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r of wind

독특한 목인형을 볼 수 있는- 고려산 적석사

작성일 작성자 하늬바람

 

 고려산 산행의 하산길이었던 적석사..

절집 마당에 이런 목인형이 있습니다. 적석사 보살님이라고도 불리우는 목인형.(2009년 4월 12일)

 부부목 사이에 이렇게 고개를 내밀고, 강화의 바다를 보고 있습니다.

                                                                                                부부목

 

그들은 함께 서서 다른곳을 바라보는자가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한곳을 바라보는 자다.

 

자녀는 아내로되 어머니가 되고

총각은 남편이로되 아버지가 되었다.

 

인연따라 돋은 새살들이

어머니의 모습이며 아버지의 모습이며

그 틈새 태중 아이의 모습이다.

 

이를 일러 부부목이라 이름하니

이곳 스치는 인연이여!!

  

그대 곁 나여서 한없이 미안해하고

내 곁 그대여서 한없이 고마워하며

 

적석사 법당 앞 수수백년 지켜온 부부목 닮아

부디 부디 행복하게 해로하시라.

 다시 보아도..

물 한잔 마시러 간 약수터 옆에는 연못이 있고, 꽃이 피어나고..

  연못 가에 핀 꽃은 이제 막 꽃봉우리를 맺고..

 절집의 장독 옆에도 생강나무 지천으로 꽃 피우는 봄입니다.

 절집에서 바라본 풍경은 잔잔한 강화 앞바다처럼 고요하기만 합니다.

 

적석사의 대웅전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니, 연등이 걸려 있습니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적석사는 개나리 피고..

 적석사 입구의 적석사 사적비 

적석사는 '전등본말사지'등의 기록에 백련사 및 청련사와 함께 고구려 장수왕 4년(416년)에 창건되었으며, 처음에는 적련사로 불리었다가 적석사로 바뀌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사적비는 숙종 40년(1714)에 세워진 비로 불교의 전래 및 사찰의 중건, 중수 상황과 고려시대 몽골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겼을 때 적석사가 임금의 거처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전체 높이 394cm, 비신의 높이 304cm, 너비 69cm로 "고려산 적석사지비"라는 비의 제목이 써져 있습니다.

 적석사에서 조금 올라가면 볼 수 있는 낙조대보타전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일품이라고 합니다.  

 국화리 학생 야영장에서 고려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보면, 고려 고종의 홍릉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왕의 릉이 아니라, 마치 일반인의 능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곳은 고려 제 23대 고종(1192-1259)의 능입니다.

왕은 강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덕태후 유씨이고 비는 제 21대 희종의 딸인 안혜태후입니다.

왕이 즉위할 당시에는 최충헌이 세력을 잡고 있었는데, 고종 6년(1219)에 그가 죽자 그의 아들 우가 뒤를 이어 정권을 잡으며 왕은 제 구실을 못하다가 고종 45년(1258)에 유경, 김준 등이 의 (우의 손자)를 죽이자 왕에게 대권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왕이 재위시에 북방의 민족들이 침입하여 그 어려움이 컸었는데, 고종 3년 (1216)에는 거란족이 쳐들어와 김취려, 조충 등이 이를 격파하였습니다.

그후 고종 18년(1231) 몽고족이 쳐들어오자 다음 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후  이곳을 강도라하고 몽고에 대항하였습니다.

몽고병의 침입으로 대구 부인사에 있던 대장경판이 불타 버리자 고종 23년부터 고종 38년 사이에 강화도에서 대장경을 조판하니 이것이 오늘날 합천 해인사에 보존된 8만 대장경입니다. 고종은 몽고군의 계속된 침입을 막아내면서 강화를 이룩하려고 고종 46년 태자 전(뒤에 즉위하여 원종이 됨)을 몽고에 보낸 후 그해에 승하하매 개경에 옮기지 못하고 이곳에 모시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홍릉 앞의 석장승

 

자세한 길 안내를 원하시면

http://cafe.daum.net/yoeunsun  서울, 경기권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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