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123)진시황본기(2) 진시황 4년에서 7년까지의 치세(治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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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完)

<사기>(123)진시황본기(2) 진시황 4년에서 7년까지의 치세(治世)

燒燻 송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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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권육(史記卷六)>(123)  

  사마천(司馬遷)에 의해 한(漢)나라 무제 때 쓰여진 역사서로 본격적인 저술은 BC108~BC91년 사이에 이

  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마천은 저술의 동기를 ‘가문의 전통인 사관의 소명 의식에 따라 <춘추>를 계

  승하고 아울러 궁형의 치욕에 발분하여, 입신양명으로 대효를 이루기 위한 것’ 으로, 저술의 목표는 ‘인간

  과 하늘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관하여 일가의 주장을 이루려는 것’으로 각각 설명하였는데,

  전체적 구성과 서술에 이입장이 잘 견지되었다. 이책의 가장 큰 특색은 역대 중국 정사의 모범이 된 기전

  체(紀傳體)의 효시로서,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12편, 제후왕을 중심으로한 세가(世家)30편, 역대 제

  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8편, 연표인 표(表)10편, 시대를 상징하는 뛰어난, 개인의 활동을 다룬 전기

  열전(列傳)70편, 총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시황본기제육편(秦始皇本紀第六篇) (2)

  폭군으로 알려진 진시황(秦始皇)은 중국 역사상 첫번 째 중앙 집권 체제를 이룩한 황제이다. 그는 출신성

  분도 불분명하고 어린 나이로 볼모의 생활도 하는 등 적지 않은 삶의 역경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개혁적인

  성향도 구축 하였다. 그는 재상인 이사(李斯)의 보필하에 법가체제를 받아 들여 봉건제(封建制)를 폐지하

  고 군현제(郡縣制)를 실시 하였으며,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하는 등의 업적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분

  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하고 아방궁(阿房宮)을 건설하는등의 폭정으로 많은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또한 진시황의 끊임 없는 정복욕으로 인하여 죄없는 백성들은 죽음으로 내몰렸으며, 수많은 범법자를 만

  들어 내었다. 이편에서 사마천은 진시황 일생의 공과를 상세하게 밝히고,이어서 진나라 이세황제와 자영

  이 정권을 잡은 부분을 덧붙여 서술하고 있다. 진나라의 천하통일, 진나라 국력의 막강함, 그리고 진나라

  가 최전성기에 달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동시에 진나라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진시황의 삶을 구체

  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그의 위대한 업적이면에 짙게드리워진 탐욕과 교만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

  다. 이는 후인들에게 가장 기억에남을 제왕의 형상으로 드러난다.덧붙여 사마천은 진시황제가 자리에 있

  던 40여 년 동안의 중대한 정치적 사건, 특히 천하를 통일하는 이면의 복잡다단한 진행 과정을 비교적 명

  쾌한 어조로 서술하였다. 그리고 그 서술 방식은 진시황 자신의 삶만큼이나 격동적이고 활기가 넘친다.  


   <2> 진시황 4년에서 7년까지의 치세(治世)  

 

 

   四年(사년) 拔畼有詭(발창유궤)

   시황 4년, 창(暢)과 유궤(有詭)를 함락시켰다.

   三月(삼월) 軍罷(군파)

   3월에, 군사를 철수시켰다.

   秦質子歸自趙(진질자귀자조)

   진나라의 인질이 조나라에서 돌아 오고,

   趙太子出歸國(조태자출귀국)

   인질로 와 있던 조(趙)나라의 태자가 자기나라로 돌아 갔다.

   十月庚寅(시유경인) 蝗蟲從東方來(황출종동방래) 蔽天(폐천)

   10월 경인(庚寅) 날에, 메뚜기 떼들이 동쪽으로부터 날아와, 하늘을 가렸다.

   天下疫(천하역)

   천하에 전염병이 돌았다.

   百姓內粟千石(백성내속천석) 拜爵一級(배작일급)

   양식(糧食) 천 섬을 바친 백성들에게는, 한 등급의 작호를 내렸다.

   五年(오년) 將軍驁攻魏(장군오공위)

   시황 5년, 장군 몽오(蒙驁)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定酸棗燕虛長平雍丘山陽城(정산조연허장평옹구산양성)

   산조(酸棗)·연(燕)·허(虛)·장평(長平)·옹구(雍丘)·산양성(山陽城)등을,

   皆拔之(개발지) 取二十城(취십이성)

   모두 함락시키고, 20여 개의 성을 차지하고,

   初置東郡(초치동군)

   그곳에다 처음으로 동군(東郡)을 설치했다.

   冬雷(동뢰)

   그해 겨울에 큰 벼락이 떨어졌다.

   六年(육년) 韓魏趙衞楚共擊秦(한위조위초공격진)

   시황 6년, 한(韓)·위(魏)·조(趙)·위(衛)·초(楚)가 힘을 합하여 진을 공격하고,

   取壽陵(취수릉)

   수릉(壽陵)을 점령했다.

   秦出兵(진출병) 五國兵罷(오국병파)

   진나라가 군사를 출병시키자, 다섯 나라의 군사들이 물러갔다.

   拔衞(발위)

   군사를 내어 위(衛)나라의 도성을 함락시키고,

   迫東郡(박동군)

   동군(東郡)으로 도망친 위군(衛君)의 뒤를 추격했다.

   其君角率其支屬徙居野王(기군각솔기지속사거야왕)

   위군(魏君)은 그의 종족들을 이끌고 야왕(野王)으로 달아나,

   阻其山以保魏之河內(조기산이보위지하내)

   그곳의 험한 산세에 의지하여 위(魏)나라의 하내(河內)땅을 차지하였다.

   七年(칠년) 彗星先出東方(혜성선출동방) 見北方(견북방)

   시황 7년, 혜성이 동쪽에서 나타나더니, 다시 북쪽에서 보였으며,

   五月見西方(오월견서방)

   5월에는 다시 서쪽에서 나타났다.

   將軍驁死(장군오사)

   장군 몽오(蒙驁)가 죽었다.

   以攻龍孤慶都(이공룡고경도) 還兵攻汲(환병공급)

   용(龍)·고(孤)·경도(慶都)를 공격하던, 군사를 이동시켜 급(汲)을 치게 하였다.

   彗星復見西方十六日(혜성복견서방십륙일)

   혜성이 다시 서쪽에 나타나 16일 동안 보였다.

   夏太后死(하태후사)

   하태후(夏太后)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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