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문선명 한학자 총재

2장 세계승공운동과 공산주의 종언 선언

작성일 작성자 하동

 

2장 세계승공운동과 공산주의 종언 선언

1절 일본 국제승공연합

 

일본의 중요성과 승공운동

참부모님께서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세계적으로 승공활동을 전개하셨다. 특히 일본을 중심한 승공활동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과 일본은 지정학적 관계를 넘어 복귀섭리를 담당하는 아담 국가와 해와 국가로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책임과 사명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일찍이 일본을 공산주의 위협에서 보호하기 위해 많은 지원활동을 펴셨고, 일본 청년학생들도 헌신적으로 승공활동을 전개해 큰 승리를 거두었다. (p. 882)

 

1 한국과 일본이 뜻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국 정부도 일본의 국제승공연합에 대해서 자못 큰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1970년 9월에 열린 제4회 세계반공대회가 일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현재 한국의 정세를 두고 볼 때 1972년까지가 중요한 시점입니다. 그러니 뜻을 아는 우리로서는 거기에 대비해서 1970년에 더더욱 확고한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반공대회는 중요한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먼저 아버님을 중심삼고 내적인 단결을 해야 되고, 그다음에는 외적으로 한국 식구와 일본 식구가 단결하여 하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공동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돌리는 내적인 힘이 왼쪽으로 돌리는 외적인 힘보다 강해야 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천배 만배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우리를 반대하는 수많은 수의 힘을 능가해야 되는데, 부족한 우리 힘만으로는 안 되겠기 때문에 하나님의 협조를 받아야 합니다. (031-113, 1970.05.01) p. 882

 

2 아버님의 관심의 대상이 한국만으로 국한된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세계를 위해서 준비해야 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시련과 핍박의 십자가를 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국제정세라든가 공산당의 움직임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는 영적으로 싸우고 영적으로 책임지고 나아가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책임진 자가 가야 할 공식적인 방향은 어떠한 절대적인 기을 중심삼고 나아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지향하는 길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 그 기준을 중심삼고 가는 길에는 추호도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사적인 개인의 감정이 개재되어서는 안 됩니다. (016-301, 1966.07.31) p. 883

 

3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만약 일본이 용공국가가 된다면 한국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소련 중국 일본 등 세계 강국들 사이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와 국가인 일본을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담 국가인 한국이 일본에서 국제승공연합을 중심삼고 구국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일본을 구해 주었다는 입장에 서야 됩니다. 일본이 반공국가가 되면 한국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한국을 구해 주는 것입니다. 해와 국가의 사명이 이렇게 크다는 것입니다. (034-074, 1970.08.29)

 

4 통일교인들은 공산주의 유물사관에 대한 비판을 철저히 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남북한총선거가 실시될 때 통일사상을 중심삼고 북한을 여지없이 누르고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는 공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를 복귀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됩니다. 그래서 바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적인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통일교인이 지고 가야 할 책임과 사명입니다. 현재 일본과 아시아에서 공산주의가 크나큰 문제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이념은 소련에서 나왔지만, 공산주의 행동은 노동자 농민을 중심삼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주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본을 다스리고자 하는 정치가에게는 공산주의자들과 어떻게 싸움을 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지금 일본은 사상적인 재무장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됩니다. 사상적으로 재무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016-068, 1965.12.26)

 

5 공산당에 대하여 선두적 자리에서 책임을 다함으로써 일본의 모든 지도자가 우리를 동경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니 공산주의 비판과 극복에 관한 책을 빨리 출판하여 각 학교에 보급하고 강의를 함으로써 한국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공산주의 비판정신을 심어야 됩니다. 그래서 반공 교육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제대로 비판하는 것입니다. 우리 수가 많아지고 대중이 환영하면 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자기들의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폭력까지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영받 못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릅니다. 전법이 근본부터 다릅니다. 그들은 믿던 사람이 불신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90퍼센트 이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기 시작하면 점점 더 믿게 됩니다. 이것이 다릅니다. (1967.06.08, 일본 도쿄)

 

6 1968년 4월에 일본 국제승공연합을 발족했습니다. 그때 일본 간부들을 모아서 ‘우리는 이제부터 일본 이 자유천지에서 반공, 승공활동을 해야 되겠다.’고 했더니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아버님은 일본에서 공산당의 발판이 얼마만큼이고 이들이 얼마나 극악하고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시기 때문에 저리신다.’고 하면서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역사적인 모든 내용을 중심삼고 ‘이러한 운명이 찾아오는데도 불구하고 너희가 이 일을 안 하겠느냐!’고 하면서 설득하였습니다. 그전에 전부 승공이론 무장을 시켰습니다. 승공강의를 할 수 있도록 사상무장을 시키고 가두로 내보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득실거리는 데 선두에 나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대학에 파송했습니다. 남자를 파송해서는 안 되겠기에 대담한 일본 여자를 사상무장을 시켜서 ‘이제부터 3년 반 동안 죽을 각오를 하고 조선대학 앞에서 승공강의를 해야 된다! 너희가 가는 길에는 죽음의 교차로가 틀림없이 있다! 각오하라!’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일화가 많습니다. 조선대학은 일본 외무성을 통하여 우리에게 압력을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꾸준히 생명을 걸고 투쟁해 왔습니다. 도쿄역이라든가 전국의 유명한 가두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적극적인 투쟁을 벌인 것입니다. (109-232, 1980.11.01)

 

7 일본 국제승공연합은 공산당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조선대학 앞에서 강의를 하겠으니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라는 식으로 조총련 사람들이 있는데도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 활동을 방해하느라 잡아끌고 당기고 하는데, 그것을 보고 남들은 웃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 어떤 때에는 한꺼번에 몰려와서 한 사람을 타고 앉아 목을 누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주일 정도만 하면 우리를 동정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렇게 해서 동정하는 사람이 몇 사람만 나오면 그들의 내부에 분열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들이 가만히 보니 말에 틀림이 없고, 행동에 틀림이 없고, 도의적인 면에서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기에서 자기들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 반드시 양심이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 스스로가 공산당에 희생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 자체가 폭발되게 할 수 있는 간접적인 전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이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028-138, 1970.01.04) p. 885

 

8 우리가 일본에서 승공활동을 하고 있는데, 공산주의가 50년 동안에 세계의 절반 가까운 나라들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 사회에까지 공산주의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계적인 판도를 가진 공산주의에 대해 승공이라는 타이틀을 들고 소수의 무리가 나선 것은 한편으로 보면 어리석고 세상을 모르는 자들의 행동이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잘못 봤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1969년 10월 7일에 전국승공국민대회를 도쿄의 히비야공원에서 가졌는데, 여기에 5천여 명이 참석해서 박수를 하면서 환영했다고 합니다. 공산당은 지금까지 일본이 자기들 뜻대로 틀림없이 적화된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활동하면서 적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앞에 우리 소수의 통일의 무리가 반기를 들고 나섰다는 사실은 일본의 공산당에도 문제가 되었고 일본 정부에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전 국민이 새로운 각도에서 스스로를 비판하고 앞날을 재검토할 수 있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행동은 미미했지만 이것은 일본에 하나의 파문을 일으킨 결과가 되었으며, 이 파문은 아시아 전역에 미칠 수 있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025-308, 1969.10.12)

 

9 1970년 9월 15일 세계반공대회가 일본에서 열렸는데 일본의 역사에 없었던 거국적인 행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거기에 집중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거국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일본 공산당도 통일교회 움직임에 대해서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배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걱정의 도가 자기들의 갖추어진 환경보다도 더 강하게 될 때에는 이들은 제2 전선을 준비하고 제3 전선을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035-027, 1970.09.27)

 

10 아버님은 반공주의자이지만 반공만이 아니라 승공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국제승공연합을 만들고 700만 명에게 승공교육을 해왔습니다. 이것은 모두 아버님이 지시해서 해온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일본 국제승공연합은 자유민주주의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희망이 되어 있습니다. 일본 각계의 지도자는 이구동성으로 국제승공연합이야말로 일본의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모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버님은 일본 국제승공연합에 대하여 ‘공산주의자들과 텔레비전 공개토론회를 열어라!’라고 했습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 모든 매스컴을 통해 대중 앞에서 토론회를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이론과 우리 이론 중에서 어떤 이론이 바른지 가려 보자고 했습니다. 그에 대해 공산당은 우리 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물론 전국에 국제승공연합과는 절대로 토론해서는 안 된다고 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패배를 인정한 것입니다. (1976.10.10, 벨베디아 수련소) p. 886

 

일본 국제승공연합운동의 확산

일본이 좌익 운동권 학생 및 조총련계 학생들의 활동으로 공산주의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기에 대응하는 국제승공연합 활동은 섭리상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국제승공연합 회원들은 가두캠페인 등을 통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위장전술에 일본 국민은 현혹되지 말 것을 경고하였다. 그리고 일본 공산당을 대상으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놓고 공개토론을 벌일 것을 요구하였는데 그들은 응하지 않았다.

 

11 우리는 혁명 대열에 참가했습니다. 혁명전선이라는 것은 천리 행군이나 만리 행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행군은 생애를 걸고 몇 대에 걸쳐 계속될 것인데, 지금 행군하는 전선보다도 앞으로 다가올 전선이 더 치열할 것입니다. 그 치열한 것에 박자를 맞추어 다짐한 결의가 배가되어야 할 텐데 그것이 감소하게 된다면 패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스스로 포위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판국에서 싸움을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일본에서 승공활동을 한 내용이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에 게재되어 전 세계 공산국가에 다 들어갔습니다. 이 신문은 소련은 물론이고 중국에도 보내집니다. 이렇게 볼 때 통일교회 활동은 민주세계보다 공산세계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각도에서 공산당에게 조건을 제시해야 됩니다. 공산당은 우리의 참소에 걸려서 스스로 해명해야 될 때가 올 것입니다. (025-310, 1969.10.12)

 

12 소련 제국의 공산주의 이념을 펴기 위한 본부가 육대주의 각 나라에 는 것을 내가 탐색했습니다. 최고의 언론기관과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이름 있는 정치가들을 중심삼고 직접 조사단을 만들어 수백만 달러의 비용을 소모해서 이를 폭로시킨 사람이 아버님입니다. 일본이 아시아의 기지가 돼 있기 때문에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 <아키하타>를 중심삼고 회합을 했습니다. 아버님의 이론이 공산주의를 손 안 대고 말아먹게 됐기 때문에 27개국에서 승공이론을 방어하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허수아비가 아닙니다. 이론적으로 타당한 논리가 있으니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이론체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려니 까마득한 꿈나라입니다. 이렇게 되자 그들은 별의별 놀음을 다 했습니다. 국회에서까지 문제가 되자 일본 도쿄대학이라든가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모임을 갖고 아버님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공개석상에서도 아버님에게 전략적으로 굴복당했다는 것입니다. (606-228, 2009.01.13) p. 887

 

13 일본 공산당은 자기들의 신문인 <아키하타>를 중심삼고 연속적인 시리즈 형태로 통일교회와 국제승공연합을 파헤치는 등 제반 방법을 통해서 공세를 취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공격으로는 우리 움직임을 짓누를 수 없었습니다. 반대가 있으면 그 반대 이상의 일을 함으로써 대중은 반대하는 데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활동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렇게 밀고 나옴으로써 <아키하타>가 취재해서 발표하는 것은 국제승공연합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통일교회와 국제승공연합이 불과 10년이나 20년 이내에 일본 전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모든 분야에서 주도적인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일본의 저명한 인사들의 판단입니다. (062-273, 1972.09.26)

 

14 일본 공산당은 금후에 일본을 적화하는 데 제일 암적인 존재가 국제승공연합과 통일교회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 하는 모든 승공활동은 전 세계의 공산당과 통한다는 것입니다. 국제승공연합의 이론 체계를 타파하기 위해서 1974년 12월에 공산세계가 12개국에서 제일 이론적인 학자를 규합하기 위한 회합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통일교회 사상은 자기들이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종교의 배경에서부터 근거돼 있기 때문에 손을 댈 수 없다고 하면서 후퇴했다는 보고를 내가 들었습니다. 통일교회 사상은 자기들로서는 용허할 수 없는 위험한 것이 두려운 것이라고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공산당은 ‘통일교회 교인과 만나지 말라. 승공요원과 만나지 말고 논쟁도 하지 말고 싸우지도 말라. 우리가 손해다. 우리가 할 것은 폭력과 혼란을 조성해서 승리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086-148, 1976.03.21) p. 888

 

15 일본에서는 승공운동을 중심삼고 낮에는 전 식구들이 동원되어 거국적인 활동을 시작할 것입니다. 또 밤에는 전국적으로 부흥회를 개최하게 될 것입니다. 전국순회부흥단에 의해 한 달에 한 번씩 부흥회를 하면서 식구들의 원리 실력을 향상시키고 신앙심을 고양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식구들을 곳곳에 배치해 강의를 하라고 했습니다. 아시아반공대회를 통해 일본에 있는 화교와 한국 교포를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일본에 유학 온 수많은 학생들을 대회에 참석시켜 승공연합의 기반을 닦게 할 것입니다. 특히 유학생들은 졸업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본에서 이들을 교육시켜 아시아에 우리 거점을 연결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회를 1차 2차 3차까지 계속한다면 그 기반이 닦아지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정부가 못하는 일을 우리가 해야 되겠습니다. (042-153, 1971.03.01)

 

16 내가 일본의 국제승공연합에 전국에 있는 경찰들과 중고등학교 선생들을 데려다가 교육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중고등학교부터 전부 교육할 계획입니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3천여 명의 중고등학교 교장을 교육했습니다. 조총련의 학교가 200개 정도 있는데 민단 학교는 불과 10개 미만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일본의 중고등학교를 중심삼고 전적으로 국제승공연합이 후원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그럼으로써 민단계 사람들에 대한 사상교육을 해야 됩니다. 그 기반 밑에 대사관을 연결시켜 아시아에서 기반을 닦아야 됩니다. 지금 조총련이 조선대학에서 사상 요원을 길러내는 것 이상의 기반을 빠른 시일 내에 닦지 않으면 안 되는데, 우리가 학교를 지어 그렇게 해서는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에 비상작전을 하고 있습니다. (062-328, 1972.09.26)

 

17 1965년에 아버님이 일본에 들렀을 때 일본의 한 고위층 인사를 만나서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버님은 ‘당신들이 지금처럼 미미한 태도를 취하다가는 결코 공산당에게 배겨나지 못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벌써 공산당원은 1970년을 기하여 대학가를 중심으로 혁명을 일으키려고 준비하고 있습니. 그들은 자기들의 조직 기반인 노동조합을 앞세우지 않고 현재 대학생들을 내세워서 일을 저지르고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1970년대를 앞두고 모든 계획을 세워 놓고 대학가를 통하여 시험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이러한 안팎의 문제로 인하여 매우 긴급한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승공을 부르짖고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승공운동을 선포하고 나선 지 1년밖에 안 되었지만 그동안 우리 청년 남녀들은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관가나 자민당의 모든 간부들은 반공전선에서는 대학원리연구회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시인하게 되었습니다. (022-223, 1969.05.02) p. 889

 

18 일본에 있는 56개 대학에 통일교회의 대학원리연구회가 등록되어 있고, 석박사들이 그 배후에서 통일이념에 대하여 연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산권 학생들과 통일교회 원리연구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 투쟁에서 어떤 대학의 공산권 학생들이 몽땅 통일교회로 넘어와 버린 일이 생겼습니다. 공산당이 자기들의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요소요소에 배치한 지하단체 중의 하나가 통일교회로 몽땅 넘어와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공산당원들이 통일교회에 가서 뒷조사를 하거나 반기를 들면서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그래서 도쿄대와 교토대, 도후쿠대 등 모든 대학가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원리연구회가 대회를 할 때마다 야단이 벌어졌습니다. (016-069, 1965.12.26)

 

19 일본의 도쿄대 대학원생 120명을 샌프란시스코에 데려다가 교육을 했습니다. 앞으로 일본에서 공산권을 방어할 수 있는 일은 일본 정부가 못합니다. 통일교회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책임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아버님이 직접 명령을 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늦어서 안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안 되거든 생명을 내걸고 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들고 반대하지를 않나, 별의별 일이 다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쿄대 총장이 일본 협회장과 협상을 했습니다. 매일같이 만나서 협상하다 보니 이제는 친해졌습니다. 대부분이 가겠다고 자원해서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러니 도쿄대 대학원 학생들도 뒤꽁무니를 빼려야 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대학원 학생들이 25세 이상인데 40세도 있습니다. 그쯤 되면 사회에서 자기 의지와 판단력을 지고 당당히 지성인으로 자처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결국 모두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067-311, 1973.07.22) p. 890

 

20 내가 일본에 들러서 국회의원들에게 ‘한국 국회의원, 대만 국회의원, 일본 국회의원, 3국의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승공세미나를 하라.’라고 지시했는데, 그대로 해서 그것이 성공리에 끝났습니다. 나라도 못하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도 승공연합이 아니면 안 되고, 대만 정부도 승공연합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가 우리를 붙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우리를 붙들고 한국과 대만에 영향을 주고, 한국은 또 우리를 붙들고 대만과 일본에 영향을 주고, 대만은 우리를 붙들고 일본과 한국에 영향을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069-286, 1974.01.01)

 

21 이제는 한국과 일본과 미국을 위주로 자유세계를 어떻게 연결하느냐 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어떻게 묶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묶기 위해서 벌써 일본 국제승공연합과 한국 국제승공연합의 자매결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내가 일본 중요 간부의 부인들을 모아 놓고 훈시를 했습니다. 물론 간부인 남자 책임자들은 다 알지만 여자들도 협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750만 되는 국제승공연합 회원들의 배후에 있는 부인들을 결속하여 앞으로 한국의 700만 가정의 부인들과 연합하는 운동을 해야 되겠다. 어떻게 하든지 일본 부인들을 결속시켜야 되겠다. 그러려면 가정 대 가정의 결속을 서둘러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일본이 제아무리 반대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방향을 따라갈 수 있는 체제를 일본과 한국에 확고히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미국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135-248, 1985.12.12)

 

22 금후의 아시아 정책에서 제일 관건이 되는 나라가 일본입니다. 지금은 경제전쟁을 시작하고 있는 입장입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일본을 놓고는 아시아를 요리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미국이 중국에 친근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그 문화수준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미국의 문화기준과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몸부림치더라도 미국은 일본을 중간 매개체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전에 빨리 한국은 국가적 기반을 세계적으로 연결해 됩니다. 이것이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입니다. 한국의 700만 승공회원 가정이 연결되면 미국의 목사 가정을 중심삼고 단결되어 들어오는 기독교 영향권을 결속할 수 있는 길이 자동적으로 연결됩니다. 이것은 국가적 차원보다도 국민적 차원, 가정의 차원에서 기반을 다져 가는 것입니다. 그 가정 위에서 이 기반을 확대해 우리 요원들을 나라를 움직일 수 있는 요원으로 내세우게 되는 날에는 한국과 일본과 미국이 새로운 세계 섭리사적 사명을 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간다고 보는 것입니다. (135-248, 1985.12.12) p. 891

 

조총련과 민단 그리고 남북통일운동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 및 북한과 일본 사이에 놓여 있다. 그래서 참부모님께서는 일본이 공산화할 경우 한국의 안보가 위태롭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조총련계 재일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승공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이들을 남북통일운동에 앞장세우셨다. 이를 위해 1972년 5월 1일 국제승공연합 재일본부를 결성하였다. 특히 재일동포부터 먼저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시고, 조총련에 속한 동포들을 초청하여 1975년 9월 추석성묘단 모국 방문을 주선하셨다. 이들은 광복 후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해 가족 친지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 이 행사는 이후 수차례 진행되면서 당시 북한의 위장 홍보전략에 현혹되어서 남한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던 조총련 동포들이 새롭게 눈을 뜨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23 아버님은 일본에서 민단을 중심으로 국제승공연합 조직을 1965년부터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7년이라는 세월을 잃어버리고 1972년에 국제승공연합 재일본부를 조직했습니다. 그전에는 민단이 갈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승공사상을 갖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이 공론입니다. 일본에 있는 조총련과 일본 공산당, 그리고 중국 공산당, 이 세 공산당과 대결할 수 있는 강력한 한국의 단체가 있느냐 할 때 없습니다. 일본에 가 있는 대사와 공사, 정보원 몇 명을 중심삼고는 이들과 대결할 수 없습니다. 천만부당합니다. 싫든 좋든 통일교회 기반을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될 자리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국제승공연합을 중심삼고 조총련에 대비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총련과 하나된 일본 공산당에 대비할 수 있는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168-177, 1973.07.29)

 

24 일본 국제승공연합은 일본 사람의 단체가 아닙니다. 그 단체의 사람은 삼천리반도에 있는 한국 사람들보다도 더 한국 사람 같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버님이 명령만 내리면 무슨 일이든지 합니다. 조총련의 조선대학인가 취소운동을 1968년부터 4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총련에서는 큰일 났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맨 처음에는 우리를 우습게 알았습니다. 불면 날아갈 줄 알았지만 잘못 알았습니다. 우리가 범위를 넓히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더 지나면 조총련계를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3년만 지나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 놓고 왔습니다. 그리고 민단에 내가 손을 대야 되겠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특별조치를 하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정부에서는 통일교회가 민단에까지 손댄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별의별 수모를 당하면서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056-108, 1972.05.14) p. 892

 

25 북한은 1970년대 후반부터는 7․4남북공동성명을 중심삼고 통일방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휴전선으로 분단된 사상체제권 내에 있기 때문에 훈련되어 있고 기반이 닦아진 한국 내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일본에서 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조총련을 시켜서 민단을 흡수하고, 또 민단의 한국청년단체협의회를 흡수해서 자기들의 일괄적인 조직권 내에 집어넣게 된다면 명실공히 조총련을 중심삼고 통일이 됐다고 온 세계에 선전할 수 있는 좋은 무대가 됩니다. 만일 조총련 앞에 민단이 흡수된다면 일본 정부도 사방이 공산권이기 때문에 공산권에 대한 진로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한국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 지금 일본에 사람을 파견해서 전국적인 붐을 일으켜 민단을 수습하고 있습니다. 조총련이 민단을 흡수해 버리면 고위층에 있는 정부요인들이 결정적으로 북한에 협조함으로써 일본 정세는 북한 일변도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아시아는 공산권 내에 전부 포위되어 위협을 받게 될 것입니다. 통일교회 사람은 물론이고 모두가 일본 공산당에 의해 망하는 것입니다. 정세적으로 볼 때 한국에 이러한 위급한 때가 다가오기 때문에 아버님이 홀로 이것을 막기 위해서 천신만고 배후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민단을 다시 구성하여 우리 체제 내에서 교육하고 국제승공연합의 민단 지부를 결성해서 전국에 그 조직망을 넓혀 나가려고 합니다. (062-326, 1972.09.26)

 

26 일본의 민단이 조총련에게 깨지 시작했습니다. 민단뿐만 아니라 한국청년단체협의회도 전부 깨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내가 1965년부터 그 간부들에게 틀림없이 앞으로 민단이 이렇게 될 것인데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본 국제승공연합과 하나되어 여기에 방어선을 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콧방귀만 뀌었습니다. 그렇게 한지 7년도 못 되어서 민단이 그냥 그대로 떨어져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대사관도 손을 들고 있고 민단도 손을 들게 되자 그때서야 그들은 국제승공연합에 후원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좋다! 싸움은 통일교회가 맡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싸움을 잘못하다가는 전부 역적 무덤 가운데 묻힌다는 것입니다. 자리를 가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님이 ‘민단 책임자들이 그것에 대해 환영을 해라! 대사관의 공인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일본에서 모험적인 활동을 개시하여 이 흐트러진 민단을 규합하고 정신자세를 바로잡아 주고 있습니다. (064-249, 1972.11.12) p. 893

 

27 아버님이 주일 한국 대사관과 민단을 찾아가 본국에서 활동했던 반공강연에 대한 실적을 제시하며 일본에서도 교포를 중심으로 반공강연을 해야 된다고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대사관 측은 국가의 대표라는 입장에서 고자세로 나오고, 민단 측은 교포를 대신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단장 이하 간부들이 한국의 어떤 장관도 부럽지 않다는 태도로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하늘은 그곳에 한국의 지구장 한 사람을 보냈습니다. 먼저 일본의 47개 현에 있는 부인회 대의원 45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지구장이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분 동안 강연하는데 무려 열두 차례의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그 집회 진행 책임자와 민단 책임자들도 충격적인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민단을 찾아가서 반공강연회 개최에 대해 교섭하였습니다. 그리고 반공강연을 하는 데 있어서 자수 간첩이나 북송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북한의 실정을 폭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효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그 사람들이 김일성이 어떻고 북한 실정이 어떻다고 이야기한다 해도 그것은 일본 실정으로 보아서는 믿어지지 않는 애매한 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구태의연한 반공 태세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고는 이론적인 면에서 공산주의를 근본적으로 파헤쳐서 공산주의가 어떻고, 또 이렇게 나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혹은 시대적으로 반드시 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을 적나라하게 제시하며 강의해야 된다고 적극적으로 설명했습니다. (018-287, 1967.08.10) p. 894

 

28 아버님이 1974년부터 1975년까지 힘을 다해서 대한민국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끝날에 패자의 서러움의 쓴잔을 마실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아버님이 있는 정성을 다했습니다. 일본과의 국교 단절의 비운이 찾아올 수 있는 배후에서 내가 피어린 투쟁을 해온 것을 국민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 조총련 문제를 중심삼고 공산주의를 방어하지 않으면 한국이 살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조총련 문제를 중심삼고 600명의 젊은 청년들을 규합해서 교육한 것입니다. 그것을 계기로 조국방문 성묘운동이 벌어진 것입니다. (083-091, 1976.02.05)

 

29 조총련과 민단을 하나로 만들지 않으면 해와 국가 일본이 설 수 없습니다. 그들 전부가 아버님을 대환영함으로써 아버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국가 한국과 해와 국가 일본이 하나됩니다. 민단과 조총련이 하나됨으로써 남한과 북한이 자동적으로 하나되게 되고, 그렇게 됨으로써 북한의 가짜 부모와 남한의 참부모가 조건적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해와가 자동적으로 이것을 안고 가서 그 전통을 한반도에 연결시키면 한일 통일권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섭리관입니다. (228-234, 1992.04.03)

 

30 해와 국가인 일본이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외적으로도 가인 아벨을 소화하고 내적으로도 가인 아벨을 소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이 40년간 포용해야 될 가인 아벨이 조총련과 민단입니다. 조총련은 일본에서 볼 때 머리가 아픈 존재입니다. 이 조총련과 민단을 일본이 하나 만들어야 됩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버님이 일본에서 조총련과 민단을 하나로 만든다면 일본 정부는 난처한 입장에 몰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하나 만드는 것은 아버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자체가 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복귀노정을 걸어온 것을 하나님 밖에 몰랐습니다. 영적인 기준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육적인 기준에 있어서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은 아버님 이외에는 없습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 육적으로는 아버님, 이렇게 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본은 우선 조총련과 민단을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일본은 아시아에 상륙할 수 없습니다. (247-211, 1992.11.17) p. 854

 

31 해와 국가인 일본의 민단과 조총련은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세라와 베레스 같은 입장입니다. 해와의 복중에서 두 패가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서는 해와 국가가 못 됩니다. 그런데 일본은 싸움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본은 해와 국가의 사명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들을 하나되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어떻게 하나 만드느냐 하면 유관순 사상을 중심삼고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1990년 이전부터 아버님은 그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일본에 있는 통일교회와 여성들을 묶어야 됩니다. 그래서 아시아평화여성연합을 중심삼고 외적으로 유력한 관계의 부인, 국회의원 부인, 교수 부인 등을 연결한 것입니다. 부모님과 관계맺은 사람들이 전부 거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상류층에 있는 여성들입니다. 그들과 통일교회는 가인 아벨입니다. 이 가인 아벨의 여성 기반을 중심삼고 어머니가 서야 됩니다. 어머니도 가인 아벨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해와의 복중에 있는 입장인 민단과 조총련을 하나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 만드는 일을 일본이 하게 되면 조총련 대표와 민단 대표가 일본에 있기 때문에 남북통일의 기운이 싹트는 것입니다. (229-314, 1992.04.13)

 

32 다말의 뱃속에서 세라와 베레스 쌍둥이가 싸우는 것과 같은 상황이 일본에서도 벌어져야 됩니다. 그것이 북한과 남한의 조총련과 민단입니다. 그것을 일본이 소화해야만 됩니다. 소화하는 것은 일본 자신만으로는 안 됩니다. 아버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다말의 복중에 있는 세라와 베레스같이 한 민족을 대표한 두 단체를 하나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지게 된 데에는 일본의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에 들어가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님은 좌우익을 통일해서 그렇게 신랑의 자리에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와서 김일성까지 돌려놓아야 됩니다. 좌우익은 아들입니다. 장자권복귀를 한 다음에는 부모권복귀를 하기 위해 김일성까지도 아버님이 묶은 것입니다. 그러니 한반도에서 통일권만 벌어지면 서양문명과 아시아문명, 좌우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228-233, 1992.04.03) p. 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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