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자 가습기살균제

제조사의 민형사 책임

법정싸움은 계속되고…

 

 

 

 

제2회

 

 

가습기 살균제

 

환경단체 (사)녹색미래 사무실에서는 엉뚱한 대화가 벌어지고 있다.

점심식사 후 소화에 관한 내용을 두고 직원 세 사람이 열을 올리는 중.

 

사무총장 지태평이 커피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소화에는 입에서 음식물을 잘게 씹어 소화액과 잘 섞이도록 하는 기계적 소화와, 위에서 소화효소가 고분자 영양소를 저분자로 분해하는 화학적 소화가 있다는 걸 알죠?”

 

“환경운동 하는데 소화방법까지 알아야 합니까, 사무총장님?”

 

시민팀 주현미가 점심 휴식 대화치고는 잼 없다는 눈치.

 

“내 말은 소화에 도움이 되는 섬유질에 대한 언급이랍니다.”

 

“뜬금없이 왜 섬유질 이야깁니까?”

 

기후팀 김정언이 거들었다.

그의 이름은 요즘 실권을 잃고 허수아비 신세가 된 북한 김정은의 이름과 비슷해서 발음을 잘못하면 오해받기 쉽다.

 

지태풍은 일단 낚시말(이야기를 유도하는 말)을 던져 놓고 하고 싶은 말에는 고고싱이다.

 

“소화된 음식을 장으로 내려 보내야 하는데 이를 도와주는 게 섬유질이랍니다. 소화흡수가 되지 않아 영양소는 아니지만 장에 머물러 물과 포도당, 콜레스테롤을 흡수하여 포만감을 주고, 당뇨를 예방하며, 대변용적을 늘여 배변속도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답니다.

 

“그러면 변비와 대장암 발생을 억제해주겠네요.”

 

주현미의 맞장구에 힘을 얻은 지태풍은,

 

“그래요. 섬유질은 중성지방 수치를 낮추고 유산균의 서식지를 제공해 면역력을 높여주기도 하지요. 그러니 곡류, 채소, 과일, 해조류를 많이 먹으세요.” 멋쩍게 웃었다.

 

“굵고 짧게 살아야 하는 게 똥변의 입장인가 봐요.”

 

그냥 있기가 서먹했던지 김정언도 한마디 한 것이다.

 

“언어의 무절제로 커피 맛이 달아납니다.”

 

이번에는 주현미가 김정언의 말을 트집 잡았다.


무의식중 모두가 낚시말로 인해 대화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소화운동에는 음식물을 장으로 내려보내는 연동운동과 잘게 부수는 분절운동이 있음을 설명하고, 암이 심장과 소장만은 둥지를 틀지 못한다는 해설을 덧붙이는 지태풍은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

 

대화가 무미건조해지려는 순간, 그는 본론에 들어가겠노라고 선언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삼천여 명에 이릅니다. 이들은 폐의 섬유화로 죽었답니다.”

 

섬유화를 설명하기 위해 섬유질 이야기가 나왔구나.

 

사실 어제 지태풍은 환경부를 방문했다.

전기 자율주행차를 타고 서울에서 세종시로 갔었는데 운전대에 앉아 책을 읽고 노래를 들으며 편안하게 갔다.

 

이단아와 지태풍의 대화 모습.

 

~ 운전이 편하니까 세종시에 자주 오시네요.

- 뽕도 따고 자료도 얻고 해서.

~ 뽕도 따고 임도 보고가 아니고요.

- 그럴 수도 있겠네.

 

싱거운 대화를 하며 이단아가 보관하고 있는 자료를 충분히 받았다. 그동안 ‘가습기살균제피해자가족모임’ 대표와 자주 접촉하며 대책을 협의해 왔지만 정확한 자료가 뒷받침돼야 법정에서 증언하고 언론에 브리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침묵의 살인’이라고 하는, 21세기 이후 대한민국 최악의 환경 재해로 꼽히는 살균제 사건이다. ‘방관의 살인’이라고 하는, 최악의 사회 재해로 꼽히는 세월호 참사와 대조된다. 물속에서 304명의 숨이 멎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던 대한민국은 세월호만 생각하면 2020년에도 슬프다. 3년 전에 선박을 인양했지만 두 명의 학생은 시신의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주현미는 ‘섬유’라는 뜻의 양면성을 생각했다.

 

“섬유질이 폐에는 안 좋다는 거네요.”

 

“허파 끝 부분 폐포가 굳어버리는 폐섬유화가 폐 기능을 못하게 하는 거랍니다.”

 

장에는 좋다고 하는 섬유질을 생각하면 주현미는 헷갈리기만 한다.

 

“살균제 사용은 언제부터였나요?”

 

“1994년 유공이 처음 제품을 개발한 후 2001년 옥시가 가습기를 출시하면서 유사 제품이 우후죽순 판매됐지.”

 

“도대체 살균제 사용자는 몇 명이었나요?”

 

커피타임이지만 업무시간으로 바뀐 셈이다. 시민사회단체 일이라는 게 생각나면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벌이는 특성이 있다. 말보다 행동이 빠른 경우가 많은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지태풍은 업무 파일을 가져와서 설명하기 시작한다.

 

민관합동 폐손상조사위원회에 의하면 1995~2011년 시기 동안 살균제 사용자가 약 800만 명으로 추산된다. 환경독성보건학회는 이 기간 폐렴 사망자는 7만 명이었고,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렴 사망자가 2만 명으로 추정한다.

 

정체불명의 폐질환 환자가 급증하자 2011년 환경부는 공식적으로 피해 조사에 착수하여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임을 밝혔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산모와 영유아였답니다.”

 

“왜 조기에 원인을 파악하지 않았나요?”

 

주현미의 계속되는 질문이었다.

 

“처음엔 세척제로 써서 문제가 없었는데, 나중에 가습기 물에 섞어 사용하는 바람에 화를 키운 거지.”

 

“섞는다고 문제가 되나요?”

 

“살균제가 증발하여 무화가 되면서 죽음의 연기로 변한 것. 코로 마셔 폐에 이른 것이고.”

 

“제조사는 왜 사전 경고를 하지 않았나요?”

 

제품을 씻어내라는 설명은 어디에도 없고 오히려 ‘가습기 물 교체 시 한번만 넣어 주셔도 효과가 지속됩니다’ 라고 써놓았을 뿐이었으니까.”

 

<가습기 살균제 참사 25년의 기록>이란 녹색미래가 펴낸 책자는 피해가 영유아와 산모에 집중돼 있다. 출산 연령대인 30대에 사망자가 급증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걸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증거는요?”

 

“처음 시판됐던 1995년 폐렴 사망자 수는 2천 명 정도였는데 가습기를 많이 썼던 2011년에는 갑자기 7천 명을 넘었으니까. 세 배 이상 늘어났다는 뜻.”

 

전문가들은 가습기 살균제가 사망 원인의 3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전한다.

 

“제조사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인정한 때는요?”

 

“2015년 언론에서 피해자들의 고통과 기업과 정부의 책임론을 집중 조명했을 때, 제조사가 마지못해 고개를 숙인 거지.”

 

가습기살균제라는 형태의 제품이 허가되어 출시된 것은 대한민국이 유일하고, 살균제 형태의 제품을 사람이 흡입하게 설계한 것 자체가 코미디다. 갓난아기가 폐렴으로 여러 번 입원했는데도 제조사는 가습기와는 관계없다고 발뺌했다.

 

“어떤 제조사들인가요?”

 

“모두 12개 생활화학제품업체들.”

 

이마트, 홈플라스, 코스코 등 대형 유통업체들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의 성분 공개에 나 몰라라 하고 있다가 롯데에서 먼저 공개하자 이제 다 공개했다.

 

“피해보상 판결을 보면 터무니없이 적은데 보상이 일인당 일억도 안 된다잖아요.”

 

“그래서 민사 소송으로 들어간 거라구.”

 



 

2020년 12월 초.

서초동 법원 정원 안의 소나무에는 흰눈꽃이 피었는데, 민사법정에는 불꽃 튀기는 변론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제조사가 형사처벌을 받은 상태라 이제는 민사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피해자 측이 중소 법무법인 ‘세중’을 변호팀으로 선임한데 비해, 제조사 측은 대형 법무법인 ‘장앤김’을 선임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할까.

 

피해자 측의 증인으로 나온 지태풍이 판사의 질문에 대답한다.

 

“감독을 소홀히 한 국가의 손해배상은 증거부족 이유로 수용되지 않았지만, 제조사는 살인행위에 대하여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합니다.”

 

“폐렴 환자에서 가습기 피해자를 구분함에 있어서 증인의 의견은 어떤가요?”

 

사회적 관심사인 만큼 판사는 비교적 꼼꼼하게 따졌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을 때 사망자수가 3~4배 증가했고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습니다.”

 

“황사나 꽃가루로도 폐손상이 올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화학물질인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발생한 폐손상과 황사로 인한 증상은 확연히 다르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대학 교수에게 의뢰한 연구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조사에 유리하게 연구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정체불명의 돈이 교수의 계좌에 입금된 것도 밝혀졌고요.”

 

“증인,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앉으세요.”

 

최종판결이 나려면 앞으로 두세 번의 공판이 더 필요할 것이다. 4년 이상 끌어온 민사재판이다. 대형 법무법인의 끈질긴 재판 연장 전술에 지쳐가는 상태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각오를 앞세우며 법정을 나온 지태풍은 서울 은평구에 있는 환경산업기술연구원으로 갔다. 이곳에서는 의료비 및 장례비에 대한 정부 지원금 지급 신청을 받아 피해자에게 먼저 지급하고, 그 금액은 정부에서 제조사에 구상권을 행사한다.

 

지원금 담당자를 만나서 하나씩 확인에 들어갔다.

 

“피해자 접수는 2016년 1월까지로 했으니 그 후 발생한 것은 구제받을 길이 없다는 뜻입니까?”

 

살균제로 인한 폐섬유화의 잠복기를 5년으로 보고 공식적으로 마감했으나,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는 계속해서 피해 접수를 받는 것 같습니다.”


“산모와 영유아들은 증세가 바로 나타난 반면, 성인은 무려 10년간 잠복기를 거쳐서 나타나기도 하니 금년 2020년까지는 피해 접수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지태풍은 정부의 결정에 불만이었다.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고 5년 정도면 다 나타나리라 봅니다.”

 

원인 물질 PHMG와 PGH는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 따라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있었기 문에 식품위생법, 약사법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불거지자 주식회사를 폐업해 버리고 유한회사로 바꾼 제조사는 결국 소유주가 같은 걸로 밝혀져 책임을 면치 못하게 됐다. 유한회사는 회계 감사나 경영 실적 등에 대해 공시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

 

살균제 사과에 대해서 거절하던 외국 제조사는 유엔까지 나서서 본사에 비난을 가하자 2016년에야 사과했다. 억지로 사과한 듯 느낌이다.

 

“꼼수를 부리다가 들통 난 거지요.”

 

지태풍의 말에 담당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망자 3천여 명에 대해 일인당 일억원 보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치료에 막대한 비용을 써온 피해자와 가족들은 소송비용 등 경제적 피해가 크다. 제조사가 정부 및 환경보전협회와의 협의를 통해 인도적 차원에서 내놓은 300억원 기금은 적다. 적어도 천억원은 내놓아야 한다.

 

“살인자는 감옥에 가라. 영혼 없는 사과다.”

 

2020년에도 피해자가족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주장은 여전하다.

해결될 때까지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관련 살균제 매출이 급감하는 대신 식초, 베이킹소다, 구연산 등이 대체제로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치약의 살균제가 거론됐으나 과잉반응이라는 여론이다.

 

국회에서 일명 '옥시법'이 통과돼 살생물제와 유해성 표시를 구체화하도록 의무화했다. 무모한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사건은 재발하지 않으리라.

 

정도를 걷지 않는 기업은 퇴출당한다.

환경경영이나 그린경영이 필요하다.

 

지태풍은 이단아에게 문자로 “가습기 사용은?” 물었다.

 

“공기청정기 온도와 습도를 스마트폰으로 조정해 놨어요.” 답이 돌아왔다.

 

가습기 사용 가정이 별로 없다. 가습기는 이미 공포의 대상이 돼버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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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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