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794)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4) 월은 뱃속의 큰 병이고 제나라는 옴병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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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完)

<사기>(794)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4) 월은 뱃속의 큰 병이고 제나라는 옴병과 같습니다.

燒燻 송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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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권사십일(史記卷四十一)>(794)  

  사마천(司馬遷)에 의해 한(漢)나라 무제 때 쓰여진 역사서로 본격적인 저술은5BC108~BC91년 사이에 이

  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마천은 저술의 동기를 ‘가문의 전통인 사관의 소명 의식에 따라 <춘추>를 계

  승하고 아울러 궁형의 치욕에 발분하여, 입신양명으로 대효를 이루기 위한 것’ 으로, 저술의 목표는 ‘인간

  과 하늘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관하여 일가의 주장을 이루려는 것’으로 각각 설명하였는데,

  전체적 구성과 서술에 이입장이 잘 견지되었다. 이책의 가장 큰 특색은 역대 중국 정사의 모범이 된 기전

  체(紀傳體)의 효시로서,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12편, 제후왕을 중심으로한 세가(世家)30편, 역대 제

  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8편, 연표인 표(表)10편, 시대를 상징하는 뛰어난, 개인의 활동을 다룬 전기

  열전(列傳)70편, 총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楚世家)(4)

  이 편의 제목은 ‘월세가(越世家)’라고 해야 앞에 나온 ‘진세가(晉世家)’나 ‘초세사(楚世家)’등과 형평이 맞

  는 듯 하지만, 사마천은 월나라 역사의 중심인물인 구천(句踐)이란 인물로 편명을 삼았다. 사마천이 보기

  에 구천이전의 월나라는 중원과 소통하지도 않고 사적또한 기록할 만하지 않다는 것이 인물로 제목을 정

  한 일차적인 이유이고, 또 다른 이유는 구천이 패도(覇道)를 꾀하여 나라를 복원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싶

  었기 때문 이기도 하다. 사마천은 <태사공저서(太史公著書)>에서, "구천은 회계산에서 고통을 겪고 대부

  인 문종(文種)과 범려(范藜)를 등용하였다. 구천이 만이(蠻夷)들 속에 있으면서도 덕을 닦아서 강대한 오

  (吳)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왕실을 떠받든 것을 아름답게 여겨" 이편을 지었다고 밝혔다. 이렇듯 사마

  천은 구천이 치욕을 견뎌내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그가 발분하는 대도에 의미를 부여하여 구천이 품고있

  던 와신상담(臥薪嘗膽),곧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면서 나라를 재건하려는 지도자로서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마천은 구천이 승리를 하고나서 공신들에 대한 살육을 자행하는 것에 대해

  서는 혹독하게 비판을 하고있다. 그런데 분명한 점은 사마천이 오나라와 월나라를 동등한 관계로보지 않

  고, 오나라의 손을들어 주었다는 점이다. 그가 오나라를 도와서 공을 세운 오자서(伍子胥)라는 인물을 열

  전(列傳)에서 단독으로 전(傳)을 만든 것만 보아도 알 수가 있다. 물론 월나라 왕을 도운 범려를 <화식열

  전(貨殖列傳)>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기는 하지만, 오자서에 비해 분량이 적은 것을 보아도 두드러지

  는 사실이다. 그렇다고해서 사마천이 범려라는 인물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범려의 처세법이 다른

  공신들과는 달랐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고, 또한 전국시대 중기 이후에 형성되기 시작한 황로사상(黃老

  思想)의 맥락을 이해하고 실천하려고 한 그의 태도에는 점수를 후하게 주고 있기 때문이다.          


   <4> 월은 뱃속의 큰 병이고 제나라는 옴병과 같습니다.     

 

 

   居二年(거이년) 吳王將伐齊(오왕장벌제)

   2년이 지나자, 오나라 왕은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子胥諫曰(자서간왈)

   오자서가 간하여 말했다.

   未可(미가)

   "아직은 안 됩니다.

   臣聞句踐食不重味(신문구천식부중미)

   제가 듣건대 구천은 두 가지 이상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與百姓同苦樂(여백성고락)

   백성들과 더불어 힘들거나 즐거운 일을 함께 한다고 합니다.

   此人不死(차인불사) 必爲國患(필위국환)

   이 사람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우리나라에게 근심이 됩니다.

   吳有越(오유월) 腹心之疾(복심지질)

   오나라에게 월나라가 있는 것은, 뱃속의 큰 병과 같은 것이며,

   齊與吳(제여오) 疥癬也(개선야)

   제나라와 오나라의 관계는, 옴과 같은 작은 병일 뿐입니다.

   願王釋齊先越(원왕석제선월)

   원컨대 왕께서는 제나라는 그냥 두고 우선 월나라부터 공격하십시오"

   吳王弗聽(오왕불청) 遂伐齊(수벌제)

   그러나 오왕은 이를 듣지 않았다. 마침내 제나라를 정벌하여,

   敗之艾陵(패지애릉)

   그들을 애릉(艾陵)에서 쳐부수고,

   虜齊高國以歸(노제고국이귀)

   제나라 대신인 고장(高張)과 국하(國夏)를 포로로 사로잡아 돌아와서,

   讓子胥(양자서) 子胥曰(자서왈)

   오자서를 꾸짖자, 오지서는 이렇게 말했다.

   王毋喜(왕무희)

   "왕께서는 기뻐하지 마십시오"

   王怒(왕노) 子胥欲自殺(자서욕자살)

   이에 오왕은 노여워 하자, 오자서는 스스로 죽고자 하였는데,

   王聞而止之(왕문이지지)

   오왕이 이를 듣고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말렸다.

   越大夫種曰(월대부종왈)

   월나라 대부인 문종이 말하였다.

   臣觀吳王政驕矣(신관오왕정교의)

   "신이 보건대 오왕은 정권을 잡고 나서 교만해 졌으니,

   請試嘗之貸粟(청시상지대속)

   시험삼아 식량을 빌려 달라고 하여,

   以卜其事(이부기사)

   우리 월나라에 대한 입장을 헤아려 보십시오"

   請貸(청대) 吳王欲與(오왕욕여)

   이에 식량을 청하자, 오왕은 주려고 하였으나,

   子胥諫勿與(자서간물여)

   오자서가 간하여 주지 못하게 하였으나,

   王遂與之(왕수여지)

   오왕은 마침내 식량을 빌려 주었다.

   越乃私喜(월내사희)

   월나라 사람들은 이에 속으로 기뻐하였다.

   子胥言曰(자서언왈)

   오자서가 이렇게 말하였다.

   王不聽諫(왕불청간)

   "왕께서 제 간언을 듣지 않으시니,

   後三年吳其墟乎(후삼년오기허호)

   3년이 지나게 되면 오나라는 아마도 폐허가 될 것이다"

   太宰嚭聞之(태재비문지)

   태재인 백비가 이 말을 듣고,

   乃數與子胥爭越議(내수여자서쟁월의)

   그동안 수차 오자서와 함께 월나라 일을 처리할 때마다 쟁론을 벌였고,

   因讒子胥曰(인참자서왈)

   이에 오왕에게 오자서를 헐뜯어 말했다.

   伍員貌忠(오원모충)

   "오원(伍員:오자서)의 겉모습은 충성스러워 보이나,

   而實忍人(이실인지)

   그러나 실제는 잔인한 사람입니다.

   其父兄不顧(기부형불고)

   그는 아버지와 형조차도 돌아보지 않았는데,

   安能顧王(안능고왕)

   어찌 왕을 돌아 보겠습니까?

   王前欲伐齊(왕전욕벌제) 員彊諫(원강간)

   왕께서 이전에 제나라를 칠 때에도, 그는 한사코 반대하였는데,

   已而有功(이이유공)

   얼마 있다가 공을 세우자,

   用是反怨王(용시반원왕)

   이 때문에 도리어 왕을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王不備伍員(왕불비오원)

   왕께서 그를 경계하지 않으시면,

   員必爲亂(원필위란)

   그는 반드시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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