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난 별유의 페이지

[NEW] 비상구에서 나누는 의미없는 이야기 by별유

작성일 작성자 별유





벌컥-



“.......”


“.......”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한 평짜리 비상구에

비스듬히 서있던 남자가 문 쪽으로 고갤 돌렸다.


“여기서 멍 때리지 말라고 했지”


“.......”


“너무 어둡잖아”


“.......”


“차라리 옥상이라도 가지.

바깥바람 쐬면서 생각 정리도 하고,”


“너 기다렸는데?”


“.......”


“너만.”


어둠 속에서도 유난히 빛나는 지훈의 눈.


“생각은 옛날에 정리 끝냈고”


“결론은?”


“짜증나”


피식, ㅇㅇ의 입꼬리가 들썩였다.


“그게 결론이야?”


“응. 열 받아 죽겠어”


“어떤 부분이 맘에 안 드는데?

나 승진한 거? 부산으로 발령난 거?”


“.......”


“...승규 씨랑 같이 가는 거?”


“알면서 묻는 이유는 뭐야”


“몰라서 묻는 거야”


“.......”


“.......”


말없이 ㅇㅇ에게 손을 뻗어 자신의 앞까지 끌고 오는 지훈


“승진은 별을 따다주고 싶을 만큼 축하할 일인데,”


“.......”


“부산은 지구에서 파버리고 싶고”


“.......”


“이승규 그 자식은,”


“.......”


“우주로 날려버리고 싶네. 되도록 빨리”


“회사를 탓해야지 승규 씨를 날리면 쓰나”


“.......”


“한낱 사원인데. 아, 좀 유능한 사원”


“.......”


“생긴 것도 반반하고... 성실하기도 하고

친절한데다 일도 잘하고”


지훈이 티 나게 얼굴을 찌푸리자

ㅇㅇ가 입술을 깨물며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귀여워”


“.......”


“승규 씨보다 자기가 훨씬 귀여워”


“장난할 기분 아니야”


“장난 아닌데”


“나 이런 거에 안 넘어가 이제”


“아 왜. 내 유일한 능력인데”


“무슨 능력”


“주지훈 길들이기”


“하,”


ㅇㅇ은 지훈의 어이없어 하는 표정조차 귀여운 듯했다.


“그러니까 주지훈 씨,”


“.......”


“가만히 있는 승규 씨한테 화풀이하지 말고

나랑 떨어져 지내는 생각이나 좀 하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머리 아프니까 강조하지마”


“어떻게 할 건데”


“뭘”


“나 부산 가면.”


“.......”


“응?”


“따라 가든지”


“.......”


“붙잡아 두든지”


“.......”


“납치를 하든지.”


“풉”


“네가 허락해야 할 수 있겠지만”


“누가 납치를 허락받고 하냐?”


“넌 그래”


“흠...”


“후...”


지훈이 고갤 숙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곤 바지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며 말했다.


“너 때문에 끊고 너 때문에 다시 피우고...”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지만 불을 붙이진 않았다.

아니, 못했다.


불이 없었다. 담뱃갑 안에도, 주머니 속에도.


“물고만 있어. 피우면 죽어”


“불이나 주고 말하지”


“다 버렸어. 알잖아”


“너 없으면 나 분명히,”


“.......”


“담배 달고 살 걸?”


ㅇㅇ가 옅은 한숨을 뱉으며 지훈이 입에 문 담배를 뺏었다.


“협박이야?”


“동정이야”


“협박 같은데”


“...투정이야”


“뭔 투정을 목숨까지 걸고 부려”


“절박하니까”


지훈의 말에 살짝 미소 짓던 ㅇㅇ가 품에 안기며 말했다.


“해외도 아니고 기껏해야 부산인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진심이야?”


“.......”


“진심이냐고”


“따지지마. 속상한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


“그나마 부산으로 가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자. 응?”


“안 감사해”


“아 쫌,”


“...안 되겠어”


“뭐가”


“나도 부산으로 가야겠어”


“어?”


“발령 신청할래. 같이 가자”


“자기야”


“부장님한테 직접 부탁하면 도와줄 거야.

나한테 빚진 게 많아서”


“자기야”


“안 되면 박 이사한테 얘기해보자”


“.......”


“같이 가”


“과장급으로 승진해서 팀장으로 가는 발령인데

또 팀장을 발령시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안될 건 뭐야”


“자기 프로젝트팀은 신경 안 써?”


“나 말고도 할 사람 많아”


“.......”


“근데 넌 나한테 하나잖아”


“......”


“애초에 비교할 게 못 되지만 굳이 따지면,”


“.......”


“나한테 우선은 항상 너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ㅇㅇ가 지훈의 눈을 빤히 쳐다보다

흐트러진 넥타이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곤 옷매무새를 정리해주며 입술을 달싹였다.


“주말마다 서울 올라올게. 빠르면 금요일 저녁”


“.......”


“매일 아침 통화하고 점심엔 카톡, 저녁엔 영상통화.”


“.......”


“가끔 엽서도 쓸게. 아날로그 감성으로”


“장난 같아?”


“아니”


“.......”


“진심 같아. 그래서 좋아”


ㅇㅇ가 까치발을 들어 지훈의 입에 입술을 맞댔다.


“사랑해”


“.......”


“매 순간”


.......


숨 막히는 정적의 순간, 지훈은 참을 수 없었는지

ㅇㅇ의 입속을 거칠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벽에 기대 서있던 지훈은 ㅇㅇ을 반대편 벽으로 밀어붙이며

양손으로 ㅇㅇ의 볼을 부여잡았고,

ㅇㅇ은 지훈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하아...”


하지만 그것도 잠시,

ㅇㅇ은 다시 몸을 돌려 지훈을 벽으로 밀었다.

가슴으로 파고드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다

제대로 일으켜 가만히 두 눈을 응시했다.


“대답해”


“.......”


“대답,”


오로지 ㅇㅇ의 입술에 돌진하려고만 하는 지훈.

어깨를 강하게 밀며 다시 채근하자,


“하라고”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응”


그제야 눈의 힘을 빼곤 나직하게 답했다.


“사랑해”


“.......”


“사랑해 ㅇㅇ아”


“또”


“또?”


“응”


“...사랑해”


“그거 말고”


“진심으로 사랑해”


“아니,”


“너 사랑하다 죽는 게 최종 목표야”


“풉. 뭐야 그건 또”


“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널 사랑해”


“자기야”


“온 우주가 지랄 발광을 해도 너만 사랑할 거야”


“부산 어떡할 거냐고”


“...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야?”


“.......”


“해야지. 자기는 우주가 지랄 발광을 해도 나만 사랑할 거니까”


“.......”


“당연히 내 말 들어야지”


“나도 부산 가면,”


“프로면 프로답게 일처리 합시다?

전도유망한 차기 이사 주지훈 팀장님?”


“너 없으면 소용없다니까”


“스-읍”


“.......”


“프로젝트 끝나면 다시 복귀할 거니까

내 자리 잘 닦고 있으라고. 응?”


“1년짜리잖아”


“1년 되게 짧아”


“안 짧아”


“짧아”


“안 짧아. 하나도”


“아 오늘따라 왜 이러실까-”


ㅇㅇ가 지훈의 볼에 여러 번 입을 맞추며 말했다.


“자기 자꾸 이러면 나 맘 불편해서 일 하나도 못해”


“난 아까부터 못 했거든?”


“알아. 그래서 여기로 도망 나온 거잖아”


“알면 나 좀 이해해주라 ㅇㅇ아”


“이해해”


“너 거기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혼자 있어야 되잖아.

여자 혼자 사는 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알아?”


“지금도 혼자 사는데?”


“지금은 내가 옆집에 사니까,”


계속 말하려던 지훈이 입을 꾹 다문 채 째려보자

ㅇㅇ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알아 알아. 자기 맘 알아”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


“나 너 보내기 싫어”


“.......”


“하루아침에 장기가 떨어져 나간 기분이야.

맨날 같이 눈 뜨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잤는데.”


“.......”


“난 네가 있어야 되고, 너도 내가 있어야 되니까”


“주말마다 보는 걸론 부족해?”


“넌. 넌 괜찮아? 정말?”


“.......”


“내가 아침에 안 깨워줘도 돼?

팔베개 안 베도 돼?”


“.......”


“내가 해주는 밥 안 먹어도 되냐고.

맨날 머리도 말려주고 안마도 해주고 그랬는데”


“안마는 좀 아쉽다”


“...그것만?”


“아니. 아니지 그건”


“.......”


“.......”


“.......”


“그래도 자기야 일은 일이잖아.

이런 말 진짜 하기 싫은데,”


“공사 구분 하자고?”


“응”


“.......”


“나 열심히 씩씩하게 일하면서 지낼 테니까

자기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


“.......”


“응?”


“.......”


“팀장님?”


“...알았으니까 팀장님이라고 부르지마”


“푸흐”


“거리감 느껴져”


지훈이 ㅇㅇ을 끌어안곤 머릴 쓰다듬으며 말했다.


“언제 내려간다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이니까 주말엔 내려가야겠지?”


“집은”


“회사 근처 오피스텔 잡으려고.

아는 선배도 사는 덴데 깔끔하고 괜찮대서”


“아는 선배 누구?”


“있어. 대학 토론 동아리에서 만났던 선배”


“남자야?”


“여자야”


“친해?”


“조금?”


말없이 고갤 끄덕이는 지훈


“서울 집을 내놓을까 생각 중이야”


“다시 올 건데 뭐하러”


“그래도. 1년 동안 빈집으로 놔두긴 그렇잖아.

전세금도 필요하고”


“.......”


“으아, 머리 아프다 진짜”


“집 내놔”


“응?”


“집 내놓고 그걸로 오피스텔 전세금 해”


“그럴까?”


“다시 돌아오면 내 집으로 와. 합치자 살림”


“...어?”


“아니, 더 넓은 데로 이사 가자”


“.......”


“평생 살 집으로”


“.......”


“방은... 한 다섯 개면 되겠다”


“다섯 개?”


“애들 방도 필요할 거 아냐”


“애들??”


“셋은 될 테니”


“셋???”


“응”


“응????”


피식 웃는 지훈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던 ㅇㅇ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혹시 이거,”


“.......”


“결혼 얘기야?”


“어”


“어???”


“나 부산 못 따라가게 했으니까

너 돌아오면 무조건 붙어 있을 거야.”


“.......”


“법적으로”


“뭔 소리야!!!!”



쾅-



순간, 문 너머로 들린 소리에 

지훈과 ㅇㅇ가 동시에 고갤 돌렸다.

두 사람이 있는 공간은 너무 어둡고 음침해

웬만해선 찾지 않는 곳이었지만

문 밖은 비상구 계단으로 이어져있어 

종종 사람들이 이용하곤 했다.


“.......”


“.......”


입을 손으로 막은 채 동태만 살피던 ㅇㅇ가

문 앞으로 다가가 귀를 맞대자

지훈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ㅇㅇ의 옆에 따라 섰다.


한참 조용하다 싶던 찰나,


하아,”

...”


갑자기 웬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여기서 하자고?”

. 하아...”


한껏 상기된 두 남녀의 목소리 또한 울리기 시작했다.


“?”


“?”


“(뭐야?)”


“(몰라)”


여기 카메라 있잖아. CCTV”

 

없어. 얼마 전에 고장났어

 

확실해? 하아,”

 

. 하아, ...”


 그래도 불안한데...”

 

걱정하지마

 

하아...”


눈알을 굴리며 소리의 의미를 파악하던 ㅇㅇ가

퍽 인상을 찌푸리며 지훈을 쳐다봤다.

그 역시 알아챈 듯 입술을 깨물며 머릴 긁적이고 있었다.


“(미친 거 아니야?)”


“(피식)”


“(왜 웃어)”


씩 웃으며 ㅇㅇ과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는 지훈


“(뭐)”


“(우리도 미친 건가)”


“(어?)”


이내 ㅇㅇ의 허리를 부여잡곤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속삭였다.


“맛있겠다”


“무슨, 읍”


“쉿”


지훈은 ㅇㅇ의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놓길 반복하며

못다한 말을 전했다.


“혼인신고 먼저 할래?”


“싫어”


“왜”


“안 할 거야”


“뭘”


“결혼”


하아, 오빠 나 불안해...”

괜찮아 괜찮아


ㅇㅇ의 답을 듣곤 살짝 입술을 뗐던 지훈이

이번엔 입 안으로 파고들며 ㅇㅇ을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내가 싫은 거야 결혼이 싫은 거야”


“저번에 말했잖아”


“다시 말해봐”


“.......”


“.......”


“...이혼”


“.......”


“이혼이 싫어 난”


“안 할 거야 이혼”


“내 절친 부부도 했는데?”


“원래 자주 싸웠다며”


“브래드 피트랑 안젤리나 졸리도 했는데”


“...결혼한 것부터가 기적이야”


“우리 엄마랑 아빠는?”


“.......”


“엄마 아빠도 했는데. 이혼”


“.......”


“.......”


대답 없이 ㅇㅇ의 눈을 지그시 내려다보던 지훈.

큰손으로 두 눈을 가리더니 살짝 입 맞추며 말했다.



“너도, 네 마음도... 내 마음까지

평생 지킬게.”


“.......”


“지금처럼”


“.......”


“.......”


“치-”


ㅇㅇ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자

지훈 또한 씩 웃으며 손을 내려놓았다.


“반만 믿어줄게”


“짜다”


“인심 쓴 거야”


“쓰는 김에 더 쓰지”


“쉿”


흐응, 오빠

다리 좀 벌려봐


“(헐)”


“(대박)”


“(진짜야?)”


“(몰라)”


“(진짜 하는 거냐고!!)”


“(몰라 나도)”




♪♬♩ ♪♬♩




... 아 뭐야

하아


느닷없는 벨소리에 놀란 듯 들리는 두 남녀

이윽고,


부장님이다, 아 씨발

아 뭐야 오빠-”

 

잠깐만 잠깐만. 받아야 될 거 같아

?”

 

흠흠. 여보세요? 네 부장님!”

, 어이없어

 

저기, ? 아 지금, 저 잠깐 밖에...”



쾅-



! ,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고요, ..

제가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회사 안에 있습니다.

아니, 회사 근처에 있습니다!!”



쾅-



.......



“간 거야?”


“그런 거 같아”


“대박. 대단하다 둘 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야?”


“우리가 뭐”


지훈이 입을 삐죽대자 ㅇㅇ가 흘깃 째려보며 말했다.


“우린 대화를 나눈 거고 저들은,”


“몸의 대화를 나눴지”


“.......”



쪽-



“이건 몸의 대화 아니야?”


“아 몰라. 나 나갈래”


“어어, 아직 대화 안 끝났어”


“난 끝났어”


“나 아직 기분 되게 안 좋은데?

너 부산 가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엄청 받아서

막 화나고 슬프고 술 마시고 싶고 그런데?”


“.......”


“위로 안 해줄 거야?”


“풉. 뭐?”


“토닥거려줘야지 빨리”


“자기가 애니?”


“엉”


“.......”


“너한테 길들여져서 그런 거잖아”


“...그건 애완동물 아닌가?”


“애완동물 해 그럼”


ㅇㅇ의 손을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놓는 지훈



“뭐든 좋아”


“으이그”


이내 머릴 헝클이자 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다”


“좋아?”


“응”


“그럼 자기야”


“응”


“나 부탁 있어”


“뭔데”


“주말에 같이 부산 내려가면 안 돼?

짐 옮겨야 되는데 혼자 하기엔 좀,”



“당연히 갈 거야. 부탁 안 해도 돼”


“자기 출장 갔다가 금요일 저녁에 오지 않아?”


“응”


“피곤하잖아”


“그런 거랑 비교하지마. 말했잖아, 너가 일등이라고”


“오호-”


“오- 는 무슨.”


“대신 내가 운전할게!”


“됐어. 내가 해”


“아니야~”


“주말에도 너 서울 올라오지마. 내가 내려갈게”


“응?”


“괜히 피곤하게 왔다갔다하지 말라고.

내가 갈 테니까”


“자기도 피곤한 건 마찬가지거든요?”


“말 듣자 ㅇㅇ아”


“자기나 말 들어. 내가 주인이잖아”


“아 맞다”


“푸흐”


마주선 채 환히 미소 짓던 두 사람.

ㅇㅇ가 먼저 품에 안기자

지훈이 숨이 막힐 듯 꽉 안으며 말했다.


“주인님 지키는 게 내 역할이니까 내가 하게 해줘. 알았지?”


“으으 숨 막혀!”


“알았어 몰랐어”


“아 쫌!”


“알았어~ 몰랐어~?”


“알았어 알았어!!”


“옳지”


“씨...”


하하. 지훈이 얄미운 얼굴로 ㅇㅇ을 들여다보다

덥석 손을 잡으며 말했다.


“갑시다 주인님”


“네 팀장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팀장님이니까 팀장님이라고 부르죠”


“둘이 있을 땐 그러지 말자고 내가,”


“말씀 하셨었죠. 네네”


“.......”


“인상 펴시고요 팀장님”


“.......”


“좀 웃으세요”


“.......”


뚱한 얼굴로 서있는 지훈을 끌고 밖으로 나온 ㅇㅇ.


“어머, 여기 립스틱 묻었다”


그제야 지훈의 입술에 묻은 립스틱이 보였는지

손가락으로 벅벅 닦기 시작했다.


“큰일 날 뻔 했네”


“우리 주인님 입술도 만만치 않은데”


“나? 나 왜?”


“다 번져서 막,”


“.......”


“섹시해”


“.......”


“.......”


“...저 갑니다 팀장님”


“같이 가”


“따라오지 마세요”


“같이 가자 ㅇㅇ아”


“저리가요”


“주인니임~ 푸흐흐...



쾅-



쾅 소리와 함께 두꺼운 철문이 닫히자

비상구는 다시 어둠과 침묵으로 채워졌다.


단지, 바닥엔 ㅇㅇ가 지훈 몰래 부러트린

담배 한 개비만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

.

.



서로에게 비상구가 되어줄

주인님과 애완동물의 의미없는 이야기



.

.

.




+

비하인드




3년 전







화려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이 흘러넘치는 한 호텔 라운지 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입구 앞을 지나던 ㅇㅇ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살짝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곤,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옆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무시한 채

오직 한 곳만 보며 걷던 그녀는


“.......”


바에 앉아있는 남자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저기...”


“.......”


“저기요?”


“...일행 있습니다”


남자는 눈을 감고 담배를 입에 문 채 천천히 답했다.


“저기, 그,”


“.......”


“팀장님”


의외의 단어가 들리자 고갤 돌리며 서서히 눈을 뜨는 남자


“.......”


“여기서 뭐하세요?”


“.......”


“.......”


“ㅇㅇㅇ 씨야 말로 여기서 뭐합니까?”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


“저는,”


“남자친구랑 좋은 시간 보냈습니까?”


“네?”


“올라간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남자친구요?”


“만나는 사람 있는 줄도 모르고 엄청 질척댔었네요, 내가.

미리 말 좀 해주지”


“.......”


“이제 왜 날 거절했는지 알았으니까

더 이상 피곤해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귀찮게 안 할게요 앞으로”


“.......”


“.......”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알았다고요. 이유”


“알긴 뭘 알아요. 하나도 모르는구만”


여자가 남자 옆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저 남자친구 없거든요?”


“아까 남자랑 같이 엘리베이터 타는 거 봤습니다”


“걔 다다음달에 결혼해요 내 친구랑.

아, 둘 다 제 절친이거든요”


“절친?”


“급하게 식장은 잡아야 되는데,

예비신부가 출장 가 있는 바람에

제가 대신 같이 보러 와준 거예요.

신부랑 저랑 취향이 비슷해서요”


“.......”


“근데 망한 것 같아요. 대충 보고 나왔거든요”


“...왜요”


“팀장님이 째려봐서요”


“내가요?”


“아까 엘리베이터 문 닫힐 때, 막, 나 엄청 째려보고 서있었잖아요”


“.......”


“다 봤거든요?”


“그건,”


“알아요, 오해한 거. 그럴 만한 소지가 있었죠”


“.......”


“그렇다고 전화도 안 받아요?”


“...정신이 없어서”


“그렇겠네요. 일행도 있으실테니”


“.......”


“이런 데 같이 오는 여자면 그 분이야말로 여자친구 아닌가?”


“.......”


“우리가 안 되는 이유에

팀장님 여자친구도 포함되는 거겠네요.”


“그래서 아쉽습니까?”


“왜 묻는데요?”


“표정이 그래서”


“아쉬운 걸로 보여요?”


말없이 고갤 끄덕이던 남자가

씨익 웃으며 여자를 쳐다봤다.


“화난 거예요. 팀장님 어장에 갇힌 물고기로서”


“그런 거 없는데요”


“없긴.”


“.......”


"......."


“풉”


“...웃겨요 지금? 이 상황이?”


“흠흠. ㅇㅇㅇ 씨”


“왜요”


“나 여자친구 없습니다”


“그러시겠죠”


“혼자 앉아있던 거 보면 모르겠습니까?”


“팀장님이 직접 그랬거든요? 일행 있다고?”


“하도 같이 술 마시자고 들이대길래 거짓말 한 거예요”


“누가요?”


“몰라요. 모르는 사람들”


“.......”


“굳이 일행이 있다면,”


“.......”


“저기서 DJ 하는 애 정도?”


“저 분이요?”


“저 친구가 술 사준다고 해서 왔더니

술은커녕 저기서 저러고 있더라고요.

꽤 유명한 DJ거든요”


남자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여자를 보고 피식 웃더니

DJ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DJ도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됐죠?”


“.......”


“푸흐...”


“웃지말아요”


입을 삐죽이며 남자 앞에 놓여있던 술잔을 가로채는 여자.

남자가 손을 뻗어 말리기도 전에 벌컥벌컥 들이켜곤


“으으...”


입술을 깨물며 울상을 지었다.


“괜찮아요? 이거 도수 높은 건데”


“으... 맥주나 마시지 양주씩이나...”


“맥주로 시켜줄까요?”


“됐어요”


여자의 퉁명스러운 대답도 좋은지

마냥 미소만 짓던 남자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입을 열었다.


“ㅇㅇ 씨”


“네?”


“나랑 만나줘요.”


“.......”


“나 진짜, 진심으로 ㅇㅇ 씨 좋아해요”


“.......”


“되게 많이”


“또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


“.......”


“사내연애 하기 싫어서 그런 건데.”


“...그게 이유였어요? 우리가 안 되는 이유?”


“네”


“.......”


“제 주변 사내연애 커플들은 다 안 좋게 헤어졌거든요.

서로 쌍욕하면서”


“.......”


“안 좋은 소문 퍼트리고”


“난 안 그래요”


“너무 장담하니까 더 의심스러운데...”


“최선을 다할게요. 매 순간”


“.......”


“말도 잘 듣고”


“.......”


고민하는 여자의 얼굴을 조심스레 들여다보는 남자


“.......”


“.......”


“좋아요”


“나이스!!!!!!!!!”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늘을 향해 주먹을 치켜세우며 기쁨을 만끽했다.


“푸흐...”



“하하하하!!!!”


“그만 하고 앉아요”


“진짜 잘 할게요. 쌍욕할 일 안 만들어요 나”


“알았으니까 앉아봐요. 아직 말 다 안 끝났으니까”


“네?”


“빨리”


다시 긴장한 얼굴로 자리에 앉는 남자를 향해

여자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조건이 있어요”


“뭡니까”


“담배 끊기”


“담배요?”


“네. 끊어요 당장”


“.......”


“당장”


“...스무 살 때부터 피웠는데...”


“헐. 그럼 더더욱 끊어야겠네”


“...줄이면 안 됩니까?”


“안녕히 계세요 팀장님”


“아아, 아니에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여자를 급히 다시 앉힌 남자는



“끊겠습니다. 담배”


떨리는 눈을 하곤 간신히 입을 뗐다.


“끊을 수 있어요”


“좋아요 그럼,”


하지만 여자는 얄밉게도 

앞에 있던 남자의 라이터를 술잔에 풍덩 집어넣곤

씩 웃어보였다.




“이젠 필요 없으니까!”


“.......”


“.......”


“.......”


“.......”


“그거 헝가리 장인이 만든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라이턴데 몰랐죠”


“제 전 남친이 폐병으로 갔는데 모르셨죠”


“네?”


“.......”


“아, 네. 몰랐습니다. 미안해요”


“담배 끊어요. 좋게 말할 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출구로 향하는 여자

그리고 헐레벌떡 그 뒤를 쫓는 남자


“같이 갑시다”


“빨리 오세요”


“천천히 가요”


“술때문에 어지러워서 안 되겠어요”


“많이 어지러워요? 약 사줄까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



.

.



“...근데 ㅇㅇ 씨”


“네?”


“전 남친 얘기는... 거짓말이죠?”


“거짓말 같아요?”


“.......”


“.......”


“.......”



탕-

(쓰레기통에 담뱃갑 던지는 소리)




.

.

.





10월 2주 이 블로그 인기글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