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융엘, 前 튀빙겐대 교수

 
 
성경진리로 무신론자에 맞서

      

독일 신학자 에버하르트 융엘(73)은 1969년부터 튀빙겐대학 조직신학과 종교철학 교수, 그리고 동대학 해석학연구소 소장직을 겸직하다 1999년 정년퇴임했다. 이후 여러 종교재단의 교장직과 회원으로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융엘은 불트만 학파 출신이지만 칼 바르트의 사상을 가장 잘 섭렵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바르트의 신학으로부터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진리에 관심을 가지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계에 대해서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의 신학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신론을 강요하는 세대나 사람들에게 어떻게 성경의 진리를 말할 것인가'를 해명하는 일이었다.

그의 신학사상의 특징을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성서 해석학인데 이것은 그의 신학의 기초에 해당하는 것으로 말씀의 신학으로 전개된다. '말씀으로 임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더 가까이' 임하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신학의 핵심은 그리스도론으로 이어진다.

특별히 십자가 신학이 그렇다. 더욱이 니체는 십자가에서 '신의 죽음'을 보았다고 했기에 십자가 신학을 새롭게 보도록 만들었다. 융엘은 십자가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죽음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임과 동시에 죽음이 우리를 지배할 수 없음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십자가는 전통신학이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 개념으로 논쟁해 오던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삼위일체를 '대립적인 타자존재의 공동체'라 규정하게 되는데,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나타나면서 하나님과 예수가 서로 동일한 분이심을 증명하셨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신의 존재와 본질을 통일시키는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 무신론 사상들이 '신의 본질과 신의 존재를 통일할 수 있느냐'고 따지게 될 때, 전통신학은 신의 존재와 본질 사이의 일치 문제를 삼위일체론의 문제로 고민했으나, 데카르트는 "신의 존재와 본질이 일치한다고 확정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결국 인간"이라고 보아 전통신학을 거부한다. 이를 이어 받아 포이에르바흐는 신의 본질을 아예 인간의 본질로 보면서 신을 생각할 수 있는 곳에서만 인간을 생각할 수 있다고 하거나, 니체는 신의 본질이나 존재 등은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낸 사유물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만다. 사람의 생각은 신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낸 신에게 기도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도발에 대해 융엘은 십자가의 하나님은 만들어낸 사유물이 아니라 역사적 실재 사건이었고 사랑이라는 신의 속성이 십자가에서 드러났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논쟁은 신학 안에서 바르트와 브루너 사이에서 '계시신학과 자연신학'의 틀로 새롭게 전개되는데 융엘은 그의 스승인 바르트를 따라 계시신학을 옹호한다. 왜냐하면 자연신학이 그리스도교 계시의 특수성을 손상시키기 때문이고, 예수만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융엘은 또 칭의론(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이론)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으로 봤다. 칭의론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하며, 칭의론을 통해서야 인간과 교회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칭의론에 대한 논쟁 때문에 개신교와 가톨릭이 나눠졌다. 둘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과 과정에서 칭의론의 핵심을 비켜가는 식의 통일은 재고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바로 융엘이 취하는 태도이다.

독일 일간지들은 그의 정년퇴임을 소개하면서 '열린 눈을 가진 신비가'로 소개했다. 현존하는 독일 신학자 중에서 조직신학자인 그만큼 많은 설교집을 출판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결코 교회를 떠난 신학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독일이 통일 되는 기저에 교회의 기도 모임이 있었듯, 교회가 진리의 최후 보류이고 사회를 구원하는 매체여야 함을 강조한다.

 

 



-  정기철 호남신학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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