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신항 철재부두
육상거치 완료
침몰 3년 1개월 만이다


▲육상거치 후 트랜스포터를 빼내는 과정





더 세월
(The Sewol)


제 35회



선체 육상거치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선이 항해 6시간 만인 3월 31일 오후 1시 목포신항에 도착했다. 접안 작업 30분 만에 철재부두 접안을 끝냈다. 좌현 접안을 했다.


접안을 지켜보고 있던 서정민은 비교적 순조로운 작업에 안도했다.


거치 준비 작업 3일, 육상 이송·거치 3일을 예상하면 4월 6일에 거치가 완료된다. 작업이 순조로울 때 이야기이다.


육상 거치 과정에서는 선체 균형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균형을 잃어 하중이 한쪽으로 실릴 경우 선체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석 간만의 차이가 가장 적은 소조기(4월 4일∼8일)에 반잠수선과 부두의 수평을 맞추며 최대한 안정적인 환경에서 작업이 이뤄질 예정이다.


90도를 틀어 선미 접안을 위한 반잠수선과 세월호의 고정을 해체하고 배수를 하고 선미 측에 권양기 6개를 설치한다. 선미 접안한 후 모듈 트랜스포터(Module transporter: MT)를 동원하여 거치작업에 들어간다. 다음은 선체 안전도와 위해도를 조사하고 방역한다. 그리고 미수습자 수습과 선체 정리 작업을 한다.


한편 4월 1일 침몰해역 수중수색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미수습자가 발견되지 않았다.


선체 수색은 붕괴나 함몰될 위험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 반잠수선 갑판에 흘러내린 유류품은 100여개였는데, 그 속에 휴대전화 한 대도 포함되었다. 3년이나 부식된 휴대전화 메모리를 복구한 전력은 전무후무하나 복구에 성공했다.


“지구의 신비가 풀린 느낌이랄까.” 서정원은 감동했다.


4월 5일 오후 1시부터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식 선박을 90도 돌려서 부두에 종접안 시키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부두에 직각으로 선미 접안하는 이유는 뭔가요?”


“선체를 레일 위로 밀어 올리기 위해서랍니다.”


서정민의 질문에 상하이샐비지 한국 측 엔지니어는 대답했다.


반잠수선에서 세월호를 철재부두(1만평 규모)로 옮길 때는 초대형 구조물 이동장비인 모듈 트랜스포터가 사용된다.


“선체를 모듈 트랜스포터에 올려놓을 때 선체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렵습니다. 각각의 트랜스포터가 선체를 떠받치는 힘을 미세하게 조정하며 작업해야 하니까요.”


엔지니어가 어려움을 강조해서 다소 불안하기도 하다.


모듈 트랜스포터(차량형 특수운송장비)의 진입을 방해하여 좌현철판 일부를 잘라냈다. 트랜스포터의 축당 적재하중을 26톤으로 잡았으나 통상적으로 40톤까지 들어올릴 수 있다.


육상거치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4월 6일 오후 7시30분부터 트랜스포터 480대를 세월호가 놓여 있는 반잠수선 갑판으로 진입시키는 작업이 시작됐다. 오후 11시께 모듈 트랜스포터가 리프팅빔 위에 얹힌 세월호 선체 밑으로 들어갔다. 이제 유압으로 높이를 올리며 선체를 떠받칠 준비를 하는 상황이다. 자정 무렵부터 수차례 선체를 들어 올리는 테스트가 진행됐다.


하지만 일부 실패했다. 육상 이송 1차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상당한 수준까지 선체가 들리는 것을 확인했으나 계속 테스트를 한 결과 선체의 무게가 16,000톤인 것으로 파악됐다. 선체 천공을 통한 배수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이다.


세월호를 육상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은 까다롭다


출항당시 배수톤수가 1만톤 가량이었는데 개펄로 인해 선체무게가 엄청 많이 증가했군요.”


“3년 동안 덮어쓴 개펄이 6천톤이나 됐다는 뜻이죠.”


배 안으로 들어간 진흙의 양이 믿기질 않는다는 듯 엔지니어는 머리를 긁적였다.

세월호를 안정적으로 들어 옮기기 위해서 MT 120대를 추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상하이샐비지는 이날 오후 바로 MT 물량 확보에 들어갔다.


4월 7일 선체를 받치고 있는 리프팅 빔 길이를 50~60cm 정도 용접하여 늘리는 작업을 했다. 추가된 120대의 장비는 60대씩 선체 양현 끝으로 한 줄씩 더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총 여섯 줄이 된다.


4월 9일부터 특수운송장비인 MT 600대로 세월호를 들어 올리는 테스트를 한 결과 선체를 안정적으로 옮기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모듈 트랜스포터가 반잠수선 쪽으로 이동하는 시점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수평 유지가 걱정되어서 서정민이 엔지니어에게 질문했다.


“반잠수선 갑판과 부두가 요동 없이 수평이 되려면 만조에서 물이 빠지기 시작하는 오후 1시 안팎이 좋습니다.”


“조석 간만의 차이에 조정해 나가려면 반잠수선에서 밸러스트 양을 잘 조절해야겠네요.”


“그렇습니다.” 엔지니어는 동의했다.


세월호 전체가 부두 위로 올라오는데 3∼4시간이 걸리고, 부두 끝에 있는 거치대에 세월호를 올려 육상거치를 완전히 끝내는 시점은 4월 9일 오후 5시 30분이었다. 직각 접안한 후 무려 나흘 이상이 걸린 셈이다.


“길이 146미터 세월호가 정말 부두로 올라 왔다는 거요?”


모두들 기뻤다. 당연히 박수도 나왔다.
목포 신항에서 세월호 양륙 과정을 지켜본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난 3년간 세월호 참사로 함께 아파해온 국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동시에 9명 미수습자의 안전하고 조속한 수습을 호소했다.


세월호를 철재부두에 그대로 내려놓았고, 혹시 약해진 선체가 무너질까 원래 적극적으로 검토했던 객실부 절단 방식을 사실상 배제했다.


해수부는 반잠수식 선박에 있던 받침대 3줄을 차례로 부두 위로 가져와 세월호를 받치는 모듈 트랜스포터 사이에 집어넣는 작업을 10일 저녁 끝냈다. 그리고 11일 오전 7시 30분부터 받침대의 높이를 조정하는 작업을 거쳐 모듈 트랜스포터의 유압을 낮췄고 오전 10시 20분 세월호는 받침대 위에 내려졌다.


이철조 현장수습본부장은 공식 발표했다.


"11일 오후 4시, 세월호를 육상에 거치했습니다."


▲부두에 종접안한 반잠수선



이로부터 일주일간 외부세척과 방역, 산소농도와 유해가스 측정, 안전도 검사를 하면서 미수습자 9명을 찾기 위한 수색작업에 들어갔다. 대형여객선이라 이 과정에서 최소 3개월이 소요된다. 5층 규모의 넓은 면적의 거대한 빌딩이 바닷속에 누워 있는 것과 같으니까.


현장수습본부와 선체조사위원회는 합동으로 다음을 발표했다.


“코리아샐비지는 현재 펄을 걸러낼 체 10여개를 특수 제작하고 있습니다.”


가로세로 각 1m 크기의 체엔 지름 5mm의 구멍 수천 개가 나 있다. 유해발굴 전문가의 건의에 따라 체는 펄 걸러내기 작업에 사용된다.


한편 세월호 침몰 해역 펜스(200m x 160m) 내에서는 미수습자 수색이 이루어진다. 인양 과정에서 제거한 램프 역시 인양이 계획되어 있다. 특히 찌그러진 우현이 개펄에 박혀 있던 지역은 네 번의 반복수색을 진행한다.


세월호가 육상에 거치되자 마도로스 출신 4명이 목포 선술집에 모였다. 모두가 4, 50대이다. 부산의 상선 학교 선후배 간으로 맘이나 털어 놓자는 것이다. 유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때이므로 허름한 곳에서 밥이나 먹자고 모인 것이다.


나이 순서대로 선체조사위원, 목포항도선사, 서정민 그리고 후배가 함께한 모임이다. 전문가인 선체조사위원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바람이 컸으나 구사일생 살아난 서정민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 한다.


후배 막내가 배가 육지에 올라온 것을 기념하자는 말에 일제히 “배가 산으로 올라오는 것을 기념한다고?” 포화를 쏟았다. 민망해하는 후배는 “용어를 잘못 선택했나?” 머리를 긁적였다.


선술집으로 들어섰을 때 도선사는 주인에게 인사했다.


“목포에 놀러 온 손님들을 이리로 도선해 왔으니 잘 모시세요.”


도선사다운 표현이다. 주인도 잘 알아듣는다.


“며칠 만에 할 수 있는 인양을 3년간 미룬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자리에 다 앉지도 않았는데 서정민이 선체조사위원을 바라보며 포문을 열었다.

조사위는 어리둥절했다.


“배를 아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건 잘못이야. 만 톤이 넘는 배를 들어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구. 더구나 엄청난 악조건의 맹골수도에서 한 달은 부력을 위해 공기를 집어넣고, 여러 달에 걸쳐 뱃머리를 끌어올려 리프팅빔을 박아넣는, 나름의 작업을 했다니까. 이런 물밑 작업이 먼저 이루어져야 인양을 시도할 수 있는 거지.”


“흡사 정치인같이 말씀하시네요. 물밑 공작을 하게요.”


도선사가 도중에 말을 걸었다.


“지금 농담 따먹기 하는 때냐? 옆에 조난자 서정민 사장이 있는 마당에.”


서정민은 못들은 척 태연하게 있었다.
조사위 선배는 말을 이었다.


“배를 들어올리는 작업 자체는 전체 작업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 일부 사람들의 주장처럼 고의 인양 지연설은 사실이 아닌 편향된 오류일 뿐이라구. 그랬을 때 정권에 도움 되는 게 없는데…….”


이에 도선사는 여전히 물고 늘어진다.


“그럼에도 행정적 실책과 비협조 등으로 인양기간이 예상보다 지연된 것은 사실이잖아요. 원래대로라면 2년 내외로 인양 할 수도?”


“크레인에 의한 인양 실패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선미 램프도 중요한 증거인데 인양 과정에서 절단되었고요.”


“세월호 선체와 반잠수선의 수심 차이가 1.5미터도 안 된 상태에선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봐야지. 해저에 떨어진 램프도 인양하기로 했으니 앞으로 조사가 어느 정도 있을 것 같아.”


막내가 부어주는 소주잔을 들며 조사위는 설명을 계속한다.


“이후 세월호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천공을 했으나 예상만큼 배수가 되지 않아 무게가 줄지 않았지. 천공을 하지 말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대안이 없었으니까.”


서정민도 소주잔을 들었다. 그리고 질문.


“좌현의 찢어진 철판을 절단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모듈 트랜스포터의 진입을 방해한다는 이유였는데, 당장 할 필요 없었다는 의견도 있고, 증거 인멸이 아니냐고 항의할 만하지. 외국 감정업체에 조사를 의뢰해 놓았으니까 지켜봐야지.”


술잔을 다 채우고 난 막내가 질문을 던진다.


“인양 중 철판이 찢어진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리프팅빔이 없는 곳인데, 아마 내부의 물체가 쏠려 하중을 견디지 못한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지.”


배에 대해서는 다들 전문가라 이야기가 자꾸 길어지매 도선사가 술잔을 가리켰다. 선배 대접이 이러면 안 된다면서, 후배들에게 한마디하고, 이제는 선배 앞으로 다가가 잔을 권했다.


“자리가 간소하지만 목포 토박이가 대접하는 것인 만큼 잔을 드시면서 말씀하시죠.”


그리고 건배했다.


“세월호 인양을 축하면서, 위하여!”


원샷을 마치고 다시 잔을 채운 다음 선배 조사위에게 건배사를 제의했다.


“미수습자의 완전 수습을 위하여!”


선배의 마지막 건배는 간절했다.



▲목포의 포장마차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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