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희 수필문학관 (도서출판 소후 대표)

수필계로맨티스트 윤재천 현대수필 발행인 인터뷰

작성일 작성자 권남희 헐크

 

윤재천교수댁에서 촬영한  도자기 (작고 큰 도자기 사기그릇, 등이 잘 보관되어 있다. )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수필계의 로맨티스트

구름으로 태어나고 싶어하는 윤재천 수필가 한국수필학회 회장

“근처에 가면 찾겠지?” 서로 주고받은 말이다.

윤재천수필가(현대수필 발행)의 집필실을 가기 위해 3호선 남부터미널에서 교대쪽으로 더듬이를 움직이며 걷는다. 지연희 수필가. 시인(문파문학 발행인)도 몇 번 들른 기억에 의지해 찾아야 한다며 아리송해한다. 둘은 서로의 몹시 허술한 자세를 개의치 않고 매사를 빈틈없이 살아가며 수필 천문대를 쌓아올린 선생을 만나러 갔다. 움직이는 현대수필박물관이기 때문이다.

축하드립니다. 먼저 인사를 드렸다.

팔순기념으로 112명의 제자들이 <윤재천 수필의 길 50년>헌정본과 <윤재전천수필론>을 발간하여 봄날 잔치를 하였고 원로 문인과 선후배 작가들이 참석하여 축하에 동참하였다. 게다가 <한국여성작곡가>를 창립하여 초대회장을 지낸 이영자 교수는 윤재천선생의 작품<구름카페>에 곡을 붙여 11월 20일 금호아트홀에서 공연을 했다. 절묘한 순간에 행복을 선물하는 기술을 한 수 배웠다.

1992년 계간 현대수필을 창간했으니 이제 성년식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윤재천 선생은 현대 한국수필사에 맥락을 짚어 준 공로가 크다. 한국수필학회를 설립하여 많은 수필가, 평론가들과 함께 수필연구를 해 온 점, 그리고 2001년 12월 1일 경기도 양평 <참 좋은 생각>에서 조병화. 지연희 등 60여명의 작가들과 함께 수필의 날을 선포하고 매년 12월 1일 수필의 날 행사를 한 일도 기억해두어야 한다. 2007년 한국문인협회에 넘겨주어 2011년 7월 15일은 11회 수필의 날 행사를(지연희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장) 강릉에서 전국 500여명의 수필가들이 참석 한 가운데 치렀다.

늘 앞서가는 의식으로 수필운동을 펼치는 결실이 점점 맺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선생의 가슴도 벅차오르리라.

“ 시나 소설은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해가고 있는데 수필만 50-60년 전 이야기를 하면 누가 읽겠어요?”

되묻는 선생의 눈빛은 아직도 호기심으로 꽉 차 있다. 마당수필의 본보기가 수필의 날이며 수필은 인간학이다, 퓨전수필, 헤체가 아니라 다름이라는 아방가르드수필, 낭만적 성격을 띤 문학상 제정 등은 괄목할만한 사건의 연속이다.

1994년 창간한 수필학은 매년 거르지 않고 발간하여 수필인들에게 보내는데 2011년도로 19집에 이르렀다. 수필론을 실은 수필가와 평론가만 해도 강범우. 공덕룡. 정목일. 한상렬 .윤병로 평론가 등 100명이 넘었다. 수필산에 큰 바위 얼굴들을 조각하고 있는 선생의 집념에 고개가 숙여진다.

“ 산다는 것은 운명을 헤쳐 나간다는 것과 같다.”

선생의 작품집『바람은 떠남이다』에서 말한 것처럼 수필을 운명으로 여겨 매일 산을 오르는 모습으로 쉬지않고 수필을 연구하여 책을 내고 학회를 끌고 있다.

문학은 선생에게 숙명이다. 열 네 살 전 후에 벌써 문학에 관심을 가져 서울신문을 스크랩해두는 게 취미였고 대학 조교생활을 할 때는 문과대학장이었던 백철선생에게 영향을 받아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지연희 문파문학 발행인. 오차숙 현대수필 편집장

1957년 첫 수필을 썼고 중앙대 강사였던 60년도에 신문사에 에세이를 발표했다. 선생의 수필사랑은 상명사대 전임교수로 간 후 확고해진다. 1968년 학과장일 때 교양과목 커리큘럼에 수필문학론을 넣었던 것으로 입증이 된다. 수필과의 사랑이 수필의 특별한 인연을 만들고 일들을 벌이게 된다.

1975년에는 한국수필문학회를 발족하였다. 당시 피천득. 한흑구. 변해명. 구인환. 최승범. 홍윤숙 등 쟁쟁한 문단 거목들이다.

윤재천 선생이 계간 현대수필을 창간하고 사무실로 찾아 본 적이 몇 번 있다. 현대수필을 정기구독하러, 선생님이 펴내신 수화수필집을 중정받기 위해 등등의 이유였다.

그 때마다 느낀 점은 선생이 침묵하는 시간, 자신의 소리에 열중하며 생각을 쌓아두는 진실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고향 안성의 추억이 들락거리고 교직을 천직으로 삼은 부모님의 사랑이 싱싱하게 꿈틀거리는

촛불을 켜지 않았는데도 촛불이 켜진 곳 같은 그곳은 드나드는 먼지까지도 정갈하게 정돈되어 흐트러짐이 없어 명상과 우울이 흐르고 어쩔 수 없이 멜랑콜리의 감옥이 되는 곳이었다. 선생님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로지 수필의 동굴 속에서 수필로 명상의 시간을 가질 뿐이다.

<현대수필> 제작소보다 현대수필학회 연구소가 더 진짜의 얼굴이다. 특히 책 몇 겹의 서가에 연도별로 주제별로 작가별로 구분되어 잘 꽂혀있는 것을 볼 때 책이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책과 대화를 나누고 책을 어떻게 두어야 하는지 깨닫게 하는 곳이다.

어떤 것이든 선생에게 가면 사랑받고 인정받고 세계를 구축해서 형상을 이룬다. 고독도 선생에게 가면 꽃으로 피어남을 본다.

선생의 꿈대로 언젠가 구름 위에 집을 짓고 있는 상상을 한다.

구름카페 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을 한 지도 5년 째다.

세계에는 3대 문학상이 있다고 말하는 선생에게서 세계 수준을 능가하는 문학상의 입지를

노벨문학상, 부커문학상, 콩쿠르문학상 이 있는데 구름카페 문학상은 프랑스 콩쿠르 문학상에서 감동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지난 7월에는 <문학의집. 서울>에서 8인 작가의 소장품 전시가 한달 간 있었다. 묘하게도 지연희 문파문학발행인의 전각전시. 권남희의 펜 전시도 있었는데 선생의 파이프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수집은 천개가 넘지만 전시행사에는 약간만 전시했다. 조병화 시인의 안성 편운재를 방문했다가 바가지에 열 두 개의 파이프가 있고 분위기에 따라 다른 파이프를 쓰는 시인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아 그 때부터 파이프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세계 여행을 다닐 때마다 곳곳에서 파이프를 모았다.

생각한다. 문단이 비대해지면서 지식인 집단으로 변형하였다. 아야기를 들어주고 남의 글을 읽어 주기보다 서로 가르치려 드는 세태가 되었다. 진트플루트(대홍수) ! 도시는 이미지의 물결, 홍수시대를 맞이하고 있는데 문학도 감동없고 진심 없는 지식의 홍수로 넘치고 있다.

선생도 그런 경향을 이미 눈치 챘다.

자부심이 강한 신진작가들이 선후배 가리지 않고 들이민다. 질서가 있어야 하고 그런 것을 지킬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문학은 그 뿌리에 성장한다고 본다. 글도 열심히 써야 하지만 나이값도 해야 한다. 내가 먼저 베풀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이 따라오는데 준 만큼 대가를 바라는 조급증은 오버를 불러와 자신의 문학성을 해친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라! 선생은 더도 덜도 없는 절제로 사물이나 형상을 보고 말한다.

수필도 재미와 함께 흥미, 매력 힘이 있어야 한다. 글의 알맹이가 없을 때 형식이 덧붙여져 이유없이 무겁고 독자에게 외면당하는 글이 된다. 작품은 작가의 숨결이며 생명이기에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어야 한다.

세월을 타는 거리, 지나간 시간 때문에 현재의 모든 것들에서 선생은 이방인이라 느끼고 있는 게 분명하다. 선생은 조용히 소망을 말한다.

“ 구름으로 태어나고 싶다. 그동안 쓴 글이나 나누었던 말, 상대를 의식하며 평생동안 했던 강의까지도 구름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싶다. 시인 권덕규는 집팔아 몽땅 술을 마시고 이제까지는 내가 집속에 살았다만 오늘부터 네가 내 속에 사는구나 큰 소리를 쳤다.”

어쩌면 선생 또한 세월 팔아 수필을 마시며 삶의 사막에 수필나무를 심어 문학의 오아시스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훗날 세상 살면서 무언가 남기고 갔구나 그런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한다.

 

                                                               왼쪽 권남희 한국수필 편집장 . 오른쪽 윤재천 현대한국수필학회회장  

윤재천

경기도 안성 출생. 전 중앙대 교수. 현대한국수필학회 회장. 『현대수필』발행인 겸 주간.

저서『수필문학론』『수필작품론』 『운정의 수필론』등 다수

수필집 『나를 만나는 시간에』『처음과 끝 그리고 그 사이』 『구름카페』『어느 로맨티스트의 고백 』상.하 『또 하나의 신화』

수상 한국수필문학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상 .펜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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