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다양성(遺傳子多樣性, genetic diversity)이란 하나의 생물종을 구성하고 있는 개체들 사이에 유전적 변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 유전자 다양성은 하나의 생물종이 다양한 외부 환경 변화에 적응하여 생존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다시 말하면 풍부한 유전자 다양성은 외부적인 환경 변화에 순응하여 종이 여러 세대에 걸쳐 유지되어 보존될 수 있도록 일종의 ‘완충제’ 또는 ‘쿠션’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유전자 다양성 – 생물종을 구성하는 개체 사이의 유전적 변이

예를 들어 한 생물종에 대해서 유전자 다양성이 풍부한 집단과 빈약한 집단이 다른 두 지역에 따로 거주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유전자 다양성이 풍부한 집단은 다양한 능력의 해부학적 및 생리적 형질을 보유하고 있는 개체들로 구성될 수 있으나, 이에 반해 유전자 다양성이 빈약한 집단은 폭이 좁은 형질, 즉 매우 단순한 형질을 보유한 개체들로 구성되어 있게 된다. 이때 외부적으로 급격한 환경 변화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유전자 다양성이 풍부한 집단은 그 변화를 이겨낼 수 있는 유전자 변이를 지닌 개체들을 중심으로 살아남아 종을 보존하여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다양성이 빈약한 집단은 환경 변화를 이겨 낼 수 있는 유전자 변이의 개체들이 없어 결국 죽게 된다. 이에 따라 개체 집단의 단절 혹은 그 생물종의 단절을 가져 올 수 있는 것이다. 




유전자 다양성은 한 생물종이 외부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힘을 제공한다.

 

 

유전자 다양성의 중요성을 보여준 아일랜드 대기근

실제 유전자 다양성이 작은 집단의 생물종이 환경 변화에 쉽게 영향을 받아 개체군이 소멸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아일랜드 대기근(The Great Hunger)이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1847년에 발생한 것으로, 아일랜드 인구 중 800여 만 명 중, 200여 만 명이 사망하고 200여 만 명이 먹을 것을 찾아 해외로 이주하여, 아일랜드 인구가 절반으로 감소한 처참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아일랜드인의 주식인 감자가 질병으로 경작이 중단됨으로써 촉발되었다.


인류는 농업을 시작한 이래 감자 등의 농작물에 대한 품종개량을 꾸준히 지속해 왔으며 그에 따라 경작지에는 거의 동일한 유전자 조성을 보유한(즉, 매우 낮은 수준의 유전자변이) 감자만을 키우게 되었으며, 결국 유전자 다양성을 대대로 빈약하게 만들어 왔다. 그 결과 감자잎마름병의 원인이 되는 박테리아가 출현했을 때 이를 이겨 낼 수 있는 유전적 변이를 지닌 감자가 아일랜드에서 없다시피 했다. 그 결과 감자잎마름병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어 감자를 더 이상 생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이 아일랜드 전역에서의 대기근을 악화시켰던 것이다. 이렇듯 유전자 다양성이 빈약한 생물종 또는 집단은 환경변화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생물종 유지에 큰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유전자 다양성이 빈약해 거의 동일한 유전자 조성을 지니는 집단의 경우에는 근친교배와 비슷한 생식이 발생할 수 있다. 그 결과 유전자 결함을 안고 있는 자손이 태어날 확률이 높다. 이 또한 생물종의 유지에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아일랜드 대기근을 기념하는 조형물(Famine memorial). 아일랜드 더블린 소재.

 

 

유전자 다양성의 생성 – 돌연변이, 유성생식, 유전자이동

유전자 다양성은 어떻게 생성되며, 어떻게 세대를 통해 유지될까? 유전자 다양성은 크게 보면 새로운 유전자가 유입되는 돌연변이(突然變異, mutation),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일으키는 유성생식(有性生植, sexual reproduction), 그리고 특정 지역의 개체군에 유전자를 더하거나 감소시키는 유전자이동(遺傳子離動, gene flow) 등에 의해 생긴다. 먼저 돌연변이란 유전정보가 기록된 DNA 분자에 여러 환경적 요인에 의해 새로운 유전자 변이가 만들어져 개체군에 공급되는 현상을 말하다. 그 결과는 그 유전자에 의해 생산되는 단백질의 기능적 변화 및 유전형질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렇게 돌연변이가 개체군에 새로운 유전자 다양성을 공급하는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성생식은 서로 다른 두 개체의 유전자의 재조합으로 자손이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데, 유전자 다양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 즉, 유성생식을 하려면 배우자를 찾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감수분열과 염색체재조합(chromosomal recombination)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조합의 유전자 다양성을 높여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개체의 탄생 확률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유전자이동이란 한 생물종의 한쪽 집단에서 다른 쪽의 집단으로 개체가 이동하여 유전자가 유입됨으로써 유전자의 다양성이 전달되는 현상이다. 이렇게 한 집단에서 개체의 이동으로 발생하는 유전자의 유출입은 결과적으로 대립형질의 집단내 빈도를 바꾸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개체의 이동은 한 생물종이나 집단내의 유전자 다양성을 풍부하도록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동물의 이주 또는 식물의 씨앗 퍼트리기와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유전자 다양성은 생물종의 생존과 진화의 원천

유전자 다양성의 정도는 다른 조건이 같다면, 생물종 또는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개체의 수에 비례한다. 개체수가 많은 생물종 또는 집단일수록 유전자 다양성은 풍부해지고, 그로 인해 형질이 다양해지므로 환경에 대한 적응도가 높다. 반대로 개체수가 적은 생물종 또는 집단일수록 유전자 다양성이 빈약해지고 그로 인해 환경변화에 대해 적응도가 낮아 종의 사멸에 대한 큰 위험을 갖는다. 만일 많은 개체수로 구성되어 유전자 다양성이 풍부한 생물종의 한 집단이 갑작스러운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지리적으로 둘로 격리되고 서로 고립되었다고 하자. 이때 오랜 시간에 걸쳐 두 집단 사이에 개체의 이동이 차단되어 유전자 이동 또는 유전자 교류가 불가능해 지면, 각 집단이 처한 독특한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유전자들이 고착 형질로 선택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라고 부른다. 이때 오랜 시간에 위의 두 집단 사이에 개체들의 교류, 즉 이주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두 집단의 개체들 사이에 형태적 및 생리적인 형질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고 심지어 생식적으로 격리될 수 있다. 이것이 자연선택에 의한 새로운 종 분화의 원리로써 진화의 원리인 것이다.

 

위의 자연선택에 의한 종 분화는 많은 개체 수로 구성되어 유전자 다양성이 풍부한 개체군의 집단에서 외부 환경적인 변화에 순응할 수 있는 유전적 변이가 선택되어 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개체군의 탄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적은 개체군으로 구성된 집단에서도 기회적으로 종 분화가 발생할 수 있다. 100원 짜리 동전을 토스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이순신 장군 그림을 앞면이라 하고 100 숫자가 쓰인 면을 뒷면이라 할 때, 한번 토스할 때, 앞면 또는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50%이다. 하지만 실제로 토스를 하면 앞면과 뒷면이 똑같이 나오기 보다는 한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토스 횟수가 100회, 1000회, 10000회로 많아질수록 실제로 앞면과 뒷면이 비슷하게 나오게 되지만, 토스 횟수가 적다면 앞면과 뒷면 중 한쪽으로 크게 쏠릴 확률이 커진다. 

 



유전자 부동으로 5세대 만에 특정 형질(푸른색)로 고착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출처: Professor marginalia at Wikipedia>

 

위에서 동전의 앞면과 뒷면은 유전자에 비유해 보면 서로 대립되어 있는 유전자 변이라고 볼 수 있으며, 토스의 횟수는 개체군의 수로 비유해 볼 수 있다. 즉 토스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즉, 개체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앞면 또는 뒷면이 나올 확률은 서로 비슷하지만(유전자변이가 비슷한 빈도로 유지되지만), 토스의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개체 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확률적으로 어느 한쪽 면으로(두종의 유전자 변이 중 한쪽의 유전자 변이로) 치우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개체수가 적은 집단에서 기회적으로(by chance) 또는 일정 방향성 없이(by random) 어느 한 쪽의 유전자 변이로 고정되는 현상을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라고 한다. 통계학적 개념으로 보면 유전적 부동은 다름 아닌 표본 오차(sampling error)에 지나지 않아 무작위적인 표본 추출로는 훌륭한 생물학적 적응 체계를 만들어낼 수 없다 하지만 기회적으로 변화하는 유전자 빈도, 그것도 엄연한 진화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선택과 유전적 부동은 생물진화의 양대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다. 

 

 

유전자 다양성을 보존하고 풍부하게 하는 것이 중요

유전자 다양성이란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인 한 생물종의 개체군내에 존재하는 유전자 정보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 생물종으로 하여금 새로운 환경에 적응 진화해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지구상에 서식하고 있는 생물종, 특히 멸종 위기에 있는 생물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개체 수 늘림을 통한 복원 보다는, 그 생물종 집단에 존재하고 있는 개체들의 상세한 유전자 정보를 조사하여 유전자 변이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이를 이용하여 유전자 다양성을 보존하고 풍부하게 복원해 주는 유전학적인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김용성 /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일본 오사카대학 초빙교수 및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연수하였다. 학위과정에서 초파리 유전학을 연구한 바 있으며, 이후 인체 암의 유전학 및 후성유전학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대한암학회 및 한국유전학회 이사이다. 저서로는 [분자생물학노트], [생물진화학], [의학유전학] 등이 있다.


발행일  
2011.02.10

자료협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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