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진실도 있고
불편한 진실도 있는데

세월호만큼 진실 공방에
휩싸인 사건도 없겠지요


▲진실 공방




더 세월
(The Sewol)


제 37회



진실 공방


사고의 원인 규명에는 물증이 필요하다.
선체 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휴대전화와 CCTV, 차량 블랙박스에 관심이 쏠렸다.


2017년 4월 3일 갑판 위 펄에 떨어진 휴대전화 한 대의 복구에 들어갔다.
3년이 지났는데도 복구가 가능할까?
포렌식 데이터 복원으로 범죄 사실이 밝혀질 수 있단다.


조타실 시계는 10시 17분에 멈춰 있다. 이때 선내전기 공급이 정지되고 비상발전기가 멈췄으리라. 선박 경사는 108도였다.


2017년 9월 15일 자동차 블랙박스에서 궁금한 것을 발견했다.


특히 침몰한 날 8시 50분에 일어난 일이 많다.
화물차가 미끄러져 선체를 뚫어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는 것도 보인다. 화물칸 블랙박스 8개에서 43개 데이터를 복구했다. 적재함 전체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데이터였다. 시간차를 읽어내고 소리를 이용하며 충격감지기(G센스)를 활용했다.


선박이 좌현으로 밀릴 때 충격 컸다. 잠수함 등 외부충격이 아님은 분명하다.
선체 기울기는 물줄기와 선체 기둥의 각도 35도로 나타났다. 21도에서 47도까지 1분 사이에 기울었다. 이 상태로 표류했다. 47도일 때 물이 C데크 창문과 환기구를 통해서 들어왔다. 화물이 미끄러진 시점은 9시50분이다. 자동차가 미끄러진 후 1시간 만이다. C데크는 화물차만 있었고 D데크는 승용차와 일반화물이 혼적되었다.


AIS(선박자동식별장치)에서 선수 방향이 심하게 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일부가 복구된 가운데 희생자들의 영상이 재조명되었다.

피해자들의 마지막 영상에는 부모에 대한 미안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 사랑해요. 아빠도 사랑해요.”
“엄마 무서워요.”
“엄마 살려줘요. 다리 아파요.”
“엄마 아빠 미안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선조위는 5월 26일 오전 전남 목포신항 사무실에서 제1차 소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1소위원회(권영빈 소위원장)는 미수습자와 유류품 수습 현황, 선체조사 계획, 휴대전화 포렌식 사례 등을 주요 안건으로 다뤘다. 휴대전화 2대 속 사진, 영상, 음성 등 미디어 파일과 문자메시지, 통화목록 복구에 성공한 결과를 공개했다.

2소위원회(김영모 소위원장)는 선체보존 검토, 화물계측 검토와 선체보존 세미나 전문가 활용 등을 논의했다.


어버이날을 맞이해 서정민 가족과 이순정 가족이 함께 광화문 세종회관 지하의 이탈리아식당에 모였다. 커다란 케이크 하나도 마련했다.


효도의 날이라 두 가족의 어른이 참석함은 자연스럽다. 서정민의 어머니 윤수조 씨와 이순정의 아버지 이팔봉 회장. 두 사람의 만남은 처음이지만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다. 이미 간접적으로 서로에 대하여 들은 바도 있고 해서.


윤수조 씨가 이팔봉 회장보다 세 살 많으나 초등학교 동창같이 보인다. 지난 3년 동안 이팔봉 회장은 나이보다 더 늙었다. 큰딸을 세월호에서 잃은 후 많이 상심한 탓인지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고희에 접어들어 무엇보다 마음의 회복이 쉽지 않다.


“함께 케이크를 자르시죠.”


이팔봉 회장이 윤수조 씨에게 플라스틱 칼자루를 보이며 말했다.
지켜보던 손자 준호와 준서가 재촉했다.
 
“할머니 그렇게 하세요.”


케이크는 멋있게 잘렸다.
준호와 준서는 고3과 고1이 됐다.
세월호가 세월을 삼킨 덕분인지 그들은 3년의 세월 동안 훌쩍 컸다.
이순정의 언니 이순애의 딸 홍소라도 중2가 됐다.
소녀가 ‘어머님의 마음’을 노래할 때는 두 어른은 눈물까지 흘렸다. 아마도 세월호 생각이 났을 것이다.


“너희들이 잘 커 줘서 고맙다. 이렇게 모이니 내가 행복하구나.”


이팔봉 회장은 감격의 눈물을 거둘 수 없다.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고 나서 그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마치 주머니에서 유언장을 꺼내는 것처럼.


“너희들이 직접 말하지 않으니 내가 말하겠다.”


모두의 시선이 이팔봉 회장에게 집중됐다.


“서 사장과 순정이는 이제 어색한 관계는 끝내라. 지금부터 한집에 살 준비해라. 너희들만 좋다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발언에 당황한 사람은 서정민과 이순정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윤수조 할머니는 어리둥절한 끝에 궁금증을 드러내고 말았다.


“결혼을 의미하시는 건가요?”


이팔봉 회장은 천천히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그만하면 된 것 같아요. 서로에게 의지가 될 거요.”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어른들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서정민과 이순정의 결혼 이야기는 더 이상 안 하기로 약속이나 한 듯 모두가 다른 화제에 빠졌다.


“오늘 속보에 여당 대표가 ‘청와대 세월호 첫 보고 시간 조작’을 언급했다던데 한번 체크해 봐야겠습니다.”


서정민이 일부러 화제를 바꾸었다.


대통령에게 사고 발생이 보고된 시점이 최초에는 9시 30분이었으나 6개월 뒤에는 10시로 둔갑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세월호 보고와 대통령의 첫 지시 사이의 시간 간격을 줄여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고의적인 조작이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사고의 책임을 안전행정부에 떠넘기기 위해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컨트롤타워로 명시한 대통령 훈령 318호 ‘국가위기관리 지침’도 불법적으로 사후 변경을 했다고 한다.


“김관진 안보실장의 지시로 내용을 변경했다는데…….”


서정민이 이순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얼마나 급했으면, 빨간 펜으로 줄을 긋고 내용을 변경했을까요.”


이순정이 뉴스에서 들은 바를 말했다.


뉴스에서 새 정부는 불법 수정을 공용문서 훼손 및 직권남용으로 본다고 했다. 2017년 3월 10일 박 대통령이 탄핵되고 3월 31일 구속됐었다.


이런 마당에 30분이 무슨 조작이냐?
그러나 “1분 1초를 다퉈서라도 최선을 다해 구조하라"고 한 대통령이 골든타임 30분을 조작한 것은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국민 앞에 나타난 것이 7시간 후가 아닌, 7시간 반이나 지난 후라는 사실은 두고두고 입에 씹힐 일이다.


세월호와 잠수함 충돌이라는 자로 교수의 주장은 인터넷에서 파란을 일으켰으나 세월호가 육상에 거치된 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인양 때는 계속 SNS에 글 올리다가 선체 모두가 드러난 이후에는 중단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해명하라"는 목소리에 “세월호를 똑바로 세워 좌현을 보고 싶다”고 마지막 말을 남긴 것은 인상적이라고 해야 하나.


해경 무선 기록과 레이더에 찍힌 괴물은 뭔가?


이에 해군은 반박한다. 당일 잠수함은 없었다. 맹골수도는 평균 수심이 37m로 안전 수심 50m를 훨씬 못 미쳐 이곳의 항행은 곧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구조 잠수횟수는 1,253회였으나 결과는 미약했다. 세월호 격실이 너무 열악했고 조속(潮速)은 4킬로노트(안전 조류 1킬로노트)로 잠수에는 악조건이었다.


주검이 나올 때마다 잠수부는 주검 앞에 “이제 집으로 모시겠습니다”라고 예를 갖추곤 한다.


“이 인사를 받은 주검이 많지 않았으니 안타까워요.”


유가족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 사실에 대한 진실 공방은 계속되는가?
- 선원들이 승객퇴선 명령 않고 탈출?
- 해경123정은 결정적인 순간 구조 중지?
- 마지막 119 신고전화 기록 행방불명?
- 인천해경이 가장 먼저 사고 인지?
- 승객들에게 선내대기 방송 10번 이상?
- 해경 AIS에 뜬 수상한 이동 표시?
- 사고 직후 일항사와 국정원과의 통화?
- 제주 해군 기지 철근 운반?


바닥과 맞닿은 세월호 좌현에는 커다란 파공이 나있다. 이걸 두고도 논쟁이 많다. 20여개의 파공이 인양 과정 때 삽입한 리프트빔 사이에 과도한 하중이 가해지면서 생긴 것으로 추정되나, 외부 충돌로 의심하기도 한다. 인양 과정에서 생긴 파공과 충돌로 인한 파공을 쉽게 구분할 수 없단 말인가.
 
“누더기가 된 상태로 인양됐으니 알 수 없죠.”


선체만 보면 짜증이 나서 서정민이 선조위 선배에게 따진 적이 있다.
이런 면에서 세월호 침몰 원인은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책임자를 열거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명박과 박근혜를 욕하고 한국선급과 해운조합을 욕한들 죽은 자식이 살아오랴. 국회의원에게 수난구호법을 왜 만들었냐고 따진들 무엇 하랴. 그렇다고 오보를 한 언론사에 망치 들고 갈 것인가.


깨진 창문을 막아 놓겠다던 차단봉은 없었다. 그물망 대신 진흙만이 선체를 덮고 있었다. 유실 대비를 한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의 방치 속에 얼마나 많은 진실의 조각들이 사라졌을까.


야간 880개 조명탄을 터뜨리고, 수십 척의 오징어 채낚기선이 불을 밝혔지만 진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자동차 블랙박스에 찍힌 해수유입 장면



2014년 4월 15일 저녁 9시 세월호는 출항했다.
인천-제주 264해리 19노트로 13시간 30분 항해 계획이다. 화물적재는 배 이상 초과한 상태.


당시 긴박한 순간에 일어난 주요 상황을 다시 기술해 본다.
과연 이럴 수 있는가?
의심하겠지만 사실은 사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물잔이 쓱 밀려나갔다. 선장도 기어다녔다. 8시 52분 첫 번째 선내 안내방송이 나갔다. 안전봉을 잡고 가만히 있으라. 119 전화로 구조 요청도 했다. 8시 55분 기관장은 선원이 아닌 기관원 전원 탈출을 지시했다. 8시 58분 해경 본청이 세월호 침몰을 인지했다.


9시 14분 비상발전기 정지와 동시에 형광등이 꺼지고 비상등이 켜졌다. 9시 17분 목포해경 헬기가 떴다. 9시 19분 YTN 첫 속보가 나갔다. 9시 26분 해경511헬기 도착했다. 선체 45도 기울었다. 9시 34분 해경123정이 사고해역 도착했다. 50도 경사였다.


“아이들아 갑판으로 다 나오라!”


해경123정이 대공 마이크나 메가폰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육성으로도 외치지 않았다. 왜? 아이들이 갑판에 다 나와 있는 줄 알았다나.


그러고도 9시 39분 육상 경찰서에 구조가 전부 가능하다고 해경이 말했다.
안전행정부가 해경 본청에 전화했다.


“구조는 문제없어요?”
“인근 배들이 있기 때문에 문제없습니다.”


9시 40분 선체는 55도 기울었다. 선장이 팬티차림으로 탈출했다.


“더 이상 움직이지 마라!”


선장 탈출 후에도 마지막 안내방송은 그렇게 나갔다.


9시 52분 선체는 61도 기울었다. 3층 로비 물은 허벅지까지 차올랐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소리친다.


“물이 찬다. 배가 잠기고 있어. 애들아 조용히 해.”


9시 58분 해경 간부가 은밀한 점검을 지시한 이유는?
사후 책임 추궁 때문일까.


참사라는 것은 모조리 잘못되었을 때 일어나는 것이지 한 가지라도 안전조치 되면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사고가 꼭 나야만 하는 정황 같다.


물이 안개처럼 한번에 퍼진다. 갑자기 물이 차오른다.


9시 59분 목포해경이 123정에 전화하여 근처 어선이 많으므로 그대로 뛰어내리라고 했다. 그런데 123정은 침몰선에 다가가지 않았다. 와류가 심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뛰어내린 승객들은 어떻게 헤엄치지?


헬기에서 항공구조사 4명이 선체에 내려가 있었으나 그들 중 누구도 선내 진입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장비가 없더라는 것. 훈련이 몸에 배어 있으면 죽는 줄 알면서도 들어간다.


학생들은 가만히 있었고 구조대원들은 나오기만 기다렸다.
이 무슨 조화인가.


해경123정에 총 13명
헬기 3대에 총 16명
총 30명가량의 해경 공무원이 갔다. 그 중 단 한 명도 선내에 진입하지 않았다.


오전 10시 어업지도선과 민간어선이 속속 현장에 도착해 구조 현장은 충분했다.
아직 배 안에는 400명이 있다.


10시 6분 선박에 물이 차오른 S1객실 창문에서 작은 불빛이 보였다. 두 명의 해경이 지주봉과 망치로 내려쳤지만 유리를 깨지 못했다. 강화유리는 모서리를 타격하면 쉽게 깨지는데 해경은 그걸 몰랐다. 세월호 선원이 더 큰 망치로 창문을 깼다.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모두 7명이 구조됐다. 배는 73도 기울었다.


10시 15분 분당 5도씩 기울던 배가 이제 많이 기울었다.


10시 17분 배의 마지막 메시지는 “조금 더 기울었어”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때 배는 108도 기울었다.
 
10시 18분 해경123정은 어선들을 향해 구조를 멈추고 철수하라고 했다.


해경의 철수 명령에도 민간어선은 세월호에 기어오르다시피 배를 댔다. 세월호 우현 난간에서 10명의 생존자가 나왔다.
 
아직 잠기지 않은 4층 B9객실 안에서는 누군가 연거푸 사다리를 던졌다. 바깥에선 쇠망치 있겠다, 로프 있겠다, 안에 사람이 보이면 젊은이들이 올라가서 한 사람씩 구해도 됐었는데…….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아유, 불쌍해서 어떡하지.


“한 사람도 피해 없도록 하라.” 국가안보실의 부르짖음만 메아리쳤다.


10시 30분 세월호는 병풍도 북방 3.5마일 해역에서 선수만 남긴 채 가라앉았다.


정말 골든타임 101분 살릴 수 없었나?


서정민과 이순정은 정리된 기록을 보며 가슴을 치곤했다.
그나마 어버이날 이팔봉 회장의 선언적 결혼 승낙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예식을 올리기 전까지는 같은 침대를 쓰지 않기로 한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두 남녀 데이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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