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난 별유의 페이지

RACC; 아브라카다브라 다 이뤄져라 (1/2)

작성일 작성자 별유





RACC 60-63기 방


회장선배

참, 어제 동방에 박카스 갖다놨음

다들 중간에 들러서 한병 씩 마시길


♡빈이♡형♡

핫식스는


회장선배

그건 니가 사 마셔


♡빈이♡형♡

사줘

사달라고


회장선배

ㅡㅡ


지원선배

우왕 선배님 감사합니다!!!


우식선배

역시 회장님...bb


도경수

감사합니다 선배님


회장선배

시험잘봐 애두라> <


♡빈이♡형♡

핫!!!!!!!!!!!!

식!!!!!!!!!

스!!!!!!!!!!!!!

윤두도 그거 마신다고


회장선배

그니까 둘이 사먹으라고!!!!!!!


♡빈이♡형♡

이러기냐 치사하게


술정

선배님 감사합니다!!!!!!


회장선배

근데 애들아 너네 다 어딨음?

다들 학교 맞아?


♡빈이♡형♡

ㅡㅡ





빈이 형의 카톡을 끝으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손에 들고 있는 페이퍼가 많아서

짐을 하나라도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아, 가방도 무겁고 손도 무겁고...

시험은 시험인가 보네.





[기말 끝나면 여름방학 실화냐? 힘내라 힘!!!!]

-천하대학교 48대 총학생회 ‘천하무적’-



총학이 걸어놓은 현수막을 쓱 훑으며 신관 건물로 들어섰다.

기말 끝나면 방학, 그리고 2학기...


원래 기말고사는 체감 상 더 늦게 와야 정상인데

이번 학기는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갔는지.

나이 먹어서 그런가?


“선배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 안녕”


맞는가 보다.

방금 여자신입생 무리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던 날 지나쳤는데,

여전히 눈에 띄게 밝고 쾌활했다.


그럴 만하지.

1학년 1학기는 누구나 그렇지.


신입생들은 시험기간에도 외모에 신경 쓸 정도니까.


심지어 쟤들은 백팩은커녕 

여전히 작디작은 핸드백을 매고 다녔다.

저 안엔 뭘 넣을 수 있을까.

필통은 들어갈까?

부피를 줄이려면 형광펜은 빼야 되겠지?


내 백팩 안엔 전공책이 4권이나 들어있는데.


하드커버로 되어 있어서 냄비받침하기 딱 좋지만

너무 비싸서 망설여지는,

버릴 땐 부피가 너무 커서 문제

중고로 넘기자니 필기를 많이 해놔서 문제인

그 책.


“아 무거워”


푹 한숨을 쉬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평소라면 북적거렸을 복도와 엘리베이터가 조용한 걸 보니 

다들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종총...”



<국문과 종강총회>

6월 16일 오후 6시 강당

재학생 전원 참석 必



<광고홍보학과 종강총회 및 파티>

6월 19일 오후 7시

정문 앞 천하호프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엘리베이터 사방에 붙은 대자보.

온통 종강총회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영화과 종강총회 & 파티>

-종강총회

일시: 6월 19일 6 p.m

장소: 미디어센터 대극장


-종강파티

일시: 6월 19일 7 p.m

장소: 후문 앞 천상천하 유아닭존


시험 못 봤다고 혼자 울지마thㅔ요

같이 울어드릴게요

(ㅠㅠ)





띵-



다른 과 애들은 종총 잘 안 간다던데

우리는 하나라도 빠지면 티가 많이 나서,


“가위 바위 보!!!!!”

“악!!!!!!!!!”

“예!!!!!!!!!!!!!”


응?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들리는 이 친숙한 목소리는,


“빨리 갔다 와 새끼야~”


“아 귀찮아 새끼야~”


“우빈이 형?”


우빈이 형과 두준 형의 목소리.

반가운 형들 소리를 따라 동방을 향해 뛰었다.


“간 김에 과자도 사오고”


“그러지 말고 치맥이나 하러 가자니까?”


“시험기간에 무슨 치맥이야”



벌컥-



“아 깜짝아,”


“엉?”


“형!!!!!”


“어 경슈야~”


동방 문을 열자 책상에 마주앉아 있는 형들이 보였다.

잔뜩 쌓여있는 전공책과 핫식스 캔들은 덤으로.


“안녕하세요”


“어 왔어?”


“웬 일이야? 아, 박카스 마시러?”


“네”


“냉장고 안에 있어! 너 다 마셔”


“ㅇㅇ이가 가만 안 둘 걸”


“아, 그럼 세 병만 마셔”


“넵”


사실 세 병도 많은 거였다.


사람들이 박카스를 피로회복제 정도로 생각하는데,

원랜 각성제 성격이 더 강했다.

잠깐의 맑아짐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생체리듬은 왕창 깨지고 있다는 것.


자동차로 말하면 

휘발유랑 엔진오일은 점점 바닥나는데 

자꾸 엑셀만 밟아버리는 것과 같달까.


고로 박카스는 피로회복제라기 보다

피로유예제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라고 설명해드리고 싶었지만

괜히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입을 꾹 다물고 냉장고 앞에 섰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헐...”




어마어마한 박카스 양에 놀랐다.

회장선배는 이걸 다 어떻게 채운 걸까


“이게 다,”


“우리 못난이가 참 손이 커. 너무 커”


“저걸 혼자 가방으로 날랐대.”


“넌 뭐했냐?”


“나한텐 그냥 동방 간다고 밖에 안 했어.

박카스 얘기는 하나도 없었고”


“참... 알 수 없는 애야”


“이거 다 마시면,”


“응?”


“불면증 걸릴 텐데...”


“어차피 자기 일 아니라 이거지”


“네?”


“못난이는 박카스 안 마시거든.

걘 커피만 마셔. 6잔 정도?”


“아 그것도 문젠데”



“너가 옆에서 좀 말리지 그랬냐”


“내 말을 듣겠냐?”


“그래도 네 말은 좀 듣지 않나?”


“커피 안 마시면 졸려 죽겠다고 나 괴롭혀”


“아.......”


“그래서 그냥 마시라고 했어”


“음. 현명한 판단이군”


등 뒤에서 이어지는 형들의 대화를 듣다가

슬쩍 박카스 한 병을 꺼냈다.

그리곤 소파에 앉아 뚜껑을 땄다.


“많이 가져가도 될 거 같아.

저렇게 많은데 누가 다 마시겠어”


“우식 선배랑 국주 선배가 시험 때마다 박카스 드세요”


“그런가?”


“맞다. 우식이 박카스 좋아하지?”


“걔가 그래서 공부를 잘 하나?”


“넌 핫식스 네 캔이나 마시잖아”


“근데”


“근데 왜 공부 못해?”


“.......”


“왜 그렇게 잘 자?”


“.......”



“어떻게 하면 핫식스 네 캔 마시고 12시간 자?”


“그만 해라”


“풉”


“나 이번에 시험 졸라 잘 봐서 B+ 만들 거임”


“A+ 아니고?”


“그건 안 돼”


“벌써 포기한 거야?”


“중간고사를 너무 족쳤어”


빈이 형이 의지를 불태우며

옆에 있던 핫식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 빨리 더 사오라고 핫식스!!!”


“박카스로 때우면 안 돼?”


“꺼져”


“너는 진짜 짜증나는 게 뭔지 알아?”


“뭐”


“가위바위보 왜 이렇게 잘 해?”


“푸흐”


“못하는 게 뭐야. 어? 뭐냐고”


“글쎄”


형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나는

박카스를 원샷 때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슈야 가게?”


“네”


“어디서 공부해 너는?

할 데 없으면 일로 와. 같이 하자”


“전 집에서 공부해요”


“그래? 집에서 공부 돼?”


“네”


“신기하다. 난 집 가면 무조건 노는데”


“넌 집 안 가도 무조건 놀잖아”


“아이 씨, 새끼야 사오면 되잖아 사오면.

그만 좀 딴지 걸어라잉?”


“뛰어갔다 와”


“개새끼”


우빈이 형이 욕을 읊조리며 내 옆에 섰다.


“가자 경수야”


“같이 나가시게요?”


“응. 핫식스 사러”


“아 네”


“잘 가 도갱”


“열공하세요 형”


“오냐~”


동방을 나선 우리.

복도를 지나 다시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빈이 형이 내 어깨에 팔을 기대며 말했다.


“공부 많이 했어?”


“그럭저럭요?”


“방학 때 뭐할 거야”


“음... 영화아카데미 단기프로그램 신청해보려고요.”


“촬영?”


“네”


“재밌겠다. 얼마나 하는데?”


“6주요”


“그거 하면 방학 다 가겠네”



“유익하길 바라야죠”



띵-



“유익할 거야. 재미도 있고”


엘리베이터에 오르고 나서도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형은 뭐할 건데요?”


“여행”


“여행... 아, 배낭여행이요?”


“어. 애들이랑”


“세 분이 가는 거죠?”


“응. 숙원사업이었는데 이제야 가네”


“어디어디 가는데요? 계획 다 짜셨어요?”


“아니. 우리 망했어”


“네?”


“즉흥여행 될 것 같아”


“즉흥여행이요?”


“윤두랑 못난이 헤어졌을 땐

아예 생각도 안 하고 있었거든. 여행에 대해서”


“.......”


“당연히 계획도 안 짰지.

헤어진 애들 데리고 어딜 가”


“.......”


“근데 다시 만나게 됐잖아? 방학은 코앞이고.”



“그럼 잘 준비해서 겨울방학 때 가면 되잖아요”


“안 돼”


“왜요?”


“그 때 또 헤어질 수도 있잖아”


“아...”



띵-



빈이 형은 천재임이 틀림없었다.

앞날을 내다보는 저 센스


“지금이 딱 적절한 타이밍이야”


“흠”


“계획이야 뭐, 시험 끝나고 며칠 밤새우면

대충이라도 짤 수 있겠지”


형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말했다.


“너도 같이 가면 좋은데”


“저요?”


“응. 아, 넌 네 친구들이랑 가야 더 재밌겠구나”


그리고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사탕 하나를 건넸다.


“아까 총학한테 받은 거”



“감사합니다”


“열공해 그럼!”


“네. 형도요”


“잘 가~”


긴 팔을 보기 좋게 몇 번 흔들곤 반대편으로 사라진 형.

그 모습을 보다가 나도 반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배낭여행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설레네

난 해외여행이라고 해봤자

그 옛날 일본 한 번 다녀온 게 단데.


가고 싶다, 나도


돈은 얼마가 필요하지?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되나?

얼마나 모았지?


아카데미 프로그램 신청비 빼놓고 나서

410만 원 정도 됐으니까...


“그걸로 되나?”


그 돈이면 배낭여행 할 수 있나?

얼마나 할 수 있지?


“.......”


머릴 쥐어뜯으며 도서관으로 향했다.

참고서적 빌릴 생각이었는데

왠지 여행 책을 고르고 있을 것만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은 뭘까.


스페인 남부가 그렇게 멋있다던데,

아니야 이왕이면 미국 할리우드에 가보는 게 낫지.

추운 나라는 어떨까?

러시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피란?


“어이 도갱”


“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부딪히겠다 그러다”





눈앞에 있는 턱에 부딪칠뻔한 다리를

간신히 내려놓고 옆을 돌아봤다.

벤치엔 우식 선배와 지원 선배가 앉아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 도서관 가?”


“네”


“우리도 도서관에 있었는데.

잘 됐다, 같이 공부하자”


“아니요. 저는 그냥 책만 빌리려고요”


“무슨 책”


“<영화 이론>이요”


“그거? 아까 수정이가 빌려가던데?”


“아...”


하여튼 도움이 안 돼요 정수정


“스벅에 있을 거랬어. 

꼭 필요한 거면 가서 얘기해 봐”


“네”



“수정이 얼굴 많이 안 좋던데”


“왜요?”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나 봐.

쉬엄쉬엄 하라니까 2학년의 고통은 아무도 모른다던데?”


“푸흐...”


“걔 3학년 되면 병나는 거 아니야?”


“근데 2학년 되니까 느낌이 좀 다른 것 같긴 해요.

1학년 때처럼 마냥 놀기도 그렇고,

취준 하자니 이른 것도 같고”


지원 선배의 말에 고갤 끄덕였다.

놀고는 싶은데 놀아도 되나 싶고

각 잡고 공부하자니 청춘이 아깝고.



“이제 2학년인데 뭐.

그 고민은 졸업하고 나서도 하게 될 걸”


“진짜요?”


“응. 서준 형이 그랬어”



“와... 진짜 싫다”


“그럼 지금 뭘 해야 돼요?”


“응?”


“지금이요. 뭘 해야 잘 하는 거예요?”


평소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만약 아니라면 뭘 해야 하는지

뭘 해야 잘 하는 건지.


정답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꼭 답을 찾고 싶었다.


특히 2학년 1학기 여름방학을 앞둔

지금의 상황에선 더욱 더.


“일단 기말을 잘 봐야지”


“그리고요?”


“방학을 잘 보내면 되지”


“어떻게요?”



“그 계획은 네가 짜야지”


“.......”


“뭐든 할 거 아니야.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신나게 놀든”


“선배는 뭐할 건데요?”


“난 일할 것 같아.

배급사 마케팅 쪽 인턴으로”



“웬 마케팅?”


“그냥. 무슨 일 하는지 배워나 보게.

홍보 쪽도 재미있을 거 같고”



“선배랑 사무직은 안 어울리는데요”



“일단 해보고”


씨익 웃는 우식 선배를 보고 있자니 왠지 부러웠다.

선배는 꼼꼼하고 친화력도 좋아서

어디서 뭘 하든 잘 해낼 것 같았다.

 

“선배는요?”


“나? 나는 내일로 여행 갔다가 토익 공부나 하려고”


“오- 누구랑 가게”


“고등학교 친구들이랑요.

근데 맛집 찾기가 엄청 힘들더라고요”


“블로그 다 믿으면 안 돼. 알지”


“네. 그래서 힘들어요”


기차여행. 그것도 재밌겠다.

아 나도 토익 해야 되는데...


“너는?”


“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나는, 나도 계획한 게 있긴 한데


“..글쎄요”


“아직 계획 없어?”


“그냥...”


“어떻게 하면 재밌게 놀 수 있을까, 이런 계획”


“여행... 같은 거?”


“아 여행 가게? 어디로?”


“그건 아직...”


“와, 이번 방학 땐 다들 여행 가는 구나? 좋겠다”


“선배도 가요. 요즘 제주도가 그렇게 예쁘다던데”



“그럴까”


“.......”


“가서 드론 촬영이나 해볼까 보다”



“맞다. 선배 드론있었죠 참?

잘 됐네!! 위에서 찍으면 진짜 이쁘겠다”


그러게요.

파란 바다를 위에서 보면 얼마나 예쁠까요.


“후...”


“근데 일단 시험을 잘 봐야 마음이 편해.

공부나 열심히 하자”


“결론은 항상 공부야”


하하 웃는 선배들을 보며 나도 살짝 미소 지었다.


“경수 너는 그럼 집으로 갈 거야?”


“네”


“그래. 조심히 가! 아, 이건 선물”


“뭔데요?”


“레모나”



노란색 비타민을 손에 쥐어주는 지원 선배


“선배 것도 여기있습니당”


“땡큐”


“감사합니다 선배님”



“아니야. 공부 열심히 해!!”


“네. 선배님들도 열공하세요”



“어~ 잘 가!!”


“네”


선배들이 도서관에 들어간 후에도

난 한참을 자리에 서있었다.

여행 서적을 빌릴까 말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


결국엔 그냥 돌아섰지만.





카톡-





정술정

야야야야야야


도경수


정술정

어디임?


도경수

학교


정술정

스벅 컴컴


도경수

ㅡㅡ 왜


정술정

물어볼 거 있어


도경수

ㅅㄹ


정술정

ㅃㄹ


도경수

아 그럼 니가 와야지

왜 내가 가


정술정

커피 사줄게 빨리 와


도경수

영화 이론 책이나 내놔


정술정

ㅇㅋ








“으유...”


가방을 고쳐 메고 걸음을 옮겼다.

스벅은 학교 후문에 있었다.


특히 그곳은 시험기간만 되면 학생들로 북적거렸는데

그 수가 도서관에 있는 것보다 많아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다들 한 자리씩 차지하고 공부하는 바람에

카페 주인과 다른 손님들의 표정은 어두운 반면,

학생들은 무척 편해보였다.


백색소음


언젠가 정수정이 백색소음의 중요성에 대해

열변을 토한 적이 있었다.

조교님이 과사에서 떠드는 정수정을 보고 시끄럽다 했을 때.


그날 정수정은 조교님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가

본인의 소음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가 백색소음이라고.

(비록 조교님은 흑색소음이라고 놀렸지만)


아무튼 ‘소음 그 자체’가 

카페에서 또 다른 백색소음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지가 소음인데 또 무슨 소음을 듣겠다고.


“총학에서 사탕 나눠드립니다~

기말 준비 잘 하세요!”


터덜터덜 걷는 내 앞에 나타나

뜬금없이 사탕 꾸러미를 내미는 총학 소속의 누군가.


“에?”


“복지사업 일환입니다~

이거 드시고 힘내서 공부하세요!”


“아, 네”


단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빈이 형이 준 걸로도 모자라서 꾸러미씩이나...




.

.

.




띠링- 띠링-





카페는 입구부터 북적거렸다.

음악 소리만큼 대화 소리도 커서 더 시끄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 ㅇㅇ선배가 눈에 들어왔다.


앞자리에 책이 펼쳐져 있는 걸 봐선

정수정 자리인 것 같은데... 어디 갔지?


“선배”


“어?”


선배는 두 눈을 비비며 날 간신히 올려다봤다.


“어”


“좀 쉬세요. 피곤해 보여요”


“나도 그러고 싶다”


“앉아.” 말하며 옆 의자에 있던 짐을 치워주는 선배


“뭐 마실래?”


“괜찮아요”


“수정이 방금 화장실 갔어”


“네”


“아... 졸려 죽겠네 진짜...”


“참, 박카스 잘 마셨습니다”


“어? 동방 갔다 왔어?”


“네”


“많이들 마셨던?”


“음... 제가 처음이었어요”


“그래?”


“두준 형이랑 빈이 형은 안 드시는 것 같던데...”


“걔네 만났어?”


“네. 동방에서 공부하시던데요?”


“아...”


선배가 커피를 들이켜곤 말했다.


“알아서 먹겠지 다들”


“엄청 많던데, 다 선배가 사신 거예요?”


“응”


“왜요?”


“좋아서”


"......."


좋아서.

참 선배다운 답이었다.


“선배”


“왜”


“선배는 2학년 때 뭐했어요?”


“나? 2학년 때?”


“네”


“놀았는데?”


“그냥요? 아무 계획 없이?”


“어. 애들이랑 영상 찍고 놀았지.

지금이랑 별반 다를 거 없었어”


“그래도 공모전에서 상 많이 받았잖아요”


“공모전에 낼 영상 찍으면서 놀았어”


“원래 그럴 생각이었어요?”


“아니. 그냥 하고 싶어서 한 건데?”


“.......”


“재밌어서”


재밌어서.

참 간단한데 어려운 말.


“공부가 제일 재미없어”


“.......”


“프랑스어 죽이고 싶다”


“.......”


“엉셩떼 십탱”


“네?”


“Enchantée”


“그게 뭔데요?”


“반갑습니다”


“아.......”


“프랑스 영화 자막 없이 보고 싶어서 신청했는데 망했어”


“차라리 철학과 사회 하지...”


“뭐야. 윤두랑 짰니? 걔도 그 말 하던데”


“그 교수님은 시험 범위도 잘 찍어줘서

오히려 공부하기 쉬워요”


“.......”


“.......”


“에효”


선배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죄 없는 프랑스어 책을 노려봤다.


“2학년 때만 해도 성적에 목매고 그러지 않았는데”


“근데 3학년 되니까 달라져요?”


“어. 4학년 땐 학점 뒤집을 기회가 없잖아.

학교에 며칠이나 나올지도 모르는데”


“.......”


“올해 잘 해놔야 평점이 조금이라도 오르지”


“지금 몇 점인데요?”


“3.8”


“그 정도면 잘 한 거 아니에요?”


“더 잘 해야 유지할 수 있거든”


“아”


“4점 초반대로 졸업하는 게 내 목표야”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알아 나도”


“네?”


“안다고”


안다고.

저 근거 없지만 왠지 멋있는 자신감이란


“근데 너”


“.......”


“왜 이렇게 얼굴이 안 좋아? 힘들어?”


“아, 아니요”


“평소에도 어두운데 지금은 더 어두워”


“제가요?”


“응”


맥이는 건가?


“시험 기간이라 그런가 봐요”


“너 공부 잘하잖아”


입을 삐죽거리며 고갤 젓자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선배


“무슨 고민 있어?”


“네”


“있어??”


“네”


“뭔데”


“인생이요”


“.......”


“야 도갱”


당황한 듯 보이는 선배 뒤로 나타난 정수정.


“커피 시킨다?”


꾀죄죄한 얼굴에 

밤샘 작업 할 때나 찾는 무채색 옷을 입은 모습이

영락없이 시험을 앞둔 대딩 임을 보여줬다.


“됐어”


“그럼 뭐. 블랙티?”


“.......”


“그 뭐더라? 블랙티 레모네이드 피지오?”


“...그래”


“오케이. 기다려”


“그건 또 뭐야”


지갑을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수정이를 보다가

다시 선배를 쳐다봤다.


“있어요. 탄산 들어간 거”


“서로 그런 것도 기억해주는 구나?”


“쟤만 기억해요. 하도 카페에 살아서”


“쿠폰도 많대”


“조교님 때문에”


“참, 둘은 어떻게 되는 거야? 수정이랑 조교님?”


“아무 것도 안 됐는데요?”


“아직도 같은 상태야?”


“네. 그래도 쟤는 조교님이 자기 노래 들어줬다고

좋아했어요, 엄청”


“그건 알아”


“그거 이후로 똑같아요.”


“흠...”


머릴 긁적이며 슬쩍 옆 테이블을 쳐다봤다.

한 커플이 앉아있었는데

남자는 노트북으로 PPT 작업을 하고 있었고

여자는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험기간이 맞긴 맞구나, 생각이 들었다.


“인생 고민은 뭔데”


“.......”


“안 어울리게”


“저랑 안 어울려요?”


“응. 넌 척척 잘 하는 애잖아 뭐든”


“그...렇긴 하죠. 그랬죠”


“고민도 없을 줄 알았더니”


“오늘 생겼어요”


“뭔데? 여자 문제야? 말해봐 빨리”


갑자기 눈이 초롱초롱해진 선배


“아닌데요”


“그럼, 남자 문제?”


“아니요”


“아 뭐야...”


“인생 문제라니까요?”


“사랑은 인생 아니니?”


“그런 거 말고요”


“그럼 뭐”


“미래요. 당장 방학부터”


“여름 방학?”


“네”


“그게 왜 고민인데”


“뭐할지가 고민이에요”


“뭔가 하고는 싶고?”


“네”


“뭐”


“그걸 모르겠어요”


“.......”


“뭔가를 하고는 싶은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그게 고민이에요”


말하고 나니 명확해졌다.

뭔가 해야 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 것.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모든 일이 의미 있어야 하는 건 아니야”


“.......”


“꼭 너의 하루하루를 

스펙에 투자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


“오늘은 동네 뒷산을 올라도 되고

다음날엔 지하철 여행을 떠나도 돼.”


“.......”


“거기서 또 다른 영감을 얻는 건

너의 능력여하에 달렸겠지만”


“불안하잖아요.”


“벌써? 이제 2학년 여름방학인데?”


“.......”


“4학년 되면 잠도 못 자겠다? 불안해서?”


“.......”


“블랙티 왔다~”


적막을 깬 수정이의 목소리.

내 앞에 블랙티를 내려놓곤 반대편에 앉았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


“인생이란-”


“인생이란?”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니 수정아”


“음.......”


고갤 갸웃거리더니 바로 입을 떼는 녀석


“복불복?”


“풉”


“인생은 복불복? 맞네”


“운이죠 운. 시험도 운이고”


“참, 너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며”


“어. 운명의 여신만 믿고 있다”


“2학년 때 잘 못해도 3학년 때 뒤집을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마”


“전 지금부터 잘 해야 간신히 뒤집을 것 같아서..”


“.......”



“요즘 자꾸 현타 와서 미치겠어요.

부담 갖기 싫은데 부담 되고”


“2학년 고통은 2학년만 안다?”


“어”


“참나...”


“2학년 너무 애매하지 않아요?

1학년도 아니고 3학년도 아닌 게”


“3학년이 더 애매하거든?

2학년도 아니고 졸업반도 아닌 게?”


“그래도 3학년은 고학년 느낌 나잖아요.”


“그래서 더 애매하다고”


현타가 오는 건 나뿐 만이 아니었나보다.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정수정마저 이런 얘길 할 정도면


.......”


“.......”


“.......”


잠시 적막이 왔다.

셋이 같은 생각을 하는 건지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진 모르겠으나

잠깐의 침묵이 싫지는 않았다.


“아 머리 아파”


“나도”


“나도”



“갑자기 인생 얘기는 왜 꺼내가지고”


“정수정 넌 방학 때 뭐 할 거야?”


“나? 생각 안 해봤는데?”


“언제 생각하려고”


“시험 끝나고”


“그럼 너무 늦지 않냐?”


“몰라. 나한텐 시험이랑 학점이 더 중요해”


“.......”


“야 방학은 놀라고 있는 거야. 특히 여름방학은”


“내 말이”


“.......”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정수정을 보다

말없이 블랙티를 마셨다.

때론 단순한 게 장땡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 모르겠음 같이 여행 가든가”


“네?”

“에?”


“배낭여행. 같이 가자고”


“맞다, 선배님 여행 가시죠?”


“응”


“.......”



“우와 대박... 완전 재밌겠다아...”


“그치”


“어디 어디 가는데요?”


“아직 다 못 정했어. 시간이 없어서”


“비행기 표는 예매하셨고요?”


“아마도? 김우빈이 했을 걸? 아니다, 안 했을 수도 있어.

확인해 봐야겠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내드는 선배.

화면을 보니 카톡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한 달 여행이면... 일인 당 400은 있어야겠네. 그쵸”


“비행기 티켓 값 빼면?”


“우와...”


“400이요?”


“응. 더 있으면 더 좋고”


“저 딱 500 있는데. 그동안 알바비 모은 거”


“갈래?”


“그럴까요? 저 가도 돼요?”


“당근이지”


뭐야, 이렇게 쉽게?


“너 가게?”


“어차피 언젠간 가려고 했어. 그러려고 돈 모은 거고”


“진짜 간다고?”


“잘 됐다. 이왕이면 짝수가 좋잖아”


“아무래도 그렇죠?”


“응”


“야 정수정, 너 진짜 갈 거야?”


“아 몇 번을 묻는 거야. 간다고 간다고”


“...고민 안 해?”


“뭔 고민을 해. 원래 여행은 가야겠다 마음먹었을 때

딱 가야 되는 거야. 머뭇거리면 시간만 보낸다?”


“오- 뭐 쫌 아는데?”


“저희 부모님이 여행 매니아시거든요.

여행 갈 땐 망설이지 말고 딱 가라고 했어요”


“맞아 맞아”


“조교님은”


“조교님? 그러게”


“전략을 좀 바꿔보려고요”


어떻게?”


“빈자리를 통해서 내가 없을 때의 허전함과 

동시에 소중함을 느끼도록”


“오호-”


“한 달 정도면 충분하겠죠?”


“어. 충분해 충분해”


“.......”


“도갱 너도 별 일 없으면 가자!

우빈 선배랑 같이 가니까 좋을 거 아냐”


“.......”


“갑자기 더 진지해진 도갱”


“그러게요. 큭큭”


“꼭 우리랑 안 가도 돼. 

아니, 꼭 여행이란 걸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까 말했잖아.

너무 거창하고 진지할 필요 없다니까?

남들하고 비교하지도 말고”


아까 뭐라고 했는데요?”


“인생이란-”



“아 맞다 인생이란- 쩜쩜쩜-”


“.......”


“참, 카메라 장비 다 가져가실 거예요?”


“다는 아니고 몇 대만. 노트북 포함해서”


“편집도 하시게요?”


“응. 내가 하는 거 아니니까”


“헐 그럼 제가...”


“너랑 윤두. 근데 윤두한테 다 하라고 할게!”


“오예”


“흐흐. 아 근데 김우빈이 카톡 읽어놓고 답장을 안 하네?

갑자기 불안해지게”


“이제 곧 성수기라 티켓 많이 없을 텐데...”


“내 말이!!!”


“저기 선배님,”


“얘가 교통편 담당이라 다 맡겼거든.

아 애초에 그러는 게 아니었어!!!”


“헐...”


“선배님”


“그거 말고도 할 거 많은데!!!”


“선배”


“아 뭐, 왜”


선배가 잔뜩 인상을 쓰며 쳐다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저 영화아카데미 단기프로그램 신청하려고 하는데요”


“뭐?”


“6주 하거든요. 촬영 위주로”


“.......”


“.......”


“...그냥 그렇다고요”


그냥 그런 얘길 왜 했을까.

계획 없이 사는 놈 아니에요, 하는 자존심이었을까

아니면

제가 이 시점에 이걸 해도 될까요, 하는 질문이었을까


삶의 순간순간, 나름 무리 없이 

꽤 괜찮은 선택을 하고 있다 자부하던 내가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네?”


“확신이 없어?”


“.......”


“그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어?”


“...네”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좋냐 싫으냐야. 그걸로 따져봐“


“좋은지 싫은지도 모르겠으면요?”


“그럼 그냥 아, 내가 인생 노잼시기가 왔구나 하고 받아들여”


“.......”


“그 단기프로그램은 겨울 방학 때도 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진짜요?”


“몰라. 열겠지. 원래 그런 건 방학 때마다 하잖아”


“.......”



“나라면 여행 가겠다”


“어?”


“인생 노잼시기엔 일탈이지 무조건”


“.......”


“쉽게 생각해. 6주 동안 카메라 교육 받을지

4주 동안 카메라에 예쁜 풍경 담을지”


“.......”


“그리고 물론, 여행은 네가 마음만 먹으면 

겨울방학 때도 갈 수 있다?”


선배가 말을 끝내자마자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버럭 소릴 질렀다.

빈이 형이 아직 예매를 안 한 듯 했다.


 “아 참, 야 도갱”


“왜”


“나 시험 범위 좀 알려줘”


“...뭐?”


“까먹었어”




.......




뭐가 뭔지 모르겠다.







.

.

.










“다녀왔습니다-”


“오냐”


“뭐야?”


“나다”


“너가 여기 왜 있어?”


“밥 먹으러”


“니네 집 놔두고 왜 여기서,”


“엄마가 여기서 먹으래”


“이모 어디 가셨어?”


“응”


“어디?”


“몰라”


집에서 마주한 사촌동생.

옆 동에 사는 녀석은 막내 이모의 외아들이자

고3 수험생이었다.


“공부 안 하냐?”


“알아서 하니까 신경 끄셈”


소파에 누워서 티비만 보고 있는 놈이

알아서 하긴 뭘 한다고


“형이야 말로 공부 안 하냐?”


“뭐?”


“시험기간이잖아”


“어떻게 알았어?”


“꼬라지를 보니 딱 그런데?”


“나?”


“응. 얼굴 누렇게 떠가지고... 쯧쯧쯧”


“네가 나한테 할 소린 아니지 않냐?”


“글쎄?”


“.......”


아까부터 계속 싱글벙글 웃는 녀석.

뭐가 그리 즐거운지 모르겠네...


“야”


“왜”


“넌 뭐, 고민 없냐?”


“없는데”


“왜?”


“뭐가”


“왜 고민이 없어?”


“없으니까”


“.......”


“아, 하나 있긴 해”


“뭐”


“오늘 저녁 메뉴”


“야 이 씨...”


“흐흐흐흐흐”


병신같이 웃는 놈을 뒤로한 채 방으로 들어오자

녀석이 금세 뒤따라 들어와선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형”


“왜”


“대학생 되면 좋아?”


“뭔 소리야 갑자기”


“엄청 놀아? 막 놀아?”


“아니?”


“그럼? 공부해?”


“어”


“.......하... 좆같네”


“욕하지 마라”


“존나게 공부했는데 또 공부해야 돼... 아- 시발”


“욕하지 말라고”


“방학 때도 공부해? 대학생은 방학도 길잖아”


“공부하는 사람도 있고, 안 하는 사람도 있고”


“공부 안 하고 뭐하는데?”


“놀거나 봉사활동 하거나 일하거나... 등등”


“그거 세 개 다 하는 사람도 있어?”


“어”


“다행이다”


“대학 가서 놀 생각만 하냐?”


“어. 나 그걸로 버티는데?”


“.......”


“대학 가면 진짜, 최선을 다해서 놀 거야.

군대 가기 전까지 진짜 흥청망청 놀 거야”


“이모 기절하시겠네”


“상관없어. 19년 인생의 보상은 받아야 될 거 아냐”


“누가 들으면 19년 동안 엄청 고생만 한 줄 알겠다”


“고생했지!!!!!!!! 오로지 수능 보려고”


“.......”


“애기 때 가나다라 왜 배웠는지 알아? 수능 보려고”


“그게 무슨,”


“미적분은 왜 배웠는데. 평생 쓸 일 없는 거.

다 수능 보려고 배운 거야”


“.......”


“물리랑 화학도 마찬가지야. 수능 끝나면 다 황사지식 돼”


“.......”


“그러니까 스무 살 되면 놀아야지. 수고했으니까”


“근데,”


“엉”



“또 취준해야 되는 거 알지”


“.......”


“그 때는 지금보다 더 절박하게 공부하게 된다는 거”


“.......”


“그게 참 사람 피를 말리는 일이라더라...”


온갖 설렘을 가득 담고 있던 눈이

취준의 그림자에 가려졌다.


그리고 덩달아, 내 머리도 차갑게 식어갔다.


“뭘 놀아. 공부해야지.

방학이라고 다 놀면 언제 취업하냐”


나한테 하는 말.


“토익도 공부하고 단기프로그램도 수료해야지.

수료증 받으면 스펙 한 줄 생기니까.

할 수 있는 만큼 해놔야지”


“.......”


“청춘이 아깝긴. 

그거 아깝다고 놀다간 나중에 후회 해”


“형”


“뭘 해야 할지 고민할 게 아니라

그냥 닥치는 대로 하면 되는 거였어.

사실 할 거 산더미였는데...”


“형”


“어?”


“혼자 뭐해”


“아 미안”


고갤 저으며 가방에서 책을 꺼내던 순간,

모르고 건드린 노트북 마우스에

슬로베니아 피란을 담은 배경화면이 떡하니 켜졌다.





저기서 석양을 보면 참 아름답겠구나, 하고

혼자 설레하던 지난날 내 모습도 함께.



“후...”


“형 근데,”


“어”


“진짜 열심히 산다”


“어?”


“형 진짜 열심히 산다고”


“나, 내가?”


“응”


“.......”


“난 그렇게 못 살 것 같아.

취준... 언젠간 하겠지만 

수능처럼 맹목적으로 달려들고 싶진 않아”


“.......”


“19년의 끝이 수능인 것도 서러운데

대학생의 끝이 취준, 취업인 건 더 별론 거 같거든”


“.......”


“난 내가 노는 것도 의미있다 생각해.

인생을 배우는 과정이랄까?

아 너무 합리화가 심했나?”


“.......”


“아무튼 난 놀 거야!!!!!!!

수능만 끝나봐라 내가 진짜, 

세계 최고로 잘 놀 거야!!!!!!!!!!!”


전투적으로 소릴 지르며 방을 나서는 녀석.

그 뒷모습을 쳐다보다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회장 선배는 모든 일에 의미가 있어야 되는 건 아니라고 했고,

저 녀석은 모든 일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딱 봐도 다르게 생긴 두 문장은 사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선택 모두가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

그 선택이 곧 나라는 것.



사람들이 흔히 하는 충고,

‘네가 좋아하는 걸 해.’ ‘네가 원하는 걸 해.’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너 자신을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라는 것.


의미가 있든 없든, 결국엔 내 선택이니까.

내 선택이 곧 나니까.


그 의미도 내가 만들어 가면 그 뿐.



내 계획이 남들에 비해 허름해 보이고

나조차 그것에 확신이 서지 않더라도

그 또한 상관없는 일이었다.



혹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괜찮아. 인생을 배웠을 테니.






카톡- 카톡-





정술정

야 선배가 여행 갈 거면 지금 말하래!

비행기 티켓 예매한다고!!


정술정

빨리 빨리!!!!!!




“.......”




도경수







.

.

.






"너 이거 다 먹어"


"뭔데"


여전히 소파에 누워있는 녀석에게

낮에 받은 사탕을 안겨주었다.


“뭐야? 웬 사탕?”


“그냥 사탕 아니야”


“그럼” 


"응원, 위로, 공감... 뭐 그런 거"


“엥?”


“고마움”


“...뭐래”


“아 그냥 처먹어!!!!”


“씨...”







.

.

.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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