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그렇게, 나는,

참 애타게 그리워했다.

 

기억이 누락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빈자리를 아주 강하게 느꼈다.

 

외로워서였을까.

외로움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을까.

 

그래서 이 발걸음도 그리 외롭게 느껴졌던 걸까

 

마냥 걷는 이 글의 끝에 꼭 누군가가 있길 바라는...

 

 

오늘.

 

 

지금.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매일 올려다보던 밤하늘이 지겨워

자릴 옮겨야겠다 생각하던 차였다.

 

밤을 내려 볼 수 있는 곳으로.

 

높은 곳, 높다란 곳

그리고 생경한 곳으로

 

 

그런데 생경한 사람을 만났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어색하고 낯설어서

날 당황하게 만드는 사람을.

 

우린 그저 비슷했다.

비슷한 눈빛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그게 편하다는 것도.

 

 

 

“.......”

 

“.......”

 

확신은 없었다.

나와 비슷하다고 해서 다 나같은 건 아니니까.

외로운 눈을 가졌다고 해서

나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아닐 테니.

 

그래서 조금 더 그를 쳐다보기로 했다.

허락만 해준다면.



 

“.......”

 



조금만 더

 

 




.......

 


조금만... .

 

 


 

 


*



 

 


 

터벅- 터벅-

 

 

“.......”

 

“.......”

 

말없이 그를 뒤따랐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차분히, 천천히...

 

그가 너무 궁금했지만

외로운 발걸음이라고 애써 포장하며 걸음을 옮겼다.

나를 위한 작은 변명 같은 거였다.

 

그는 날 이해해줄 거란 착각도 함께.

 

“.......”

 

“.......”

 

그리 차지 않은 밤공기였으나 왠지 몸이 떨려왔다.

높은 곳이라 그런가,

오랜 그리움을 앞에 두고 걸어서 그런가.

 

떨림일까 설렘일까

차마 결정하지 못한 채 잠시 자리에 멈춰선 순간,

 

그가 돌아봤다.

 

“.......”


그와 그의 밤은 참 황홀했다.

 

...”

 

“.......”

 

내게 닿아있는 눈길이 싫지 않았다.

점점 다가오는 발걸음도 그저 좋았다.

 

...”

 

“.......”

 

그게,”

 

“.......”

 

그러니까,”


 

왜 멈췄어요?”

 

?”

 

“.......”

 

생각하느라...”

 

무슨 생각

 

뭐라고 말 할까, 무슨 말이 듣기 좋을까

 

결론은?”

 

아직

 

“.......”

 

아직 생각 중이었는데... 이렇게 됐네요

 

나는,”

 

“.......”

 

그 쪽 목소리가 궁금해서

 

...”

 

“.......”

 

“.......”

 

생각 끝날 때까지 여기 있을 거예요?”

 

그럴까요?”

 

좋을 대로

 

“.......”

 

이젠 내가 따라 걸을 차례니까

 

살짝 미소짓는 그를 보며 따라 웃었다.

 

비슷하다는 확신이 확신,

, 같은 말이구나.

 

 

 

 

 

 

 

신기루는 아니죠?”

 

아닐 걸요?”

 

유령은?”

 

발이 없겠죠


그림은?”

 

움직이는데요?”

 

“...?”

 

글쎄요.”

 

소설은 아니길

 

그건 확실히 아니에요

 

유리창에 비친 그를 쳐다봤다.

그래, 소설은 아닌 게 확실했다.

그는 움직였고, 발도 땅에 붙어 있었으며

잡으면,

 

“.......”

 

“.......”

 

잡혔다.

신기루도 아니었다.

 

그의 옷자락을 살짝 잡았다 놓자

그가 내 손을 감싸 온기를 전했다.



얼떨결에 맞잡은 손에서 간지러움이 느껴졌지만

모르는 척 가만히 있었다.

 

좋아서.

 

 

 




다른 사람도 그렇게 빤히 봐요?”

 

아니요

 

나만?”

 


...”

 

왜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요

 

그 쪽은요?”

 

, 나도

 

“...아닌 거 같은데

 

정확히 오래 봐야하는 게 있긴 해요

 

뭔데요?”

 

좀 이따,”

 

?”

 

이따가 알려줄게요

 

“.......”

 

말 안 해도 알게 되겠지만

 

궁금한데...”

 

왜 하필 여기예요?”

 

?”

 

왜 하필 오늘, 여기. 혼자

 

알잖아요

 

“.......”

 

내가 왜 오늘, 여기, 혼자 왔는지

 

“.......”

 

나랑 같잖아, 당신

 

확신에 확신을 더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의 눈에도 나와 같은 감정이 담겨있었다.

.......

아닌가?

 

좀 헷갈리기 시작했지만 그의 손을 놓진 않았다.

놓을 마음은 없었다.


 

아닌데

 

?”

 

나랑 다른데, 당신

 

“.......”

 

난 보고 싶어서 왔거든요. 밤하늘이

 

“.......”

 

그 쪽은 싫어서 왔잖아

 

어떻게 알았어요?”

 

표정이 그랬어요.”

 

우와,”

 

왜요

 

기가 막혀서요

 

푸흐...”

 

에펠탑이 싫었던 모파상은

에펠탑에 있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대요

 

왜요?”

 

안 보이니까

 

“.......”

 

탑에 있으면 탑을 못 보니까

 

그래서 그 쪽도,”

 

 

...”

 

케이블카를 좋아하기도 하고

 

“.......”

 

근데 좀 웃기지 않아요?”

 

뭐가요

 

밤하늘이 피하고 싶었으면 이불 꼭 끌어안고 자면 되는데.

굳이 여기까지...”

 

알려줄까요? 이유?”

 

알아요?”

 

 

뭔데요?”

 

너무 쉽잖아요

 

?”


 나 보려고

 

“.......”

 

나 때문에

 

“.......”

 

“.......”

 

. 좀 웃어도 돼요?”

 

. 푸흐흐...”


그와 얼굴을 마주한 채 큭큭거렸다.

답지 않게 익살스러운 말도 잘 하는 듯했다.

너무 정답이라 찔려서 웃은 것도 있지만.

 

, 커피 마실래요?”

 

좋아요

 

어떤 걸로?”

 

같은 걸로

 

뭔 줄 알고

 

카푸치노? 아메리카노? 라뗀가?”

 

에스프레소.”

 

“...밀크티 주세요

 

. 하하하

 

이 밤에 에스프레소는 아니에요

 

그래서 마시는 건데

 

“.......”


 안 잘 거라

 

“.......”

 

에스프레소랑 밀크티 주세요.”

 

-”

 

아쉽다

 

뭐가요

 

낮이었으면 밥 먹었을 텐데

 

먹으면 되죠

 

“.......”

 

“.......”

 

“...진짜 신기루 아니죠?”

 

이래도 의심해요?”

 

그가 잡고 있던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니요

 

“.......”

 

혹시 뱀파이어?”

 

“.......”

 

미안해요

 









처음에 나 봤을 때요,”


 

 

그 때 무슨 생각했어요?”

 

...”

 

“.......”

 

내가 그렇게 이상하게 생겼나?”

 

정말요?”

 

“..날 아는 건가?”

 

“.......”

 

나한테 반했나?”

 

...”

 

그것도 아니면,”

 

“.......”

 

“날 찾던 사람인가?”

 

“.......”

 

어쩌면 평생 그리워하던, 기다렸던,

찾아 헤맸던 그런 사람인가?”

 

저기요

 

“.......”

 

나 그 쪽 뭔지 알겠어

 

?”

 

“.......”

 

“.......”

 

나야, 당신

 

“.......”

 

나라고

 

그의 손을 놓지 않을 거란 굳은 다짐도 소용없었다.

어느새 우린 몇 발자국 떨어져 있었고

당연히 내 손도 비어있었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날 쳐다봤지만

전처럼 내게 다가오진 않았다.

 

나는 우리 사이에 벌어진 그 거리가

,

 

아팠다.

 

 

 

 

 


!!!!!!”

 

눈앞이 밝아진 건 찰나였다.

그 조명 안에서 그는, 누군가와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유유히 흐르던 아름다운 음악이

더욱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한 치 앞은 잔인한데

귓가는 나른한.

 

아름답고 몽롱한.

 

그 갑작스럽고 이상한 상황이 내 앞에 펼쳐졌다.

 

숨어요

 

?”

 

어디든 숨어요. 금방 갈게

 

갑자기,”


 

당신은 안 다쳐. 걱정하지마

 

그의 단호한 표정을 보다

급히 구석 어딘가로 몸을 숨겼다.

 

곧 여기저기서 총성이 들렸고

이 요상한 음악도 계속 울렸다.

 

엘리베이터와 비상구로 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의 말을 곱씹으며 떨고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이상한 만남이긴 했지만

이런 상황은 예상 못했는데.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그가 낯설면서도,

 

.......

 

낯선 게 당연하지 오늘 처음 봤는데.

내가 기다리던 그리움이 이런 거였나?

 

 

 

 

 


손 들어

 

“......!”

 

내게 총구를 겨누며 다가오는 사람을 피해

뒷걸음질 치려던 순간



느닷없이 나타난 그가 상황을 정리하곤

날 쳐다보며 말했다.

 

가요

 

“.......”


 

같이

 

황급히 손을 내미는 남자.

별 수 없이 다시 그의 손을 잡자 옅은 미소를 보였다.

 

 

 

밖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총알이 사방에 튀었고

바닥에 쓰러진 사람도 여럿 보였다.

 

가장 지옥인 건 끝날 기미가 없는

이 빌어먹을 음악이었지만.


 


빗발치는 총알을 피해 테이블 뒤로 숨은 우리는

숨을 고르며 서로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여기 가만히 있어요

 

어디 가게요?”

 

끝내야죠

 

설명 안 해줘요?”

 

알잖아요

 

“.......”

 

너무 쉽잖아

 

“.......”

 

보란 듯이 손에 쥔 총을 눈앞에서 흔드는 남자

 

당신 구하고 있잖아 내가

 

“.......”

 

확실히 유령 아니죠?”

 

지금 장난,”

 

내가 밤하늘 갖게 해줄게요

 

?”

 

밤하늘, 그 쪽 줄게

 

그게 무슨,”

 

잠시만

 

시원찮은 대답을 남긴 채 또 어디론가 사라진 남자.

여러 차례 들리는 총소리가 불안해

살짝 고갤 들어 밖을 내다보자

 

...!”

 

그의 실력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 - -

 


 

“.......”

 

그는 확인사살도 거침이 없었다.

 

 

나를 구하는 오랜 그리움

혹은

나를 망치는 낡은 소망

 

 

그는 뭐였을까.

 

 

 

 

 

 

나와요

 

“.......”

 

어느새 상처 난 얼굴로 나타난 남자.

꾸물거리는 내가 답답했던지

날 일으켜 세우곤 이곳저곳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디 다쳤어요?”

 

“...아니요

 

무서워요?”

 

“.......”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참아요

 

저기,”

 

“.......”

 

얼굴...”

 

?”

 

얼굴에,”

 

. 얼굴에

 

상처... 났는데...”

 

머뭇거리며 그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러자 그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진작 그래주지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높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세기였다.

주변을 둘러봤더니

깨진 유리창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저게 왜,”

 

뛰어요!!”

 

그리고 총알 또한 비처럼 들이쳤다.


 



그는 내 손을 잡고 뛰는 것도 모자라

품에 안은 채 몸을 숨겼다.

 

!!!!!”

 

괜찮아요. 괜찮아

 

하나도 안 괜찮잖아요!!!!!”

 

괜찮아질 거예요

 

저기요,”

 

뛰어,

 



 

 

그렇게 숨었다가 뛰고, 뛰다가 숨길 몇 차례.

결국 안까지 들어온 기계를 직접 부수고 난 뒤에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

 

“.......”

 

기계까지 동원해 우릴 죽이려는 이유가 뭘까.

아니, 애초에 총이 웬 말이야.

미치겠네 진짜

 

죽을 때 죽더라도 이유는 알아야 되지 않아요?”

 

죽긴 누가 죽어요

 

우리요

 

누가 죽는대요?”

 

지금 상황이 딱,”

 

그럴 일 없다니까

 

그가 태연한 얼굴로 소방전 호스를 몸에 묶으며 답했다.

 

밤하늘 가질 준비나 해요

 

“.......”

 

금방이니까

 

, 뭔데요. 뭐하는데

 

대신 무서울 수 있으니까 꽉 잡고

 

?”

 

얼른

 


몸에 호스를 감은 채 깨진 유리창 난간에 세우는 남자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간신히 서자

그가 살짝 숨을 뱉으며 말했다.



 사랑해요

 

??”

 

그러니까 그 쪽도,”

 

“.......”

 

사랑해줘요

 

그 말은 이럴 때 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아서

 

거봐요. 우리 죽죠?”

 

“.......”

 

죽나봐. 그쵸

 

내가 죽게 놔둘 것 같아요?”

 

“.......”

 

“...꽉 잡아요

 

 


 


 

 




*







 

 



어땠어요, 내 선물

 

무슨 선물?

 

, 하늘.

 

그게 아주,

 

.......

 

기가 막혔습니다

 

 

근데 나는 그게 더 좋던데

 

어떤 거요?

 

사랑해요, 이거

 

...

 

사랑해줘요, 이것도

 

그래서 대답은?

 

나야 뭐,

 

.......

 

...사랑해줄게요.

 

정말이죠?

 

 

무르기 없습니다

 

저 그런 거 무르는 사람 아니거든요

 

.......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니까.

 

잊지 말아요. 내가 그 쪽 구해준 거

 

알았어요.

 

마음 변할 때마다 떠올려요.

 

어유 알았다니까요?


 

.......

 

...근데요

 

 

우리 좀 웃기지 않아요?

 

뭐가요

 

아까까진 막 총 쏘고 그랬는데,

 

.......

 

지금은 버스타고 있잖아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무슨 일 있었어요?

 

.......

 

난 그 쪽 만나서 커피 마신 기억 밖에 없는데.

 

.......


 

.......

 

그렇다고 쳐요 그럼

 

하하.

 

 

 

 

 

 

버스에서 내려 거리 이곳저곳을 걸었다.

그와 함께라면 칠흑 같은 어둠도 무섭지 않았다.

그는 나를 구해준 오랜 그리움이 맞았다.

 

기다리던 나의 구원자.

 

그는 나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맞잡은 손에 입을 맞추다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가

다시 얼굴을 굳혔다.

 

마냥 그가 좋았다.

그래서 더욱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말없이 따랐다.

 

그가 말했다.


이제 가봐야 될 것 같아요.”

 

그러자 귓가에 울리던 음악이 끊겼다.

 

?”

 

“.......”

 

갑자기?”

 

너무 늦었어요. 오래 됐고

 

무슨 소리예요

 

금방 또 봐요 우리

 

저기요,”

 

하나만 약속합시다

 

“.......”

 

잊지 말아요.”

 

“.......”


 

오늘, 지금, 우리

 

일렁이는 눈으로 쳐다보던 것도 잠시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맞췄다.

 


그는 따듯했고 부드러웠다.

눈물이 날 정도로.

 

사랑해요

 

 

 

 

 

 

.

.

.

 

 

 

 

 

 

저쪽 보호자 분 어디 가셨어요?”

 

잠깐 밖에 나가셨나 봐요

 

아까부터 계속 벨소리 울리지 않았어요?

환자 분 건가?”

 

확인해보겠습니다

 

아 일단 새로 들어온 환자부터 좀 보고

 

 

 

 

끊겼던 음악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소음도 함께였다.

 

“.......”

 

익숙한 느낌에 눈을 찡긋거리자

어둠이 걷히고 빛이 들었다.




 

낯선 천장

낯선 소음

 

첫 느낌은 그랬다.

하지만 이내, 손에 닿은 익숙한 온기에

나도 모를 미소를 지었다.

 

“...뭘 잘 했다고 웃어

 

익숙한 목소리까지.

 

웃음이 나와?”

 

“.......”


 어디 하는 데까지 해봐.

수면제 몇 백 알을 먹어도, 손목 몇 백번을 그어도

나는 너 살려. 죽게 안 놔둬

 

“.......”

 

평생 너 구할 거야 내가. 잊지마

 

“.......”

 

“.......”

 

안 잊어...”

 

“.......”

 

안 잊을 거야

 

“.......”

 

고마워. 나 구해줘서

 

고갤 돌려 그를 쳐다봤다.

신기루도, 유령도, 뱀파이어도 아닌 내 남자를.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내 손만 붙들고 있는

나의 구원자를.

 

 

 

사랑해.

 

 

 

 

12월 2주 이 블로그 인기글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