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사

알타이아의 장작개비 이야기

작성일 작성자 道雨




알타이아의 장작개비 이야기




옛날, 그러니까 알타이아가 갓 낳은 아기 멜레아그로스와 나란히 누워 있을 즈음, 그 집 난로에서는 장작개비가 하나 타고 있었다.

이 장작개비를 거기에다 넣은 것은 운명의 세 여신이었다. 이 여신들은 운명의 실로 쫀쫀하게 베를 짜면서, 아기 멜레아그로스의 운명에 대해, '저 장작개비의 수명과 이 아기의 수명은 같을 것이다' 라는 말을 했다.


운명의 세 여신이 이런 말을 하고 그 집을 떠나자, 알타이아는 황급히 그 장작개비를 난로에서 꺼내어 물에다 집어넣었다.

알타이아는 불을 꺼버린 이 장작개비를 집 안 한구석 은밀한 곳에다 감추어두었다. 덕분에 멜레아그로스는 헌헌장부가 되도록 자랄 수 있었다.


어느 해 풍년이 들자, 칼뤼돈의 왕 오이네우스가 농사의 신을 포함한 모든 신에게 두루 제사를 올렸는데,

들판을 주관하는 여신 아르테미스에게만 제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노한 여신이 커다란 멧돼지를 들에 풀어 놓아 해를 입혔다.

멜레아그로스를 비롯한 젊은이들이 이 괴수(멧돼지)를 죽여 명예와 영광을 얻겠다고 나섰다.


멧돼지는 멜레아그로스의 손에 죽었는데, 사냥에 함께 참가했던 스코이네우스의 딸 아탈란타를 사랑한 멜레아그로스는 멧돼지 가죽을 그녀에게 주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알타이아의 형제들(멜레아그로스의 외삼촌인 톡세우스와 플렉시포스)이 아탈란타로부터 가죽을 빼앗으려고 하자, 성난 멜레아그로스는 그들을 죽여 버렸다.


테스티오스의 딸이자 멜레아그로스의 어머니인 알타이아는, 아들이 괴수(칼뤼돈의 멧돼지)를 죽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타이아는 즉시 신전으로 달려가 신들에게 감사의 제물을 드릴 채비를 했다.

그러나 아들의 승전보에 이어, 곧 두 아우가 죽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알타이아는 두 아우의 부고를 받고 성이 떠나가게 울었다. 한동안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던 알타이아는, 금빛 제복을 검은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나 알타이아가 울부짖은 것은, 두 아우를 죽인 자가 누군지 몰랐을 때였다. 오래지 않아 두 아우를 죽인 자가 누군가를 안 알타이아는 더 이상 슬퍼하고 있을 수 없었다. 알타이아는 눈물을 거두고 두 아우의 죽음을 복수할 생각을 했다.


알타이아는 이때 자기 손으로 감춘 장작개비를 기억해 내고 이를 찾아내었다. 그러고는 하인들에게 명하여 불쏘시개를 가져와, 아들과 같은 운명을 타고난 장작개비를 태울 불을 지피게 했다.

알타이아는 이 불길에다 네 번이나 그 운명의 장작개비를 던져넣으려다가 네 번이나 물러섰다. 아들에 대한 사랑과, 아우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맹세가 이 양자의 어머니이자 누나인 알타이아를 괴롭혔다. 아들과 아우들을 사랑하는 두 갈래 마음이 알타이아의 가슴을 두 쪽으로 찢는 것 같았다.

아들을 죽이기로 마음을 다그칠 때마다 알타이아의 얼굴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창백해졌다. 그러나 아우들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그 얼굴에서는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고, 두 눈에서도 불꽃이 번쩍거렸다. 표정도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말하자면 한동안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는가 하면, 어느새 이 얼굴이 연민에 가득찬, 자애로운 얼굴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는,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곧 말랐다. 그러나 그 눈물이 마른 자국 위로는 새로 나온 눈물이 흐르고는 했다.

이쪽으로 부는 바람과 저쪽으로 흐르는 조류 사이에서, 이쪽으로도 못 가고 저쪽으로도 못 가는 배처럼, 알타이아의 마음도 분노와 연민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누나로서의 알타이아가 어머니로서의 알타이아를 이겨내기 시작했다. 알타이아는 죽은 아우들의 영혼을 피로써 달래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아들을 죽이는 죄를 지음으로써, 원통하게 죽은 아우들에 대한 죄의식을 닦고자 마음먹은 것이었다.

하인들이 지핀 모닥불에서 불길이 오르기 시작했다. 알타이아는 저 타다 남은 장작개비를 손에 들고, 불길 앞에 서서 불길을 보며 외쳤다.


"이 불길을 화장단의 불길로 삼아, 내가 낳은 자식을 태울 수 있게 하소서. 징벌을 주관하시는 복수의 세 여신이시여, 제가 드리는 이 기이한 제물을 받으소서. 저는 이로써 아우들의 죽음을 복수하고, 아들을 죽이는 죄를 지으려 합니다.

죽음은 죽음을 통해서 화해를 이루게 하고, 사악한 죄악은 사악한 죄악을 통하여 씻기어야 하며, 살육은 살육을 통하여 갚음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러한 죽음과 사악한 죄악과 살육이, 마침내 이 집안을 파멸시킬 때까지 쌓이게 하소서.

친정 아비 테스티오스는 자식의 주검 앞에서 슬퍼하고, 지아비 오이네우스는 그 자식의 승리로 희희낙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둘 다 슬퍼할 거리가 있어야 마땅한 것이 아닙니까?


아, 내 아우들아, 저승에 당도한지 얼마 안 되는 내 아우들의 망령들아, 와서 내가 차리는 제물을 흠향하여라. 내 내 태에서 난 자식을 죽여 마련한 이 비싼 제물, 이 눈물겨운 제물을 흠향하여라.


아, 내가 왜 이렇게 서두르는 것이냐? 아우들아, 저 죄많은 것의 어미인 나를 용서하여라. 마음은 원이로되 손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내 아들이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내가 저 아이를 죽여야 한다니, 견딜 수가 없구나.

하면, 저 아이에게 벌을 내리지 말아야 할까? 너희 형제는 죽어 음습한 땅의 망령으로 떠도는데, 죽어서 한줌의 재가 되었는데, 저 아이는 이 멧돼지 사냥으로 칼뤼돈의 영웅이 되고, 칼뤼돈 땅을 다스리는 왕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용납해야 하느냐?

안 된다. 그것만은 나도 용납할 수가 없다. 이 죄많은 것도 너희들처럼 죽어야 한다. 죽어서, 아비의 희망, 제 아비의 왕국과 함께 저승으로 가야 한다. 제 아비의 왕국은 쑥대밭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아, 그러면, 어미가 자식에게 보이는 자애는 어쩌고? 부모와 자식을 잇는 사랑의 끈은 어쩌고? 내가 저 아이를 배고 했던 열 달의 고생은 어쩌고?


내 아들아, 차라리 네가 아기였을 때, 저 장작개비와 함께 네 생명을 태워버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 어미의 손으로부터 생명을 받았던 내 아들아, 이제는 그때 네가 받았던 생명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네가 한 일이 있으니, 야속하다고 생각 말고 그 대가를 치러라, 이 어미로부터 두 번, 한 번은 이 어미가 너를 낳았을 때, 또 한 번은 불붙은 장작개비를 불속에서 꺼낼 때 받았던 그 목숨을 어미에게 돌려다오. 네가 그 목숨을 내어놓기 싫거든, 이 어미를 어미의 아우들이 있는 저승으로 보내다오.


아, 내 손으로 이 장작개비를 태우고 싶다만 할 수가 없구나, 피투성이가 된 내 아우들의 모습, 이들이 죽어가던 순간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은데도, 아들에 대한 어미의 사랑, 어미라는 이름이 이 결심을 깨뜨리는구나. 나같이 팔자가 기박한 것이 또 있을까……


아우들아, 너희들은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이 승리하는 순간, 얼마나 무서운 일이 이 누이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느냐?

그러나 승리해야 한다. 너희에게 승리를 안긴 연후에, 나 또한 너희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너희와, 너희 영혼을 위로하려고 내 손으로 죽인, 내 아들의 뒤를 따라갈 것이다."


알타이아는 이렇게 부르짖고 나서, 그 운명의 장작개비를 불길 속으로 던져넣고는 고개를 돌렸다. 불길이 옮겨붙으면서, 그리고 그 불길에 맹렬히 타오르면서 그 장작개비는 신음했다. 아니, 알타이아의 귀에는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현장에 있기는커녕, 궁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하던 멜레아그로스에게 그 불이 옮겨붙었다. 그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 불길에 타고 있음을 알았다.

멜레아그로스는 불굴의 용기로 그 고통을 참아내려 했다. 그러나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피 한 방을 흘리지 않고 죽어가고 있음을, 불명예스럽게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는 슬퍼했다. 그래서, 치명상을 입고 죽어간 안카이오스를 부러워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연로한 아버지의 이름, 형제들의 이름, 누이들의 이름, 그리고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어쩌면 어머니의 이름도 불렀을 것이다.


불길이 소진되자, 그의 고통도 끝났다.

남은 불길 아래로 흰 재가 가라앉자, 그의 숨결은 대기 속으로 증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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