 있는 것 같았다.
목이 좋기도 하고
아침 일찍 문을 여는 것도 그렇고...


사실 헬스장과 가장 가깝길래 선택한 곳이었다.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들어가려 했는데,
빨리 커피만 사서 나오면 그 뿐이었는데


입구부터 막혀버렸다.




                                                                                       




청소 비슷한 걸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맞춰
바닥을 닦던 그녀는
줄곧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고갤 까딱거렸다.


대걸레를 마이크 삼아 노래 부르기도 했고
어깰 으쓱으쓱 흔들기도 했다.
유리 액자를 거울삼아 보다
다시 또 고갤 끄덕거렸고
의자를 이쪽저쪽 옮기며 발재간을 보이기도 했다.



“.......”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아침부터 저렇게 신날 수 있나?
저렇게 밝을 수 있나


결국 그날 커피를 포기한 채 돌아섰다.
그녀의 몸짓을 구경하느라
시간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 뒤로 잠깐의 공백이 생길 때마다
그 모습이 생각났다.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릴 때나
친구 녀석이 혼자 떠들 때,
늦은 밤 혼자 집에 걸어갈 때,
자려고 누웠을 때


그 강렬한 잔상을 떠올리며 지내길 며칠,
우연히 또 그녈 만났다.





아침부터 눈이 오길래
집에 있기 싫어 찾아간 학교 도서관.
5층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다
책장을 하나씩 하나씩 지나치던 중,


“.......”



익숙한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어폰을 낀 채
책장에 기대 책을 읽고 있었다.
바닥엔 가방과 작은 텀블러가 함께 놓여있었으며
창밖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


뭐랄까, 완벽했다.
적어도 그녀는 완벽한 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재밌는 책을 읽는 건지
좋은 음악을 듣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발로 박자 맞추는 걸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녀는.


가끔은 창밖을 내다보며
흩날리는 눈발을 감상하기도 했고
손으로 책을 훑으며
뭘 고를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게 난 또 그녀를 한참이나 구경했다.
누가 보면 변태냐고 했겠지만
그런 소릴 듣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보는 나도 행복했으니까.


나에게 그런 행복을 준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 뒤로도 카페를 몇 번 찾아갔었다.
오늘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했다.


목소리도 궁금했고 인사도 궁금했다.
이름도 궁금했고 나이도 궁금했다.
온통 궁금한 것투성이였는데


말을 걸 수 없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고
커피를 사보지도 못했다.


엄두가 안 났다.
그 문턱이 뭐라고.
남들은 처음 보는 여자한테 번호도 잘 묻는다던데..


난 매일 제자리였다.
바라만 볼 뿐 나서지 못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은 흘렀고,
눈 내리던 겨울이 지나
조금은 따스한 햇살이 비출 때 즈음



또 다시 그녀와 조우했다.





개강 첫 날이었다.
오랜만에 가는 학교라 설렐 만도 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어색했다. 공기가.


“어이 정해인!!!”
“선배님 안녕하세요!!!”


수업 시작 5분 전
간신히 강의실에 도착한 날 보며 인사하는
동기 녀석과 후배 녀석.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곤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는데


“하,”


이어폰을 낀 채 책을 보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했다.
아니겠지 했다.
아닐 거야 했다.


뒷모습만 보고 어떻게 알아
이어폰 끼고 책 읽으면 다 그 여자냐
싶었다.


근데 그 여자가 맞았다.
텀블러를 쥔 채 까딱거리는 손가락을 보고 알아챘다.



와, 나 진짜 변탠가?


 
“야 정해인”


“.......”


“정핸”


“.......”


“얀마!!!”


“어? 왜”


“뭐해 너. 뭐 보고 있었어”


“아냐 아무 것도. 왜”


“오늘 신입생 환영회 있는데 갈텨?”


“아니”


“왜!!! 다 너만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아이들”


“나 안대?”


“너 OT 때 잠깐 학교 왔었잖아. 그때 봤나봐”


“됐어”


“아 너 안 가면 나 엄청 시달린단 말야!!!”


“너도 가지마 그럼”


“야, 친구한테 이러기 있냐?”


대답 대신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상하게 자꾸 입꼬리가 올라갔다.
매주 한 번은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던데

내가 그 기로에 섰구나.

      

그 운명 앞에 설득 당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My Type






“ㅇㅇ 씨 좋아해요. 진짜로”


이 말을 하기까지 몇 번을 설득 당했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다.


“.......”


그러니 그렇게 날 멍하게 쳐다보는 거겠지.


그녀는 입을 헤- 벌린 채 날 쳐다보다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겨내려 애쓰는 것 같았다.


“어후,”


“어지럽죠. 이리 와요”


“아닌데요?”


“알았어요”


애써 괜찮은 척 하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걸음을 옮겼다.
힘없이 끌려오던 그녀는
몇 번이고 내 등에 부딪히며 “아...” 소리를 냈다.
퍽 웃음이 났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데려갔다.
그리곤 야외 테이블에 조심스레 앉히며 말했다.


“여기 있어요. 물 사올게요”


“헛개수우...”


“헛개수”


“네에...”


하긴, 그 놈의 물 지겹기도 하겠지.


그녀의 뒷모습을 확인하며 편의점에 들어섰다.
그리곤 헛개수와 사탕, 껌, 초콜릿을 샀다.
단 거라도 먹으면 술이 좀 깰까 싶었다.



계산을 하는데 왠지 또 웃음이 나왔다.
나답지 않은 거 알지만,
종종 고백하는 순간을 상상했었기 때문에
지금 상황은 웃을 만했다.


아마 꽤 오랫동안
그녀의 껌뻑이는 표정을 기억할 것 같았다.



“내 팔자에 미남은 없었다고오!!!”



밖을 나와 보니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그녀는 허공을 향해 작지만 큰 소릴 지르고 있었다.


“네? 뭐라고요?”


“아, 아니에요. 아무 것도”


불쑥 헛개수를 내밀자 깜짝 놀라는 그녀.
뚜껑이 열려있는 걸 보더니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크으...”


“좀 어때요”


“괜찮아요”


“주사가 자는 거라던데”


“누가요?”


“형이요”


“아... 맞아요. 저 술 마시면 자요.
많이 마시면 토하고 자요”


“지금은,”


“그냥 졸린 정도?”


고갤 끄덕이며 그녀 옆에 앉았다.


“좀 깨면 가요. 아직 시간 이르니까”


“몇 신데요?”


“8시”


“그거 밖에 안 됐어요?”


“네”


“그랬구나...”


입을 삐죽 내미는 그녈 유심히 쳐다봤다.
귀여웠다.


“저기, 선배님”


“네”


“그...”


“.......”


“아까 그 말 있잖아요”


“네”


“그게 왜... 그러니까 그게,”


“ㅇㅇ 씨가 왜 좋냐고요?”


이상했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취중진담을 하고 있다는 게.


“.......”


“지금 얘기하면 다 들어줄 자신 있어요?”


“네?”


“내일 되면 다 까먹고 다시 물로 보려고?”


“제가 언제 선배를 물로 봤다고...”


고갤 숙이는 그녈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ㅇㅇ 씨한텐 내가 동네 친구로 남는 게 더 좋았을까요?”


“그건 또 어떻게,”


“난 그러기 싫은데”


“.......”


“나는 사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없어요.
붙임성도 없고, 그렇게 따듯하지도 않고...
말도 별로 없어서 나랑 있으면 다 재미없어 해요.”


“.......”


“근데 그렇게 하면 ㅇㅇ 씨가 나 싫어할까봐
최대한 노력한 거예요. 내 딴에는”


“.......”


“먼저 말도 걸고, 연락도 하고...
1년 치 웃음 다 웃었던 것 같아요. ㅇㅇ 씨 앞에서”


그녀의 의아한 표정을 이해했다.
나도 몇 달 사이 변한 내가 어색해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날 편하게 봐줬으면 해서 그랬던 거였는데,
그게 동네 친구가 돼 버릴 줄은 몰랐어요”


“.......”


“그만큼 내가 편했다는 뜻이겠죠?”


애써 웃어보였다.
진심을 다해서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ㅇㅇ 씨한텐 갑작스러울 거예요.
이상하고 어색하고... 당황스럽고”


“그, 그건 아니에요!”


“.......”


“아, 맞긴 한데... 그게 그렇게... 그 정도는 아니에요”


“.......”


“이해가 안 되긴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그녀 말에 답을 하려던 찰나,


“그리고, 선배님 소개팅 시켜달라고 했었다면서요.
뭐냐, 그... 세상에 없는 여자로”


그녀가 내 입을 막아버렸다.


“안 돼요. 이해”


“아 그건... 형이 눈치가 없어서...”


“네?”





.
.
.





“저 왔습니다~”


어느 연습날, 그러니까
그녀 옆에 처음으로 앉았던 그날 있었던 일이었다.


체육관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코트로 향하던 내게
진운 형이 손짓을 했다.
꽤 급하게 손을 흔들길래 뭔 일인가 싶어 뛰어갔더니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냐?”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다.


“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생겼냐고”


“아 왜”


단도직입적인 질문 탓에 당황한 난 말을 더듬거렸고,


“...대답이 바로 안 나오네?”


형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알아서 뭐하게”


“.......”


“.......”


“야 그럼 혹시 그 사람이,”



“오빠!!!!!!!!!!!!!”



순간 어디선가 들린 큰 외침.
이건 또 뭔가 싶어 봤더니


“어우 깜짝아”


“어? ㅇㅇ 씨,”


그녀였다.



“뭐해!!!!”



분명 형에게 하는 소리였다.
그녀와 형의 시선이 허공에서 만나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아 씨..”


“.......”


“눈도 좋아 하여튼”


“뭐?”


“아니야. 야, 그럼 나도 양심이 있으니까
다르게 물어볼게.”


“뭔데 대체”


그녀와 형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뭐냐고 대체


“너 휴대폰에 여자 몇 명 저장돼있냐?”


“여자?”


“어. 너 같은 인기남은 몇 명 해놨을까 해서”


“내가 왜 말해줘야 되는데”


“.......”


“왜 궁금해?”


“음... 아니다.
야 내가 너 소개팅 시켜줄게. 할래?”


“갑자기?”


“어. 너 여친없잖아.
봄이니까 슬슬 연애 시작해야지”


“안 해. 필요없어”


“필요없어?”


“소개팅 안 한다고”


“왜?”


“그런 거 안 좋아해”


“왜??”


“형”


“어?”


“나 연습하게 비켜”


“대답하고 가”


“그냥 싫어. 지루해”


별 시답잖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웬 여자타령?
평소엔 관심도 없더니


.......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왠지 지금 형이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누구랑 시켜줄 건데”


그녀와의 소개팅을


“하게?”


“누군지 봐서”


“.......”


“혀, 형 주변에 좋은 여자 있으면”


“.......”


“이쁘고 매력있고 착하고... 귀엽고 그런 여자”


ㅇㅇ 씨


“없어 인마. 그런 여자 없어”


이 멍청아


“왜 없어. 있잖아”


“내가 그런 여자가 어딨어!!!”


“주변에 있잖아. 가까이에”


“뭔 소리야. 설마, 지나?”


하...


“...아 됐어”


“야 지나는 내 거다. 건들지마라”


“관심 없다고”


“관심이 없어? 그 말도 별론데?
어떻게 우리 지나한테 관심이 없을 수 있어?”


“.......”


머리를 굴리긴 개뿔.
머리가 있는지도 모르겠구만





.
.
.





“...내 잘못이에요.
내가 괜히 말 꺼내서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런 분이 갑자기 저한테 그런 말을 하면
제가 당연히...”


“뜬금없이 소개팅 얘길 하길래
처음엔 필요 없다고 했었어요. 근데,”


“.......”


“혹시 ㅇㅇ 씨 얘기하는 건가 싶어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없더라고요.”


“저, 저요?”


“힌트까지 줬는데 못 알아 듣고”


“.......”


“이쁘고 착하고... 귀엽고 매력있는 여자”


“.......”


“ㅇㅇ 씨 말 한 건데”


씩 웃으며 그녈 쳐다봤다.
그러자 양손을 볼에 대더니
눈이 동그란 붕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서, 선배님...”


“나 오그라드는 거 진짜 안 어울리죠.
알아요 나도”


“.......”



“아는데... 계속 하게 되네요. 머리 아프게”


한숨을 쉬며 테이블에 올려뒀던
사탕 포장지를 까기 시작했다.


“사탕 좋아해요?”


“네, 뭐... 그냥”


당황해 하는 그녀 눈앞에 사탕을 보여주니
고갤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다른 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요”


“...괜찮아요”


쏙하고 사탕을 입에 넣는 그녀


“이거면 충분해요”


사탕을 요리조리 굴려가며 먹는 그녀를 쳐다보다
눈길을 돌렸다.


한적한 곳으로 들어와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드문드문 볼 수 있었다.


여기 한 명, 저기 한 명
다들 어딜 그렇게 가나... 하고 보다가
붉은 가로등 불빛에 시선이 멈췄다.


유독 빈 곳만 밝히는 그걸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선배님”


“네”


“저 사실,”


“.......”


“선배님 안 편해요”


“.......”


“어떻게 편해요 선배님이.
선배님은... 선배님인데“


“.......”


“솔직히 알고 있었어요.
선배님이 저만 다르게 대한다는 거”


“그래요?”


“네”


“.......”


“근데도 제가 동네 친구라고 얘기했던 건,”


“.......”


“선배가 왜 날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돼서였어요.”


“.......”


“날 본 지도 얼마 안 됐고,
그렇다할 특별한 일도 없었고...”


“.......”


“지나 말로는 첫눈에 반했다는데 그건 말도 안 되고”


“그랬다면요?”


“네?”


“첫눈에 반했다면.”


“.......”


“이해가 되려나?”


“아니 언제?”


“겨울에”


“어떻게?”


“첫눈에”


“왜?”


“이쁘니까”


“.......”


“본인이 예쁜 걸 이해 못하는 거예요?”


“.......”


“안 하는 건가”


“.......”


“그럼 난 더 이상 설명해줄 수가 없는데.
예뻐서 반했는데 본인이 예쁜 줄 모르면
내가 설명해봤자 소용없는 거잖아요”


“저 예뻐요?”


“푸흐...”


인상 쓴 채 묻는 그녀가 귀여워 풉 웃고 말았다.
어떻게 대답 해줘야 하나...


“네”


“....평범한데”


“평범하게 예뻐요”


“.......”


“음... 그럼 이건 어때요”


“.......”


“내 눈에 예뻐요. 다른 사람 눈엔 모르겠고,
그냥 내가 봤을 때, 내 눈엔 ㅇㅇ 씨가 예뻐요.”


“.......”


“내 눈은 내 거니까 맘대로 해도 되잖아요”


점점 더 이상한 표정을 짓는 그녀.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다시 날 쳐다보며 물었다.


“이거 칭찬 맞죠?”


“네”


“.......”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칭찬이었어요.”


내가 왜 좋냐는 질문에
이렇게 길게 대답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 당신이어서 그런 건데.


“ㅇㅇ 씨 책 볼 때 예뻐요.”


근데 그런 질문을 하는 당신마저도 난 좋으니까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손으로 볼펜 굴릴 때도 예쁘고”


“.......”


“인사할 때, 웃을 때...
가만히 앉아있을 때도 그렇고”


“저, 저기...”


“재밌는 얘기하면서 눈 찡긋거릴 때도 예뻐요”


“그만 하셔도 돼요...”


“아까 보니까 술 마실 때 손가락도 예쁘던데”


“...그만하세요...”


“왜요. 더 할게요”


“아니에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해 됐어요?”


“네...”


어딘가 불편한 얼굴로 사탕을 깨물어 먹는 그녀


“.......”


이젠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을 차롄데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침묵을 즐기는 척 했다.


“.......”


“.......”


“선배님”


“네”


“시간 좀... 주세요”


“.......”


“생각할 시간”


말없이 고갤 끄덕였다.
그리곤 살짝 웃어 보였다.
괜찮다는 의미의 미소였다.


“.......”


“.......”


“이제 갈까요?”


“그래요”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녀를 부축하려다 말았다.
생각할 시간에 해가 될까봐.


.......


그렇게 우리는 가로등 빛을 따라 나란히 걸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에서 불편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적어도 옆모습은 그랬다.
날 보지 않는 눈은.






My Type






그녀는 단 한 번도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매번 씩씩하게 강의실에 들어와선
앞 쪽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적거나 했다.


어떤 날은 예쁜 코트를 입었었고
어떤 날은 예쁜 후드티를 입었었고
어떤 날은 예쁜 구두를 신었었고
어떤 날은,



.......



그 날은 흰 셔츠를 입었었다.


항상 그랬듯 예쁘고 빛이 났다.
다른 놈들이 기웃거릴까 신경 쓰일 정도로
그녀는 매번 예뻤다.


그리고 그녀가 유난히 빛나 보이던 그날,
난 결국 운명에 설득 돼버렸다.



8

신문방송학과 201540141 정해인

국문학과 201637502 ㅇㅇㅇ



“어? 야 너 국문과 사람이랑 팀 됐다”


“.......”


“이 사람 누군지 알아?”


“.......”


“난 처음 들어보는 거 같은데”


ㅇㅇㅇ
수업 첫날 누구보다도 집중해서 알아낸
그녀의 소중한 이름.


모를 리 없었다.


“어? 저 알아요”


“누군데?”


“저기 앉은 여자”


“저기? 아~”


“이런 과제는 같은 전공끼리 하는 게 편한데...”


“그런가? 상관없지 않냐?”


“.......”


“야 정해인”


“.......”


“너 왜 그래. 왜 혼자 웃어?”


입술을 꽉 깨문 채
자꾸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붙잡고 있었다.
나란히 적힌 우리 이름을 계속 읽으며
한 편으론 그녀의 이름 옆에 적힌 사인을
눈에 익히려 노력했다.


설령 운명의 장난이라도 좋았다.
어차피 운명이니까.


“어이없어서 웃는 거야?
왜. 맘에 안 들어?”


“그럼 선배 제가 바꿔드릴까요?”


“아니, 됐어”


당황한 얼굴의 후배를 외면하며 앞을 쳐다봤다.
기회를 준 교수님께 감사함을 담아.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녀를 눈으로 좇았다.
무슨 말을 해야 되나,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머릿속은 바빴지만
심장도 터질 것 같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야 밥 뭐 먹을래”
“선배님 저 밥 사주세요-”


“나 바빠”


“네가 뭐가 바빠”


“바빠”


다 마신 생수병을 찌그러트리며
뒤에서 머뭇거리던 찰나,


“.......”


그녀에게 다가간 여자를 보곤 인상을 퍽 찌푸렸다.
팀을 바꿔주겠다던 후배였다.


“약속 있냐? 아 씨 애들이랑 부대찌개 먹으려고 했는데”


“.......”


“선배님 저는요?”


“야 쟤가 여자랑 밥 먹는 거 봤냐?
포기해 포기”


“진짜 한 번도 먹은 적 없어요?”


“어”


“여자친구랑도?”


주변의 소음 때문에 잘 들리진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뭔가 유쾌한 대화는 아니었다.


“야 어디 가!”


그래서 서서히 그녀에게 향했다.
만약 저 후배가 내가 생각하는 말을 하고 있다면,




“저기 후배님”



쫓아야 했다. 그녀에게서


“네? 어? 서, 선배님 안녕하세요!!”


“팀은 안 바꿨으면 좋겠는데.”


“아... 저 그게, 제가 아니라
이 분이 바꾸고 싶다고 해서요”


“내가요?”


“네. 아까 그러셨잖아요”


“아니 저기요,”


“후배님이 다짜고짜 이 분한테 말 건 걸로 봤는데 난”


“네?”


“아닙니까?”


“..맞긴 맞는데....”


후배에게 있는 힘껏 인상 쓰며 화내고 싶었지만
그녀 앞이라 참았다.


대신 옅은 미소를 보여주니


“....죄송합니다”


내게 사과하곤 반대편으로 도망갔다.
그리고 나 또한 그녀에게 다시 사과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차분한 목소리
가지런한 미소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팀은 계속 하실 거죠?”


“네. 팀원이 거절만 안 한다면”


“거절 안 해요”


“네?”


“잘 해봐요, 우리”


미친놈처럼 뛰는 심장 소리가 들릴까 조마조마해 하며
최대한 활짝 웃어 보였다.


내가 멋있어 보였으면 했다.
정말 유치하지만


“아... 정해인 선배님이세요?”


“네”


“그렇구나... 전 국문과 ㅇㅇㅇ이라고 합니다”


“네”


“저...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아, 아까 그 후배가 말해주더라고요.
제 앞에 앉았었거든요”


“아...”


“제가 제대하고 이번에 복학한 거라
아직 학교가 좀 어색해요. 수업도 그렇고”


...이 말은 왜 했지?


“그러시구나”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볼게요. 팀 과제니까”


“네.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씽긋 웃는 그녀를 보다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저기, 그...”


“네?”


“앞으로...”


“.......”


“연락... 해야 되니까...”


“아 참, 번호!”


가방을 뒤적거리는 그녈 향해
살며시 내 휴대폰을 건넸다.


“잠시만요-”


그녀는 허겁지겁 번호를 저장했고
기분 좋은 미소를 남겼다.


“다음에 봬요!”





그날 난 휴대폰을 손에서 떼지 못했다.



ㅇㅇㅇ



그녀의 사진을 보며 뭐라고 말을 걸까 하루 종일 고민했다.
뭐라고 보내야 어색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부담으로 느끼면 어떡하지...


그러다 결국,


‘오늘 반가웠어요.’


이런 느끼한 메시지를 보내곤
머리를 벽에 박았다.


“미친놈”





.
.
.





‘미친놈...’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
작은 버스 정류장을 지나
작은 슈퍼 앞에 섰을 때 쯤
우리가 꽤 오랜 시간 걸어왔다는 걸 알게 됐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아는 사람이라곤 그녀 뿐이었지만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
좋았다.


“.......”


“.......”


“여기예요.”


“아...”


건물 앞에 멈춰선 그녀.
유난히 밝은 가로등 빛이 비추는
그녀의 눈망울을 쳐다보다 주변을 둘러봤다.


“되게 한적하네요”


“네. 주택가라 더 조용해요”


“.......”


“.......”


“오늘 고마웠어요. 경기 보러 와줘서”


“축하드려요. 이긴 거”


“.......”


“.......”


“어지러운 건 어때요?”


“걸으니까 한결 좋아졌어요”


“다행이다”


“.......”


“문 잘 잠그고 자요”


“.......”


“내일 카페... 너무 무리하지 말고”


“.......”


“들어가요”


결국 묻고 싶은 말은 하나도 묻지 못한 채
헤어짐의 인사를 건넸다.
밝은 미소는 덤이었다.


지금 이 순간마저도 내가 멋있어 보였으면 하는
마음의 덤. 짐.


하지만 그녀는,


“.......”


날 빤히 바라만 봤다.


“.......”


“.......”


“왜요?”


“....선배님”


“네?”


“우리 내일 회의해요”


말을 마친 그녀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내 눈치를 봤다.


“...회의요?”


“네”


“.......”


“시간 남으면 밥도 먹고”


“.......”


“커피... 영화...”


그녀는 당황한 표정의 나를
더 당황한 눈, 당황한 얼굴로 쳐다봤다.


“.......”


“.......”


“시간이,”


“시간 필요해요.”


“.......”


“선배님에 대한 시간이 아니고, 제 시간이요.”


종종 어려운 말을 쓰는 그녀 때문에
많은 밤을 고민하며 지새웠었는데


왠지 오늘 밤도 그럴 것 같았다.


“...선배 동네 친구 아니에요”


“.......”


“친구하곤 데이트 안 하니까”


물론, 기분 좋게.


“아, 과제요 과제. 과제가 더 커요”


“.......”


“.......”


“푸흐...”


“.......”


“1시까지 갈게요.”


“네...”


“...고마워요”


“.......”


“같이 걷게 해줘서”


"......."


"......."


"저, 저 먼저 들어갈게요"


"아, 네"


"그럼 안녕히, 내일,

...안녕히 가세요"


눈 한번 마주치지 못하고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그녀


뒷모습을 한참 쳐다보다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전했다.



"잘 자요."





.
.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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