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장소인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에 다녀왔다.

입장료는 성인 4만 동(한화 약 2천 원).




베트남은 크게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눌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얼마나 소수민족이 많은지 건국 신화도 그와 연관된다. 


락롱꾸언君(용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란 수궁에 사는 왕자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요청을 잘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북부에 사는 델라이(De Lai)라는 욕심 많고 폭력적인 왕의 어우꺼(Au Co)라는 딸이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와는 달리 성품이 착하고 어질었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델라이 왕이 군대를 이끌고 마을을 침략해,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며 괴롭혔다. 델라이왕의 약탈과 괴롭힘이 점점 심해져 사람들은 수궁에 사는 락롱꾸언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락롱꾸언은 마을 사람들을 도와 델라이왕과 싸웠다. 그러던 어느날, 락롱꾸언은 델라이와 담판을 짓고자 산으로 찾아갔다가 어우꺼와 만나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졌고, 군대가 힘을 잃으며 델라이왕은 북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우꺼와 락롱꾸언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고 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 어우꺼는 한 자루의 알을 낳았고, 알은 낳은지 7일 만에 부화해서 100명의 아들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락롱꾸언이 항상 수궁을 그리워해, 50명의 아들을 데리고 수궁으로 돌아갔다. 나무지 50명은 어머니인 어우꺼와 함께 살며 맏아들이 베트남을 건국했다고 한다.


이 신화에서 나오는 100명의 아이들이 바로 베트남 소수민족들의 선조인 셈이다.  

 





다른 여러 분야 가운데 나는 농경문화에 관심이 있어 그와 관련된 유물이나 내용을 눈 빠지게 찾았다. 허나 그와 관련된 것보다는 의례나 주거, 의생활 등에 관한 것이 주된 전시였다. 


아쉽지만 농경문화와 관련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베트남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벼를 주식으로 하는 농경문화권이다 보니 너무나 유사한 면이 많다. 내가 그 모습을 보며 머릿속에 강한 충격을 받아 몇 번이나 휘청였는지 모른다.

소를 이용해 논밭을 쟁기질하는 모습을 시작으로, 모내기하는 방식이나 논을 푸는 방법도 너무나 유사하다.

농기구만 살펴보아도, 쟁기는 성에와 쟁기술의 각도 정도만 다를 뿐 거의 똑같은 형태이다. 각도 차이는 아마 흙의 성질이 다른 데에서 올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흙밥을 한쪽으로 가지런히 넘겨주는 볏까지 달렸다! 난 볏도 만들어 달아서 사용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정말.

게다가 논을 삶을 때 쓰는 써레까지 똑같이 생겼다. 이거 한국에서 가져간 것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이다, 젠장.

심지어 탈곡기도 똑같이 생겼고(물론 이건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등지에서 들어왔을 확률이 높다), 뒤주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까지 또오오옥같다.

정선하는 데 쓰는 풍구와 벼를 쓿는 데 쓰는 매통까지도 똑같다, 똑같아.

서로 생김새랑 말만 좀 다르지 이건 뭐 조선 사람을 월남에 데려다 놓고, 월남 사람을 조선에 데려다 놓아도 평소랑 똑같이 벼농사 지으며 살겠더라.














































베트남의 옛날 태음력 달력. 

농가에서 이 얼마나 간단하고 간편하게,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달력이란 말인가! 


감탄을 마지않았다.













이 사진은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번천리는 개뿔!!! 
베트남 북부 산간지대의 소수민족이 비탈밭에서 쟁기질하는 모습이다.





베트남에서도... 
논이 없는 곳에선 당연히 밭벼를 심습니다. 
특별한 단백질 공급원을 식용으로 삼습니다.
벼로는 곡식이 부족하니 옥수수 같은 밭작물을 이용합니다.

한국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과거 세계를 관통하던 농경문화입니다. 
요즘 현대 사회는 산업문화로 통일되어 있다면 말이죠.












베트남 소수민족의 농기구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이러한 형태의 낫이었다. 

우리와 너무나 다르게 생긴 모습이기에, 이건 도대체 왜 이렇게 생겼을까? 어떻게 사용하는 것일까? 궁금해서 미칠 뻔했다. 


아직도 그 해답을 얻지 못해서 베트남 산 속으로 다시 한번 비행기 타고 가보고 싶다.






베트남 중부에는 인도네시아 계통의 참족이 대대로 살아왔는데, 이 동네에는 아시아 코끼리가 살고 있어 이들은 코끼리를 길들여서 다양하게 이용해 왔단다. 


그런데 코끼리를 길들일 때는 어릴 때 잡아다 길들일수록 더 쉽고 빠르게 길들일 수 있다고 한다. 소 길들이는 일이나 큰 차이가 별로 없다. 몽골에서는 낙타를 길들이고 소의 코뚜레 같은 막대를 코에 꽂아 명령을 듣게 하던데, 코끼리는 어떤 식으로 괴롭혀서 말을 듣게 했는지 모르겠다. 코끼리는 똑똑해서 처음에 잘 길들이면 더 괴롭힐 필요가 없었을까?









베트남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들은 텃밭을 가꾸면서 꼭 울타리를 친다. 집짐승을 놓아먹이는 일이 많아 그들이 들어가 망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까 짐승이 내 작물은 안 먹겠지, 내 밭은 안 망가뜨리겠지 하면서 손 놓고 있다가 다 날리지 말고 미리미리 무언가로 막는 게 서로 피곤해지지 않는 방법이라는 뜻이겠다. 사람이 할일을 다 해도 안 되면 그때 탓하여라.











물론 1년 열두달, 사시사철 집짐승을 풀어놓기만 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가두어야 할 때는 가두어야죠. 마냥 풀어놓으면 어디 되겠습니까. 
그래도 현대의 산업화된 농업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자유도가 높은 상태로 방목되는 셈이죠. 요즘 산업화된 농업에서 가축들은 성교의 자유도 없잖아요. 생산성 높인다면서 죄다 인공수정으로 강제 임신을 당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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