落款

저자 작품에 낙관한 예

 

 

 

               

 

 

 

 



 

 

 

 

 

 

 


★ 玩齋의 落款들


 

 

 


 

0 낙관 : 글씨나 그림을 완성한 뒤 작품에 자신의 아호나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는 일 또는 이름이나 도장


 (3) 전각(篆刻)


전각(篆刻)은 서화(書畵)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중요한 용구이자, 하나의 예술품이다. 잘 쓰여진 서예작품이나 그림에 전각이 찍혀있지 않으면 미완성 작품으로 인식될 정도로 그 중요성이 크다.


  전각이란 말은 전자(篆字)의 글씨를 이용하여 새겼기 때문에 불리어지고, 흔히 낙관(落款)이란 말로 많이 불리어진다. 낙관이란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로 낙관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린 뒤 관지(款識)를 하고 작가의 도장을 찍는 전체를 이르는 것을 말한다.

  예로부터 도장에는 전서 외에도 해서와 예서, 그림이나 동물 따위의 형상을 새겨왔었다. 인물이나 동물의 형상을 도형화시킨 것은 초형인(肖形印)이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작품에 사용하는 낙관용 전각은 일반적으로 중국 명나라 문팽(文彭:字는 壽承, 別字는 三橋, 文徵明의 長男으로 江蘇省 長洲 사람이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문팽은 전각에 관한 학술적 논거(論據)를 처음으로 확립한 사람이다. 또 전각을 하나의 예술적 기호(嗜好) 및 필수품으로 등장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그 후 전각은 새로운 예술로 점차 확대 인식되어졌으며, 전각이 지닌 문자학적(文字學的), 서사적(書史的), 예술적 가치의 중요성이 시대가 갈수록 분명하게 인식되고 있다.


  전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장법(章法)이다. 서예에서 결구(結構)라고 하는 것이 장법이다. 이 장법을 등산목 같은 이는 목수가 집을 짓기 전에 해야하는 기초공사인 '정지 작업'에 비유했다. 기초공사가 제대로 되어야 그 위에 세워지는 건물을 생각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이지 실제는 그와 같지는 않다. 도장이란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형태에서 파악해야 하는 직접적인 것이며, 건물은 수용능력과 기능에 따른 연구들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은 장식성을 떠날 수 없다. 우선은 항상 정감이 가도록 해야 한다. 모처럼 제작된 것이 한두 번 보는 사이에 싫어지게 되면, 그만큼 그 작품은 조형성이 결려되어 있다는 증거다. 좋은 것은 항상 옆에 두고 보거나 사용해도 정감이 끈끈하게 흐르고 애착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도장은 모두 적색으로 찍혀 있다. 물론 붉은 문자는 주문(朱文), 백색의 문자는 백문(白文)으로 구분한다. 또 이것을 양각과 음각으로 구별한다,. 그러나 음양각으로 말하기보다는 주백문(朱白文)으로 구분하는 것이 더 올바른 방법이다.

8) 서법(書法)과 용필법(用筆法)


 書藝家들이 글씨를 쓸 때나 一般 사람들이 글씨를 쓸 때에는 옛날에는 모두 毛筆(모필)을 사용하였다. 그러다 연필과 만연필이 나오자 사람들은 이것의 편리성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 보다는 연필이나 만연필로 글씨를 쓰는 것이 훨씬 더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수성펜들이 통용되고부터 모필은 머지않아 폐기될 운명에 처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모필의 모든 장점들을 따진다는 것도 점점 시대에 맞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지 일상생활 가운데 실용적인 면에만 치중하여 한쪽 면만 본 것이지 전체를 고려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글씨는 단순히 실용적인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예술적인 측면도 함께 지니고 있다. 서예가 예술적인 측면을 가지게 되기까지에는 부드러운 毛筆(모필)을 사용한 것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글자에 있어서 점과 획은 그림에 있어서 선과 같은 것이다. 선에는 굵고 가는 것 또는 강하고 약한 것 혹은 묽은 것 등의 서로 다른 종류가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한 筆致(필치)에서 나와 다양함을 표현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여기에 각종의 색깔이 혼합되어 비로서 모든 物像(물상)들이 표현되어진다. 글씨란 붓에 한 가지의 색깔을 담고 손가락으로는 이것을 잡고 팔로는 이것을 움직여 붓을 일으키기도 하고 엎기도 하면서 둥글게 혹은 모나게 꺽어 가면서 쉬지 않고 형태를 이룬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먹물을 바르는 작업이 아니라 그 가운데에는 반드시 미묘하고도 끊이지 않는 변화가 있어 원활하면서도 軟美(연미)하고 윤택이 있는 神采(신채)가 나타나야만 한다.


 이것은 바로 옛람이 말한 '창끝은 뾰족하여야만 두려움을 느끼고 물상은 생동감이 있어야만 기이한 것이다.' 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글씨에 이와 같은 두려움과 기이한 맛을 내면서 생동감이 있는 의태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붓을 제외한 다른 것으로는 도저히 이루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서법예술을 논할 때에는 드시 먼저 붓에 대한 것을 강구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실제에 있어서도 用筆(용필)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하고는 서법예술을 연구할 수 없다. 이 用筆(용필)에는 법도가 있으니 첫 번째가 바로 筆法(필법)이다. 필법에 정통한 연후라야 비로서 마음대로 붓을 운용할 수 있다. 필법이란 글자의 점과 획을 그을 때 붓을 사용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장기간에 걸쳐 사람들이 글씨를 쓰면서 발견한 것들이다


 사람의 손과 팔은 생리적으로 합리적으로 움직이며, 사용하는 공구는 적당히 운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두 가지의 조건이 서로 자연스럽게 결합 되어야만 비로서 글씨가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이 지나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자세히 연구되어진 것들이 전해 지면서 종합적인 결론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서예가들에 의하여 공인된 규율이 되어진 것들이니 우리는 이를 筆法(필법)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규율에 따라 글씨를 배워나가야만 書學(서학)이 올바르게 성취되고 발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규율이란 객관성이 존재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음대로 이것을 고칠 수는 없다. 단지 그것을 인식한 후에 모든 것을 분석하여 제대로 안 다음에야 비로서 소기의 목적을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글자의 규율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글씨를 쓰는 사람은 비록 우연히 법에 맞았다 하더라도 진정한 글씨를 썼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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