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축복과 영생

날 짜 : 1998년 1월 23일

장 소 : 한국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

행 사 : 4천만쌍 축복 승리 환영 및 문선명 선생 말씀 훈독대회

 

세계 인류는 말세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의 가정들이 깨져 나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녀들이 원수가 되기도 하는데, 그거 왜 그렇습니까? 참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영생 문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평화경 p. 573, 98.1.23)

 

1.1.1. 영생 문제를 알아야 하는 이유

인간은 틀림없이 영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이 죄를 지으라고 해도 안 지을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살라고 해도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기독교를 믿든 무슨 종교를 믿든 절대로 천국에 못 갑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에 못 가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생명을 투입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573, 98.1.23)

이 영생 문제와 연결이 안 되면 사회혁명도 불가능합니다. 현재보다 더 피폐하고 몰락된 환경으로 떨어진다면, 누구나 그 자리로 안 가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 문제, 영원한 생명문제라고 하게 될 때에는 환경적 여건을 모두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그래서 위대한 것입니다. 영생 문제가 달려 있습니다. 영생 문제의 개념만 정립해 놓으면,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는 주관이 서게 되면 자기 아들딸과 가족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평화경 p. 573, 98.1.23)

지금까지 종교가 그런 사상계를 포괄해서 환경에 습관성으로 엮어진 현재의 문화 배경이 된 틀거리를 전부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게 왜 그렇습니까? 영생이라는 개념을 정립해 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도 그렇습니다. 기독교도 지금까지 신앙해 나왔더라도 끝날이 되어 환경이 변하면 변할수록 다 휘저어 버리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영생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평화경 p. 574, 98.1.23)

영생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생명을 내놓고 환경을 넘어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다 거기에 소속되어 사방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생활 방편에 따라 그 길로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평화경 p. 574, 98.1.23)

신앙길이라는 것이 지금 살고 있는 인생살이, 육신생활의 준비가 아니고 영원한 세계의 생활을 위한 준비라는 신념만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은 내버려 두어도 됩니다. 사람은 시일이 가면 갈수록, 40이 넘고 50이 넘을수록 죽을 날이 가까워 오기 때문에 영생 개념을 놓고 심각해지는 것입니다.(평화경 p. 574, 98.1.23)

사랑이라는 것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희박해지지만, 영생 개념만 집어넣으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점점 심각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종교이념만이 앞으로 세계를 요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악한 환경, 혼란된 변화가 얼마나 빈번합니까? 그러나 영생 개념만 철저하면 빈번히 변하는 환경을 뚫고 넘어갈 수 있고, 어떤 곳에서 희비극이 부딪쳐 오더라도 모든 것이 문제가 안 됩니다.(평화경 p. 574, 98.1.23)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참사랑의 상대로 짓지 않았습니까? 그건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지었기 때문에 참사랑의 대상을 이루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을 말만이 아니고 실감해야 됩니다. 또 체휼해야 됩니다. 참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냐 하는 것만 느껴지게 되면, 이 길을 가지 말라고 해도 가게 되어 있습니다.(평화경 p. 574, 98.1.23)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생활할 때 주력해야 할 것은, 어떻게 영생의 개념을 정립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정립되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립하는 데도 이론적으로 그것이 적중하여 들어맞을 때 마음에 울리고, 육신까지 제일 가까운 격위로 하나될 수 있는 사람은 청소년입니다.(평화경 p. 574, 98.1.23)

열여섯 살 이전에는 타락 전 본성의 기준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 있는 때입니다. 열여섯 살 이전에는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이전이니까 본성의 기준이 살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시대에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앎으로써 자기와 하나님의 불가피한 관계를 아는 것입니다. ‘그 관계가 왜 불가피하냐?’ 하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영생 개념을 정립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평화경 575, 98.1.23)

 

1.1.2. 일생과 영생

여러분은 얼마나 살 것 같습니까? 전부 다 70, 80년은 다 살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전에는 죽는다고 생각 안 합니다. 여러분은 욕심쟁이입니다. 내가 80세에 죽거나 100세에 가서 죽을 거라고 절대 믿는다 해도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밥 먹다가 죽을지 또는 오늘 저녁에 신발 벗고 방에 들어와서 잠자다가 죽을지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에서는 ‘아, 내가 젊었으니까 이제부터 적어도 40년, 50년은 산다.’라고 하는 욕심을 다 갖고 있지요? 하나님한테 보증받고 있습니까?(평화경 p. 575, 98.1.23)

여러분은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1년 이내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 짧은 기간에 준비를 다 해야 됩니다. 그런 관념을 갖고 될 수 있는 대로 짧게 잡을수록 행복한 것입니다. 짧게 잡을수록 손해를 안 봅니다. 짧은 기간에 참되게 준비한다면, 그 내용이 자기의 영원한 생명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평화경 p. 575, 98.1.23)

그러면 그 짧은 기간에 하나님을 사랑해 봤습니까? 하나님과 하나돼 가지고 하나님과 사랑을 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세상에 사는 동안 모든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 앞에 소개시키기 위해 24시간 정성을 들여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 죽으면 영원한 생명의 주체가 됩니다.(평화경 p. 575, 98.1.23)

여러분은 몇 살까지 살다 가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당장에 죽을 자리로 나간다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남겨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나를 칭찬할 수 있는 무엇을 남겨야 하는데 자신 있습니까? 자는 시간이 아깝고 먹는 시간이 아깝게 생각됩니다. 걱정하려야 걱정할 새가 없습니다.(평화경 p. 576, 98.1.23)

일생과 영원의 문제인데, 그 일생을 짧게 잡을수록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개인을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느냐? 그다음에 가정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씨족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이렇게 개인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씨족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온 인류를 사랑하기 위한 교재인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은 전체를 사랑하기 위한 교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 우리 일생에서 손해 안 보는 것입니다. 지극히 지혜로운 생각입니다.(평화경 p. 576, 98.1.23)

 

1.1.3.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인간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더불어 영원한 사랑과 일치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쁨과 나의 기쁨이 만나 둘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의 기쁨으로 느낄 수 있는 결착점을 찾아 나가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평화경 p. 576, 98.1.23)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개체가 얼마만큼 전진적 사랑과 생명력을 지니고 사느냐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오관을 통하여 느끼는 감각의 일체를 통합하여 이 생명, 또는 참사랑과 어느 정도로 관계를 맺고 사느냐 하는 데 따라 인간으로서 얼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들이 생명력과 가중된 참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대인관계를 맺고 사회생활을 해 나왔느냐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 자리에 서 있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지하는 것이 아니면 후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평화경 p. 576, 98.1.23)

사람은 일생만이 아니라 영생합니다. 종교는 지금까지 지구성에서 없어지지 않고 문화 배경과 풍습이 다른 모든 환경을 거쳐 오면서 세계적인 판도를 확대시켜 나왔습니다. 사람은 일생이 문제가 아니라 영생해야 되기 때문입니다.(평화경 p. 577, 98.1.23)

사람은 이 시대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더불어 생활해야 됩니다. 일생이 1백년 이내의 짧은 생애이지만 생애를 한계로 하여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한계선을 극복하면 한계로 삼던 이 모든 지구촌의 생활을 넘어 초연한 자리에서 생존을 계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는 엄연히 실재하지만,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며 사는 인류를 동정하고 돕기 위해서는 가상적인 영생론을 주장해야 되고 가상적인 신을 중심삼은 이상국가의 형태를 추리해 내야 됩니다. 그런 면에서도 종교가 필요한 것입니다.(평화경 p. 577, 98.1.23)

그러나 가상적으로 추리된 종교이상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누가 만족을 느끼겠습니까? ‘있다!’라고 단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있다!’ 하는 것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있다!’ 하는 것은 영원 전부터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근본부터 ‘그렇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밝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영생 문제와 더불어 종교 문제를 중심삼고 신 문제까지 해결해야 됩니다. 이런 제반 문제가 연결돼 있습니다.(평화경 p. 577, 98.1.23)

 

1.1.4. 영생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이 사람을 어떤 존재로 지었느냐? 하나님의 절대 유일의 가치가 될 수 있는 참사랑의 대상자로 지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요즘에 인간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됩니까? 몇 푼이나 돼요? 그런 무가치한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 참사랑의 상대권을 갖추어 남자를 지었고 여자를 지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평화경 p. 577, 98.1.23)

사람은 참사랑에서 나서 참사랑에서 커 가지고 참사랑에서 살다가 참사랑에서 죽습니다. 그런데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체 되시는 그분이 영원·불변·유일하니까 그분 앞의 대상적 참사랑의 자리에 서게 될 때는 영생하는 것입니다. 영생이라는 이론이 여기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생명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평화경 p. 577-578, 98.1.23)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제일 참된 사람이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하나님과 안팎으로 한 몸이 되어 가지고 자녀의 입장에서 완전히 참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참다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을 참된 인생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평화경 p. 578, 98.1.23)

사람들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최고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간이 최고의 자리에 가게 되면 하나님은 나의 것입니다. 또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 자신과 하나되니 우주는 누구의 것이 되는 것입니까? 내 것이 됩니다.(평화경 p. 578, 98.1.23)

그러면 하나님께서 제일 사랑하고 제일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하루 혹은 십년이나 백년쯤 같이 지낸 후에 집어던지게끔 지었겠습니까, 영원히 같이 있게끔 지었겠습니까? 영원히 함께 있도록 지으신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태어났다가 죽으면 그만이면 좋겠습니까, 영생해야 되겠습니까? 영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절대자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참사랑을 중심삼고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평화경 p. 578, 98.1.23)

그러면 여러분은 영생을 바랍니까, 안 바랍니까? 막연하게나마 영생을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에게 귀한 물건이 있으면 피난 가게 될 때 그것을 가져갑니까, 안 가져갑니까? 가져갑니다.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을 하루 이틀 자랑하다가 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죽게 되면 그것을 자기 후대에게 남기고 싶어합니다. 영원히 남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평화경 p. 578, 98.1.23)

그것은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영생하시는 절대자라면 그분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도 영생해야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고로 영생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인 하나님은 영생하는 가치를 지닌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평화경 p. 578, 98.1.23)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걸작품으로서 하나님을 닮아 났습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우리도 영원한 성품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늙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영생해야 그 걸작품으로서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입니다. 여기서 영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령 영(靈)’ 자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때 이 ‘영’ 자를 쓰는 것입니다. 사람은 영생해야 됩니다.(평화경 p. 579, 98.1.23)

 

1.1.5. 창조주의 영원한 참사랑의 상대

영생의 논리를 어떻게 찾습니까? 하나님은 지혜로운 분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랑이념을 안 세웠으면 고독단신이요, 희로애락을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일 것입니다. 사랑이 절대적 사랑인데 이 사랑을 잃어버리신 하나님은 역사 이래 그 누구도 체험할 수 없는 심각하고도 기막힌 자리, 절대적으로 비참한 자리에 선 것입니다. 누가 위로할 수 없습니다. 영원히 위로할 수 없는 것입니다.(평화경 p. 579, 98.1.23)

그 본연의 아들딸을 희생시켜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꿈꾸던 소원인 참사랑의 이상적 상대를 재현시켜서 그것을 품고 천리만리 이동하면서 더 빛나게 단장하고 더 아름답게 표시할 수 있어야 됩니다. 만 우주를 그들을 위해 그렇게 화동하게 만든 것입니다.(평화경 p. 579, 98.1.23)

대기권에 절대저기압권이 되면 고기압권이 생겨서 자동적으로 순환운동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은 참 지혜의 왕입니다. 왜 투입하고 잊어버려야 되느냐? 자동적 순환원리를 통해 영원 회전이 시작되기 때문에 영생 논리가 설정되는 것입니다. 투입하고 또 투입하는 데서 영생의 논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위하는 데는 망하지 않습니다. 작은 데서 큰 것으로 성장해 가지고 큰 것이 다음에는 어디로 가느냐 하면 안으로 들어가 핵이 생기는 것입니다.(평화경 p. 579, 98.1.23)

하나님의 절대적인 참사랑의 상대를 구한다고 하면 누구를 갖다 세울 것이냐 할 때 ‘그것은 틀림없이 인간이다.’라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물지중 유인최귀(萬物之衆 惟人最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주의 영원한 참사랑의 상대, 창조주의 사랑의 상대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게 될 때 그 참사랑과 하나된 참사랑의 상대는 영생한다는 논리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579-580, 98.1.23)

영생이라고 하는 것은 자동적인 산물입니다. 영생은 여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관계를 중심삼고 영생 논리를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종교에서 지극히 귀중한 얘기입니다. 남자에게 영생이 있거나 여자에게 영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에 영생이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0, 98.1.23)

 

1.1.6. 참사랑으로만 구원 가능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말하기를 ‘예수 믿으면 영생한다.’라고 합니다. 말은 좋습니다. ‘그렇다면 영생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하면 ‘영생을 어떻게 해? 그렇게 하는 것이지!’ 합니다. 영생이라는 것은 계속적인 작용을 이어 나가야 됩니다. 그 인생길을 영원히 갈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심장의 동맥과 정맥 같은 순환기관이 정상적으로 움직여야 되고, 신경계가 정상적으로 움직여야 되고, 대뇌와 소뇌의 모든 작용이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됩니다. 그러려면 막대한 소모가 벌어져야 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0, 98.1.23)

어떻게 영생하느냐고 물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예수 믿으면 영생합니까? 믿으면 구원받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참사랑으로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원칙으로 볼 때 참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참된 사랑의 동반자이기 때문에 참사랑을 가지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그 참사랑권에 들어가 있으면 영계나 지상에 살게 될 때 자기가 어디에 가서 살 것인지 다 보게 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0, 98.1.23)

여러분! 대양을 다니는 큰 배가 파손될 위험이 생기게 될 때는 그 배 안에 살던 쥐들이 닻줄을 타고 육지로 도망간다는 얘기를 들어 봤습니까? 미물에 지나지 않는 동물도 미래의 자기 생사권을 가려 갈 줄 아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이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이 타락의 탈을 어떻게 벗느냐 하는 문제가 곧 악마의 사랑과 악마의 생명과 악마의 핏줄을 어떻게 해탈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을 심삼고 해탈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해탈이란 말은 벗어난다는 것 아닙니까? 완전히 벗어나 관계없는 자리, 자주적인 입장에 선다는 말입니다.(평화경 p. 580-581, 98.1.23)

 

1.1.7. 영생에 필요한 관념

영생, 나는 영생하는 사람입니다. 그다음에 참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영생과 참사랑을 나는 여기에서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든지 하는 일들이, 공장에서 일하거나 무엇을 하는 것이 영생을 연장시킬 수 있는 재료들이라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1, 98.1.23)

영생을 훈련하고 영생을 키우는 훈련 재료를 생산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영생과 참사랑은 언제나 필요한 것입니다. 영원히 필요한 것입니다.(평화경 581, 98.1.23)

우리는 영원할 수 있다, 영생을 바란다! 영생을 바라는데 변하지 않는 것은 참사랑입니다. 다른 것은 다 변합니다. 환경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참사랑은 변하지 않느냐? 참사랑은 모든 생명력의 중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왜 변하지 않느냐? 참사랑은 이상적인 요건의 중심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중심은 그 주위가 전부 다 없어지기 전에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참사랑은 우주의 중심이고 하나님을 중심한 참사랑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남아 있는 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1, 98.1.23)

참사랑이 무엇이냐? 여러분이 결혼할 때 결혼 상대는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지요? 자기 아들딸이 자기보다 낫기를 안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누구를 닮았습니까?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도 참사랑의 상대는 자기보다 낫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평화경 p. 581, 98.1.23)

절대적인 하나님이 우리 인류의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는 절대적으로 행하지 않으면서 그 아들딸 앞에 절대적으로 행하라고 명령할 수 있습니까? 명령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참사랑의 상대는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신다는 원칙을 놓고 볼 때, 인간의 가치가 최대의 가치입니.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보다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1, 98.1.23)

 

1.1.8. 참사랑과 직결된 영생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은 최고의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만인 평등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가능합니다. 천상의 높고 귀한 자리에서 이 우주를 바라보고 관리하고 주도하게 되어 있지, 다른 무엇을 바라보고 목이 끌려 다니거나 복종하게 돼 있지 않습니다.(평화경 p. 582, 98.1.23)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지요? 해방된 마음입니다. 어느 누구의 지배를 받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만민 평등입니다. 참사랑의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의 자리, 하늘나라의 보좌에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2, 98.1.23)

참사랑 때문에 인간을 지었다고 할 때는 영원하신 하나님, 절대적인 하나님, 영생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참사랑에 일치된 인간이 영생한다는 것은 자연적인 논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생하려면 그 참사랑권에 살아야 합니다. 참사랑에 의해서 영생이 가능합니다. 왜냐? 창조의 출발·동기·과정으로부터 모든 목적이 참사랑을 중심삼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과정을 통해 결과가 나옵니다.(평화경 p. 582, 98.1.23)

자기 몸 마음의 완성이라는 것은 참사랑에 속하는 것에 의해 근본적으로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한의 근본, 원인으로부터 과정, 그것으로부터 이상의 결실을 맺는 것은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참사랑에 의해서,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도 영존하고 있습니다.(평화경 p. 582, 98.1.23)

하나님은 무엇을 중심삼고 영존하는 것입니까? 영생은 참사랑에 의해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의 환경을 이루는 데는 참사랑의 환경을 중심삼고 생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참사랑의 실체권을 갖는 데는 참사랑을 중심삼고 실체적인 체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평화경 p. 582, 98.1.23)

여러분은 하나님이 영계의 어디에 계시는지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와 같은 절대적인 중심, 사랑의 중심이라는 관념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 참사랑의 힘은 가장 빠른 참사랑의 힘인 입니다. 그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왜 문 선생님이 이런 것을 강조하겠습니까? 그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영원한 세계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영원한 세계를 알면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평화경 582-583, 98.1.23)

 

1.1.9. 하나님·영생·참사랑을 알아야

첫째는 하나님을 알아야 되고, 둘째는 영생을 알아야 되고, 셋째는 참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투입입니다. 백 퍼센트 이상 투입입니다. 백 퍼센트 이상 투입하는 데에 영생이 있습니다. 참사랑을 가지지 않고는 영생이 없습니다. 영생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평화경 p. 583, 98.1.23)

앞으로 세계를 어떻게 수습하느냐? 첫째는 이타주의요, 둘째는 참사랑, 셋째는 영생입니다. 이것으로 세계가 수습되는 것입니다. 이것의 반대는 이기주의입니다. 사탄 편과 통하는 것입니다.(평화경 5p. 83, 98.1.23)

그다음에는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이 무엇이라고요? 자기의 생명 이상을 투입해야 됩니다. 생명 이상 투입하지 않는 곳에는 참사랑이 없습니다. 레버런 문이 미국에 와서 생명과 재산과 통일교회의 모든 정성을 퍼부었지요? 여기서부터 참사랑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성립 안 되면 영생은 없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3, 98.1.23)

왜 그러냐? 여러분의 악한 생명의 최고 기원은 사탄의 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사탄의 혈통입니다. 사탄에 속합니다. 사랑도 사탄의 사랑입니다. 이 이상 안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무엇이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고 한 것은 생명까지 걸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1 계명입니다.(평화경 p. 583, 98.1.23)

제2 계명은 ‘이웃 사랑을 네 몸과 같이 하라!’라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걸고 참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평화경 p. 583, 98.1.23)

왜 생명을 걸지 않으면 안 됩니까? 생명을 걸지 않으면 첫째는 사탄을 굴복시킬 수 없고, 둘째는 사탄의 환경을 벗어날 수 없고, 셋째는 사탄의 혈통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세 가지입니다. 사탄의 환경은 벗어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사탄의 혈통은 어쩔 수 없습니다. 참사랑은 생명을 초월하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4, 98.1.23)

 

1.1.10. 참사랑과 관계된 사후의 세계

하나님에게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시간 개념이 없다는 것은 영원히 끝이자 시작이라는 말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싫지 않도록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있는 본바탕이 무엇이냐? 그런 것이 문제가 됩니다.(평화경 p. 584, 98.1.23)

그것이 무엇입니까?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가지고 가능하겠습니까?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 전지전능, 모르는 것이 없는 것을 가지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힘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도 ‘참사랑!’ 하면, ‘오냐!’ 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하나님께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4, 98.1.23)

우리는 결국 어디로 가야 되느냐? 영계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사후의 세계라고 대개는 말하지만 사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왜 사후의 세계가 될 수 없느냐? 참사랑과 관계돼 있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참사랑과 관계돼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가 아닙니다. 참된 사랑을 중심삼고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참된 사랑의 자리에 서 있게 될 때는 지금의 여기가 영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랑이 위대한 것입니다.(평화경 p. 584, 98.1.23)

참사랑으로 종적인 구형운동을 해야만 상하·전후·좌우가 화합할 수 있습니다. 종은 종이고, 횡은 횡이 되어 화합이 안 되면 상하·전후·좌우의 전체가 화합이 안 되는 것입니다. 통일이 안 벌어집니다. 참사랑만이 통일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가 참사랑을 중심삼은 통일 이상세계를 논하는 것도 원리적인 관에 일치된 결론입니다.(평화경 p. 584, 98.1.23)

하나님은 인간을 끌어주시려고 합니다. 하나님도 숨을 쉽니다. 참사랑의 호흡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주에 박자를 맞추기 때문에 참사랑을 중심삼고 우주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입니다. 참사랑에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여기까지 가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호흡권에 들어가서 넘어가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5, 98.1.23)

참사랑도 숨을 쉬는 것입니다. 우주의 맥박이 이렇게 되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가 ‘아! 나, 싫어!’ 할 수 없습니다. 박자가 어울릴 때는 서로가 참으로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방향이 다 다르지 않습니다. 한 방향입니다. 전부 하나님을 중심한 한 방향인 것입니다.(평화경 p. 585, 98.1.23)

 

1.1.11. 천국 가려면 축복의 문을 통과해야

영계도, 육계도 참사랑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그 종적인 참된 사랑의 주축을 중심삼고 환경적 여건은 자기 스스로 박자를 자동적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공통분모가 무엇이냐 할 때 과거의 사람도, 현재의 사람도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영원성과 동반할 수 있는 자격이 무엇이고, 우리 인간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그 모든 욕구의 요인이 무엇이냐 할 때, 그것은 참사랑입니다. 그것은 데데한 사랑이 아닙니다. 참사랑입니다.(평화경 p. 585, 98.1.23)

그러면 참사랑은 무엇이겠습니까? 종횡을 통해 90각도를 갖추어 어디든지 각도가 맞아야 됩니다. 동양 집에도 맞고, 서양 집에도 맞고, 남쪽 형 집에도 맞고, 북쪽 형 집에도 맞고 오색인종, 문화 배경, 종교 배경이 다 다르더라도 이 길을 같이 갈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참사랑입니다.(평화경 p. 585, 98.1.23)

오늘날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세계에 60억 이상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축복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 축복이라는 말은 통일교회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말이고, 그 축복이라는 말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축복결혼행사를 해 나왔습니다.(평화경 p. 585, 98.1.23)

앞으로 인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이냐? 모든 인류는 축복의 문을 통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지만, 그 기독교 자체도 축복이라는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로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기독교에서 통일교회 레버런 문은 독선적인 발언을 많이 한다고 불평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 사람들의 말이고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축복결혼은 타락한 인류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영계와 육계를 연결해 천국에 들어가야 할 중차대한 문제가 되는 것이 이 축복결혼이라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5-586, 98.1.23)

오늘날 일반 종교를 믿는 사람은 구원이라고 하게 되면 개인 구원을 생각합니다. 잘 믿으면 자기는 천당에 간다고 믿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본래 하나님의 이상을 두고 볼 때 천국은 혼자 가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평화경 p. 586, 98.1.23)

 

1.1.12. 부부의 영인체

우리는 참사랑이상을 찾아가는 무리입니다. 그러니까 영계의 대변자로서 서기 위해 참사랑이상을 내 몸에, 현실에 지녀 그 참사랑을 얼마만큼 횡적인 세계에 부식시키느냐, 씨로서 뿌리느냐 하는 여기에서 참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 주고받으면서 자라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6, 98.1.23)

이래 가지고 참사랑의 열매를 맺어 그 부부가 영계에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의 영원하신 참사랑권에 품겨 하나님과 한 몸이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땅 위에서 껍데기가 다 늙어 가지만 부부생활을 하고 참사랑을 하면 할수록 영인체는 젊어집니다.(평화경 p. 586, 98.1.23)

그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이 오래 살면 살수록 내적 인간인 영인체는 최고의 원숙한 미남 미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이라는 껍데기는 옷과 같이 벗어 버려야 되겠는데, 이것이 젊어서 달라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늙으면 외적인 면인 껍데기는 다 망쳐지지만, 내적인 알맹이는 단단해 가지고 미래의 상속자가 되고 미인이 됩니다. 가을의 밤송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6, 98.1.23)

하나님을 직접 사랑하기 전에 여러분의 발 앞에서부터 여러분이 먹는 음식을 사랑하고, 물질을 사랑하고, 만물을 사랑하고, 여러분의 몸을 사랑해야 됩니다. 만물을 사랑함으로써 만물의 요소를 흡수해 내 몸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6, 98.1.23)

 

1.1.13. 결혼은 왜 해야 하는가

여러분의 제1 부모는 여러분을 낳아 준 부모이지만, 제2 부모는 지구입니다. 이 땅입니다. 여러분은 땅으로부터 여러분의 육신이 클 수 있게끔 그 요소를 공급받는 것입니다. 땅이 육신의 제2 부모입니다. 제2 부모를 거쳐 제3 부모에게로 들어가는 것이 죽음입니다.(평화경 p. 587, 98.1.23)

제3 부모에게로 가는 데는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3 부모에게 돌아가려면 본래의 부모였던 하나님의 모양을 닮아야 됩니다. 따라서 결혼은 왜 하느냐 하면, 하나님의 모양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성성상으로 계시는 분으로서 각 일성이 합체화한 일체적인 존재이시고, 그 하나님의 분성적 인격 자체들이 남녀이기 때문에 그들이 합성일체화하여 씨와 같이 되어 하나님의 본성적인 자리에 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587, 98.1.23)

그런데 그 씨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참사랑의 도리인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나면서도 참사랑을 받고, 자라면서도 참사랑을 목표로 해서 바라고, 살면서도 참사랑을 중심삼고 살며, 가면서도 참사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참사랑의 길을 위하는 결혼 목표를 중심삼고 찾아가지 않으면 영생의 방향이 틀어진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평화경 p. 587, 98.1.23)

축복결혼과 영생은 참부모로부터 시작됩니다. 참부모와 참사랑으로 일체가 되는 것은 개인·가정·국가·세계·천주가 완성되고 하나님의 창조이상이 완결되는 것입니다. 참부모가 태어난 곳은 인류의 조국이요, 지상천국과 천상천국의 출발지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전권시대를 맞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망할 수 없고 전성의 시대로 발전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백성은 훈독회를 통하여 참부모와 초국가적으로 일체를 이루어 만국에 승리권을 갖추어 만국의 조국이 될지어다! 감사합니다.(평화경 p. 587, 98.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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