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드러누운 선체
이제 바로 세울 때
안전한 직립 위해 준비


▲안전하게 바로 세우겠다는 다짐




더 세월
(The Sewol)


제 38회



선체 직립 준비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세월호를 기억하게 하는 대중소설의 제목들이다.
기록을 통해 그때를 기억하는 작업은 이어진다.
구조자, 생존자와 유가족, 잠수사 등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진실을 인양하라」
구호가 꽤 괜찮았는데 배가 뭍으로 올라오고 나서는 효용이 반감되었다고나 할까.
인양할 진실이 생각보다 적은 탓인가.


세월호 선체가 2017년 4월 11일 오후 4시 목포신항 철재부두에 최종 거치되면서 2015년 8월 7일부터 시작된 인양작업이 613일 만에 끝났다. 인양작업이 완료되면서 목포신항에 마련된 현장수습본부는 미수습자 수습 체제로 전환했다.


“인양작업이 1년8개월이라는 힘든 대장정을 마무리했는데, 이제 상하이샐비지와의 계약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기자의 물음에 답하는 현장수습본부장.


“선체 좌현이나 램프 등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해 잠수부가 확보한 모든 영상자료는 유관 창구에 제출합니다. 나머지 진상규명은 정부에서 할 테고요.”


해양수산부는 상하이샐비지와 2017년 6월까지 계약했다. 규정과 절차에 따라 최종 처리 과정을 거치고 최종 보고서를 받아서 검토한 후 금액을 지급한다. 침몰해역 수색 작업은 계속 진행한다.


선체를 부두로 빼면서 모듈 트랜스포터의 일부 바퀴가 꺾였다. 순간적으로 선체가 6~7도 정도 기운 탓일까. 타이어 2,400개 중 6개가 파손됐으나 잠시 중단 후 작업이 재개됐다. 0.1mm 단위의 미세한 변화도 감지해낸다는데.


선체가 받침대에 거치된 상태에서 바람 등의 영향으로 쓰러질 가능성의 모니터링은 각종 전자장비나 기계장비를 동원해서 하는 것이 선결과제다.


인양과정에서 잠수부를 비롯한 인원들이 부상당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안전수칙을 지킨 덕분이다.


코리아샐비지가 워킹타워를 설치했다.


워킹타워는 크레인을 이용해 이동 가능하다. 선수와 선미 가까운 쪽에 2대가 설치된다. 워킹타워의 높이는 26m. 중간에는 개구부를 통해 받침대를 수평으로 설치해서 진입할 수 있다.


선체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위험 물질이 있는지, 철제벽은 얇지만 존재하는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다. 내부 상황 파악 후 정확한 방향을 설정한다.


유압 크레인차를 이용해서도 접근한다.


우현 안전난간은 위에서 밑을 살피고 작업자가 사다리로 출입하는 일을 돕는다.


우현 창문을 통해서도 진입한다.


선미 쪽 압착된 부분의 진입 방법은 더 협의할 사항이다.
 
반잠수선 갑판과 선체 내에서 수거한 진흙은 걸러서 각종 유류품이나 유골을 찾아낸다. 걸러내는 작업들을 거의 마무리했다.


참사 피해자 가운데 5명은 아직 미수습자로 남아있다.
단원고 남현철·박영인 학생, 양승진 교사, 일반 승객 권재근 씨·혁규 군 부자다.


유가족은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한 한 후 지금까지 계속 머물며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2017년 11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선체 수색이 마무리돼 가고 있는 시점에 의견을 내놓았다.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고 여길 떠나겠습니다.”


수색이 점점 끝나가면서 가족들은 밤을 새면서 많은 갈등을 했다.
남아야 하는 것이 희생자들을 위해 올바른 방법인지 고민했다.
영원히 가족을 못 찾을 수 있다는 공포와 고통이 점점 커져갔다.


“지지해주시는 국민들을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하기로 했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대표는 선언했다.


2017년 11월 18일
미수습자 5명의 가족은 목포신항에서 영결식을 가진 후 안산에서 3일장을 치렀다.
유해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유품을 태워 유골함에 안치했다.


수색에서 박영인 군의 교복 상의와 남현철 군의 가방이 발견됐다.
권재근 씨의 유품은 이삿짐을 실었던 트럭이 화물칸에서 발견됐고, 아들 혁규 군의 가방과 세면도구도 함께 수거됐다.

양승진 교사의 유품은 발견되지 않아, 평소 학교에서 사용하던 물품과 옷가지를 안치했다.


이들의 발인이 이틀 후 안산 제일병원과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양승진 교사와 남현철·박영인 학생은 평택 서호공원에, 권재근 씨와 혁규 군 부자는 인천 가족공원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 안치됐다.  


▲세월호 추모공원 화랑유원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해양연구소에서 유의미한 실험이 있었다.


바닷바람이 유난히 심한 2018년 1월
바헤닝언 해양연구소에서 선박 모형실험이 진행됐다.


크기를 약 25분의 1로 축소한 노란 모형배의 선회시험.
무게중심과 침로, 화물이동, 스태빌라이저 등을 계속 바꿔가며 200여 차례 항주를 반복했다. 세월호 모습과 가장 가까운 항주를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다.


현장에 4·16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과 진상규명분과장이 참관했다. 이들은 13일간 모형실험을 지켜본다.


영어와 불어를 잘하는 이순정이 통역관으로 참여한 것은 우연이었거니와, 서정민은 2차 모형실험 무렵 네덜란드로 오게 돼 그녀를 들뜨게 했다. 비록 서정민은 모형실험 참관과 관계없이 자비로 온 것이지만, 이팔봉 회장이 그들의 결혼을 승낙한 터라 네덜란드에 함께 있는 동안에는 호텔방을 따로 쓸 필요가 없는 것만으로 수지맞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걸 두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하지.”


두 사람이 네덜란드 여행계획을 의논하고 있을 때 서정민이 한 말이다.
이순정은 몹시 들떠 있었지만 말은 차분했다.


“신혼여행도 아닌데…….”


지금까지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하고 함께 방을 쓰기도 했지만 침대는 따로 썼다. 지금은 다르다. 같은 방, 같은 침대를 간섭할 사람이 없다. 무섭기만 하던 영감이 위수령을 해제했기 때문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는 생존자의 경험이나 증언과 상당히 어긋난다.
생존자들은 처음 배가 기울어졌을 때 몸이 붕 떠오를 만큼 큰 기울어짐을 느꼈다. 당시 화물칸에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보더라도 차가 튕겨 쓰러질 만큼 횡경사 각도가 컸다. 이번 모형실험에서 어떤 데이터를 입력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다를 것이다.


모형실험은 1월 항적 실험과 2월 침수 실험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모형배도 두 가지로 제작됐다. 항적용은 검은 수조에서 움직임이 잘 보이도록 노란색으로, 침수용은 세월호처럼 아래쪽은 파란색, 위쪽은 하얀색으로 제작됐다.


모형배가 처음으로 항주했다.

선조위가 설정한 화물량, 무게중심, 타각 등 조건에 맞춰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뱃머리를 돌리자 모형배는 원을 그리며 돌았다. 실험에 활용되는 조건은 세월호를 인양한 뒤 확보한 블랙박스 영상 등에서 얻은 것이다. 변수가 많고 불완전하지만, 그 영상이 없었다면 아예 실험조건을 설정하는 게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모형배에 무게추를 달았는데 지지하는 레일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얼마나 많은 화물을 실었으면 모형배에서도 이럴까.


2차 모형실험은 침수 과정을 밝히는 ‘침수 실험’과 ‘침몰 실험’, ‘실시간 항해 시뮬레이션’으로 구성됐다. 항해 시뮬레이션은 선체를 직접 조종하면서 사람의 조타 행위와 사고 당시 해역의 조류·방향·세기가 세월호 침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C데크 창문과 통풍구에서 바닷물이 처음 유입되는 것을 확인했다. 물이 C데크에 차오르더니 세월호가 더 기울어졌고 D데크와 E데크를 거쳐 기관구역까지 흘러들어갔다. 닫혀 있어야 할 선체의 수밀 구역이 열려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2차 모형실험은 2018.02.27 마무리되었다.
2차 실험 때는 김창준 선조위원장도 네덜란드 현장에 왔다.
현장에 들른 서정민이 소감을 물었을 때 그는 조심스러웠다.


“현장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진실규명에 필요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급회전에 의한 횡경사 발생과 침수에 의한 침몰로 볼 수 있다. 횡경사가 발생해도 침수가 없었다면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복합적인 원인들이 존재한다.

선조위원장의 설명에 서정민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결국 복원성과 수밀성의 문제로군요.”


“전문가로서 이해가 빠르시네요.”


“모형실험 결과는 국민에게도 공개되나요?”


“종국적으로 공개됩니다. 마린 보고서는 4월 말께 나올 것입니다. 선조위 운영 방침은 팩트는 공개하되 해석은 최후 보고서에 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조위 조사 보고서는 8월쯤 내놓을 예정이죠.”


“선체 직립을 결정하게 된 계기라도 있나요?”


“선체 조사는 조타실, 객실, 화물창, 기관구역으로 나뉩니다. 배가 왼쪽으로 누워있다 보니 기관구역에 대한 조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직립 후에 수색합니다.”


“기존 세월호 조사 보고서와 선조위의 조사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검경합동수사본부가 선박자동식별장치(AIS) 하나만 가지고 작성됐다면, 선조위는 블랙박스 영상과 선체 조사를 통해 진실규명에 나서고 있습니다. 보다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거죠.”


선조위 조사관들은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가 있음이 분명하다.


모든 실험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선조위가 데이터를 잘 활용해 사고 원인을 밝혀내리라.


모형실험 현장을 나온 서정민과 이순정은 해안 경치가 좋은 레스토랑에서 감자요리 스탬폿에 곁들어 전통주 게네베르를 마시고 적당히 기분 좋은 상태에서 로만손 호텔로 돌아왔다.


“결혼 전에 한 침대 쓰는 건 좀 어색하지 않아요?”


이순정이 샤워를 마치고 침대 쪽으로 다가오며 머뭇거리자, 서정민이 그녀를 들썩 안았다.


“이젠 모형실험 같은 건 없어요. 지금부터 실시간 항해랍니다.”


어제는 네덜란드 교민회 초청파티에 다녀왔는데, 한국인의 자존심을 지키며 사는 교민들이 자랑스러웠다. 오늘은 둘만이 바깥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 방으로 돌아온 것이다.


두 사람은 하루의 피로를 펼쳐놓고 자유로운 시간으로 들어갔다. 영감이 승낙한 이상 도덕적으로 부담이 없다.


그들은 침대 위로 올라갔다.


45도 기울면 아래로 추락하고, 50도가 넘으면 자력으로 움직일 수 없으며, 15분 만에 60도까지 넘어지는 배의 상황을 연상할 필요는 없다. 90도로 기울어 서로를 포옹하고 잠들었을 때 그들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지고 있었다.


▲세월호 모형실험



진상규명과 미수습자 수색 감독 권한을 가진 선조위는 선체 직립(直立)을 추진한다.
선체를 바로 세우면 어려운 구역에 들어가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 작업과 미수습자 수색이 동시에 가능하리라.


세월호 선체 안에 5% 정도 펄이 남아있고 좌현 부분이 압착돼 있는데, 거기에는 미수습자 유해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선체 직립 작업을 위한 예산이 많이 필요할 텐데요.”


기자가 국가 예산을 걱정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현장수습본부장은 수치로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직립 준비 기간은 5개월, 비용은 최대 100억원까지 들 수 있습니다.”


침몰 원인을 밝혀줄 기관실과 조타실 영상이 최초 공개될 것이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평형수가 부족하거나 배의 급속한 선회일 것이다.
그래서 평형수의 밸브를 조정하는 기관실과 배의 진로를 관장하는 조타실 조사가 필수다.


왜 인양 후 7개월 지나서야 선체를 세우기로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했다.


조사위 부위원장 김영모는 말했다.
“조사관 안전 확보와 좌현 확인을 위해 불가피했습니다.”
잠수함 충돌설을 제기한 신상철은 시니컬했다.
“여태 뭐했나? 그나마 직립결정은 다행이네요.”
다이빙벨 이종인은 분노했다.
“시간 끌기 아닌가요?”


선조위는 직립 후 조타 유압장치의 솔레노이드 밸브와 엔진 프로펠러의 오작동, 좌현 충돌 흔적과 스태빌라이저를 조사할 예정이다.


선체 문제에 있어서는 작은 이견에도 미수습자 가족들은 극렬하게 반발해왔다. 유체 찾기와 관련해서는 극도로 예민했다. 문 대통령의 선체 보존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선체직립을 적극적으로 거론했다.


“국민적 의혹을 우리 손에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선조위 부위원장은 각오를 다졌다.


왜 처음부터 세워서 인양하지 않았나? 세간의 질문에 대해 선조위의 판단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 않느냐, 였다.


2018년 2월 21일
직립(直立)을 위해 거치 316일 만에 세월호는 자리를 옮겼다
선저가 바다 쪽을 향하도록 90도 수평 회전시켜 바다와 50m 거리에 위치시켰다. 누적 이동거리가 1.5km에 달했다. 목포신항 바다로 향해 꽁무니가 보인다.


선체 하부에 모듈 트랜스포터(MT) 364축을 밀어 넣는 작업을 한다. 여러 대를 결합하면 지네처럼 함께 움직일 수 있다. MT가 들 수 있는 무게가 1만여톤에 달하는 만큼 평행이동에 큰 지장은 없다. 세월호 무게는 약 8,500톤가량(수평빔·펄 등 포함)으로 추정된다.


거대 중량물이 이동하면서 지반이 고르지 않아 몇 십mm씩 이동하면서 소리가 나는 정도가 있었다.


철제 빔 등 관련 구조물 제작을 거쳐 3월 1일 직립 선체 보강.


기존에 훼손된 부분이 있어 B데크(3층 객실부), D데크(1층 화물칸) 쪽에 일부 보강을 했다. 선미 6곳, 선수 3곳에 했으며 이동을 위해 B 데크 서포트 2개와 선저부 서포트 7개는 제거했고, 선체 보강재는 따로 식별이 가능하도록 했다.


모든 용접 부위 철판의 균열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비파괴검사를 했다.


직립 준비작업 초점은 선체를 원형으로 보존하며 이동하는 것이다.


▲선체를 90도 수평 이동하기 위해 모듈 트랜스포터 364개를 넣음



2018년 3월 23일
침몰했던 세월호가 물 위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지 오늘로서 꼭 1년.


선조위 선배와 유가족, 취재진이 세월호 내부에 들어갔고, 서정민도 따라 들어갔다. 사고 당시 승선자로서 선체내부를 잘 알거라고 생각하여 선조위는 그를 안내자로 추천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선내구조물의 불안을 안고 그들은 들어갔다. 안전모를 발끈 당겨 맨 그들의 모습만 보더라도 긴장돼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선체 바닥층이 처음 공개됐다.
조그만 통로를 거쳐 내려갔더니 진흙과 화물이 뒤섞여 진퇴양난의 지경이었다.


“지금 있는 곳이 제일 밑 부분이라는 E데크입니다. 왼쪽에 화물을 싣는 공간이 보이죠. 바로 오른쪽으로 보면 구멍이 뚫린 곳이 있죠. 이 안쪽이 기관구역입니다.”


기관실은 객실과 함께 미수습자 5명의 유해가 발견될 가능성이 큰 장소이다. 하지만, 비좁은 공간에 붕괴될 우려도 커서 아직까지 접근이 어려운 상태이다.


선수의 4층 객실로 들어가 봤다.


“단원고 학생 60명이 머물던 곳입니다.”


무너져 내린 격벽 아래로, 눌려 있는 단원고 교복과 옷가지들이 눈에 띄었다.
둘러본 선체 벽면엔 대부분 녹이 슬었고, 곳곳이 심하게 휘어졌다.


“유류품을 수습해야 하는데 격벽을 절단하면 무너져 내리니 수색을 못하고 놔둔 상황이에요."

선배 선조위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C 데크(화물칸2층)가 많이 붕괴돼 있어요. 직립과정에서 추가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지지대를 설치 중입니다."


5월 말까지 내부 보강 작업이 마무리되면, 세월호는 침몰 4년 만에 바로 세워지게 된다.


피해구제 및 지원을 위한 특별법의 골격도 마련됐다.
- 배상 및 보상
- 피해자 및 피해지역지원
- 추모사업


선체 수색과 동시에 침몰지점 수색과 이동한 경로인 맹골수도에서 목포신항 쪽으로 약 3㎞ 수중 지역에 대한 추가 수색도 한다.


“수중수색을 지속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 텐데…….”


“최종 보고서를 받으면 그것도 검토할 것입니다.”


“지지해 주시는 국민들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해야죠.”


기자의 질문에 선조위는 친절하게 대답한다.

SNS에서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세금 도둑 '떼 좀 그만 써라.”
“이제 그만 좀 해라.”

유가족은 매서운 국민들의 눈치를 보고 있어야 하는가.


얼마 전 통과한 ‘사회적 참사법’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세월호 피해자를 위로해 줄까.


4월 10일까지 선체에 수직 빔 설치.
5월 26일 부두와 4㎞ 거리에 있는 해상크레인을 가져와 작업 준비 완료.

L형 철제 빔에 힘을 가해 실제 회전을 시키는 D데이는 5월 31일 예정이다.
직립과 정리 작업은 6월 14일까지 마무리한다.


노아의 방주와 크기가 비슷한 세월호는 지켜보고 생각해볼 일이 많다.


▲찢어진 선체 내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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