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r of wind

붉은 빛으로 흔들리며 오는 가을-길상사 꽃무릇

작성일 작성자 하늬바람



가을볕이 붉은 꽃들을 간지럽힙니다.

무리지어 꽃을 피어낸다고 하여 '꽃무릇'이라고 불리우는 꽃..


붉은 빛으로 흔들리며 오는 가을을 만나고 옵니다.

길상사 꽃무릇입니다. (2017년 9월 17일)





해마다 9월 중하순이 되면,

화사한 자태로 초가을을 알리는 전령사로 불리우는 꽃무릇이 만개하지요.





전남 함평의 용천사, 영광 불갑사, 고창 선운사

남도에 살 때는 꽃무릇 피는 때에 자주 가던 곳들인데

이제는 거리가 멀어 길 나서기가 힘이 듭니다.





거리가 먼 남도와는 달리,

서울에서 꽃무릇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지요.





바로 이곳,

서울 성북동에 자리한 길상사입니다.





시인 백석과 자야의 사랑 이야기에 이끌려

가끔 찾는 곳이기도 하구요.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
그게 무슨 소용있어 '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서 문학 할거야'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 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이생진 시인의 그 사람 내게로 오네(시로 읽은 황진이)119~120쪽/우리 글/ 2004





백석시인이 자야라 불렀던 김영한(1916∼1999)

그녀는 열 다섯살에 결혼했으나 남편이 우물이 빠져 죽어 청상이 됐습니다.

갈 곳이 없는 그녀는 권번 기생으로 나섰으며,

미인으로 가무는 물론, 시서화가 뛰어나 곧 최고 기생으로 이름을 날렸다고 하지요.

조선의 많은 지식인이 그녀를 연모했다고 합니다.

스무살 되던 해 그녀는 뛰어난 재주를 아까워하던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원하던 사람 중의 한명이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투옥되자

2년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함흥으로 돌아왔습니다.

은인을 옥바라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함흥 영생여고보 영어교사였던 백석시인을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습니다.

둘은 만난 지 하룻만에 동거를 시작해 석달간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지요.





이에 백석의 아버지는 아들을 그녀로부터 떼놓고는 다른 여자와 강제 혼인을 시켰다고 하지요.

백석은 혼인날 밤 도망쳐 먼저 서울로 와 있는 그녀와 다시 만나 한동안 동거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젊은 백석의 앞날을 걱정해 헤어지자고 했고,

그런 그녀에게 백석은 러시아로 떠나자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백석 모르게 숨어버렸습니다.

마침내 백석은 혼자 러시아로 떠났고 둘은 영영 생이별해야 했습니다.

해방된 다음 백석은 북한으로 돌아왔고, 그새 그녀는 서울에서 요정을 열어 큰 돈을 벌었다고 하지요.

이후 그녀는 '삼청각' '오진암'과 함께 서울의 3대 요정으로 손꼽히는 대원각의 여주인이 되었습니다.

그 대원각이 바로 이곳, 지금의 길상사입니다.





백석에 대한 그리움으로 평생을 보낸 김영한..

그녀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큰 깨달음을 얻은 후, 

법정 스님을 만나 당시 1,000억이 넘는 '대원각'을 받아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정 스님을 10여 년간 꾸준히 찾아갔고

그리하여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가 문을 열게 됩니다.





사람도 가고,





사랑도 가고 없지만,





해마다 가을이면,

붉은 꽃들 무리지어 피어납니다.





붉은 꽃들을 보다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서 다리쉼을 하여도 좋은 곳...





이곳에 오면 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관세음보살상





모딜리아니의 여인을 떠올리게도 하고,

어느 성당의 성모상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백일홍은 마지막 붉은 꽃들을 피워냅니다.





하늘은 푸르르고,

바람은 시원한 가을 아침입니다.





법정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는 진영각을 향해 가는 길..





전각 아래 붉은 상사화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말이 필요없는 풍경이지요.















































담장 위에 초록빛 담쟁이 덩쿨,

그 뒤로 자리한 붉은 꽃들..





참 고운 가을입니다.

































































진영각 안으로 들어서 봅니다.

법정스님의 의자입니다.


"풍요는 사람을 병들게 하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와 올바른 정신을 준다.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됐으면 한다."

법정스님이 길상사 개사식날 하신 말씀이라고 하지요.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말씀하시던 법정스님은 2010년 3월 11일 세상과 작별하시고

이제 이곳 길상사 한켠에 모셔져 있습니다.





진영각 앞 뜰에는 붉은 꽃무릇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가을입니다.























전각들 뒤로 돌아 나가는 길,

붉은 빛 못지않게 초록빛도 강렬합니다.











햇살과 빛이 만나 이루어 내는 마법같은 순간입니다.





담장 아래 길게 늘어선 붉은 꽃들을 따라 걷습니다.






















너른 절집 마당에는 가을 햇살이 살며시 내려앉는 가을 아침..





아름다운 관음상 앞에 다시 한번 서 봅니다.

가을이 깊어지는 때,

다시 찾아도 좋을 길상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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