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한 말과 행동을 곱씹어 보며 집으로 향했다.


쑥스러워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모습과
그 와중에도 할 말은 하던 모습이 겹쳐져
웃음을 만들었고,


그 웃음은 집에 도착해서도,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도 쭉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선배님에 대한 시간이 아니고, 제 시간이요.”
이 문장이 마음에 걸려 끝없는 고민을 시작했고,


결국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을 청하게 됐다.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던 걸까.
나에 대해 신중함을 가지는 거라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얘기해줄걸.


그 시간이 나를 향한 확신의 답으로 돌아온다면
지금 당장의 기쁨보다 훨씬 클 거라고.


더 벅차고 감동적일 거라고.



“후...”


옅은 한숨을 쉬며 스탠드 조명을 껐다.
그리곤 서서히 잠을 청했다.


이따가는 예전 그 날처럼 당황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My Type






첫 인사를 나누고 이틀 뒤,
금요일이 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도서관에 가야 했다.


그녀는 항상 오후쯤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곤 3층부터 천천히 둘러봤다.
방학 내내 그랬고 개강하고 나서도 그랬다.


사실 뛰어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랄한다 진짜”


친구들이 알면 죽을 때까지 놀릴 상황이었다.
평생 여자엔 관심도 없던 놈이
찌질하게 몰래 훔쳐보러 도서관까지 뛰어간다고
배 잡고 웃으며 손가락질 할...


그래도 난 굳이 4층까지 뛰어 올라가
숨을 몰아쉬며 책장 앞에 섰고
책 사이 틈으로 입구를 쳐다보며
그녀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찌질하든 어떻든 그녀를 보는 게 먼저였다.





“.......”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녀는 깜짝 놀란 얼굴로 인사하곤 얼른 자리를 피했다.
급히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굳이 쳐다보지 말 걸 그랬나 싶었다.
인사까지 하는 건 오버였나


“.......”


그래도 오늘 만큼은, 아니 이제부터는
그냥 멀리서 바라볼 수만은 없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연극의 무대가 되어준 텅 빈 도서관

소품으로 쓰인 책장과 책들

 

 

그리고

나의 주인공




“음음~”


작게 흥얼거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웃음 짓던 것도 잠시,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말 걸지
뭐라고 하지
자연스러워 보이려나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자연스럽게 보이겠냐
어떡하지


머릴 헝클이며 고민하던 찰나
갑자기 돌아서려는 그녀를 피해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곤 아무 책이나 집어 들어 중간 페이지를 펼쳤다.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간신히 책에 눈을 돌려 살짝 훑어봤더니
꽤 자극적인 단어가 들어왔다.
스릴러 소설임이 분명했다.
지금보다 더 스릴넘쳐 보이진 않았지만 말이다.


“.......”


그녀의 표정이 궁금했다.
날 봤을까, 봤다면 알아봤을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입술을 깨물며 살며시 그녈 향해 돌아서자
다시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날 보진 못한 것 같았다.


“후...”


작은 한숨이 나왔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아니었으면
온통 땀에 젖었을 것 같았다.


“후.......”


책을 다시 책장에 넣는 순간 들린 그녀의 한숨소리.
고개를 쭉 빼서 보니
위에 꽂힌 책을 꺼내려 낑낑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계속 지켜보려다 결국,


“이거 맞아요?”


얼른 다가가 책을 꺼내주었다.
넘어지면 안 되니까


“네?”


“이거,”


“아...”


“.......”


“그 옆에 건데...”


“에? 아...”


멍청한 놈


“후... 바쁘세요?”


“네?”


그녀가 내 입술을 빤히 쳐다봤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입모양을 읽는 것 같았다.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시간... 되시나 해서”


“시간이요?”


“네”


“네, 뭐...”


“그럼 회의할까요?”


“회의?”


“네”


“과제 회의요? 지금?”


“네”


혹시 핑계인 걸 알아차린 건 아닐까 조바심이 났지만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음을 다잡았다.
밀고 나가자고


“...네”


“.......”


“.......”


“갈까요 그럼?”


“네!”


그녀의 씩씩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그냥 다 마음에 들었다.


너무 좋은 나머지
자꾸 웃음이 새어나와 혼났다.
살면서 이렇게 많이 웃어본 기억이 없어
나조차도 신기했다.


그녀는 쪼르르 달려와 내 옆에 섰다.
내 보폭이 벅차지 않을까 조금씩 줄였더니
한결 편해보였다.
귀여웠다.


이왕이면 밥을 먹고 싶었는데
이미 먹었다고 해서 아쉬웠다.
말을 놓으라고 해서 잠깐 놔봤는데
영 어색해서 관뒀다.


햇빛 때문에 찡그리는 그녀를 위해 자리를 바꿔줬다.
다시 되찾은 미소를 보니 나도 마음이 편해졌다.


“기자가 꿈이거든요.”


“아, 우와”


“여행기자요”


“여행을 되게 좋아하시나 봐요”


“네. 늘 새롭고 신나고 그러더라고요”


“멋있는 것 같아요”


“꿈을 이루면 더 멋있을 거예요”


“이루면 되죠”




바다에 가면 파란 글을
산에 가면 초록 글을
사막에 가면 노란 글을
도시에 가면 무지개 글을 쓰게 될 거예요.


나에겐 당신의 글을.






“야 정해인!!!”



갑자기 저 멀리서 나타난 진운이 형


형에게 그녀와 같이 있는 모습을
딱히 보여주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도 반갑게 맞이했다.


그랬는데,


“진운 오빠?”


“뭐야 ㅇㅇ도 있었네?”


그녀의 ‘오빠’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바뀌었다.
다른 남자를 부르는 것 자체가 싫었다.
‘오빠.’
그리 흔하게 쓰일 단어는 아니지 않나?


나도 아직 못 들어본 소리를 저 형이 듣고 있었다니


“ㅇㅇ? 지나 절친이잖아.
지나 절친은 또 내 절친이기도 하고”


영 불편한 얼굴로 둘의 대화를 들었다.
농구 얘기, 고기 얘기, 응원 얘기...


“인기는 이 자식이 많지”


인기 얘기...?


“아니에요! 나 인기 없는데!!?”


“없기는. 맨날 얘한테 음료수 사주고
땀도 닦아주고... 아니지, 그냥 지나가기만 해도
애들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



“형”


“엉?”


“안 바빠? 안 가?”


“나? 가야지. 수업있어 나”


“가 빨리”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기 전에
형을 보내야겠다 생각했다.


인기 같은 건 모르는 게 좋았다.
괜히 부담만 줄테니. 나도 불편했고.


마치 지금처럼




“아까부터 저기 오른쪽에 앉은 여자 둘이랑
계속 눈이 마주쳤거든요”


“네?”


“근데 왼쪽에 있는 여자도 계속 여길 쳐다보는 거예요”


“.......”


“지금은 선배님 뒤에 앉은 여자도
보고 있어요 나를. 아니 선배님을”


그녀가 뒤돌아보려는 날 말리며 말했다.


“그렇게 티 나게 보면 안 되죠”


“티 나게 봐야 안 쳐다보죠”


“알고 있었어요? 쳐다보는 거?”


흔히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도 구차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익숙한 일인가?”


“불쾌한 일이에요”


“아...”


“남자가 봐도 마찬가지고”


어딜 가나 사람들은
감정이 담긴 눈으로 날 쳐다보곤 했다.


어떤 여자는 번호를 물었고
어떤 남자는 시비를 걸었다.
날 두고 싸우는 커플도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관심두지 않는 것
쓸 데 없는 친절과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


이게 전부였다.



“다음에는 도서관 스터디룸에서 회의할까요?”


“둘이서만”


“다른 사람 눈치 볼 거 없이”



예외가 생겨버렸지만






My Type






밤새 뒤척이다 간신히 눈 붙이고 나니 9시.
멍한 눈으로 천장만 쳐다보며 또 1시간을 보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옷장 문을 열었다.


뭘 입을까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려나
데이트룩이 따로 있나


봄... 봄은 핑크.
남자는 핑크


“아 핑크...”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미치겠네



지이잉- 지이잉-



샤워부터 할 생각에 화장실로 향하던 찰나 울리는 휴대폰



‘진운 형’



왠지 통화가 길어질 것 같았지만
핑크도 물어볼 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여보세요”


“어 왜”


“왜? 왜??”


“...왜”


“이 자식 이거, 너 이러면 우리 ㅇㅇ 못 맡기지!!”


“형이 왜 ㅇㅇ를 맡겨. 형 것도 아닌데”


“내 동생이니까”


“ㅇㅇ 누구한테 맡겨지는 거 싫어해.
그런 소리 들을 만큼 약한 애도 아니고”


“얼씨구? 언제부터 알았다고?”


“.......”


“아예 굳혔냐?”


“뭘”


“ㅇㅇ 좋아하기로”


“.......”


“말하는 거 보니까 거의 보호자구만 뭐”


“...아 왜. 왜 전화했는데”


“어제 어떻게 됐냐고!!!!
그러고 뛰쳐나갔음 연락을 줘야 될 거 아냐!!!”


“그럼 어제 전화하지”


“...너 나와. 싸우자”


“.......”


“후... 기껏 생각해서 전화 안 했더니만 은혜도 모르고”


“뭘 생각한건데”


“뜨거운 시간 보내나 하고!!!”



오빠아- 나 우유 사다줘어-”



.......



“그건 형이 보낸 거 같은데?”


“흠흠. 아 됐고, 어제 무슨 일 있었는지나 불어 빨리”


“우유 사다줘야 되는 거 아니야?”


“말해라 빨리”


형의 부들거리는 모습이 상상 돼 피식 웃었다.
하긴, 어제 형 덕이 컸으니까





.
.
.





“형 잠깐 나 좀”


“어?”


“할 얘기 있어”


“뭔데?”


“팀 얘기야. 나와”


“야, 야!!”


날 부르는 형을 두고 먼저 고깃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바로 옆에 있는 작은 골목으로 향했다.
으슥해서 사람 하나 없는 그곳이 딱 적당하다 생각했다.


“야 왜. 무슨 일인데”


“.......”


“심각한 거야?”


“형”


“왜”


“누구 해줄 건데. 누구 말하는 거야”


“뭔 소리야”


“소개팅. 누구냐고”


“소개팅? 아 뭐야. 그 말 하려고 불러낸 거야?”


“빨리 말해. 누구냐고 그게”


“아 몰라!!! 일단 찾아볼게!!!!
시간 좀 줘라 엉?
그런 여자 찾는 게 쉬운 줄 아냐??”


“나 말고”


“뭐?”


“ㅇㅇ 씨”


“.......”


“ㅇㅇ 씨 누구랑 소개팅 시켜줄 거냐고”


“그게 왜 궁금한데?”


“말해”


“아 괜찮은 애 있어. 군대 후임”


“.......”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성격도 좋고.
의리도 있고 눈치도 있고”


“.......”


“ㅇㅇ 사진 잠깐 보여줬었는데 이쁘다고 그랬어.
이건 아직 ㅇㅇ한테 말 안 했지만.”


“하지마”


“안 할 거야.
허락없이 사진 보여줬다고 화낼 거 뻔한데,”


“소개팅 하지 말라고. 해주지 마”


“어?”


“ㅇㅇ 소개팅 해주지 마. 분명히 말했어”


“왜? 네가 왜, 네가 왜 하지 말래?
너가 뭔데 나의 동생을 향한 호의를,”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뭐?”


“좀 됐어. 좋아한 지”


“근데 뭐 어쩌라고 인마”


“얼마 전에 나랑 밥 먹었고 커피도 마셨어.
어색하게 선물도 줬고
아까는 어색하게 고백까지 할 뻔했어.”


“.......”


“내 휴대폰에 여자 번호 그 사람 밖에 없어.”


“.......”


“그 여자 이쁘고 매력 있고 착하고 귀여워.
밝고 명랑해. 보면 기분 좋아져. 웃게 해줘”



“야 너 설마,”


“그러니까 소개팅 해주지 마”


“진짜야?!?!?”


“.......”


“진짜 ㅇㅇ 좋아해????”


이런 내 마음은 그녀에게 먼저 털어놓고 싶었는데,


“어”


“대박”


결국 이렇게 돼버렸다.
씁쓸하게


“그럴 줄 알았어!!!! 내가 맞았다고!!!!!”


“.......”


“어쩐지 너가 여자랑 밥 먹을 애가 아닌데
뜬금없이 ㅇㅇ랑 먹었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진짜, 와... 진짜, 대박.
대박이야 완전!!!!!!!!”


“.......”


“언제부터야? 어? 언제부터 좋아했어?
새끼야 근데 왜 말을 안 해!!!!”


“했잖아 지금”


“더 일찍 했어야지!!! 그럼 내가 팍팍 밀어줬을 텐데”


“형이?”


퍽이나


“그래!!!! 어우 이 멍충아!!!
내가 너 좋아하는 사람 있냐고 물었을 때
바로 대답 했어야지!!!”


“.......”


“너 떠본 거란 말야!!!
혹시 ㅇㅇ한테 마음 있나 해서”


“알려줬잖아 그래서.
형 주변에 그런 여자 있다고”


“....그랬구나”


“.......”


“.......”


“그럼 아까 떠봤다는 게 내 얘기 한 거였어? 보류도?”


“어. 보류 했었지. 방금 풀었고”


“계속 보류, 아니 없던 일로 해”


“아 어떻게 그래. 방금까지 해주겠다고 장담했는데”


“그럼 해줄 거야?”


“.......”


“형”


“정현이가 ㅇㅇ 맘에 든다고 했는데...”


“누군데 그 새끼”


“진짜 괜찮은 앤데”


“.......”


“너보다 싸가지도 있고”


“후...”


“너보다 키도 커”


“형”


“내 말도 잘 듣고”


“원하는 게 뭐야”


“딱히”


“.......”


“농구화”


“콜”


“나이스-”


저 양아치


“ㅇㅇ한텐 뭐라고 둘러대지?”


“그냥... 그 놈 별로라고 해”


“그건 안 되지. 안 그래도 걔한테 미안한데”


“어차피 모를 거 아냐”


“아무튼 안 돼. 그냥 여친 생겼다고 해야겠다”


“그게 더 이상한데”


“아 몰라. 나중에 생각할래”


“약속했다 형. 소개팅 안 돼”


“아 알았다고!!! 너나 잘해!!!
너 완전 동네친구 됐거든??”


“동네친구?”


“그래!! ㅇㅇ가 너보고 동네친구래!!!
자취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한대나 뭐래나...”


“나보고 동네 친구래?”


“어. 너 친구 됐어 짜샤”


“.......”


“자기한테 마음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 안 하더라.
너가 너무 편했나?”


“.......”


“네가 편한 인상은 아닌데.
너무 잘 생겨서 부담스러운? 그런 느낌이랄까?”



형의 발랄한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동네 친구’
이 네 글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에게 편한 상대가 되고 싶었지
‘친구’까진 아니었는데.


그렇게 정의되고 싶지 않은데 난



“네가 얼마나 잘해줬으면 편하게 생각했겠어.
그것도 신기하다 진짜”


“.......”


“천하의 38선이 무너졌는데...”


“.......”


“야 근데 ㅇㅇ 어디가 좋았어?
언제부터 좋아했어? 계기가 뭐야”


“....나 먼저 들어간다”


“야! 말은 해주고 가라고!!”


“형은 그 새끼한테 전화하고 들어와”


“누구. 정현이?”


“어”


“지금 당장 어떻게 해!!”


“.......”


“아 걔한텐 또 뭐라고 하지?”



“ㅇㅇ 남자친구 생겼다고 해”





.
.
.





“잘 데려다 줬어. 집까지”


“처음부터 설명해라”


“꼭 해야 돼?”


“지금이라도 농구화 반납하고 소개팅 진행할 수 있다”


생양아치


“고백했어”


“너가?”


“어”


“그래서, 뭐래”


“...답은 아직”


“대답 안 했어? ㅇㅇ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대”


“무슨 생각”


“그냥... 생각”


“.......”


“알겠다고 했어. 그리고,”


“그리고”


“오늘 과제하기로 했고”


“뭔 과제. 갑자기 웬 과제?”


“팀 과제”


“아 고백하다 말고 뭔 과제냐고 그러니까!!!”


“그거 우리 유행어야”


“뭐?”


“번갈아 가면서 쓰는 유행어”


“.......”


“엄청 용기내서 한 말이라 100퍼센트 진심만 담긴,
그런 문장”


“.......”


“끊는다”


“야!!!!!”


“.......”


“ㅇㅇ 생각 많은 애야.
겉으론 덜렁대 보여도 속 깊고 신중한 편이라
옆에서 지켜봐줘야 돼. 시간 필요할 만 해”


“.......”


“사람 쉽게 보는 애 아니니까 너도 ㅇㅇ 쉽게 보지마.”


“내가 그럴 놈으로 보여?”


“아니”


“.......”


“잘해라. 데이트 과제”


“...형”


“엉”


“남자는 핑크?”


“뭐?”


“.......”


“아, 어. 핑크 나이스”


“땡큐”






My Type






12시 반.
카페 문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 주문을 받는 그녀가 보였다.


머리 아플까봐 약 챙겨왔는데
웃는 얼굴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가끔 인상 쓰는 거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헙”


순간 갑자기 고갤 든 그녀를 피해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그리곤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훔쳐보는 거 그만 해야지 안 되겠네.



“후... 으어,”



“?”



“?”




“??”


“??”


“.......”


“.......”


“.......”


“.......”



.......



“토끼야~”


“아, 저기,”


카페 안으로 들어간 남자를 쳐다보다
또 다시 몸을 숨겼다.


얼마나 이상해보였을까
멀쩡한 애가 카페 앞에 서성이고 있으니.


“씨...”


남자는 이 카페 사장이었다.
저번 날 우연히 지나가다
카페 문을 닫고 여자 친구와 어디론가 향하는
그를 본 적 있었다.


꽤 젊어 보이는데 벌써 카페 사장이라니,
부럽고 신기해서 한참 쳐다본 기억이 나는데...


난 왠지 변태로 찍힌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알바생 훔쳐보는 스토커 변태’



“미친...”


머릴 헝클이며 괴로워하던 것도 잠시,


“선배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갤 들었다.


“에?”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흠”


그리고 그녀 뒤엔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의
사장님이 서있었다.


“오신지 몰랐어요. 연락이라도 하시지...”


“시간 아직 남았으니까요”


“네...”


“.......”


“흐음...”


“잠깐 들어와 계세요 그럼”


“아니에요. 기다릴게요”


사장님 표정 보니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아직 30분 남았는데...”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고 일해요”


“.......”


“.......”


“저기,”


“네?”


“ㅇㅇ 선배라고요?”


“네”


“.......”


“.......”


“왜요 사장님?”


“그냥 선배 아닌데?”


“네?”



“뭐 있는데?”


“뭐가요?”


나와 그녀를 번갈아 보며 코를 찡긋거리는 사장님


“아무튼 있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요”


“있네 있어”


“아 쫌!”


결국 그는 그녀의 손에 카페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게슴츠레한 눈빛은 내게 남겨둔 채.





.
.
.





                                                                  

     ♪ International Love Song - 검정치마 ♪






“어제 잘 잤어요?”


“...선배님은요?”


“별로.”


“저도.”


“.......”


“.......”


“속은 괜찮아요? 머리는,”


“좀 지나야 괜찮아질 것 같아요. 아직까진...”


“약 가져 왔는데... 지금 먹을래요?”


“아니요, 이따가...
감사합니다”


“힘들면 말해요”


“...네”


“.......”


“.......”


“어제 일... 다 기억해요?”


“네”


“.......”


“그래서 못 잤어요. 한 숨도”


“.......”


“후...”


“미안해요”


“네?”


“갑자기 놀래켜서.”


“.......”


“뜬금없이 고백해서”


“.......”


“놓치기 싫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줘요.”


“.......”


“.......”


“네”


“.......”


“저도 그래요”


“.......”


“.......”


“ㅇㅇ 씨”


“네?”


“생각할 시간 끝나면 알려줘요 꼭.”


“.......”


“재촉하진 않을 건데, 기다리긴 할 거거든요”


“.......”


“어떤 답이든 괜찮으니까 알려주기만 해요.”


“...네”


“.......”


“.......”


“그럼, 우리 이제 어디 갈까요?
밥 먹으러 갈까요?”


“아이스크림이요”


“밥 안 먹고?”


“네. 해장하게요”


“그럽시다”




.......




“근데요,”


“네”


“선배님 왜 저한테 말 안 놓으세요?”


“타이밍을 놓쳤어요”


“아... 그럼 이제부터라도 놓으세요!”


“.......”


“.......”


“나 오빠 하기 싫어요”


“네?”


“선배보다 오빠가 더 싫어.
그래서 다른 호칭 생길 때까지 말 안 놓을 거예요.”


“왜요? 왜 싫은데요?”


“ㅇㅇ 씨한테 오빠는 흔한 것 같아서...
흔해지기 싫어서요”


“.......”


“그저 그런 오빠 안 해요 나”


“.......”


“말은 나중에 놓을게요.
불편해서 그런 건 아니죠?”


“아니에요 그런 건”


“됐어요 그럼”


“.......”




.......




“선배님”


“네”


“지나가 그러는데요,”


“.......”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멋대로 재단하지 말래요”


“...좋은 말인데요?”


“근데 제가 어젯밤 내내 그랬거든요”


“.......”


“제 딴에, 좀 재봤어요 선배님을”


“.......”


“내 마음도.”


“.......”


“저한테 선배님은 되게 잘난 사람이거든요.
너무 잘나서 그 속마음도 대단한 것 같고...
비쌀 거 같고... 건드리면 안 될 것 같고....”


“.......”


“그 마음 가지려면 나도 똑같이 잘나야 될 것 같아서,”


“나한테도 ㅇㅇ 씨 잘난 사람이에요.
ㅇㅇ 씨 마음 되게 비싸요.”


“.......”


“내 거보다 비싸”


“.......”


“다시 재요. 시작부터 틀렸어요”


“.......”


“나도 ㅇㅇ 씨만큼 사람 쉽게 안 봐요.
나 ㅇㅇ 씨한테 말 걸려고 용기 엄청 냈어요.
한 번도 쉬운 적 없었어.”


“.......”


“나 많이 부족해요. ㅇㅇ 씨보다.”


“.......”


“.......”


“그리고 또, 지나가 뭐라고 했냐면요.”


“.......”


“용기를 가지랬어요”


“.......”


“이 존잘남을 차지할 용기”


“.......”


“그래서”



“그래 보려고요.”



“.......”


“귀도 얇고 성격도 급해서 그런 것도 있고,
백 날 혼자 생각해봤자 답도 안 나올 것 같아서.”


“...고마워요”


“.......”


“.......”


“저 지금 엄청 떨고 있어요”


“알아요”


“남자 손 먼저 잡은 거 처음이에요”


“그런 것 같아요”


“충동적으로 잡은 거예요.”


“네”


“이러기 싫어서 생각할 시간 달라고 했던 건데”


“가끔 생각했던 결과가 안 나올 때도 있는 거예요”


“왜 하필 지금,”


“다행히 지금”


“.......”


“.......”


“사실 30초 전에 선배한테 또 반해서 그랬어요.”


“잘했어요”


“.......”


“일부러 반하라고 멋있는 척 한 건데 진짜 그런 거면,
충동적인 거 아니죠?”


“.......”


“내 계획이었으니까”


“진짜요?”





감당할 수 없는 설렘과 떨림이
그녀와 나 사이를 바람처럼 스쳤다.


두서없는 말로 고백한 사랑이
따스한 손길로 돌아왔을 때,


심장이 잠깐 멎었었다.


거리 한복판에 서있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사랑인 걸 알았다.



“나 후회 되게 잘하는 성격이에요.
마음도 하루에 수십 번씩 바뀌고
바뀌는 족족 티내고 그래요.
피곤한 사람이에요”


“네”


“그리고 나,”


“.......”


“사람 쉽게 안 놔요”


“.......”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쳐다보다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도.”



바람에 흩날리던 꽃잎이 그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떼어주려는 내 손길에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던 그녀는,


이내 분홍빛 미소를 띠었다.



예뻤다.




.
.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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