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문선명 한학자 총재

1. 세계 도덕 계도에 대한 통일과학의 임무

작성일 작성자 하동

 제5편 절대가치와 새로운 질서

1. 세계 도덕 계도에 대한 통일과학의 임무

날 짜 : 1972년 11월 26일

장 소 : 미국 뉴욕 Waldorff Astoria Hotel

행 사 : 제1차 국제과학통일회의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게 됩니다. 행복을 누리고자 함은 누구도 누를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요 이상입니다. 수천년 인류역사에 있어서 이러한 이상을 갖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평화경 p. 709, 72.11.26)

 

인간생활과 행복한 세계

이상은 언제나 현실과 배치됨에도 불구하고 현실생활 속에서 이상을 실현해 보려고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 왔습니다. 이리하여 정치·경제·사회·종교·과학 등 인류문화의 전반에 걸쳐서 눈부신 발전이 이뤄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인간은 고대나 중세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 고도의 복지사회를 이뤄 놓았습니다.(평화경 p. 709, 72.11.26)

이와 같은 발전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과학이었습니다. 과학의 발달이 없었다면 오늘의 이 놀라운 번영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은 모든 과학자들이 행복한 이상사회의 실현을 그들의 사명으로 삼아 왔음을 의미합니다.(평화경 p. 709, 72.11.26)

즉 인간의 꿈을 실현시켜 보려는 뜨거운 사명감을 지니고 과학자들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왔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비록 과학자의 연구 성과가 때때로 일부 권력자들의 불의의 목적에 악용된 일이 있다 할지라도 과학자들의 기본정신만은 항상 인류의 복지사회 구현을 지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평화경 p. 709, 72.11.26)

 

1.1.2. 과학의 총합·통일화 경향

이와 같이 과학은 인류의 꿈을 실현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있어서 과학은 민족적 국가적 장벽에 가로막혀서 훌륭한 발명이 이뤄졌더라도 그것이 즉시 인류 전체의 복지에 기여할 수 없었던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때때로 과학문명에도 국경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문명은 본질적으로 인류 전체의 것이어야 하며, 어느 특정한 국가나 진영의 전용물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명감이 강한 과학자들은 공동복지의 목적을 방해하는 불의의 세력에 대하여는 강력히 항거하였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평화경 p. 710, 72.11.26)

과학자 중에는 각자 전문 분야에 따라서 때로는 당면한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인류 복지에 공헌한다는 정신을 망각하는 학자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과학자들의 기본자세는 인류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코자 노력하였던 것임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과학에는 여러 분야가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인류 행복의 실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 부문은 하나도 없습니다. 물리학·화학·의학이 그렇고, 생물학·지질학·천문학이 그렇습니다.(평화경 p. 710, 72.11.26)

물론 과거 수세기 동안 과학은 너무 분석적 방법에 기울어져서 많은 부분이 전문화되어 과학의 부품화 현상이 벌어진 것이 사실이나, 최근 총합적인 방법에 의하여 세분화된 지식을 총합하고 통일하는 소망스러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통일과학은 그 두드러진 예라고 할 것입니다. 여하튼 오늘까지의 과학은 비록 세분화 현상은 있었을망정 모든 부문이 그 각각의 입장에서 오로지 복지세계 실현이라는 일치되는 목표, 일치되는 방향을 지향해 왔던 것이 사실이며 또 앞으로도 그렇게 지향해 나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평화경 p. 710, 72.11.26)

그러나 오늘의 세계정세를 바라볼 때 심히도 개탄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으니, 그것은 눈부신 과학 발전과 놀라운 경제 번영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불행한 사태들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평화경 p. 710, 72.11.26)

 

1.1.3. 선한 세계와 행복한 세계

과학자들의 그토록 간절한 염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후진국에서는 빈곤과 문맹과 질병이, 그리고 국제간에는 긴장과 전쟁과 적대행위가 계속되고 있어서 인류는 화려하게 발전된 문화 속에서도 여전히 슬픔과 불안과 고통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지도자들이 이 불행을 제거하고 평화와 안정을 수립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만 평화라는 용어만이 세계를 뒤덮고 있을 뿐 인류는 날이 갈수록 불안과 고뇌와 위기의식 속에 더욱 빠져 들어가고 있으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평화경 p. 711, 72.11.26)

그것은 인류의 행동을 규제해 오던 종래의 가치관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윤리와 도덕이 그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요, 선의 기준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서구사회에서 신 중심의 기독교 가치관, 동양사회에서 천도사상 중심의 유교 가치관 등 종래의 인간 정신을 지도해 온 가치관은 모두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과학자들의 열의에 찬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불행이 사라지지 않는 근본 원인인 것입니다.(평화경 p. 711, 72.11.26)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과학자들의 염원이 실현되려면 반드시 먼저 선의 세계가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선의 세계란 가치관이 확립된 세계를 말합니다. 그것은 도덕의 세계요 종교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치관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현대 지성인의 실증적이요 논리적인 정신을 지도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이어야 할 것입니다.(평화경 p. 711, 72.11.26)

여기에 오늘의 과학자들은 또 하나의 사명을 짊어져야만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물질적 생활의 향상만을 꾀하여 온 자연과학만으로 인류의 진정한 행복을 보장하기에는 어렵게 되었으며, 인간 정신을 개조하는 작업까지도 과학자가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그 이유를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평화경 p. 711, 72.11.26)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모두 질료적인 측면과 형상적인 측면을 함께 지닌 통일적 존재임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몸과 마음의 통일체요, 동물은 몸과 본능의, 식물은 생명과 물질의, 그리고 무기물은 물질과 작용의 통일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존재론적으로 보면 우주는 결과의 세계이며 반드시 그 궁극의 원인이 있어야 하는 바, 유물론은 그것을 물질이라 하고 유심론, 즉 관념론은 그것을 정신이라고 주장합니다.(평화경 p. 711-712, 72.11.26)

 

1.1.4. 통일적 원인과 통일적 결과

그러나 결과의 세계가 통일체인 것으로 보아 이 원인도 질료와 형상의 두 요소를 통일적으로 지니고 있는 일원적 존재가 아니면 안 될 것입니다. 일원적이며 통일적인 원인에서만이 통일적인 결과의 세계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며, 또 통일적 결과에는 반드시 통일적이며 일원적인 존재가 그 원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평화경 p. 712, 72.11.26)

따라서 우주의 근본 원인을 물질만으로 보는 유물론은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원인은 결코 물질이 아니며 그것보다 앞서 있는 것은 비물질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이 통일적 원인에서 생겨난 통일적 존재인 것이며, 따라서 인간을 물질적 존재로만 보아도 안 되며 또 정신적 존재로만 보아도 안 됩니다. 따라서 인간 생활을 향상시킴에 있어서도 육신의 물질적 생활만을 개선해서는 완전한 행복은 실현될 수 없으며, 물질적 정신적 양면의 생활을 통일적으로 동시에 개선해 나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도래하게 됩니다.(평화경 p. 712, 72.11.26)

오늘날까지의 과학은 그 담당한 분야가 물질적인 영역이었기 때문에 특히 물질적 생활의 개선에만 주력해 왔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유감스럽게도 과학자들의 간절한 염원과 열성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아직도 불안과 혼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득이 과학자들은 인류의 진정한 복지를 위해서, 그리고 그동안 이룩해 놓은 그 고귀한 노력의 성과를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정신생활의 개혁운동에 참여해야 되겠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생활의 개혁이란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함으로써 선의 세계를 건설하는 것이며 새로운 도덕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평화경 p. 712, 72.11.26)

 

1.1.5. 신을 닮기 위한 사랑 실천

그러면 정신 개혁운동은 어떻게 전개할 것입니까? 그것은 먼저 선의 중심을 확립해야 하는 바, 여기에는 사랑의 중심이 결정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선이란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평화경 p. 713, 72.11.26)

그러면 그 사랑의 중심은 무엇일 것인가? 그것이 바로 신입니다. 우주 생성 이전부터 있는 유일하고 영원하며 불변의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심정의 흐름입니다. 내적인 심정이 외적으로 흐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신의 본질은 심정일 것입니다. 이러한 신이 바로 앞에서 존재론적으로 다룬 우주 생성의 근본 원인인 통일적 존재였던 것입니다.(평화경 713, 72.11.26)

이 근본 원인에서 우주의 생성이 바로 신의 우주 창조였음은 재언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은 어떻게 우주와 인간을 창조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심정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심정이 있는 곳에서만 생명이 나타날 수 있으며, 생명이 있는 곳에 발전 운동(창조)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창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는 바, 그 이유는 심정이란 본래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평화경 p. 713, 72.11.26)

그러니 창조목적은 심정을 충족시키는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기쁨은 피조물, 특히 인간이 신을 닮았을 때 오는 것입니다. 신의 사랑과 창조성을 닮은 인간과 나라(천국, 복지세계)가 신이 창조코자 하는 목표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상이 그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이란 당연히 향유하도록 되어 있는 세계를 추구하는 열망인 것입니다.(평화경 p. 713, 72.11.26)

인간이 행복한 세계를 항상 이상으로 추구하는 것은 그 행복의 세계가 바로 인간이 그 속에서 살도록 계획된 창조의 세계임을 뜻합니다. 이러한 세계가 바로 신의 사랑과 창조성을 닮은 세계요, 기쁨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과학의 경이적인 발전으로써 이 세계는 신의 창조성을 닮을 수 있게 되었으나 신의 사랑은 아직 닮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의 사랑을 닮기 위해서는 사랑을 실천해야 하며, 선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의 실천이 곧 선이기 때문입니다.(평화경 p. 713-714, 72.11.26)

그런데 선의 생활을 위해서는 사랑의 주체인 신을 선의 중심 기준으로 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은 중심이요 본질이기 때문에 현상의 세계가 아무리 변화무쌍하더라도 신의 사랑은 영원불변이며, 따라서 신을 선의 기준으로 삼았을 때 여기에 절대적인 가치관이 확립됨과 동시에 영원한 행복의 세계가 실현됩니다.(평화경 p. 714, 72.11.26)

 

1.1.6. 신과 인간이 원하는 이상적 인간상과 세계상

이와 같이 이상의 세계는 창조의 목적이 실현되어야 하는 세계요, 신을 닮아야 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사랑이 넘치는 조화롭고 평화로운 생활을 원하고 있으며, 부단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서 환경을 개선해 나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는 비단 제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창의적인 활동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항상 새로운 것을 창안해 내고 계획하며 개선하고 그리고 생산하는 등의 활동 전부를 말합니다.(평화경 p. 714, 72.11.26)

그런데 신은 통일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도 통일적이어야 하며 사회생활도 통일적인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즉 사랑하면서 창조하고, 창조하면서 사랑하는 통일적인 인간, 통일적인 세계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평화경 p. 714, 72.11.26)

오늘날까지 인간은 눈부신 과학적 발전을 이뤄 놓음으로써 창조적 생활면에서는 신을 닮았다고 할 수 있으나 사랑의 생활에 있어서는 아직 전혀 신을 닮지 못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슬픔과 고통과 불행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랑은 조화이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곳에 조화가 있을 수 없으며 조화 없는 곳에 평화나 행복이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여기서 가지가지의 비참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714, 72.11.26)

이리하여 신도 인간도 신을 닮은 이상적인 생활, 이상적인 세계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신이 원하고 인간의 본이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은 창조적이면서도 신을 중심한 사랑을 실천하는 선한 인간입니다. 또한 신과 인간이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는 환경을 개선하는 창조적 활동이 계속되면서 개인과 개인, 국가와 국가 사이에 사랑이 차고 넘치는 대조화의 통일세계인 것입니다. 이 같은 새로운 타입의 인간이 새로운 통일세계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오랫동안 인간을 괴롭혀 오던 일체의 슬픔과 고통, 싸움은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평화경 p. 714-715, 72.11.26)

 

1.1.7. 만민 공동의 방향

이와 같이 본연의 인간과 세계는 신을 닮은 선의 인간이요 선의 세계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실적인 인간과 현실적 세계는 신을 닮지 않은 악의 인간, 악의 세계가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과 세계가 본연의 모습을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인류를 불안과 혼란 속에서 구출하기 위해서는 본연의 인간 자세와 세계의 모습을 회복하여서 이것을 현실에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의 절대 기준을 찾아 세워서 선의 생활을 해야만 됩니다.(평화경 p. 715, 72.11.26)

선의 기준은 사랑의 중심인 신을 말합니다. 오늘날 온 인류가 고통과 혼란의 현실을 벗어나려고 그렇게도 몸부림치고 있으며 자유와 평화를 그렇게도 갈망하고 있는 것은, 인류의 본심이 선의 기준을 찾고 있고 사랑의 중심을 찾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중심을 찾아서 지상에 영원한 행복의 세계를 이루고자 함이 만민 공동의 소원이요 방향인 것입니다.(평화경 p. 715, 72.11.26)

이상으로 신이나 인간이 바라는 세계가 창조적 생활과 사랑의 생활을 영위하는 통일세계라는 것과 이 세계에서 비로소 신과 만민의 소원이 이뤄지게 된다는 것,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중심을 찾아 세워야 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반드시 규범이 확정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생활만으로는 결코 조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생활은 질서를 필요로 하며 질서를 위해서는 규범이 요구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715, 72.11.26)

규범이란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이법이요 원리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덕이요 윤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도덕과 윤리를 확립해서 이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통일세계에 적용될 도덕 윤리는 현대인에게 잘 지켜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과거의 도덕 윤리가 깨져 버린 것은 현대인의 생활이 물질주의로 흐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그 가치관이 현대인의 이성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도덕, 새로운 윤리 정립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716, 72.11.26)

 

1.1.8. 완전한 선의 통일세계 건설

그러면 새로운 가치관은 어떻게 정립될 것인가? 그것은 과거의 모든 사상과 종교 교리를 통일할 수 있는 하나의 고차적인 통일적 사상 체계에 의해서 비로소 정립이 가능합니다. 과거의 모든 사상과 종교는 각각 그 나름대로의 가치관(윤리관)을 갖고 있었고 각각 장점을 가졌었으며, 또 오늘에도 유익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오는 시대에는 적용될 수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은 거의 버림받게 되었습니다.(평화경 p. 716, 72.11.26)

따라서 새로운 가치관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과거 윤리관의 장점을 모두 살리면서 동시에 현대인의 생리에 부합되는 내용의 가치관이 세워져야 할 것인 바, 그러기 위해서는 부득이 과거의 모든 사상과 종교 교리를 통일한 통일사상이 출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716, 72.11.26)

왜냐하면 과거의 모든 가치관과 윤리관은 모두 그때의 사상이나 종교를 기반으로 하고 확립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통일사상에 의한 새로운 도덕, 새로운 윤리가 세워지게 될 때 비로소 완전한 선의 통일세계가 건설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통일세계의 건설을 위해서 새로운 가치관을 세계적으로 세워 나가는 것이 바로 세계 도덕의 계몽입니다.(평화경 p. 716, 72.11.26)

결론적으로 통일과학의 임무에 대하여 일언하고자 합니다. 통일과학이 오래 전부터 세분된 분과과학의 진리를 통일하려는 의도 밑에 체계화되어 온 데 대해서 우선 깊은 치하를 드리는 바입니다. 과학의 세분화는 마치 기계 부품의 해체와 같아서 과학의 전문화만으로써는 과학 전체의 통일적 기능이 마비되고 과학의 사명을 완전하게 수행하는 데 차질을 초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평화경 p. 717, 72.11.26)

 

1.1.9. 통일사상과 합쳐야 할 통일과학

그런데 여기에 일부의 선각적 과학자들에 의해서 통일과학의 깃발 밑에 과거의 많은 과학자들이 발전시킨 과학적 진리가 하나로 총합 통일되어서 일관된 하나의 새로운 철학적인 과학체계로 정리된 것은 실로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경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 현대적인 새 가치관을 수립하기 위해서 과거의 모든 사상과 종교를 하나로 통일하는 통일사상이 출현한 것과 같은 역사적인 사건인 것입니다.(평화경 p. 717, 72.11.26)

그런데 이미 위에서 되풀이하여 지적한 바와 같이 과학은 인간의 물질적 생활을 개선하는 것이 그 본령이기 때문에 통일과학은 실천면에 있어서 전보다 더 효과적으로 물질적 생활 개선에 기여할 것이 기대됩니다. 그러나 본연의 인간이 정신과 육신의 통일체인 것처럼 사회생활도 물질과 정신의 통일적 생활입니다.(평화경 p. 717, 72.11.26)

이상세계도 사랑과 창조의 통일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이에 누차 밝힌 바와 같이 물질적 생활 개선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의 세계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니, 불가피하게 통일과학은 그 역할을 온전히 다하기 위해서 통일사상과 다시 하나로 합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평화경 p. 717, 72.11.26)

이러한 합치가 이뤄지게 될 때 오랫동안 숙제였던 종교와 과학의 통일이 실현되게 되어서 명실상부 복지세계, 행복한 세계, 선한 통일세계가 이뤄지게 됩니다. 이때에야 비로소 구제도와 구사상은 완전히 사라지고 새 제도와 새 사상에 의한 이상적인 통일세계가 실현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평화경 p. 711, 7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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