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세월을 삼켜
4년 반의 역사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
서정민과 이순정의 가족 합가?
뭉쳐야 산다고 하면서…


▲대가족 행복




더 세월
(The Sewol)


제 45회

(마지막 회)



뭉쳐라


선체조사는 끝났지만 미수습자 수색은 계속되고 있다. 기관실에서 뼈 조각이 발견되어 모두들 흥분하는 순간이 있었으나 유전자 검사 결과 이미 수습된 자의 팔다리뼈임이 확인됐다. 물론 실망이 컸다.


미수습자 다섯 명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영원히 미궁에 빠져버리고 말 건가?


9월 2일 세모그룹 회장의 장녀가 대법원에서 실형 4년과 추징금 19억원이 확정됐다. 이는 1심과 2심의 판결과 같은 것이다. 디자인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관계사로부터 24억원을 부당 지원받은 혐의란다.


그동안 검찰의 출석 통보를 받고도 불응하다가 프랑스 경찰에 체포됐으나 송환 결정을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하며 버티다 지난해 6월 범죄인 인도 절차에 따라 국내로 강제송환됐던 것이다.


국민의 4분의 1이 전과자인 대한민국에서 그녀가 전과자가 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으나 4년 동안 해외서 버텨온 노력이 아까울 수도…….


차남도 찾아 데려올 수 있으려나?


사람의 관심은 확장성이 좋아 멕시코에 있을지 모르는 차남을 상상하기도 한다.
 
세월은 흘러 4년 5개월 만에 진도 팽목항 분향소가 9월 3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개발 예정이었던 분향소 자리는 이제 공사가 재개된다. 팽목항 내 ‘기다림의 등대’와 추모 조형물은 보존되고, 분향소 내 희생자 사진·유품과 추모 상징물들은 안산시 고잔동 ‘4·16기억저장소’로 옮겨진다.


기무사가 세월호 유가족을 개별 조사하고, 해수부가 특조위 동향을 ‘청와대 단톡방’을 통해 직접 보고했다는 정황이 나오자 유가족은 더 들썩인다.
당황스럽게도 4·16가족협의회가 참사 전체를 재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서정민의 고민은 좀 색다르다. 국민의 세금을 더 투입해야 한다는 사실보다 ‘더 세월’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가 먼저 지쳐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작가 덕분에 자신의 이름이 인터넷에 제법 알려졌는데 말이다.


‘쓰는 이의 고통이 읽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 계속되리라!’


작가는 그런 각오로 소설을 쓴다고 언젠가 말한 바 있다.


서정민은 이에 호응하여 한마디 하고 싶다.


‘구조하는 이의 고통이 구조 받는 이의 행복이 될 때까지 계속되리라!’


작가는 인터넷방송이 계속 거론하는 두 가지를 다시 생각하며 이야기를 끝내야만 한다.


첫째 왜 침몰했는가?
둘째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


전개된 상황이 너무 상식 밖이어서 선원도, 해경도, 청와대도, 심지어는 전문가도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 문제는 신(神)도 해답을 비켜가는 것 같다.


서정민이 경험과 직관에 의해 침몰 원인을 내인설이라고 말하고, 구조를 고의적으로 회피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해도, 각자 소견대로 생각하는 국민 모두를 설득할 수는 없다. 다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살고 있음에 만족해야 한다.


소설의 마무리에 앞서 작가는 서정민의 가족에 대해서 간략하게 서술하려 한다.


최근 이순정의 몸이 이상한 조짐을 보인다.


“배를 한번 만져 보세요.”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지만 간혹 침대를 같이 쓰곤 하는 두 사람.
서정민이 이순정의 배를 만지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배가 아픈 건 아니지?”


“생명이 움직이고 있는 거 못 느껴요?”


잠깐.


“뭐? 우리가 실수, 아니면 축복?”


콘돔 한 번 사용하지 않은 남자가 할 질문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럴 때 그가 어떤 말을 해도 놀라움은 숨길 수 없다.


서정민의 어머니가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해서 그의 방에서 쉬고 있는 이순정은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늘 오전에 병원에 갔다 왔는데, 임신이래요.”


정신이 돌아온 서정민은 비로소 웃음을 보였다. 곧 마흔이 되는 여성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과 자신의 씨가 생명으로 움 튼다는 사실로 두 배의 경이로움을 맛본다.


임신은 4주 정도 되었다고 한다.
아이의 작명 문제에 이르자 그의 제안은 빨랐다.


“태어나는 아이가 고추든 따개비든 ‘화, 해’의 글자 중 하나를 택하면 어때요?”


“아빠 될 사람이 고상치 못하게 따개비가 뭐예요.”


그녀의 질책에 시선을 멀리 두며 시치미를 떼는 서정민.
죽은 자와 산 자의 ‘화해’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그렇게 말했을 뿐인데.


“결혼 전 임신에 대해서 장인께선 어떻게 생각하실까?”


아직 결혼 전이지만 서정민은 회장을 그렇게 호칭하면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걱정 마세요. 아빠는 평소에도, 프랑스에서는 미혼모가 50퍼센트 이상이라는데 약혼한 사람이 애를 가지는 게 무슨 흉이냐고 하시더라구요. 우리 아빠 진짜 신식 사람 아닌가요?”


기쁜 일이다.

서정민은 한국의 출산율을 지적한 전문가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국가는 40대 출산을 환영한다. 낳아만 주면 양손을 들고 반기겠다. 출산율 0.9라는 치명적 세계최저 수준을 극복하려면 40대 여성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서슴없이 아이 좀 낳아 달라고 애원한다.


▲임신의 기쁨



9월 18일, 흰 뭉게구름이 떠 있는 가을 하늘은 맑디맑다.
땅에는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며 뭉게구름을 향해 손짓한다.


창경궁 옆 평양냉면집에서 두 사람은 냉면을 주문했다. 이순정이 더 적극적이었는데 태아가 원하는 것 같다고 그럴듯한 핑계를 댔을 때, 서정민은 토를 달지 않았다. 뭔가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여자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주고 싶었다.


“냉면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겨울에 먹는다지.”


그는 이순정의 선택에 호응하는 추임새를 넣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세 번째 만나는 날에 남한에서 평양냉면을 먹는 것은 더 의미 있다고 서정민이 말했다. 아이는 태어나서 통일국가에서 평양 배우자를 만날지 모른다고 그가 덧붙인 것은 대통령 전용기가 서해를 경유, 평양으로 가는 것을 보고 더 고무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의 결혼은 12월 둘째 금요일로 정했다.
임신 4개월이 넘으면 드레스가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그 전에 예식을 올리는 게 좋다는 의견을 받아들였다. 해외 신혼여행은 뒤로 미루고 우선 국내 휴양지에서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는 계획을 세웠다.


살림집은 한남동 빌라로 정했다. 이팔봉 회장이 5년 전 사뒀던 것을 임대 기간이 끝나자 회수하여 딸의 신혼집으로 내 놓았다. 숨은 뜻은 전 가족을 이 집으로 몰아넣는 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희망대로 가족회의에서 합가하는 문제가 통과됐다. 사별하고, 이혼하고, 사고 당하고, 결혼하고…… 끝없는 소용돌이를 헤쳐나가는 일은 오로지 ‘뭉치면 산다’는 어른의 두 마디에 가족들은 표를 던지고 말았다.


합류에 앞서 가장 큰 걸림돌이 있었는데, 안사돈 즉 서정민의 어머니, 윤수조 여사가 합류하느냐의 문제였다. 이팔봉보다 세 살 많은 그녀는 말수가 적고 성실한 편인데 한 집에서 바깥사돈과 어찌 함께 지낼 수 있느냐고 아들 서정민한테 토로한 바 있다. 이런 사실을 안 이팔봉 회장이 가만히 뒷짐만 지고 있을 리 없다.


“사돈마님, 이제 우린 사돈 사이면서 참사 아픔을 나누는 가족입니다. 제가 집밥을 좋아하는데 가끔 밥도 좀 퍼주시고요. 사돈이 아니라 그냥 친구로 지내면 저는 마음 편하겠습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리고 손자들도 함께 있어서요.”


“아, 알겠습니다. 손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하시는군요. 저는 손녀만 있어서 그런지 준호, 준서 이 녀석들이 친손자같이 정이 들어요. 저를 위해서라도 같이 계셔주십시오.”


“사돈어르신께서 불편하실 터인데…….”


“저는 우리 모두가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돈마님께서만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


얼마 전 재판에서 유행한 ‘묵시적 청탁’이 지금의 경우도 통용되는 것같이 보였다.
윤수조 여사는 테이블 위 찻잔을 커피에서 생강차로 바꾸었다.
건강을 챙겨주는 그녀의 호의에 이팔봉 회장은 친구 이상의 감격을 느끼면서, 두 가정을 합치는 일이 순조롭게 되리라는 확신에 차 있다.


빌라는 1층에 4개의 방, 2층에 3개의 방으로 구성돼 있다. 대가족이 거주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다만 가족의 구성이 혼합되어 서로 불편함을 느낄지 모른다.


1층 거주자는 이팔봉, 서정민, 이순정, 홍소라 4명이지만 출산하면 식구 한 명이 더 늘어난다. 주간 도우미녀를 합하면 6명이다.
2층 거주자는 윤수조, 서준호, 서준서 3명이다.


집이 물론 크다고 하지만, 혼밥, 혼술, 졸혼 등의 시대에 9명이 한 지붕 밑에서 산다? 시대를 역행하는 일은 아닌가. 실험이라면 대단한 시도이기도 하다.
이 아이디어는 70세 나이의 이팔봉 회장의 머리에서 나왔다.
 
세월호로 인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갈등이 많았다. 가정에서는 부부의 대화가 줄어들고 직업이 무너지고, 사회는 규범을 지키는 자가 손해 본다는 피해의식이 커져 가며, 국가는 이념, 지역, 세대 갈등이 증폭됐다. 화해의 정신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 서정민은 담장을 타고 가는 외로운 고양이를 따라 걷는 기분이다.


세월호로 고통 받는 자들의 치유는 공동체의 협력이 필요하다. 가족은 물론 사회와 국가가 함께 책임을 느끼고 유가족이 소속의 일원으로 복귀하도록 정신적, 육체적 도움을 줘야 한다. 무엇보다 구성원 간 소통과 교감이 중요하다. 가족 끼리 대화와 격려, 사회적, 국가적 관심과 지원은 그들이 정상으로 회복하는 데 힘이 될 것이다.


광화문과 대한문이 각각 촛불과 태극기로 나뉜 것을 보았다.


세월호로 인해 분열된 마음을 접착시켜 나가야 한다. 참사를 정치적 혹은 다른 목적으로 이용했다면 반성해야 한다. 희생이 컸던 만큼 사회적, 국가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국가 시스템 작동에 파열음을 내기도 했다.


“우리 집 대가족은 심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순정이 말했다.


“그럼 장인어른의 희망이 성취되는 날이 오겠네요.”


서정민과 이순정은 대가족 가정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에 대한 대화를 나눠갔다.


“안사돈과 바깥사돈의 대화가 길어도 무방하겠지요?”


“좋은 현상으로 기대해도 좋겠군. 소통이 트라우마를 완화시켜 줄 테니.”


“그래도 걱정은 돼요. 두 분이 너무 가까워지면?”


“노인의 가장 취약 부분은 외로움이랍니다. 두 분이 외로움을 잊고 장수하시길 바래.”


이번에는 아이들에 대한 대화로 바꾸었다.


“소라가 너무 예뻐서…… 좀 그렇죠?”


형제자매간에도 남녀유별은 필요한데, 이순정이 조카 걱정부터 한다.
다락방에서 아이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대화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이제 대학생과 고등학생인 오빠들이 중학생인 여동생 하나 잘 살피는 신사도를 발휘해야지.”


애들은 참 잘 큰다고 두 사람은 수긍했다.


이순정은 강릉 경포대로 가서 파란 바다를 보자고 서정민을 꼬드겼다. 20년 전 한 바리스타로 시작된 카페가 지금 젊은 연인들의 커피거리로 발전한 곳이다. 강릉은 직접 커피를 가져와서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데 성공했고, 체계적인 커피 교육과 커피 박물관이 강릉을 커피 메카로 바꾸어 놓았다.


“커피 한잔 사 주실래요. 거리의 커피향이 좋네요.”


며칠 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은 사람처럼 이순정이 어리광을 부렸다.
그들은 테라로사 카페에서 바다 야경을 즐기며 커피를 마셨다.


“커피가 태아에게 좋지 않을 텐데?”


“하루 한두 잔은 괜찮대요, 의사 선생님이.”


“태아에게 신경 쓰는 산모의 정성을 알겠네.”


“뱃속 생명에 집중하렵니다.”


“부부 사랑에 태아가 갑질할까 봐 벌써부터 걱정되네. 후.”


사랑은 너를 위해 나를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생전 먹지 않던 음식을 먹고, 고치지 않던 습관을 바꾸는 게 사랑이다. 아이의 사랑 갑질을 허용하는 것도 아버지의 사랑 표현이기도 하리라.


세월호는 미수습자 수색과 영구 거치, 침몰 원인 등 숱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제 세월호 역사와 함께 서정민 가족 이야기가 어우러진 소설은 여기서 마무리할까 한다.


가이샤의 것은 가이샤에게, 하늘의 것은 하늘에 드려라, 하는 말처럼 각자의 문제는 각자에게 맡겨둔다. 세월호의 전반적 이야기는 소설이라는 기억저장소에 영구히 남아 있을 것이다.


▲강릉 안목항 커피거리 야경


<끝>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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