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은 검은 눈을 가지셨다.
보고 있자면 숨이 멎는,
속이 타들어가는,
그럼에도 심장이 떨리는
그런 눈을 가지셨다.


가까이서 보니 그러했다.
달빛에 그 분의 얼굴이 드러났을 때
코앞에 그 분의 숨결이 닿았을 때



“피하시오”


그 분은 바닥에 떨어진 장옷을 쥐어주며
날 등 뒤로 숨겨주셨다.


“되도록 밖에 나오지 말고”


그리곤, 날 둘러싸고 있던 무뢰배 여럿과 몸싸움을 벌였다.


단검을 들고 덤비는 그들과 달리 맨손이었던 그 분은
민첩하고도 정확한 몸짓으로
순식간에, 그들을 넘어뜨렸다.


마지막 한 명이 배를 움켜쥔 채 쓰러지자
그 분이 그의 목 언저리를 발로 누르며 말했다.


“드디어 찾았다 이 놈.”


“컥, 컥..!”


“내 네 놈을 잡기 위해 한양 곳곳을 뒤지고 다녔건만,
이리 가까운 곳에 있었다니”


“누, 누구냐 넌!”


“자세한 이야긴 한성부에 가서 하자꾸나”


“으윽...!”


사내를 일으켜 끌고 가는 그 분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찰나,


“.......”


갑자기 뒤돌아보는 바람에
또 다시 장옷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낭자는,”


“.......”


“어서 댁으로 돌아가시오.”


“.......”


“또 험한 꼴 보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긴 도포 자락 휘날리며 저 멀리 사라진 그 분은,


젊은 나이에 요직에 앉아
조정 뿐 아니라 백성들의 신망을 얻고,
일 년 전 이름 모를 병으로 부인을 잃어 동정까지 얻은
한성부 소속 강동원 판관이셨다.


그 분의 얼굴은
전에 우리 집에 오셨을 때 몰래 본 적이 있었는데,
선이 희고 얇아
쉬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었다.


누구든 탄성이 절로 터질만한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계셨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오해를 사셨던 바.


날카로운 생김새마냥 성품 또한 차가워
주변에 사람이 살 수 없다는 소문과
그로 인해 정(情)에 메마른 부인이 병을 앓다 죽었다는 소문
그리고,


부인의 시신을 보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는 소문이 가장 유명했다.


하지만 나만큼은
소문을 믿지 않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다.


그의 눈망울이 그러했다.






*






“웬 놈이냐”


그 분을 만나고 며칠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처음에 그 늦은 밤처럼 다시 집 밖을 나섰고,
텅 빈 저잣거리를 지나 그 분의 댁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문 옆 담벼락 그림자 아래에
장옷을 뒤집은 채 서있었다.


“누구냐 물었다”


그의 물음에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순간,


“.......!”


그가 나에게 칼을 겨누며 말했다.


“나와서 당당히 맞서라”


“.......”


“이대로 죽이기 전에”


“저, 저는...”


“.......”


“자객이 아닙니다만.”


그림자에서 벗어나 모습을 드러내자
그 또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날 빤히 내려다보았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일전에 내가 되도록 나오지 말라 이르지 않았소.”


“저도 사람인데 어찌 집 안에서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해서, 굳이 또 이 밤에 나왔단 말이오?”


“.......”


“여종도 없이, 내 집 앞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무엇이오”


“.......”


“.......”


“전에 일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


“목숨을 잃을 뻔한 저를,”


“인사치레는 됐소.”


“.......”


“그럼 이만,”


“무, 무뢰배들을 또 봤습니다!”


“.......”


“저잣거리에 있는 주막에서 작당 모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


그 분은 마치 참과 거짓을 판별하듯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참말이오?”


“..예”


“언제 보았소”


“그, 금일 낮에 보았습니다”


“.......”


“.......”


“그 얘길 전하러 예까지 온 것이오?”


“그, 그리고...”


“.......”


“청(請)이 하나 있사온데,”


“.......”


“익일 저와 함께 절에 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소릴 하는 게요”


나도 내가 무슨 소릴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믿어나 주실까.


“제가 절에 가야 하는데,
그날 일을 겪은 이후로 무서워서 다닐 수가 없는 터라..”


“웬만하면 절은 나중에 가시오. 화적떼가 들끓고 있으니”


“꼭 가야합니다”


“.......”


“.......”


“낭자”


“.......”


“난 사사로운 호위무사가 아니오.
그런 자를 찾고 있다면 유능한 자객 중 하날 골라보시오.
그 편이 훨씬 쉬울 테니”


“가친께서도 허락 하셨는걸요?”


“댁의 부친이 누구든,”


“병판 대감이십니다.”


“.......”


“저는 병판 댁 차녀 ㅇㅇㅇ이라고 하고요.”


“병판 댁 차녀라.”


“예”


“대감께서 직접 그리하라 이르셨소?”


“....예”


“이 밤에... 이런 식으로 전하라?”


“.......”


차마 그 분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갤 아래로 숙였다.

검은 눈동자가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미시(未時) 쯤 보면 되겠소?”


“예?”


“댁으로 갈 테니 가마를 준비하시오.”


“참말이십니까?”


“그리고 다신, 밤에 나오지 마시오”


“.......”


“여기 오지도 말고”


쌩하니 지나치는 그 분에게서 찬바람이 일었지만
난 왠지 모를 따듯함을 느꼈다.


이상했지만, 퍽 잘 어울렸다.






*






“아기씨!”


“조용히 해. 어머니 깨시겠어”


“어딜 가시는 거예요!”


“절에 간다 했잖아”


“지금요? 혼자?”


“아니”


“그럼요”


“같이 가주기로 하신 분이 계셔”


“누가요?”


“한양에서 가장 믿음직한 분”


“그게 누구.... 헙”


“어? 오셨다!”


활짝 열린 대문 밖으로 모습을 비친 그 분.
가마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날 발견하곤 돌아서셨다.


“저 분이 누구신데요”


“강 판관님”


“예??”


“갔다올게”


“잠시만요 아기씨!!”


“아 왜!”


“차라리 쇤네랑 가요”


“안 돼. 넌 어머니 옆에 있어야지”


“그렇다고 아기씨 혼자 보낼 순 없잖아요!”


“내가 왜 혼자야. 저기 계시는데”


“아기씨는 저 분이 무섭지도 않으세요?
그리고 어찌 사내랑 둘이,”


“오늘은 호위무사로 부른 거야.”


“대감마님께서요?”


“아니”


“예???”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 넌”


“마님께서 아시면 어쩌시려고요!”


“너만 조용히 하면 돼.
아버지도 내가 절에 다니는 건 이미 알고 계시니까
저 분에 대한 얘기만 안 하면 된다고. 알았지?”


“아무리 그래도...”


“혹시 아버지가 날 찾으시면,”


“.......”


“아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


“아기씨...”


“너무 늦진 않을게. 걱정 말고 있어”


“아기씨!!”


여리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뒤로한 채
그 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시지요.”


“대체 여종은 어디 두고 혼자 간단 말이오?”


“아... 여리는 어머니 곁을 지켜야 해서요.”


“.......”


“저는 혼자가 더 편합니다”


“.......”


살짝 웃으며 가마에 올라타자
가마꾼들이 천천히 가마를 들어올렸다.
그리곤, 그 분의 명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


헌데 막상 길을 떠나니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렸다.
가슴 한 쪽이 쿵쾅거렸고 식은땀도 났다.


두근거렸다. 그 분 때문에



드르륵-



“헙”


“.......”


갑갑한 마음에 창을 열자마자 마주친 그 분의 눈.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다시 고갤 돌려 정면을 쳐다봤다.


“저, 저기...”


“.......”


“강 판관님”


“왜 그러시오”


“절에 가보신 적 있으십니까?”


“없소”


“아...”


“.......”


“그럼 강 판관님”


“.......”


“절 근처에 있는 계곡은 가보셨습니까?”


“.......”


“그곳에 가면 큰 바위가 있는데,
거기 앉아서 떨어지는 물을 보고 있자면..”


“기도가 아니라 신선놀음을 하러 가시는 모양이오.”


“예? 아...”


차디 찬 음성에 풀 죽었던 것도 잠시,


“낭자”


다시 그 분을 올려보며 생기 있게 답했다.


“예!”


“여인은 함부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오.
창을 닫으시오”


“예...”


결국 창을 닫아야 했지만 말이다.





.
.

.





“우움...”


잠깐 졸았을까.
몸을 비틀며 기지개를 켜다 창을 열었더니,


“어?”


돌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가마 또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보시오. 도착한 것이오?”


“하였소. 내리시오.”


“아 네”


느닷없는 목소리에 황급히 가마뚜껑을 열자
바로 앞에 서있는 그 분의 발이 보였다.
그는 뚜껑을 연 채로 내게 손을 내밀어
가마에서 내리는 걸 도와주었다.


“감사합니다”


“가마꾼들은 저 밑에서 쉬고 있을 것이오.”


“아 예... 제가 좀 오래 잠들었었나 봅니다”


“그리 오래되진 않았소.”


“깨우시지...”


“잘 자길래.”


“.......”


“계단이 많소. 조심해서 오르시오”


“예”





앞장 서는 그 분의 뒤를 조용히 쫓다보니
뒷모습이 눈에 찼다.
그는 검을 쥐고 뒷짐을 진 채 고상한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헌데,”


“예?”


“그 밤엔 왜 나왔던 것이오?”


“그 밤이라면...”


“처음 만난 날 말이오.”


“아...”


“댁에서 꽤 먼 곳이었는데.”


“.......”


대답이 빨리 나오지 않자
그가 걸음을 멈추며 날 돌아봤다.


“그게,”


“.......”


“...서낭당에 가던 길이었습니다.”


“.......”


“기도 드리러...”


“많이 편찮으신 것이오?”


“예?”


“대부인 말이오.”


“알고 계셨습니까?”


“.......”


“처음 쓰러지신 이후로
지금까지 큰 차도는 없으셨습니다.”


“고생이 많겠소.”


“.......”


“.......”


“판관께서도 잘 아실 것 아닙니까.
그런 고생 따위 전혀 힘들지 않다는 거.”


“.......”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싶은 것 말입니다”


“.......”


차라리 내가 죽었다면.
오라버니가 아닌 내가 죽었다면
어머니도 아프지 않았을 텐데.


원체 허약하게 태어나
걱정을 달고 살던 오라버니는
결국 열여섯이 되던 해에 생을 마감했고,
그날 어머니 또한 병석에 누우셨다.


하루아침에 촉망받던 장남을 잃은 우리 집안은
허탈함에 사로잡혀 몇 해를 보냈고,
그 사이 아버지는 가정을, 이 세상을, 본인의 생을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분에게 나의 존재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


“그래서 쓸모를 얻기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서낭에게도, 부처님에게도”


살짝 입술을 깨물며
그 분을 지나쳐 먼저 걸음을 옮겼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니까.






*






“가마를 내려주시오”


“예, 아기씨”


기도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마 안이 답답해 잠깐 내리려는데,


“왜 그러시오”


 그 분이 굳이 날 말리며 말했다.


“길에 돌이 많아 걷기에 불편하니 그냥 타고 계시오.”


“괜찮습니다”


“다칠 것 같아 그러니 말 들으시오”


“안 다칩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가마뚜껑을 열려는데,



벌컥-



“어머,”


갑자기 그가 창을 벌컥 열며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오.
금방 해도 질 텐데 어두워지기까지 하면,”


“갑갑해서 그럽니다. 잠깐만 내려서 걷겠습니다.”


“.......”


“.......”


“.......”


“드러내지 말라던 여인의 얼굴을
그리 빤히 보시면 어찌합니까?”


“흠흠.”


헛기침을 하며 바로 창을 닫는 그를 보니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푸흐...”


“그럼 잠깐만 걸으시오.”


예”


그 분의 당황한 얼굴은 뭐랄까,
재밌다고 해야 할까?
우리가 짓는 평범한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항상 표정이 없는 분이라 그런지
약간의 변화에도 크게 티가 났다.


눈이 조금 더 커진다든지
한 쪽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다든지...


“강 판관님”


“.......”


“판관께선 왜 그날 밤 그곳을 지나고 계셨던 것입니까?”


“순찰을 도는 중이었소.”


“아...”


“요즘 부쩍 화적떼가 들고 일어나
도성 안팎으로 시끄러우니
당분간은 댁에 있는 것이 좋을 것이오.
절의 출입을 삼가시오.”


“서낭당엔 가도 됩니까?”


“아니되오.”


“.......”


“대신 대부인 곁을 지키시오.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는 게 훨씬 좋을 것이니”


“.......”


“그래야 후회의 크기도 작을 것이오.”


“그것이 강 판관의 진심입니까?”


“.......”


“돌아가신 부인에 대한?”


“.......”


적막이 흘렀다.
그는 말없이 앞만 보고 걸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도 답을 기다린 건 아니었다.
어쩌면 침묵이 답이었으리라.


“전에 병판대감을 찾아뵌 적이 있었소.”


“.......”


“낭자는 보질 못했고, 그...”


“오라버니를 뵀었지요.”


살짝 고갤 끄덕이곤 다시 입술을 달짝였다.


“그 때 대감께서 말씀하시길,”


“.......”


“딸아이의 기세가 사내와 같아 근심이지만
여타 소저들과 달리 글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여인의 기품 또한 갖추고 있어
참으로 기특하고 자랑스럽다고 하셨소.”


“.......”


“그리고 밖에서 웬 비명이 들려왔지.”


“.......”


“낭자가 말에서 떨어지는 소리였소”


그가 살짝 웃으며 날 쳐다봤다.


“사내의 기세와 같다는 말이 그제야 이해되더이다.”


“아...”


“대감께선 혼을 내실 법도 한데
그저 호탕하게 웃으며 낭자에게 말을 태워주라 하셨소.”


“.......”


“부모에게 자식이란 저런 것이구나, 생각했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저 예쁘고 기특하기만 한.”


“.......”


“부모는 자식에게 쓸모를 바라지 않소.”


“압니다.”


“.......”


“제가 바라는 것이지요. 제가 말한 쓸모란,”



휘익-



“어?”


“.......”


내가 자리에 멈춰선 순간,
숲에서 날아온 화살 하나가 옆을 지나쳐
반대편에 있던 나무에 꽂혔다.


그리곤 어딘가에 숨어있던 무뢰배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 우릴 에워싸기 시작했다.


“가, 강 판관님...”


“이리오시오”


그새 칼을 꺼내든 그 분이 날 뒤로 숨기며 말했다.


“웬 놈들이냐”


“팔자 좋구나.
우리 잡는다고 바쁠 줄 알았더니”


“.......”


“한성부 판관이 대낮부터
계집이랑 노닥거릴 줄 누가 알았겠어.”


“덕분에 네놈도 잡았으니 일석이조 아니겠느냐”


“그건 두고 봐야 알지.
내가 끌려갈지, 네놈 모가지가 날아갈지”


“옥에서 벗들 만날 준비나 하거라.”


참다못한 무뢰배 중 한명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강 판관은 당황한 기색 없이 그를 단칼에 베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고한 백성을 괴롭힌 죗값이다.”


“이얏!!!!!!”


쓰러진 사내를 보고 눈이 돌아간 무뢰배들이 한꺼번에 덤비자
뒤에 있던 날 나무 쪽으로 밀어 넣곤
그 앞에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는 검이 들어올 한 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허술한 실력의 무뢰배들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휘익-



그때, 또 다시 날아오는 화살을 검으로 물리친 그가

살짝 돌아보며 물었다.


“괜찮소?”


“예. 전 괜찮습니다”


“두려우면 눈을 감고 계시오. 금방 끝낼 테니”


대답 대신 고갤 끄덕이던 순간,
쓰러져 있던 사내가 다시 일어나 그에게 돌진했고


“꺅!!!”


빗겨 내려친 칼날에 그의 갓이 바닥에 떨어졌다.


“.......”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다시 사내의 목에 칼을 대 숨을 끊었다.



“여기 계시오”


날아오는 화살을 일일이 물리치며 숲길로 들어간 그.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몇 차례 들리더니 다시 적막이 흘렀고,
이내 그 분이 다시 모습을 보였다.


“하아...”


“괜찮으십니까? 여기 상흔이...”


그의 얼굴엔 칼에 베인 상흔이 남아있었다.


“괜찮소”


“잠시만,”


부러 외면하는 그를 붙잡고
상흔에 남은 피를 옷소매로 살짝 닦아냈다.


“하필이면 얼굴에...”


“.......”


“따갑지 않으십니까?”


“.......”


“송구합니다. 저 때문에,”


큰 키에 맞추려 까치발을 들고 있던 내가
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리자

그가 내 허리를 붙잡았다.


“.......”


“.......”


그리고 우린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만 마주보며 서있었다.


“.......”


“.......”


“놀라지 않았소?”


“전에 한번 봐서 그런지 괜찮았습니다.”


“혼자 왔으면 큰일 날 뻔하였소.”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지요.”


“가마꾼도 도망간 것 같은데 어찌하면 좋겠소”


“제 말벗이 되어주십시오.”


“.......”


“가는 길 심심치 않게”




그의 검은 눈을 다시 보며 확신했다.
그 분의 하얀 미소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






“들어가시오.”


“.......”


대문 앞에서 꿈쩍도 안 하는 날 의아하게 쳐다보던 그가
고갤 살짝 비틀며 물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또 뵈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


“.......”


“그럴 일은 없소.”


“예?”


“내 오늘 일은 대감께 말씀드리지 않을 테니
집 밖에 나오지 마시오.”


“.......”


“혹 또 다시 길에서 마주친다면
그 땐 정말 가만히 있지 않겠소”


“어쩌실 건데요?”


“.......”


“어떡하실 겁니까?”


“대감께 낭자를 붙잡아 두라 이를 것이오”


그 분의 말씀에 픽 웃으며 답했다.


“또 뵐 수 있겠네요.”


“낭자,”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 은혜는...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


“그리고,”


“.......”


“다치지 마세요. 아프지 마시고”


“.......”


“그럼.”


그를 두고 먼저 돌아섰다.
내가 대문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가만히 계시던 그 분은
내 모습이 사라지자 천천히 걸음을 떼셨다.


나 또한 그 뒷모습을 구경하다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찾지 않는 나의 방으로...






*






“승윤이를 데려오거라!!”


“어머니!!”


“승윤아!!!”


“오라버니는 없어요!!!”


“승윤아 어미 여기 있다!! 승윤아!!!!”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는 동안
그 분의 말씀대로 어머니 곁을 지켰다.
어머니는 매일 밤 꿈을 꾸셨는데
아침만 되면 오라버니를 찾으셨다.


오라버니 꿈을 꾸셨던 것 같다.


“승윤아...”


“어머니 저예요. ㅇㅇ이요.
제가 옆에 있잖아요...”


“...ㅇㅇ이.......”


어머니가 내 이름을 되뇌며 빤히 쳐다보셨다.


“ㅇㅇ아”


“네 어머니”


“ㅇㅇ...”


오랜만에 듣는 내 이름에 물기 서린 목소리로 대답하자,
어머니도 눈물을 보이셨다.


“ㅇㅇ아”


“네”


“승윤이는?”


“.......”


“승윤이는 어디 있느냐”


“.......”


“어서 오라비를 불러 오거라. 어미가 찾는다고”


“....오라버니는,”


“어서”


“죽었습니다.”


“어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승윤이를... 승윤이를...”


“죽은 지 오래라고요!!!!”



드르륵, 탁-



“비켜라!!!”


순간 방으로 뛰어 들어오신 아버지가
날 밀치고 어머니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


“어미의 명도 재촉하고 싶은 것이냐?”


“...아버지”


“네 오라비의 기억으로 하루하루 버티는 사람이다.
근데 어찌 그런 말을,”


“언제까지 죽은 이만 껴안고 살게 할 작정이십니까”


“뭐라?”


“죽은 오라버니가 어머니를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시는 것입니까?”


“네 이년!!!!!”



찰싹-



“오냐오냐 키웠더니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얼얼한 볼을 붙잡고 아버지를 쳐다봤다.


“저도 아버지의 자식입니다”


“.......”


“저는... 죽지 않았단 말입니다”


“.......”


“저를 좀... 봐주세요 아버지...”


차오른 눈물을 떨어트리며 아버지께 애원했다.
날 좀 봐달라고.
나 아직 여기 있다고...


“참으로 어리석구나”


“.......”


“죽은 오라비를 시기하다니”


“.......”


“생전에 오라비가 널 얼마나 예뻐했는데.”


“.......”


“참으로 어리석어”


순간,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나를 경멸하는 눈으로 보는 아버지 앞에서
웃음을 흘려버렸다.


방금까지도 애원하던 내가 우스워서.


“꼴도 보기 싫다. 썩 나가거라!!”


내 꼴이 처량해서.






*






달빛이 고요히 내려앉은 밤.
옆에서 졸고있는 여리를 두고 집 밖을 나섰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도를 드리는 것뿐이었기에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서낭당에 가야했다.


더 간절해졌으니까.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 신령님께 비나이다.

 

어머니 대신 제 목숨을 거둬주십시오.

할 수만 있다면

오라버니를 다시 내려 보내주세요.

그리고 절 데려가세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속으로 기도를 새기며 급히 걸음을 옮기던 중,


“.......!”


누군가 내 뒤로 날아드는 소리에
그만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뉘, 뉘시오!”


“.......”


“누구냐고 물었소!”


“그리 겁도 많으면서 왜 또 나온 것이오”


바들바들 떨며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이젠 익숙하다 못해 친숙해진 그 분이 서계셨다.


“강 판관님...”


“대감께서 심려가 크시겠소.

이리 말을 안 들으니”


“여긴 어떻게, 제가 올 줄은 어떻게 아시고...”


“흠흠. 댁으로 돌아가시오. 같이 가 줄테니”


어딘가 어색하게 왔던 길을 다시 가리키는 그를 보다가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

그리곤 서낭당 쪽으로 빠르게 향했다.


“이보시오”


“.......”


“낭자”


“.......”


“낭자!!!!”



탁-



하지만 어느새 뒤따라와 날 붙잡는 강 판관님


“이거 놓으십시오!”


“내 말이 들리지 않소?”


“서낭당이 코앞입니다.
어찌 그냥 돌아가라 하십니까”


“내 위험하다고 몇 번이나 설명하지 않았소”


“상관없습니다 저는.”


“지금 그게,”


“놓으십시오.”


“.......”


“.......”


“...어찌 그리 무모하시오”


“.......”


“대부인을 위한 정성은 갸륵하나
낭자의 안위 또한 돌봐야 할 것 아니오.”


“제 안위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말씀은 감사하오나
제 안위는 그리 걱정할 것이 못 됩니다”


“.......”


“걱정... 안 해주셔도 돼요”


“.......”


“아무도 바라지 않습니다”


“낭자,”


떨리는 눈으로 그 분을 바라보며 어렴풋이 미소지었다.
그러자 한참을 망설이던 그 분이
천천히 내 손목을 놓으셨다.



“가시오.”


“.......”


“뒤따를테니”







그 후로, 우리는 매일 밤길을 걸었다.
사사로운 호위무사가 아니라며
매몰차게 말씀하셨던 그 분은
매번 말없이 내 뒤를 지켜주셨고,


나 또한 그 분의 걸음 소리를 벗 삼아 서낭당으로 향했다.


하루는 그 분께 물었었다.

왜 절 쫓으시나요.


그러자 그 분이 답했다.



처음엔 불쌍하고 안 됐어서.

그런데 지금은,

 

또 후회할까봐.

 

후회는 한 번으로 족하니까.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뜻일까,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기도를 드리던 중간에 마주친
그 분의 눈빛을 보곤 깨달았다.





.
.

.





“눈에 걱정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


“혹시 소인의 것입니까?”


“.......”


“아직도 소인을 걱정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는 낭자는,”


“.......”


“무엇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오”


“.......”


“대부인의 호전이오 아니면,
대가로 내놓은 낭자의 목숨이오”


“.......”


“전에 말한 그 쓸모를
목숨 값으로 내놓은 거냔 말이오”


“역시, 제 것이 맞았나 봅니다”


말을 마치고는 고갤 숙이며 작게 웃었다.
그러자 그 분이 잔뜩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런 웃음 짓지 마시오.”


“.......”


“이번엔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오.
그냥... 죽게 놔두지 않을 거란 말이오”


흔들리는 그의 눈을 바라보다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섰다.


“돌아가신 부인... 말씀이십니까?”


“.......”


“그 분도 저와 같은 웃음을 지으셨습니까?”


“.......”


“...어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뭔지 아시오?”


“.......”


“마음의 병이오.”


“.......”


“그 병은 별다른 증세 없이 사람을 앓게 하지.
드러나지 않게 썩히고 곪고 문드러지게 하는,”


“.......”


“아주 무섭고 잔인한.”


“.......”


“내 처도 그 병을 앓았소. 옆에 있는 내내.”


그 분의 단정한 음성이 하나하나 귓가에 박혔다.
달도 별도, 흐르는 물도
그의 음성을 귀담아 듣는 듯했다.


“처음엔 몰랐지... 내색을 안 했으니.
근데 어느 날, 보란 듯이 흰 웃음을 짓는데 그게 참”


“.......”


“텅 비어있더이다.”


“.......”


“낭자의 웃음처럼”


그의 시선이 잠시 내 입술에 머물렀다 땅으로 떨어졌다.


“외면했었소. 우리에겐 나눌 정이 없었으니.
나도, 내 처도 서로를 원하지 않았으니까.”


“.......”


“그렇게 내 처는 서서히 죽어갔소.
창백한 얼굴로, 메마른 입술로.
죽기 직전이 돼서야 환한 미소를 보여주더이다.
눈앞에 어둠이 다가오니 기쁨이 차오른다고.”


“.......”


“저자에 떠도는 소문, 다 맞는 말이오.
죽은 여인을 보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소.
평안한 낯꽃에 안도했을 뿐”


나와 눈을 맞추는 강 판관님.
그의 옅은 한숨이 공기 중에 흩어지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한 가지, 딱 한 가지 후회로 남은 건
붙들어 주지 않은 것. 이거 하나였소.
도와줄 수 있었는데, 지켜줄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



“그래서, 이번엔 놓지 않으려 하오.”


“.......”


“이제 낭자의 선택에 달렸소.
그렇게 빈 웃음으로 살다 갈 것인지,
아니면 내 호위를 받을 것인지”


“강 판관님,”


“말에 오르려 애쓰던, 천방지축에 웃음도 많던
그 때의 여인으로 돌아가시오.”


“.......”


“...곁에 있어줄 테니”





.
.

.





분명 연민이라고 했다.


아비의 이름까지 팔며
절에 가고 싶어 하는 심성이
안 됐고 딱해 보였다고.
대감의 전언이 없었음을 알았지만
어미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해
연민에 끌려 동행해준 것뿐이라고.


그 뒤로 말을 아끼는 그 분을 보며 짐작할 수 있었다.


매일 밤 서낭당 길목에서
내가 나타날까 노심초사 하며 기다린 것은
연민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고.






.

.

.




언젠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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