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등단 단편으로 '후지산 등반'을 올립니다.

오래전에 써 두었던 것을 살을 더 붙여

등단 작품으로 완성도 있게 가필한 것입니다.

심사해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멀리서 본 후지산


 

 

   후지산은 참 신기하다. 멀리서 바라보면 가까워 보이고, 가까이서 보면 멀어 보인다.

   “일본의 지붕은 요렇게 신통방통한가.”

   사람들은 후지산을 신통한 산으로 여겨왔다. 일만 년 전 화산 폭발로 형성된 산은 지난 천년 동안 십여 차례의 폭발이 있었고, 최후의 것은 1707년에 일어났다고 한다. 삿갓을 씌워 놓은 산은 언제 또 뚜껑이 열릴지 모른다. 지금도 살아있는 활화산이라고 하니까.

   일본인이든 외국인이든 후지산을 한 번 쳐다본 사람은 오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도쿄에서 직선거리로 백 킬로미터는 그런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마치 수탉이 지붕 위에 올라가 소리 한 번 크게 지르고 싶은 것처럼.

   이 산에서 수련하는 무사들이 많았다고 하여 후지산(富士山)이라고 했던가.

   산은 고대부터 신의 공간인 하늘과 인간의 공간인 땅 사이의 중간 지대로 신명(神明)이 깃든 곳으로 여겨 왔다.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 영감의 원천이며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삶의 토대요, 생명의 근원이자 영혼의 고향인 어머니로 여겨지곤 한다.

   지진과 화산 폭발이 많은 일본에서 신이 산을 지배한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일지 모르겠다.

   일본에는 슈겐도(修驗道)라는 독특한 산악수련문화가 있다. 기이산지(와카야마 현)의 참배길을 걷다 보면 흰옷을 입고 순례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이런 영지와 참배길이 2004년에 세계문화유산이 될 줄이야. 일본인의 문화, 종교, 성지의 독특한 결합 능력이 발휘된 것이다.

   고도(古都)인 교토의 남쪽으로 미에, 나라, 와카야마 현에 걸쳐 있는데, 와카야마현의 고야산(高野山) 지역이 중심지다. 수많은 절, 신사들이 밀집해 있어 매년 1,500만 명이 의례와 산행 방문을 한다니 극성을 알만하다.

   후지산도 이런 점에서는 커다란 수련장과 다름없다.

   이와 비교하여 한국의 산은 역사의 산, 사람의 산이기도 하다. 2천여 개나 분포돼 있는 산성은 자연과 문화가 결합한 유산이 됐다. 계단식논과 같은 산지생활도 수 백 년을 유지해온 산촌마을 같은 공동체 주거경관이다. 산악신앙으로 산천제 의례는 동아시아에서도 한국이 가장 성행한 문화전통이다. 신라의 삼산오악 제의를 비롯해 고려와 조선에 걸쳐 왕실, 고을, 마을에서 전반적으로 산천제가 이루어졌다. 마이산 산신제는 지역축제의 일환으로 최근 부활됐다. 중국이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몇몇 소수민족 외에는 산악신앙이 퇴색했고, 일본은 신도(神道) 문화 속에 수렴됐다.

 

   국적을 달리하는 세 남성이 일본의 지붕 위로 올라가기로 결심했다.

   “후지산에 깃발을 꽂아봐야 일본 방문의 의의를 찾는 겁니다.”

   등산을 유난히 좋아하는 부정기선부 기획관리과의 엔도 과장대리가 기어코 두 외국인을 꼬드겨서 등산배낭을 메도록 했다. 한 사람은 인도에서 온 마인다르 아바스 칸이요, 또 한 사람은 한국에서 온 송대길이다. 80년대 초반 급격히 발전하는 일본의 해운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이 나라를 찾은 것은 해운의 미래 비전을 배우겠다는 결의임에 틀림없다.

   칸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산맥 아래의 아삼 지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뭄바이로 유학 나왔다. 대학에서 해운을 전공하고는 인도에서 가장 큰 포워딩 회사에 입사했다. 이번 일주일간 일본 출장을 나와 K사의 컨테이너터미널을 견학 중에 있다.

   바다에서 청춘을 헌신한 송대길에겐 후지산 등반은 신선한 경험이다. 엔도가 권하지 않았어도 해발 3,776미터의 후지산은 한번 올라가보고 싶었던 산이다. 대학 때 그렇게 등반을 자랑했던 한라산도 높이로 치면 후지산의 반 토막에 불과하다. 후지산은 외국인도 많이 오르는 산이다. 연간 20만 명의 등반객 중 삼분의 일이 외국인이라고 한다.

   한국인의 등산 사랑은 유별나다. 인구 비례 아웃도어 판매량이 세계1위로 등산용품 메이저들이 한국을 등한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암반 등산 외에 산책길을 좋아하는 것도 특이하다. 2000년대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서울 외곽 둘레길 등 길게, 천천히 걷는 길이 많아진 것은 수요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걸 증명해 준다고 할까. 문화의 길이 세계유산으로 된 스페인의 콤포스텔라 순례길은 유명하다.

   한국엔 정작 산으로 등재된 세계유산은 아직 없다. 중국만 하더라도 현재 10개의 세계유산이 산 이름으로 등재돼 있고, 일본은 3개의 산지 유산이 있다. 산이 지닌 역사적, 자연적 가치에 중점을 둔 유산들이다.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산이 아닌 산성 축성술과 계획된 산성도시라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글로벌한 지구촌에서 산은 그 나라만의 산이 아니라 인류의 산이다. 한양도성도 성을 두르고 있는 북악, 인왕산, 낙산, 남산의 산지 지형을 이용한 도성 경관의 역사적 가치가 평가된 것이다.

 

   후지산의 공식적인 등반허용기간은 7월과 8월 두 달이다.

   8월 초순의 여름은 후지산 등반에 가장 적합한 시기.

   두 달간의 일본 연수 종료를 일주일 앞둔 송대길은 등반의 역사를 수정할 좋은 기회를 잡은 것이다. 한라산에서 후지산으로 도약하는 순간을 맞이한 셈이다.

   등반 이틀 전에 만반의 준비를 자축하는 생맥주 파티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예상에 없던 술잔 하나가 더 늘어났는데, 엔도의 부서에서 근무하는 노처녀 마유미 양이 등반 동행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마유미는 엔도보다 세 살 적다. 33살쯤 되려나. 남자보다 산을 더 좋아하여 산과 결혼할 거라고 농담까지 하는 여성이기도 하다. 엔도와 동갑인 송대길은 여동생 하나 데리고 가는 셈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다.

   “등산 전문가인 마유미 짱이 합류한다면 우린 더 안전할 것 같아요.”

   엔도보다 두 살 많은 칸도 남녀 등반을 일본 문화가 허용한다면 자신은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엔도는 마유미의 등산 실력을 알고 있지만 이틀 후 등반에 문제가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마유미는 태연했다.

   “후지산은 여러 번 가봤으므로 준비물은 알아서 챙길게요. 등반 시즌이라 별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해요.”

   파티는 결과적으로 네 명의 등반을 선언하는 자리가 되었다. 세 명의 남자 속에 한 명의 여자는 맥주병 옆의 노가리 안주처럼 분위기 조성에 좋았다. 마유미가 농담을 잘 받아주는 것은 등반이 화기애애할 것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기도 하다.

 

   엔도가 코치하는 대로 등산화와 스틱을 준비했다. 높은 산인만큼 산소캔과 윈드스토퍼를 잊지 않았다. 옷은 코튼 제품이 아닌 땀을 잘 흡수하고 잘 건조되는 드라이웨어를 준비했다. 야간등반을 예상하여 랜턴을 준비하고, 먼지 나는 등산길에는 마스크도 필수품이다. 장갑이나 모자와 타월 등은 기본으로 갖추는 것.

   배낭은 30리터 정도의 크기로 했다. 물은 2리터, 산소는 10리터 정도를 챙겼다. 체력 보완용으로 젤리형 탄수화물 및 당류를 준비하고, 수분 보충용으로 오이 등 간단식을 준비했다.

   만만하다고 생각할 수 없는 높이의 산이라 장비 준비는 매우 중요하다. 마유미가 한 사람씩 전화하여 준비물을 확인한 것은 엄마가 아이의 가방을 챙겨주는 섬세함 같아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애석하기도 하다.

 

   출고한 지 몇 달 안 되는 도요타 밴에 네 사람은 몸을 싣고, 전날 저녁 8시경 도쿄를 출발해 국도를 타고 천천히 후지산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엔도 옆에는 마유미가 앉았고, 뒷좌석에는 칸과 송대길이 자리를 잡았다. 두 외국인이 후지산 정복의 꿈에 들떠 있는 중에 마유미는 운전자의 졸음을 쫒느라 이야기 잇기에 열심이다.

   엔도는 마유미의 입이 피곤할 거라고 생각했다.

   “마유미 짱은 이제 편히 쉬어요. 남자들끼리 이야기하면서 안전운행 할 테니까.”

   엔도는 여유 있는 운전 모습을 보이며 백미러로 뒷좌석의 두 남자를 쳐다보았다. 피부색이 확연히 다른 두 남자가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면서도 대견스러워 보였다. 마유미는 엔도의 권고에 동의할 기색이 없다.

   “유부남들의 이야기를 들을 자유도 주세요. 결혼하면 불행하고, 하지 않으면 더욱 불행하다고 하던데 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엔도 상?”

   대답을 준비한 것처럼 엔도의 응수는 머뭇거림이 없다.

   “섹스피어한테서 이미 답을 얻었던 것 같은데……. 결혼하지 않으면 더욱 불행하다고 했으니 속히 짝을 찾아요. 회사에 남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골라잡으세요.”

   “다들 저를 김빠진 맥주로 여기나 봐요. 전 아직 밀봉된 상태로 있는데……. 엔도 상이 브로커 하세요. 커미션은 만족하게 드릴게요.”

   송대길이 마유미의 농담을 칸에게 통역했다.

   칸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엔도 상이 국내는 물론 해외로도 오퍼를 내세요. 카운터가 들어올 겁니다. 커미션은 브로커의 임의로 하시고요.”

   카운터는 역제의를 의미하는데, 대화 내용이 해운을 전공한 냄새가 너무 풍기자 엔도는 주제를 다른 데로 돌리고 싶었다.

   “메이지 이후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마유미 짱.”

   메이지 시대까지 여성들은 후지산에 오를 수 없었다는 뜻이다. 무사들이 훈련하는 산에 여성의 출현을 금기시했다는 것.

   “엔도 상,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무척 감사합니다.”

   마유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는 천천히 시골길로 접어들었고 길은 험해지기 시작했다. 일본 젊은이들의 질주하는 야간 산길 레이싱 때문에 저녁 산길의 드라이브를 즐기려는 시도는 무산되고 말았다.

   두 시간의 드라이브는 지루함을 주지 않고 드디어 후지산에 이르렀다.

   후지산 북쪽 기슭 해발 1,000미터쯤에 화산 분화로 생긴 다섯 개의 호수가 있다. 이들 호수 주변에 위락시설이 잘 마련되어 여름엔 낚시와 캠핑을, 겨울엔 스키를 타기도 한다.

  근처에 차를 세웠다.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기로 하고 차 안에서 눈 좀 붙입시다.”

   엔도의 안내에 따라 차 의자를 눕히고 각자 휴식에 들어갔다.

  아무리 여름이라 하더라도 고산의 밤은 춥기만 하다. 무릎 정도를 덮은 담요는 추위를 달래기에는 괜찮다. 마유미는 야간등반에 익숙한 증거를 보여주듯 잠을 청하는 속도가 빨랐다. 잠결에 오른팔을 엔도의 가슴 위에 얹는 것 외는 점잖게 잘 잤다. 이것만 가지고는 노처녀의 잠버릇을 예단할 순 없다. 목을 끌어안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새벽에 일어나 차로 해발 2,300미터의 5고메(五合目)로 향했다. 이곳은 후지산 등반의 출발점이다. 네 개의 코스 중 사람들이 덜 북적이는 코스를 택했으나 경사가 심하여 차가 힘들어하는 것 같다. 주차장은 전날부터 만차여서 도로는 주차하지 못한 차들이 한 차선을 완전히 차지해 행렬의 길이가 일 킬로미터나 되었다. 겨우 한 공간을 찾아 주차했다.

   고속버스로 온다면 도쿄 신주쿠에서 후지산 5고메까지는 2시간 반가량 걸린다. 이들 승객은 보통 야간산행을 하여 후지산 정상에서 구름바다 위로 일출을 보곤 한다. 그 시간이 아침 5시경이다.

   그러나 엔도 일행은 정상에서 일출을 보는 대신 아침 5시경 5고메를 출발해 등반하기로 했다.

   일출에 붉게 물든 후지산의 정상부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다.

   장엄함, 그리고 정렬적인 동녘 하늘.

   “일본의 히노마루가 떴습니다.”

   송대길은 애써 감탄을 표시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일본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일본의 국기 히노마루()’를 일출의 장관으로 비유하는 걸 누구보다도 마유미가 더 좋아했다.

   “송 상 표현이 매우 시적예요.”

   자기도취에 빠진 마유미, 열렬한 천왕신민임에 틀림없다.

   엔도는 칸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했다.

   “미스터 칸, 에베레스트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까요?”

   “올라가보지 않았지만 구름 위의 일출을 볼 수 있겠지요.”

   “다음엔 에베레스트의 일출을 직접 보고 감동을 이야기해 줘요. 온 세상은 어둠에 잠겨 있는데 정상에는 빛의 영광을 보았노라고 등등.”

 

   정상까지는 굽은 길 7킬로미터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묶고 스틱을 잡아들었다.

   후지산은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비교적 쉬운 등산 코스다. 그러나 고도가 높기 때문에 기상이 갑자기 나빠지곤 하므로 출발 전에 미리 일기예보를 잘 들어야 한다. 산 정상에 가까울수록 기상변화가 심하여 한여름에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높이 일 킬로미터에 5도 정도 기온이 떨어진다고 하면 후지산은 평지보다 20도 정도 낮은 셈이다. 그러므로 후지산을 등반 할 때에는 따로 긴팔 옷을 준비해야 한다. 한 달에 세 번 정도 갠 날씨가 나타나고 나머지는 운무로 뒤덮여 있으므로 한 여름에도 방수복을 준비한다.

   또한 높이 올라갈수록 기압이 떨어진다. 산소가 존재하는 상공 1,000킬로미터 아래의 공기기둥이 누르는 공기의 압력을 1기압이라 하므로 0.4퍼센트 정도의 기압 감소가 있다. 작은 차이 같지만 1기압에 길들여져 있는 인간에겐 이것도 고통에 속한다. 후지산 정상의 산소는 산밑의 7할에 지나지 않아 긴 호흡이 필요하다. 가지고 온 산소캔이 호흡에 도움을 줄 것이다.

   5고메에서 정상까지는 작은 산장들이 있어 쉬면서 천천히 오르면 된다. 특히 7고메와 8고메 부근 길에 산장이 많이 늘어서 있다.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려는 등산객은 야간산행을 하다가 이곳 산장에서 새벽녘까지 휴식한 후 정상으로 오르기도 한다.

   등산길과 하산길은 나뉘어져 있어 부딪힐 일은 없다.

   칸과 송대길이 초보자임을 고려해 일행은 보폭을 빠르게 하지는 않았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산행 속도를 줄여나간다.

   “송 상, 숨이 좀 가쁘지 않아요? 옛날 배 탈 때는 바다 위에서만 지냈을 테니 말입니다.”

   엔도의 지적은 옳았다. 기압이 떨어지니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낀다. 이러다간 가슴 뚜껑 열리는 것은 아닌지.

   “제가 산소 바람 좀 불어넣어 드릴까요, 송 상?”

   마유미가 한 마디 거들었다.

   엔도는 그 말에 양념을 쳤다.

   “그런 방법도 있겠군.”

   웃었다. 등반의 피로가 덜한 것 같다.

 

   5고메를 출발해 숲 속을 지난 후 나무들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기 시작한다. 나무의 키를 보고 높이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부터는 식물의 존재가 없어진다. 대신 화산석과 자갈 모래의 황량한 길만 이어진다.

   한여름의 햇빛은 강했지만 올라갈수록 기온이 점점 낮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겉옷을 벗으면 추울 정도다. 기압이 낮아 귀가 아프기도 하고 숨이 조금씩 가빠지기 시작한다. 옆을 쳐다보니 점점 산소를 이용하는 등산객이 늘어나고 얼굴이 자꾸 찡그려지는 사람도 많아졌다.    

  배낭에는 비상용 산소캔이 있어 어느 정도 안심이기도 하다.

  산을 오를수록 구름의 변화가 멋있다. 구름끼리 부딪쳐 안개 속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좀 더 오르면 구름이 발밑으로 지나가기도 하여 마치 구름 속을 산책하는 기분을 맛본다. 지나가는 헬리콥터도 발 아래로 날아다닌다.

   한산한 등산길과는 달리 하산길 쪽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내려오고 있다. 정상의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이다. 등산 시간이 상반된 결과이기도 하다.

  지루한 자갈길 등반은 여느 등산과 마찬가지로 송대길의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발은 무의식적으로 정상을 향하기도 한다. 이럴 때는 머리와 가슴과 발이 따로 움직이는 것 같다.

   점점 경사가 급해지는 듯하자 정상이 가까워졌다. 등산길은 지그재그로 되어 있어 경사로 느껴지지 않으나 옆의 능선을 보면 정말 가파르다. 미끄러지면 그대로 산 아래까지 굴러 떨어질 듯한 경사이다.

   드디어 정상!

   산을 오르기 시작한지 여섯 시간 만이다.

   대체로 걸린 시간과 산길의 상황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출발지 5고메에서 6고메까지 한 시간은 평범한 산길이었다. 그러나 6고메에서 7고메까지는 모래 자갈길이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고, 7고메에서 8고메까지는 두 시간 동안 미끄러지기 쉬운 울퉁불퉁한 용암의 가파른 경사길이 계속되었다. 8고메에서 9고메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 걸었고, 여기서 정상까지는 가파른 비탈길을 반 시간가량 올랐다.

  후지산은 화산이기에 수목한계선 3,000미터 이상의 위치는 사실상 그리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없는 황량한 공사장 같은 느낌이다. 특히 2,500미터 이상부터 정상까지는 풀 한포기 없이 화산재로 덮여 있다

  만년설 정상은 조금 흰 눈으로 덮여 있다. 유난히 더운 여름을 말해주는 것 같다. 정상의 분화구는 황량하다. 한라산, 백두산처럼 물도 고여 있지 않아 더 황량하게 느껴진다. 물이 없으면 작은 동물도 살아갈 수 없을 텐데…… 괜히 걱정?

 

   일행의 얼굴은 대체로 맑고 일그러짐이 없다. 다만 송대길의 표정이 거친 숨소리로 약간 지쳐 보인다. 고산증세로 그의 머리는 아픔이 좀 있었고 어지럼이 약간의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산을 좋아하는 마유미는 아직도 힘이 남아돌아가는지 가만있지를 못한다.

   “한국의 제일 높은 산은 몇 미터나 되죠?”

   숨이 가쁜 송대길이 대답을 꼭 해야 하나.

   “북한에 있는 백두산이 2,744미터 될까. 흰 돌이 머리에 얹혀있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백두산(白頭山)이라고 하죠. 후지산과 다른 점은 산정에 둘레 15킬로미터의 천지(天池)가 있다는 거죠.”

   그는 한라산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1,950미터 높이가 후지산에 비해 초라해서가 아니라 남북한은 한 나라임을 암시하기 위함이다. 코리아 인구가 8천만 명이라고 강조하고 싶기도 하지만.

   “연못이 있어서 정말 아름답겠어요. 한번 가봤으면 좋겠네요.”

   여자들은 산을 정원쯤으로 생각하나.

   정원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려는 듯 송대길은 간단한 백두산 지식in’을 들려줬다.

   “천지연 깊이가 380미터나 됩니다. 물에서 용이 오를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무서워할 걸요. 지금은 중국에서 올라가지만 통일이 되면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백두산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구름을 발밑에 두고, 분화구를 엉덩이 뒤로 멀리 두며, 하늘을 배경삼아 사진 한 장 꾹 눌렀다. 칸이 비슷한 피부색의 외국인에게 샷을 부탁했다. 알고 보니 파키스탄인인데 그런대로 언어가 통했다. 하긴 칸의 먼 조상이 파키스탄에서 왔다고 하니.

   사진 속에는 마유미와 송대길이 나란히 섰다. 샷을 누른 파키스탄인은 두 사람이 부부로서 어울린다고 했다. 마유미는 일일부부 해주겠다고 능청을 부렸다. 그러면서 부부 사진 한 장을 찍도록 엔도에게 부탁했다.

   “잠정적으로 노처녀 딱지를 뗐습니다.”

   크게 웃는 마유미에게 모두 박수를 보냈다. 어색한 쪽은 송대길인데 그래도 일일 신랑으로서 박수를 받고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포옹하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얼마간 정상에서 느긋하게 등정의 감격을 맛본 네 사람은 손을 잡고 야호했다. 세계 공통언어가 등장했다. 하마터면 송대길은 대한민국 만세!’를 부를 뻔했다.

 

   정상의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약간 허무했다.

   그러나 송대길은 생애 처음 이렇게 높은 땅을 밟아 봤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었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인생도 비슷해서 올라왔으면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기를 싫어하다가 끌어내림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시간 늦지 않게 내려가는 게 중요하다.

   하산길이다.

   흙길이라 먼지가 엄청 많이 일어난다. 마스크 사이로 들어오는 먼지가 숨을 가쁘게 만든다. 경사가 심해 한발 내디디면 자갈 모래 위를 한 걸음 정도는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럴 때일수록 대화를 하며 서로의 안전을 확인한다.

   “조선의 국운이 내리막을 달려 임진년에 이르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국을 무단 방문했지요.”

   하산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려고 송대길이 뒤에 오는 엔도에게 한마디 던졌다. 왜란이나 침략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엔도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이유가 없다.

   “손님이 조총을 들고 방문한 것은 예의가 아니었지요.”

   엔도가 사실을 에둘러 말할 때는 미안함을 느꼈다는 것인가.

   “4세기 후반에 백제가 일본과 국교를 맺고 야마토정권에 철제칼 칠지도(七支刀)를 주었는데 16세기엔 일본의 무기가 더 좋았으니 일본은 확실히 응용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일본에 왔으니 일본을 칭찬해주는 것이 예의라고 송대길은 생각했다.

   “조총으로도 이순신 장군을 이기지는 못했지요. 거북선도 훌륭했고요.”

   엔도도 손님을 대접하는 법을 안다.

   6세기 전반에 고구려와 대립하고 있던 백제는 야마토조정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일환으로 여러 박사(博士)를 파견해 일본에 처음으로 불교와 한자, 의학, 천문학 등을 전해줌으로써 일본의 고대국가와 아스카문화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신라에 멸망한 백제와 고구려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연행된 도공(陶工)은 아리타에서 일본최초로 백자(白磁)를 만들었다.

   “천황 당신도 백제의 후손이라고 고백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앞서 내려가는 마유미가 모처럼 대화에 끼어들었다.

   “일본어 학습자는 한국이 세계에서 1위라는 사실 아시는가요?”

   이번엔 송대길이 아는 바를 말했다.

   “일본의 한국인 유학생 수가 중국에 이어 2위이라던데?”

   한국에 대한 정보는 엔도 역시 빠지지 않는다.

   “일본 침몰의 책을 쓴 사람이 있는데 혹시 열도가 침몰하면 어떡하실 건가요?”

   송대길이 언젠가 읽었던 책이 기억나서 말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선 후지산으로 도망가고, 다음 한국이나 인도로 가야죠.”

   “인도로 오면 영광입니다.”

   송대길의 통역을 듣고 칸이 모처럼 대화에 합류했다.

   “한국의 송 상 안방에 좀 눌러 앉아도 될까요?” 엔도는 당당했다.

   “우리 마나님이 너무 예뻐서 그건 곤란해요.”

   마누라 자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하듯 송대길이 말했다.

   “다락방도 괜찮고 마루도 괜찮아요.”

   네 사람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잘 내려오다가 갑자기 송대길이 몸의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고 말았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7고메쯤에서 미끄러진 것은 고의적 실수로 오해받을 만하다. 2미터정도 미끄러지면서 앞서가는 마유미의 다리를 잡았는데, 이건 실수 중의 실수다. 여자의 엉덩이가 남자의 가슴에 방아를 찧은 것은 대사건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다만 일일부부가 아직 유효하다면 자연스런 것으로 웃어버릴 수도 있다.

   아니,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정말 웃네?

   한참 동안 미끄럼 타는 기분으로 네 시간정도 걸어서 하산했다.

   주차장의 차들이 반 정도 빠져 나가고 도로에 있는 차를 찾아 도쿄로 향했다. 등산의 피로를 모르고 차분하게 운전하는 엔도가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그는 운전을 하면서도 동료의 대화를 도와주려고 애썼다.

   “인도와 일본은 불교를 중심으로 양국 간의 문화적 유대감이 있는 것 같아요.”

   칸이 말하자 엔도는 바로 동의했다.

   “인도가 영국군과 독립전쟁 시 일본군의 인도 지원이 있었지요. 한편 동경 국제전범 재판 시 일본에 대한 인도 법관의 호의적 판결이 있었고요. 이런 것들이 은연 중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고리이기도 하죠.”

   “연간 3,000억 달러 규모의 외국인직접투자를 필요로 하는 인도는 일본 기업의 대인도 투자가 갈급합니다.”

   “미스터 칸은 애사심뿐만 아니라 애국심도 크군요.”

   듣고만 있던 마유미가 대화에 고명을 뿌렸다.

   “신사의 기본 아닌가요. 하하.” 칸은 크게 웃었다.

   “일본과 인도의 공통점은 섬기는 신이 많다는 건데, 힌두교의 주요 신은 어떤 것이 있나요?”

   운전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엔도의 질문에 칸은 아는 만큼 설명하기로 했다.

   인도에는 동식물, 자연물 등이 신격화되기도 한데, 예컨대 코끼리, , 원숭이, 보리수 등의 동식물과 갠지스, 히말라야 등의 강과 산 그리고 태양, 달 등의 천체 등도 신격화되어 숭배된다. 동물 중에는 특히 암소가 신성시된다. 인도의 모든 마을에는 마을의 지방신이나 여신들이 있고, 여신들 가운데 우두머리신도 있다.

   설명 중에 청중의 반응을 보는 칸은 재미없다고 여기면 중간에 이야기를 그만둘 것 같은 자세로 한 사람씩 옆얼굴을 스캔해 나갔다. 엔도가 졸음에 굴복하지 않고 운전대를 충실히 붙잡고 있는 것은 안전제일정신이 투철하기 때문일 것이다.

   힌두교도는 자연을 신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인식하여 신성시해 왔다. 특히 세계의 중심으로 믿어지는 신비의 산인 메루(Meru)의 산기슭인 히말라야 산맥이 신성시되고 있다.

   인도 아대륙에 있는 강들 가운데 일곱 개의 강을 성스럽게 여기는데, 특히 강가(Ganga: 인도 갠지스 강을 상징하는 여신)는 가장 신성시된다. 아마도 생명력과 정화력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천상과 지상을 연결해 주는 장소이며, 인도 종교의 핵심 개념인 생과 사의 지속적인 흐름, 즉 윤회를 상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힌두교도는 강가 물에 몸을 담그면 모든 오염과 죄를 씻을 수 있고 강가에서 죽음을 맞이하면 천상이나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강가가 흐르는 주요 지점에 신성한 도시가 건설됐다.

   주요한 종교적 인물이 힌두교의 성자적 신들로 수용되어 사진이 가정집이나 상점 등에서 신들의 상과 나란히 놓여 있을 때가 많다. 마하뜨마 간디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을 의미하고 연꽃은 창조과정의 시작을 의미한다.

   인도의 순환적 시간관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상이 바로 인도인들의 인생관인 업과 윤회 사상이다. 이 사상은 힌두교 이외에도 자이나교와 불교 그리고 거의 모든 인도 철학체계가 수용하고 있는 주요한 사상이다. 이 업 사상의 핵심 원리는 모든 행위는 반드시 그 결과로 업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윤회는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따라 인간은 수없이 많은 생애를 살게 된다는 이론이다. 결국 인도 사상에서 시간은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이어지는 지속적인 흐름으로 이해된다.

 

   “인도와 한국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알고 싶네요.”

   마유미의 궁금증이 호기심으로 발전했다.

   “인도는 한국전쟁, 그러니까 1950년 의료지원부대 600여명을 한국에 파병했지요. 3년 후 종전 시에는 정전협정상의 중립국 송환 위원회의 의장국을 역임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송대길은 한국전쟁사를 소상하게 공부했던 걸 이때 써먹게 되는구나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종전 후 한국과 인도의 관계는 소강상태를 유지하다가 1973년 외교 관계를 수립하면서 양국 간 현대 외교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인도 수상의 한국 방문이 수교 후 20년 만에 이뤄진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남북한 등거리 외교정책을 표방하는 비동맹 중립정책에서 불가피했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한 쪽으로 기울긴 했지만.

   “한국에도 인도인이 살고 있나요?”

   칸의 궁금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피부색이 달라 인도인이 한국에는 살지 않을 거라는 선입감에 그런 질문을 먼저 하게 되었나 보다.

   “한국의 고대 가락국에 인도의 미녀 공주가 와서 왕비가 되었다는 사실 모르죠?”

   송대길이 감칠맛 나는 질문을 던지자 칸은 호기심에 불을 붙였다.

   “그게 사실인가요? 듣고 싶어요.”

   예수의 탄생 시기와 비슷한 허황옥은 어떻게 가락국에 와서 수로왕비가 되었을까?

   기록이 없으니 그 여로가 궁금하기만 하다. 얼굴이 까무잡잡하다는 것과 연결시켜 임금님 국제결혼좀 캐물어도 될까요?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다. ‘쌍어(雙魚)’ 사상에 얽힌 퍼즐을 풀어나가야 한다.

   인도의 아유타국이 어딜까? 인도 남동쪽 아요디아로 남아 있다. 아요디아국은 서기 1세기 북방 월지족(月氏族) 지배를 받으면서 반란을 주도하다가 지배층은 쫓겨나 중국 서남 고원지대를 거쳐 사천지방인 촉() 나라에 정착했다. 후대 기록에서 확인된 사항이다.

   “어떻게 추적했을까요?” 칸은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허황후 후손으로 추정되는 왕족 유골에서 북방계가 아닌 인도 남방계 DNA를 추출해 냈답니다.”

   오빠와 더불어 양쯔강을 따라 상하이를 거쳐 황해로 나와 김해 앞바다에 이른 보트피플이 된 것이다. 이들이 옮겨 다닌 지역을 꿰는 문화 공통분모로 물고기 두 마리가 마주보고 있는 쌍어 신앙에서 찾을 수 있다. 불교가 고구려에 처음 들어왔다고 하나, 이보다 300년이나 앞서 허 황후가 들어왔으니 혹시 소녀의 치맛자락에 불교를 싸서 온 것은 아닐까. 지금도 가락국 지역인 김해, 울산, 양산 등의 절에 쌍어문이 많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본다. 가락국 출신으로 일본 규슈 등으로 이민 온 사람이 많은데 야마대국을 다스린 히미코 역시 가락국의 허씨족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혹시 우리 세 사람도 허씨와 관련돼 있지 않을까요? 도쿄에 돌아가면 기념으로 쌍어문을 새긴 액자를 선물로 나눠 가져야겠네요.”

   엔도가 흥분해서 말했다.

   “그럼 저도 하나 가지고요.”

   마유미는 덩달아 신이 났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생겨난 쌍어 신앙이 인도를 거쳐 머나먼 가락국과 일본에까지 전파되었으니 아시아의 문화는 물고기의 맥을 같이한다고 보면 되겠어요.”

칸이 힘주어 말했다.

   한국 역사에서 가락국을 가락(Karak)이라고도 하고 가야(Kaya)라고도 하는데, 이게 원래 드라비다어()라고 한다. 둘 다 물고기 나라라는 뜻으로 가락은 옛날 드라비다 말이고, 가야는 요즘 드라비다 말일 뿐이다.

   물고기가 어떻게 생명나무와 부처님을 지킬까? 불교에는 풍경(風磬), 목어(木魚), 목탁(木鐸)이 다 물고기 형상이다. 성경에도 오병이어가 나오고, 물고기가 요나를 살리고, 초대교회의 물고기 표시는 박해받던 기독교인의 암호이기도 했다. 물고기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부분이다.

 

   네 사람은 각자 자기 나라의 산과 강, 신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기 나라의 전통에 대한 공통점을 발견하곤 했다. 이민족이지만 동양인은 산을 신성시하는 공통점이 있는가 하면, 자연과 문화와 예술을 사랑한다는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한국과 일본, 인도가 문화와 종교적으로 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아시아인의 긍지를 가질 만하다.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고 남북이 손을 붙잡고 오고가는 날, 이 외국인들을 초청하여 백두산에 오르고 천지(天池)에 손발을 담가보는 소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감동적이다.

   칸은 한 술 더 떠 남북이 하나 되는 날엔 코리어의 백두산 등정을 하고, 다음은 인도대륙을 횡단하면서 히말라야 고원을 오르자는 제안을 했는데, 이때 다 같이 박수를 보냈다

   이야기 도중에 마유미는 잠들기 시작했다. 노처녀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는 사람처럼.

   도쿄의 저녁은 불을 켜기 시작했다.

   송대길은 천하를 가슴에 안고 돌아온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며칠간 다리의 근육이 풀리지 않아 뻐근하여 걸음걸이가 어색했다. 직원들은 그들의 후지산 등반을 알게 되었지만 왜 마유미가 함께 갔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등산애호가이니까, 대답해주려 했는데. ()


▲하산하는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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