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r of wind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대왕이 묻힌 곳- 영릉

작성일 작성자 하늬바람

 

 며칠 간 이사하느라 조금 바빴습니다. 여주 블로그 팸 투어 사진을 올려야 하는데, 이제야 올립니다.

여주의 첫 방문지인 세종대왕릉인 영릉입니다.(2009년 4월 11일)

여주 시내에서 3.5㎞ 떨어진 넓은 평야지대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은 명당터로 이름이 높습니다.
명당터를 증명이라도 하듯 한겨울의 영릉은 아무리 눈이 많이 내려도 눈이 쌓여 있는 법이 없다는데 이는 땅기운으로 인해 눈이 금방 녹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릉을 지키고 있는 홍살문.

신성한 곳을 알리는 붉은색을 칠한 나무문으로 홍전문, 홍문이라고도 합니다.

화살모양의 살대는 법도의 곧고 바름을 의미하며 나라의 위엄을 상징합니다.

능역의 들머리에는 홍살문이 서 있고, 제관들이 찾을 때 절을 하는 배위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홍살문에 도착한 제관은 배위에 절을 하고 정자각에 이르는데 홍살문과 정자각을 연결하던 돌길을 참도(참례하러 가는 길)라 하며 가운데 높은 길은 신도(神道)라 불러 돌아가신 선왕의 혼령만이 신도로 출입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정자각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으며, 왼쪽에는 수라간이, 오른쪽에는 비각이 보입니다. 오른쪽 앞으로는 수복방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자각의 모습입니다.

제례때, 제물을 진설(차림)하고 제사를 드리던 집입니다. 위에서 보면 건물이 "T"자 모양을 하고 있어 한자의 "丁"자와 같다 하여 정자각이라 부릅니다.

동쪽과 서쪽에 오르는 층계가 있는데 이는 원래 제례의식이 東入西出(능,서원, 향교등을 출입할 때에는 동(오른쪽)으로 들어가고 서(왼쪽)으로 나온다)로 진행됨을 의미합니다.

뒷벽의 중앙칸에 달린 문짝은 제사를 드릴 때 열어 놓게 되어 있으며, 뒷편 서쪽에는 제문을 태우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수라간

수라간은 산릉제례 때 제사음식을 데우고 준비하던 곳입니다. 주초석만 남아 있던 것을 1977년에 옛모습을 찾아 복원하였습니다.  

영릉비각

세종대왕릉은 원래 광주 헌릉(지금의 서울 내곡동)에 있었는데, 1469년(예종 원년)에 이 곳으로 이장하였으며, 왕비 소헌왕후가 합장되어 있습니다.

영릉비는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약력, 그리고 영릉을 옮긴 사실을 기록한 비석으로 1745년(영조 21년)에 세웠고, 비각도 이 때에 건조되었습니다.

비문에는 "조선국 세종대왕 영릉 소헌왕후 부좌"라고 새겨 왕비가 대왕의 왼편에 묻혔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복방의 모습입니다.

 정자각을 지나 이제 릉으로 오릅니다. 소나무 그늘 아래를 지나 오릅니다.

영릉은 사적 제195호.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있습니다.

원래 영릉은 소헌왕후가 죽은 1446년(세종 28) 광주(廣州) 헌릉 서쪽에 조성하여 그 우실(右室)을 왕의 수릉(壽陵)으로 삼았다가 1450년 왕이 죽자 합장했습니다.

세조 때 이 영릉이 불길하다는 의논이 대두했으나 서거정(徐居正)이 "천장(遷葬)함은 복을 얻기 위함인데 왕자가 다시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라고 반대하여 옮기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 여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세조의 유언으로 병석과 석실의 제도를 폐지하고 회격(灰隔)으로 합장했습니다.

능 앞에 혼유석 2좌를 놓아 양위(兩位)임을 표시했을 뿐 상설제도는 단릉(單陵)과 같습니다

석등 뒤의 혼유석은 따로 찍은 사진이 없지만, 여기서 혼유석에 대한 설명을 잠깐 하고 가겠습니다.

이 돌상은 임진왜란 이후 혼유석(魂遊石)이라고 불렸습니다. 봉분 아래 잠든 영혼이 나와 노니는 돌이라는 뜻입니다.

혼유석은 둥근 북을 닮은 고석(鼓石·높이 50cm) 4개가 받치고 있어 무거운 돌을 공중에 띄운 듯한 느낌입니다.

  영릉 앞의 석물.

 영릉을 보고 나오는 길..

참도를 따라 걸어 나옵니다.

 영릉과 가까운 곳에는 효종대왕릉이 있습니다.

시간 관계상 들르지는 못했으나, 영릉과 효종대왕릉 사이의 이런 솔숲과 진달래길이 산책로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영릉을 지나, 다시 훈민문으로 나옵니다.

 훈민문 앞에 재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재실은 홍살문 밖, 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 제관이 머물며 제사를 준비하던 집입니다.

국장 후 탈상 때까지 대군 등 자손과 문무백관이 매년 제사에 참여하였는데 이 때 제사를 준비하던 집입니다.

이 재실은 영릉 안산(능 앞에 있는 산)인 북성산 동남쪽에 건립되어 있었으나, 후에 없어진 것을 1970년에 이곳에 복원하였습니다.  

 재실의 행랑채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제가 한옥에서 가장 사랑하는 곳.. 넓은 마루가 이곳 재실에도 있습니다.

 

 재실 건너편에는 세종전이 있습니다.

이곳 앞에는 세종 대왕이 발명한 발명품들을 전시, 설명해 놓았습니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대왕릉이 이렇게 자리하고 있다는 안내판입니다.

영릉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길가에는 환한 개나리가 피어 있습니다.

지금쯤..

이곳은 손흘들던 노오란 개나리 꽃잎이 지고,

푸르른 잎이 났겠지요.

시간은 또 이렇게 흘러갑니다....

 

자세한 길 안내를 원하시면

http://cafe.daum.net/yoeunsun  서울, 경기권을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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