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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1364)여불위열전(如不韋列傳)(2) 여불위가 자초를 태자의 후사(後嗣)로 만들다.

작성일 작성자 털보

                <사기권팔십오(史記卷八十五)>(1364)  

  사마천(司馬遷)에 의해 한(漢)나라 무제 때 쓰여진 역사서로 본격적인 저술은5BC108~BC91년 사이에 이

  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사마천은 저술의 동기를 ‘가문의 전통인 사관의 소명 의식에 따라 <춘추>를 계

  승하고 아울러 궁형의 치욕에 발분하여, 입신양명으로 대효를 이루기 위한 것’ 으로, 저술의 목표는 ‘인간

  과 하늘의 관계를 구명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관하여 일가의 주장을 이루려는 것’으로 각각 설명하였는데,

  전체적 구성과 서술에 이입장이 잘 견지되었다. 이책의 가장 큰 특색은 역대 중국 정사의 모범이 된 기전

  체(紀傳體)의 효시로서,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12편, 제후왕을 중심으로한 세가(世家)30편, 역대 제

  도 문물의 연혁에 관한 서(書)8편, 연표인 표(表)10편, 시대를 상징하는 뛰어난, 개인의 활동을 다룬 전기

  열전(列傳)70편, 총13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불위열전(如不韋列傳)(2)

  여불위(如不韋)는 전기(傳記)의 색채가 풍부한 역사인물이다. 그는 본래 한(韓)나라의 양적(陽翟)사람으

  로, 거상(巨商)이 되어 여러 제후국을 주유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

  다. 이 여불위에 대해 위(魏)나라 출신이니, 조(趙)나라 출신이니 하면서 각사전마다 다르게 설명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사마천의 원문(原文)에 따라서 한(韓)나라 출신임을 언급 해 둔다. 여불위는 뒤에 진

  나라의 상국(相國)이 되어,진나라 통일사업에 지대한 공을 세웠으며, 불후의 명작인 <여씨춘추>를 편찬

  하기도 하였다. 여불위가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가 진시황의 친아버지 일지도 모른다는

  대목이 이 편에 나오기 때문이다. 곧 여불위가 어떤 첩에게 반하여 임신하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숨기고

  서 자초에게 바쳐 아이를 낳았으니, 그가바로 진시황이라는 것이다. 당시의 사회분위기에서는 가능할 수

  도 있는 일이었다. 반고(班固)가 여불위의 <여씨춘추>를 잡가류(雜家類)로 분류한 뒤,여불위는 잡가(雜

  家)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여겨져 왔다. 여불위가 여러 사람의 사상을 널리 받아들이고 특히 초기의 도가

  사상(道家思想)을 근본으로 각사상의 장점을 취사선택하여 황로사상(黃老思想)을 형성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불위를 신도가(新道家)라고도 부르는 것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여불위가 황

  로사상에 심취했던 사마천에게 중시된 것은 당연하다. 사마천은 천지, 만물, 고금의 일에 관한 모든 것이

  <여씨춘추>에 갖추어져 있다고 볼 정도로 여불위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2> 여불위가 자초를 태자의 후사(後嗣)로 만들다.

 

 

   子楚乃頓首曰(자초내돈수왈) 

   자초는 머리를 숙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必如君策(필여군책) 

   "당신의 계책대로 된다면,

   請得分秦國與君共之(청득분진국여군공지) 

   진나라를 얻어서 그대와 함께 나누어 가지도록 하겠소"

   呂不韋乃以五百金與子楚(여불위내이오백금여자초) 

   여불위는 이에 자초에게 500금을 주어서,

   爲進用(위진용) 結賓客(결빈객) 

   용돈으로 사용하여, 빈객들과 교제하도록 하였고,

   而復以五百金買奇物玩好(이복이오백금매기물완호) 

   다시 500금으로는 진기한 물건과 노리개를 샀다.

   自奉而西游秦(자봉이서유진) 

   여불위는 직접 그 물건들을 가지고 서쪽 진나라로 가서,

   求見華陽夫人姊(구견화양부인자) 

   화양부인의 언니를 통하여 만나서,

   而皆以其物獻華陽夫人(이개이기물헌화양부인)

   그리고 그 기물들을 모두 화양부인에게 바치고, 

   因言(인언)

   이로 인하여 이렇게 말했다.

   子楚賢智(자초현지)  

   "자초는 어질고 지혜로우며,

   結諸侯賓客徧天下(결제후빈객편천하)

   널리 천하의 제후들의 빈객들과 두루 사귀고 있습니다.

   常曰(상왈) 

   그리고 항상 말하기를,

   楚也以夫人爲天(초야이부인위천) 

   ‘자초는 언제나 화양부인을 하늘처럼 여기고,

   日夜泣思太子及夫人(일야읍사태자급부인) 

   밤낮으로 태자와 부인을 흠모하여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夫人大喜(부인대희) 

   화양부인은 매우 기뻐하였다.

   不韋因使其姊說夫人(불위인사기자열부인) 曰(왈)

   여불위는 곧이어 그 언니에게 이렇게 말하여 부인을, 설득하도록 하였다.

   吾聞之(오문지) 以色事人者(이색사인자) 

   "제가 듣건대, 아름다운 얼굴로 남을 섬기는 자는,

   色衰而愛弛(색쇠이애이) 

   아름다운 얼굴이 스러지면 사랑도 시든다고 합니다.

   今夫人事太子(금부인사태자) 

   지금 부인께서는 태자를 섬기며 총애를 받고 있지만,

   甚愛而無子(심애이무자) 

   불행하게도 아들이 없습니다.

   不以此時蚤自結於諸子中賢孝者(불이차시조자결어제자중현효자) 

   그러므로 일찌감치 여러 아들 가운데 현명하고 효성스러운 자와 인연을 맺어,

   擧立以爲適而子之(거입이위적이자지) 

   그를 후사로 발탁하여 양자로 삼으셔야 합니다.

   夫在則重尊(부재즉중존)

   그러면 남편이 살아 있을 때 존중받으며 귀한 자리에 있고, 

   夫百歲之後(부백세지후) 所子者爲王(소자자위왕) 

   남편이 죽은 뒤에도, 양자가 왕이 되므로,

   終不失勢(종불실세) 

   끝까지 권력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此所謂一言而萬世之利也(차소위일언이만세지리야) 

   이것이 바로 한마디 말로 장구한 이로움을 얻는 일입니다.

   不以繁華時樹本(불이번화시수본) 

   영화를 누릴 때에 터전을 닦아 놓아야지,

   卽色衰愛弛後(즉색쇠애이후) 

   아름다운 얼굴이 스러지고 사랑이 식은 뒤에는,

   雖欲開一語(수욕개일어)

   비록 한 마디의 말을 하려고 할지라도, 

   尙可得乎(상가득호)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今子楚賢(금자초현) 而自知中男也(이자지중남야) 

   지금 자초는 현명하여, 스스로 가운데 아들인 것을 알기 때문에,

   次不得爲適(차부득위적) 

   후사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으며,

   其母又不得幸(기모우부득행) 

   그를 낳아준 어머니도 사랑을 받지 못하였으므로,

   自附夫人(자부부인) 

   스스로 부인께 의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夫人誠以此時拔以爲適(부인성이차시발이위적) 

   부인께서 진심으로 이 때에 그를 후사로 뽑아 맏아들로 삼는다면,

   夫人則竟世有寵於秦矣(부인즉경세유총어진의) 

   부인께서는 일생동안 진나라에서 총애를 받게 될 것입니다"

   華陽夫人以爲然(화양부인이위연)  

   화양부인도 그 말을 옳게 여겨서,

   承太子閒(승태자한)

   태자가 한가한 틈을 타서 조용히 말했다.

   從容言子楚質於趙者(종용언자초질어조자) 絶賢(절현) 

   "조나라에 볼모로 가 있는 자초는, 매우 뛰어나게 현명하여,

   來往者皆稱譽之(내왕자개칭예지) 

   오고 가는 사람들이 모두 그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乃因涕泣曰(내인체읍왈) 

   그러면서 이에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妾幸得充後宮(첩행득충후궁) 不幸無子(불행무자) 

   "소첩은 다행히 후궁의 자리에 있지만, 불행하게도 아들이 없습니다.

   願得子楚立以爲適嗣(원득자초입이위적사) 以託妾身(이탁첩신) 

   원컨대 자초를 후사로 세워서, 소첩의 몸을 맡길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安國君許之(안국군허지) 

   이에 안국군은 이를 허락하고,

   乃與夫人刻玉符(내여부인각옥부) 約以爲適嗣(약이위적사) 

   부인에게 옥부(玉符)를 새겨 주어서, 자초를 후사로 삼겠다고 약속하였다.

   安國君及夫人因厚餽遺子楚(안국군급부인인후궤유자초) 

   안국군과 부인은 자초에게 많은 물품을 보내고,

   而請呂不韋傅之(이청여불위부지) 

   여불위에게 청하여 그를 잘 보살피도록 부탁을 하였다.

   子楚以此名譽益盛於諸侯(자초이차명예익성어제후) 

   이런 일로 자초는 제후국들에게 그 이름이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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