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문선명 한학자 총재

제5장 유형실체세계와 무형실체세계

작성일 작성자 하동

제5장 유형실체세계와 무형실체세계

1.1.1.1. 인생노정에 대한 기도문

사랑하는 아버님, 하늘이 수욕을 당하는 부끄러움이 있을까 봐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싸워 나온 소자를 지켜 주신 아버지의 은사에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 그 무엇이 좋다 하더라도 아버지께서 운행하시는 본연의 심정에 연결된 것 이상 귀한 기준이 없는 것을 아옵니다. 그 자리를 무한히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아버님의 그 참된 사랑에 접하는 사람은 세상만사를 다 버린다 해도 미련이 없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3의 생의 자유 권한을 가질 수 있는 해방아로 출생할 그날을 오늘 이 지상세계에서 준비해야 되겠습니다.(평화경 p. 696,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사랑하는 아버지, 저희가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내 생명이 동화될 수 있는 인연을 갖추어 거기에 완전히 흡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래야 비로소 봄을 맞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사옵니다. 일생에서 어느 한때 봄을 맞이한 적이 있느냐고 물을 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는 불쌍한 영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평화경 p. 696,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사랑하는 아버님, 아버지를 모시고 겸손히 경배드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은 영원한 저나라에 가서 아버지와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 저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아버지의 심정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오늘 저희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당신의 음성을 들어서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께서 나 하나를 찾기 위해 내 배후에서 갖은 환난과 수고의 역사과을 거쳐 온 것을 느껴 스스로 머리 숙일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평화경 p. 696-697,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1.1.1.2. 죽음에 대한 이해

이 땅 위에는 부모가 있고, 스승이 있고, 친척들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그런 인연을 맺어 갈 수 있는 길이 있지만 영계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영계에서는 모두가 하나님을 중심삼고 전체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위치가 전부 구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있는 사람이 밑에 올 수도 없고, 밑에 있는 사람이 위에 가기도 어렵습니다. 본래는 지상에서 완성해야 영계에 갈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한번 저세상에 들어가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인간은 죽는 것입니다.(평화경 p. 697,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생애의 노정은 너무 짧습니다. 일생은 너무 짧은 것입니다. 사람의 수명이 80년이라고 하면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영계의 시간으로는, 즉 영원한 세계의 시간으로 생각하면 여덟 시간도 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사랑의 힘은 위대한 것입니다. 참사랑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가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작용합니다.(평화경 p. 697,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틀림없이 영계는 있습니다. 영계는 틀림없이 실재하고, 우리 인간은 어차피 영계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영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말 가운데 재미있는 말이 ‘돌아간다.’라는 말입니다. 어디로 돌아갑니까? 공동묘지로 가는 것은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출발했던 본처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 출발지가 공동묘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멀고 먼 역사의 기원을 넘어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평화경 p. 697,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인간이 돌아간다는 것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국 사람으로 돌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으로 죽었지만 한국 사람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류조상의 근원세계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그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창조주가 계시다면 그 창조주가 계시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출발했으니 거기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평화경 p. 697,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우주는 순환작용을 합니다. 산에 쌓여 있던 눈이 녹게 되면 조그만 계곡을 통해서 흘러가고, 많은 지류를 통해서 대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대해로 들어가게 되면 그것이 수증기가 돼서 다시 돌아갑니다. 순환운동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돌아가면 어디로 돌아갑니까? 더 높을 수 있는 곳으로, 더 좋을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더 작아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자연계의 운동법칙이라는 것은 작용하면 작아지게끔 되어 있습니다. 작용하면 점점 작아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굴려 보더라도 그것이 영원히 구르지 않습니다. 빨리 구르다가 점점 약해져 정지하게 됩니다.(평화경 p. 698,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지상계와 영계는 두 세계가 아니고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야 할 곳,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그곳이 어디일까요? 물론 우리는 육신생활을 하면서 이 땅에 있지만 영원한 세계를 향해서 가고 있는 것입니다.(평화경 p. 698,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10대·20대·30대, 중년·장년·노년시대를 거쳐 갑니다. 청춘시대를 지나 장년시대로 들어가게 되면 한 고개를 넘고, 그다음엔 노년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는 해와 같이 일생을 끝마칩니다. 그러나 영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일생이라는 것이 잠깐이고, 죽은 다음에 우리가 맞이해야 할 세계가 영원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생은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기 위한 기간인 것을 알고 준비하는 생을 사는 것입니다.(평화경 p. 698,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죽음이라는 낱말을 쓴 목적은 삶의 뜻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삶의 가치는 누가 잘 압니까? 살겠다고 하는 사람은 모릅니다. 죽을 경지에 들어가 생사의 기로에서 하늘을 붙들고 삶의 가치를 타진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모르는 것입니다.(평화경 p. 698,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인간은 죽음을 환영해야 되겠습니까, 환영하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환영해야 됩니다. 죽는 데는 무엇 때문에 죽을 것이냐 할 때 ‘하나님의 참사랑을 위해서 죽겠다.’라고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벗는 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권에 내가 동참하기 위해서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위해서입니다.(평화경 p. 698,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 죽는 것인데, 인간세계에서는 ‘아이구, 죽는다!’ 하고 야단하는 것입니다. 제한된 사랑권 내에서 무제한의 사랑권 내로 돌입할 수 있는 기쁨을 맞이하는 순간이 죽는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순간이 제2 출생의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육신이 난 날을 기뻐하겠습니까, 제2의 무한세계의 사랑을 위해서 활동할 아들딸로 태어나는 그 시간을 기뻐하겠습니까?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죽음의 공포에서 해탈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평화경 p. 699,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1.1.1.3. 3단계의 인생행로

사람의 일생은 소생·장성·완성의 3단계를 거칩니다. 복중 물세계, 지상 육지세계, 천상 공중세계에서 삽니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의 복중 물시대, 지상에 태어나서 사는 백년 땅시대, 날아가는 공중 영계시대, 이렇게 3시대를 거칩니다.(평화경 p. 699,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사람은 태어날 때 제일 깊은 물속에서 태어납니다. 복중시대는 물속시대입니다. 아기가 어머니 태중에 있을 때는 물 가운데 떠 있습니다. 물속에서 살기 때문에 물을 들이마시고 내보내는 일을 해야 되니 아기는 호스를 어머니 배에다 연결하고 삽니다. 아기가 영양분을 어디로 공급받습니까? 배꼽으로 공급받습니다. 배꼽이 입입니다. 그러니 그걸 천대해서는 안 됩니다. ‘배꼽아, 너 옛날 수고했다.’ 하며 두드려 주라는 것입니다. 배꼽을 많이 두드려 주면 건강해집니다. 그렇게 운동하라는 것입니다. 배꼽 운동을 많이 하면 건강해집니다. 아무리 추운 방에서 자더라도 배꼽만 잘 감싸고 자면 설사가 나지 않습니다.(평화경 p. 699,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복중에서 여러분의 입은 배꼽입니다. 이 숨 쉬는 기관이 배꼽을 딛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다음 단계의 입은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이 음식을 먹는 입입니다. 자꾸 올라갑니다. 그러면 배꼽에 달린 탯줄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잘라 버려야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평화경 p. 699,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공기의 세상에서는 영인체가 몸에 붙어 태아처럼 육신을 빨아먹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육신이 늙게 되면 버리고 나가는 것입니다. 태아 태어나 어머니 아버지 앞에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영인체가 영적 아버지인 영원한 하나님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은 원리원칙입니다. 태아가 태어나 어머니 아버지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지상세계입니다.(평화경 p. 699-700,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어머니 아버지와 사랑을 같이할 수 있는 지상세계에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인 무한한 세계를 통할 수 있는 부모 되신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영계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복중에서 나와서는 무엇을 발전시킵니까? 공기가 아니고 사랑입니다. 사랑의 요소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밥만 먹어서는 안 됩니다. 밥만 먹는 것은 죽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2 단계의 생을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지상생활에서는 무엇을 채워야 되겠습니까? 이 기간에는 새로운 사랑의 인격을 형성해야 됩니다.(평화경 p. 700,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이 땅 위에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은 아이를 왜 고아라고 합니까? 영계와 영원히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랑을 못 받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독신살이 하는 사람을 불쌍하다고 합니다.(평화경 p. 700,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죽는다는 것은 제2의 호흡을 하던 육체에 연결된 기관을 깨뜨리고 사랑의 요소를 이어받는 것입니다. 사랑은 안 보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의 내적인 구조가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칙대로 태 안에서 정상적인 아기로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땅에서도 천리를 따라 잘 자라야 됩니다.(평화경 p. 700,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곤충류 가운데는 3단계 세계를 거치는 것이 많습니다. 곤충 하게 되면 대개 날개가 있습니다. 곤충도 물에서, 육지에서, 공중에서 사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에게도 날개가 있습니까? 차원이 높은 날개가 있다는 것입니다. 죽음이 제2 출생의 복된 관문입니다. 죽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상생활은 공기 중에서 ‘태 안에서 헤엄치고 다니며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기 보자기 안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죽는 것이 별다른 것이 아니라 제3의 인생으로 출생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죽는 시간입니다.(평화경 p. 700,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1.1.1.4. 영계 육계의 중심은 하나님의 사랑

여러분은 영계에 대해 상당히 궁금할 것입니다. 세계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는데, 그 종교들이 가는 길은 영계와 관계맺어 영생하는 세계, 영원히 사는 세계, 즉 하나님과 같이 사는 세계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종교의 목적지입니다.(평화경 p. 701,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그런데 오늘날 종교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점점 타락돼서 ‘종교는 약자들이 믿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필요 없는 것이다. 그건 도의적인 하나의 표상으로서 인간들이 조작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결론 내리는 시대에 들어왔습니다. 종교의 중심이 되는 기독교만 보더라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기독교국가의 대표국인데, 그런 미국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 지금까지 자기 멋대로 살고 있습니다.(평화경 p. 701,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세계의 중심이요, 모든 이상의 중심이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이 계시는 영계를 중심삼고 이상을 그리던 기독교를 믿다가 왜 떠나게 됩니까? 첫째 원인은 영계가 있는 것을 확실히 몰랐기 때문입니다. 지능을 가진, 비교의 능력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좋은 곳이 있으면 나쁜 곳을 버리고 그곳에 가게 되어 있고, 보다 차원 높고 가치 있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영계의 실존을 확실히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701,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그다음에 둘째 원인은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고아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다음 셋째 원인은 영계의 중심이 되고 하나님의 중심이 되는 사랑으로써 엮어지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을 알고 영계를 알았더라도 사랑을 중심삼은 세계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평화경 p. 701,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사랑이 있는 곳에서는 올라가도 좋고, 내려가도 좋고, 가운데 있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자기보다 높다고 해서 싫어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자기보다 낮다고 해서 그걸 미워하겠습니까? 하나가 되면 마음대로 낮은 데서 높은 데로 올라갈 수도 있고,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내려올 수도 있고, 중간에 있을 수도 있고, 어디든지 갈 수 있습니다. 제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이 세계는 하나의 세계여야 되겠. 통일의 세계여야 되겠다. 평화의 세계여야 되겠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평화경 p. 701-702,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영계와 육계, 영적인 존재와 육적인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이 중심으로 안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지만 마음과 영계는 다릅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평화경 p. 702,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영계와 육계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계와 육계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이 개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개재하지 않고는 영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계라는 것이 연결됩니다. ‘내 마음도 영이지 뭐야?’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혼동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영계가 아닙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마음은 영적 세계와 관계맺고 있지 않습니다. 뼈 없는 사람과 같은 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면 실감이 날 것입니다. 뼈 없는 사람과 같은 형태가 타락한 인간들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평화경 p. 702,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영인체를 보게 되면 영인체도 몸적인 요소가 있고, 마음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영인체의 마음과 같은 것이 영적 세계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고는 영인체의 마음과 같은 것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영과 마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관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관할 수 없습니다.(평화경 p. 702,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여러분 마음은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변합니다. 그렇지만 영적 세계, 영적 존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건 영원히 하나의 목표를 세워 꾸준히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인간 내에 속해 있습니다. 왔다 갔다 하는 인간 내에 있다는 것입니다.(평화경 p. 702,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여러분이 원리를 배워서 알겠지만, 생심이 무엇입니까? 생심은 마음과 영이 합쳐져서 새로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우리의 양심과 하나되어 이상적 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동기적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 생심이 없어서 영계와 참된 사랑 관계맺을 수 있는 자체의 근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생심이 나에게 생겨나면 몸도 좋아하고, 전부 그것을 따라갑니다. 자동적으로 이것이 하나됩니다.(평화경 p. 702-703,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지금까지 인간에게 제일 문제 되는 것이 몸과 마음이 서로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힘이 나에게 임하여 생심적 기원만 되게 되면, 마음과 몸이 자연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근본에서 혁명이 벌어지고, 근본에서 시정하는 근원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이상을 찾아갈 도리가 없습니다. 동기가 있어야 결과가 나옵니다. 종교는 생심을 심어 놓자는 것입니다. 생심을 중심삼고 수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별의별 형태가 다 있습니다.(평화경 p. 703,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하나님은 존엄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영계와 육계는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참사랑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영계와 육계가 통일되지 못한 것이고, 참사랑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갈라진 것이고, 참사랑이 서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와 정치가 갈라진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전부 하나되는 것입니다. 개인·가정·사회·국가·세계·천주가 다 연결됩니다. 우리 손으로 그렇게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본연의 천상천국 지상천국을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영계와 육계의 일치를 어떻게 이룹니까? 참사랑으로 하나 만듭니다.(평화경 p. 703,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세계 인류 가운데 영계를 모르는 사람이 80퍼센트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영계가 있을까, 하나님이 계실까 확실히 모릅니다. 그러나 영계는 있습니다. 세상의 부자가 이제부터 행복의 동산을 만들려고 할 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들여서라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신이 사실 곳을 어떻게 지으셨겠습니까?(평화경 p. 703,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영계는 어느 부분을 찾아 응시해도, 천년을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아름다운 세계입니다.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그 무엇이 있다고 해도 영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계의 한 모퉁이도 못 됩니다. 그러므로 갖고 싶은 것이 이 지상이 아닙니다. 선생님에게 말하라고 한다면 이 지상이 선생님의 목적에 맞지 않아서 돌아가고 싶습니다.(평화경 p. 703,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일반 사람 대부분은 지금도 영계를 생각지 않습니다. ‘태어났으니 저 부모님을 모시고 가정에 산다. 이렇게 났으니 이렇게 산다.’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그렇게 사는 모든 생활의 중심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떻게 먹고,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것을 의식주로 잡습니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 어떻게 먹느냐 하는 문제, 어떻게 차리고 사느냐 하는 문제, 이것이 중심입니다.(평화경 p. 703-704,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거기에는 물론 인간관계에 인륜도덕이 있어 향상하는, 서로가 발전하고 서로가 좋을 수 있는 내용이 있지만 그 도덕 기준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국가가 다르고, 세계 모든 문화 배경의 차이에 따라서 삶의 기준이라든가 사회제도가 전부 달라집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이 찾아야 할 본연의 기준, 즉 창조본연의 기준과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의 표준으로 세워 나가는 인륜도덕의 기준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로 수습되어 있지 못합니다.(평화경 p. 704,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본연의 세계에 근거해서 우리가 태어나 살다가 가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이것이 확실치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영계가 있는지 없는지, 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리를 배운 사람들은 영계가 확실히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믿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많은 체험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가 이만큼 세계적인 기반을 형성할 때까지 그 배후를 살펴볼 때 많은 체험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가 없다고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통일원리를 아는 사람들입니다.(평화경 p. 704,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통일원리를 아는 사람들은 어떤 길을 가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는 길을 따라가야 됩니다. 천의의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천의가 무엇입니까? 개인이 가야 할 천의의 길이 있고, 가정이 가야 할 천의의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국가·세계·영계가 가야 할 천의의 길이 있습니다. 영계는 틀림없이 있습니다.(평화경 p. 704,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하나님이 있고 영계가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하고 관계없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영계가 있다 하더라도 나하고 관계없다.’라는 은 마치 내가 가정의 한 사람으로 나라가 필요 없고, 세계가 필요 없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큰 하나님이 있고, 더 큰 영계가 있다면 더 큰 것하고 나는 관계맺기를 원합니다. 관계되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관계되어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돼야 됩니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가야 됩니다.(평화경 p. 704-705,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사도 바울이 영계의 3층천 세계를 보고 체험한 것은 그가 꾸준히 선교 활동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런 체험이 있어야 됩니다. 선생님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겠습니까? 사랑입니다. 옥중에 아무리 처넣더라도 선생님은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이렇게 반대하는 환경을 소화하고 굴복시켜 나온 것입니다. 내 손으로 전부 굴복시켜 놓았습니다.(평화경 p. 705,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1.1.1.5. 영계의 창조

영계는 천사세계와 맞먹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세상은 아담과 해와와 같은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영계는 아담과 해와를 짓기 전에 지었습니다. 영계가 하나님의 뜻을 반대함으로써 사탄세계가 생겼기 때문에 영계가 하나님의 뜻을 환영해야만 그 세계가 복귀되는 것입니다. 또 영계를 굴복시키지 않고는 지상세계에 주님이 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가 지금까지 영계를 굴복시켜 나온 것이니 영계는 통일교회를 협조해야 됩니다. (평화경 p. 705,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영계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몸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언제나 영계를 지고 다니고 모시고 다닙니다. 따라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영계는 있습니다. 영계는 이 세계를 위해 있습니다. 또 이 세계는 영원한 세계를 위해 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어디 있고, 신이 어디 있고, 영계가 어디 있어?’ 하겠지만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영계입니다.(평화경 p. 705,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우리의 인생살이가 70, 80년으로 끝난다면 별 문제가 없지만 영원한 생을 중심삼고 살아가기 때문에 심각합니다. 그러면 영계가 있다고 할 때, 사후에 영계에 가게 된다면 무엇을 갖고 갈 것입니까? 참사랑을 실하는 삶을 살지 않고는 영계와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영계는 광대한 세계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광대무변한 세계입니다.(평화경 p. 705-706,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영계라는 곳은 사랑의 전기로 충만한 세계입니다. 사랑의 전기 가지고는 못할 것이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의식구조를 가지고 치리할 수 있는 가능권이 영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계는 영원한 요소를 원하는 곳입니다. 영계는 모든 것이 사랑으로 충만한, 사랑으로 꽉 찬 조화의 세계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버튼을 누르면 우주가 작동하는 것입니다.(평화경 p. 706,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지상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모든 사랑의 전구에 불을 켤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천상천국은 무엇입니까? 참사랑의 전구에 불이 영원히 켜질 수 있는 곳이 천상천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사랑의 마음만 품고 사랑의 줄만 당기면 다 끌려옵니다. 뒤로 당기면 뒤로 가고, 옆으로 당기면 옆으로 갑니다. 마음대로 조종됩니다.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자동적으로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계라는 곳은 사랑의 공기로 충만한 곳이라는 개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사랑의 마음으로 세계 인류를 한꺼번에 전부 다 먹이고 싶고, 좋아하게 하고 싶어서 ‘밥 생겨나라!’ 하면 생겨납니다.(평화경 p. 706,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영계는 사랑의 음식을 먹습니다. 서로 보는 것도 사랑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비롭기가 형용할 수 없는 곳입니다. 들어도 자꾸 더 듣고 싶고, 잠이니 피곤이니 하는 관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무엇이든 전부 사랑에 관계를 맺으려고 합니다. 왜 사랑에 관계를 맺으려고 하겠습니까? 영계에 박자를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 존재입니다.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평화경 p. 706,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여러분이 꿈에 선생님을 보게 되는 현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파장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자기가 없어야 됩니다. 나를 희생시키라는 말입니다. 진공상태를 만들어야 합니다. 진공상태가 된 다음에는 공명권을 만들어 저항이 없는 황금이 되어야 합니다. 황금이라는 것은 딴 요소가 섞여 있지 않습니다. 순수한 그대로입니다. 황금을 왜 보물이라고 합니까? 황금은 저항이 없습니다.(평화경 p. 706, 천국을 여는 문 참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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