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디테일한 기억이네요.


네.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그냥 조금... 먹먹한 정도?
그 때의 우리가 좀, 많이 불쌍한 정도..랄까.



-시간이 필요하시면 잠깐 쉬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럼 이어서 가겠습니다.


네.



-두 번째 생에서 다시 기억이 재생 됐을 때
큰 혼란을 겪진 않았나요?


겪었어요. 그래서 만나게 됐고요.



-네?


그 사람이요.





*





두 번째 생의 기억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시작 돼요.


“아!”


졸다가 유리창에 부딪히면서부터요.


“아 씨...”


“풉”


손으로 머릴 비비며 아파하고 있는데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어요.
설마 날 비웃는 건 아니겠지 하며
다시 자리를 고쳐 앉는 순간,



쿵-



“아!!!”


흔들리는 기차 때문에 다시 부딪히게 됐고,


“크흐흫”


또 웃음소리가 들렸어요.


뭔가 이상한 기분에 살짝 뒤를 돌아봤는데
틈이 너무 좁아서 그런지
아무 것도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창밖을 내다봤어요.
도착할 때가 됐는지
보이는 건 논과 밭뿐이었죠.


[잠시 후 백양사역에 도착하겠습니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백양사역에 도착합니다]


마침 안내 방송이 나오길래
신발 끈을 다시 묶었어요.
백양사에 올라야 했거든요.


점점 느려지는 기차를 느끼며
헝클어진 머리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


뒤에 앉아있던 사람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가방과 모자를 챙기며 내릴 준비를 하던


그 사람이었어요.


순간, 살짝 머리가 아팠어요.
갑자기 기억이 섬광처럼 되살아났다기보다는
그냥 보통의 두통 느낌?


“.......”


“.......”


멀뚱히 서있던 날 발견한 그는
해맑은 미소를 보이곤
나가는 문 쪽으로 향했어요.


그 미소를 보니 이 말이 선뜻 나오더라고요.


“...선생님”


기차가 멈추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고
저도 급히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후우-”


왠지 그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다시 한 번
 그를 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서둘러 길을 떠나려는
그의 뒤를 쫓았어요.


“저기...”


“.......”


“저, 저기...”


“저기요”


점점 멀어지는 그를 붙잡을 용기가 없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부르던 찰나,
갑자기 그가 뒤돌아
저에게 터벅터벅 걸어오며 말했어요.


“혹시 백양사... 가세요?”


그 때 고통이 찾아왔어요.
머리가 깨지는 것 같은 고통이.


“윽... 으으...”


“어? 괜찮으세요?”


“머리가...”


“머리 아파요? 어디가 어떻게요?”


“깨질... 으윽...”


머리가 너무 아픈 것과 동시에
새로운 기억들이 입력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하잖아요?


“정신 차려 봐요!! 괜찮아요? 저기요!!”


“하아...”


그리고 그의 지금 모습과
옛날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어요.


중절모를 쓴 선생님
앳된 얼굴의 청년



“...선생님”


“네?”


“선생님”


“선생님? 의사선생님?”


“........”


“의사 부를까요? 네?”


“하, 말도 안 돼”


“저, 저기요”


결국 그 짧은 순간에 제가 내린 결론은,


“꿈이야?”


내가 방금 기억해낸 모든 것은 다 꿈이다, 였어요.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됐거든요.
가끔 일면식도 없는 사람 꿈을 꾸기도 하잖아요.
그런 건 줄 알았던 거죠.


“꿈 아닌데요?”


“.......”



“꿈 아닌데...”


“우리 전에 만난 적 없죠”



“네?”


“나 모르죠?”


“...네. 오늘 처음 봤는데요?”


“하긴. 그 시대 때 살았을 리도 없고”


“그게 무슨...”


“.......”


“.......”


“백양사 가냐고 물었죠?”


“네...”


“거기 가세요?”


“네”


“가죠 그럼”


“네?”


“같이 가자고요”



“.......”


그렇게 우린 또 운명처럼 같은 길을 걷게 됐어요.


정말, 운명처럼.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네. 괜찮아졌어요”


“병원 안 가봐도 돼요?”


“네”


“또 아프면 어쩌려고요”


“.......”


“산 속이라 나오기도 힘들 텐데”


“약은 있겠죠. 아무리 절이라도”


“.......”


“.......”


“아, 저는 조승우라고 합니다.”
“인사가 늦었소. 조승우라 하오.”


기억이 재생될 때마다
작은 두통이 동반 됐어요.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


“이름이...”


“ㅇㅇㅇ이요”


“아.......”


“근데 정말 우리 본 적 없는 거죠?”


“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요?”



“봤다면 쉽게 잊지 못했겠죠?”


“왜요?”


“그냥요. 안 잊혀질 것 같아서”


“.......”


“나이가 어떻게 돼요?”


“열여덟 살이요.”


“어? 나돈데!”


“네?”


“나도 고2!! 우와 신기하다”


“진짜?”


“어. 나보다 어릴 줄 알았더니 동갑이었네.
반가워 친구!!”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을 살짝 잡았어요.
그리고 천천히 그의 얼굴을 봤죠.


기억 속 모습과 똑같았어요.
큰 눈에 속 쌍꺼풀까지.


“반가워”


“히히”


“그...”


“응?”


“너지?”


“어?


“나 비웃은 거”


“내가 언제, 아...”


“기차에서 나 비웃었잖아!!!”


“그건...”


“그건 뭐!!”


“네가 너무 잘 자서”


“거짓말 할래? 머리 박은 거 보고 웃었으면서”


“아니.. 네가 너무 정신없이 자길래
얼마나 피곤했으면 저럴까 싶어서..
걱정되는 마음? 이랄까?”


“웃으면서 내 걱정을 했다고?”


“어”


“.......”


“흐흐”


“웃지마라”



“...죄송합니다”


“쳇”


그는 순수한 청년이었어요.
초록을 배경으로 한 미소가
참 맑았던 기억이 나요.


예쁘고 착한 사람.


“대신 내가 아이스크림 사줄게!”


“그러든지”


“근데 있잖아”


“왜”


“박은 덴 안 아파?”


“야!!!!!”


“크큭큭”




우린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서로를 대했어요. 어색함이 없었죠.


신기했어요.
이 느낌은 뭘까.




“넌 어디서 왔어?”



“서울”


“어? 나돈데”


“알아”


“어떻게 알아?”


“같이 탔잖아.”


“너랑?”


“응. 계속 네 뒤에 서있었는데 몰랐어?”


“.......”


“기차표 살 때도 뒤에 있었고
탈 때도 그랬고, 좌석도 그랬고.”


“나 왜 몰랐지?”


“앞만 보니까 그렇지”


“그랬나?”


“기차에선 출발하자마자 졸고”


“음...”


“근데 백양사는 왜 가는 거야?”


“조용히 공부하러”


“어, 나도”


“진짜? 얼마나 있을 건데?”


“2주”


“난 한달”


“그럼 나도 한달”


“왜?”


“원래 한달 생각하고 있었어”


“그럼 난 2주”



“.......”


“히히”


그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히히 웃었어요.
귀여웠거든요. 다람쥐같이


“여기 공기 진짜 좋다. 그치”


“응. 서울에 비하면 뭐...”


“가을엔 또 엄청 예쁘다던데.”


“백양사가 가을 단풍으로 유명하지”


“어떻게 알아?”


“어렸을 때 이 근처에 살았었어”


“그렇구나..”


“가을엔 단풍으로 예쁘고
겨울엔 눈 덮여서 예쁘고”


“봄은?”



“봄엔 어디든 다 예뻐”


“푸흐...”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빨리 지나가서 문제지”
“봄은 어느새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날 흔드는 봄. 그게 당신이어서”


“.......”


“난 그래서 봄이 좋아.
느끼려고 해야 느낄 수 있거든.
봐봐라? 여름엔 덥지, 가을엔 낙엽 떨어지지,
겨울엔 눈 오지.
근데 봄은 아무 것도 없잖아.
다른 계절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데
봄은 안 그래. 노력해야 되는 계절이야”


“봄은 어느새 내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오... 뭐야? 문학소녀야?”


“이거 몰라?”


“응. 시야? 소설인가?”


“....바보”


“바보? 야 그거 모른다고 바보냐?”


 “.......”


“쳇. 안 그래도 국어가 제일 약한데”


“다른 과목은 잘하고?”


“어!!”


“수학?”


“아니”


“영어?”


“아니”


“역사?”


“아니”


“그럼 뭐”



“음악”


“.......”


“헤헤”


“그럼 너 노래 잘해?”


“조금?”


“오-”


“나 기타도 칠 줄 알아”


“진짜? 봐봐”


“기타가 있어야 보여주지”


“안 갖고 왔어?”


“그걸 왜 갖고 와”


“원래 이런 데 올 땐
기타 갖고 오는 거야 바보야!!”


“공부하러 왔다니까?”


“아 그래도!!!”


“참나..”


“그럼 기타 없이 노래 불러봐”


“싫어”


“왜”


“뭔 갑자기 노래야”


“잘한다며”


“아 몰라. 갈래”


“야!!”


“빨리 와”


“노래 불러달라고!!!”


“싫다고!!”


“아 같이 가!!!!”


“빨리 와. 빨리 걸어”


“네 걸음이 너무 빠르단 생각은 안 해??”


“아이 참.”


한참을 앞서가던 그가 멈춰서 서 뒤를 돌아봤어요.



“와, 빨리”


“응!!”



/




“.......”


“.......”



“.......”


“.......”



“.......”


“끝!!!!”


“어?”


“나 다 했다고!!”


“아,”


“넌 얼마나 했어.
야 빨리 해. 시간 얼마 안 남았다?”


“아 나 영어 못 하는데 단어시험이나 치고...”


“음악 시험을 칠 순 없잖아”


“치사하게”


“연필이나 깎아야겠다. 얼른 해!”


절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근데 그냥 모른 척 했죠.
싫지 않아서.



“.......”


“.......”


“.......”


“여기 계곡 있더라? 내일 거기나 갈래?”


“흠흠. 그래”


“아 참,”


“어? 뭐, 왜”


“이거 비밀인데”


“.......”


“나 라면 가져왔다?”


“뭐?”


“라면”


“야 절에서 라면 먹는 사람이 어딨어”


“그래서. 안 먹을 거야?”


“아니. 맛있게 먹을 거야”


“풉”


“히히”


“자 이제 채점”


“뭐? 아직 시간 안 됐잖아!!”


“됐거든? 빨리 내놔”


“다 못 썼는데?”


“틀리는 거지 뭐”


“와... 진짜 치사해”


“헤헤. 내 거 채점 빨간펜으로 해줘”


“알았어”


“동그라미도 신경 써서 해주고”


“알았다고”


“100점 쓸 때 이쁘게 써”


“아주 벌써 100점 나셨구만?”


“넌 벌써 3개 틀렸거든?”


“진짜? 아 씨”


“이거 틀린 개수대로 맞는 거 알지”




“뭔 소리야”


“아까 약속했잖아”


“나 그런 적 없는데?”


“없기는”


사실 그런 약속한 적 없었어요.
그냥 장난친 건데 받아준 거죠.
착해 빠져서는.


“와... 너 6대 맞아야 돼!!”


“넌 100점”


“아싸”


“진짜 때릴 건 아니지?”


“때릴 건데?”


“야”


“알았어. 그럼 한 대만 때릴게”


“.......”


“정신 차리라는 의미에서”



“쳇, 그래. 까짓 거 맞아준다“


“괜찮지?”



“네에-”



탁-



“흐읍”


“.......”


“.......”


“푸흡”


“.......”


“푸하하하하하!!!!!”


“하.......”


“많이 아파?”


“너무 아파”


“크흐흐흫... 재밌다”



/




“조승우!!!”


“왜!!!”


“이리 좀 와봐!!!”


“왜 또”


“무섭단 말야”


“야 이게 뭐가 무섭냐?”


“미끄러워서 빠지면 어떡해”


“여기 물 얕아. 괜찮아”


“그래도”



“참나...”


“빨리 빨리”



“안 잡아주면, 어쩔래?”


“.......”


“.......”


“그냥 가면 되지?”


“뭐? 야!”


“푸흐, 하여튼 참 잘 속아요”



“차,”


“나 먼저 간다~”


“거기 서라!!!!!”


“꺅!!!!!!!!”


“잡히면 죽었어”


“야야야 나 진짜 쫌 무섭다고오!!!”


“이야!!!!”


“엄마야!”


“푸하하”


“아 넘어질 뻔 했잖아!!!!”


“그래서 잡았잖아”


“씨”


“까불지마라”


“쳇”




시간이 지날수록
꿈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야 하는데
이상하게 점점 선명해졌어요.


지금에서야 그게 꿈이 아니란 걸 알았지
그 땐 정말 확신하고 있었거든요.


꿈일 거라고.
꿈이라면 금방 잊혀져야 한다고...



-그 사람에게 얘기해 보셨나요?


네. 며칠을 끙끙 앓다가 말했어요.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치네”



“너 괜찮아?”


“응? 왜?”


안 무서워?”


“어두워서?”


“응”


“괜찮아. 별 보러 가는 거라”


“기집애가 겁도 없어요”


“그러는 넌, 사내대장부씩이나 돼서 무섭냐?”


“누가 무섭대? 하나도 안 무섭구만”


“조심해.
원래 산 속에 귀신이 제일 많은 법이야”


“귀신은 무슨”


“산에는 기운이란 게 있잖아.
뭐랄까, 막 무당들도 접신하러 오고. 응?
한 맺힌 처녀귀신에,”



“이런 거?”


“.......”


“흐흐”


“짜증나”


“왜. 안 무섭다며”


“저리 가”


“안 무섭다며~”


“웃기고 있어 정말”


“크흐흐”


“빨리 오기나 해.
처녀귀신이 총각 좋아하는 거 알지?”



“.......”


“.......”


“ㅇㅇ아”


“.......”


“ㅇㅇ아 같이 가”


“워!!!!!!”



“으아!!!!!!!!!”


“푸하하하!!!!”


“.......”


“미안. 재밌어서”



“.......”


“야 삐졌어? 야!!!”


“부르지마라”


“으히히”


싱글벙글 웃으며 그의 뒤를 쫓았어요.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거든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발자국만 따라 걷는데,


“골나셨소?”
“골난 것 같은데”


다시 그 기억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어요.


“윽...”


머리가 또 아파오더라고요.


“아아...”


“왜, 왜 그래? 또 머리 아파?”


“응...”


“그래? 어떡하지?”


“휴.......”



“그냥 다시 돌아갈래? 더 아프면 어떡해”


“아니야. 이러다 말아”


“...너 진짜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닌 거 같아.”


“.......”


“자꾸 꿈이 생각 나”


“꿈?”


“응. 언제 꿨는지도 모르는 꿈이
갑자기 기억나기 시작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몰라”


“꿈을 꿨다는 얘기야?”


“그런가봐”


“.......”


“내가 꿈을 꿨는데, 그게 사실은,”


“.......”


“사실은...”


“뭔데. 말해봐”


“네가 나왔던 것 같아”


“나?”


“응”


“.......”


“.......”


“혹시...”


“.......”


“너 나 좋아하냐?”


“뭐어??”


“좋아하는 사람 꿈 꾸기도 하잖아”


“아, 아니거든?”


“흠...”


“너 만나기 전에 꾼 것 같다고”


“날 어떻게 알고 꿈을 꿔?”


“그러니까. 그게 이상해”


“.......”


“모르는 사람 꿈을 꾸기도 하나?”


“글쎄. 난 그런 적 없는데”


“.......”


“그래서. 꿈 내용이 뭔데?”


“....그게 더 이상하긴 해”


“이상한 내용이야? 막, 나 또라이로 나와?”


“아니?”


“그럼”


“.......”


“멋있게 나와?”


“...응”


“응?”


“응”


“진짜?”


“아 그렇다고”


“뭘로 나오는데. 백마 탄 기사?”


“기사는 아니고, 기자로”


“기자라...”


“그것도 일제강점기에”


“엥?”


“아 몰라! 이상해!!”



“넌 참 꿈도 특이하게 꾸는구나”


“널 보니까 생각나더라고.
생각이 나니까 머리도 아프고...”


“그래서 머리가 아픈 거였어?”


“응”


“내가 꿈에서 어떻게 했는데”


“.......”


“.......”


“날 지켜줬어”


“.......”


“좋아해주고, 안아주고.
화도 냈다가... 울기도 했다가... 그랬어”


“.......”


“나도 많이 좋아했었나봐.”


“.......”


“그 사람을”



“...나는?”


“응?”


“지금의 나는. 네 앞에 서있는 나”


“.......”


“난 안 좋아해?”


“.......”


“.......”


“좋아, 너”


“.......”


“너랑 같이 있어서 좋아”


“.......”


“꿈속에 나온 너보다,
지금 내 앞에 서있는 네가 더 좋아.”



쪽-




“.......!”


“.......!!!!”


“저, 저기...”


“으악!!!!!”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왜 먼저 뽀뽀를 했는지, 그리고
 왜 그런 괴상한 소리를 내며 도망갔는지...

이후로 우린 공부가 아닌 연애를 시작했어요.

 
그 때 제 머릿속엔 ‘이 남자는 운명이다.’
이 생각밖에 없었으니까요.
꿈에서 나온 남자를 실제로 만나다니...
이것보다 더한 로망이 어딨겠어요.



/



♪자전거 - 영화 ‘와니와 준하’ OST




“짜잔-”


“와! 웬 자전거?


“스님 거 훔쳐왔지롱”


“걸리면 어떡하려고!”


“다시 갖다 놓으면 되지”


“그래도...”


“걱정 말고 타. 혼나도 내가 혼나”


그의 허리에 손을 얹고 등에 얼굴을 기댔어요.
그렇게 우린 누구의 방해도 없이
바람을 가르며 달렸죠.


산속 오솔길을, 단 둘이





온통 차가운 바람
그의 넓고 따듯한 등





/



“ㅇㅇ아 나 졸려...”


“안 돼. 이거 다 풀고 자야 돼”


“아아 나 진짜 졸린데...”


“스읍-”


“한 번만 봐주라. 응?”


“너 어제도 그냥 잤잖아!”


“그건 너 자는 거 구경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런 거고...”


“그러니까 누가 구경하래?”


“이뻐서 봤지... 이뻐서...”


“어어-? 정신 안 차려?”


“아.......”


“.......”



“.......”


“으유.... 바보야, 잘 자”



/



“승우야”


“응”


“나 뽀뽀해줘”


“응?”


“빨리”


“.......”


“빨리~”



“.......”


“.......”


“싫어. 오늘은 네가 해줘”


“뭐?”


“빨리”


“.......”



“.......”


“에이, 안 되겠다!”


“엉?”


“오늘은 안 할래”



“왜!!!”


“고등학생은 뽀뽀 자주 하는 거 아니랬어”


“그게 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일 모레 쯤 해줄게.”



“흐어...”




두 번째 생은 행복했던 기억이 많아요.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제가 더 설렘을 느꼈던 것 같아요.


어렸잖아요. 둘 밖에 없었고.


그래서 어쩌면 정말
해피엔딩이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는데...



-그런데요?


기억을 못하는 거겠죠. 야속하게.
솔직히 말하면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커요. 그 바람이



-아까 전에, 본인이 다시 태어나는 이유가
결말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셨잖아요.


네.



-그럼 ㅇㅇ씨는 각 생에서 그 사람과의 결말이
어땠을 거라 예상하세요?

.......
해피엔딩이었다면,
제가 다시 태어났을까요?





♪ 돌이킬 수 없는 - ‘7일의 왕비’ OST





벌컥-



“ㅇㅇ아!!!!”


“으응...?”


“일어나 빨리!!!”


“갑자기 무슨...”


“겉옷만 챙겨서 나가자”


늦은 새벽이었어요.
잘 자, 사랑해- 달콤한 말을 나누곤
각자 방에 들어가서 잘 자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그가 들어와 깨웠어요.
눈도 못 뜨고 있는 나에게
겉옷을 입혀주며 말했죠.


“정신 차려. 우리 여기서 나가야 돼”


“왜? 무슨 일인데”


“저거 안 보여??”


“무슨...”




밤부터 뒷산에 불이 났었대요.
근데 그게 번지고 번져서
우리가 묵고 있던 암자까지 퍼지게 된 거예요.


“ㅇㅇ아”


“.......”


“ㅇㅇㅇ!!!!!!”


“어? 어.. 켁켁!!!!”


활짝 열린 문 사이로 매캐한 연기가 들어오자
기침이 나기 시작했어요.
눈물도 고이고 난리가 아니었죠.


“이걸로 입 막아”


승우가 자기 셔츠를 벗어주며 말했어요.


“연기 마시면 안 돼. 빨리”


“너는!!!!”


“괜찮아”


불길에 휩싸여 쓰러지는 나무를 피해
그가 날 끌고 나왔어요.
그리고 아직 불이 닿지 않은 쪽으로
함께 내달렸어요.


“승우야 스님은??”


“몰라!!!!”


“스님은!!!!!!”


“일단 지금 나가야 살아. 알겠어??”


“거동도 불편하신데 어떻게 두고 가!!!!”


“.......”


“우리만 살자고???”


“ㅇㅇㅇ,”


그가 날 붙잡아 세우며 말했어요.


“우리 나가서 신고할 거야.
밑으로 내려가서 119에 전화하면,
소방관들이 불도 꺼주고 스님도 살려줄 거야.
우리 그렇게 하려고 뛰는 거야 지금.”


“.......”


“응? ㅇㅇ아”


“...아니야”


“.......”


“아니야. 그래도,”


“.......”


“그냥 가면 안 돼”


내 어깨를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어요.
주저하던 것도 잠시, 어렵게 입을 떼더라고요.


“...다 필요없고 그냥,
너랑 나랑 살려고 뛰는 거야 바보야”


“.......”


“저기 안 보여?
저 불, 몇 분 안에 여기로 번질 거야.
여기 다 타버릴 거라고 이제!!!!!”


“.......”


“가자 빨리”




아마도 제 마지막 기억이 맞다면,
전 거기서 그의 손을 놨어요.


그 뒤로 남은 몇 개의 이미지 안에
제 손은 누구의 손도 잡고 있지 않았거든요.


근데 제가 해피엔딩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 이유는
그의 눈을 봤기 때문이에요.


착해 빠진 눈 있잖아요.
숨길 수 없는 진심이 담긴 눈.


그래서요. 그래서 그랬어요.
그냥... 제 바람이에요.


무사히 탈출한 우리는
다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제발 그랬길.




.
.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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