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인생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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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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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인생노정

1.1.1.1.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은 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체를 나타내기 위해서 아담을 하나님 대신 얼굴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이상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영적인 초점이고, 아담은 본래 육적인 초점입니다. 그 두 초점이 90각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저나라에 가서 아버지 어머니로 영원히 나타날 것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습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자기 부모를 하나님같이 모시면 누구나 다 천국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평화경 p. 688,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이 세계는 둥글게 되어 있습니다. 태양도 둥글고, 땅도 둥글고, 별도 둥글고, 입도 둥글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물건이라도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는 둥글둥글 돌면서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둥글게 있더라도 개별적으로만이 아니라 전체에 연관성을 맺으면서 구형을 유지합니다. 그러면 내가 왜 태어났습니까? 이 대우주와 박자를 맞추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바다의 물결이 출렁거리면 내 마음도 출렁거리고, 바람이 기분 좋게 불면 내 마음도 기분 좋고, 꽃이 피어서 향기를 풍기면 내 마음도 향기를 풍길 수 있습니다.(평화경 p. 688,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사랑에서 태어나 사랑에서 자라 가지고 사랑에서 살다가 사랑에서 죽게 될 때는 태어난 것도 감사한 것이요, 사는 것도 감사한 것이요, 죽는 것도 감사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머니 아버지가 지극히 사랑하는 자리에 동참해서 태어났습니다. 동참자라는 것입니다.(평화경 p. 688,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이 꽂아 놓은 깃발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깃발이 움직이는 것은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사랑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해서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고, 아버지를 봐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고, 형제들을 위해서도 사랑의 깃발을 흔들어 주라는 것입니다.(평화경 p. 689,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1.1.1.2. 순간(하루)과 일생관계

여러분의 생활 전체가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고는 생명체를 완성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자연 현상세계에서 벌어집니다. 생명의 분기점은 긴 기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한순간에 있습니다. 순간을 무시하는 사람은 귀한 것을 가질 수 없습니다. 위대한 사람도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왕좌와 왕관을 물려받을 수 없습니다. (평화경 p. 689,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그렇기 때문에 순간을 빛내기 위해서 여러분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주의해야 되고, 생각하는 것도 주의해야 됩니다. 자기 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내용이 세계와 관계되는 현상으로 남는다는 신념으로 해결짓는 데에서만 승리권이 결정됩니다. 승리권이 결정되는 것은 순간입니다. 따라서 역사적인 승리권, 천주적인 승리권도 순간에 결정됩니다. 순간을 빛낼 수 있는 무한한 가치를 느끼며 생활하는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인도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아들딸도 될 수 있습니다. 생사의 분기점은 순간에 달려 있습니다.(평화경 p. 689,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오늘 우리의 자세가 문제입니다. 먼저 뜻의 나라가 오기를 바라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 자체가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일치되어 나가느냐가 중요합니다.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뜻과 더불어 하나되게 하느냐 하는 것이 뜻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보다 중요합니다.(평화경 p. 689,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그러므로 먼저 뜻을 계승할 수 있는 개인적인 환경, 가정적인 환경, 종족적인 환경, 민족적인 환경을 이루어야 뜻의 나라와 관계맺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중삼고 하루의 생활권 내에서 한 시간이면 한 시간을 어떻게 뜻과 더불어 관계맺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평화경 p. 689-690,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복귀섭리역사를 보면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과 예수님 가정까지 4천년의 역사가 내려오고 있지만, 그들이 실수하게 된 동기는 어느 한 해를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것도 1년이나 10년, 혹은 몇 십년을 계획하여 실수한 것이 아닙니다. 그 실수는 한순간에 초래되었습니다. 그 한순간의 실수가 억천만세 이어져 왔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그 순간순간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평화경 p. 690,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한순간의 실수로 역사시대에 도의 길을 갔던 수많은 사람들이 수난의 보응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 뜻을 따라가지 않은 수많은 민족이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것이 엄청난 탕감 제물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똑딱 하는 한순간이 무서운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도 한순간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평화경 p. 690,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영원한 출발은 내가 죽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출발은 내가 뜻을 알고 난 순간부터 계속됩니다. 여기에 한순간이라도 시간을 두고 비약이 있든가 구렁텅이가 생겨나면 영원은 중단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애노정을 중심삼고 신앙길을 가는데 금년에 못 가면 명년에 가고, 명년에 못 가면 내명년에 가고, 10대에 못 가면 20대에 가고, 20대에 못 가면 30대에 가고, 30대에 못 가면 40대에 가고, 40대에 못 가면 50대에 가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일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일생 동안 뜻과 더불어 하나될 수 있는 하루의 생활도 가져 보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살았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평화경 p. 690,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아무리 자기가 살고 있는 그 나라가 좋다 하더라도 하루의 승리 기준을 갖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으며, 일년의 승리 기준을 갖지 못하면 영원한 세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자는 영원을 꿈꾸고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어떻게 악을 청산하고 선의 기수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평화경 p. 690,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담의 순간적인 실수가 억천만세 한을 남겨 놓았습니다. 아담 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이 부모의 한을 풀고 형제의 담벼락을 무너뜨려 하나의 가정 기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복귀섭리의 대표로 세워진 아벨이 죽은 것도 순간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20년 걸려 방주를 짓던 노아의 수고의 노정에서 하나님께서 ‘소원을 성취할 날이 왔으니 배에 오르라!’라고 하신 명령도 한순간에 내려졌습니다. 이 명령에 동조한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심판권 내에 수장되었습니다.(평화경 p. 691,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창성하여 만국을 덮고도 남으리라.’라고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의 명령도 똑딱 하는 한순간에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사를 지낸 시간도 몇 십년 동안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라 단 하루라는 시간권이었습니다. 제물을 쪼개어 제사 드리는 시간은 한 시간 미만이었지만 여기서 역사적인 모든 생사화복의 기원이 짜여 나왔던 것입니다. 오늘날 신앙자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끝날에 찾아오는 심판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생활권 내에서 찾아오는 시간을 어떻게 뜻과 일치시키느냐, 어떻게 뜻과 더불어 교차로를 형성하고 나가느냐 하는 문제입니다.(평화경 p. 691,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1.1.1.3. 유아기와 3단계 질서

아담과 해와를 하나님이 지었다면 어떻게 지었겠습니까? 흙으로 빚어서 지었다면 어떤 흙으로 지었겠습니까? 어디서 출발했겠습니까? 어디서부터 시작했느냐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를 장성한 사람으로 지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기로부터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아기를 밴 어머니가 품어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 지었다는 논리를 세우지 않고는 이 모든 3단계의 질서를 통한 존재 형성이라는 것을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평화경 p. 691,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그래서 아담과 해와에게도 유아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장성기가 있었습니다. 그다음에 완성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천리입니다. 유아기는 어떤 유아기였겠습니까? 무형의 나님이 무형의 세계에서부터 유형의 과정을 거쳐 올 수 있는 아기의 존재를 품고 키웠다는 논리로부터 시작해야 됩니다.(평화경 p. 691-692,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1.1.1.4. 우리의 인생길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국가·세계는 내 뜻에 부합되는 환경이 돼 있지 못하기에 온갖 고충이 벌어지고 있고, 선악의 분기점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백이면 백 사람이 각기 자기 나름대로 하루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환경과 투쟁하고 있고, 환경을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평화경 p. 692,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그러기에 아침에 계획한 하루의 일을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잘 느끼게 됩니다. 더욱이 그 환경의 범위가 크면 클수록 자신의 하루 생활을 승리로 결과짓기 위해서는 그것에 비례해서 결의와 추진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날이 승리의 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하루하루가 더해져서 한 달이 되는 것이요, 한달 한달이 더해져서 1년이 됩니다.(평화경 p. 692,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그 한 달도 우리가 계획한 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달의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 한 달의 환경에 갖추어진 복잡한 모든 사연들, 모든 여건들을 타파할 수 있는 추진력과 결의가 있어야 됩니다. 그것이 없어서는 한 달의 계획을 승리로 끝맺을 수 없습니다. 1년을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삼백예순날을 극복할 수 있는 투지력 혹은 추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1년을 승리로 장식할 수 없습니다. 이런 1년에 10년이 가해지고, 20년 혹은 30년이 가해진 날들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길입니다.(평화경 p. 692,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시간성을 못 벗어납니다. 인류역사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가정·종족·민족·국가·세계도 그와 같은 시간권 내에서 움직여 나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중심삼고 10년 20년 30년 70년, 일생 동안 가야 됩니다. 목적이 크면 클수록 내적으로 더욱 강하게 다짐하여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 목적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그 목적을 능가할 수 있는 내적인 결를 계속하지 않는 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평화경 p. 692-693,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1.1.1.5. 우리가 찾아가야 할 본향

여러분은 영계의 사실을 모를지 모르지만 선생님은 하나님의 특별한 혜택을 입어 미지의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세계의 근본을 헤쳐 보니 원칙은 간단했습니다. 그 세계는 하나님의 천지원칙인 위하여 산 사람만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한 내용으로 형성된 세계가 이상천국입니다. 그곳이 우리 인간이 찾아가야 할 본향입니다.(평화경 p. 693,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우리는 타락한 인생으로서 본향에서 추방당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본향 땅을 향해 돌아가야 할 운명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인간 자체로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역사과정에 설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민족의 문화 배경, 풍습 혹은 전통에 따라서 수많은 종교를 세워 수습해 나왔습니다. 그렇게 수습하기 위한 훈련장으로 세운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니 종교는 본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격자를 연마시키는 훈련 장소입니다.(평화경 p. 693,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동서남북 사방의 문화 배경에 따라 높은 데로 전진할 수 있는 하나의 통일된 종교세계로 이끌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본향의 곳으로 지도하여야 할 종교이기 때문에 종교는 위하여 살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차적인 종교일수록 위하여 살아야 된다는 원칙을 강조해야 되겠기에 온유겸손하라고 하고, 뭇사람을 높이고 그들을 위하라고 하고, 희생봉사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 나라의 법도에 맞는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평화경 p. 693,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인생의 갈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이 인생의 갈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하는 것이 인생이 가야 할 최고의 종착점입니다. 이 길은 남자도 가야 되고 여자도 가야 됩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갈 길은 무한하신 사랑의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죽을 고비를 거쳐서라도, 죽어서라도 끊임없이 찾아가야 할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것이 인생의 최고 갈 길입니다.(평화경 p. 693,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욕망의 끝이 어디까지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했다고 하더라도 그 가운데에 더 귀한 사랑을 점령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자기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점령해야 됩니다.(평화경 p. 693-694,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사랑만 점령하면 하나님은 안 계셔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의 것이 내 것이요, 내 것이 그의 것이 될 때, 비로소 안팎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라가 상하의 등급이 없는 이상의 본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눕게 되면, 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에 있는 모든 존재가 자신을 위해서 있지 않은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이 갈 천상세계, 즉 천국은 사랑으로 충만한 곳입니다.(평화경 p. 694,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1.1.1.6. 잘못된 출생의 기준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고귀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박사라고 하더라도 자기 출생이 틀렸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의 사랑·생명·핏줄을 타고났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사탄의 사랑에 의해 태어났습니다. 사탄의 사랑이 그 부모에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어머니의 생명, 아버지의 생명에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 피가 오늘 나에게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러한 세 종류의 결실체가 바로 나입니다.(평화경 p. 694,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그러니 여러분은 사탄 혈통에 속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의 혈관을 타고 사탄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사탄은 자기의 이상적인 결실을 맺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남녀를 본연의 순수한 완성 인간으로 구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평화경 p. 694,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여러분은 사탄의 사랑에서 출발했습니다. 사탄 혈통을 타고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발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출발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돌아가긴 돌아가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 것입니까? 원점으로 돌아가야 됩니다. 거짓 부모로 시작했으니 돌아가서 참부모로 다시 시작해야 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심각합니까?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핏줄을 다시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축복받을 때 혈통전환식을 합니다. 그것을 내 생명보다 더 믿어야 됩니다.(평화경 p. 694,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통일교회의 하나의 예식이라고 해서 그저 일반 종교의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죽은 입장에서 회생시키는 주사약과 마찬가지입니다. 해독 주사입니다. 우리 조상이 잘못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역사를 거쳐 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했습니다. 이것을 아는 우리는 다시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절대 못 가는 것입니다. 타락 천지에 불륜한 사랑을 남김으로써 역사를 통해 얻은 그 대가가 엄청났다는 것입니다.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에 미친 영향이 엄청났습니다.(평화경 p. 695,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1.1.1.7. 생애의 기준

여기서 생애는 영원한 생애를 말합니다. 영계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영원한 삶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절대적이고 주체적인 하나님의 대상이 바로 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가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 참사랑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이고 영원하신 생명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이상은 더 영원한 것인데, 그 이상의 중심이 바로 참사랑입니다. 그 사랑의 상대가 나입니다.(평화경 p. 695,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사랑의 속성은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를 하나로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자리에나 동참할 수 있고, 어디를 가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전 재산을 다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까지도 다 상속받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비참한 과정을 거쳐서 이것을 발견함으로써 그 기반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숭엄하고 고귀합니다. 놀라운 은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같은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영원한 참사랑의 자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평화경 p. 695,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저세계는 제한된 지구성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한된 곳에서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지만, 저세계는 차원이 높은 세계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중삼고 무엇이든 바라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다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래 영생체로 지음 받았습니다. 참사랑을 중심한 대상체인 나는 영원한 생명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계에 가면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생애 기준으로 첫째가 선악의 기준입니다. 선악의 기준이 첫째이고, 둘째가 본연의 출발점이고, 세 번째는 영생입니다.(평화경 p. 695-696,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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