忍 인


一勤天下無難事 일근천하무난사

百忍堂中有泰和 백인당중유태화

한결같이 부지런한 사람은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고

백번 참는 집에는 화평이 있다.  


(참을인)자 세번이면 살인을 면한다" 는 말의 유래

홍계관은 조선시대 명종때 널리 알려진 점쟁이다.

그의 점술이 너무나 신통방통하여 그의 이름을 팔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홍계관은 맹인점술가의 시조가되었다.

타고 날때부터 맹인이라 걱정을 많이 했으나,,,점술이 알려지면서 집안에 돈도 많이 들어오게되었다.

신수점(身數占)이 너무나 유명하여,,,1년의 운수 길흉화복의 판단에서 짧게는 몇년 길게는 수십년뒤의 일까지 꿰뚫어보았다.

 

한 선비가 찾아와 장차의 운수를 보니...

"장차 천하에 이름을 크게 떨칠 부귀할 상이오"

그런데"자칫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평생을 망칠 수도 있소"

 

"그렇소, 그럼 피할 방법은 무엇이요?"

"방법이 한가지 있으니...집에 가가든 보이는 곳마다 참을인 자를 많이 써붙이시오"

 

집에 돌아와서...대문에, 안방에, 마루에,부억에,기둥에.어디든 써 붙혔다,

어느날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보니...

마누라가 어느 쌍투튼 남자와 동침을 하는 것이였다.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분에 못이겨 부억으로 갔다.

식칼을 집어들고 나오는데 참을인 자를 봤다.

그래도 분에 못이겨 집어들고 나오는데 마루 기둥에 또 참을인 자를 보고 잠시 망설였으나...

칼을 들고 안방문을 열려는 순간,,,또 참을인 자를 보는 순간...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자의 의미??를 되새겨 본것이다.....

 

그때에 선비의 아내가 인기척을 듣고서,,,방문을 열며...

"여보, 죄송해요,,,먼저 자서...."

그래도 선비는 씩씩대며..."옆에 상투 튼 놈은 누구요?"

",,상투라니요?"...하면서..옆에 잠자는 이를 깨웠다...

눈을 비비며,,,"형부 오셨어요?""죄송해요" 이런 모습이라"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를 뒤로 웅켜맨채 잠들었다,,,

놀러 온 처제였다.

 

선비는 상투로 착각한 것이였다.

정말 큰일 날뻔했다....식은 땀이 등줄기에 흘러내렸다.

정신을 차리니 자 덕분에 큰 화를 면한 것이다.

선비는 홍계관의 예지력에 감탄했다.

 

훗날 정승이된 선비는 자손에게 그 애기를 전해주며...

"어떤 경우도 화 내기전에 참으며 먼저 상황을 파악하라."고 훈게했다.

이에 연유하여 참을인자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속담이 생겨났다.

 

 "다음 이야기"

홍계관의 신통력이 온 나라를 퍼져가니,,,

명종 임금 귀에도 이이야기가 전해졌다.

명종은 홍계관을 엄히 다스릴 요량으로 조정으로 불러드렸다.

"네놈이 그리 신통하다면...

바로 앞에 있는 것도 못맞추면 네놈은 참할 것이니라.

"이 상자에 뭐가 들어 있는지 말해보거라"

'네 전하, 쥐이옵니다."

그래도 임금은 꼬투리를 더 잡고싶었다....

 

그럼," 몇마리이냐?"

"세마리옵니다"

"에잇 고냔놈,쥐 한마리 든 것도 못맞추면서,,,뭘 안다고 나라안을 어지럽게하느냐?"

"저놈을 잡아다.. 목을 베거라"

그리하여 홍계관은 형장으로 끌려갔다,

그래도 혹시나하여,,,상자안을 열어봤다..

상자 안에는 암놈쥐가 새끼를 낳아,,,세마리가 들어있었다...

어이크, 생사람을 죽게 할뻔 했구나,,,급히 형장으로 사람을 보냈다...

급히 말을 달려 언덕으로 올라가며 ,,형을 멈추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형집행관리는 빨리 형을 집행하지 않는다고...재촉하는 줄 알고 급히 목을 베어버려다..

그리하여 신과도 통한다는 홍계관은 아차하는 순간에 형장의 이슬로 살아지게 되었다.

오늘날 광진구에 있는 아차산은 그산 아래 형장이 있었기에 붙혀진 이름이라 한다...

 

백인당(百忍堂)’이 있는데, 이는 참는 것이 곧 덕이요, 참음으로써 인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음의 유래를 참조해보시기 바랍니다

 

백인당(百忍堂)’은 당나라 운주() 수장(壽張) 사람 장공예(張公藝: ?~?)의 일화에서 유래한 말이다

구당서(舊唐書)』 「효우열전(孝友列傳)효우편(孝友篇)’에 따르면 

무려 9대가 한 집에서 기거하며 화목을 잃지 않아 일찌기 북제(北齊)와 수()나라 때 정려문(旌閭門: 열이 있는 집안에 나라에서 하사하는 문)을 하사 받았다고 한다.

 

어느 날 당 고종이 태산(泰山)에서 천제(天祭)를 지내고 운주를 지나는 길에 장공예의 집에 들러 그들이 화목한 비결을 물었다

공예는 대답 대신 참을 인()’ 100자를 써서 올렸다. 그리고 공예가 말하길, “집안이 화목하지 못하는 까닭은 윗사람이 의복과 음식을 분배함에 있어서 고르지 못함에 있고, 항렬이 낮은 자와 젊은이들이 무례함에 서로 책망하고 의견이 대립되어 다툼에 있음으로 참을 인()자를 마음에 새겨 서로 양보한다면 집안은 화목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고종은 측천무후(則天武后: 625~705)의 횡포로 여러 아들이 죽임을 당한 자신의 집안을 떠올리며 슬피 흐느꼈다

그리고 공예에게는 비단을 하사해 그 뜻을 기렸다.

 

이후로 백번 참는 가운데 가정화목이 있다.[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太和)]”란 말이 유래가 되어 백인당(百忍堂)은 화목한 가족의 대명사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매사에 잘 참고 바르게 처신하면 다가오는 화를 극복하고 큰 복을 이룰 수 있다

가정의 화합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가화가 있는 곳에 공()을 거둘 수 있으니’(대순지침p.29)라는 말씀을 되새겨 볼 때, 우리 수도인들에게도 참을 인()자의 의미는 크다고 볼 수 있다. 참을 인()자 백번에 가정화목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인내는 결코 쓰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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