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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경 무오성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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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무오성에 관한 연구

윤동철 교수


I. 서론

복음주의 신앙운동이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몇몇 복음주의 교파들과 젊은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성경 무오성의 교리를 공개적으로 부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1970년대 이전에는 적어도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만큼은 전통적인 성경 무오성의 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Richard Quebedeaux가 [젊은 복음주의자들](The Young Evangelicals)이라는 소논문에서 피력한 바와 같이 "과거에는 복음주의자들을 구별하기가 쉬웠다. ...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며,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자신과 모순될 수도 없기 때문에 성경은 무오하다고 그들은 믿었다. ... 그러나 젊은 복음주의자들이 등장한 후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이 글은 현재 복음주의 진영내의 문제를 지적해 주고 있다. 이러한 복음주의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또 다른 성경관의 흐름을 저지하기 위하여 「국제 성경 무오성 심의회」(Internatioanl Council on Biblical Inerrancy)가 1977년 시카고에서 창설되었다.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ffer)는 이전에는 적어도 복음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성경 무오설이 지지되어 왔고, 또한 자유주의의 물결에 대하여 복음주의 자들은 하나가 되어 성경 무오설을 지키려고 노력했다고 지적하였다. "1930년대에는 성경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치 단결하여서 공동전선을 폈다. ... 필립 하워드(Philip E. Howard, Sr.)와 찰스 트럼불(Charles G. Trumbull)이 주관하던 시절의 주일학교紙(Sunday School Times)가 그 홍수(자유주의의 물결; 역자 주)를 대항하던 언론의 좋은 예이다. 보수적 교단의 실무자들 속에서와 신학교들 속에서 급격히 성장하는 자유주의에 가장 완강히 저항했던 대표적인 학자는 그레샴 메이첸(J. Gresham Machen)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찰스 브릭스(Charles A. Briggs)가 구 프린스톤 학자들의 영감 무오설에 비판을 가한 것을 시작으로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근본주의 신학을 수호하는 메이첸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구 프린스톤의 근본주의 신학을 복원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풀러 신학교가 1947년에 세워졌고, 성경 무오설 그 신앙의 근거를 둔다는 신앙 고백문이 교수들에 의해서 작성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교수들과 이사들 중에 성경 무오설(inerrancy)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결국 풀러 신학교는 몇 년이 지나자 신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성경의 무오성 보다는 무류성(infallibility)을 주장하는 새로운 신앙 고백문을 채택하기에 이르렀고, 이사회는 그 내용을 공식적으로 선포했으며 소책자로 출판하였다.
이처럼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복음주의 안에서조차 성경 무오설이 위협을 받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제임스 보이스(James Voice)는 "많은 복음주의 학자들이 성경 기록에 관한 부정적 비판 이론과 계시에 대한 신정통주의의 접근 방식을 수락함으로써, 복음주의를 자기들의 생각대로 재정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러한 보이스의 설명은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필자는 신정통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성경 무오성을 방어하려는 근본주의와 바르트를 중심으로 한 신정통주의를 따르지는 않았지만 호의를 지니고 있던 몇몇 신복음주의자들을 이 소논문에서 언급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근본주의와 신근본주의 혹은 신복음주의로 불리우는 복음주의 집단 내의 논쟁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무오성의 실제적인 논점은 신정통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무오성(inerrancy)과 불오성(infallibility)의 논쟁이었다. 비록 불오성을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몇몇 학자들이 신정통주의의 영향을 받아다 할지라도 신복음주의자들을 모두 그렇게 규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필자는 이 소논문을 진행함에 있어서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의 "성경 무오성(infallibility)에 대한 논쟁"을 풀러 신학교와 국제 성경 무오협의회를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지면의 제한 때문에 성경의 자증적 증거와 신학적 인식론적 접근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한다.

II. 풀러 신학교의 무오성 논쟁
메이첸이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논쟁 끝에 급기야 프린스톤 신학교를 떠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우고 구 프린스톤의 전통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 때 찰스 풀러와 몇몇 사람들이 구 프린스톤 신학의 영감 무오설이 바르게 교육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풀러 신학교를 세웠다. 이러한 이유로 풀러는 문을 열 당시에 모든 교육 과정을 통해서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성경의 무오성을 신학적으로 교육시킨다는 점에서 이의가 없었다. 풀러 신학교가 문을 열었을 때 교수단은 윌버 스미스(Wilbur Moorehead Smith), 에베레트 해리슨(Everett F. Harrison), 칼 헨리(Carl F. H. Henry) 그리고 해롤드 린젤(Harold Lindsell) 등 모두가 성경 무오설을 주장하는 복음주의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린젤은 "풀러 신학교의 신앙고백은 성경은 구원에 관계된 진리들뿐만 아니라 사실, 과학, 역사, 연대기적인 기록들에 있어서도 아무런 오류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얼마 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하바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에드워드 카넬이 그곳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초기에 그는 핫지와 워필드의 견해에 충실했다. 카넬은 "성경 자체의 확실한 증거에 따르면 성경은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객관적으로 온전하게 영감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성경 전반에 걸쳐 오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성경에 설명되지 않은 불일치가 다소 있다고 하는 풀러 신학교 교수들의 의견을 받아들였으나 그것이 성경 전체의 완전성과 비교할 때에 사소한 것이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핫지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것은 우리의 이해에 있어서 문제이지 결코 원본에 있어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풀러 신학교에서 성경 무오설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게 된 것은 프린스톤 신학교의 방문 교수로 있던 벨라 밧사디가 풀러로 옮겨오면서 시작되었다. 그 때까지 풀러 신학교의 교수들은 "성경 원본은 온전하게 영감되었고 부분적으로나 전체적으로 오류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유지해 왔다. 그러나 벨라 밧사디(Bela Vassady)는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였다. 1948년, 이 일로 인하여 풀러 신학교는 4인--칼 헨리, 에드워드 카넬, 글리슨 아처, 벨라 밧사디--의 특별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양쪽의 입장은 좁혀지지 않았다. 밧사디가 끝까지 성경의 무오설을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다. 결국 밧사디는 자신의 성경 무오설에 동조할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풀러 신학교를 떠났다.
이때만 해도 카넬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성경의 원본을 연구하는 방법으로 저등 비평을 받아들이는 한편 고등비평설이란 성경을 인간의 작품 중 하나로 보는 세속적 역사 비평학으로 보고 거부했다. 그러나 카넬의 입장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겨났다. 처음과는 달리 그도 워필드나 핫지의 입장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을 정통신학의 한 입장으로 보았다. 오히려 그는 스코틀랜드의 신학자 제임스 오르의 입장을 더 지지하게 되었다. 즉 성경의 저자는 기록된 문서를 사용하였고 잘못된 문서를 사용하였지만 그 문서에 근거해 오류 없이 사용하였으며, 스데반의 증언에서 잘못된 인용이 그대로 오류 없이 기록되었다는 견해다. 즉, 영감이란 성서의 저자가 활용했던 자료들을 그대로 정확하게 기록했다는 사실만을 보장해줄 뿐, 그 자료들을 바로잡아 주는 일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카넬은 워필드가 스미스와 논쟁에서, 성서의 진술들의 어떤 부분에서는 오류가 없지 않으며, 오로지 그 진술들을 원자료로부터 기록해 내는 데에서만 무오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했다고 말했다. 1959년에 이르러 카넬은 정통주의 신학은 성경을 연구하는데 어떠한 비평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했다. 고등비평설도 그것이 성경의 증언, 즉 초자연적 하나님의 계시적 사건에 분명한 반대를 포함하지 않는 한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카넬이 주장한 것들 중에서 언급해야할 중요한 것은 칭의와 성화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실제적인 관계를 동반하는 것이며, 이것은 단지 신앙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바른 교리로 인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성화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좀더 바른 교리를 수용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카넬의 변화에 대하여 존 라이스가 반격을 가했다. 즉 카넬이 워필드나 핫지가 주장하는 모든 성경이 동일하게 영감되었다는 것을 반대하고 진화를 동조하고 있으며, 전천년설을 반대하고 있다는 공격이었다. 이 논쟁에 당시 풀러의 교무처장이었던 해롤드 린젤이 끼어 들었고 그는 카넬을 지지하였다. "카넬 박사는 성경의 영감설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데 그 증거로서 우리가 오류까지도 착오 없이 기록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 무오설을 극단적으로 지지하는 린젤이 유신론적 진화론을 주장하였던 카넬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나섰던 것이다.
카넬의 신복음주의적인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바르트가 시카고를 방문하였을 때였다. 많은 젊은 복음주의자들이 그의 강연을 듣고 질문을 던졌다. 카넬도 역시 바르트에게 "성경의 무오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바르트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하는 참된 그리고 적합한 도구로서 무오하다고 답변하였다. 그래서 성경은 시간에 묶인 인간들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오류가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카넬이 이러한 바르트의 입장에 대하여 비판하는 글을 "Christian Century"에 게재하였다. 즉 바르트는 주관주의의 늪에 빠져들어 복음주의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스덴은 기록에 따르면, 그는 바르트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았으며, 바르트를 비판하는 근본주의자들의 편에 서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풀러 신학교에서도 프린스톤이 겪었던 유사한 사태를 경험하게 되었다. 찰스 풀러의 아들 다니엘 풀러가 바젤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와서는 성경 무오성을 더 이상 주장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입장과 비슷한 동료들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다니엘 풀러는 친구이자 바젤의 동창생인 칼빈 스쿠노벤(Calvin Schoonhoven)이 성경 무오설(inerrancy)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풀러의 교수로 임명하였다. 또한 풀러 신학교의 교장으로 당시 근본주의(inerrancy)와는 다른 성경관(infallibility)을 가졌던 데이빗 허바드(David A. Hubbard)를 교장으로 초청하였다.
풀러에서는 이 무렵 특별한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다. 즉 "블랙 세터데이"라고 불리우는 사건이었다. 1962년 12월 1일부터 3일까지 교수들과 이사들의 "향후 10년 계획을 위한 회합"이 헌팅톤에 소재한 쉐라톤호텔에서 있었다. 12월 3일 월요일에 다니엘 풀러가 교무처장으로 선정되어 있었다. 그날 교수들 사이에 풀러 신학교에서 새로운 신앙고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을 때 해롤드 옥켕가(Ockenga)가 그곳에 도착하여 "왜 우리에게 새로운 신앙고백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다니엘 풀러는 즉시 이사진과 교수들 앞에서 "옥켕가 박사님, 성경의 원본에 설명할 수 없는 오류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원본을 손에 넣었을 때 사라질만한 그런 단순한 오류는 아닙니다." 그는 장황하게 그의 이론들을 설명하였다. 즉 성경이 무오설을 말하는 것은 "계시적인 가르침"에 해당하며 그것은 구원에 관한 문제에 제한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즉 역사적이거나 우주적인 이론들은 하나님께서 당시의 불완전한 기준들을 그 자신이 수용(accommodated)하였다는 것이다. 성경은 그러므로 부차적인 오류들을 포함하고 있으나 그것들이 하나님의 계시적 목적을 감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풀러는 워필드의 경험적 증거에 기초한 신앙은 역사적 연구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경은 실로 비계시적인 문제들에 있어서 오류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때에 에드워드 카넬이 토론에 끼어 들었다. 그는 성경의 진리에 대한 계시의 목적을 말하는 순수한 연역적 방어가 철학적 재앙이라고 확신하였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을 대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전제하에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때에 우리는 비로소 성경에 우리가 풀지 못하는 많은 문제들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카넬은 다니엘 풀러에게 "나는 당신보다 성경의 불일치에 관하여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
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이 축자적으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실제로 문제될 것은 거의 없습니다." 이때 데이비스 웨이어하우저가 다니엘 풀러의 편을 들어 가담하였다. 카넬의 편에 해롤드 린젤, 글리슨 아처 그리고 G. W. Bromiley가 합세하였다. 결국 토요일 밤은 이러한 논쟁으로 일관되었고 풀러 역사의 한 쪽을 장식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복음주의 안에서 세 가지 견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첫째는 옥켕가나 린젤과 같은 근본주의 입장에서 성경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이고, 둘째는 카넬과 같이 성경 불오성을 주장하고 비평의 적용을 받아들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다니엘 풀러와 같이 성경의 제한적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즉 성경의 무오성이란 구원에 관한 부분만이 무오하고,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오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성경 무오성의 입장이 점차 약화됨에 따라 교수들의 잇따른 사직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미 찰스 우드브리지(Charles Woodbridge)가 블랙 세터데이 이전에 학교를 떠난 상태였고, 1963년 윌버 스미스가 트리니티로 떠났으며, 다음해 해롤드 린젤이 그리고 몇 해 후 글리슨 아처가 풀러를 떠났다. 이 네 명의 교수들은 모두 성경 무오성의 문제로 인하여 풀러와 결별을 하였다고 린젤은 말하고 있다.
당시 풀러에는 성경의 무오성과 관련하여 불오성의 입장을 견지하는 폴 주웨트와 죠지 래드가 있었다. 죠지 래드는 성경을 연구함에 있어서 고등비평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신앙과 행동에 관계되는 요소들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고 사실에 관련된 기록들까지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신뢰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 나는 독자 여러분들이 비평가들의 견해들로부터 하나님 말씀의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역사와 비평의 모든 문제들에 있어서 오류가 없는 확실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린젤은 래드가 제시한 비평적 방법이 전적으로 파괴적인 복음주의 신학이라고 거부하였다. 또한 이러한 비평설을 지지하는 래드의 입장에 대하여, 린젤은 그가 성경의 제한된 무오성을 믿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래드의 입장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모이제스 실바는 오히려 워필드의 전통에 서 있다고 주장하며 린젤의 태도에 대하여 반론을 제시한다. 실바에 따르면, 래드의 이러한 입장은 "고전적 무오 교리의 바로 그 본질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린젤은 그것을 래드가 성경 무오를 버린 증거로 인용"하였다는 것이다.
죠지 래드가 성경 무오성의 입장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평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도 세속적인 비평방법이 아닌 역사적-신학적 방법론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일반 역사연구자들은 하나님의 역사의 계시적 차원을 인정하지 못하지만 신학적 비평은 이를 수용하며, 이 부분은 신학적 연구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연구가 계속되면서 그는 역사적 연구 방법 그 자체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전개하였다는 헨리의 지적은 타당한 것이다. "래드는 역사적 비평적 방법을 폐기하고, 역사적 신학적 비평주의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그도 간접적으로는 전자가 결코 복음주의의 결의를 훼손시키지 않는다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래드는 여전히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된 책이라는 입장을 지키고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칼 헨리와 해롤드 린젤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다. 풀러의 창립 멤버로서 이들은 성경의 무오성을 함께 주장하였지만 그 내용은 실상 같지 않다는 점이다. 헨리는 린젤이 무조건 판결을 내려 '역사적 비평적 방법은 항상 성서의 불오성을 부정한다'는 것과 그리고 이 방법론의 전제는 성서의 불오성의 부정에서 끝나지 않고 그 이상으로 전진하여 성서의 핵심을 파괴하며 초자연성의 부정을 내포한다고 결론 지은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는 많은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성서의 불오성과 함께 역사적 비평적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곧이어 "역사적 비평주의는 기독교의 관심사에 부적합한 것이 아닌 적절한 관계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무오의 의미를 말할 때 "무오는 통계 숫자적 보고에 있어서 현대의 공학과 같은 정밀성을 뜻하지 않으며, 측량이나 도량의 정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계보나 다른 역사적 자료에 있어서 현재의 역사 기록의 방법과 일치함이 아니며, 또한 현대의 우주적 사실을 보고하는 과학적 방법과 일치하는 일은 성서의 저자들에게서 기대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무오는 오직 비비유적 또는 비상징적 언어만이 종교의 진리를 전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서는, 예를 들어 비유, 시, 잠언 등과 같은 광범위하게 상징어가 많은 문학 형식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무오설은 신약의 인용문과 구약의 문장에 있어서 문자적 정확성이 요구된다는 것을 함유하지 않으며", "무오론은 복음주의자에게는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무오의 책이 있기 때문에 주관 체험적 그리스도 신앙이 없어도 된다는 것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헨리에 따르면, 성서의 무오성이란 적극적인 면에서 "성서의 신학적 내지는 윤리적 교훈에 해당하는 진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학적 사실에 해당"된다. 그러나 "영감에 따른 성서의 언어들은 사실상 그 문서가 출현한 사회 문화적인 환경에 속하는 언어와 낱말에 적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자적 무오는 하나님의 진리는 성서의 모든 낱말에 내재한다는 것을 함유하고 있다." 적절한 사고는 적절한 낱말에 의해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자적 무오는 원본만이 무오하다는 것을 함유한다. 그러므로 원본의 축자적 무오는 복음주의자가 현대의 역본이나 번역에 종극성을 부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단순한 의역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고, 성실하게 최선의 본문을 추구하며 존중히 여겨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헨리는 린젤이 지나치게 성경 무오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현존하는 사본의 실수조차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 대하여 "현재 무오의 역본이나 심지어 무오의 사본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면 본문 비평학은 정지되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헨리에 따르면, 사실상 현재 우리가 소유하는 번역은 결코 개정에 의한 발전의 가능이나 필요성이 요구되지 않는 높은 차원의 것이 아니고 아직까지 초기 사본들간에 있는 건전한 분석이 진행 중에 있는 것이었다. 그는 "아마도 린젤은 다만 현재 회복된 히브리어나 희랍어 본문들은 우리에게 무조건 하나님의 진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서도 본문의 변화가 의미를 바꾸어 놓지 않는다고 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불오성과 신뢰성, 가신성을 나타내는 모든 용어를 사용한다고 하는 그의 주장과 무오를 나타내는 동의어를 사용한다는 하는 주장을 분명히 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린젤이 "현존하는 사본에 대하여 원본의 무오를 주장함은 지나치다"고 평가하였다.
한편, 폴 킹 주웨트가 처음 풀러 신학교의 교수가 되었을 때 그는 철저하게 구 프린스톤-웨스트민스터 전통에 서서 신정통주의의 성경관을 거부했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 나타나는 문화적 요소들에 대하여는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주웨트는 1975년에 출판한 [남성과 여성으로서의 인간](Man As Male and Female)이라는 책에서 그의 새로운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와 에베소서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종속된 존재로서 남편에게 복종해야만 한다고 가르친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 기사와 모순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다는 바울 자신의 가르침과는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웨트의 입장을 린젤은 근본주의의 성경 무오성의 교리를 떠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는 칼 헨리도 린젤과 같은 태도를 보여주었다. "제�의 해석인 바울의 윤리적 교훈이 그가 생존한 문화적 편견에 근거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일단 성서의 오류가 주장되면 하나님의 뜻과 의지를 고정된 그리고 규정된 성서의 내용과 상관 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준다"고 말하며 주웨트는 "문화적 영향이 있는 것과 문화적 영향이 없는 교훈 사이에 아무런 구분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해석자는 현대의 지성을 무오적 권위 그리고 개정이 필요없는 결정적인 것으로 높이는 경향이 있어서 더욱 용이하게 성서적 교리를 문화적으로 조건지어진 것이라고 가정하고 만다"고 지적하였다. 헨리가 문화적 영향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영향이 있는 것과 문화적 영향이 없는 교훈 사이의 구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문화적 편견주의로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풀러 신학교는 성경의 무오성으로부터 불오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신앙고백을 채택하게 되었다. "성경은 신적인 계시의 기본적인 부분이며 신뢰할 가치가 있는 기록이다. 신·구약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책들은 신적인 영감에 의해 주어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앙과 행동의 유일하게 무오한 규범이다." 이것은 첫 번째 신앙고백인 "성경은 전체적으로도 오류가 없으며 부분적으로도 오류가 없다"는 내용과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신앙과 행동의 유일하게 무오한 규범"이라는 것이다.
풀러 신학교 안에서의 이러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을 때, 휘튼 대학의 케네쓰 켄저가 시카고에 소재한 트리니티 신학교의 교무처장으로 초청을 받게 되었다. 그는 당시 풀러에 있던 윌버 스미스에게 트리니티로 와 줄 것을 요청하였다. 칸쩌가 트리니트 신학교에 초청을 받기 전 풀러 신학교의 여름학기 강사로 초청되어 그곳에서 글리슨 아처, 골든 클라크, 그리고 올리버 부스웰과 함께 성경 무오성에 관하여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칸쩌는 풀러의 이러한 전통을 트리니티 신학교에 그대로 옮겨가기를 원했다. 초기 풀러의 전통이 이제 트리니티 신학교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성경 무오성에 관한 논쟁이 복음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 계속되었다. 1973년 도날드 블로쉬는 "복음주의의 문예부흥"이라는 말을 하였고 다음해에 퀘베둑스는 "복음주의자들의 새로운 세대의 출현 이야기"를 언급하였다. 그는 빌리 그래함 목사의 복음주의 운동과 연결된 "신복음주의"와 풀러 신학교에서 진행되는 교수와 학생들 사이의 공개적인 토론을 통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젊은 복음주의자"를 구분하였다. 그러나 해롤드 린젤과 그의 지지자들은 풀러 신학교에 의해 진행된 이러한 운동이 복음주의의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단호히 주장했다. 결국 풀러에서 시작한 내적인 논쟁은 이제 전 교단적으로 확장되었다.

III. 풀러 밖의 상황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이 풀러 신학교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미조리 루터교회에서도 성경 무오에 관한 논쟁이 일어났다. 크리스찬 센추리(Christian Century)의 부편집장인 말틴 마티(Martin E. Marty)는 "Lutheranism, a Restatement in Question and Answer Form"이라는 소책자를 출판하였다. 여기서 그는 루터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에 대한 견해를 말하고 있다. "루터주의자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것이며,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한 성경 기자들의 개성이나 독특한 문체에 구애됨이 없이 자신의 진리를 특별한 방법으로 전해주셨다고 믿는다. 또 루터주의자들은 성경을, 신자들은 결코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는 절대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루터주의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지리, 역사, 과학 등의 문제에 관해서 말할 때조차도 아무런 오류를 범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루터주의자들은 성경은 세부에 이르기까지 오류가 없고 정확하기 때문에 성경을 믿는다고 말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믿으며 성경은 신앙과 소망을 준다는 점에서 권위가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마티의 주장에 대하여 헨리는 그가 제언적 무오성을 탈취하여 경험적 관계성으로 연관짓고 있다고 평하였다. 즉 "그가 선택적으로는 성서의 요소에 관하여 변호하고 있으나 성서의 역사적 내지 과학적 국면을 변호하지 않으며, 또한 성서의 신학적 내지 윤리적 내용을 객관적 진리로 변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글은 1970년대 루터교회에서도 무오성에 관한 두 가지 견해가 상충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조리 루터교회 내에 이와 같은 견해를 지닌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는 폴 브리쳐(Paul G. Bretscher)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용어를 "죄인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성령의 선포"라고 주장하였다. 브리쳐에 따르면 성경 전체가 복음이 아니며,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용어를 복음에 국한시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을 복음의 테두리 안에서만 인정하였다.
루터교회에 속한 컨콜디아 신학교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논쟁은 풀러 신학교에서 래드와 린젤의 논쟁을 회상시킨다. 컨콜디아 신학교의 교장이었던 티젠(Tietjen)은 "역사적-비평적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학부 과정에서 주경신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티젠의 입장에 따르는 많은 교수들이 컨콜디아 신학교에 함께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1969년 프리우스(J. A. O. Preus) 미조리 루터교회의 총회장이 되면서 컨콜디아 신학교에 제재를 가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티젠과 그의 지지자들은 세미넥스(Seminex)를 설립하였고 새로운 신학교를 중심으로 교단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침례교회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났다. 1971년 남침례교의 주일학교 잡지 "아웃리치"의 출판 편집 주간인 하워드 콜슨(Howard P. Colson)이 "아무런 오류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진리"라는 제목 하에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성경은 과학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완전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말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영적인 진리에는 오류가 없다는 의미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복음주의의 소장 학자들에게 옮겨갔다. 당시 복음주의 신학회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뚜렸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복음주의 신학회는 1949년에 창립되었고, "성경은 전체적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의 원본에는 오류가 없다"는 신조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성경 기자의 계시적인 의도를 직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지 않는 천문학, 지리학, 지질학 등에 관한 성경 기자들의 진술은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기록으로는 오류가 없다고 말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의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그 때를 전후해서 개최된 "웬함 대회"(the Wenham Conference)에서였다. 그 대회에서 51명의 성경 신학자들이 성경의 영감과 권위의 문제를 놓고 열흘 동안 논쟁을 벌였다. 웬함 대회는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도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상당한 견해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1976년 "Christianity Today" 편집장이었던 해롤드 린젤은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성경의 무오성에 관한 이러한 논쟁들을 범교단적 문제로 부각시켰다. 그의 저서 [성경에 관한 논쟁]에서 무오성을 거부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복음주의자가로서 자격이 없다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린젤의 주장에 대항하여 잭 로저스와 그의 제자 도날드 맥킴은 무오성에 공격을 가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무오성의 교리는 17세기 개신교 스콜라주의(Protestant Scholasticism)가 주장했던 것을 19세기초에 이르러 구 프린스톤 학파가 정통주의와 잘못 연결함으로써 빗어낸 결과라는 것이다. 그들은 무오성이 역사적으로 어거스틴이나 칼빈의 가르침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클라크 피녹크는 조명이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성서의 가르침이 참이라는 것을 인간이 인지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성령의 특수 행위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즉 "성령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성서는 효율적인 계시의 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본문은 계시를 동반하는 유일한 매체로서, 성령이 효과적으로 일하는 곳에서 증명되는 복음에까지 확장된다고 말한 데 이어 "성서가 가르치는 것은 모두가 성령이 가르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도날드 블레쉬(Donald Bloesch)는 피녹크와 유사한 입장에 있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성서의 무오를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 영감을 받은 성서 저자들이 역사적 오류가 있는 자료와 시대에 뒤진 세계관을 기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실제적으로 블레쉬는 "성서 기자들은 역사나 문화 문제에 대하여 제한된 지식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신학적 내지 윤리적 이념도 제한되어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블레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아 계시와 관련이 있고 정련될 때"만 성서는 무오의 권위와 힘을 가진다고 언급하며 "성서가 교훈하려는 한 목적 즉,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있어서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성서의 많은 명제들에 관하여 이성이 이해할 수 있다고 동의하면서도, 이성은 "계시의 진리"로서 "하나님이 친히 주시는 것인 계시 혹은 보다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하면, 이성은 계시가 우리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지적 형식이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증거를 떠나서는 계시의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성령의 조명을 입은 후에도 신앙의 중심적인 비밀들은 그 때까지도 합리적인 이해를 벗어나기에 부분적으로만 이해될 뿐이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객관적 진리는 이성의 안목으로는 숨겨져 있으나 성서 안에 담겨 있거나 숨겨져 있다가 우리가 결단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그 의미를 전하여 준다고 주장하였다.

IV. 국제 성경 무오협회(ICBI)의 출현
이러한 젊은 복음주의자들의 운동과 복음주의자들 안에 있는 무오성에 관한 갈등과 견해 차이로 인하여 성경 무오설을 확고히 지키고자 하는 학자들이 모여 1978년 시카고 선언을 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들은 성경 무오성을 지키려는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성경은 그 전체가 언어로(verbally) 영감되었기 때문에 그 모든 가르침에 있어서 아무런 오류가 없으며(네 번째 선언)", "성경이 그 전체나 부분에 있어서 원문의 단어 자체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음을 주장(제6조)"하였다. 또한 성경은 영적, 종교적, 구속적 주제에만 국한되며, 역사적, 과학적 분야에는 해당이 안 된다는 주장을 부인하고(제12조), 성경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적응(accommodation)에 호소하거나 예수님의 인성에 수반되는 제약성에 호소함으로 거부하려는 주장을 부인하며(제15조), 무오성이 스콜라주의적 개신교에 의해 창출되었다든지 부정적인 고등비평학에 대한 반동으로 제기되었다는 주장을 부인하였다(제16조).
성경 무오성에 대한 선언과 그 조항은 해설을 통하여 다시 설명되어졌다. [창조·계시·영감]에 관한 부분에서 "하나님의 최종적이고 절정적인 말씀--세상에게 주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은 사도들과 그의 측근들에 의해 선포되고 명백하게 되었으며, 그로써 계시의 연속은 끝나고 말았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그 해석은 불오성을 주장하는 신근본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해석에 관한 몇 부분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류성·무오성·해석]: 우리는 성경은 항상 그것이 불오하고 무오하다는 근거 위에서 해석되어야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가르침을 받은 저자가 각 절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가를 결정할 때에는 인간의 소산물로서의 주장과 성격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된다. 영감시 하나님은 인간 저자의 문화와 인습을 사용하셨는데, 그 환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주권적 섭리 아래 통제 하셨으므로, 이를 달리 상상한다는 것은 오해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역사로 취급되어야 하고, 시는 시로, 과장법이나 은유법은 과장법이나 은유법으로, 일반화와 개략화는 일반화와 개략화로 취급되어야 한다. 성경 기록 당시의 문학적 관습과 우리의 문학적 관습과의 차이에도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면, 연대순대로 되지 않은 서사문이나 부정확한 인용 따위도 그 당시에는 용납되었고, 어느 누구의 기대에도 어긋나지 않는 바였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성경의 저자에게서 발견될 경우 오류라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 모종의 완벽한 정확성을 기대하지도 않고 목표로 삼지도 않는 경우에 그것을 성취하지 못했다고 해도 오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절대적으로 정확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저자가 목표한 진리를 달성하고 그 주장을 유효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무오하다. 성경의 진실성은 불규칙적인 문법이나 철자법, 자연에 관한 현상적 묘사, 거짓말의 보고(예; 사탄의 거짓말), 한 구절과 다른 구절 사이의 부조화 등으로 인해 무효화되지 않는다. 현상에 관한 성경 자체의 가르침에 반(反)해서 소위 성경의 현상의 범위를 정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일견 모순 같이 보이는 부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문제들이 설득력 있게 해결될 경우 우리의 신앙은 격려를 받게 될 것이고, 현재로서는 설득력 있는 해결책이 없을 경우에는 그러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 되다는 하나님의 보증을 신뢰하면서, 또 언젠가는 그러한 문제들이 망상에 불과하게 되리라는 자신감을 가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본문의 전승과 번역]: 하나님께서 성경의 전승이 무오하리라고 어디에도 약속하신 적이 없으시기 때문에 최초의 원본만이 영감된 것이며 또 전승 과정에서 본문에 잠입한 우발적 실수를 발견해내기 위한 수단으로 본문 비평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 ... 마찬가지로 번역판은 완전하지도 않고 또 완전할 수도 없다. 뿐만 아니라 모든 번역판은 원본으로부터 한 단계 더 떨어져 있다. 그러나 ... 신실한 번역판은 독자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딤후3:15)를 갖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성경의 의미를 망쳐 놓지는 않는다.
이러한 시카고 선언의 내용은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한다고 해서 기계적 영감설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구 프린스톤의 핫지와 워필드가 주장하였던 유기적 영감설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좀 더 폭넓은 무오성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국제 성경 무오협회에서 후원하고 노만 가이슬러가 편집한 [성경 무오와 해석학]의 서론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가이슬러는 "이 책의 모든 저자들은 ICBI의 성경 무오관에 동의하는 자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ICBI가 그 저자들의 학설 하나 하나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위의 여러 책을 보더라도 성경 무오를 표현하는 방식이 자유로움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자유로운 표현이 근본주의 신학교 교수들 사이에서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모이세스 실바(Moises Silva)는 1988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 취임 강연에서 A. A. 핫지와 B. B. 워필드가 함께 쓴 "Inspiration"의 한 구절을 인용하였다. "각 저자의 개인적인 성벽이 자유로이 드러나는 곳이 언어적 표현이나 문학적 작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기록하는 내용 자체도 대부분 그들만의 정신적 영적 활동의 결과인 것이다... 성경의 각 저자는 각자의 지식과 정신력의 한계 그리고 각자의 능력뿐만 아니라 인격적 결함의 증거까지도 분명히 보여준다." "성경은 인간 언어로 기록되었으므로, 그 단어, 어형 변화, 구조, 관용구들은 각처에서 지울 수 없는 오류의 흔적을 갖는다. 기록 자체가 제공하는 증거는 저자들이 대체로 그들의 지식을 그 자체로 틀린 자료와 방법론에 의지하였다는 점과, 그들의 개인적 지식과 판단은 많은 경우 주춤거리거나 결함이 있으며 심지어 틀리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실바에 따르면 이러한 워필드의 견해는 역사, 자연 등등에 대한 통념을 반영하는 상투적 문구가 우발적으로 성경의 표현의 양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영감을 받았다고 해서 성경의 저자가 전지(全知)의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영감 받았다고 특정 성경 저자의 인간적 한계가 기적적으로 유보되지는 않으므로, 우리는 성경 여기 저기에서 그가 진정 유한한 인간 존재였다는 증거를 볼 수 있다"고 실바는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영감이 경이로운 것은, 성경의 신적 기원으로 말미암아 전달되는 신적 진리와 각 저자의 독특한 인간성이 더불어 보존됨이 확실하게 되었다는 바로 그 사실에 있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성령께서 저자들의 인간적 특성을 유린하지 않고 그들이 거짓이나 틀린 것이 없도록 보호하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실바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죠지 래드의 "하나님 말씀의 권위는 그것이 모든 역사와 비평의 문제에 무오하고 확실한 답변을 갖는 데에 달려 있지 않다"는 주장을 워필드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물론 웨스트민스터의 교수들이 전부 실바와 같이 신복음주의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코넬리우스 반틸은 워필드의 영감론에 충실하였고 메이첸이 성서무오설을 성육신의 교리에 연결시킨 것처럼,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였다. 핫지-워필드-메이첸으로 이어지는 구 프린스톤의 무오성에 관한 교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반틸은 마치 하나님이 성육신하셨을 때 죄성을 지니지 아니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인간을 통하여 전달되었지만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복음주의 안에서 보다 폭넓은 견해를 취하고 있는 밀라드 에릭슨은 무오를 정의함에 있어서 무오란 단순히 보도된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주장된 내용이거나 긍정하고 있는 내용에 관계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은 주장들뿐만 아니라 질문, 소원 그리고 명령들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일반적으로 무오하다거나 그렇지 않다는 진위의 판단이 내려질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진술은 오류 또는 무오의 성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주장으로 무오한 것이다. 또한 성서의 진리성을 판단하려 할 때, 그 진술들이 표현되고 있었던 문화적 상황 속에서 의미되었던 바를 기준하여 결론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무오라는 말을 할 때 두 번째로 주의해야 할 것은 성서의 주장이 그 당시의 문화의 차원에서 온전히 사실이라는 점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성서의 주장들이란 그것이 쓰여진 목적에 따라서 판단되어질 때 온전하게 사실이다. 역대하 4:1-2에서 그 목적이 그 대상의 규모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역대기 기자에 의해서 주어진 것처럼 대략적인 숫자만으로 충분한 것이며 또 충분히 사실로 판명될 수 있다. 우리는 성서에서 종종 대략적인 기록들을 발견하게 된다. 대략적인 숫자로 답하는 것은 우리 문화 속에서도 적절하게 유용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역사적 사건들과 과학적 문제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들은 현상적인 서술이지 전문적인 표현이 아니라고 에릭슨은 말한다. 성경의 기자들은 사물들이 그들의 눈에 비춰진 그대로 보도했을 뿐이며, 이것은 일반적인 서술에 있어서 정상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성서의 본문을 설명하는데 발생하는 어려움들에 대해서 에릭슨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어려운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너무 급한 해결책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모든 관련 자료들이 다 주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성경 무오협의회가 창립되고, 성명을 발표한 후에도 여전히 복음주의 내에서 무오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해롤드 린젤과 같이 성경의 오류를 방어함에 있어서 과학적으로도 오류가 없음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주장은 한가지 사실만 유보하더라도 도미노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오성을 심도있게 주장하는 자들은 성경의 불일치나 실수를 한 번 양보하면 점차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무오성을 양보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좀 더 유보적인 입장에 서 있는 학자들, 즉 신복음주의자나 젊은 복음주의자들에 속하는 학자들은 오류나 불일치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문화의 양식이 가져다주는 차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무오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클라크 H. 피노크는 그의 저서 [성서적 오류의 방어]에서 무오성(inerrancy)을 주장하는 근본주의 신학자들은 "한 곳에 실수가 있으면 전체에 실수가 있는 셈"(falsus in uns, falsus, in Oninous)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공연히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피노크는 성경에 나오는 오류를 덮어버리려고 '목적'에 대한 비법적인 정의를 채용하는 신정통주의의 성경관도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성경의 오류를 덮기 위해 원래 의미를 인위적으로 제한해서도 안되고, 임의로 확대해서 과학과 성경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들은 성경의 영감을 욕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피녹크는 "독자가 성경을 읽을 때 그것을 자연스런 의미로 해석하면 성경이 원래 가르치는 바가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Quidquid docetur a Scriptore Sacro do cetur a Spiritu Sancto" (성경이 가르치는 곳에 성령도 가르친다). "성령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성경의 사본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라도 구원을 주는 믿음을 일으키신다. ... 이 점에 있어서 성경 영감에는 불합리성과 모순이 없다"고 피노크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무오성이나 불오성을 주장하는 복음주의 진영은 새로운 적들의 출현으로 인하여 더욱 긴장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다양한 견해를 서로 묵인 또는 용납하면서 함께 상대주의, 신정통주의, 과정신학, 가톨릭 신학, 자유주의 등에 비판을 가하는 일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가이슬러의 말에서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복음주의 내에서의 논쟁이 이제는 복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방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외적인 공격들을 향하여 방어를 시작한 것이다.

V. 결론
미국에서 성경 무오성의 논쟁은 복음주의 진영과 자유진영의 논쟁보다 복음주의 안에서 근본주의와 신복음주의 사이에 논쟁이 더욱 치열하였음을 볼 수 있다. 프린스톤 신학교에서의 논쟁은 비교적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논쟁이었던 반면, 풀러 신학교에서의 논쟁은 복음주의 안에서 성경 무오성을 주장하지만 그것을 "inerrancy"의 입장에서 볼 것인가 아니면 "infallibility"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즉, 무오성의 교리를 수호하느냐 아니면 불오성의 교리를 주장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은 곧 성서 비평설의 수용인가 아니면 불허인가 하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공동의 적이 출현하였고 자유주의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서로 공동의 전선을 펼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이 시점에서 윌리암 홀던이 그의 평신도 신학에서 지적한대로 오늘날 복음주의는 고등비평설을 거부하느냐 허용하느냐의 문제에서 이것들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린젤과 래드의 입장을 지켜보던 헨리가 바른 비평은 성경의 권위를 세운다는 주장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카넬이 지적한 바와 같이 비평설의 가부를 떠나 신학자는 먼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이 올바로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복음주의도 이제 진보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보수적 복음주의 전통을 수호하는 한국의 성결교회와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는 교단들이 시대적 사명을 인식하며 함께 성경의 무오성을 지켜야 할 때이다. 또한 외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에 대하여 바른 성경관을 제시하고 그들의 공격에 방어를 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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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푸우도사 자료실~!^^ | 글쓴이 : 조광성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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