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이소룡의 트레이닝

작성일 작성자 말리크



“격투기에 대해 논하고 싶다면, 당신은 당신 몸의 모든 부분을 단련시켜야 한다."

- 이소룡 李小龍 ('Bruce Lee: The Lost Interview' 중에서)


'맹용과강 猛龍過江 (1972) 에서 이소룡.

무술인이자 철학자로 존경받는 브루스 리의 몸과 근욱에 대해 지난 수십년간 내려오는 한 일화.

 

이소룡이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 헐리우드 입성작, 'Enter The Dragon 용쟁호투 (1973)' 를 찍을 떄였다. 촬영장에는 영화의 감독인 Robert Clouse 은 물론이고 그의 부인인 Ann Clouse 가 와서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덥고 습한 홍콩의 태양 아래에서 상의를 벗은 채 무술신을 설명하며 지도하는 이소룡의 몸에 매료되고 만다. 촬영 중간 휴식시간에 그녀는 이 젊은 슈퍼스타에게 다가가 그의 "이두박근을 만져볼 수 있냐" 고 물었다. 


“네 그러세요.” 브루스 는 대답했고 - 이런 경우는 많았고 그는 대개 승락했다고 한다 - 이소룡은 팔에 힘을 주고는 그녀에게 만져보라고 했다.

“My God!” 이소룡의 팔을 만진 그녀가 내뱉은 말. 그리고는 재빨리 이소룡의 팔에서 손을 때며 "마치 따뜻한 대리석 같은 느낌이예요!”



'용쟁호투 (1973)' 에서의 이소룡.

 


이소룡은 꾸준히 무술을 연마하던 중, 결국 1964년 롱비치 국제 가라데 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의 무술실력을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후 그는 영화쪽으로 진출하지만 그렇다고 수련을 게을리 하지는 않고 더욱더 무술과 특히 그의 신체능력 향상에 집착을 보였다고 한다. 그가 죽은지 벌써 40년이 지났지만, 전세계의 수많은 팬들이 아직까지도 이소룡, 그에게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무술과 함께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그만의 특유의 괴성에 가까운 기합, 그리고 또 하나 세상 남정네들이 "이소룡" 하면 껌뻑 죽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그의 몸, 즉 철저하게 단련에 의해 제련된 그의 신체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근육을 가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의 근육이나 신체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것이 아니었다.(BMW 캐치프레으즈 같네.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다. 는)

이소룡의 근력과 유연성, 그리고 밸런스는 그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균형잡힌 몸에, 요즘말로 초콜릿 복근, 거기에다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순도 100% 순살코기 몸. 문제는 그런 근육질의 몸을 바디빌딩의 목적이 아니라 실용적인 목적으로, 즉 무술에 필요한 근육을 위한 훈련으로 다져진 근육들이라는 점이다.

 

'용쟁호투 (1973)' 의 프로듀서는 "그의 몸에는 단 1인치의 지방도 없었다. 그의 몸은 강철처럼 완벽한 근육 자체였다." 고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공짜로 얻어진 건 아니었다.

 

근력 트레이닝은 이소룡이 내구력과 함께 가장 중점을 두고 훈련을 한 부분이었다. 이후 그는 트레이닝을 더욱 전문적으로 발전시켜, 무술인으로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목적에 부합하고 효과적인 방법의 훈련법을 고안하였다.

 

그럼 먼저 이소룡이 바디빌딩에 관심을 가지는 부분부터 살펴보겠다.


그의 제자는 물론 추종자들과 팬들은 이소룡은 엘비스 프레슬리나 제임스 딘, 그리고 마릴린 먼로를 능가한다고도 하고, 심지어 그의 라이벌 무술인들도 그를 추종했다고 한다.


또한 동시대의 어떤 바디빌더보다도 이소룡의 추종자가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사람들은 각자 이소룡에게서 얻는 것이 달랐다는 것이다. 무술인들은 이소룡의 신체적 능력과 그의 무술의 힘과 기민성 그리고 과학을 무술의 세계에 들여온 그의 재능에 경이로움을 표하고, 영화 팬들은 맨몸으로 스크린애서 사실적인 액션을 선보이는 그의 동물적 자성과 존재감에 열광했으며, 그의 뒤를 이어 액션 장르가 활성화 되어 실베스타 스텔론과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그리고 잭키 찬이 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 있어서 영화사의 한 인물로 우뚝 선 인물로 평가한다. 또한 철학자들은 이소룡이 보여준 동양과 서양 철학을 한데 묶는 능력과 동서양 문화의 장점을 조화롭게 통합하는 그의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소룡의 또 다른 면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바로 바디빌더들이었다. 바디빌더들은 젊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이소룡의 몸을 한 번만 보고도 그가 그런 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엄청난 운동을 했는지 안다. 그리고 그들은 이소룡의 몸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바디빌딩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Flex Wheeler 와 Shawn Ray, Rachel McClish, 그리고 1970년대 드라마 '헐크 The Incredible Hulk' 의 헐크역의 Lou Ferrigno, 그리고 Lee Haney 와 Lenda Murray 그리고 전 미스터 올림피아 Dorian Yates 와 같은 기라성같은, 최고의 바디빌더들은 이소룡의 몸이 자신들의 바디빌딩 경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공식적으로 말한다.

 

이소룡의 몸에 대해서 바디빌딩의 살아 있는 전설인 Joe Weider 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뛰어난 definition 을 나타내는 근육질 몸입니다!”


Joe Weider

 

Josef E. "Joe" Weider (1919-)

 캐나다 출신의 Mr. Olympia 와 Ms. Olympia 창립자이자, 동생 Ben Weider 와 함께 국제 바디빌딩 연맹 IFBB 의 공동 설립자. 또한 바디빌딩과 피트니스 관련 책자와 잡지인 'Muscle & Fitness' 와 'Flex' 그리고 'Men's Fitness' 와 'Shape' 의 발행인이자 피트니스 관련 용품과 보조제 제조업자. 1950년대부터 많은 트레이닝 강좌를 저술하였으며, 웨이더 바디빌딩 시스템 강좌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깡마른 소년이었던 웨이더는 7학년(중1) 때 바디빌딩을 시작하고, 17살 때 폐차에서 액슬 등을 떼어내 바벨을 만들고, 단돈 7 달러로 자신의 잡지를 만들기 시작하여 수십년 후에 결국 바디빌딩 잡지 왕국을 만들게 된다. 1961년 웨이더는 '세계 바디빌딩 연맹 IFB International Federation of Bodybuilding' 를 설립한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그가 대표로 있는 보조제 제조사에서 생산, 판매한 영양 보충제들 중 여러 제품이 그 효과에 있어 클레임이 걸려 여러 차례 소송에 휘말린다.


2003년 그의 웨이더 출판업체는 American Media 에 매각되고, 2006년 노동절에는 웨이더의 제자이자 미스터 올림피아를 수차례 우승한 경력의 영화배우 출신의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죠 웨이더를 베니스 머슬 비치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일생의 업적을 기리며 상을 수상했다. 


웨이더를 소개하면서 아놀드는 웨이더에게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며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온 인물이라고 소개하였다.


죠 웨이더와 아놀드.

아놀드 아저씨, 아니 주지사는 이때 '터미네이터' 보다는 '코난' 에 가까운 시절. ^^;;



다시 이소룡으로 돌아와서, 이소룡은 신장이 단지 171 cm (5’7″) 밖에 안되었으며, 몸무게도 57 kg 에서 65 kg 을 왔다갔다 했다.


그의 몸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그의 몸의 각 근육의 발달 완성도이다. 40여년이 지난 오늘날 바디빌더들은 이소룡의 근육의 질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해부하여 기준으로 삼고 트레이닝을 한다.

 

이소룡은 원래 웨이트 트레이닝과 바디빌딩의 목적이 바디빌딩 선수들처럼 커다란 근육을 키우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프로 바디빌딩 선수들은 이소룡의 몸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영향을 받았다.


이소룡의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이자 지쿤도 截拳道 (절권도) 사범인 테드 웡 Ted Wong 에 따르면, 

 

“브루스는 대부분의 훈련을 근력과 스피드에 할애했습니다.”


그의 근육질의 몸은 바로 이러한 목적의 훈련으로 인해 얻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 Ted Wong(1937-2010.11.24.)

 무술인, 이소룡의 마지막 개인 제자.

이소룡과 그의 제자이자 친구 테드 웡 Ted Wong.

이소룡의 뒷마당에서 수련하는 모습.

 

테드 웡은 이소룡의 마지막 개인 제자로 1967년 로스앤젤레스의 쿵후 세미나에서 강연을 하는 이소룡을 처음 만난다. 당시 웡은 무술을 배운적이 없었으며 복싱이나 다른 무술을 배우려 하고 있었는데 이소룡의 강의를 듣고 너무 깊은 감명을 받게 되고 이소룡이 당시 로스앤젤레스에서 가르치는 '즌펀 궁푸' 를 배우기로 결심한다.


이소룡은 테드 웡을 개인 학생으로 받아들이고, 웡은 이소룡의 스파링 파트너이자 친한 친구가 된다. 테드 웡은 이소룡이 즌펀 궁푸에서 지쿤도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 함께 하였으며, 이소룡이 가라데 챔피언 죠 루이스나 NBA 스타 플레이어 카림 압둘 자바 Kareem Abdul-Jabbar (이소룡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사망휴의 (1973)' 에 출연) 와 수련하는 과정에도 함께 하였다.


테드 웡은 브루스 리의 지쿤도를 사사받은 사람들 중 단을 받은 몇 명 중의 한 명으로, 또한 지쿤도 제자들 중, 브루스가 가르친 무술 외에는 이전에 다른 무술을 배운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이로인해 그는 이후 브루스 리가 자신에게 가르친 내용이외에 다른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테드 웡은 죽기전 까지 세미나를 열고, 개인적으로 지도를 하였는데, 그가 가르친 인물로는 이소룡의 딸 섀넌 리 Shannon Lee 를 비롯하여, 무술사범인 마크 스튜어트 Mark Stewart , Bob Landers, Rodney Hitchcock, Octavio Quintero, David Gallaher, Richard Torres, Lewis Luk, Teri Tom, Tommy Gong, Bill Mattucci, Mike Rutter, Hiro Watanabe, Yutaka Matsuoka, Tim O'LearyMike Gittleson, Joaquín Marcelo 그리고 명예의 전당 사범 Albert Grajales 가 있다.

테드 웡은 Bruce Lee Foundation 의 종신 임원이다.



바로 이 로스앤젤레스 차이나타운에서 열린 이소룡의 "공식" 즌펀 궁푸도장 개관식에서 테드 웡 (카메라 전면의 인물) 이 처음으로 이소룡을 만났다.


이소룡과 테드 웡. 1967년 크리스마스.

이들은 이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연구를 하였다.

오른쪽은 테드 웡의 친구 레이몬드 황.


이소룡과 테드 웡.


테드 웡 결혼식 연회장에서 이소룡과 그의 부인 린다.

이소룡은 테드 웡에게 "린다와 결혼하게 된건 정말 너무 행운이야, 난 정말 운 좋은 사람이야." 라고 했다 한다.


1972년 12월. 브루스 리를 방문하러 홍콩을 방문한

테드 (맨 좌측), 태권도 사범 이준구 사범, Herb Jackson (오른쪽에서 두번째)


테드 웡 Ted Wong (1937-2010.11.24.)

  

  

동료 무술인부터 헐리우드의 프로듀서들까지 이소룡을 만난 사람들은 그의 근육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소룡의 친한 친구이자 제자인 타키 키무라는(그는 1964년 이소룡의 결혼식때 그의 '베스트 맨' 이었다) 이소룡의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결과물인 근육을 내보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고 말한다.

 

 "이소룡은 제가 이제까지 본 사람 중에 활배근이 가장 엄청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엄지를 입에 물고는 풍선에 바람을 넣듯이 부는 시늉을 하면서 자신의 활배근을 펼쳐보이는 장난을 치곤 했지요. 그러면 그의 활배근은 마치 코브라처럼 펼쳐졌습니다."







이소룡의 몸은 근육의 모양과 명확도 그리고 데피니션이 타의 추중을 불허하여 수십년 동안 무술인은 물론 전문 바디빌더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러한 근육의 크기와 모양, 질 그리고 인접한 근육군들과의 명확성은 물론이고 그의 몸과 근육의 가장 커다란 장점은 바로 무술인으로서의 기능성에서의 실용성에 있었다. 그의 몸의 개개의 근육군은 개별적으로 발달되어 있으며, 그 근육들은 바디빌더들의 근육처럼 단지 보여주기 위한 성질의 것이 아닌, 실제 격투에 굉장히 효율적인 기능적인 근육들이었다.

 

이소룡의 미국에서의 첫 제자인 제시 글로버에 따르면, 시애틀에서 자신을 지도하던 이소룡은  무엇보다도 기능적인 면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러한 보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효율적이고 기능적인 근육들을 훈련으로 얻은 이소룡의 모습은 천정에 매달린 전등을 발로 차 깨뜨리거나 (MGM 영화 'Marlow' 와 '맹용과강 (1972)' 에서), 롱비치 국제 가라데 선수권대회에서 약 3 미터 떨어진 거리의 상대를 0.05 초에 펀치를 날리는 모습 등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이소룡의 근육과 신체능력은 당시는 물론이고, 그가 사망한지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뭇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비단 그의 근육의 짜임새뿐만이 아니라 그의 균형잡힌 몸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체능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모양뿐이 아닌 실용적 목적의 근육과 신체능력은 이미 알려진바 대로 굉장히 엄격하고 철저한 계획과 격렬한 단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소룡, 그의 조각같은 몸을 탄생시킨 그의 체력 단련 트레이닝에 대해 알아보겠다.
 
 
그기 특히 바디빌딩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1965년 웡잭만과의 결투 때문이었다. 당시 대결에서 이소룡은 약 3 분에 걸쳐 대결을 하고 상대를 쓰러뜨렸는데, 이소룡은 실전 격투에서 자신의 무술로 상대를 쓰러트리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고, 그는 실전에서 그렇게 시간을 많이 끌면 불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자신의 신체조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무술의 실전성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여, 무술 수련에 대한 접근법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무술인들은 이소룡이 보기에 체력 단련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이소룡은 충분할만한 힘, 즉 그의 근육들과 심폐 기능 모두에서 충분한 힘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그는 먼저 총체적인 체력 단련에 들어갔는데, 먼저 근력과, 근지구력 그리고 심혈관 지구력과 유연성을 기르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 방법으로 이소룡은 전통적인 바디빌딩 방식을 이용하였는데, 그는 커다란 근육을 만드는 훈련을 먼저 시작한다. 당시로서는 바디빌딩 잡지들이 근력과 체력 트레이닝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어서, 이소룡은 모든 바디빌딩 관련 책을 신청하여 구독한다. 그는 바디빌딩 잡지에 나와 있는 내용과 이론들을 시험해 보았고, 틈나는대로 중고서적 판매점에 가서 바디빌딩과 체력단련 관련 책자들을 구입했다. 그 중에서 이소룡은 1897년에 쓰인 Eugene Sandow 의 'Strength & How to Obtain It' 을 집중해서 읽었다. 이소룡은 바디빌딩 분야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많아서 "막 나온 신간" 부터, 바디빌딩 초창기에 나온 고전들까지 구할 수 있는 책은 모두 구입했다고 한다. 근력이나 체력, 힘과 근육의 물리적 효율성 등에 관한 정보나 지식이 직접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에는 가격이 비싸도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해서 바디빌딩과 웨이트 트레이닝, 그리고 생리학과 운동 생리학에 관한 서적이 140권이 넘는다고 하고, 철학과 무술에 관한 책이 2천여권을 넘었다고 한다.
 

이소룡은 신체 능력을 극대화하여 경이로울 정도의 효율성을 낼 수 있는 몸과 근육을 만들고, 인간의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트레이닝 내용을 꾸준히 변경하면서 실험해 나갔다. 

 


이소룡이 조 웨이더에세 보낸 수표.

 

  

그는 그가 죽는 1973년까지 이런 방대한 양의 책을 읽으며 중요한 내용은 메모를 하고 자신의 훈련과 자신의 무술에 어떻게 응용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하였다고 한다. 이노산토는 이소룡이 당시 LA 차이나타운의 그의 도장으로 바디빌딩 잡지 기사들을 한아름씩 들고 들어왔다고 회상하며 "이것 좀 봐. 여기 이 모든 바디빌더들이 근력을 키우기 위해 이런 운동을 한다고 하네. 그들이 쓴 글들에 전부 공통된 부분이야." 이소룡은 핵심적인 내용들을 찾아봤으며,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내용들은 과감히 배제했다.

 

수 년간 이소룡은 생리학과 해부학 그리고 운동 생리학을 공부하면서 동양의 전통 무술과는 다른 접근방식으로 비생산적인 훈련을 배제하고 유용한 훈련을 이해하고 훈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훈련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육체의 완성도에 대해 고민해야 하며, 총체적인 것에서 끌어내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그는 근력과 스피드, 그리고 조화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스크린에서 보이는 환상적인 그의 몸매와, 동시에 기능적으로도 뛰어난 근육을 가지기 위해 이소룡은 리서치를 하였고, 두 명의 바디빌딩 선수와 친구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제자들의 도움으로 그가 원하는, 그리고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바디빌딩 프로그램을 짜고, 일주일에 3일 훈련에 들어간다.

 

그들 중 Allen Joe 에 따르면,  “제임스 리와 저는 브루스 리에게 기본적인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법을 소개해 주었지요. 우리들은 스쿼드와 풀오버, 컬 등 기본 동작들을 3 세트씩 함께 하곤 했습니다. 특별히 다른 건 한게 없고, 우린 일단 브루스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당시의 프로그램은 이소룡이 1965년부터 1970년까지 꾸준히 행하였으며, 실제로 이소룡이 추구한 경제적이며 효율적인 운동효과에 대한 철학에 부합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하루 건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휴식기간 중 근육이 피로를 해소하면서 동시에 성장하는 시간을 주게 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쉬는 날에 무술 연습이나 지구력 훈련 등을 하여 효율적으로 프로그램을 짜서 운동을 하였다. 그 결과 당시 이소룡은 58 kg 에서 한때는 75 kg 까지 나간적도 있었다. 하지만 제시 글로버에 따르면 이소룡은 늘어난 근육을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브루스 리가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고 한떄는 켈리포니아에 있을 때 75 kg 까지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몸무게는 브루스에게는 맞지 않았고, 그의 동작은 느려진 것 같았어요. 그는 정말 바디빌더 처럼 몸이 좋았어요. 그런데 얼마후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 불필요한 근육들은 싹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브루스가 원하는 것은 바로 '기능성' 이었지요. 그런데 불필요한 근육들은 그것을 방해했고, 결국 브루스는 그 불필요한 근육들을 없앴습니다. 브루스는 이후 웨이트 트레이닝은 단지 자신의 무술수련을 보완해 주는 정도로만 행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소룡은 근육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것이 아니라 무술에 필요한 기능성을 높이기 위해 행하였고, 이에 그는 바디빌딩 계획표를 짜는데,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에서 크게 세 가지에 중점을 두고 훈련을 하였다. 유연성을 위한 스트레칭, 근력 및 체력, 그리고 심폐계를 위한 심혈관 운동이 그것이었다.


이소룡의 초기 웨이트 트레이닝 프로그램.

  

이소룡의 바디빌딩 프로그램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운동                  세트        횟수

Clean & Press     2             8
Squats                2            12
Pullovers            2              8
Bench Presses    2             6
Good Mornings    2             8
Barbell Curls       2              8

 

 

1. Clean & Press

 Olympic 바벨을 어깨너비로 잡고, 무릎을 구부린 자세로 스쿼드 자세에서 재빠르게 팔을 낚아채고, 바벨을 가슴에 대고 일어선다. 잠시 정지한 상태로 있다가 바벨을 머리 위로 든다.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가 바벨을 가슴으로 내리고, 다시 정지. 시작 위치로 돌아와 바벨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이 동작을 휴식 없이 8회 한다. 심혈관계와 근력향상을 위해 한 세트를 더 한다.

 


2. 스쿼드

 바디빌딩에서 주요 동작인 스쿼드는 이소룡의 바벨 트레이닝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운동이었다. 그는 스쿼드의 장점과 그 역학적 이론을 여러 차례 글로 썼으며 이 운동의 여러가지 변형 동작들을 훈련하였다. 하지만 대개 일반적인 스쿼드를 행하였으며 바벨을 그의 어깨에 올려놓고 양발은 어깨너비로 벌리고, 중심을 잡고 천천히 풀스퉈드 포지션으로 내려갔다가, 히프와 둔부 그리고 햄스트링과 허벅지 근육에서 힘을 끌어내어 원위치로 돌아오는 방식으로 운동했다. 이소룡은 이 동작을 12회씩 2 세트를 행하였다.



3. Pullovers

 벤치에 등을 대고 바벨을 어깨너비로 잡는다*요즘 웨이트 트레이닝에서는 아령을 양손으로 모아 잡고 하는 방법도 있음).  바벨을 든 양팔을 머리뒤로 바닥에 살짝 닿을 정도까지 죽 내린다. 팔꿈치는 살짝 구부린 상태.  이렇게 완전히 뻗은 상태에서 활배근과 대흉근, 그리고 삼두근을 이용하여 천천히 원위치로 돌아온다.  이소룡은 8회씩 2 세트를 행하였다.

 

 

4. 벤치 프레스

 이소룡은 가슴근육 또한 발달했는데, 그의 훈련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소룡은 가슴근육 운동으로 벤치 프레스만을 행하였다. 벤치에 등을 대고 누워, 올림피아 바벨을 어께너비로 잡고 들고, 바벨을 가슴쪽으로 내린다. 숨을 내쉬고 바벨을 밀어 원래 위치로 간다. 이 동작을 6회 하고 조금 뒤에 다시 한 세트를 더했다.

 

 

5. Barbell Curls

 이소룡은 바벨 컬을 벨 에어, Roscomare Ave. 의 자신의 집에서 운동하였을 뿐 아니라 홍콩에 돌아갔을 떄도 지속적으로 단련했다. 이두박근 운동은 이소룡이 아주 중요시한 운동이었는데 특히 그의 잡아당기는 힘은 엄청나서 스파링 시에 종종 사용했다고 한다. 어깨 너비로 바벨을 잡고 다리는 약간 구부린 채로 이두박근을 이용하여 바벨을 가슴높이까지 들어올렸다. 완전수축 상태에서 잠시 동작을 멈추고 천천히 바벨을 원위치로 내린다. 8회 2 세트 반복.

 


1965년, 이소룡이 홍콩으로 돌아가 머물 당시, 그는 단지 24살이었고, 그가 했던 웨이트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팔운동에 많이 중점을 두고있었는데, 그는 실전 격투에서 자신의 팔과 손의 위치를 자신이 점하고 싶어했다. 당시 이소룡은 이두박근 운동으로 32 kg 에서 36 kg (70 to- 80 lb) 짜리 아령으로 8회씩 3 세트를 했다. 그리고 스쿼드와 푸쉬업, 리버스 컬 reverse curls (손등이 전방을 향하도록 바벨을 잡고 팔꿈치를 구부려 바벨을 들여올림), concentration curls (벤치에 앉은 상태에서 덤벨을 들고, 팔꿈치를 다리 안쪽에 대고 이두근을 수축하여 덤벨을 들어 올림), French presses (벤치 프레스 자세에서 바벨을 가슴이 아니라 눈 위치로 내리는 동작. 삼두근 운동), 그리고 wrist curls 과 reverse wrist curls 등을 했다. 횟수는 6회에서 12회를 행했다 (당시).

 


이러한 순발력을 기르기 위한 속근을 키우는 트레이닝법을 행하는 동안 이소룡은 근육량이 늘어나 뭄무게가 약 72 kg (160 lb) 까지 늘어났다.

이소룡은 자신의 서재에 책이 2천5백여권이나 있었는데, 그는 당시 "강한 근육은 큰 근육에서 그 힘이 나온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이 사실에 의문을 가진다).


바벨 컬 barbell curl 을 하고있는 이소룡.

 

  

또한 이소룡은 손아귀 힘과 펀치력을 키우기 위해서 전완근(팔뚝) 트레이닝에 열중하였다. 그는 전완근 운동을 매일 하였으며, 그의 부인 린다에 의하면, 이소룡은 전완근 운동 매니아로, 어떤 프로 바디빌더가 전완근 강좌를 열면 바로 신청했을 거라 한다. 또한 그는 샌프란시스코의 친구 조지 리에게 "악력 훈련기" 를 만들어 달라고 다지인까지 해서 보내기도 했다고한다. 이에 조지 리는 그런 운동기구를 만들어 하나는 이소룡에게 보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사용햇다고 한다. 그리고 Allen Joe 에 따르면, 이소룡은 항상 팔 근육을 단련하는데 힘을 쏟았으며, TV 를 보면서도 바벨을 들고 Wrist curls 를 하고, 이어서 복근운동을 하고, 다시 전완근 운동을 했다고 한다. 이소룡이 가장 좋아한 동작은 Zottman curl 로 (발은 어깨너비로 벌리고 서서, 양손에 각각 덤벨을 손바닥이 전방으로 향하게 들고, 팔꿈치를 고정한 채 들어올린다. 그 상태에서 손바닥이 전방을 향하도록 손목을 돌리고 천천히 손을 내림),  이소룡은 이 운동을 시도때도없이 했다고 한다.



Wrist curl 운동을 하고있는 이소룡.



댄 이노산토에 따르면, 이소룡은 위에 언급한 운동만 한 것이 아니라 웨이트 트레이닝을 자신의 무술 수련에 도입하여 훈련하였다고 한다.


 “브루스 리는 항상 가벼운 아령을 손에 들고 섀도우 복싱을 했습니다.  그리고 12 종류의 펀치를 이어서 하는 훈련을 했지요. 한 종류의 펀치는 100회로, 아령도 피라미드식으로 1 파운드에서 2, 3, 5, 7, 그리고 10 파운드까지 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령 무게를 거꾸로 내려가면서 같은 방식으로 섀도우 복싱을 했고, 마지막에는 아령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했지요. 브루스는 저한테도 이 훈련을 하라고 시켰습니다. 휴! 상체부위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지요."

 

이소룡은 특히 홍콩으로 돌아가 영화에 매진할 떄도 특히 집에 있을 떄에는 덤벨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린다에 의하면 이소룡은 집에서 TV 로 복싱경기를 보면서 다리를 찢고, 한손에는 덤벨로 운동을 하고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책을 읽었다고 한다.

 

 

이소룡은 하루 약 4 시간 정도, 그것도 아주 강도 높은 운동을 했는데, 아침 7시부터 9시까지는 복근 유연성 운동과 달리기를 하였고, 한 시간 휴식 후 11시부터 12시까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자전거를 탔다. 이소룡은 2마일에서 6마일을 15분에서 45분 동안 뛰었으며, 3-5분 간격으로 달리는 속도를 달리하였다. 또한 이소룡은 규칙적으로 실내자전거로 10마일(약 15 킬로미터) 을 45분 동안 타며 심폐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몇 가지 트레이닝 routines 과 내용을 만들었는데, 트레이닝과 바디빌딩에 효과적인 줄넘기도 포함시켜, 자전거 타기를 하고 줄넘기를 800회씩 했다.




특히 이소룡은 어떠한 무술동작에서도 어느 정도 이상 움직이는 복근에 대해, 무술인에게 가장 중요한 근육군이라고 생각하여 복근의 단련에 중점을 많이 두었다. 미토 우에하라는 "브루스 리는 언제나 복근을 단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복근을 단련하지 않으면 강도 높은 스파링은 어렵다고 했지요."

 

"배는 가장 공격을 잘 받는 부위이며 동시에 가장 운동성이 떨어지는 부위" 라는 것이 이소룡의 생각이었다. 또한 인체의 급소인 '명치' 를 보호하기위한 방법으로, 또한 배 자체에 가격을 당했을 때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복근 단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역시 복싱에서도 배 부위는 단련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부위라 하여 끊임없이 훈련을 통해 강화하긴 한다. 먼저 복근강화 훈련부터 시작해서 "메디신 볼" 이라는 농구공 모양의 묵직한 가죽공으로 그 높이를 달리하여, 또는 직접 잡고 훈련하는 사람의 배에 떨어뜨리거나, 가격하는 방법으로 복부부위를 단련시킨다.

개인적으로는 배에 떨어뜨리는 용도는 아니고, 티비 등을 보면서 눕거나 서서 아령 대신 이 메디신 볼로 각종 동작을 되풀이하면서 유연성과 적당량의 근력을 키우고는 했었고(호흡 잘해야 함). 모든 운동은 우선은 자세와 동작에 따라 다르고, 그리고 횟수와 세트, 그리고 강도에 의해서 그 목적과 효과, 질, 결과가 달라지는데, 이 메디신 볼로 각종 동작을 하게되면 다른 장점들도 있지만 일단 아령과 달리 손가락까지 강화되는 운동이 되는 점이 좋았다.(대개 한 3-4 kg).

 

 

또한 이소룡의 부인 린다 리 커드웰에 따르면, 이소룡은 항상 허리가 26인치에서 28인치 내외였는데, 그는 복근 훈련에 특히 열중하였으며, 윗몸 일으키기는 물론, 크런치와 로만 체어 운동 Roman chair (역시 복근운동으로 기구 위에 자리를 잡고 복근 또는 허리쪽 등근육 부위를 운동할 수 있다), 그리고 다리 들어올리기와 V-up 등을 했으며, 트레이닝을 하지 않을 떄에도 TV 등을 보면서 윗몸 일으키기나 복근 운동을 했다고한다.

 

척 노리스 Chuck Norris 가 한번은 이소룡의 집에 놀러 갔을때 이소룡은 누워서 덤벨을 양팔로 좌우로 들어올리며 가슴근육 운동을 하면서 배 위에서는 그의 아들 브랜든이 뛰어놀고, 동시에 다리를 들어올리며 복근 운동을 하고 TV 를 보고있었다고 한다.


 다리 들어올리기로 복근운동을 하고 있는 이소룡.


 

 V-up 을 하고 있는 이소룡.

이소룡은 이 자세로 30분 이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드래건 프래그 dragon flag'


이소룡의 트레이닝 노트에는 '허리 트위스트 - 90회 4세트, 싯업 sit-up 트위스트 - 20회 4세트, 다리 들어올리기 - 20회 4세트, 리닝 트위스트 - 50회 4세트, 개구리점프킥 - 50개 4세트' 식의 복근 단련 운동 과정이 적혀 있었고,특히 벤치에 누워 어깨 힘과 배, 등의 힘만으로 몸을 거의 '공중에 수평으로 유지하는 동작' 인 '드래건 프래그 dragon flag' 은 이소룡이 개발한 복근 단련법으로 그의 복근 단련에 빠지지 않고 들어갔다.


이소룡 친필 트레이닝 스케줄.


이소룡의 트레이닝 일기.


하지만 이소룡은 무리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여러 차례 부상을 입었는데, 1970년 8월 13일. 이소룡은 등 아래부분을 단련하기 위한 운동으로, 바벨을 머리 뒤로 어깨에 놓고 인사하듯이 히프를 지점으로 앞으로 몸을 숙였다가 원위치 하는 'Good Mornings' 운동을 준비운동도 없이 자신의 당시 몸무게 무게인 135 파운드 짜리 역기를 들고 이 동작을 8회 하였다. 마지막 횟수를 할 때 그는 뭔가 “퍽” 하는 소리를 들었고, 불행히도 그는 척추 아랫부분 제 4번 천골 신경에 손상을 입는다.


이소룡은 수술을 받고 병상에 6개월간 누워 있으면서 치료를 받는데, 당시 그를 치료했던 의사는, 그가 다시는 발차기를 할 수 없을것이라고 했다. 이로 인해 이소룡은 평생 극심한 요통에 시달리며 살게 되고, 그가 진통제에 중독된 것도 바로 그 부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소룡은 누워 지내는 6개월 동안, 모든 종류의 무술들과 사상과 철학 등에 대해 읽고 또 읽으면서 정신세계를 한층 더 넓고 깊게 펼쳐나간다. 특히 그는 불교와 인도와 크리슈나무르티의 사상에 심취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이소룡은 자신의 훈련법과 함께 자신이 창시하는 무술 "지쿤도 截拳道 절권도" 에 대해 린다에게 구술로 전하고 기록하기 시작하는데, 당시 그가 구술하고 기록한 내용과 자신의 무술인 '지쿤도 截拳道 절권도' 에 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을 그의 사후, 그의 아내 린다 리가 펴낸 것이 바로 'Tao of Jeet Kun Do' 이다.(이 얘기는 조금 있다가...)

 

 

S. China Post 紙 기사에 따르면, "의사는 이소룡에게 몸에 너무 무리를 주지말라고 경고하지만 이소룡은, "인간의 뇌는 진짜 고통도 굴복시킬 수 있다." 고 말했다." 고 한다. 이소룡은 결국 일어났고, 다시 걸었으며, 발차기 또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인류에 있어서 감사한 일이다.



이러한 체력 단련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이소룡은 보기에도 놀라운 근육과 몸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무술인으로서 경이로울 정도의 신체적 능력을 보였다.

 

바디빌더들은 근육의 크기와 함께 모양을 만들어, 각 부위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균형미를 가꾸는 것이 주된 목적이고, 반면 육상선수나 각종 구기종목 선수들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당 종목의 동작이나 지구력 등, 필요에 의한 근육의 근력과 지구력, 그리고 유연성 등을 기르기 위해 바디빌딩까지는 아니더라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이런 점에서 볼때 이소룡의 몸과 근육은 후자라고 해야겠다.

 

이소룡의 친구이자 스승 그리고 제자였던 댄 이노산토는 이소룡에 대해 그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근력과 체력에만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번은 브루스와 같이 산타모니카 해변을 걷고 있었지요. 우리는 마침 ‘Dungeon’ (바디빌딩 체육관) 앞을 지나게 되었어요. 그때 그 체육관에서 덩지가 큰 바디빌딩 선수가 나왔어요. 그때 제가 브루스에게 말했지요.


"와..저 사람 팔 근육 좀 봐!" 나는 그떄 브루스가 한 말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 체격이 상당하네. 그런데 저 사람 강할까? 저 여분의 근육이 과연 효율적일까?"

 

이소룡에게 있어서 힘, '파워' 는 체육관에서 기른 힘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쓰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파워는 얼마나 힘을 효과적으로 끌어내어 "실제 세계" 에서 빠르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이 점에 있어서, 척 노리스 Chuck Norris (1940-) 와 같이 이소룡과 함께 운동을 한 사람들은 이소룡은 그와 동체급에서는 세계 최강일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 헤비급 킥복싱 챔피언" 이자 "미국 가라데 블랙 벨트 카타 (形) 챔피언" 그리고 "세계 헤비급 가라데 챔피언" 을 지낸 미국 가라데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파이터라 일컬어지는 Joe Lewis 는 이소룡에 대해 그의 체격에 비해서 (171 cm, 63 kg) 믿을 수 없을 만큼 강했다고 말한다. “브루스 리는 선 자세에서 34 kg짜리 바벨을 가슴까지 들어올려서 천천히 팔을 뻗어, 그 상태로 20초를 버텼습니다. 이건 엄청나게 힘든 동작입니다. 더군다나 그는 62 kg 밖에 안나갔어요. 내가 아는 90 kg 이나 나가는 프로 역도선수도 그걸 못합니다."



미국 가라데의 전설, 조 루이스 Joe Lewis.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척 노리스와 함께 전미 가라데 챔피언들 중 이소룡에게 지도를 받은 무술인.

원래 이 사람이 '맹용과강 (1972)' 에 출연하려고 했지만, 이소룡과 사이가 안좋아져 척 노리스가 출연한 것이라고 한다.

 

 

* Joe Lewis(1944-)

 미국의 킥복서이자 가라데 무술인이자 배우로 미국 가라데 계의 무하마드 알리라고 일컬어지는 인물. 1962년 미해병대에 입대, 일본 오키나와에 배치되어 근무할 때 쇼린류 가라데 Shorin-ryu를 배운다. 루이스는 단 7달 만에 블랙 벨트를 딴다. 조 루이스는 베트남전에 참전하는데, 그는 미해병대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한 해병대원 중 한 명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루이스는 전설적인 복서 록키 마르시아노 Rocky Marciano 와도 만난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온 조 루이스는 각종 무술대회에 참가, 많은 우승을 하고, 1967년부터 1968년까지 그는 영향력있는 무술가이자 지쿤도 截拳道 (절권도 )의 창시자 브루스 리에게 개인교습을 받는다. 이소룡은 원래 조 루리스를 자신의 영화 '맹용과강 (1972)' 애 풀연하길 원했지만, 둘 사이가 안좋아져 척 노리스가 출연하게 되었다.

 

1965년, 죠 루이스는 단지 22 개월의 트레이닝을 하고 첫 출전한 이준구 사범이 주최한 전미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 죠 루이스는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전미 종합 챔피언 타이틀을 지속적으로 거머쥔다. 이렇게 격투가로서 조 루이스는 1960년대와 1970년대레 수많은 대회에서 훌륭한 기량과 우승을 하고, 킥복싱과 풀 컨택 가라데 대회에서도 많은 우승읋 하며 명성을 얻었다. 두 차례에 걸쳐 가라데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격투가로 선정되었으며, "미국 헤비급 킥복싱 챔피언," "세계 헤비급 가라데 챔피언," 그리고 "전미 블랙 벨트 카타 챔피언" 의 영예를 얻는다. 



1967년 세계 가라데 대회에서 3회전에서 척 노리스와 시합을 하고 있는 죠 루이스.

이 시합은 척 노리스가 승리하였다.

* Carlos Ray "Chuck" Norris(1940-)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무술인. 학창생활이 끝나고 1958년, 미공군에 입대, 군생활을 바로 한국의 오산 공군부대에서 한다. 오산에서 쳑 노리스는 "척 Chuck" 이라는 예명을 갖게 되고, 당수도 唐手道(무덕관에서 배웠다.)를 배우게 된다. 미국으로 돌아와 제대를 하고 그는 수련을 지속하면서 무술인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1964년 롱비치 국제 가라데 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가 브루스 리를 만나게 되고, 그의 제자가 된다. 척 노리스는 이후 1972년 브루스 리의 영화 '맹용과강 (1972)' 에 출연하여 세기의 명결투장면을 남긴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 척 노리스는 바로 이 '맹용과강' 에서의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이후 그는 '천국도' 라는 그의 유파를 창시한다. 그리고 1974년, 영화배우 스티브 맥퀸 Steve McQueen 의 소개로 MGM 영화사의 연기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는다. 척 노리스는 현역 시절 가라데 대회에서 183승 10패 2무의 기록을 가지고있다.



이소룡의 탁월한 운동능력에 대해 그의 동료이자 스승, 그리고 동시에 제자였던 댄 이노산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브루스 리는 덤벨을 들고 선 자세에서 수평으로 팔을 뻗는 동작을 하는데, 56 kg 을 수평으로 들고 서 있는 것을 본적도 있습니다."


이소룡의 제자 제시 글로버도


 "브루스는 32kg 짜리 덤벨을 한 손으로 들고 옆으로 어꺠높이까지 들어올려서 그 상태로 몇 초간 있었지요. 덤벨을 거기까지 들어올릴 수 있는 사람도 저는 본적이 없습니다."

 

용상 150 kg 을 들며 1894년 유럽 역도 챔피언인 Karl Abs 가 같은 동작으로 40 kg 을 들어올린 것이 세계기록이라고 한다.

 

 

이소룡의 몸과 근력에 대한 에세이에서, 저자 Christopher D. Hess 는 


 “브루스 리는 bicep curls 을 하는데 36 kg 짜리 덤벨로 8회를 하였는데, 이는 50 kg 덤벨로 1회 하는것과 같은 운동량이며 55 kg 에서 63.5 kg 의 몸무게를 가진 사람으로서는 자신의 힘을 100 % 다 쓴것과 같습니다."


1973년 블랙벨트 매거진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찍은 사진에서는 이소룡이 한 손으로 52 kg 덤벨로 이두근 운동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Ted Wong 도 이소룡의 놀랄만한 근력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브루스는 다양한 종류의 웨이트 트레이닝 동작들을 운동했는데, 그는 Weider Heavy/Light Principle 과 같은 벤치 프레스를 260lbs 까지 10회씩 3 세트를 하고는 했지요. 그리고 조금 가볍게 운동하는 날은 100lbs 로 20-30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250 파운드를 몸에 얹고 푸쉬업을 할 수 있게되고, 엄지손가락 만으로 푸쉬업을 할 수 있게 되자, 이소룡은 또 다른 운동법을 했습니다."

 

이렇게 이소룡은 한 손으로, 그것도 손가락 두 개만으로, 그리고 엄지손가락 하나만으로 팔굽혀펴기를 했으며, 61 kg (135 파운드) 밖에 안나가는 몸으로 125 파운드 (56.6 kg) 바벨을 팔을 편 자세로 앞으로 들고 수 초간  들고 있었으며, 자신보다 40kg 이 더 나가는 사람을 1인치 펀치로 몇 미터씩 나가떨어지게 한 그의 능력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롱비치 국제 가라데 선수권대회에서 손가락 두개로 푸쉬업을 하고 있는 이소룡.

 

  

전미 유도 챔피언 헤이워드 니시오카 Hayward Nishioka 사범은 가슴에 보호대를 대고 이소룡의 "1인치 펀치" 를 맞아본 적이 있는데, 그는


"브루스 리가 나를 1인치 펀치로 쳤을 때 나는 완전히 튕겨나가고 말았지요. 하지만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믿기자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브루스에게 다신 한번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의 일인치 펀치를 두번째 맞자 그의 위력이 실감이 났습니다. 그처럼 강한 사람이 있다는게 믿기지가 않아요."

 

니시오카 사범이 시게루 에가미 선생의 제자인 가라데 4단 하시모토 사범에게 이소룡의 일인치 펀치에 대해 묻자, 그는 "어마어마합니다. 저는 일본에서도 그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이소룡은 1967년 롱비치 국제 가라데 선수권대회에 다시 참석하여 USKA 세계 가라테 챔피언 Vic Moore 를 상대로 그의 유명한 "unstoppable punch" 등을 시연해 보인다. 브루스 리는 비크 무어에게 얼굴을 스트레이트로 가격할테니 막아보라고 했다. 브루스는 몇 걸음 뒤로 몰러나서 무어에게 준비됐냐고 묻고는, 무어가 고개를 끄덕이자 미끄러지듯 다가와 무어의 얼굴에 스트레이트를 날리고 얼굴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이 동작을 브루스는 8번이나 더 했고, 무어는 단 한 대도 막지 못했다.


John Little 은 “이소룡은 인간의 육체의 능력이나 한계를 확인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정기적으로 하루에 정권치기를 2천번씩 하고, 발차기를 천번씩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3마일 달리기를 하고 실내자전거로 15마일을 운동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신체가 이러한 것들을 버텨낼 수 있는지 보기위해서 였습니다."

 

이러한 경이로운 웨이트 트레이닝의 결과로 이소룡은 상대로부터 1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손을 내린 상태에서 상대를 0.05초에 가격할 수 있었으며, 스피드 시연에서는 상대방 손바닥에 있는 동전을 상대가 주먹을 쥐기 전에 낚아채고 다른 동전을 놓아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소룡은 주먹 단련을 위해 통에 돌과 자갈을 가득 넣고 가격하여 주먹을 단련하였는데 한번에 500회를 하였는데, 그가 멋지게 해보인 것으로 코카콜라 캔을 손가락으로 뚫었다고 한다. 또한 이소룡은 공중에 던진 쌀알을 젓가락으로 잡았다고 하며, 한 손으로 턱걸이를 50회를 했다고 한다. 그는 그의 몸무게의 두배나 나가는 136 kg 짜리 샌드백이 천정에 부딪힐 정도로 발차기를 강하게 할 수 있었다.




 

“저는 사람들이 이소룡을 당대 최고의 무술인 중 한 사람일뿐만 아니라, 최상의 운동선수였음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가 체력단련에 쏟아부운 열정과 그의 건강미 넘치는 생활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 James Rage

 

 

영양섭취

 

이소룡의 부인 린다 리 커드웰 부인에 따르면, 이소룡은 미국에 오자 곧바로 영양섭취를 신중하게 생각하여 건강식이나 고단백 음료, 비타민과 미네랄 보충제 등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소룡은 햄버거나 피자 같은 정크 푸드나 인스턴트 식품 등으로는 고효율의 몸을 만들기 어렵다고 생각하였고, 또한 정제된 밀가루도 칼로리만 제공할 뿐 자신의 몸에 아무런 이득도 없다고 멀리하였다.

 

이소룡은 매일 야채와 과일을 섭취하였으며 항상 중국음식이나 다른 아시아 나라들의 다양한 음식을 선호하였다. 중국음식으로는 굴소스를 뿌린 쇠고기나 두부 그리고 스테이크와 간요리를 즐겨먹었다고 한다. 또한 이소룡은 영양보충제에 많은 관심을 보였는데, 그는 비타민 C, 과립 레시틴 Lecithin, 벌 화분 bee pollen, 비타민 E, 로즈 힙 오일 rose hip oil (들장미 열매 오일), wheat germ oil (소맥 베아 오일. 비타민 A, E가 풍부), Acerola — C 와 B-Folia 등을 섭취하였다. 반면 이소룡은 근육을 만드는데 우유와 계란을 섭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유제품을 싫어하여서 시리얼이나 단백질 분말을 먹을때만 우유를 넣어 먹었고 평상시에는 분유를 섭취했다고 한다.

 

이소룡의 식단에는 단배질 음료도 포함되었는데, 그는 매일 한 두잔의 단백질 음료를 마셨는데, 나중에는 그만두었다고 한다. 단백질 음료로는 대개 분말 우유로 다른 제품보다 칼슘 함유량이 많은 제품을 섭취하였고, 그외에 계란, 밀 씨눈, 땅콩잼, 바나나와 레시틴 보충제를 섭취했다.

 

린다에 따르면 이소룡의 허리는 26-28 인치를 왔다갔다 했다고 하는데, 그는 믹서기로 사과를 비롯한 각종 과일과 셀러리, 당근과 각종 야채를 넣어 쥬스로 만들어 마셨다고 한다. 이소룡은 신체의 특정부위의 사이즈와 식사 횟수는 중요하다고 여겼는데, 그는 하루에 많은 양의 식사를 두 번하는 것 보다, 소량의 식사를 네 번에서 다섯 번 했으며 하루 종일 과일과 같은 건강음식을 조금씩 먹으면서 신진대사를 활발히 했다.


 과일과 야채는 탄수화물이 풍부하였고, 이소룡은 특히 당근을 높이 여겨서 그가 만드는 음료의 절반이 당근이었다고 한다. 이소룡이 야채와 과일을 쥬스로 만들어 마시는 이유는 그렇게하면 인체에서 더 수월하게 영양분을 흡수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라한다. 이렇게 갈아서 음료로 만든 쥬스에 함유된 효소는 신진대사와 영양분 흡수를 향상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하는데, 요리를 할 경우 이 효소들이 다 파괴된다하여 이소룡은 과일과 야채를 익히지 않고 날것을 먹었다.


 또한 이소룡은 고농축 비타민 B5(판토텐산 pantothenic acid: 항체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비타민의 활용을 돕고 지방, 탄수화물 및 단백질의 에너지 전환을 도움) 와 비타민 B6(피리독신 pyridoxine: 아미노산 대사와 단백질 합성에 관여), 아세틸콜린 (acetylcholine), 그리고 신속하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18가지 아미노산과 같은 복합 B 비타민을 섭취하기 위해 인삼과 로얄 젤리를 자주 섭취하였다. 전통 한의학에서 인삼은 혈액순환에 좋고, 혈행을 도우며, 몸이 자극을 받거나 피로해졌을때 피로회복을 돕는다고 해서 이소룡은 인삼도 자주 섭취했다. 그리고 이소룡은 규칙적으로 차를 마셨는데, 대개 꿀을 넣거나 우유에 설탕을 넣어 마셨다.



































“나는 만가지의 발차기를 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발차기를 만 번 연습한 사람은 두려워한다."

 

 

러닝의 목적은

자신이 만족할만한 수준에 이를떄까지

매일 뛰는 거리를 첨가하는 것이다.

 

 

 성공을 위한 세가지 열쇠.

 첫째 끈기.

 둘째 끈기.

 셋째도 끈기.

 

 

인내란 소극적이며 무기력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이며 강렬한 것으로

"저항" 하는 것이다.

 

 

 

나는 맹목적으로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거나 그들의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결코 자만하지 않을 것이다.

운이 좋게도 나의 자의식은  이미 그런 단계를 초월했으며,

삶은 개념과 생각으로 이해만 해서 되는것이 아니라 직접 부딪히며 살아야 그 진가가 살아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매일매일 성장하는 것이 기쁘다. 진실로 나는 어디가 한계인지 모른다.

 

 

확실히 매일 새 지평이 열리거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준 과거의 힘들었던 역경에 고마움을 표한다.

 

 

 

힘과 능력이란

매일매일의 연습을 통해서만 창출되고 유지되는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라.

 

 

 

훈련의 목적 (대상) 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다루는 것이다.

행동은 자기 신뢰, 그리고 존중 (존경) 에 있어서 최상의 길이다.

 

 

 

자기 극복이 끝났을 때가 성공의 시작이다.

싸움의 끝은 자기자신을 향해 있는 것이다.

 

 

- 이소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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