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r of wind

삿포로 쉬엄쉬엄 돌아보기/삿포로 시계탑-북해도 여행 23

작성일 작성자 하늬바람



겨울 북해도 여행

2019년 1월 24일부터 1월 28일까지

4박 5일의 여행, 그 스물 세번째 이야기


삿포로 쉬엄쉬엄 돌아보기,

삿포로 시계탑입니다. (2019년 1월 28일)






삿포로의 상징인 삿포로 시계탑.

시계탑의 건물은 홋카이도 대학의 전신인 삿포로농업학교의 연무장으로 만들어졌고

시계탑은 1881년에 설치됐다고 합니다.





대인 200엔,

표를 끊고 입장합니다.





건물 내부는 시계탑의 자료관입니다.










2층 전시관에서 눈 내리는 창밖 풍경을 담았는데

눈 오는 모습이 잘 담기진 않았습니다.





2층 전시실의 전체 모습





앞쪽에는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동상이 자리하고

의자들이 나란히 나란히~





저 앞의 동상을 이야기 하려면,

먼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의 간략한 역사 얘기부터 해야 합니다.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홋카이도 개발에 나선 건 1800년대 말.

처음 홋카이도에 정착했던 건 '둔전병'이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위협을 느낀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는 북방 경비를 위해 홋카이도 개척에 나섰습니다.

둔전제란 평소에는 농사를 짓도록 하다가 유사시에 병력으로 차출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본토에서 이주해온 농부이자 군인이 개척의 주인공이었던 것입니다.

홋카이도 개척의 중심은 농업이었습니다.

농학교에서 신농법을 배우기 위해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의 윌리엄 클라크 박사를 초빙했다고 합니다.

클라크 박사가 홋카이도에 머문 건 고작 8개월이었지만,

일본인들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훈육하던 그에게서 크게 감명받았다고 하지요.

기초영문법 책에 등장하던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라는 말은

클라크 박사가 귀국 당시 했던 연설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학창시절에 그 문장을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이런 개척사를 보면 홋카이도의 지금 모습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개척기 미국인들의 영향에다 일본인들의 서구에 대한 열등의식,

혹은 닮고 싶은 열망이 개입돼 지금의 홋카이도가 만들어졌으니 말입니다.

삿포로의 옛 도청사가 하필 미국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것도,

우유와 치즈를 생산하는 서구식 목장이 그렇게 많은 것도,

초콜릿과 케이크가 유별나게 발달한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합니다.





클라크 박사의 동상,




그리고 한켠에는 시계탑의 중심인

시계추와 시계~























예전에 썼던 시계바늘





시계탑의 도면과 설명










시계탑을 돌아보고 다시 삿포로 역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에 만난 공중전화

요즘은 공중전화가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라 한장 담아 봅니다.





삿포로역에서 신치토세공항역까지 기차를 타고 출발합니다.

오전에 삿포로역 안내센터에서 미리 표를 구입~

표를 끊을 때 좌석을 지정하면 비용을 조금 더 내고

아니면 자유석으로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신치토세공항역까지는 1590엔~





기차는 10분 15분 간격으로 있더군요.

기차역으로 들어오는 기차~

떠나는 기차~





여행자가 탈 기차도 들어오고





밖은 점점 심해지는 눈이로군요.





삿포로, 비에이, 오타루, 삿포로로 이어지는 여행은

여기서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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