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 문선명 한학자 총재

제11장 제2장 1절 참부모님 성혼과 어린양 혼인잔치

작성일 작성자 하동

 

제2장 참부모님 성혼과 참부모시대

1절 참부모님 성혼과 어린양 혼인잔치

 

성혼식과 어린양 혼인잔치

요한계시록 19장에 예언된 어린양 혼인잔치는 참부모님 양위분의 성혼식으로 실현되었다. 창세기에서 잃어버린 아담 해와를 요한계시록에 가서 찾아 맞추는 것이다. 양위분의 성혼식은 인류역사 종말시대에 제3차 아담으로 온 재림메시아가 그 배필이자 제3차 해와인 성신실체를 신부로 맞아서 하나님께서 참된 인류시조 부부로 축복해 주시는 예식이었다. 잘못 태어난 인류는 거듭나야 하기 때문에 참부모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담과 해와가 성장기간 중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하여 거짓부모로 떨어지고, 예수님마저 이스라엘 선민에게 불신을 당하여 십자가를 지시게 된 모든 것을 탕감복귀한 자리에서 참부모님의 성혼식이 거행된 것이다. (p. 67)

 

1 본래 인간시조는 선한 부모로서 출발해야 했는데 악한 부모로 출발했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악한 부모의 혈통을 이어받고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몽땅 내 사랑과 같이 받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어서 하나님의 직계 사랑을 통한 혈족으로서 남아진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래의 그 자체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랑 신부를 맞이하는 어린양잔치입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신랑으로 와서 하나의 신부를 찾아서 한 기준 위에 접붙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가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그 기준을 설정하여 확고한 목적을 세운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세계가 기독교문화권 내에서 발전하는 것입니다. 참된 부모를 맞이하려면 그렇게 발전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종교는 참된 아들 하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아들 하나를 찾기 위해 지금까지 수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도주들 가운데는 여자가 없습니다. (041-028, 1971.02.12) p. 67

2 수많은 종교 경서 중에 성경이 위대한 것은 하나님이 인류의 부모라고 들고 나온 사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사상의 원천입니다. 그다음에는 예수님은 독생자라고 한 것입니다. 독생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처음 받을 수 있는 아들입니다. 그다음에 기독교 사상은 신부 사상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독생자이지만 신랑으로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가 필요한 것입니다. 독생자가 있으니 독생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는 남자와 여자입니다. 신랑 신부는 남자와 여자입니다. 신랑 신부의 잔칫날이란 비로소 하나님이 사랑의 깃발을 들고 나오는 날입니다. 그런 혼인잔치 석상이 에덴동산에서 바라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깨져 나갔으니 인류세계의 종말에서 이 혼인잔치 석상을 다시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135-125, 1985.10.04) p. 68

 

3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 아버지다.’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에 나는 독생자다.’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는 첫사랑을 받을 수 있는 왕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중에서도 첫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독생자라는 것입니다. 첫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는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독생녀가 있어야 됩니다. 신랑은 독생자이고 신부는 독생녀입니다. 결혼식을 해야 됩니다. 그것이 어린양잔치를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양잔치를 하게 되면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이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것은 인류를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독생자와 독생녀로 삼아 하나님이 진짜 사랑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160-272, 1969.05.17.)

 

4 성경을 보면 끝날에는 메시아가 와서 어린양잔치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린양잔치는 하나님의 혈통의 인연을 중심삼고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류의 참부모로서 나타났다면 사탄은 있을 수 없습니다. 혈연적 관계를 중심삼고 그 혈통을 묶어 주는 것이 어머니 아버지, 남자 여자, 성상 형상의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동기로 하여 생명을 움직여서 사랑생명혈통이 하나되어 소용돌이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 여자와 남자의 주인이 바뀌어 둘 다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된 자리에서 생명의 씨, 후손이 연결됩니다. 그것이 창조이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다 깨져 나갔습니다. 그런 것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만물을 대신해서 찾고 인간을 대신해서 찾고 부모를 대신해서 찾아야 됩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의 골자입니다. (325-131, 2000.06.30.)

 

5 재림주님이 오셔서 혼인잔치를 한다고 했습니다. 혼인잔치, 즉 어린양잔치를 하려면 예수님을 중심삼은 신부가 있어야 됩니다. 그 신부가 타락하기 전 아담 앞에 있었던 해와입. 예수님은 2차 아담이고, 오시는 재림주님은 3차 아담입니다. 그래서 3차 아담이 타락하기 전 아담처럼 와서 타락하기 전의 해와를 찾아서 어린양잔치를 해야 됩니다. 결혼함으로써 인류의 부모가 되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타락함으로써 악한 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타가하기 전의 선한 부모를 만나게 되면 복귀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선한 부모가 있어야 합니다. 어린양잔치를 하는 것은 선한 부모로 등극하기 위해서입니다. (036-264, 1970.12.06) p.69

6 인간은 본래 타락하지 않고 때와 환경을 갖추어 하나님의 축복을 이룬 참조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 되고 타락한 조상이 되었으니 만민 앞에 타락하지 아니한 선의 조상이 등장해야 됩니다. 그는 하늘에 가 있는 영인들에게도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한 분을 기독교에서는 재림 예수라고 합니다. 어린양잔치는 재림 예수가 아버지로 오셔서 어머니를 세우는 잔치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바로 그것입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예수님이요 예수님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성경의 중심도 사랑입니다. 사랑의 중심은 신랑 신부요 신랑 신부의 중심은 어린양잔치입니다. 이 어린양잔치의 중심 뜻은 본래 하나님이 허락한 때와 환경을 갖추어서 하늘과 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참다운 인간 조상으로서 축복받는 것입니다. (009-254, 1960.06.05.)

 

7 하나님은 잃어버린 아담 해와의 대신 존재를 찾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후아담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담을 생명나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잃어버린 생명나무 대신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명을 완결짓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 아들이 기뻐할 수 있는 한 날을 못 가졌기 때문에 재림이라는 명사를 남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는 한 시간, 6천년 원한의 심정을 터놓고 하나님과 혹은 앞으로 오시는 주님과 아들딸의 인연을 맺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만일 죽지 않았으면 예수님이 독생자라 하였으니 하나님은 그 앞에 독생녀도 보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2천년 역사는 신부를 찾는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참다운 아들의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참다운 딸의 모습이 없으니 하나님의 뜻을 못 이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 기독교 역사는 딸을 찾는 역사입니다. 성신은 하나님 딸로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해원하는 그날이 어린양잔칫날입니다. (007-303, 1959.10.11) p. 70

 

8 지금까지 종교는 이상적인 하나의 남자와 이상적인 하나의 여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은 몽땅 내 사랑이다.’고 할 수 있는 하나의 남자와 하나의 여자를 찾아온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신랑 신부라고 하는 것은 곧 세계를 총망라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독생자와 독생녀를 찾기 위한 내용을 말합니다. 완성된 남자와 여자가 이 땅 위에서 만나 혼인잔치를 치러야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시는 재림주님은 신부를 찾아서 어린양잔치를 해야 됩니다. (041-027, 1971.02.12.)

 

9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원죄 없는 아들딸을 낳아 그냥 그대로 천국에 갈 수 있는 가정을 가졌을 것입니다. 거기에 선 부모는 참된 부모입니다. 또 그 가정은 하나님과 하나된 가정입니다. 그 아들딸은 하나님 가정의 후손입니다. 이러한 뜻을 창세기에서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 와서 신랑 신부의 이름을 세워서 이루자는 것입니다. 신랑은 완전한 참아버지로 오시는 분입니다. 신부는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참어머니로 등장하는 분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했을 것인데 타락함으로써 사탄을 중심삼고 결혼식을 해 버렸으니, 그것을 다시 찾아 비로소 하나님을 중심삼고 성례식을 이룬다는 것이 요한계시록에 있는 어린양잔치라는 말입니다. (053-037, 1972.02.06.)

 

10 천지가 생겨난 후 처음으로 인간이 하나님 앞에 효자 효녀가 되어 신랑 신부로 등장하는 날, 하나님이 땅위의 갖은 역경 가운데서도 하늘의 심정을 찾고 하늘부모를 찾아오기에 얼마나 수고했느냐!’라고 하시며 무형의 하나님 대신 실체를 갖춘 참부모로 축복해 주는 잔치가 어린양잔치입니다. 참신부의 약속과 이념을 갖춘 기준과 참효자참효녀의 기준 위에 세워 식을 올리는 것이 어린양 잔치입니다. 이 축복을 받은 그날부터 참부모가 됩니다. 무형의 하나님을 대신한 유형의 실체를 쓴 인류의 참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선한 세계에서 잘 자라다가 하나님의 사랑의 축복을 받아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너희는 내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효자 효녀다.’고 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완결지어야 됩니다. 심정이 통하지 않으면 효자 효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노정을 걸어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창조이념 앞에 내세울 수 있는 본연의 아담 해와의 형태를 갖추어야만 됩니다. 어린양잔치는 바로 그 형태를 갖추는 식입니다. (009-107, 1960.04.24.) p.71

 

11 어린양잔칫날은 6천년 전에 잃어버렸던 참부모를 모셔 놓고 잔치하는 날입니다. 본래 타락하지 아니한 인간은 자식 된 자리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잔치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부모가 나중에 왔기 때문에 거꾸로 된 것입니다. 참부모를 모시고 참자녀를 낳아 새로운 세계를 건설해야 될 텐데 타락한 인간이 번식되다 보니 거꾸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의 소원은 참부모를 만나는 것입니다. 거꾸로 된 것을 반대로 다시 찾아가야 됩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입니다. 따라서 거꾸로 태어난 인간은 전부 반대로 가야 합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반대의 길로 가야 됩니다. (019-203, 1968.01.07.)

 

12 예수님은 신부를 찾는 것이 일대에 이루어야 할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명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최후의 유언을 남기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2 이스라엘권 내에 있는 세계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제일 잘 믿는 신도들을 중심으로 특등 신부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신부를 찾아 나온 것이 예수님 이후의 2천년 역사입니다. 신부를 찾음으로써 참다운 조상이 나오고, 참조상이 나옴으로써 참부모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본래 에덴동산에서 참조상인 참부모가 생겨났어야 되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6천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재림시대를 중심삼고 참조상을 찾아 놓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세계 앞에 승리한 하나의 남자가 생겨나서 하나의 해와를 재창조한 기준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성혼식을 함으로써 비로소 6천년 전에 인류의 참조상이 세워졌어야 할 기준을 복귀한 것입니다. 수많은 타락의 자식들이 번식된 6천년 만에야 거꾸로 참부모가 생겨난 것입니다. (019-163, 1968.01.01)

 

참부모님 성혼식은 구원섭리사의 전환점

1960411일에 거행된 참부모님 양위분의 성혼식은 탕감복귀역사에서 장성기 완성급의 탕감고개를 넘어서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참부모님의 성혼식은 세계적이고 천주사적인 사건이다. 기나긴 섭리사의 기반 위에 완성한 아담으로 오신 참아버님은 지상에서의 섭리기반을 닦으신 뒤 해와인 참어머님을 맞이하셨다. 하늘 대신인 참아버님, 땅 대신인 참어머님께서 하나되어 갈라진 하늘과 땅을 비로소 연결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여 서로 원수가 되고 하나님과 단절되게 했던 담이 무너지게 되는 구원섭리사의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p. 72)

 

13 역사는 1960년대부터 대변천시대로 들어갔다.’고 역사가들은 말합니다. 통일원리를 중심삼고 말한다면 ‘1960년대에 하나님의 이름을 중심삼고 지상이 모든 어려움을 헤치고, 기독교문화권이 모든 것에 실패하고 그 기지가 될 수 있는 한국이 반대하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비로소 이 땅 위에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이름을 중심삼고 성혼식을 한 거기에서부터 역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변하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변화하는 그 역사의 환경이 사망세계로 점점 떨어져 내려가 인류가 분열되어서 파탄의 세계로 가는 것 같지만, 변화하는 역사시대는 점점 서로 다른 지역적 환경을 넘어서 세계로 가는 시대로 급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부모님의 혈족을 중심삼고 횡적으로 확대해야 될 섭리시대를 맞이하여 사상의 혼란이 오고 전통의 혼란이 일어납니다.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기독교도 전부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 후 14년이 될 때까지 한국 기독교 자체로 보면 재건교회나 신사참배를 한 교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거기에서부터 한국을 중심삼고 세계를 향하여 도약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섭리의 길이 트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시발점이 바로 19604월의 성혼식이었습니다. 이 성혼식을 하고 부모의 날이 설정됨으로써 비로소 인류역사에 있어서 거짓 부모로부터 더럽혀진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이어받았던 것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중심삼은 본연의 새로운 사랑과 생명과 혈통의 인연이 이 지상에 뿌리를 박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지금까지 타락된 천사장의 핏줄을 이어 왔지만 1960년대에 부모님이 생겨난 그날부터는 본연의 아담 해와의 핏줄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뿌리를 박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96-218, 1990.01.01) p. 72

 

14 복귀섭리에 있어서 최고점, 정점은 1960년이었습니다. 그때 아버님은 국가와 국민, 모든 교회, 그리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통일교회가 살아남느냐 망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그 어려움을 뚫고 나가면서 성혼식을 거행습니다. 그 시점에서 새 역사가 출발하였습니다. 그때는 역사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도 1960년은 역사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052-068, 1971.12.22) p. 73

 

15 부모님이 성혼한 1960411, 그날은 외적으로 보면 평범한 날이지 별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성혼식을 한 것이 다른 날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혼식을 했기 때문에 이제 역사는 한 사람에 의해서 좌우되게 되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의 시간이 민족적이고 세계적인 인연을 갖춘 것이냐? 또 그 기간이 역사적인 인연을 거치고 시대적인 인연을 거치고 미래의 인연을 거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느냐? 나타난 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그것이 전체를 집약시킨 대표적인 핵이 될 때 역사는 그날을 연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032-069, 1970.06.21.)

 

16 인류의 조상 아담이 장성기 완성급에서 해와의 말을 들음으로써 주관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과 일치될 수 있는 완전한 인격을 갖춘, 창조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인간으로 와서 거기에 일치될 수 있는 하나의 여성을 찾아야 됩니다. 아담을 통하여 해와를 지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재창조의 순서를 거쳐 해와, 즉 신부를 세워 새로운 가정을 성립시켜야만 비로소 완성세계를 향하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때가 바로 타락한 시대의 끝날이요 새로운 시대가 출발하는 때입니다. 이때가 1960년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 참부모를 중심삼은 인연이 현현하였다는 것은 천주사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028-013, 1970.06.21.)

 

17 하나님의 목적과 창조위업은 아담 해와가 축복을 받음으로써, 즉 성혼식을 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것을 이루기 위해 역사해 나오는 복귀과정을 생각해 볼 때 인류의 조상이 타락한 것은 장성기 완성급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인류는 이것을 다시 찾아 올라가야 합니다. 소생기는 종의 시대에 해당하는 것이요, 장성기는 양자의 시대에 해당하는 것이며, 완성기는 적자의 시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의 시대인 구약시대를 거쳐서 예수님의 복음이 이 땅 위에 나타남으로써 역사는 양자의 시대권으로 넘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인류시조가 양자권인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그 아들의 외적인 형태와 인연을 갖어 다시 만들어서 장성기 완성급의 위치까지 올려놓아야 비로소 친자권을 상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인류 시조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이 장성기 완성급에 가야 복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은 가정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복귀하는 데에 있어서도 이 가정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서는 그 기준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일교회에서는 1960년에 부모님을 중심삼고 그 기준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028-012, 1970.01.01) p. 74

 

18 아버님은 개인적으로 영적인 세계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 이 땅 위에서 모진 바람에 휩쓸리면서도 죽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몇 천만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원수를 만나는 고비마다 내가 쓰러지면 안 된다. 내가 죽으면 안 된다. 내가 죽으면 이 뜻을 누가 세울 것이냐? 아무리 고생을 하더라도, 사지가 잘려 병신이 되어 누워 사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죽어서는 안 되겠다.’고 얼마나 마음속으로 다짐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하면서 지금까지 어려운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기반을 닦기 전에 이름이 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사탄의 공격이 있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죽지 않고 40고개를 넘어갈 날을 고대하며 세월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말없이 바랐습니다. 아브라함이 복귀의 기준을 세운 이후의 4천년 역사를 끝날에 40수를 세워서 넘어가야 함을 알고 40고개가 어서 넘어가기를 손꼽아 기다린 것입니다. 또 그것은 아버님의 숙원이었습니다. 천주 앞에 일신을 세워 놓고 죽지 않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013-039, 1963.10.16.)

 

19 하나님은 예수님을 4천년 만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랜 역사를 거쳐서 오신 분입니다. 태어나기야 어머니 뱃속을 통해서 10개월 만에 태어났겠지만 땅 위에 오시기 위해서 4천년 전부터 준비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 인연을 지니고 나타났기 때문에 그때까지의 4천년 역사를 탕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0세 때에 예수님이 그런 역사적인 탕감을 했어야 되는데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인해 그것을 하지 못했으므로 우리가 7년노정에서 탕감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40일 복귀란 말을 배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40세 고비를 넘지 못하였으므로 우리에게 40대 고개를 바라보고 가야 할 노정이 남아 있습니다. 즉 그러한 탕감노정이 남아 있기에 다시 오시는 주님 7년 대환란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원리적 근거가 있습니다. (019-150, 1968.01.01) p. 75

 

20 1960년의 40고개를 어떻게 넘느냐? 원리가 가르쳐 주는 40고개를 어떻게 넘어야 하느냐? 예수님은 33세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이후 40고개가 되는 7년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세상에 7년 대환란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고개를 어떻게 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야곱이 거쳐 나간 복귀노정과 수많은 선조들의 엉클어진 탕감의 노정을 거슬러 올라가야 됩니다. 그 길에는 친구도 없고 동료도 없었습니다. 따르겠다고 하던 사람들은 가는 길 앞에 짐이 되었고 가시를 박아 놓았으며 돌짝밭을 만들어 놓았지 거기에서 도움이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019-111, 1967.12.31.)

 

21 아버님 일대를 보면 40세까지는 개인 승리의 기준을 중심삼고 비로소 횡적인 기반으로 넘어가는 때였습니다. 지금까지 복귀역사의 목적이 아담 하나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1960년대는 아담을 중심삼고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때였습니다. 그 승리는 예수님이 실패했던 국가기준에서의 승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1960년대의 통일교회는 예수님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권을 아버님의 나이 만 40세를 기준 삼고 실체적으로 탕감해 넘어가야 했습니다. 그런 과정에 있던 통일교회는 1960년대에 대단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아버님이 용기가 없어서 하나님 앞에 인간으로서 선악을 분별한다는 결정적인 선서를 하지 못했다면 역사는 지연되었을 것입니다. (075-010, 1975.01.01.)

 

22 부모님의 성혼식은 지상에 있어서 기념할 만한 천주적 대사건이었습니다. 세계적 기준에 있어서 종적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이 지상에서 해결하는 실체로서 영육 아울러 승리의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아버님은 성혼식 전에 예수님이 세 제자, 반역한 그 제자를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있었습니다. 성혼식의 목적이 아담 가정을 탕감하는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인간의 어버이인 아담과 해와는 부부관계에서 타락되었습니다. 타락이 부부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복귀는 한 사람으로는 안 됩니다. 남자 혼자서는 복귀되지 않습니다. 여자 혼자서도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 입장을 복귀하여 참부모의 기준을 지상에서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세 제자의 약혼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022-190, 1969.02.02) p. 76

 

23 복귀는 아담 가정 복귀를 목표로 해서 하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이 실수하니 그 뜻이 노아 가정으로 옮겨졌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홍수심판으로 멸하고 사탄 침입의 조건을 넘어선 가정을 세워서 섭리의 기반을 지상에 구축해 놓으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에게 옮겨지고 예수님께로 이어져서 우리 시대까지 온 것이니까 그 모든 것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담 가정을 기준으로 하여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담이 잃어버린 세 자식을 복귀하지 않고서는 참부모의 입장에 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 제자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 세 사람은 아담 해와에게 있어서 세 천사장을 상징합니다. 세 천사장이 하나되어 아담 해와에게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모시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타락세계가 되었기 때문에 완성된 부모의 경지에 서기 위해서는 세 천사장격인 세 제자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재리주님도 완전히 복종하는 3명의 신앙의 자녀를 갖지 않으면 참부모 입장에 설 수 없는 것이 공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기 생사의 경지를 넘어서 박해의 한 가운데도 따라가고 효도할 수 있는 3명의 제자를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버님은 그러한 세 제자를 19604월에 찾아 세웠습니다. 복귀노정은 거꾸로 찾아 올라가는 것이니까 축복은 자식의 입장에 서 있는 자가 먼저 받습니다. 가정권은 야곱의 가정이니까 12수의 기준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3인의 제자, 3인의 자식을 중심으로 하고 그와 같은 기준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022-190, 1969.02.02.)

 

24 부모님이 1960년에 성혼식을 한 후에 성염을 만들었습니다. 참부모님이 타락한 세계의 물건을 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완성한 부모가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부 불살라 버려야 됩니다. 성염을 불태우는 조건으로서 택했기 때문에 이것을 뿌림으로써 사탄세계를 청산해 버리고 하늘 편이 취할 수 있는 조건적 방편적인 물건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늘나라가 설정되면 세상 나라의 모든 골동품, 세상 나라의 모든 물건을 그대로 쓸 수 없습니다. (267-119, 1995.01.03) p.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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