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난 별유의 페이지

RACC; 아브라카다브라 다 이뤄져라 (2/2)

작성일 작성자 별유






(목요일 오후)




“ㅇㅇㅇ 눈 떠라”


“으응...”


“ㅇㅇㅇ 젓가락 집어”


“응...”


“고개 들어라. 찌개에 얼굴 빠진다 너”


“.......”


교내 식당에 마주앉은 나와 빈이형, 그리고 회장 선배.

꾸벅꾸벅 조는 선배를 보던 빈이 형이

고갤 저으며 밥 한 숟갈을 떴다.


“밤새우면서까지 공부하는 대학생은 얘 밖에 없을 거다. 

그치 경수야”


“네...”


사실 밤새 공부하는 대학생은 많지만

형을 위해 없다고 했다. 


“.......”


“야!!!!!!”


“어어...?”


“아 밥 먹으라고!!!!!”


“아... 아... 졸려....”


“좀만 참으세요. 두준 형 금방 오신댔어요”


“도움 안 돼...”


“돼 돼 도움 돼”


“어, 안녕하세요-”


순간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두준 형.

다른 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회장선배의 얼굴 상태만 살피며 옆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대뜸 아이스커피를 건넸다.


“마셔 얼른”


“졸려...”


“어우 씨 속이 다 시원하네.

쫌만 늦게 왔으면 멱살 잡을 뻔 했다”


“커피부터 먹이라니까”


“빈속에 어떻게 그러냐고”


“괜찮아. 시험기간엔 밥보다 커피야 얘는”


“내가 몰라서 그러냐?

아 몰라. 네 담당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


“ㅇㅇ아 눈 떠, 눈”


두준 형이 볼에 커피를 대자 선배가 부르르 떨며 눈을 떴다.


“빨대 물어”


“웅?”


“들이켜 쭉”


“움”


아이처럼 형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선배.

음... 회장 선배는 이런 거 안 어울리는데...


“후...”


“뛰어왔냐?”


“어. 죽는 줄”


“뭘 뛰어와 또”


“얼음 녹을까봐”


“상전 나셨네 아주”


회장 선배가 빨대를 잘근잘근 씹자

형이 빨대 대신 얼음을 입 안에 넣어주며 말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으유, 야 이거 너 먹어. 쟤 안 먹을 거 같은데”


빈이 형이 선배의 식판을 눈짓으로 가리키자

두준 형이 고갤 끄덕이며 식판을 자기 쪽으로 옮겼다.


“어, 경수 안녕”


“네에...”


그리고 선배는 그 사이 두준 형 어깨에 머릴 기댔다.

다정한 원앙 한 쌍 같았다.


“경수야 시험 잘 봤어?”


“그냥 그랬어요. 어려운 건 없었던 것 같아요”


“잘 봤네. 너는? 김우빈?”


“어”


“어?”


“잘 봤다고”


“엉?”


“자알 봤다고”


“.......”


“뻥이야”


“어”


“...시봉새....”


피식 웃는 두준 형.

회장 선배를 한 번 쳐다보곤 다시 빈이 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따 동방 갈 거?”


“당근”


“너 시험 몇 개 남았다 그랬지?”


“두 개”


“월요일까지?”


“어”


“거지같네”


“넌 내일 끝나냐?”


“어. 금요일 2시 시험만 보면 끝”


“좋겠다 월요일 공강이라”


“어”


“헝... 존나 싫어....”


“나?”


“아니 시험... 으아아악!!!!!!!!!”

 

빈이 형이 머릴 헝클이며 식당이 떠나갈 듯 절규했다.

주변 사람들이 힐끔 쳐다보길래

나도 형을 힐끔 쳐다봤다. 남 보듯...


하지만 두준 형은 익숙하다는 듯

가방을 뒤적이며 무언갈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꺼낸 건 다름 아닌,


“야”


“뭐야”



핫식스 세 캔


“먹고 뒤지라고?”


“눈 부릅뜨고 공부하라고”


“아 시밤 더 싫어”


“풉”


“흐응....”


형이 몸을 들썩이자 회장선배가 옅은 소리를 내며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자 형이 선배의 머릴 쓰다듬으며 말했다.


“참 너 그거 다 했냐?


“뭐”


“종강총회 영상”


“거의 다 됐어”


“아니 편집 다 된 영상에 음악 입히는 게 그렇게 오래 걸려?”


“어”


“무슨 음악이요?”


“그게, 그런 게 있어 아무튼”


“그니까 내가 한다고 했잖아 등신아”


“등신아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라고”


“존나 간단하거든? 등신아? 맞지 도갱”


“...네...”


영상에 음악 넣는 거야 식은 죽 먹기라

왜 오래 걸리는 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빈이 형을 생각해 작게 대답했다.


“아 그런 게 있다고!!! 좀 기다려봐 좀”


“.......”


회장 선배의 눈치를 보더니

버럭 성질내는 빈이 형을 향해 작게 말하는 두준 형.


“너 혹시라도 거기다 이상한 짓 했으면 죽는다 진짜.

편집자 이름에 내 이름 올라가 있다 명심해라”


“알아”


“아 불안해”


“흐흐”


“...아주 불안해”


“기대해. 내일이면 개봉!!”


“야 편집본 안 보여줄 거야?”


“그걸 왜 보여줘”


“.......”


“내일 종총 때, 아 그거 몇 시지?”


“6시요”


“맞다 6시. 그때 보면 되지”


“.......”


“참, 종강파티 갈 거냐?”


“.......”


“나랑 경수는 갈 건데. 쟤도 간대”


날 보며 씨익 웃던 형이 선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그리고, 쟤 아까 머리카락 빠트렸었다. 찌개에”


“하아...”


빈이 형이 키득키득 웃으며 밥 한 숟갈 크게 뜨자

두준 형이 선배를 아예 품에 안고 토닥이며 말했다.


“ㅇㅇ아 나 저 새끼 때리고 싶은데 어떡할까”


“때려어...”


“때릴까?”


“으응...”



“ㅇㅇㅇ 저거 안 자네. 그치 경수야”


“네”


“자는 중이야”


“콧구멍 벌렁거리는 거 다 봤거든? 그치 경수야”


“확실히요”


“히히...”


히히 웃으며 두준 형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던 선배가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잠 다 깼어”


“자랑이다”


“학교는 어떻게 왔어? 시험은 어떻게 보고”


“좀비처럼 와서 좀비처럼 보고 좀비가 됐어”


“하나도 기억이 안 나”


“화장하는 것도 까먹어서 쌩얼로 왔어 저거”


“맞아. 나 선크림도 안 바른 거 같아”


“씻기는 했냐?”


“응. 아마도”


“안 씻어도 예뻐”


“헐”


“야이 씨,”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두준 형을 째려보는 빈이 형.

선배가 손하트를 만들자 볼을 쓰다듬어주기까지 한다.


“.......”


“지랄, 죽는다”


“헤헤”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새삼스럽게 유난은.

특히 도경수”


“맞아 도경수”


“맨날 봐도 신기한데요”


“조온나 신기하거든? 너네들?”


여러 번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도 신기하고

그 중간에 친구 사이 유지한 것도 신기하고

여전히 꿀 떨어지는 것도 신기하고


온통 신기한 거 천진데 당사자들만 모르는 건가


“흠...”


“근데 김우빈”


“왜”


“방금 생각난 건데”


“뭐”


“너 기차표 예매했어?”


“뭔 기차”


“.......”


“기차표 뭐”


“등신아 유로스타”


“유로스타가 뭐, 아...”


“아-?”


“아...”


“안 했냐?”


“그거, 런던에서 파리 가는 거?”


“.......”


“파리에서 런던 가는 건가?”


“.......”


“.......”


“.......”


“두두야”


“엉”


“저 새끼 때려 빨리”


“응”


“아 왜!!!!! 미안하다고!!!!!

그거 쫌 까먹을 수도 있지!!!!!”


“다다음주에 출국인데 뭔 개소리야!!!!!”


자리에서 일어난 두준 형을 피해

반대편으로 도망가는 빈이 형.


식판을 든 채 줄 서있는 학생들 사이로 요리조리 피하다

엘리베이터 근방에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에효... 글렀다 글렀어”


“제가 예매할까요?”


“아냐~ 하던 사람이 하던 게 나아”


“불안한데...”


“어떻게든 되겠지”


회장 선배가 눈을 문지르며

식판을 다시 자기 쪽으로 옮겼다.

그리곤 코를 찡긋거리며 찌개를 살펴봤다.


“진짜야?”


“뭐가요?”


“머리카락. 여기 빠졌었어?”


“네”


“이거... 부대찌갠가?”


“네”


“.......”


“.......”


“안 말리고 뭐했냐”


“왜요?”


“.......”


“굳이 왜...”


“.......”


“재밌었는데... 엇,”


조심스레 물 컵을 집어 드는 선배를 피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부턴 말릴게요”


“혼난다”


“혼나는 건 빈이 형이,”


“스읍-”


“죄송합니다”







*






(금요일 오후)



10분. 1학기 마지막 시험 시작 10분 전.


어느새 꽉 찬 강의실을 둘러보다

유일한 빈자리인 내 옆자리에 눈이 닿았다.

의자에 걸쳐둔 내 가방과 겉옷 덕에

주인 있는 자리 같았지만,

아 사실 주인이 있긴 했지만,

좀처럼 모습은 드러내지 않는 그런 주인...


“도갱!!!”


...이 드디어 등장했다.

30분 전에 오겠다던 정수정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얼굴로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지금 몇 시야? 언제 시작해?”


“10분 전”


“아 큰일났네. 끝에 한번 더 봐야되는데”


“지금 보면 되지”


“씨...”


책을 뒤적거리는 정수정.

한동안 보는 것 같더니 다시 덮으며 말했다.


“모르겠다 나도. 운에 맡길래”


“운이 있어야 맡기지”


“나 운 있거든? 특히 오늘?”


“뭔 소리야”


“대박인 게, 새똥이 알아서 피하더라니까?”


“새똥?”


“어. 집에서 나오는 순간 발 앞에 새똥이 딱 떨어진 거야.

이거 솔직히 복권당첨 확률 아니냐?”


“나 저번 주에 로또 5천원 당첨됐는데”


“...뒤질래?”


구미호같이 째려보는 정수정의 눈을 가까스로 피했다.

그 5천원으로 너 음료수 사준 거야 이 구미호야


“아무튼, 나 오늘 장난 아니다.

아는 문제만 나올 각이라고”


“그래라”


“느낌 오는 문제들 찝어줄까?”


“아니 괜찮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그럴 리가”


“씨...”


째려보는 정수정을 피해 다시 책을 들여다봤다.

5분 정도 밖에 남지 않자

강의실은 더더욱 긴장감에 휩싸였다.


“참, 우리 주말에 여행계획 짠다고 모이래”


“유로스타 예매했대?”


“아마도?”


“우빈이 형 월요일까지 시험 있다고 그랬는데”


“그래? 선배 빼고 모이는 건가?”


“그런가 보네”


천천히 고갤 끄덕이던 수정이가

불빛이 들어온 휴대폰을 확인하며 물었다.


“이따 종총 갈 거지?”


“어”


“나-도. 어?”


“왜”


“어??”



“뭐. 왜”


“어???????????”


“야,”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부들부들 떠는 정수정.

손에 쥔 휴대폰이 부서질 것 같아

어렵게 빼내려던 순간,


“안녕-”


조교님이 낮게 인사하며 강의실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왼쪽으로 맞춰서 앉읍시다. 

자리 없는 친구들은 여기 앞에

자리 만들어줄 테니까 이쪽으로 오고”



“.......”


“야 정수정, 왜 그러는데”


“.......”


“야”


정수정이 조교님을 빤히 쳐다볼 땐

주로 애정과 설렘이 담겨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강렬했던지 처음 보는 사람도

 조교님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확연히 달랐다.

한 번도 본적 없는 분노, 슬픔, 눈물...


눈물?


“수정아”


금방 울 것 같은 얼굴로 조교님에게 향하는 수정이.

책상 위로 던진 휴대폰을 살짝 보니


“...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진희

수정아 방금 들었는데 조교님 유학간대 프랑스로!!!

맞아? 진짜로? 너 알고 있었어????




정수정은 시험 준비 때문에 바쁜 조교님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쳐다만 볼 뿐이었다.


“어?”



“.......”


“왜 수정아”


“.......”


“정수정”


“.......”


“수정,”


“유학 가요?”


“어?”


“유학 가냐고요”


“...갑자기 왜,”


“맞아요?”


“.......”


조교님이 살짝 고갤 떨궜다 들며 답했다.



“...아니”


“.......”


“아니야”



“거짓말”


“1분 남았다, 시험”


“.......”


“앉아 빨리”


“.......”


“이 과목 A 받아야 된다며”


애써 미소짓는 조교님을 보며 생각했다.

정수정은 어쩌면, 저렇게 티 나게 감추는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고.


끝까지 어린 후배로만 대하는 그에게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을 지도.


“수정아”



“.......”


조교님을 뒤로한 채 수정이가 자리로 돌아왔다.

뛰쳐나갈 줄 알고 붙잡고 있던 녀석의 가방을 내려놓자

시험 직전의 긴장이 다시 돌았다.


1분. 1학기 마지막 시험 시작 1분 전.

우린 복잡한 얼굴로 책을 덮으며 마지막 준비를 했다.

이 빌어먹을 A는 우리에게 꼭 필요했으니까.



“.......”


“.......”


말없이 눈가를 훔치는 수정이를 쳐다보다 앞쪽으로 눈을 돌렸다.


“답안지부터 나갑니다”


뭐든지 잘하는 조교님에게 유학은 사실, 

아주 뜬금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해외취업이라 해도 바로 납득될 정도였으니.


“책 넣으세요.”


영화비평, 다큐멘터리제작에 사진전까지.

졸업 전부터 지금까지 조교님은 여러 일들로 바빴다고 했다.

영화연출보단 미술사학에 더 관심 있다고도 했었고.

여러모로 완벽한 사람으로 보였는데,


“시험 시간은 1시간 30분입니다.

다 푼 사람은 제출하고 나가도 좋아요”


정수정에게 하는 것 보니 철벽에 가까운 걸로.


“컨닝하면 무조건 F니까 유념하고.

이름도 빼먹지 말고 쓰세요”


“조교님”


“어 왜”


“이따 종강파티 오세요?”


“나?”


순간 조교님의 눈길이 수정이에게 닿았다. 그리곤,


“응. 가려고”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뭔 일이 나긴 나려나보다.





.

.

.





"야 나 짐 개많아

다 버리자 그냥



학사일정은 다음 주 월요일까지였지만 

학생들 대부분 오늘 시험이 끝난 듯했다.

학생들은 총학의 닦달에 못 이겨

방학 전날이면 사물함 짐을 빼곤 했는데,

그 안에는 전공책과 노트, 필기구, 운동화, 농구공,

썩은 우유, 썩은 김밥, 썩은 슬리퍼 등이 있었다.


“후...”


온갖 냄새로 가득한 사물함 복도를 지나 건물 뒤편으로 가니 

익숙한 곳이 나왔다.

공대건물 옆 잔디밭, 국주 선배와 대화를 나누던 곳.


그리고 정말 우연히,


“야 국영수!”


벤치에 앉아있던 국주 선배를 만났다.


“어, 선배님 안녕하세요”


“오랜만?”


“네”


“시험은. 끝났어?”


“네. 선배님은요?”


“나도. 몇 과목 안 되니까~”


“...그동안 많이 바쁘셨나봐요.

학교에서 많이 못 본 것 같은데”


“전에 땜빵한 거 마무리 작업하느라 그랬지.

밤낮으로 개고생했다니까?”


“어땠어요? 현장 일은?”



“말도 마라. 막일이야 막일”


“연출부도 그래요?”


“어!! 어딜 가나 막내는 다 똑같아”


“선배가 제일 막내였어요?”


“응. 연출부 막내이자 스태프 막내”


“아...”



“왜. 안 그렇게 보여?”


“아니요. 아니에요”


살짝 째려보는 선배의 눈길을 피했다.

그래 저 눈빛. 오랜만이군


“영화판도 이렇게 힘든데 드라마는 어떻겠어.

으으... 너도 이왕 할 거면 영화 해. 드라마 말고”


“네에...”


“그 체력 좋은 서준 오빠도 힘들어하는 거 보면 진짜,”


“박서준 선배님도 일 하신 거예요?”


“응. 다 그렇지 4학년들은.

아, 병재 오빠는 시나리오 작업 중이고”


“4학년은 완전 실전이네요?”


“엉?”


“.......”



“실전이지. 학교랑 현장은 많이 달라.”


“.......”


“욕도 많이 먹고. 또 욕먹고, 또 욕먹고”


“.......”


“그래도 많이 배우는 건 사실이야.

스태프 인맥도 쌓고 현장감도 쌓고~

겸사겸사 스트레스도 쌓고~”



“네에...”


입을 삐죽이던 선배.

순간 뭔가 생각난 듯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참, 국영수”


“네?”


“나 강준이 만났다?”


“서강준이요?”


“응. 어제, 우연히”


“.......”


“학교 앞 카페에서”


학교 꼬박 나온 건 난데 마주쳐도 꼭.


“미안하대”


“.......”


“그럴 필요 없다고 했어. 내가 원인이었으니까”


“.......”


“되게 할 말 있는 표정이었는데 괜찮다고 하고 그냥... 왔어.

너무 어색하더라고~ 어유”


살짝 미소짓는 선배를 빤히 바라봤다.


“아, 마지막엔 시험 잘 보라고 했구나? 맞다”


“.......”


“그냥. 그랬다고.”


그리고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너 강준이랑 연락해?”


“아니요”


“한번도 안 했어?”


“네”


“왜”


“그냥, 거기까지인 것 같아서요”


“.......”


“다시 좋아질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말하는 게 꼭 헤어진 연인 같다?”


“아닌데요.”


아닌데요, 라 뱉고 생각에 잠겼다.

그날 내가 마신 커피, 걔가 짓던 표정,

선배의 까진 구두가 떠올랐다.


“연락해봐”


“.......”


“오면 받고”


“.......”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거잖아 너네”


“아니에요 그냥, 서로 실망해서 그런 거예요”


“너한테?”


“제가 아주 심한 말을 했거든요”


“...뭐라고 했는데”


“욕보다 사나운 말이요”


그 순간엔 화가 나서 쏟아 부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싶었다.



얼굴만큼 대가리는 잘생기지 않아서

이해가 느릴 수도 있겠네.”

 

 

못 되 처먹은 양아치 새끼



요점은 이게 아닌데

이런 말만 남은 이유는 뭘까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무슨 말이요?”


“사나운 말”


“네”


“오-”


“아무튼 선배 때문에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어쭈구리-”


“진짜로요”


“알았어. 신경 안 쓸테니까 너도 나 신경쓰지마”


“.......”


“괜히 의리 지킨다고 네 편 내 편 나누고 그런 거 하지 말라고”


“안 해요”


“.......”


“.......”


“그래. 네가 알아서 하겠지”


씩 웃는 선배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내려놨다.

만약 강준이와 마주친다면

미안해, 보단 나은 말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 애들 소식 좀 알려줘 봐.

요즘 바빠서 업데이트가 안 됐어.

RACC 분위기 어때?”


“좋아요. 회장선배랑 두준이 형 다시 만나는 건 아시죠?”


“당연하지”


“이번 방학 때 형들이랑 회장선배랑

저랑 수정이랑 같이 배낭여행 가기로 했어요”


“너도?”


“네”


“재밌겠다. 어디 어디 가는데?”


“일단 영국이랑 프랑스는 가는 거 같은데...

나머지는 모르겠어요”


“아 나도 가고 싶다- 아아-”


“선배는 계획 없으세요? 여행?”


“난 계속 현장 나갈 걸? 

이번에 같이 일한 선배가 다음 영화 때도 불러주겠다고 해서”


“아...”


“야 여행도 다 때가 있는 거야.

지금 가야 맘껏 놀지. 미래 걱정 덜 하면서”


“.......”


“재밌게 놀다 와. 선물 꼭 사오고”


“선물이요? 어떤 걸로요?”


“몰라. 좋은 거”


“.......”



“에펠탑 작은 거 그거 뭐야, 열쇠고리?

그거 사오면 죽는다”


“네...”


제기랄


“또 다른 애들은?

아, 수정이랑 조교님은 어떻게 됐어?”


“...모르겠어요”


“몰라?”


“네”


확실한 건 아니니까 조용히 하는 게 낫겠지


“1학년들은”


“걔네들은 진짜 몰라요”


“야 후배들 안 챙겨?”



“전 제 몸뚱이 챙기기도 벅차서요”


“얼씨구”


아까보다 더 환한 미소를 지어보았다.

가벼워진 분위기 덕이었다.


“좀 있음 종총 하는데 가실 거죠?”


“아니 나 못가. 과사 가봐야 돼서”


“종강파티는요?”


“그건 봐서. 시간 되면”


“네에”


“어디라고 했지?”


“후문 앞에 치킨집이요”


“천상천하?”


“네”


“꼭”


“네?”


“통마늘통닭 먹어”


“.......”


“그게 제일 맛있어 그 집은”


“...네”


“너만 알려주는 거니까 고맙게 생각하고”


“.......”


통마늘통닭

선배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이제 가야겠다. 이따 볼 수 있음 보자”


“넵”


“혹시 몰라서 다시 말하는데,”


“.......”


“열쇠고리 안 된다”


“네”


“풉. 방학 잘 보내고~”


“네 선배님도요”


“간다”


쿨하게 퇴장하는 선배에게 꾸벅 인사하곤

대극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1학기 끝맺음을 위해







*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발랄하게 인사하는 1학년들에게 손짓하며

미디어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는 이미 영화과 학생들로 북적였고

내가 아는 얼굴들도 여럿 보였다.


“하늘아 시험 잘 봤어?”


“그럭저럭? 선배는요?”


“나도 그냥. 야 어쩜 우리는 겹치는 수업이 하나도 없냐”


“그러니까요. 2학기 땐 시간표 같이 짤까요?”


“그럴까?”


“누구 맘대로”


“내 맘대로”


“안 돼. 너 내 거야”


“치-”


“와... 뭐지? 이 꽁냥꽁냥?”


“우리 원래 이랬는데?”


“하핫”


“연애 안 하는 사람 서러워 살겠나...”


정답게 대화하는 선배들을 보니 문득 정수정이 떠올랐다.

지금 쯤 쪼르르 달려와서 재잘대야 정상인데.



툭-



“안 들어가고 뭐해”


“에?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마침 내 어깰 툭 치며 나타난 박서준 선배.

대답대신 미소를 보이는 선배를 따라 대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못 오실 줄 알았는데...”


“촬영 펑크났길래 왔어. 마지막 종총이기도 하고”


마지막이란 단어를 굳이 되묻지 않았다.

벌써 프로처럼 보이는 선배의 모습으로 설명은 충분했다.


“수정이는?”


“글쎄요”


“맨날 같이 있길래 친한 줄 알았는데”


“.......”


“싸웠어?”


“...선배님”


“엉?”


맨 뒷좌석까지 올라가 앉는 선배를 진지하게 불렀다.


“조교님 소식 아는 거 있으세요?”


“어”


“네?”


“...아 혹시 수정이도 안 거야?”


“.......”


“큰일났네”


“진짜 유학 가시는 거예요?”


“어”


“이렇게 갑자기요?”


“전부터 준비했었어. 갑자기 결정난 건 맞지만”


“연출 쪽으로요?”


“아니. 기호학 쪽으로”


“기호학이라면,”


“영화기호학”


이름만 들어도 생소한 학문이니까

프랑스까지 가서 배우는 거겠지.

대단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정수정에게 가혹하다 싶다.


“수정이는요?”


“어?”


“수정이는요.”


“수정이는,”


“엇, 형 오셨습니까앙”


“뭐야, 너 왜 거기서 나오냐?”


“다 이유가 있죠. 경슈 하이?”


“안녕하세요 형”


영사실과 연결된 쪽문에서 나온 빈이 형.

해맑게 인사를 건네곤 서준 선배 옆에 앉으며 말했다.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


“준열이 형”


“조교 형도 뒷담화거리가 있었나?”


“난 아닌데 얜 있을 듯”


“경수요?”


“아, 아닌데요?”


턱으로 날 가리키는 선배를 피해 몸을 돌렸다.


“경수 남 뒷담화 하는 애 아닌데”


“안 했어요!!!”


“뒷담화는 안 했어. 의리를 지켰지”


“엥?”


“.......”


“수정이가 뭐래”


“아무 말 안 했어요”


“괜찮아 보였어?”


“아니요”


“어떻게 알았는데”


“문자로요”


“문자?”


“동기가 알려줬어요”



“아... 최악이네”


“조교님은,”


어쩌면 수정이는 유학보다 이 부분이 더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언제 알려줄 생각이었대요?

그럴 생각은 있었대요? 어떻게요?

어떻게 알려주려고 했는데요?

직접 말하려고 했대요? 수정이한테?”


나와 서준 선배를 번갈아 쳐다보는 빈이 형.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는지

팔짱을 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게 몰고 가지 말지?”


“그냥 묻는 거예요. 진짜 계획이 있었는지”


“오늘이나 내일 말하려고 했겠지”


“.......”


“적어도 시험은 끝난 다음에”


“.......”


“저기, 갑자기 껴서 죄송한데요,”


“.......”


“.......”



“조교 형이 수정이한테 뭘 얘기하는데요?”



잠시 후 종강총회가 시작됩니다.

재학생 여러분들은 모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식 선배가 무대에 서서 마이크를 잡자

어슬렁거리던 학생들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형이 알아서 할 거야. 우린 빠져있자”


“.......”


“너도 모르는 척 하고”


“몰라요 저는 진짜.”


“됐네 그럼”


“알려주면 안 돼요? 네?”


“.......”


입술을 깨물며 돌아섰다.

그리곤 눈에 보이는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몇몇 교수님들과 학과장이 들어왔고,

어두웠던 조명이 밝아졌다.



“마이크 볼륨 좀 키워주세요.

2번 마이크도 같이요”


“화면 준비 됐습니다~”



지이잉-



회장선배

어디얌 왜 안 와



회장선배

빨리와!!!!



도경수

뒤에 있습니다



짧게 답장하곤 고갤 드는 순간

저 앞에 앉아있던 회장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앞으로 와 경수야”


“괜찮아요”


“혼자 그러고 있지 말고 오라구”


“진짜 괜찮,”


“수정아 여기!!!”


“.......”


순간, 말도 없이 문 앞에 나타난 정수정.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선배에게 쪼르르 가서 앉더니

날 돌아보곤 살짝 웃어 보였다.


뭐야 저거


“저거, 저...”


“도갱!!!”


“...웃...어?”


“도경수!!!!!”


“에?”


어이 없이 쳐다보다

선배의 세찬 외침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착석 부탁드립니다~”


“네에...”


그리곤 재빨리 정수정 옆으로 가 앉았다.


“경수야 김우빈 어디있는지 알아?”


“뒤에 계시던데요?”


“뒤에서 뭐하는데? 왜 다들 뒤에 있어?

서준 선배도 그렇고”


“아 불안해...”


“영사실에서 나오시던데...”


“그 새끼 분명 뭔 일 꾸미고 있어. 분명히”


“기대된다. 크흐흐...”


“하...”


“야”


“.......”


“야”


“왜왜왜”


“너가 지금, 여기, 뭐??”


“아 왜”


“왜? 왜냐고?”


“.......”


“.......”


“파리 내년에 간대.

학교는 이번 학기까지만 나오고”


“.......”


“유학 준비 하는 거 알고 있었어.

예상보다 빨라서 놀랐던 거지”


“알고 있었다고?”


“응”


알고 있었던 반응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넌 어떻게 할 건데”


“.......”


“이제 조교님 못 보잖아”


“학교에서만 못 보는 거지”


“집까지 쫓아다니게?”



지금부터 1학기 종강총회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전에 끝낼 거야”



먼저 학과장님의 개회사가 있겠습니다.”



정수정의 결연한 대답을 듣곤 입을 다물었다.

어떠한 관계든 끝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나까지 거들 필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왠지 모를 공허함이 밀려왔다.



“벌써 한 학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올해의 반이 지났단 얘기죠.

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을 어떻게 보냈냐는,

 온전히 여러분에게 달려 있을 겁니다.”



“모두의 상황이 다를 겁니다.

고민도 다르겠죠. 감정도 다를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이 자리에 왔다가

갑자기 번쩍, 정신이 드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이겁니다.

어디서 뭘 하든, 여러분이 꿈 꿔온 미래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

먼 미래가 아니라 내일 당장 이룰 수 있게 만드는 것.”



“꿈을 날짜와 함께 적어 놓으면

그것은 목표가 되고,

목표를 잘게 나누면 그것은 계획이 되며,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꿈은 실현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기억하며, 여러분 모두 후회하지 않을 

멋진 여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에 봅시다.”




.

.




개회사에 이어 복학생/편입생들과의 인사,

외부 대회 수상자 상장 수여식,

회계/결산 보고가 진행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학기 활동 내용을 담은 영상 상영이 있겠습니다



두준 형이 밤새워 준비한 영상이 공개됐다.


“후...”


“시작한다!”


“불안한데,”







암전과 동시에 켜진 대형 스크린.

그 큰 화면을 채운 것은 다름 아닌



“뭐야 저거”






학교 로고였다.


“이 음악 그거 아니야? 폭스 인트로?”



또 각종 엠블럼과 심벌들이 

20세기 폭스 인트로 음악과 함께 등장하자

학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씨발...”


옆에 앉은 두준 형은 욕을 하기 시작했다.


“큭큭큭큭 김우빈 미쳤다”


“하아...”


“선배가 편집한 거예요?”


“.......”


“응”


“뭐가 응이야. 나 아니야”


대답과 동시에 나오는 웬 댄스 비트.

갑자기 극장 전체가 현란한 조명으로 바뀌더니

스크린엔 신입생 OT, MT, 체육대회, 축제 등

각 행사 때 찍은 영상들과 인터뷰가

빨리감기 한 것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푸하하하하하!!!!!”


“형 이거 형 작품이에요? 대박!!!!”


“나 아니라고!!!!!!!”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흔들며 즐기는 학생들.

나와 두준 형만이 입술을 깨물며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신난다!!!!!”


“ㅇㅇ아, 야,”


“너도 춤 춰!!!!”


“내가 지금 춤, 하...”


회장 선배가 두준 형의 손을 붙잡고 방방 뛰자

형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해맑게 웃는 선배를 보니 벌써 마음이 풀린 모양이다.


“.......”


이 상황이 마음에 들 리 없는 학과장과

이 상황이 엄청 마음에 드는 황정민 교수님.


평소와 달리 박수만 치고 있는 정수정과

학생들의 모습을 휴대폰에 담고 있는 서준 선배

그리고,


벌써 추억이 돼버린 영상 속 우리 모습



-천하대 영화과에 진학한 이유


“최고니까”

“1등이라서”

“집이랑 가까워서”

“포스트 봉준호가 되고 싶어서 입니다!”



-대학 와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미팅이요!!!!”

“MT요!!!!!”

“방탕한 생활? 흐흐흐...”



-MT를 마친 소감?


“주량이 느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선배님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좋았습니다”

“또 가고 싶어요!!!!!!!!!!!!”



-신입생들을 보고 든 생각?


“어려서 좋겠다”

“지금 열심히 놀아!!!”

“RACC 들어와 애들아!!!!”



-천하대 영화과가 제일 잘하는 것은?


“영화”

“영화”

당연히 영화죠”

“노는 거. 크크큭”



-가장 듣기 싫은 강의?


“학과장님 죄송합니다...”

“학과장님 강의가 좀...”

“다. 전부 다”



-그냥 하고 싶은 말


“연기과랑 과팅하면 안 돼요?”

“선배님 밥 사주세요”

두준 선배랑 ㅇㅇ 선배 행쇼!!!!”

“근데 이거 나중에 다 공개되는 거 아니에요?”

(끄덕)

“아 망했다...”




머릴 쥐어뜯는 1학년의 인터뷰를 끝으로

음악도, 화면도 꺼졌다.


[편집 : 윤두준]


아, 엔딩 크레딧이 남았구나




“와!!!!!”

“대박!!!!!!!!!!!!”


“푸흐흐...”


“학과장이 선배 째려보는데요?”


“김우빈 이 개새...”



, 이상으로 종강총회를 마치겠습니다.

후문 앞 천상천하 유아닭존에서

종강파티가 있을 예정이니

모두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딨어 이 새끼. 어딨어!!!!!!!!!!”


“잘 봤습니다 선배님!!!”

“선배님 진짜 짱이에요!!!!”


“김우빈 나와!!!!!!!!!!!!”


“형 어떻게 된 거예요? 깜짝 놀랐네”


“와 진짜 대박. 와-”


“나와 이 새끼야!!!!!!!!!!!!”



“두준아 잘 봤다”


“윤두준 짱!!! 개짱!!!!!!”


“풉”


“야 김우빈!!!!!!!!!!!!!!”






“훗”





.

.

.





“여기 양념파닭이랑...”


“통마늘통닭이요”


“그거 맛있어?”


“네”


“그래? 그럼 양념파닭이랑 통마늘통닭 주세요.

술은 어떻게 할까?”


“소맥 가야지~”


“너 이 새끼,”


“야! 너 어디 있다 이제 와!”


“3000 하나 소주 하나 주세요.

500잔 하나 더 주시고요”


“네-”


바람을 가르며 나타난 빈이 형.

씽긋 윙크하곤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윤두한테 맞을까봐 피신 가있었지”


“피신 끝났으니까 맞으면 되겠네. 딱 대”


“어허, 스읍-”


“뭐 이 미친놈아”


“보니까 너도 신나서 방방 뛰더만.

다같이 즐거웠으면 됐지 뭘 이제와서,”


말보다 앞선 주먹을 힘껏 내밀다

회장 선배에게 제지당하는 두준 형.


“하지마 둘 다”


“언젠간 조진다 언젠간”


“언제든 받아주지”


“하지 말라고 했다”


“.......”


“.......”


으유, 으유...

혀를 차며 혼내는 회장 선배가 얄밉지도 않은지,

알바생이 건네는 맥주를 선배가 받아들자

두 형들 모두 손을 뻗어 도와주며 말했다.


“조심해”

“무거워”


“딱 놔”


“.......”

“.......”


“잔이나 대”


빈이 형이 준 500잔을 맥주로 가득 채우는 회장 선배.

그리곤 남은 맥주 3000잔에 소주 한 병을 다 붓곤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며 웃어 보였다.


“맛있겠다”


음. 오늘도 내 위는 남아나질 않겠군.


“서준 선배랑 병재 선배 어디 있어?”


“조교 형이랑 같이 온다고 먼저 먹고 있으래”


“조교님도 오신다고? 우와!”


밝은 얼굴로 정수정을 쳐다보는 회장 선배


“수정아!”


“.......”


“수정아?”


“네?”


“조교님 오신대! 알고 있었어?”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근데 너 표정이 왜 그러냐. 어디 아파?”


“아니요, 그냥...”


“수정아 어디 불편해? 얼굴도 하얘진 거 같고”


“.......”


“무슨 일 있어?”


“.......”


“.......”


“도갱 네가 말해봐. 무슨 일 있었어?”


“저, 제가요?”


“응”


고갤 푹 숙인 채 술잔만 만지작거리는 정수정을 두고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 일도,”



야 조교님 그만 두신대!!!”

 

진짜?? ???”

 

유학 간다 그랬나? 암튼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었대

 

대박

 

갑자기?”

 

아 조교님 진짜 좋았는데... 잘생기고 친절하고...”

 


...아무 일이 생겨버렸다.

뒤에서 크게 떠드는 1학년의 말소리를 듣고

모든 테이블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만 빼고



.......



잠자코 있던 두준 형은

1학년 테이블로 가 소식의 근원을 물었고

회장 선배는 정수정을 빤히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있던 하늘 선배와 지원 선배도,

문 앞에서 통화 중이던 우식 선배도,

저 멀리 앉아있는 1학년 남자 후배도

다 우릴 돌아봤다.


“진짜야?”


“네?”


“진짜냐고”


“.......”


“.......”


“네. 맞아요 진짜”


“.......”


“파리 국립대로 간대요.

아무나 못 들어가는 덴데 운이 좋았다고...”


“조교님 여기서 석사 준비한다고 하지 않았나?”


정수정이 대답 대신 소맥 잔을 비웠다.

금세 마시곤 다시 잔을 채우는 동안

우린 아무도, 차마 말리지 못했다.


“아까 말한 게 이거야?”


“...네”


“문자로?”


“.......”


“후...”


한숨을 내쉬는 우빈 형.

나도, 회장 선배도, 자리로 돌아온 두준 형도

말없이 술만 들이켰다.


“저 괜찮아요. 예상도 했던 일이라”


“표정은 전혀 안 괜찮아 보이는데”


“천년만년 조교님만 쫓아다닐 것도 아니었고.”


“그래도,”


“저는 그냥 저답게,”


“.......”


“끝까지 질척대려고요”


“응?”

“어?”


“해보는 데까지 해보는 거죠 뭐. 어차피 갈 사람”


생각지 못한 문장 반전에 급히 상황파악부터 하던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할 건데?”


“하던대로”



.......



“...푸흐”


“대단하다 정수정”


“잘 생각했어”


“미련 남기지 말고 할 수 있는 거 다 해버려.

쟁취해 수정아”


“넵”


“조교 형이 좀 불쌍해진 것 같지만...

난 그래도 정수정 편. 잘해봐”


“네엡”


“파이팅”


“히히”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멋있다 너?”


“당연하지”


“그래도 아까 우는 거 다 봤거든?”


“운 거 아니야”


“그럼”


“말 한 거야”


“.......”


“가지 말라고”



.

.



“한 학기 동안 열심히 학교 다니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월요일에 시험 남아있는 분들껜 죄송하지만

오늘 종강해버릴게요. 하하”


“내 얘기야 시밤”


“주말 내내 열공해라. 내가 준 핫식스 마시면서”


“꺼져”


“다들 계획한대로 여름 방학 잘 보내시고,

2학기 개총 때 뵙겠습니다.”


“우식이도 1학기 동안 수고했어!!!!”

“최우식! 선배님! 최우식! 선배님!”


“감사합니다~”


“2학기도 잘 부탁드립니다!!!”


“넵!!! 자, 건배할게요”


“예!!!!!!!”


“민족천하!!!”


“열정영화!!!!!”



.

.



여기저기 잔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내 기억도 서서히 공기 중으로 날아갔다.


언뜻 떠오르는 건,


“헤헤”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흔들며 소맥을 제조하던 회장선배와


“내가 진짜아!!! 외국인 여친 만들어 온다아아!!!!!”


반쯤 풀린 눈으로 두준 형 귀에 대고 소리 지르던 빈이 형,


“영어도 못 하는 게 무슨... 크흐흐흫”


혼자 큭큭거리며 웃던 두준 형, 그리고


“.......”


반 시체로 소파에 누워있던 내 모습 정도랄까.


정수정은,


.......


정수정?




카톡- 카톡-




여행자모임



정술정

저...

죄송한데...


정술정

저 여행 못 갈 것 같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회장선배

응?????


♡빈이♡형♡

뭔 소리야


두준두준 형

갑자기?


정술정

ㅠㅠㅠㅠ죄송해요


회장선배

무슨 일 생겼어???


♡빈이♡형♡

욕 먹어가며 예매 다 했는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두준두준 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술정

죄송해요 진짜 ㅠㅠㅠㅠㅠㅠ


회장선배

괜차나 그거야 취소하면 되지!!!!

그나저나 큰일 아니지? ㅠㅠㅠㅠ


정술정

큰일이에요 ㅠㅠㅠㅠ


두준두준 형

뭔데 무슨일인데


♡빈이♡형♡

큰일 아니기만 해봐


정술정


정술정

...ㅎ


♡빈이♡형♡

.......

죽을래?


두준두준 형

나도 형이랑 찍은 사진 있는데

.

아 없구나


회장선배

난 많은뎅


두준두준 형

외간 남자랑 사진찍는 거 그만 둬


회장선배

싫은뎅


♡빈이♡형♡

맞아

내간 남자들이랑만 찍으라고ㅡㅡ


두준두준 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회장선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빈이♡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회장선배

무슨 일인데 수정쓰


정술정

저희 만나 보기로 했숩니당


♡빈이♡형♡

?


두준두준 형

?


회장선배

!


정술정

방학 내내 단기속성 데이트하기로...♥


♡빈이♡형♡

뭐?


두준두준 형

대박


회장선배

진짜?!?!?!!?!!?


정술정



회장선배

어떻게 된 거야?!!!!?


♡빈이♡형♡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기억 하나도 안 나 ㅅㅂ


두준두준 형

축하해!!!!!! 잘 됐다 진짜!!


정술정

제가 만나자고 했어요.

몇 달이라도 만나보고 가라고...

만나면서도 영 아니면 깨끗이 포기하겠다고


회장선배

우와... 멋있다ㅠㅠㅠㅠ


♡빈이♡형♡

그랬더니 형이 알겠대?


정술정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해서

조교님이나 후회하지 말라고 했어요!


두준두준 형

대박 ㅋㅋㅋㅋㅋ 잘했다 정수정


회장선배

잘해써!!!!!!!!!!!!!!

수정아 네가 짱이야!!!!!!!!



정술정

제가 거의 반 강제로 만나보자 한 건데요 뭐...

그래도 감사합니다 > <


♡빈이♡형♡

큰일 인정

여행 안 가는 거 봐준다

속성 데이트 잘하도록


정술정



회장선배

반 강제든 뭐든 시작했다는 게 중요한 거야!!!

헝헝 내가 다 기쁘다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

이제 조교님 잡고 놔주지마


두준두준 형

묶어놔 아예


정술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넵







“(피식)”






.

.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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