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문선명 한학자 총재

3절 공산주의 종언 선언과 모스크바대회

작성일 작성자 하동

 

3절 공산주의 종언 선언과 모스크바대회

 

공산주의 종언 선언

참아버님께서는 댄버리 교도소 수감 중 세계 석학들 앞에 ‘공산주의의 종언’을 선언하도록 지시하셨다. 마침 스위스 제네바에서 ‘소련 공산제국의 멸망’을 주제로 1985년 8월 13일부터 5일간 제2차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세계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당시 대회를 앞두고 대회의 의장을 맡은 시키고 대학의 정치학자인 몰튼 카플란 박사에게 참아버님은 이 같은 선언을 하도록 지시하신 것이다. 카플란 박사는 정치학자로서 ‘멸망할 수도 있다(maybe)’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견해를 표명하였지만 참아버님은 물러서지 않고 ‘공산주의의 종언’을 선언할 것을 강력히 말씀하셨다. 이 예언대로 1989년 11월 9일 동독의 동베를린 국경 50여개 초소가 차례로 개방되면서 28년 만에 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또한 1991년 12월에는 1922년부터 존속되어 오던 거대한 공산국가권인 소비에트연방의 해체가 선언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공산주의 체제의 종언은 현실화하였다. (p. 901)

 

1 아버님은 ‘세상이 이렇게 된다.’라고 한 것은 다 맞았습니다. 세계는 공식적으로 발전합니다. 세계가 어떻게 된다 하면 틀림없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시작해서 73년을 못 넘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40년 전부터 선포했는데, 73년 만에 공산주의는 깨끗이 날아가 버렸니다. 아버님이 예언을 해서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천지대도의 가는 법도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올바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얘기하는 대로 세계는 돌아가는 것입니다. (245-031, 1993.02.28)

 

2 소련제국 멸망을 아버님이 선포했습니다. 아버님이 댄버리 교도소에 있을 때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세계대회에서 한 것입니다. 그때 유명한 정치학자인 시카고대학의 카플란 박사가 의장이었는데, 그를 댄버리 교도소에 불러다가 소련제국 멸망을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진보적인 입장에서 책을 17권 썼는데, 자기가 이런 말을 하게 되면 그 책들이 다 무효가 되니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 소련제국이 멸망할지 모르겠다.’고, ‘메이비(maybe)’라는 말을 넣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님은 ‘안 돼!’하면서 ‘두고 봐라. 5년이내에 공산당이 어떻게 되는지, 가서 얘기해!’라고 했습니다. 선포를 해야 공산주의 세계가 무너집니다. 결국 5년도 못 돼서 무너졌습니다. 세계의 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아버님이라고 했지만, 선포하고 나서 이런 천지가 벌어졌으니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요즘에 와서야 ‘위대한 스승입니다. 존경하고도 남을 수 있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극비의 사실을 현실에서 실천하기 위한 기반을 닦은 놀랍고도 역사적인 분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93-275, 1989.10.08)

 

3 공산주의를 무너뜨리는 데 있어서 선두에 선 사람이 아버님입니다. 공산세계가 무너지게 된 것도 아버님의 공로라는 것을 세계의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공로도 아니고 미국의 공로도 아닙니다. 사상적으로 싸우는 데 있어서는 사상을 가지고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중국이나 소련 같은 데서 지하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통일교회는 수십년 전부터 중국과 소련에서 지하운동을 해왔습니다. 그것은 소련의 KGB(국가보안위원회)라든가 중국의 정보당국도 몰랐습니다. 드디어 무너지고 나서 ‘문 선생의 지하조직이 러시아에 있었느냐?’고 한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해왔습니다. 그러한 배후의 활동을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지금까지 해왔는데 결국 그러한 결과가 된 것입니다. 세계의 정세에 맞추어 준비한 것입니다. (255-107, 1994.03.10)

 

4 소련 공산당까지 아버님이 해방하려고 합니다. 싸움이 아닌 사랑의 논를 가지고 해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주의요 아버님의 사상입니다. 그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하에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고독이 점령할 수 없고, 사망의 물결이 그 앞에 무색합니다. 공산세계가 총 단합해서 아버님 제거운동을 하고 있지만 아버님은 갈 길을 압니다. 혼란된 세상을 수습할 대안이 어디에 있으며, 살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대표한 하나의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서 그 양심이 취하고 몸이 취해서 끌려간다고 할 때 인류는 그 남자와 그 여자를 따라가면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커지면 나라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163-117, 1987.04.19) p. 903

 

5 아버님이 댄버리 감옥에 들어가 있던 1984년은 미국이 12년간에 걸쳐 완전히 공산화되려고 하는 때였습니다. 그것을 아버님이 돌려놓은 것입니다. 공산세력이 미국을 완전히 발바닥으로 밟아치우는 한계의 때가 1984년입니다. 사탄은 그때 아버님을 감옥에 쳐넣으면 자기 마음대로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법정투쟁을 하면서 워싱턴타임스를 만들고, 소련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발표한 것입니다. (203-120, 1990.06.23)

 

모스크바대회

참부모님께서는 워싱턴 모뉴먼트대회 직후 선언하신 모스크바대회를 1990년 4월 9일부터 13일까지 개최하셨다. 모스크바 국제무역센터에서 열린 이 대회는 전․현직 국가수반 40여 명을 비롯해 60개국의 언론인 정치인 학자 등 6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제11차 세계언론인회의와 제3차 세계평화정상회의, 제9차 중남미통일연합 회의 등이 함께 진행되었다.

 

6 소련 국민 앞에 제일 필요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무신론으로 인해 패망자가 되었으니 이제 하나님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고 아버님을 세워 통고하라고 하시는 그 심정을 알았기 때문에 어제는 원수였지만 자기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와 형제를 대하는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대했습니다. 73년간 갈라섰던 불효자식이 탕자의 신세가 되었다가 부모를 찾아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탕자를 대하는 부모가 가락지와 옷을 준비해서 끼워 주고 입혀 준 것과 마찬가지로 아버님이 그 일을 한 것입니다. (202-049, 1990.05.01)

 

7 아버님이 모스크바대회를 선포했기 때문에 모스크바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통일회의와 세계언론인회의, 약소민족협회를 만들고 그다음에는 전 수상협회를 구성해서 소련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방문할 때에는 전직 국가수반 및 총리 50여 명을 데리고 아버님이 단장으로 갈 텐데, 손을 내밀면 공산당 서기장이 악수를 안 할 수 없습니다. 그때 우리 유럽 기동대원 수 천 명을 데리고 들어가서 모스크바대회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114-149, 1981.10.18) p. 904

 

8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 정책을 표방한 이후로 소련 모스크바를 들었다 놓는 대회를 하는 것은 1990년 4월에 치르는 세계언론인회의와 세계평화정상회의가 처음입니다. 소련 외무부와 KGB, 노보스티통신사 등을 중심삼고 들었다 놓는 것입니다. 고르바초프의 중요한 측근자 한 사람이 아버님에게 얘기한 것이 있습니다. 아버님이 40년 동안 핍박받으며 수고했지만, 자기가 소련에 돌아가《원리강론》을 쉽게 번역해서 당을 통해서 3천만 권만 젊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통일교회가 40년 동안 전도한 이상의 젊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201-180, 1990.04.01)

 

9 아버님이 소련에 가서 소련을 칭찬하고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대해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소련은 멸망한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보고 있고 모든 영인들이 지금 어떻게 되는가 하고 바라보는 숨가쁜 판국인데, 거기에 가서 소련을 칭찬하면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내 말을 들어라! 하늘을 섬겨라!’라고 해야 됩니다. 그래야 영계에서 ‘오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01-231, 1990.04.22)

 

10 모스크바대회가 노보스티통신사의 예상보다 10배 이상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상상을 뒤엎었다는 것입니다. 소련 역사상에 없는 기록을 깬 것입니다. 또 이번 이 일로 말미암아 소련의 KGB라든가 정치국, 노보스티통신을 비롯한 언론계 등 각계 기관장들이 놀랍다고 한 것입니다. 일을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공산당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각성을 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님을 참 존경하더라는 것입니다. 노보스티통신사가 귀빈으로 정식 초청해서 선물을 증정하고, 그렇게 고마워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소련을 한번 들었다 놓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탕감조건은 세우고도 남은 것입니다. (201-245, 1990.04.28)

 

11 공산당을 내 손으로 녹여냈습니. 그것은 세계가 다 공인하는 것입니다. 민주세계도 이제 아버님의 손으로 구해 줘야 됩니다. 또 소련의 고르바초프를 구해 줘야 됩니다. 그 모험을 무릅쓰고 탕자와 같은 자리에 선 사람을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구해 주는 것입니다. 김일성도 그렇습니다. 1987년에 고르바초프와 김일성이 아버님을 죽이겠다고 암살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 원수 중의 원수입니다. 그 사건의 조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백주에 모스크바에 가고 북한에 간 것입니다. 미국의 CIA와 FBI가 놀라서 제발 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로서의 책임이 있습니다. 아버님이 가서 그 사람들을 구해 줄 수 있는 키를 돌려놓아야 됩니다. (248-311, 1993.10.03) p. 905

 

12 1990년 4월 9일부터 13일까지 있었던 모스크바대회 승리 후에 우리가 전국적으로 참부모 환영대회를 개최했습니다. 모스크바대회를 승리했으면 승리했지 그 승리한 것이 한국 백성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모스크바대회를 승리한 것은 아버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통일교회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에 승리를 가져온 것이고, 아시아에 승리를 가져온 것이고, 세계에 승리를 가져온 것입니다. 아무리 큰 세계적 승리도 세계에서 시작되어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서부터 시작해서 세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뤄진 역사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그 시작은 개인에서부터 하는 것입니다. 모스크바대회의 시발을 일으킨 아버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 섭리를 경륜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자유세계, 민주세계를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남북한을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갈라져 싸우는 종교를 하나 만드는 것입니다. (204-060, 1990.07.01)

 

고르바초프와의 회담과 소련 지도자 교육

모스크바대회 기간 중 4월 11일 크렘린궁에서 열린 참부모님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역사적 회담에서는 한국과의 수교, 한반도 통일, 소련 내에서의 종교자유 확대 문제 등이 논의되었다. 참부모님께서는 이 자리에서 무신론적 유물론의 미래는 멸망밖에 없으므로 유물론을 폐기하고 종교를 중심한 영적 가치관의 부활을 시도하라고 권고하셨다. 그리고 참부모님의 제안으로 철의 장막에 갇혀 있던 소련과 독립국가연합의 대학생들 및 지도급 인사들의 미국 등 해외연수가 시작되었다. 1990년 7월 1일부터 8월 19일까지 4차례에 걸 380명의 소련 대학생들이 미국 통일신학대학원에서 열린 국제지도자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그리고 1991년 1~2월 헝가리의 3곳에서 7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세미나를 가졌고, 1991년 7~8월에는 대학원리연구회 주최로 발틱 연안 4곳에서 2천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24차에 걸쳐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1992년 1월 26일부터 2월 9일까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18곳에서 3천160명의 학생들을 위해 27차례의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1992년 3월 20일부터 4월 1일까지 고등학교 교사들과 독립국가연합의 학생들을 위한 통일원리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 세미나에는 23곳에서 40차에 걸쳐 7천229명이 참석함으로써 이전의 최다 수련생 참석 기록을 깼다. 그해 여름에는 8주간에 걸쳐 독립국가연합 5개 지역 26곳에서 열린 129차의 세미나에 1만8천42명이 참석하였다. (p. 906)

 

13 소련이 살 길은 아버님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KGB가 무서운 조직입니다. KGB가 무서운 조직입니다. 우리가 언론계를 중심삼고 활동을 해 나왔는데, 모스크바대회는 KGB가 배후조종을 하고 신원보증은 노보스티통신사가 했습니다. 아버님이 알아보니까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강한 세력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과 우리가 공동으로 세계언론인회의를 주최했다는 사실이 소련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3대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입니다. 3대 수수께끼가 뭐냐 하면, 첫째는 아버님이 옥토버스카이라는 호텔에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그 호텔은 쿠바의 카스트로나 북한의 김일성 같은 사람들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거기에 아버님이 투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둘째는 아버님이 고르바초프를 만났다는 것이 불가사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버님을 잡아 죽이려고 쑥덕거리던 사람들이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르바초프가 어떻게 되어서 아버님을 만나느냐는 것입니다. 셋째는 노보스티통신사와 우리가 공동으로 언론인대회를 주최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소련 공산당 73년 역사에 있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201-240, 1990.04.28)

 

14 소련 방문 일주일 기간에 소련 내부가 완전히 아버님과 연결되었습니다.핵심요원, 고르바초프를 중심삼고 중요한 멤버들이 연결된 것입니다. 그래서 소련에 가 있는 미국 대사관, 자유세계의 모든 대사관이 합해도 아버님이 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단계까지 다 이루어놓습니다. 이다음에는 아버님이 고르바초프를 만나 악수하면서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소련을 못 구한다.’고 하면 ‘그렇소.’라고 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내 말을 안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고르바초프가 아버님을 만나면 좋아하고 간부들도 아버님을 좋아합니까? 소련을 살려 주기 위해서 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 아버님입니다. 빚을 지면서라도 그 나라를 살려주려고 하는 사람, 빚을 져서라도 고르바초프를 살려 주려고 하는 사람은 역사시대에 크렘린궁을 방문한 정치가나 외교관 중에 없을 것입니다. 빚을 지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이 있는 모든 사람은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곳이 원수의 나라입니까? 거기에 지금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그 나라에 사랑을 가지고, 천국의 이상을 가지고 갔습니다. (201-229, 1990.04.22) p. 907

 

15 아버님이 소련에 갈 때 공산주의 계열의 대통령을 7명이나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전직 쿠바 대통령, 예멘 대통령, 나를 소개한 코스타리카 전 대통령이 그들입니다. 두익사상을 중심삼고 좌우를 거느리고 가니까 고르바초프가 무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제일 골치 아파하는 나라가 그 나라들입니다. 이런 것을 이미 다 수습해서 아버님을 중심삼고 모여 있으니 그런 분위기를 잘 이용하는 것은 자연법칙입니다. 일을 되게끔 몰아 나가는 것입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그런 것입니다. 돈을 가지고 있다고, 실력이 있다고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적으로 맞추어 그것을 타고 나가게 만드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201-250, 1990.04.28)

 

16 모스크바에 가서 아버님은 확실하게 선언했습니다. 소련이 살 길은 오직 종교적인 길뿐이라는 것입니다. 아버님은 평생을 종교지도자로서 지내 왔습니다. 공산주의 세계의 한가운데인 모스크바에서 확실하게 선언한 것입니다. 그러니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놀란 것입니다. 고르바초프도 듣고 나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지막 연회에서는 ‘소련은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그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것이 소련이 새로 부활하는 길이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길이 없다! 제거당하는 것이다!’라고 더욱 강력하게 얘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지막이라고 했습니다. ‘소비에트 공산주의권 내에 있는 모든 람들은 공산주의를 싫어한다. 그러니 여러분은 70년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러시아 제국이 얼마나 번성했었는가!’ 이렇게 선언한 것입니다. 공산주의 중심에 대해 대항한 것입니다. (216-085, 1991.03.09) p. 908

 

17 아버님이 소련을 방문해서 모스크바대회를 통해 공산주의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고르바초프를 만나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동상을 없애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없애지 않으면 당신이 앞으로 세계적인 역사에 기록을 남길 만한 지도자라고 하더라도 공산주의 이름으로 침해된 그 모든 상처를 메울 수 있는 공을 세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공을 세울 수 있는 조건이 되겠으니 그가 동상을 때려부숴서 없애 버린 것입니다. 모스크바에서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동상을 전부 내리게 한 사람이 바로 아버님입니다. (473-175, 2004.10.15)

 

18 아버님이 소련에 가서 일주일 동안 있다가 돌아올 때에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모스크바여 잘 있거라. 또 다시 올게. 너희가 기다리다 지치기 전에 내가 올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떠나오게 될 때 함성이 들렸습니다. 소련에서 영계에 간 수많은 영인들의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부디 또 오십시오.’라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니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통일교회에는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소련에서의 통일교회 터전과 활동은 극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왔습니다. 여러분도 소련 위성국가와 소련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벌써 1970년대부터 밀사를 보냈습니다. 미국 영국 등 유럽 선진국의 젊은이들을 교육시켜서 보낸 것입니다. 난데없이 사라져 버린 그 사람이 어디 갔나 했는데, 지금 보니까 소련의 선교사가 되어 있고 그 위성국가의 선교사가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다 떨어져 나간 줄 알았더니 그렇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거쳐 온 스승입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길을 가야 할 책임의 시대가 왔습니다. (201-336, 1990.04.29)

 

19 아버님이 소련의 고르바초프를 한순간에 만난 것이 아닙니다. 안 만날 수 없게끔 만들어서 만났습니다. 그 부인까지 만나고 그 휘하의 중요한 사람들을 전부 만나고 왔습니다. 12년 전부터 그것을 계획했습니다. 저들은 소련 위성국가들을 계몽한 사람이 아버님이라는 것을 압니다. 소련 공산주의가 아버님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1988년에 고르바초프가 미에 왔을 때 국회에서 연설하게 된 것을 누가 쫓아 버렸습니까? 아버님 배후에서 워싱턴타임스를 통해서 쫓아 버렸습니다. 2년 전에 그랬는데, 그 사람이 아버님을 자기 안방에까지 친절히 모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이제는 아버님이 가만히 있어도 소련이 아버님을 따라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련정부의 중요한 간부 200명을 미국에 데려와서 교육할 것을 계획하고 왔습니다. 유명한 교수들, 경제학 박사들을 데려다가 프로그램을 짜서 가르치기로 약속하고 왔습니다. (201-220, 1990.04.19)

 

20 내가 모스크바에서 비행기가 이륙하기 15분 전에 고르바초프가 보낸 문교부 장관을 만났습니다. 그가 아버님에게 ‘당신이 공산주의를 멸망시키기 위한 선도적인 입장에서 투쟁역사를 남겼는데 종교인이라면 망하는 것을 보고 좋아할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공산주의가 살 길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틀림없이 신을 재숭배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돕기 위해서 소련의 지도자 3천500명을 4천 명 가까이를 미국에 데려다가 몇 개월 동안 교육한 것입니다. 세상에 때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CIA는 아버님이 공산주의자들을 미국에 데려와 교육을 해서 전파한다고 야단했지만 결국 아버님을 믿었습니다. 소련을 요리하고 미국에 선도적으로 지도한 실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반대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KGB의 부위원장까지 와서 교육받고 돌아갔습니다. 야당 당수도 왔습니다. 그러다가 고르바초프 정부 때 3일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3천 명의 대학생들이 탱크 앞에 드러누워서 동원된 쿠데타군을 막았습니다. 그 후에 소련 문교부 장관이 아버님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러한 역사를 거쳐 온 것입니다. 그 배후에 얼마나 고충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393-012, 2002.09.26)

 

21 1990년 12월 13일에는 소련과 그 위성국가의 당수들 58명이 미국에 왔다가 갔습니다. 소련과 위성국가는 서로 원수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교육받고 나서는 서로 완전히 하나되어 문 파티 클럽, 문당(文黨)을 만들어 놓고 돌아갔습니다. 유럽의 위성국가들을 소련과 합하게 하고 공산권을 합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버님의 사상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클럽을 만들어 위성국가들이 연합전선을 펴서 세계적으로 아버님의 사상을 중심삼고 국책, 국가의 시정방침을 취해 나갈 수 있도록 선포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213-103, 1991.01.16) p. 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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