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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함안의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는 함안박물관-전시물

작성일 작성자 하늬바람

 

 

 

함안박물관의 외관입니다.(함안박물관 편에서 올렸던 사진을 다시 올립니다) (2010년 9월 10일)

 

 

 

 

마갑총 출토 말갑옷

이 박물관의 대표 유물 중의 하나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서 다시 하도록 하지요.

 

 

 

 

전시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층은 체험 학습관으로 꾸며져 있어, 탁본을 뜰수 있게 해 놓았습니다.

2층은 전시실로 되어 있구요.

2층 전시실로 들어가 보도록 하지요.

입구에는 함안의 고분 유적과 산성에 대한 안내도와 함께, 모형물이 전시 되어 있구요.

앞에 고분처럼 만들어 놓은 입구로 들어서면,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과 무덤의 유형들에 대해 전시해 놓았습니다.

 

 

 

 

함안의 고분 유적과 산성

곳곳이 다 유적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 합니다.

가야읍, 함안면, 군북면, 법수면, 대산면, 칠서,칠원, 칠북, 산인, 여항의 유적지들을 표시해 놓았습니다.

 

 

 

 

구석기 시대부터 함안, 우리나라, 중국, 일본을 비교하여 연표를 그려 놓았습니다.

삼한시대에 안야국이 탄생하고, 삼국시대에 안라국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라국의 추정 왕궁지와 고분군, 산성에 대한 안내도

현재의 가야읍내가 추정 왕궁지인 듯 합니다.

조선시대 자료인 <함주지>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안라국의 왕궁지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함안의 선사 시대가 먼저 전시 되어 있습니다.

빗살무늬 토기 편입니다.

신석기 시대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말해줍니다.

가야읍에서 발견 된 토기 편이라고 하네요.

문양을 통해 연대를 알 수 있는데, 신석시시대에서도 이른 시기인 전기단계(기원전 5000-4000)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청동기 시대

화살촉과 그 외의 무기류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함안에는 하천을 따라 고인돌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야 도항리와 군북 동촌리의 암각화 고인돌이 유명합니다.

이들 고인돌에는 태양이나 별자리로 알려진 동심원과 성혈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후세계에서 사용할 중요한 물건들을 무덤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가까이에 무덤을 만들어 조상신에게 제사 지냈다고 합니다.

위의 무기들은 부장용 석기입니다.

 

 

 

 

붉은 간토기

칠원면 오곡리에서 출토 된 것으로 청동기 시대의유물 중의 하나입니다.

 

 

 

 

청동기 시대에 이미 농사를 지었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집자리와 농사짓기

 

 

 

 

도항리 <경>52호에서 발굴된 독널무덤(옹관묘)

크고 작은 항아리 도는 두 개를 맞붙여서 관으로 쓰는 무덤 형태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등지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 이래 사용되어 온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삼국시대까지도 사용되었습니다.

<경> 52호 독널무덤은 삼한 전기에 해당되는 무덤으로 주독과 막음독으로 이루어진 합구식 독널 무덤입니다.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돌방의 세 벽면과 천정을 만든 후 단벽의 한쪽에 시신을 매납하기 위한 출입 시설이 설치된 것으로

6세기 이후 백제와 고구려지역의 영향을 받아 가야 지역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묘제입니다.

한쪽 단벽에 마련된 출입 시설을 이용하여 수차례의 추가장이 가능하므로

피장자 1인을 위한 단장묘인 덧널무덤과 구덩이식 돌덧널무덤에 비하여 매우 경제적인 매장유구입니다.

이 유형의 묘제는 도항리고분군의 북쪽 능선상에서 몇 기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삼한시대 전기의 널무덤(목관묘), 삼한시대 후기의 덧널무덤(목곽묘), 삼국시대의 구덩이식돌덧무덤(수혈식석곽묘) 등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굽다리 접시

삼국시대 5세기경, 함안 도항리 54호분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무덤의 형식과 함께, 그 무덤에서 출토된 도기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삼국시대와 삼한시대 유물들이 전시 되어 있는 곳입니다.

 

 

 

 

갑옷과 투구

삼국시대 5세기 경, 도항리 13호, 36호분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안라국의 무사의 갖춤새와 무기들이 전시 되어 있으며, 그것에 관한 설명입니다.

 

 

 

 

수레바퀴 모양 토기

삼국시대 5세기 경. 도항리 4호분에서 출토

 

 

 

 

미늘쇠

삼국시대 5세기 경, 도항리 36호분 출토

 

제사. 의례에 사용된 것들입니다.

제사. 의례는 영혼을 내세로 인도하거나 신령 등의 초월적 힘에 의지하기 위한 일체의 행위를 말합니다.

안라국 사람들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유물에는

새모양장식미늘쇠와 여러 가지 모양토기들(새모양, 집모양, 수레바퀴모양, 등잔모양, 방울모양)이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들이 중요시 했던 생물이나 사물들에 대해 신성성을 부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새에 대한 경외를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은 새가 인간에게 풍요를 가져다 주고,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토제 귀걸이

삼한시대 1세기 경, 도항리 23호분 출토

 

토제 귀걸이는 귓불을 뚫고 착장하는 장신구로,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형태는 원통형에 가까우며 측면이 약간 오목한 경우가 많습니다.

함안 도항리 고분군에서는 <문>23호분과 <경>30호분 등에서 모두 3점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유사한 토제 귀걸이는 창원 다호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바 있으며, 모두 기원후 1세기 경의 유물입니다.

20세기 초의 필리핀 남자들 중 일부가 이와 같은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기도 하였습니다.

 

 

 

 

이형토기

삼국시대 5세기 경, 도항리 고분 39호분 출토

 

 

 

 

가야토기는 와질토기와 경질토기로 나뉠 수 있는데

먼저 와질토기입니다.

 

와질토기는 밀페된 가마에서 구운 것입니다.

한반도 남부 재래의 무문토기문화를 기반으로 중국 한(漢0나라 낙랑의 토기만들기 제작기술(환원소성,타날 등)을 받아들여

 만든 1-3세기 한반도 남부 특유의 토기입니다.

약 600-700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구워져 토기의 단단하기가 기와와 비슷해 와질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경사진 가마에서 구워 경질토기라고 불리는 가야의 토기들

 

경질토기는 4세기 고식도질토기 단계를 거쳐 5세기 이후에 크게 유행한 것입니다.

이 시기의 토기들은 지역마다 독자적인 특색을 갖추고 제작되었습니다.

 

약 10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져 단단한 질감을 가졌다는 뜻에서 경질이라고 불리웁니다.

 

 

 

 

토기의 변천과정

토기의 변천에 따라 연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그런...

 

 

 

 

굽다리 접시

 

안라국의 토기들이 전시 되어 있습니다.

 

4세기 경에는 굽다리 접시, 짧은목항아리, 화로형그릇받침, 손잡이잔 등 다양한 종류의 고식도질토기가 생산되는데

그 중에서 공(工)자형굽다리접시가 대표적입니다.

 

 

 

 

안라국의 토기들

 

5세기 경에는 앞 시기의 토기보다 형태와 종류가 더 다양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며, 무덤에 부장되는 양이 많아집니다.

안라국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불꽃무늬 토기를 비롯하여, 굽다리 항아리, 긴목항아리, 문양개, 이형토기 등 다양한 토기가 만들어지며

물결무늬, 사각형 무늬, 점열무늬 등의 문양이 새겨졌습니다.

 

6세기에 접어들면 굽다리 접시와 뚜껑 등의 토기류는 그 형태가 조잡해지고 규모도 작아지는 경향을 띱니다.

굽다리접시는 굽다리가 짧아지고, 손잡이가 붙는 특징이 있습니다.

 

 

 

 

 

 

 

 

뚜껑

삼국시대 4세기경, 도항리 8호분 출토

 

 

 

 

 

 

 

 

 

 

 

 

그릇받침과 항아리

삼국시대 5세기 경, 도항리 13호분 출토

 

 

 

 

그릇받침의 모양의 변화를 설명해 놓았습니다.

위의 그릇받침은 원통모양그릇받침에 해당하는군요.

 

 

 

 

안라국의 말갑옷과 기마병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이 박물관의 대표유물 중의 하나인 말갑옷

 

1992년 함안에서 발견된 마갑총(대형덧널무덤)에서는 가지런한 상태의 말갑옷 1벌이 출토되었습니다.

공사로 인해 한쪽은 파괴되었지만, 다른 한쪽은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갑총에서 출토된 말갑옷은 고구려고분벽화에 나오는 개마무사가 실제로 존재하였음을 증명해 주는 실물자료이며

또한 가야지역에서도 무장한 말을 탄 기마전사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말갑옷

삼국시대 5세기 경, 도항리 마갑총에서 출토

 

 

 

 

말안장

삼국시대 5세기경, 도항리 38호분에서 출토

 

 

 

 

불꽃무늬 토기들(굽다리접시들)

도항리 10호분 출토, 삼국시대 5세기 경.

 

불꽃무늬 토기는 5-6세기 경 함안지역의 특징적인 토기로서

대각의 투창형태가 불꽃모양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불꽃무늬토기에는 굽다리접시, 그릇받침, 굽다리 항아리 등이 있는데,

독특한 투창형태로 인하여 안라국의 영역과 대외관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불꽃출현 배경설에는

불교문양의 일종인 불꽃무늬가 광개토대왕 남정과 함께 고구려로부터 전해진 것이라는 설과

앞시기부터 있었던 원형과 삼각형의 투공이 결합되면서 장식성이 가미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안라국의 대표적 토기인 불꽃무늬토기가 출토된 지역들로 안라국의 영역과 교류했던 지역들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함안지역에서 출토된 외래토기들

 

 

 

 

가야국 옛터로 추정되는 성산산성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유물들

 

 

 

 

성산산성 출토 유물들

 

 

 

 

성산산성에서는 목간도 출토 되었습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의 필기도구로 대나무나 나무가 사용되었습니다.

재지이 대나무이면 죽간, 나무이면 목간이라고 하였습니다.

긴 경전을 얇은 나무에 먹글을 써넣은 후 끈으로 묶었습니다. 책(冊)이라는 한자는 바로 이를 본떠 만든 것입니다.

 

성산산성에서는 1992년 이후 현재까지 모두 116점의 목간이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목간자료임은 물론, 부족한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고 합니다.

목간이 만들어진 연대는 안라국 멸망 직후인 6세기 중.후엽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옥열리 가마터 수습 유물들

 

찰흙으로 원하는 모양을 빚어 섭씨 700-800도에서 구워낸 것을 질그릇이라 하는데, 이러한 질그릇 표면에 유약을 발라 섭씨 1200도 전후의 온도에서 다시 한번 구운 것을 도자기라고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9세기 경 도자기를 제작하는데 이것이 청자제작의 시초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청자가, 조선전기에는 분청사기가 후기에는 백자가 주로 생산됩니다.

함안의 도자기로는 <함안장흥고>라 새겨진 분청사기가 알려져 있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 함안군 토의 조항에

'자기소는 군 동쪽 대산리에 한 곳 있으니 하품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뒷받침하는 대규모 도요지가 대산면 옥열리 일대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함안에는 조선시대 목판(책판)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 국담문집 책판

 

목판이란 나무판에 글자를 거꾸로 새겨 먹을 칠한 후 종이에 대고 인쇄하는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서 연원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곳 함안에서는 신재 주세붕 선생의 <무릉잡고> 책판 및 <귀봉집> <수구집> 책판을 비롯하여

<근재집> <간송문집. <금라전신록> <민묵당> <국담문집> 등 주로 조선시대 목판들이 남아 있습니다.

 

 

 

주재성 교지

 

주재성 (1681-1743)은 본관은 상주 자는 성재 호는 국담 (위의 국담 책판을 판각하였습니다)

이인좌 난때 공을 세웠던 사람입니다.

교지의 내용은

통덕랑주재성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자  유인조씨위숙부인자

 

주재성에게 정3품 당상관의 품계를 증직하고 그의 부인 조씨는 숙부인으로 하였다는..

 

 

 

 

영종대왕국휼복상도

 

조선시대 정조때 그려진 것으로

주도복(1709-1784)의 본관은 상주, 자는 여강, 호는 감은재로

영조가 승하하자 사당앞에 제단을 쌓아 3년동안 조석으로 북쪽을 향해 절하고 통곡하였습니다.

조정에서 이 소식을 듣고 지극한 충효를 가상히 여겨 방상도를 그려 후손들로 하여금 길이 보존하게 하였습니다.

 

 

 

 

대동여지도 등 지도가 전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전시실

함안의 유적들을 소개해놓았으며, 함안의 무형, 유형의 문화재도 소개해 놓았습니다.

 

 

 

 

그중 하나인 화천농악

 

칠북면 화천마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화천농악은 약 2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잇습니다.

농악놀이에 앞서 서낭당에 제사 지내고 정초에 지신밟기를 비롯하여

단오, 백중, 그리고 9월 그믐에 성황제, 섣달보름의 농악놀이가 모두 성황목을 중심으로 연중 계속됨을 보면

농민으로서 풍작과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주요 행사로 이어져 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놀이의 내용은 길굿, 살풀이굿, 덧뵈기굿, 영산다드래기굿, 지신밟기굿, 진놀이굿, 고사리꺾기굿, 번버꾸놀이굿, 호호굿, 원풍대놀이굿,

잦은 장단놀이굿, 풍년농사기원굿 등이 있습니다.

 

 

 

 함안의 역사

 

 

함안 박물관 찾아가는 길

 

주소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도항리 748번지

 

남해 고속도로 함안 ic 에서 가야읍으로 직진- 함안 방면국도 79호선을 타고 함안 군청쪽으로 - 함안 박물관 이정표가 보입니다

 

 

관람시간 : 3월-10월은 09-18시,  11월-2월은 09-17시

 

관람요금 : 일반인-500원,  19세 이하 청소년-300원, 초등학생-200원, 단체(20인 이상)은 할인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신정, 설날, 추석연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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