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많은 식구들

w. 별유






수혁의 눈길이 정우에게 머문다.
그는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후…”


주머니 속 담배 생각이 간절했지만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굳혔다.


2층에서 보는 1층의 모습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정우는 눈에 띄었지만
뒤를 쫓는 자들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표정으로
떠드는 이곳은,


작은 의미의 정글과 비슷했다.



수혁이 어깨를 살짝 돌리며 인상 썼다.
몸 구석구석이 쓰리고 아팠다.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필시 멍들었을 터였다.


KAP를 시작한 뒤로 가장 큰 싸움이 아니었나 싶다.


미국에서 갱들과 싸웠을 때도 수혁은

작은 상처 하나 남기지 않는 완벽함을 자랑했었다.


지금은 어디 하나 말짱한 데 없지만.


아픈 건 정우도 마찬가지였다.
티는 내지 않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살짝 얼굴을 찌푸리는 그였다.


수혁은 그런 그를 걱정했다.
마스터는 왠지 아프면 안 될 것 같았다.


아파서는 안 됐다.



지이잉-



발발이
[괜찮냐?]
[난 괜찮으니 걱정마셈]



피식, 수혁이 웃는다.


병실을 나서기 전 잠긴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하던
진욱의 모습이 겹쳐졌다.


‘나 완전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분명 마취 때문에라도 하루 반나절은
잠들었어야 할 사람인데

기어코 눈을 떠 정우와 수혁의 뒷모습을 봐줬다.


간호사는 말했다.
웬만한 정신력 가지곤 안 되는 일이라고.



[눈 좀 붙여. 떠들지 말고]



답장을 보낸 뒤 휴대폰을 집어넣는 수혁.
그의 눈은 다시 정우에게 향해 있었다.


정우는 통화를 끝낸 듯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 섞여 있던 그는
표정 없이 정면만 바라봤다.


수혁은 얼추 때가 됐음을 인지했다.
귀국장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덩달아 분위기 또한 어수선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빠른 걸음으로 정우를 향해 움직이는 남자들이 눈에 띄었다.



“...뭐야”


누가 됐든 숨어서 지켜 볼 것이 당연했다.
유인영의 사람이든, 대표의 사람이든,
혹여 모든 걸 알게 된 경찰이든
지금 상황에서 정우를 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지금 그를 막는단 말인가.


“씨발”


수혁의 손이 바빠졌다.
지금 1층으로 내려간다 해도 놈들보다 늦을 게 뻔했다.


방법은 전화 뿐.
욕을 내뱉으며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려는데,



“으윽...”


허벅지에 찰나의 아픔이 전해졌다.


“붙잡아”


곧이어 낯선 남자의 음성이 들렸고
지시를 받은 또 다른 무리들이 수혁의 양팔을 꽉 붙잡았다.


주사바늘이었다.
수혁은 다리를 내려다보곤 재빨리
힘을 줘 압박에서 빠져나와보려 했으나
점점 혼미해지는 정신 탓에 제대로 힘을 낼 수 없었다.


주사기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점점 흐릿해지는 눈앞이 야속할 뿐이었다.


결국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버린 수혁.
몸 전체가 굳어 아무 것도 움직일 수 없었고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바닥에 얼굴을 묻은 그는
풀려가는 눈으로 정우를 쳐다봤다.


그 또한 웬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우는 무릎을 꿇었고
그들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갔다.



이것이 수혁이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KAP

Kill Me Heal Me









♪ 환청(Inst.) - 장재인 ♪





“수혁아”



“이수혁”


누군가의 부름에 서서히 눈을 뜨는 수혁.
강렬한 빛 때문에 퍽 인상을 썼지만
그래도 천천히 정면을 응시했다.



“안녕”





하지만 수혁은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안녕’이란 정다운 인사가 어울리지 않는,
어울릴 수 없는 누군가가 그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이야”


“너, 너...”


“잘 지냈어?”


“너...!!”


“나 까먹은 건 아니지?”


까먹을 수 없었다.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까먹지 못할 얼굴이었다.



“녹슬지 않았던데, 피아노”



그 시절, 피아노를 앞에 두고 목을 매달았던,
‘이별의 곡’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먼저 가버린 친구, 해인이었다.


“반갑다”


“정해인”


“…….”


“....이 씨발.......”


왜 이 순간 눈물이 차오르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리움인지 원망인지 모를 감정이었다.


너는 이미 죽은 사람이니
나 또한 네가 있는 곳에 왔구나
결국 와버렸구나…
어쩌면 이런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눈물이 났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지금 당장, 수혁은 슬펐다.


“입이 많이 거칠어졌네.”


“…….”



“근데 나도 욕할 줄 알거든?
이, 이... 나쁜놈아? 헤헤..”


입술을 깨물며 고갤 떨구는 수혁.

차마 그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왠지 죄인 같았다.

지난 날, 매일을 죄인처럼 살아왔던 그였다.


“수혁아”


“…….”



“네 잘못 아니야.”


어쩌면 수혁은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마음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며
항상 함께 했던 절친한 사이.


유일하다면 유일한.


“그거 알아? 나 네 덕에 몇년 더 산 거”


해인이 뜻밖의 말을 뱉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의 속마음이었다.



“전부터,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잔인하게 나를 포기시킬 수 있을까,
이 생각만 하며 살았었어.
너한테 말은 못했지만”



“무슨 소리야”


“알잖아. 우리 아버지”


해인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푸흐. 기억나?
아빠가 나 가둬놓고 연습시켰던 거?”

네가 꺼내주면서 그랬잖아. 친아빠 맞냐고”


모두에게 생생한 기억이었다.
오로지 피아노 한 대만 덩그러니 있었던 지하실.
수혁은 두려움에 벌벌 떨던 해인을 데리고 나오며
버럭 화를 냈었다.


“그 때부터였어. 죽기로 결심한 거”


“…….”


“근데 난 그 놈의 피아노가 너무 좋더라고.
내가 그랬지, 모든 피아노곡은,”


“아름답고”


“…….”



“찬란하다.”


“어, 그거”


그 한마디에 수혁은 다시 피아노 앞에 설 수 있었다.
아름답고 찬란한 소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 그였다.


“특히 네 연주가 듣기 좋았어
점점 심취하는 것도 보기 좋았고.
그만큼 아름답고 찬란했어 네 피아노…”


“...그럼 버텼어야지”


“…….”


“어떻게 해서든 버텼어야지.
나한테 말을 하든, 도망을 가든
버티고 살았어야지!!!!”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아빤 더 난폭해졌어.
마음속으론 말 안 듣는 날 때리고 싶었겠지.
근데 대회는 나가야 했고, 손도 멀쩡해야 되니까
차마 그러진 못하더라고. 대신,”


“…….”



“엄마를 때렸어.
내가 보는 앞에서, 너무나 잔인하게”


해인이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마치 그 날의 고통이 되살아나듯


“차라리 내가 맞았으면 어떻게든 참았을텐데...”


“…….”


“엄마는 맞으면서도... 내 걱정만.......”


그가 말을 잇지 못하자
수혁 또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만 푹 내쉬었다.


“미안해. 버티지 못해서”


“…….”


“근데 나 정말... 하루하루가 괴로웠어.
더 이상 피아노 앞에 앉아도 행복하지 않았어.
아무 소용없었거든.
내가 잘 치든 못 치든 언제나 우는 건 엄마였으니까”


해인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마지막 그 모습처럼.


“안 돼”


그를 따라 눈물 흘리던 것도 잠시,
해인을 잡으러 앞으로 가려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해인아!!!!”


“이제 알겠지. 네 잘못 아니라는 거.
미리 말하지 못했던 건 너조차도 괴로워 할까봐…
그래서 그런 거였어.”


“정해인!!!!!!!!”


“너까지 힘들 필욘 없잖아.
혹시 그게 네 연주에 해가 될까.......”


“..네가 죽어버린 게 더 괴로웠다고 난!!!!!!
왜 하필 피아노 앞이었어!! 왜!!!!!”


“그래야 멈출 수 있었어”


“…….”


“아빠가 죽거나 미쳐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러기 위해선 그게 최선이었고.
미안해 수혁아. 미안해 정말…”


“흐윽.......”


“다 내 잘못이니까 이제 그만 괴로워 해.
나 때문에 너, 너무 고통 속에 살았어”


“....하아.......”


“나 좀 용서해주라. 친구야”


“…….”


웃는 얼굴과 대비되는 울음 섞인 목소리에

할 말을 잃은 수혁.
그저 멍하니 해인만 쳐다볼 뿐이었다.


“너무 늦은 거 알지만 그래도 용서해줘.
나… 죽은 거 하나도 후회 안 되는데
너 때문에, 네가 자꾸 괴로워해서
그게 후회 돼. 미안하고, 속상하고”


“해인아...”


수혁이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려 애썼다.


그를 보며 싱긋 웃던 해인은 천천히 몸을 돌렸고,
한 걸음 한 걸음 수혁에게서 멀어졌다.


“해인아!!!! 정해인!!!!!!”


수혁의 외침에 잠시 멈춰서는 해인,



“.......네가 콩쿨에서 들려준 연주는
내가 여태껏 들은 것 중에 최고였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짧은 한 마디를 남겼다.


“가지마!!!! 가지마봐 제발!!!!”



그 순간,
하얀 빛이 전부였던 세상이 점점 무채색으로 변했고
수혁의 몸도 조금씩 움직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인은 어느 정체 모를 남자와 함께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정해인”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보던 수혁,
땅에 떨어진 칼을 발견하곤
곧바로 집어 들어 남자를 향해 던졌다.



데려가선 안 돼

아직 할 말이 더 남았어.

묻고 싶은 것도 많고

용서받을 것도 많아

 

아직은 아니야.

.......

고맙단 인사도 못했단 말야



그리곤 그가 칼에 맞자마자
세상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수혁아”



“수혁아!!”



“이수혁!!!”



“.......!”



번쩍, 몸서리치며 눈뜨는 수혁


“정신 들어? 어?”


“…….”


눈앞엔 걱정하는 빛이 역력한 정우가 있었다.


“수혁아”


“형”


“어”


“해인이 봤어?”


“...어?”


“해인이. 해인이가 방금 여기서...”


“…….”


“나한테 막, 계속 얘기하다가 갑자기 없어졌어.
어떤 놈이 끌고 갔는데, 그래서 내가 막,
그 놈한테 칼을 던졌는데...”


수혁이 풀린 눈을 하곤 급히 말을 쏟아냈다.
하고 싶은 말이 쉽게 정리 되지 않는 듯
그저 머리가 시키는 대로 아무 말이나 뱉는데,


“해인이는 없었고”


“어?”


“그 놈은 저기”


정우의 말을 힘겹게 들으며
그가 손짓한 곳으로 고갤 돌렸다.


그곳엔 한 남자가 칼을 맞은 채 쓰러져 있었다.


“네가 던진 칼에 맞았어”


“그럼 해인이는? 어? 해인이는!!!!!”


“없었다고. 아무도 없었어 여기. 너랑 나밖에”


“말도 안 돼”


“환각이야.”


“말도 안 돼...”


“너 그래서 울었구나. 그 친구 만나서”


“아니야 형. 분명히 해인이었다니까?
내가 봤다고. 나랑 얘기도 하고..!!!”


“정신차려. 환각제 때문이니까.”


“뭐?”


“그 주사기 안에 환각물질 들었었다고.”


“그럼 내가 본 정해인은,”


“....... 잊어버려”


수혁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주변을 둘러봤다.
하얀 빛 뿐이던 아까와 달리
이곳은 무척이나 어둡고 컴컴했다.


곰팡이가 가득 핀 창고였다.
빛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통로라곤 굳게 닫힌 철문밖에 없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밧줄 또한 눈에 들어왔다.



“걔가 너한테 어떤 의민지도 알고
그래서 네 얘기도 다 들어주고 싶은데
지금 그럴 시간이 없다. 어?”


“…….”


“여기서 나가는 게 급선무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도 자세한 건 몰라.
간신히 눈 떠보니 여기 묶여 있었어.
넌 계속 약에 취해 있었고...”


“…….”


“네 밧줄까지 풀고 데리고 나가려던 찰나에 저 놈이 들어왔어.

몸싸움 하다 떨어진 칼을 네가 주워서 던졌고”


“그럼...”


잠자코 있던 수혁이 입을 열자마자
문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정우와 눈을 맞추는 수혁.
정우 또한 살짝 인상 쓰며 문을 주시했다.



쾅 -



“....와우”



소란스러운 등장이었지만
왠지 모를 서늘함이 느껴졌다.


칼을 맞고 바닥에 엎어져있는 남자를 쳐다보는,
또 다른 남자의 얼굴이 그랬다.


“살인병기야? 보이는 것마다 죽이게”


목소리마저도.






정우는 남자의 조롱하는 듯한 말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건방진 눈빛 또한
거슬리긴 매한가지였다.


“여기서까지 솜씨 자랑할 필욘 없는데. 크흠”


“나한테까지 마약 자랑할 이유도 없지”


“아아- 약?”


“…….”


“그거 이번에 새로 들여온 거라
테스트 해본 거야. 부작용은 없었나 모르겠네”


정우가 살짝 수혁을 돌아본다.
그의 표정은 평소보다 더 어두워져 있었다.



“치사량 안 되게 넣었으니까 걱정하진 말고”


“우리가 죽으면 그쪽 임무는 누가 하지?”


“그래서 덜 넣었다니까, 크흠”



또각, 또각-



날카로운 구두 소리를 내며
정우와 수혁 가까이로 걸어오는 남자.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코를 훌쩍거렸다.
마치 콧잔등에 묻은 약을 빨아들이듯.


“죽일까 하다 살려줬더니 말이 많네”


“죽이는 게 나았을 수도 있지”


“이렇게 생각하자고.
아끼는 부하 다리병신 만든 죗값. 어?”



“남의 집 개박살 낸 깽값은 그쪽 다리로 받으면 되나?”


“이 새끼가...!”


“크흐-”


남자가 정우에게 욕을 뱉은
자신의 부하 어깨를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내 다리론 TV도 못 살걸? 이왕이면 돈이 낫지”


“필요없어”


“일만 잘 끝내면 부르는 대로 줄테니까 걱정 마”


“얼마나 부를 줄 알고”



“몰라. 근데 많이 줄 거야.
마누라 죽여주는 고마운 사람이니까, 크흠”


그의 눈에 자비로움 따윈 없었다.
무자비했고 냉담했으며 독살스러웠다.


“고마운 사람한테 이래도 되냐고, 내 말은”


“아직 안 죽였잖아.”


“…….”


“죽이고 나서 얘기하라니까?
그 전까지 너흰 그냥 고용인일 뿐이야.
날 위해 고용된 킬러들.”


“안 하겠다면,”


“죽는 거지, 크흠. 당연한 걸 묻네”


“…….”


“너희 죽이려면 한 100명은 필요하겠다 그치?
아무렴 살인병기 죽이는데 그 정도야 뭐,”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잠자코 있던 수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정우와 상의하지 않은 조건도 내밀며.


“뭐지?”


“이 일엔 KAP만 관여하는 거야.
다른 외부인은 끌어 들이지마.
다치게 하지도 말고”



“조카 말하나본데”


‘조카’라는 단어에 퍽 인상을 쓰는 정우와
주먹을 꽉 쥐는 수혁


“나도 그러고 싶어.
예쁜 조카까지 건들면 너무 양아치 같잖아”


“분명히 말했어”


“근데 너희가 실패하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



“재밌는 구경 하게 될지도 몰라. 크큭”


바보같이 웃던 남자가 순간 얼굴을 굳히며
뒤에 서있던 부하를 향해 손짓했다.


부하는 곧장 작은 트레이를 들고 남자 옆에 섰다.
쟁반 위엔 하얀색 가루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여자들이 또 코카인에 환장하거든”


말을 마치고 쟁반 위에 코를 대는 순간
수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덩달아 문 앞에 서있던 부하들도
앞으로 한 걸음 나왔고,
남자 또한 고갤 비틀어 수혁을 쳐다봤다.


“참을성이 없네”





그의 한 마디에 부들부들 떠는 수혁.
옆에 있던 정우가 팔을 붙잡아도 소용없었다.


“알렉스가 그러던데, 조카라면 아주 환장한다고”


남자는 천천히 가루를 흡입했고
이들 사이엔 여전히 무거운 긴장감만이 흘렀다.


“크흠. 흠 하아,”


“입 함부로 놀리지마”


“알았어. 크흠. 알았다고”


“너 죽이는 거 일도 아니야”


“알았다니까?”


고개를 이쪽저쪽 비틀며 신경질적으로 답하는 남자.
이내 풀어진 동공으로 정우와 수혁을 쳐다봤다.


“금요일 저녁 프린스 호텔에서 큰 파티가 열릴 거야.
거기서 죽여. 깔끔하게”


“임무 과정까지 시키는 대로 해야 되나?”


“어. 공적인 장소에서 죽어야 내가 의심을 안 받잖아”


“…….”


“어떻게 죽이든 상관은 없는데
너무 잔인하지만 않았음 좋겠어.
사방에 피 튀고 그러면 좀 역겹잖아”


“…….”



“그렇다고 너무 편하게 죽는 것도 싫어.
내 성에 안 차거든”


남자의 표정이 자유자재로 변했다.
정색했다가 활짝 웃었다가, 곧바로 굳어지기까지.


“일 다 끝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고”


“약속은 지켜”


“무슨 약속”


“아무도 끌어들이지 않는 거.”


“아 알았다니까?”


“…….”


“일만 잘하면 뭔들 안 지킬까”


“…….”


“솜씨는 뭐, 기대해도 되지?”


“좋을대로”


“촌스럽게 걸리지 말고”


“당신 걱정이나 하시지”


“흐흐 그럴게.
아, 그 집... 다 망가뜨려놔서 미안”


“…….”


“알렉스 내일이면 퇴원하니까 그쪽 일 처리하라고 시킬게.”


“필요없다고”


“그리고 앞으론 다 알렉스하고 상의해.
나한테 전화하지 말고 아는 척도 하지 말고.
일 끝날 때까진 전혀 모르는 사이다 우리, 어?”


“…….”



“Bye-bye”


모든 말을 쏟아내고 뒤돌아서는 남자.
껄렁거리는 걸음으로 창고를 나섰다.






*






♪ 페리 박 - 드라마 '킬미 힐미' OST




“…….”


“…….”


“…….”


조용한 병실엔 오로지
초침 움직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분명, 사람이 셋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ㅇㅇ은 느낄 수 있었다.
마주앉은 이들의 머릿속에서
엄청난 회전이 일고 있다는 것을



“다시 말해봐”


“셜록이 우리 집으로 갔으면 해요”


“싫다면?”


“별 다른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언니 집에 가면 되지!!”


“누구, 려원이?”


“어. 언니 혼자 살잖아.
나 하나 정도는 커버할 수 있을 걸?”


ㅇㅇ의 말에 진욱이 토이를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별 다른 수가 생겼는데 어쩌나”


“뭐, 결정은 마스터가 하는 거니까요”


“나한테도 결정권이라는 게 있을텐데”


“글쎄요. 마스터는 제 편일 거예요.”


“무슨 근거로?”



“알면서”


토이의 능글맞은 얼굴을 본 진욱이
미간을 찌푸리며 강한 콧바람을 내뿜었다.


“내가 너랑 장난 칠 짬밥은 아니지 않냐?”


“장난 아닙니다”


“그럼 뭔데”


“일일이 설명해야 돼요?”


“환자복 입었다고 무시하지 말랬지”


“흠.......”


“이유가 뭔데요!!”


뒷덜미만 긁적거리던 토이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Appearance of the third person.”


“제 3자의 출현?”


“um-mmh”


“언니가 제 3자라는 거예요?”


“그렇지. 어찌됐든 외부인이잖아?
이 사안을 아무 것도 모르는 완전 외부인”


진욱이 입울 다물었다.
사실은 사실이었다.
려원은 아무 것도 몰랐고, 몰라야 했다.


“내가 말만 안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응?”


“잘 둘러대면 쉽게 넘어갈 것 같은데?
언니가 뭐 꼬치꼬치 캐묻는 성격도 아니고...
오빠도 알잖아?”


“어어 그렇지. 걔 원래 귀찮은 거 딱 질색이라
질문도 많이 없어. 관심도 없고”


“그렇담, 뭐, 그건 패스하고”


“또 있어?”


“뭐가 또 남았어요?”


“당연하지. 제일 중요한 거”


“뭔데”


“뭔데요?”


“안전”


“…….”


“…….”



“셜록의 안전은 당연한 거고, 그 분의 안전까지 덤으로”


이번엔 ㅇㅇ도 입을 다물었다.
받아칠 변명이 없었다.


“그 놈들이 집 옮겼다고 미행 안 하겠어요?
아니, 더 쉽게 쳐들어갈 수 있겠네.”


“…….”


“거긴... 여자 둘만 살고 안전장치도 없고...”


“오..빠.......”


“완전 잡아가란 소리지”


ㅇㅇ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진욱을 향한다.
점점 토이의 말에 동요되기 시작했다.


“내, 내가 같이 산다면?”


“그래도 뭐...”


“수혁이도 같이 살면,”


“친구 분이 이상하게 생각하겠죠.
그럼 이유를 물을 테고, 또 둘러대야 되고
일은 커지고... 아까 말한 Appearance of..”


“아아 스탑!!!!! 그만해 새끼야!!!!!”





입술을 께물며 씨익 웃는 토이


“아 씨 머리 아파”


“오빠아...”


“후”


진욱의 고민이 길어졌다.
글썽거리는 ㅇㅇ이를 봐선
당연히 려원에게 보내야 했지만
토이 말대로 그곳은 금방 위험해질 게 뻔했다.
더불어 아무 것도 모르는 려원까지
위험에 빠트릴 순 없었다.


토이 집에 간다면?
저 응큼한 또라이 자식을 믿느니
차라리 병실에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그래도 거긴 튼튼하니까.
저 자식이 마음만 먹으면 진짜 꼭꼭 숨겨주긴 할텐데...


거기엔 무기도 많고 숨을 수 있는 공간도 많고...



벌컥-



“어! 삼촌!!!”


“와 대박 살았다. 이런 건 형이 전문이지”


한참 침묵만 흐르던 찰나,
정우가 문을 활짝 열고 등장했다.


“뭐야”


“형님 안녕하십니까-”


토이를 보곤 이내 굳는 얼굴


“뭐야 너”


“아, 그...”


“내가 불렀어”


“왜”


“물어볼 게 많아서”


“…….”


“막둥이랑 진실게임 했거든”


정우의 눈이 ㅇㅇ에게 향한다.
하고 싶은 말을 가득 담은 눈길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끼리 숨기는 건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아. 그치 형”


다시 진욱을 쳐다보는 정우.
그와 눈을 마주친 진욱이 작게 속삭였다.


“다 알아. 다”


“…….”


“징그럽게 많이 알더라고”


“너”


“네?”


“잠깐 나가 있어”


“넵”


곧바로 방을 나서는 토이.
정우의 목소리엔 단호함이 배어있었다.


“삼촌... 내가 잘못했어...”


“…….”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그게 타이밍이 잘 안 맞아서...”


“미안한 건,”


“…….”


“나야”


“…….”


“미안하다 ㅇㅇ아”


정우의 말에 ㅇㅇ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옛날, 누나의 죽음 앞에 선 정우는
ㅇㅇ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었다.
가까스로 장례를 치른 뒤
멍하게 있는 ㅇㅇ의 옆에 앉으며 뱉은 말이었다.


미안하다.’


왠지 ㅇㅇ은 그 날이 떠올랐다.


그 말에 얼마나 큰 진심이 담겨있는지 알았기에
그날도, 오늘도 ㅇㅇ은


가슴이 아렸다.


“이런 상황까지 만들어서 미안해.
꽤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네.”


“형”


“이런 꼴 안 보이려고 더 신경썼었는데”


“…….”


“네가 몰랐든 알고 있었든,
내가… 면목이 없다 ㅇㅇ아”


“그런 말 하지마. 나 괜찮으니까 자책하지 말라고”


“미안해”


“그 말도 하지마. 싫어”


“다신 상처 안 준다고 약속했었는데”


“…….”


“못 지켜서 미안”


정우의 진심 어린 사과가 ㅇㅇ의 가슴을 울렸다.
눈과 입, 심장을 지나 발끝까지 울려버렸다.


“상처 안 받았어. 안 받았으니까
자꾸 그런 표정 짓지마. 어?
삼촌이 이러면 내가 불안하단 말야.
없어져 버릴까 무섭다고…”


결국 정우의 품에 안기는 ㅇㅇ.
금방이라도 달아나버릴 것 같은 그를 꽉 붙잡았다.


“형”


“…….”


“오늘까지만 미안해 해”


“…….”



“내일부턴 다 잊고 더 잘해주면 되잖아”


진욱이 살짝 미소지었다.


“ㅇㅇ이도 그걸 원해.
형이 안 어울리게 우는 것보다”


지금으로썬 ㅇㅇ의 불안감을 없애주는 게 최선이었다.
아무도 떠나지 않을 거란 믿음, 확신.
그녀에겐 이것들이 필요했다.


“그치 막둥아?”


진욱의 물음에 살짝 품에서 나오더니
고갤 세차게 끄덕였다.


“응 맞아”


“거봐 형”


“…….”



“우리 막둥이가 의외로 간이 크더라고.
간땡이가 부은 건지...”


“엥?”


“막둥이 닉네임은 셜록이라는데,
형 어떻게 생각해?”


“뭐?”
“아 오빠!!!!”


“셜록이라 속이고 토이 만나서
막 킬러처럼 이것저것...”


“조용히 하라고!!!”


ㅇㅇ가 급히 진욱의 입을 틀어막았다.


“셜록...?”


“우리 닉네임도 다 알고 시크릿 룸도 웁!!”


“조용히 하랬다!!!!!!!”


진욱의 짓궂은 장난에 진땀 빼는 ㅇㅇ.
하지만 정우가 고갤 숙이며 손만 만지작거리자
진욱도 ㅇㅇ도 하던 일을 멈추고 꾹 입을 다물었다.


“형”


“어”


“수혁이는?”


“집에”


“집에?”


“어. 좀... 쉬어야 될 것 같아서”


“어디 아파? 응?”


“아니. 아니야 그런 거”


“...뭔가 형 안색도 좀 안 좋아 보이는데”


“피곤해서 그래”


ㅇㅇ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살짝 웃는 정우다.
마약 얘긴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참, 말이 나와서 말인데...”


“또 뭐”


“토이가 글쎄...”


진욱이 말을 흐렸다.
정우의 눈치를 보는 게 급선무였다.


“뭔데”


“그.......”


“자꾸 자기 집에서 지내래”


“어?”


“우리 집 개판된 거 알곤 그 집으로 들어오라는 거야.
그래서 ㅇㅇ이가 려원이 집에 가겠다니까...”


“안 돼”


“엉?”


“토이 집으로 가”


“삼촌!!!!”


“미행은 당연히 붙을 거고,
어쩌면 어제같은 일 또 생길 수도 있어.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게 나아”


“진심으로 그 집이 안전하다 생각해? 아니, 그 자식이?”


“토이가 왜”


“그 사람 좀... 이상해!!!”


“알잖아 토라이”


“착한 놈이야. 믿고 맡기자”


“사, 삼촌이 이럴 줄은 몰랐어!!!!”


“으응? 내가 뭐?”


“말도 안돼!! 또라이 말이 다 맞았잖아!!!!!”


“뭐랬는데”


“마스터는 자기 편일 거라고!!”


“…….”



“더 무서워졌어... 소름돋아”


“정 선생 집까지 위험에 노출시킬 순 없어.
독일도 지금 당장은.... 안 되고.”


“…….”


“조금 불편해도 며칠만 토이 집에 있어.
이번 주면 다 끝나”


“이번 주?”


“응. 다 끝나면 ㅇㅇ이 너랑 수혁이....”


차마 말을 맺지 못하는 정우


“흠흠, 아무튼 그렇게 하는 걸로 해”


“…….”


“우리 막둥이를 그런 놈 집에... 흐어.......”


“대신 삼촌이랑 오빠들도 다 같이 지내는 거지?”


“응”


“그럼 됐어. 괜찮아”


“내가 안 괜찮다고오...”


“넌 병원에 있을 건데 뭐 인마”


“아니거든? 내일 퇴원할 거거든?”


“무슨 퇴원이야. 여기 있어 그냥”


“싫어!! 나 혼자 외롭기 싫다고!!!”


“려원언니 자주 내려올거래”



“걔 오면 또 혼난다니까? 환자한테도 혼내는 애야!!!

아까 나 욕먹는 거 못봤어? 어?”


“크흐...”


“잘 됐네”


“씨.......”






*






“거봐. 내 말이 맞지?”


“쳇”


“마스터랑 나는 통하는 지점이 있다니까?”


“네 뭐 그런가 보죠 뭐”


토이의 우쭐거림이 ㅇㅇ의 귀에 닿았다.
운전하면서도 싱글벙글 웃는 그가 ㅇㅇ은 얄미울 뿐이었다.


그는 짐을 챙기러 집으로 향하는 ㅇㅇ을 굳이 따라 나섰다.
무척 들떠보였고, 아이처럼 개구져 보이기도 했다.
차에 오르기 전 마담에게 방 청소를 시킨 것도
다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제일 좋은 방 줄게. 약속한대로”


“약속한 적 없는데”


“내가 했잖아. 내 약속”


“…….”


“…….”


“근데요...”


“네”


“그.......”


“…….”


“총 쏠 줄 알아요?”


“나?”


“네”


“응”


“아.......”



“당연히 알지. 쏠 줄 알아야 만들 거 아냐”


“그러면,”


“싫어”


“에? 뭔 줄 알고요?”


“가르쳐 달라고 할 거잖아. 총 쏘는 거”


“헐”


“절대 안돼.”


“왜요?”


“나 마스터한테 죽어”


“몰래 하면 되잖아요”



“왜 몰래 배우려고 하는 건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안 될걸”


“그건 모르잖아요!!”


“그 쪽이 걱정할만큼 KAP가 허접해 보이나?”


“아니... 아니요”


“이미 총질은 최상급이라니까? 세 사람 다”


“…….”


“당신이 총 잡기도 전에 상황종료 시킬거야 아마.
워낙 빨라야지”


“그, 그래도... 내가 플레이어 칼 써서 상황이 좀 나아졌잖아요”


“음....... 그건 인정”


“거봐요!!!”


“그럼 총 말고 다른 걸 배워”


“다른 거 뭐요?”


“그냥, 다른 귀여운 무기들”


“에이...”


“왜”


“폼이 안 나잖아요”


“참나-”


토이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 쪼그만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폼으로 사람 죽여요?”


“네?”


“그리고, 그 쪽은 뭘 해도 폼이 안 난다니까?
벌벌 떨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나 무시해요 지금?!?!”


“네”


“…….”


“완~~~전”


피식피식 웃는 토이를 째려보는 ㅇㅇ.



“그렇게 보지 마요. 심장 떨리니까”



퍽-



보다 못한 ㅇㅇ가 토이의 팔뚝을 때렸다.


“아아!!”


“짜증나!!!!”


“푸흐...”


“아 웃지 말라고요!!!”


“우리 이제 좀 친해진 거 맞지?”


“그 쪽이 존댓말만 안 써도 친해 보이거든요?”


“그래. 앞으론 말 놓을게”


“쳇”


“싫음 말고요”


“맘대로 하시죠. 언제 뭐 내 말 들었어?”


토이가 입만 삐죽거리는 ㅇㅇ을 훔쳐보곤 활짝 웃었다.


“하여간 깜찍하다니까...”


“뭐라고요?”


“너 깜찍하다고”


“그런 말 좀 하지 말아요 쫌”


“왜? 내가 깜찍하다는데”


“이상하다니까요?”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토이가 갑자기 말끝을 흐리며 백미러를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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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놈들이야”


“뭐가요?”


“그 쪽이 총질을 배워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지.
저런 놈들이 계속 꼬일테니까”


백미러엔 토이의 차를
유유히 따라오는 검은 세단이 있었다.
양쪽엔 하얀색 세단 두 대가
붙어 있어 위압감을 더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시커멓게 선팅해
운전자는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했다.



“생각보다,”


“허어.......”


“병신들이네”


“네에?”


“미행 조온나 못해”


“…….”


“너무 티나잖아”


“그게 지금 할 소리예요?”


“응. 왜냐하면 내가...”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으며 목을 이리저리 비트는 토이.



“쟤네 없애버릴 거거든”


“네?”


말을 마치자마자 엑셀을 밟기 시작했다.


“뭐해요 지금!!!”


“something fun”


그리곤 ㅇㅇ의 집 방향이 아닌 외곽으로 빠져버렸다.


“어디 가는데요!!!”


“somewhere fun”


“저기요!!!!!”


“셜록”


“뭐하냐고요 지금!!!!”


“의자 밑에서 총 좀 꺼내줘”


“...뭐라고요?”


“총”


“초, 총이요?”


당황한 얼굴로 의자 밑을 내려다 본 ㅇㅇ이가
천천히 총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진짜 총?”



“그럼 가짜겠니?”


“.......”


“본드 차에 어울리는 본드 건. 어때?”


“헐.......”


“이런 거 해보고 싶단 얘기 아니었어? 아까?”


“이, 이건...”


“기회 줄게. 그 쪽이 쏠래?”


“아니요!!!!!!!!”


“푸흐”


ㅇㅇ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속력을 줄이지 않던 토이가
주변을 둘러보며 동태를 살폈다.


“카메라는 없고. 이 정도면 사람도 없고...”


“저기 할아버지 지나가잖아요!!!”


“셜록 운전할 줄 알아?”


“아니요?”


“운전대는 잡을 줄 알지”


“아니, 아니요?”


“잡아 그냥”


ㅇㅇ의 손을 핸들 위에 끌어다 놓곤
자신은 총을 뺏어 들었다.


“엄마!!!!”


“잘 잡고 있어. 딴 데로 새지 말고”


“나 운전 못한다고요!!!!!”


“킬러는 완전 땡이네. 기본이 운전인데...”


아랑곳 하지 않고 창문을 내리더니
뒤에 있는 검은 세단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아 정말 미치겠네!!!! 쏠 거예요 진짜? 네??!?!”



“Let's do this”


순간 재빨리 방아쇠를 당긴 토이.
하지만 익숙한 총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이스”


“쐈어요? 쏜 거예요?”


ㅇㅇ의 다급한 질문은 공기 중에 떠다녔고
토이는 계속해서 하얀 차들에게도 방아쇠를 당겼다.


“후우..”


역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쐈냐고요!!!! 아 빨리 이것 좀, 네?
우리 이러다 죽어요 진짜!!!!!”



“나와”


토이가 뒷좌석으로 총을 던진 뒤 다시 핸들을 잡았다.
그리곤 더욱 세게 엑셀을 밟기 시작했다.


“으악!!!!!”


“카운트 들어간다”


“천천히 가요!!!!!”


“7, 5, 4, 3의 반…”


“이 또라이야!!!!”


“2의 반의 반, 2, 1.9, 1.2, 1…”


“악!!!!!!”











“꺅!!!!!!!!!!!!!!!”


“Bomb!”


꽥- 소릴 지르며 귀를 막는 ㅇㅇ.
눈은 백미러를 보고 있다.


“포, 폭탄이었어요?”


“응. 자동폭탄 총”


“헐.......”


“나 잘 쏘지?”


“허.......”


여전히 불길에 휩싸인 차를 보며 멍하니 있는 ㅇㅇ.
토이가 헤헤 웃으며 유턴하자 화들짝 놀라 묻는다.


“뭐하는 거예요!!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집엔 가야될 거 아냐. 나 이 길 몰라”


“…….”


“뭐, 굿바이 인사도 해주고 좋지”


폭파된 차 옆에 멈춘 토이가 창문을 내려 상태를 확인했다.


“어, 어때요?”


“깔끔한데?”


“다 죽었어요?”


“Of Course”


“하아...”



“오늘 밤 뉴스 챙겨봐야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다시 엑셀을 밟는 토이.
ㅇㅇ이가 노려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오빠들이랑 삼촌 위험해지면 어쩌려고 이래요!”


“저런 놈들 몇 죽였다고 발끈하면
그 새끼 속이 좁은 거지”


“…….”


“그리고 뭐, 어차피 내가 죽인 건데
왜 형들이 위험해져? 다쳐도 내가 다치지”


“...그 쪽도 다치면 안 되니까 그렇죠”



“…….”


“…….”


“뭐야. 나 걱정해주는 거야?”


“아니 뭐... 말이 그렇단 거예요”


“걱정스러운 말이었는데”


“…….”


“기분이 참...”


“흠흠. 아 빨리 가기나 해요!!”



“.......좋네”





.
.
.





못다한 이야기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갔다 와”


“여기 있을 거예요?”


“어. 귀찮아”


“알았어요”


ㅇㅇ가 차 문을 닫고 집으로 향했다.


씩씩하게 들어가나 싶더니
현관 앞에서 머뭇거리는 ㅇㅇ.


집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숨을 푹 내쉰다.


튼튼할 것만 같은 집은
여기저기 깨지고 망가져 있었다.









순간, 야속하게도
새벽 기억이 마구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거실을 가득 채웠던 검은 무리들,
피 흘려가며 싸운 정우와 진욱, 그리고 수혁.
어쩔 수 없이 뛰어내린 창문,
목에 닿았던 날카로운 칼날.


그 어떤 것에서도 ㅇㅇ은 자유로울 수 없었다.


“휴.......”



벌컥-



눈을 질끈 감고 손잡이를 당기자
낯선 공기가 느껴졌다.

익숙한 집에서 느끼는 낯선 공기



그리고 내부는
지난 새벽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시체를 비롯한 사람의 형체는 없었지만
그들이 흘리고 간 핏자국들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ㅇㅇ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저기 손닿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다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 물건들이었다.


“진욱오빠 형광등 갈아 끼울 때마다 쓰던 건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간이의자를 만지며 혼잣말하는 ㅇㅇ.


“소파는...”


이곳저곳 찢긴 소파는 평소 정우가 아끼던 것이었다.


깨져버린 유리창은 매일 아침
수혁이 커피마시며 서있던 곳이었고,


온통 난장판이 된 주방은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누던 곳이었다.


그리고,



“....피아노”



매일 듣던 수혁의 피아노 연주.


순간 불안감에 휩싸인 ㅇㅇ가 급히 2층으로 뛰어 올랐다.


계단을 지나 복도로 접어들면서도,
아니 문고리를 잡아 돌리면서도 ㅇㅇ은
제발 피아노만큼은 무사하길 빌었다.


그 누구도 손대지 않았길,
감히
손대지 못했길.



하지만 그곳엔 이미



“…….”



수혁이 있었다.



“.......오빠”


“…….”


피아노 앞에 멍하니 앉아있던 그는
ㅇㅇ의 부름에 살짝 고갤 돌렸고


이후로 계속, 아무 말 없이 그녈 쳐다봤다.



“…….”


“…….”


그렇게 둘은 한참을 바라만 봤다.


어떤 말도, 몸짓도 없이 그냥 서로의 눈만.


수혁은 무슨 생각에 빠져있는 걸까.
왜 ㅇㅇ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까.


ㅇㅇ은 왠지 모르게 수혁이 처량해 보였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빈 방에
혼자 멍하니 앉아있던 그가 불쌍하고 처연해 보였다.


그나마 가장 마음이 가는,
가장 편한 피아노 앞에 앉아
어디에도 기대지 못한 마음을 잠시 놓아보려던 거겠지.


ㅇㅇ은 이렇게 생각했다.


기특하게도 어느 곳 하나 다치지 않고
용케 살아남아줘서 고맙기도 하고
긴긴밤 혼자 둬서 미안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못난 주인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겠지.


ㅇㅇ은 그렇게 여겼다.


그냥, 갑자기 울컥했겠지
그래서 우는 거겠지


ㅇㅇ은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래야 수혁의 눈에 맺힌 눈물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왜 울고 있었는지
왜 그렇게 처량 맞게 앉아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물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수혁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위해서라도




수혁이 고갤 숙이자 눈물이 뚝 떨어졌다.



간신히 참아보려 노력 중이었다.


떨리는 걸음으로 간신히 2층에 올라왔던 그는
방문을 열고도 한참을 서있기만 했었다.
눈에 보이는 피아노에 다가갈 수 없었다.


자꾸 해인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너무 반가운데 너무 미운 그 이름이, 얼굴이
자꾸만 수혁을 괴롭혔다.


진짜라 믿고 싶으면서도
진짜가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에게 해인은 그리우면서도 두려운 존재였다.



더듬거리며 피아노 의자에 앉자마자
수혁은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의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피아노를 보니 눈물이 났다.


어쩌면 그의 마지막 말이 생각나서 일수도 있다.



다 내 잘못이니까 이제 그만 괴로워 해.

나 때문에 너, 너무 고통 속에 살았어

 

나 좀 용서해주라. 친구야

 

“.......네가 콩쿨에서 들려준 연주는

내가 여태껏 들은 것 중에 최고였어.”



다 널 위한 연주였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아는 줄 알았는데 몰라줘서,
서러워 그런 걸 수도 있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슬펐다.



그는 무슨 생각에 빠져있는 걸까
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까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
.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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