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포일낙(季布一諾)

 

季 계절 계

布 베 포

一 한 일

諾 허락할 낙 


계포의 승낙한 번 약속은 끝까지 지킴

 

항우 휘하의 장군으로 항우를 따라 각지를 전전하며 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며, 여러 번 유방을 곤경에 빠뜨리곤 했다. 해하 전투에서 항우가 패사한 이후 유방은 현상금을 걸어 계포를 수배하고 그를 숨겨준 사람은 삼족을 멸한다고 공고했다.
항우가 죽은 후 계포는 도망쳐 복양의 주씨 집안에 숨어 있었는데, 주씨는 계포의 머리를 깎고 칼을 채워 허름한 베옷을 입힌 후 큰 수레에 넣어 집안 하인들과 함께 노나라의 협객 주가에게 팔아 넘겼다. 주가는 그가 계포인 것을 알아챘지만 모르는 척 하면서 집안 하인들에게 "밭일은 이 친구의 말을 따르고 꼭 이 친구와 식사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개국공신 하후영을 찾아가 권유하기를,
"계포가 황제를 곤경에 빠뜨린 것은 자기 주군에게 충성한 것 뿐입니다. 신하는 각자의 군주를 위해 충성을 다할 뿐인데 그렇다고 항우의 신하를 다 죽여야 합니까? 또한 황제께서 천하를 얻은지 얼마 되지 않아 사사로운 원한으로 그를 죽이려고 하니 이는 황제의 도량이 좁다는 것을 천하에 보이려 하는 겁니다. 더군다나 그러다가 계포가 흉노로 도망가기라도 한다면 더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에 마음이 움직인 하후영은 곧 유방을 찾아가 이를 고했고 유방 또한 계포를 용서해 주었으며 계포는 유방을 알현하여 사죄하고 낭중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여후 집권기는 물론 (실질적인 3대 황제인) 한문제 때까지도 살아남아서 중랑장, 하동 태수 등을 역임했다. 사마천은 현능한 사람이야말로 헛되이 죽지 않는 법이며, 분함을 이기지 못해서 목숨을 끊는게 용기가 아니라 비겁게 욕을 보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믿고 한나라의 명신이 된 계포야말로 진정한 용기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사서 편찬을 위해 궁형을 받는 치욕을 견뎠던 자신의 처지를 투영한 것 같은 평가이다.

여후 집권 시절 흉노와의 전쟁을 논하다가 번쾌가 "저에게 10만 군사를 주면 내가 저놈들을 밀어버리겠소!"라고 말하자 계포가 "고조께서도 40만 병사로 흉노에게 패했는데 번쾌 따위가 10만 병사로 흉노를 어쩐단 말입니까. 대놓고 태후를 우습게 여기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지난 초한전쟁의 상처도 다 낫지 않았는데 저따위 헛소리로 아첨을 해 천하를 흔들려 하니, 당장 목을 베어야 합니다."라는 말로 번쾌를 버로우시켜 버리고 여후도 흉노 정벌 논의를 그만두었다.

문제가 즉위하자 누군가가 당시 하동 태수로 있던 계포를 현명하다고 평하자 문제가 계포를 장안으로 호출하여 어사대부로 임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 다른 사람이 계포가 용맹강직하지만 술주정뱅이라서 가까이 하기 힘들다고 했다. 이 때문에 문제는 계포를 임명하는 데 주저했고 이 사이 한 달이 지나버려 황제를 알현하지 못하고 임지로 돌아가게 되었다. 돌아가면서 문제에게 "신을 아무 까닭 없이 부르신 것은 누군가가 신을 터무니없이 칭찬한 까닭이고, 신이 어떤 명도 받지 못하고 돌아간 것은 누군가가 신을 헐뜯었기 때문인데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신하를 오고 가게 하는 것은 황제께서 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진언했다. 문제는 부끄러워하면서 그를 하동 태수의 원래 관직으로 돌려보냈다. 이 때 문제는 미안하긴 했는지 계포에게 "하동은 짐의 손발과 같은 군이기 때문에 경을 부른 것이오"라고 말했다.

초나라 사람인 조구생이라는 사람은 말빨이 좋아서 권세에 아부하여 돈을 얻었다고 한다. 특히 문제의 황후인 두씨의 오빠 두장군과 사이가 좋았는데, 계포는 두장군에게 조구생을 가까이 하지 말 것을 청했다. 조구생은 계포를 만나기 위해 두장군의 소개장을 얻고자 했는데, 계포가 조구생을 싫어한 것을 알았던 두장군은 만나지 말 것을 권했지만 조구생은 끝내 소개장을 얻어 계포를 만나러 갔다. 조구생을 맞은 계포는 크게 화를 냈는데, 조구생은 대뜸 계포에게 이렇게 말했다.
"초나라 사람들 사이에 '황금 1백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허락을 받는 것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장군은 어떻게 그런 명성을 얻으셨습니까? 저도 귀공도 모두 초나라 사람인데 제가 돌아다니며 장군의 이름을 널리 선양하면 귀하게 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말에 넘어간 계포는 조구생을 여러 달 동안 머물게 하며 크게 대접하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계포의 명성이 높아진 것은 조구생 덕분이라고 사기 계포열전은 적고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의미의 '계포일낙(季布一諾)'. 계포는 특히 부탁받은 것을 거절하지 못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어쨌든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항우의 심복 출신인데도 한신팽월영포 같은 공신들보다 되려 말년이 훨씬 좋은 재미있는 상황을 볼 수 있다. 문제 치세까지 살았던 것을 보면 제법 장수했던 모양. 덕분에 사마천이 살았던 시기까지 기록이 많이 남아서인지 자신의 열전을 가지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초한쟁패기의 시대의 인물들 중에서 초나라의 인물로서는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 반열에 오를만 하다 할 것이다. 

마음속의 언약까지 굳게 지킨다는 季札(계찰)季札掛劍(계찰괘검)만큼, 季布(계포)라는 ()나라 무장의 이름이 들어간 이 성어도 약속의 가치를 말해주는 말로 자주 인용된다. '장부의 한 말이 천금같이 무겁다'는 우리 속담도 있듯이 계포의 승낙을 받는 것이 일백 근의 황금을 얻는 것보다 낫다고 한 말에서 왔다.

 

계포는 項羽(항우)劉邦(유방)이 천하를 두고 각축하는 楚漢(초한) 전쟁 때 양쪽에서 모두 귀한 대접을 받았다. 젊었을 때부터 의협심이 강했고 한번 약속을 하면 끝까지 지키는 사람으로 평이 났다. 처음 항우의 장수로 출전해 여러 차례 유방을 괴롭혔다. 항우가 패망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뒤 계포는 쫓기는 신세가 됐다.

 

천금의 상금을 걸고 계포의 목을 노렸지만 사람들은 신망을 받았던 그를 숨겨줬다. 朱家(주가)라는 협객은 유방의 측근에 손을 써 계포를 사면되게 했을 뿐 아니라 더하여 벼슬을 얻게 했다. 적지에 있게 되었어도 그는 시비가 명확하고 성심을 흐리지 않아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 당시 초나라 사람으로 曹丘(조구)라는 사람이 뛰어난 변설로 실력자와 어울리고 있었다. 왕의 외숙인 竇長君(두장군, 는 구멍 두)에게도 뻔질나게 드나들자 계포는 조구를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편지를 보냈다. 이 말을 듣고 조구가 도리어 소개장을 갖고 계포를 만나러 왔다. '초나라 사람들의 말에 황금 백 근을 얻는 것보다 계포의 승낙을 얻는 것이 더 낫다(得黃金百斤 不如得季布一諾/ 득황금백근 불여득계포일낙)는 말이 있습니다.

 

나도 동향인데 돌아다니며 당신의 이름을 천하에 날리게 할 수 있는데 어찌 멀리 하십니까' 하고 말했다. 계포는 조구를 받아들이고 그 후 각국에 선전을 하여 더욱 명성을 높이게 됐다. '史記(사기)' 季布欒布(계포난포, 은 단란할 란)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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