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여러 성경 책 중에서 모세오경은 특별한 위상을 점유하고 있다. 기독교의 경전은 구약과 신약이지만 유대교는 구약뿐이며, 특히 예수님 시대에 사두개파가 구약 중에서도 오경을 유일한 정경으로 받아들였다. 이 오경은 또한 정경의 맨 처음에 위치하고 있어서 다른 성경에 비해 뭔가 특별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특히 이 다섯 책 중 창세기만하더라도 기독교 핵심 교리의 보고이다(창조, 타락, 이신칭의, 세례 등). 이렇게 중요한 모세오경이라면 반드시 읽어볼만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것과 함께 참고서 격으로 바로 옆에 놓고 읽으면 좋을 책이 있다면? 내 경우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천도서는 고든 웬함의 모세오경이다. 본서는 도서출판 성서유니온선교회에서 성경이해시리즈로 번역 출간된 여섯 권의 책 중 하나이다. 본서의 저자 웬함은 브리스톨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구약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로서 모세오경의 권위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쓴 창세기와 레위기 주석은 그 분야에 가장 탁월한 주석 중 하나로서, 내가 창세기와 레위기의 특정 본문을 알고 싶을 때 반드시 참고하는 책이다. 다행히 이 두 주석은 모두 우리말로 번역 출간되어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주석가인지 여실히 확인시켜줄 것이라 확신한다. 복음주의 서클에 이런 탁월한 구약신학자가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성서유니온 선교회는 내가 20대 초에 성경신학을 처음 알아갈 때 읽었던 네 권으로 된 골즈워디 복음시리즈”, 그리고 스튜어트(Stuart)와 피(Fee)가 쉽고 재치 있게 쓴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역간한 출판사여서 내게는 참 정겹고 고맙게 느껴지는 곳이다. 최근 국내 집필진으로 구성해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는데 대부분 호평을 받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본서는 모세오경에 대해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잘 요약해서 썼다는 점과 일반 독자도 읽기 쉽게 썼다는 점(번역도 부드럽다), 그리고 최근의 학적인 성과를 비교적 공평하게 잘 소개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웬함은 고대 근동의 자료를 성경을 이해하는 데 적절히 활용하고 있으며, 문학적 (좁게 말하자면 수사학적) 성경해석 방법이 얼마나 많은 결실을 거두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들을 하나씩 살펴보기 전에 저자는 모세오경 전체를 신학적으로 어떻게 규정하는지 먼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모세오경이란?

 

(1) 모세의 전기

 

고든 웬함은 모세오경을 기본적으로 모세의 전기로 본다[23-24(이하 숫자만 기재함)]. 그래서 레위기에 나타난 모세의 핵심적 역할과 24장에서 내러티브가 나타나는 현상(135), 8-10장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가 뜻하지 않게 각장의 맨 처음에 나오는 배열방식(146), 성소의 떡에 대한 규례 후에 갑자기 부계 애굽인의 신성모독 사건이 등장하는 것(159), 레위기가 본질적으로 내러티브 작품임을 말해주는 사례라고 그가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시각 때문이다(135). 그래서 웬함은 민수기를 옛 부제대로 모세의 네 번째 책으로 칭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말한다(163).

 

(2) 창세기와 신명기

저자는 오경의 각 권을 전체적인 면에서 어떻게 볼지에 대해서도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이것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서술한 곳은 창세기와 신명기 관련 장인데 여기에서 음미할 만한 내용만 소개하겠다.

 

창세기의 80%가 아브라함과 그 가족들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을 집어내어 창세기는 이스라엘의 기원, 특히 12지파의 기원을 설명하고 있다(69). 그가 12아들에 대한 야곱의 축복을 창세기의 절정이라고 말하는 것은(96)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는 파고 들어가기’(Digging Deeper)에서 벨하우젠이 미화된 망상이라고 규정했던 족장 이야기에 대한 20세기의 구약신학계의 움직임과 존 브라이트의 입장을 긍정적으로 소개하면서, 창세기가 고대의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창세기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기록된 것을 어떤 학자들은 신학적 허구의 증거라고 보지만, 오히려 저자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저자를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난 내적 이유를 알려주는 것, 즉 성경의 영감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는 용기를 보여준다(73-74).

 

신명기를, 저자는 오경의 절정이자 결론으로서 자리매김을 한다(91). 그리고 신명기가 율법수여가 아니라 율법에 대한 설교이기 때문에(191), 그런 문학 장르의 특성상 수사가 가득하다고 말하면서 자주 등장하는 반복 또한 그런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안내한다(192).

 

2. 역사-문화적 해석의 효과

 

저자 웬함은 고대 근동의 사료를 성경과 비교 및 대조 분석하면서, 그런 방법이 아니고서는 알기 어려웠을 창세기 본문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먼저 고대문헌인 길가메시 서사시아트라하시스 서사시, 수메르 홍수 이야기, 수메르 왕 목록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후 그 옆에 창세기 기사를 나란히 놓고 성경 본문에서 부각되는 메시지를 하나씩 찾아간다.

 

고대의 다른 곳에서는 해와 달을 신으로 숭배한 것에 반하여, 하나님은 창조를 통해 그것들이 당신의 피조물일 뿐이라고 드러내주신다. 고대 자료에서는 신들이 인간 창조를 단순히 희생제사와 양식 공급의 수단으로 창조했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성경에서는 인간을 창1장의 절정으로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대표자로까지 높여준다. 홍수 이야기를 통해서는 통제할 능력이 없는 베벨론 신들에 반()해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근동의 신들은 최고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지만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으로서 절대 주권을 행사하시는 분으로 부각된다(이상 40-58).

 

그래서 저자는 창세기 본문을 전통적인 기원 이야기에 대한 독특한 신학적 해석이라고 규정할 수 있었다(40, 41). 이같은 비교 문화적 해석을 가하지 않더라도 위에서 찾아낸 메시지가 성경 본문 자체에 어느 정도 암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저자의 그런 해석을 통해 훨씬 더 선명하게 전달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본서의 장점인 것이다.

 

3. 탁월한 문학적 해석의 결실

 

(1) 수사학적 비평의 효과

 

웬함의 창세기 주석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 중 하나는 홍수 내러티브를 동심원 구조로 배열해서 이야기의 중심과 신학적 핵심을 짚어준 것이었다. 본서에서도 야곱 이야기를 그런 구조로 배치하고 본문의 핵심을 명쾌하게 짚어주었다. 두 이야기에서 원의 중심에 오는 말 또는 이야기가 홍수 이야기에서는 하나님이 기억하사이며, 야곱 기사에서는 야곱의 아들들의 출생이다. 웬함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두 이야기에서 모두 심판과 분열의 시대를 역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개입임을 보여준다”(86).

 

(2) 두 본문의 비교 대조 해석

 

저자는 그다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두 본문을 나란히 대놓고 나서 공통적인 특징이나 차이점을 잘 끄집어내는 능력이 있다. 예를 들어 요셉과 형제들 간에 이루어진 화해를, 33장에서 야곱과 에서가 불화를 끝낸 모습과 오버랩하고 있다(95). 출애굽기의 황금 송아지 숭배 이야기와 민수기의 12 정탐꾼 이야기의 공통점으로 저자는 모세의 도고가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혔다는 것과 희망적 조짐을 보여준다는 것을 들고 있다(163).

 

더 나아가 이렇게 비교와 대조를 해 나가면서 어떻게 신학적 의미까지 이끌어내는지를 보는 것도 본서를 읽는 포인트 중에 한 가지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겠다.

 

창세기 44장에서 자신의 책임을 느끼며 용서를 구하는 유다가 회개하기 전(93) 이미 다말의 간음 내러티브에서 유다가 그는 나보다 옳도다”(28:26)라고 말한 것을 첫 회개의 시작으로 저자는 보았다. 모세는 왕자 시절 때에 동족 히브리인들이 그에게 왕과 재판장 노릇을 한다며 비난한 내러티브를 앞으로 모세에게 감사는커녕 끊임없이 불평하고 반항할 이스라엘에 대한 예고편이라고 말하면서 출2:11-15의 의미를 적시해준다(104). 또한 신명기의 12-26장에서 소개된 율법이 십계명의 순서를 따른다는 것을 살펴보면서, 전자는 후자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라는 점을 가르쳐준다(205 이하).

 

(3) 큰 문맥에서 특정 본문이 가지는 의미

 

이야기의 흐름을 살펴서 본문 순서상 꽤 멀리 떨어진 둘 이상의 이야기에서 그 신학적 메시지가 어떻게 발전하고 강화되는지에 대해서도 저자는 잘 설명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여러 번 약속을 받은 경우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문맥과 상관없는 단순한 반복에 지나지 않은 것 같지만, 족장들의 순종이나 믿음의 행위가 나오고 난 후에 이런 패턴을 보인다. 웬함은 이런 점을 관찰하면서 이에 따라 그 약속의 범위가 넓어지거나 효력이 강조되어 점점 발전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한다(76, 80).

 

창조를 홍수와 비교한 것도 예로 들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이 노아를 기억하셨을 때(8:1) 창조 때처럼 바람이 불었고(1:2), 땅과 식물과 동물이 나오고 번성하기 시작했다. 아담이 땅을 경작하여 식물을 가꾼 것처럼 노아도 포도나무를 심고 수확한다(48). 아담처럼 노아도 인류의 조상처럼 서술되고, 후자가 포도주를 마신 것은 전자의 선악과 범죄와 비슷하다(62). 60쪽에서는 어떤 주제에 대해 첫 장조와 홍수 후의 새 창조를 도표화한 내용도 흥미롭다. 그래서 그는 창세기에서 여기까지 이어지는 패턴을 창조-타락-새 창조라고 짚어주면서 노아홍수의 신학적 의미를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48).

 

저자는 또한 하나님이 이스마엘의 후손들에게 주신 적은 약속을 이루신 것을 주시하면서, 이것은 이삭의 후손들에게 주신 큰 약속이 확실히 성취되는 보증 역할을 한다고 말해준다(83). 신명기 2장에서 이스라엘의 형제들인 암몬과 모압과 암몬에게 땅을 주셔서 함부로 침입하지 못하게 하신 것도 역시 이스라엘이 약속받은 땅을 받을 것임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기능을 한다고 가리킨다(198).

 

4. 눈여겨 볼만한 해석

 

위에서 다 말하지 못한 본서의 내용 중에서는 모세오경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만한 해석 내용이 많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말해보려고 한다.

 

(1) 창세기의 1-11장과 그 나머지 장의 관계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하나님께서 최초의 인간에 주신 약속을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겠다는 재확증이 바로 12-50장이라고 말한다(77).

 

(2) 저자는 십계명을 강조하면서, 이것이 단순히 고대 근동의 벌률 조항 같은 성격을 넘어 계명들에 담겨있는 법의 정신, 신학적 원리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근거로 십계명 중에서 마지막 계명, 탐내지 말라를 들었다. 일반 실정법과는 달리 그것은 마음의 숨겨진 동기까지 죄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범죄 행위의 근거요 원천이 되는 마음의 태도를 중시하신 도덕 원리를 제 10계명에서 이미 선취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119).

 

(3) 성막과 에덴동산의 유사점을 제시하면서, 그 둘을 신학적으로 연결시킨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성막의 금과 그룹, 생명나무와 제사장의 옷에 붙인 보석, 동쪽에 있는 정문 등은 모두 에덴에 대한 묘사에서 발견되는 것들로서, 이는 성막이 에덴의 동산처럼 타락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회복하고 참 교제를 나누는 곳임을 말해준다.

 

(4) 레위기를 설명하면서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나누는 원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그와 반대되는 죽음이라고 말한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그러므로 부정한 것이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없듯이 죽음과 관계된 것은 하나님 앞에 접근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하는 것이다.

 

(5) 모세가 물을 내기 위해서 바위를 두 번 친 행위가 어떻게 모세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갈 정도로 심각한 범죄가 될까? 대중적으로 알려진 대답은 모세가 성을 내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바위를 향해 명령하라고(, 말하라고) 했지만 그는 불순종하여 바위를 지팡이로 쳤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리고 나서 순종하지 않는 행위의 심각함을 그의 조카 둘이 여호와께서 명하지 않은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 죽은 것과 나란히 놓는다(176, 178).

 

(6) 저자는 또한 지금은 당연히 비인도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던 두 가지 관례에 대해 오해를 불식시키려 한다. 당시의 노예제도가 고대의 다른 지역보다 훨씬 인간적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제도 자체로도 달갑지 않게 여겼던 이유로 저자는 두 가지를 들었다. 종살이도 6년 후에는 풀려나게 제도화되어 있다는 것과, 이런 해방 규례를 고대의 다른 지역에서는 맨 뒤에 위치시켰던 반면에 출애굽기 21장은 첫 단락부터 말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122). 전쟁 역시 하나님이 그 자체로 긍정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로 저자는 역시 두 가지를 말한다. 첫째, 죽음에 접촉한 그들이 진에 다시 복귀하려면 1주일간 정하게 해야 했다. 둘째,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포도원이나 집을 새로 마련했거나 갓 결혼한 사람들, 심지어는 겁이 많은 사람도 징집면제 조건으로 삼은 것이다.(184, 210)

 

5. 최신 구약학계의 논의에 대한 소개

 

본서가 신학도들게 특별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언급하고 넘어가야할 것 같다. 본서에서는 이제까지 내가 적시했던 부분은 물론이고 구약 총론적인 내용에 대한 최근의 논의도 잘 정리했다.

 

첫 번째, 문서가설 이전과 이후에 어떤 주장과 논쟁이 벌어졌는지 시대순으로 흐름을 잡아가면서 정연하게 해설하고 요약해놓았다. 특히 20세기 끝자락의 학문계 흐름을 자세히 소개한 부분은 흥미진진한 내용으로서 꼭 읽어보아야 한다. 오경에서 발견되는 반복이 어떤 학자에게는 자료설에 대한 증거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수사학적 장치로 여겨진다고 저자는 말하면서 이런 선택은 어느 정도는 취향의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과 일반적인 고대 문서에 대한 구약학자들의 신뢰도를 놓고 볼 때 후자보다는 전자를 더 의심스러운 기록이라고 보는 관행을 저자는 꼬집고 있다.

 

8장에서 오경의 주제를 학자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정리하면서 데이빗 클라인즈의 실적을 소개한 부분이 본서에서 큰 도움이 되는 대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웬함은 클라인즈가 말하는 주제의 정의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주요 논점이라고 파악하면서, 오경의 주제를 족장들을 향한 약속이나 축복의 부분적인 성취라고 규정한 그의 말을 인용한다. 문서 가설 등의 끝도 없는 소모적 논쟁에 비해 현재의 성경 본문을 최종적 정경 형태로 보고 문학적 또는 수사학적 해석 방법으로 본문을 해석한 클라인즈의 업적은 내가 보기에 상당히 뛰어나다. 결국 성경 본문이 당시의 독자들에게 신앙적으로 요구한 것을 찾는 것이 성경 이해라고 볼 때 이에 근접하는 그의 작업성과를 그렇게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웬함은 자신의 기준대로 오경에서 모세가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를 감안해 클라인즈의 견해를 수정하여 자신의 입장을 제안한다.

 

6. 아쉬운 점

 

(1)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곳

 

이와 같은 특장점을 가진 본서는 신학자에 따라 달리 생각할 수 있는 해석 결과를 제시하기 한다. 이것은 어떤 저자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여기에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는 것도 저자의 신학적 주장이나 본문 해석 결과에 대해 균형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대표적으로 지적될 수 있는 곳은 역시 창세기 6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사람의 딸들의 결합에 관한 해석일 것이다. 웬함은 이를 천사나 악마와 같은 하늘의 영들이 여자 인간과 결혼한 것으로 풀이하여, 당시에 있었던 성창(sacred prostitution) 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주장에 대한 증거로 제시하는 것, 즉 천상 회의에 참여한 하나님의 아들들을 말해주는 욥1:6-12이나 가나안 문헌들에서 나오는 신들의 아들들이란 표현을 감안하더라도(55-56), 성창과 그 상대 남자는 극히 일부일 터인데 그들 때문에 절대 다수의 사람들도 함께 멸절 수위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은 좀체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성창의식으로 인한 다산 신앙이 당시에만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그의 이런 해석은 비교 문화적 해석이 지나치게 본문을 간섭하고 들어올 때 나타나는 결과를 보여주는 실례(實例)이다. 본문의 전후 문맥으로 볼 때 가장 적절한 해석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후손들을, “사람의 딸들은 타락한 사람들의 계열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

 

둘째, 웬함은 출애굽기 7장에서 애굽에 내린 첫 재앙을, 나일 강을 핏빛으로 변했다는 것은 강바닥이 침식되어 물이 탁해진 결과라고 해석하는 호르트의 견해를 긍정적으로 인용하고 있다(109). 그러나 본문은 물이 핏빛이 되고로 말하지 않고 물이 피로 변하고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비롯하여 각종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가 나오는 출애굽기에 굳이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해석을 가하여 본문으로부터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힘을 제거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셋째, 민수기에서 첫 인구조사 결과로 헤아린 남자 장정의 수효에 대한 언급에서도, 저자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20세 이상의 병사는 603,550명으로서 여기에 그 이하 연령과 성인 여성을 합하면 이스라엘의 총 인구를 2백만 정도로 잡아야 한다면서 이것이 불가능함을 암시한다(168-169). 그리고 아무튼 이 숫자는 단순히 땅의 티끌처럼,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의 성취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데서 그친다. 그러나 이 수효가 다른 식으로 계산되어 위의 숫자보다 훨씬 더 적은 인구가 그 결과로 제시된다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웬함의 말대로 정말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의 어마어마한 번식이 성취된 것을 그 숫자가 나타낸다면, 실제 인구를 문자 그대로의 수효보다 더 밑으로 잡는 것은 아무래도 본문의 의도를 거스르는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도 모세 이전에는 여호와가 하나님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주장도(105) 검토해볼 만하다고 생각된다. 희생제사가 환대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도 비약이라고 여겨진다(142). 왕이 예언자와 제사장과 더 가깝다는 근거로 단지 왕이 종교 경찰 역할을 했다는 것만을 든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209). 이외에도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겠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서 그치기로 한다.

 

(2) 구성상의 흠

 

본서에서는 창세기부터 출애굽기를 각 한 장씩(창세기는 두 장에 걸쳐) 그 끄트머리 부분마다 해당 본문이 신약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이 너무 간단하여 요식행위라고 지적받을만한 곳이라 생각된다. 신약에서 인용했거나 인유했던 구절을 본서에 모두 나열할 수야 없겠지만 언급한 본문이 너무 적은 것은 분명 문제로 보인다. 그나마 소개된 본문의 경우, 관련된 구약 구절이나 내러티브를 신약에서 어떻게 적용하고 변용했는지에 대해서 지나치게 설명이 간략하거나 아예 설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리즈 중 레위기에서는 인용되었거나 암시된 신약에 대한 해설이 장황하고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곳도 이끌어온 점과는 상당한 대조를 이룬다.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지만 본서에서는 같은 내용의 반복적 진술 때문에 흠으로 지적될 수 있는 곳도 있다.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서 신이 인간에게 재앙이 내린 이유를, 인구가 늘어나 인간이 신들을 괴로울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소개하는데, 이런 언급을 세 번이나 반복한다(33, 56, 58). 성경은 지성소-성소-성막 밖으로 거룩함의 순서가 정해져있다는 언급 역시 마찬가지이다(117, 127, 150). 그리고 살인이 부정함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말을 네 번씩이나 한 것은 확실히 지나쳤다(155, 169, 187, 210).

 

나가는 말

 

그러나 위에서 흠결로 지적한 점들이 본서의 공적을 가리기에는 너무 적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특히 앞에서 지적했던 해석의 차이라는 것도 책이라면 떠안고 갈 수 밖에 없는 운명 같은 어떤 것이다. 오히려 이제까지 내가 평가한 점을 두고 볼 때 모세오경의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만약 길잡이나 입문서의 역할이란 게 쓸데없는 수고나 불필요한 시간 소모를 줄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게다가 정말 쉽고 정확하게 모세오경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빛이 난다.

이제까지 본서를 읽고 생각났던 것들을 몇 가지 써봤다. 이 글을 거의 마치고 나가는 말을 쓰고 있는데 벌써 자정이 가까워간다. 다시 내가 읽은 이 책을 휘리릭 넘겨본다. 어떤 곳은 연필로, 또 어떤 곳은 볼펜으로, 중요한 곳은 깔끔하게 빨강 수성 펜으로, 더 중요한 곳은 굵직하게 형광펜으로 표시가 되어 있어서, 처음에 책장을 열 때 깨끗했던 것이 이제는 나만 알 수 있는 흔적으로 가득하다. 책은, 돈을 주고 구입하면 법적 소유권이 해당 소비자에게 돌아가지만, 이런 나만의 독서 버릇을 거쳐 머리에 담은 책이라야 비로소 진정한 내 것이 된다. 내용까지 좋은 책이라면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이렇게 오래도록 마음이 즐거운 법이다.

 

* 한글 파일의 각주는 생략하고 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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