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웠던 게 일어섰다

너무 오래 누워 있어

상한 곳이 많았다

 

▲선체 직립 구상도

 

 

 

더 세월

(The Sewol)

 

제 40회

 

 

선체 직립

 

사무실 창문 너머 보이는 하늘은 유리알같이 맑다.

미세먼지 없는 날씨는 사무실 근무자를 바깥으로 불러내려 한다.

5월의 싱그러운 바람이 창가에 살랑거리는데…….

 

‘바깥으로 나와 햇살을 부비고 사랑 좀 하라.’

 

얄미울 정도로 화창한 날씨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사무실 안의 두 남녀는 한사코 소파에 앉아 TV만 바라보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서 사장님, 지금 배가 일어섭니다! 보세요!”

 

4년 동안 옆으로 누웠던 세월호가 일어서려는 순간, 이순정은 소리쳤다.

약혼한 상태인데도 그녀는 예비 배우자를 사장으로 호칭한다.

 

서정민과 이순정은 광화문 사무실 소파에 앉아 이 장면을 보기 위해 기다려 왔다. 다른 TV채널에서는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을 데려 나오고, 야당이 드루킹 댓글조작 특검을 주장하고, 대통령 취임 일주년을 맞이하여 지지율이 80%로 고공행진한다는 뉴스를 보도하곤 하지만 이 채널은 세월호가 서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고 있다.

 

5월 10일 낮 12시 맑음.

예정보다 3주 앞당겨 세월호 선체가 직립했다.

 

4년간 옆으로 누워 있었던 선체는 94.5도까지 바로 세워졌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오전 9시부터 목포신항에서 1만톤급 해상크레인으로 선체를 세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전날 선체를 40도까지 들어 올리는 예행연습에 성공한 뒤 선체를 바닥면에 완전히 내려놓지 않고 8도가량 세워진 상태에서 이날 작업에 착수했다.

 

직립 작업은 오전 9시 해상 크레인이 세월호 선체 아래 수평빔 33개에 연결된 쇠줄을 4,300t의 힘으로 잡아당기면서 시작됐다.

 

작업 시작 30분 만에 선체는 바닥에서 40도, 1시간 30분 만에 60도까지 세워졌다.

3시간 만에 직립을 완료했다.

 

오전 만조를 기하여 작업은 해상크레인에 쇠줄을 앞뒤 각각 64개씩 걸어 선체를 뒤편에서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쇠줄을 연결하기 위해 선체 바닥면과 좌현에 'L'자 형태 받침대인 수평빔(33개)과 수직빔(33개) 총 66개가 이미 설치돼 있다.

 

작업 과정은 40도 이후 잠시 작업을 멈추고 앞뒤 쇠줄에 걸리는 중량을 미세 조정한 뒤 다음 공정을 시작했다. 무게중심이 뒤로 넘어가면서 배 바닥을 받치던 수직 빔에도 고루 힘을 가하기 위한 점검 작업은 긴장되며 어려웠다. 선체와 쇠줄 무게를 합하면 10,430톤에 달한다.

 

이 때문에 크레인 작업팔(붐대)이 수직 빔에 큰 힘을 전달하는데 시간이 다소 소요됐으며 오전 10시 37분에야 선체는 60도까지 세워졌다. 선체는 90도 직립을 넘어, 낮 12시 10분 94.5도 직립을 마치고 작업 종료했다.

 

“왜 바로 세우지 않고 기울려 세웠나요?”

 

이순정은 서정민의 설명을 듣고 싶었다.

 

“이미 좌현에 화물과 펄 등이 쏠려 있고 그쪽에 설치한 받침대 무게가 선체 무게중심을 이동시켰기 때문이지.”

 

“날씨도 도와줬군요.”

 

날씨가 나쁘면 크레인 장력에 헝클어짐이 생기기 때문이다.

완전히 직립 작업이 끝나기까지는 70개 단계 세부 공정이 필요했다.

 

선조위와 현대삼호중공업은 직립을 위해 선체에 설치했던 장치를 제거하고 안전 보강 작업을 한 뒤 이르면 다음달 초 4층 좌현과 기관구역을 중심으로 수색을 재개할 방침이다.

 

누워 있는 배를 편안하게 눕혀두면 어떤가?

의문을 가질 만한데 다음의 이유로 바로 세워야 한단다.

 

첫째, 미수습자 5명 수습

둘째,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

셋째, 물리적 공간의 사후처리

 

선박이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미수습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직립은 선체 접근을 용이하게 하므로 공간 활용이 중요하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물리학적, 공학적, 역학적 견해를 총동원함에도 여전히 규명하지 못한 원인을 선조위는 찾아내야 하는 상황에 있다.

 

현대삼호중공업과 직립작업을 계약한 지 100일 만에 선체를 세웠다.

선체가 훼손된 상태이기 때문에 보강과 고박에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직립 작업을 원활히 하기 위해 선체는 사전에 방향을 90도 틀어 부두와 평형하게 해뒀다. 부두 안쪽으로 60m 떨어진 위치는 해상크레인 붐대가 선체와 61도를 이뤄 가장 큰 힘을 낼 수 있는 지점이다.

 

▲세월호 직립작업 과정

 

 

침몰에서 인양을 거쳐 육상 직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기술하고 넘어가는 게 예의일 것 같다.

 

2014년 4월 16일 국민의 가슴을 태우며 가라앉은 세월호는 사흘 뒤 선수 부분이 물에 잠기며 완전히 침몰했다.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남기고 선원들만 배를 탈출해 공분을 샀다.

 

국제입찰을 통해 인양업체로 선정된 상하이샐비지는 2015년 8월 7일 인양 작업에 착수했다. 당초 계획했던 인양완료 시점은 2016년 6월이었다.

 

하지만 수중 작업이 예상보다 훨씬 복잡해 인양이 지연됐다. 특히 화물칸 C 및 D데크의 기름을 제거하고, 선미 부분을 굴착해 리프팅 빔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2017년 4월 9일 세월호가 육상에 올려진 뒤 미수습자 9명을 찾는 수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3·4·5층 객실 구역과 화물칸에 대한 2차례 정밀수색이 이뤄졌다.

 

7개월 가까운 수색 끝에 단원고 고창석 교사, 단원고 조은화·허다윤 양, 이영숙 씨 유해를 수습해 가족 품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단원고 남현철·박영인 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 등 5명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2017년 11월 16일 목포 신항 수색 현장을 지키던 남은 미수습자 가족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목포 신항을 떠났다.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르며 가족을 가슴에 묻었다.

 

선체조사위원회는 2018년 2월부터 세월호를 바로 세우는 직립 작업에 착수했다.

 

각종 기계·설비가 얽혀 있어 작업자 안전 우려로 제대로 수색하지 못한 기관실 등을 추가로 수색하고, 진상규명 위한 선체조사를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제 직립에 성공했으므로 유해 수습은 언제 가능하죠?”

 

“준비작업에 3주 걸린다니 6월 초 가능하겠구먼.”

 

좌현빔 제거와 워킹타워 설치 등 마무리 작업을 하고, 미수습자 5명의 유해가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이 제기된 기관실 등에 대한 마지막 수색작업을 벌인다.

 

진상규명을 위해 조사가 필요한 기관실 컨트롤박스, 타기실, 프로펠러 등이 있는 세월호 우현을 집중 조사하고, 일부에서 제기된 '외부 충돌설' 규명을 위해 누워 있는 선체 좌현도 자세히 들여다볼 계획이다.

 

선조위는 세월호 선체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국민 의견을 수렴해 정부에 권고할 예정이다.

 

선체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국민안전 교육관 등으로 사용하는 방안과 객실 등 선체 일부를 보존하는 방안, 앵커 등 세월호 상징물만 남겨 활용하는 방안 등 3가지 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선조위원장은 "선조위 활동 기한인 8월까지 침몰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선체 직립 완료

 

 

선체 직립작업 생방송이 끝나갈 무렵 사무실로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서정민의 절친한 친구 소종민이었다.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에 친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은 고교와 대학 동기 동창이다.

소종민은 해외취업선만 20년 이상 승선했다. 기관장으로 15년 근무했으니 기계의 소리만 들어도 고장의 유무를 알 만큼 기계 감각을 가지고 있다. 너무 성실해 친구들은 돌부처로 부르기도 한다.

 

“시간이 늦었지만 점심이라도 함께……, 아니면 커피라도?”

 

부산에 거주하는 그는 하선 휴가 중 잠시 짬을 내서 상경했단다.

꿀맛 같은 짧은 휴가 중에도 찾아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사무실에서 악수를 했을 때 서정민의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꼭 잡았다.

 

“마침 우리도 점심 나가려던 참이야. 같이 가.”

 

‘우리’에는 이순정이 포함됐다는 뜻이다.

서정민이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은 있으나 한 사무실에서 약혼자와 근무할 줄은 몰랐던 소종민이 ‘축하의 밥’을 사겠다고 한다.

 

광화문광장에서 몇 걸음만 하면 도착할 수 있는 포시즌스 호텔로 갔다. 개장 초기 이세돌과 알파고가 세기의 바둑 승부를 겨룬 곳으로 유명하다.

 

호텔 2층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보칼리노에 자리를 잡았을 때, 좁은 선박에 익숙한 기관장 소종민은 “한국에 이런 호텔이 있었나?”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요리에 익숙한 이순정이 만족해하자 대접하는 그로서도 기분이 좋았다.

 

세 사람이 테이블에 앉았을 때 기관장은 마주 앉은 두 남녀를 바라보며 ‘약혼 축하한다’는 말을 먼저 꺼내고 말을 이었다.

 

“세월호가 바로 섰다고 하는데 사고 원인이 나왔는지?”

 

많은 화제를 제쳐두고 세월호 이야기부터 시작한 것은 여객선의 피해자인 서정민을 배려한 이유일 것이다.

 

“외부 충격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으나 이제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해. 예컨대 기관실, 타기실 등에서 말일세. 기관장이라면 찾을 수 있겠구나.”

 

“조타실에서 급변침한 게 원인 중 하나라고 들었었는데?” 기관장이 물었다.

 

“솔레노이드 밸브에 의심을 두기도 하더군.”

 

“밸브의 고착이 원인일 수 있겠군.”

 

기관장다운 진단이다.

솔레노이드 밸브는 선교 방향타의 전기신호를 타기실 유압신호로 바꾸는 것으로 좌우 라인을 개폐해주는 밸브이다. 밸브는 전기적으로 작동하고, 유체의 흐름을 완전 닫힘 또는 완전 열림 방식으로 조절하는데 사용된다. 보통 원격 제어가 요구되는 곳에서 사용된다.

 

“원리는?”

 

서정민은 대충 알고 있었으나 기관장의 의견을 듣고 싶어 물었다.

 

전기를 가하면 솔레노이드 코일은 플런저(원통관) 내부의 강철 플런저를 들어올리는 강한 자력을 제공한다. 이것은 평상시 닫혀 있는 밸브의 오리피스를 열고 액체나 기체의 흐름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의 설명이었다.

 

선체가 바로 서는 순간 유족의 마음은 어땠을까?

 

서정민은 그때의 순간을 TV에서 찬찬히 보았다.

작업을 지켜보던 일부 희생자 유족은 “기도합시다” 하며 고개 숙여 눈물을 훔쳤다.

선체가 일어서는 과정에서 이따금 굉음이 울려 긴장이 감돌기도 했지만 직립은 무사히 이뤄졌다.

 

“물속에서 바로 세웠더라면 훨씬 쉽고 비용과 시간이 덜 소요됐을 텐데…….”

 

기관장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유체 손상과 유실을 염려해 유가족들이 반대했지.”

 

서정민의 대답에 “그럴 수도 있겠네” 그는 수긍하는 눈치였다.

 

선체가 세워지면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좌현이 모습을 드러내자 감동과 의아함이 교차했다.

 

좌현 부분은 네티즌수사대 자로가 ‘잠수함 충돌’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본격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레이더영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주황색 괴물체를 근거로 그렇게 주장했던 것이다.

 

선조위원장은 “최근에 제기된 외력설은 좌현 뒤쪽에서 측면 스태빌라이저를 밀고 지나간 시나리오”라며 “이건 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 있어서 조사 중이며 아직 결론을 내릴 단계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바로 세운 뒤에는 서둘러 선체 밑바닥을 받칠 구조물을 추가해야 한다.

직립이 마무리되었으니 그동안 진입이 불가능했던 선수 좌현 일부 공간 등에 대한 수색이 이뤄질 예정이다.

 

엔진룸이 있는 세월호 기관구역은 각종 장비가 얽혀 있고 아직도 펄이 많아 정밀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프로펠러의 오작동과 선체 좌현의 충돌 흔적 등 침몰원인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해소하려면 선체를 세워놓고 조사하는 게 필수적이다. 5명 남은 미수습자 수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일선 선원들은 세월호 이후 어때? 훈련 자세가 달라졌다든지…….”

 

현장이 궁금해서 서정민은 물었다.

 

“훈련에 임하는 정신이 많이 달라졌다고 할까. 훈련이 비상시 행동을 좌우한다는 걸 인식해 가는 것 같아. 미흡하지만 선주의 의식도 많이 바뀌었고.”

 

현장 실무자로서 기관장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재혼이라고 청첩장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알지?”

말을 남기고 기관장 소종민은 부산으로 내려갔다.

“Bon Voyage!"

서정민과 이순정은 그의 안전항해를 기원했다.

 

▲포시즌스 호텔 보칼리노 레스토랑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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