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토너의 자세로 페이스조절을 하면서 괴테의 문학세계를 탐구하고 활동을

멈추지 않는, 문단에서 보기 드문 현역작가 송원희 소설가

수지로 거처를 옮기신 송원희소설가를 만난 곳은 분당 서현역 AK 프라자 로비이다.

얼마만인가, 장르까지 다르다보니 만나 뵙기가 쉽지 않다. 선생님이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을 맡으시고 열성적으로 모임을 이끌 때 나는 지연희 수필가.시인( 문파문학발행인)의 추천으로 여성문학인회에 입회하여 선배작가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그러한 시간 속에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인연의 열매들이 석류알갱이로 알알이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송원희 소설가. 오른쪽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장

일시: 2011. 8. 25.목 오후 2시

장소: 분당 AK플라자

대담: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사진 : 전영구 시인

 

                                                               오른쪽 지연희시인.수필가 (문파문학 발행인 )   

송원희 소설가는 영원히 나이들지 않는 작가다. ‘취미를 갖지않는 상상력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는 괴테의 말이 떠오른다. 정체되지 않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영적인 젊음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선생의 신작 소설집『우주여행』을 받았다. 2002년부터 2009년 사이 발표 단편과 중편을 묶으면서 선생님은 ‘과작이라 부끄럽다’고 밝혔다. 하지만 1955년 등단과 그후의 문단경력을 따지면 결코 많은 작품은 아니다. 아마, 글을 발표할 때는 전력을 다하는 글쓰기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선생님의 메시지를 담은 우회적 경고장이라 짐작할 뿐이다.

느리지만 쉬지않고 창작을 해 오시는 선생님에 대한 평은 잘 알려져 있다. 고희를 넘어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는 드물기 때문이라 한다. 선생님은 지금도 소설창작에 대한 집념이 크다. 신은 사람에게 두뇌를 주었는데 인간이 삼분의 일만 쓰고 있어 가능하면 뇌를 많이 써야 한다며 지금도 눈에 보이는 것들은 작품모티브를 삼는다고 하신다.

문단이 정치처럼 변질되는 상황을 염려하시는 선생은 그저 품성이 맑은 선비, 글쟁이일 수밖에 없다. 인품이 높으면 힘도 생긴다는 공자의 말을 떠올린다. 선생은 선거가 아닌 추대로 여성문학인회 회장도 맡게 되어 분위기가 따뜻했다. 때문에 선생을 말하자면 <한국여성문학인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제 14대 회장을 맡아 열정적이고 따뜻한 포용력으로 리더십을 보여주면서 이끌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수용과 관용의 자세가 돋보였던 시기였고 누군가는 선생님께‘작가로서 무르익었다’고 평했다. 문학의 꽃이 여성문학인회였다 할 만큼 매스컴과 각 기업체에서 관심을 보여주고 행사 때마다 후원을 해주었다. 전국여성백일장에 장원하면 지금 슈퍼스타 K정도?로 호응이 높아 TV 아침방송에 출연하고 일간지에 작품까지 소개되는가하면 청와대에 초청되어 영부인과 대담을 하기도 했다. 선후배가 결속되어 활기넘쳤던 한국여성문학인회는 입회도 까다로웠다. 등단 10년이 지나야 하고 작품집도 두 권을 내고 이사회의에서 심사를 받아야 했으니 격조높은 문학단체로 선배작가들 모두 후배들에게는 로망이었다.

송원희 소설가와 선생님과 지연희 발행인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소녀’라 부르니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 지연희 소녀가 이렇게 커서 문학인을 키우며 문단 저변에서 얼마나 큰 일을 하고 있는지,” 선생님의 가슴에는 아직도 소녀로 남아있는지 지연희 수필가. 시인을 대견해한다.

작가들에게는 쓰지 않고는 안 되는 동기가 있기에 선생의 스물 아홉살 소설가 등단작품의 배경이 궁금했다. <화사>는 특히 서정주 시인의 작품이기도 해 관련이 있지 않을까 넘겨짚는 질문을 했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는 <화사>였다.

선생은 작고한 소설가 김이석선생님 추천으로 1956년 「문학예술 」에 등단했는데 등단작품 <화사>단편은 천경자 화가가 모델이었다.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하고 작품을 발표한 다음 나중에 밝혔지만 천경자화가가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알고 있었기에 쓰고 싶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고통 속에서 나오는 것을 그녀를 통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천경자화가! 그녀에게 반했고 예술성이 있고 솔직함이 좋았다.

선생은 또 꽃이 아파야 핀다는 사실을 말한다. 사람들은 꽃이 핀 그 화려함과 빛깔 자체에만 관심을 갖지만 꽃이 피기까지는 아픔이 따른다는 것이다. 향기 드높은 백합만 보아도 자정부터 두시까지 최고의 향을 뿜어내느라 밤을 새우는 것이다.

선생의 작품성은 초기에는 전후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경향이 강해 ‘남성적 여성문학의 성격이 강하다’는 평을 들었다.「분열시대」「낙뢰」「모자」등이 그렇다. 후기에는 시대의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역사성과 사회 이슈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찾아 문학평론가 조진기의 「송원희 작품론」에 소상하게 밝혀져 있다.

작품스케일이 크다는 평을 받는 선생님께 ‘취재는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는 지?’ 여쭈었다.

선생은 일단 어떤 힌트를 얻으면 씨앗으로 잘 갖고 있다가 다니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필요하면 취재도 나선다. 「목마른 땅」소설의 경우 동두천 이민수속하는 곳을 찾아가 앉아 있으면서 일어나는 일들의 상황을 파악하기도 했다.

선생의 문학 후배들을 아끼는 마음도 크기에 우려하는 마음도 비친다.

어느 시대나 환경의 차이는 있다고 생각하여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젊은 작가들이 개인적이고 개방적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회흐름이지만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모르면 글을 쓸 수 없다. 낭비와 사치, 외모중심주의 세상에서 욕심을 버리고 아름다운 꿈을 꾸고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 고민해야 한다. 내일의 질서를 오늘의 혼돈이 바로잡아준다고 믿을 수 있어 오늘을 견딘다고 한다.

온 나라가 오디션 열풍으로 문학청소년과 文靑期가 실종되었다. 마지막으로 선생에게 물었다. 문학은 무엇인가 ?

‘문학은 아픔을 치유해주기에 작가는 예언적이고 어떻게 살아아 하는가를 가르쳐줄 의무가 있다’는 청량제같은 선생님의 말씀에 그리 간단치 않은 선생의 문학내공을 확인한다.

좋든 나쁘든 누구하고 이야기해도 배울 게 있다는 선생은 인류의 근원 모성애를 강조한다. 문학이 그런 모성애 역할을 맡아서 사회를 지탱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힘이 약하지만 우리 사회의 남자를 키우는 게 여자이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해서 새로운 인종을 만들어내는 이 세상 어머니처럼 문학은 그렇게 과학이 아닌 모성애로 세상의 아픔을 치유해야 한다고 한다.

봉사를 하고 싶다는 선생의 긍정적 열망에 감동을 하며 손을 꼭 잡고 정류장을 향해 한참을 걸었다.

송원희宋媛熙 약력

서울출생. 동국대학 영어영문학과 수학. 1955년 「문학예술」등단. 동국문학인회 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을 지내다. 일붕 문학상. 동포문학상. 한국문학상. 이주홍 문학 본상 등 수상

작품집 『화사』『비틀거리는 중간』『잃어버린 날개』『노인과 탈옥수』『우주여행』중편집 『고려청자』장편집 『여신들의 피리소리』『대지의 꿈』『목마른 땅』『고독의 문』『안중근 그날 춤울 추어라』상.하/  꽁트집『나에겐 꿈이 있다』등 수상집 『봄을 느꼈던 어느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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