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절 서예교육의 가치


1) 서예의 가치

글씨(書)란 모필 글씨를 말한다. 글씨는 실로 취미적 예술적 교과로 종이, 붓, 먹을 쓰는 동양 특유의 미술로 인격 도야(陶冶)의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서예에 있어서 아름답게 쓰려고 구상하는 것은 美인데, 美는 우리 인생에 있어서 즐거움과 위안을 주는 지극히 고상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취미성, 예술성은 인격의 불가결한 요소이며 심미적 범주는 眞, 善과 아울러 동일한 문화적 가치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서예는 진실로 필경생(筆耕生)의 쓰는 그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세계, 즉 그 이면에는 무궁무진한 약동하는 생명이 가득한 眞의 실재(實在)가 흐르고 그 실재가 곧 예술의 대상이요, 이 세계가 바로 우리의 생명 그것과 같이 한없이 자유롭고 끝없이 풍성한 영원의 가치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은 음악으로서만이 표현하는 진실이 있고 회화는 회화로서만이 표현하는 진실이 있다면, 선획(線화)에는 선획으로서의 표현할 진실이 있어야 한다. 선획을 통해 나타내는 동기는 회화에 의하여 표현할 수  없다. 이 선획을 생명으로 하는 조형 예술은 바로 서예인 것이다. 글씨는 선미(線美)와 조형미가 융화하여 비로서 서미(書美)를 발생하며 선의 중요한 본질은 필의(筆意)에 의하여 나타난다.

 서예의 수련은 전인교육(全人敎育), 생애교육(生涯敎育)의 하나로 인간의 고결한 성품을 함양시킨다. 뿐만 아니라 글씨를 통해 필자의 성격, 지혜 또는 도덕성까지 감지하는 것을 보면 서예 교육의 가치성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면 교육서예에 있어서 이념은 무엇인가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교육서예의 이념으로 보편성을 들 수 있다. 즉, 교재의 보편타당성이다. 최근 서예 연구에 관한 자료는 실로 놀랄만큼 많이 발간되어 있다.

  둘째, 교육서예 이념으로 수련성을 들 수 있다. 서예는 수련성을 쌓은 의도적인 글씨라야 한다. 즉흥적인 것은 전래의 書法은 고사하고 필자의 성벽이 너무나 자유로 표현된 작품이므로 좋게 평가 할수 없다. 卽興書는 신선한 흥미는 있으나 깊이 감상하면 싫증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즉흥서는 영구적 가치는 비교적 적다.


  셋째, 교육서예의 이념으로는 피교육자의 발전성을 들 수 있다. 청소년의 심의(心意) 발달을 무시하고는 교육할수 없다. 어린이는 어린이 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심리를 갖는다.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가 아니다. 신체 각부에 있어서 그 구조 균형이 다르듯이 心意 발달에 있어서도 어른들과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넷째, 인격 품성의 수양을 들 수 있다. 옛부터 동양에서 인격과 결부하여 어떤 道를 닦는 데는 기본 수련법으로 중히 여겨 일예일기(一藝一技)의 도야를 통해 인격 완성을 도모하였다. 글씨는 인격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끝으로 시간성과 처소성(處所性)을 들 수 있다. 書 예술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것으로 생각되나, 한편으로 초시공적(超時空的)작품이 그 시대와 민정(民情)을 여실히 표현한 것이라고 간주될 수도 있다. "글씨(書)는 심획(心화)이라"하여 개성적인 것으로 생각되나 몇 백년을 지나고서 보면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서풍(書風)은 거의 공통됨을 엿볼 수 있다. 書風이란 그 시대 사람이 납득할수 있는 보편성과 전통성을 얻었다하더라도 그 필자는 끊임없이 새 시대를 호흡하고 나날이 새롭게 정진하는 사람이라야 할 것이다. "글씨(書)는 자연(自然)으로부터 비롯한다."라고 했듯이 書風은 기후, 풍토의 영향을 받고 그 주민들의 性情이 서로 다름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2)  예술적 미학요소


각 서체의 형태에는 허한 것과 실한 것, 펴있는 것과 오므라져 있는 것, 성긴 것과 빽빽한 것, 기울어져 있는 것과 바로 세워져 있는 것 등이 서로 대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동일미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서예에 구비되어 있는 예술적 미학요소이다. 이러한 데에다 부드럽고 탄력성이 풍부한 모필에 먹을 충분히 뭍혀 조형의 규율을 준수하면서 가변적 요소를 운용하면, 문자의 짜임새에 독특한 풍격의 형식미를 부여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형식미 안에 붓을 들거나 누르기도 하고, 무디게 하거나 꺾기도 하며, 천천히 쓸 때와 급하게 쓸 때의 조절을 잘하여 운율의 미를 창출한다. 또한 점과 선으로는 형태와 평면을 배치하고, 좌우로 기울어진 것과 바른 것을 균형있게 하며, 대소길이의 변화를 주며, 움직임과 고요함 그리고 거두어들임과 내쫓는 것을 알맞게 하여 정적인 맛과 동적인 맛을 자아내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것들이 서로 의존하고, 제어하고, 호응하여 어우러져야 한 다. 이렇게 하여 눈에 보이는 형상은 지면상에 표현된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점과 선에서 나온 예술적 마력인 것이다. 서법의 경지는 고도의 법을 숙련시켜 법 없는 가운데 법이 있어야만 지극한 법이 되며, 고심은 극도로 하면서도 고심의 흔적이 없어야만 비로소 최고의 경지에 도달 하였다고 하겠다



3) 서예작품의 감상


 글씨를 쓰는 것과 서예와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가?

사람들은 글씨를 쓰는 것이 곧 서예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완전히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하면 글씨를 쓰는 것은 실용에 목적이 있는 것이고, 서예는 사람들에게 예술을 감상하게 하는 것이다. 서예는 실용가치 이외에 많은 예술형식이 있다. "일정한 대상에 기탁하여 아름답고, 단정하고, 웅건하고, 깨끗하며, 용이나 호랑이가 위엄을 가지고 날며 움직이는 듯한 형세를 가중시킨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꿋꿋한 기개로 근본을 삼고 변화로 쓰임을 삼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사당에 들어가 귀신을 보는 듯하게 하며, 곳간을 살핌에 밑바닥이 보이지 않게 하는 듯하여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것이다.

진나라 때 왕희지는 "글씨를 쓰려고 하는 자는 먼저 먹을 갈면서 정신을 집중시키고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글씨의 자형을 미리 생각하여 크고 작은 획과 아래나 위로 향한 획과 평평하고 바른 획들을 움직여 맥이 서로 연결되게 구상한다. 이것은 뜻이 붓 보다 먼저 있게 한 연후에 글씨를 쓰는 방법이다. 만약 평평하고 바른 획이 마치 주판알 같이 위아래가 반듯하고 앞뒤가 고르면 글씨가 되지 않고, 단지 점과 선만 연결시켜 놓은 꼴이 된다." 라고 하였다. 이 이론은 글자와 서예와의 관계를 천명한 말로서 글씨 쓰는 것과 서예는 반드시 일치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글씨 쓰는 것과 서예는 각각 실용성과 예술성의 특징을 공유하고 둘 다 한자를 빌려 글씨를 쓰나 특성과 창조성이 다르다.

글자와 서예는 모두 미의 감각을 표현하는 것이나. 다른 점은 미의 관점이다. 하나는 실용미를 추구하며 발전 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예술미를 추구하여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 예술미의 일면은 먼저 한자의 조형과 규율을 흐트리지 않고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감정의 동태와 사상의 조화를 글자의 기세와 풍모로 하여금 예술미와 매력을 표현하여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게 한다. 실용미의 일면도 비록 아름다음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나 반드시 멋이고 힘있고 풍채있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실용적인 면만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대중적이어야 하고 한자를 쓸 때 상하가 반듯하고 앞뒤가 고르면서 좌우가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도 범위를 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글씨와 서예의 다른 점이면서 동시에 구별되는 점이기도 한 것이다.


4) 예술로서의 서예


 인간의 삶은 많은 활동이 있다. 정치부문, 경제부문, 사회부문 외에도 많은 활동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을 우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창조 활동과 비 창조 활동이다. 인간은 이 두 활동 중에 하나에는 늘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창조 활동에 참여하더라도 대부분은 단순한 기계적 활동인지라 진정한 창조활동이라고는 말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생계에 관련된 연명의 수단인 것이다. 이러한 창조활동은 인간은 자유롭게 하기보다는 얽매이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여가가 필요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이 자유의 시간 또한 창조적인 활동 비창조 활동으로 나뉘어 진다. 그 창조적인 활동 중의 하나가 예술이다. 그러므로 이 예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서 보는 것과 같이 예술과 기술의 차이중의 하나는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술 활동은 인간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고대인들의 동굴 벽화나 장신구 등에서 우리는 오래 된 인간의 예술성을 알 수 있다. 모든 나라에 예술이라는 단어는 있다. 이러한 단어의 공통점은 기술과는 다른 어떤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술은 감상으로서의 예술과 창조 과정으로서의 예술로 나뉘고 다시 창조활동은 몇 단계로 나뉜다.


  먼저 만들고 싶은 느낌이 생기는 과정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에 관한 예술가의 체험이 밖으로부터 자극을 받음으로써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매우 아직 희미하게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다음의 단계는 구상의 단계이다. 첫 번째 단계가 겉으로 나타내고 심은 동기로 되어 상상력을 자극해서, 아직 확실치는 않으나 하나의 생각을 품게 되는 과정이다. 이것은 세세한 것이 아닌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 일이다. 이것은 대개의 경우 영감에 의해 자극을 받는데, 보통 영감은 쌓아 온 재능에 기초하여 이루어 진다. 즉 부단한 정진이 중요 하다는 것이다.


  예술의 다음 단계는 마음 안에 구상이 가라앉음이라 하겠다. 구상의 단계에서 아직 발전하지 못한 희미한 상태에 있던 생각의 내 용이 예술적 상상의 힘으로 다듬어져서 차츰 통일과 질서를 얻어 가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은 예술가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날 수 있고 원래의 계획의 작품과정 중인 이 과정에서 바뀌어 나갈 수도 있다.


  마지막 단계는 완성의 단계다. 마음속에 가다듬어진 것이 어떤 물적 재료나 기법을 써서 바깥으로 구체적인 예술작품을 이루어 놓은 마지막 움직임을 말한다. 이렇게 해서 예술작품 을 이루어 놓은 마지막 움직임을 말한다. 이렇게 해서 예술 작품은 이룩되는데 이러한 예술 작품은 이해(理解)를 떠나서 생성되므로 도덕정치와 같은 예술과는 달리 가치를 잴 수 있는 일정한 척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서예는 예술로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 것인가?


  일단 예술의 분류에서 본다면 書에는 공간 예술이고 보는 예술이다. 서예는 일단은 실생활에 필요한 부분에서 파생된 것이다. 글은 일상생활 의사의 전달과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서예는 보통 철로 만든 펜으로 이루어져 있고 동양의 서예는 털로 만든 붓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여기서 동서양의 큰 차이 즉 딱딱하다는 것과 부드럽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특히 동양의 글씨란 것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꽤 오래 전에 글이 생겼고, 그것이 처음에는 막대기나 손으로 쓰여지다가 후일에는 털로 만들어진 붓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중국의 예술을 보자면 6가지의 예술이 있는데 그것은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이다. 藝, 樂, 射, 御, 書, 數가 상형화 시키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 예술로 보였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겸손함을 중시 여기는 예의와 흥겨운 가락의 악과 힘차고 정교 한 활쏘기, 빠르고 정교한 말 몰기, 인간 의사의 전달을 나타내는 글쓰기와 정확함을 주로 하는 數가 왜 중국인의 눈에는 예술로 보였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이 여섯 가지의 공통점을 먼저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여섯 예(六藝)의 대표적 공통점은 실생활과 관계가 매우 많다는 것이다. 여, 악, 사, 어, 서, 수가 모두 사회 생활이 어느 정도 성숙하여 가는 곳에서는 모두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인의 생각에는 예술이란 겸손한 마음으로 흥겹고 힘차게 의사를 전달하는 정확, 정교한 무엇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여섯 가지 예 중에서 이 모든 것을 합친 개념이라는 것이다.


  붓을 진행시킬 때에 겸손한 마음과 흥겨운 마음을 가져야 하고 힘있게 그어져야 하며 생각을 전할 수 있어야 하며, 아름답고 정교하여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의 예술은 기술과도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는 관계가 생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기계적인 과정이 아닌 생명을 순간 순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이 과정 속에서 자세히 표현되는 것이다. 즉 또 다른 자아가 드러나고 창조되어 가는 것이다. 즉 예술이 일반적인 특성 - 기술과는 구별되는 - 의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작용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며 서예의 경우는 더 더욱 그렇다. 가는 털 하나 하나가 그의 상태에 지배받고 있는 것이다. 정신과 육체가 하나가 되어서 표현되는 것이 기술이 아닌 서예이고 그것은 대개의 경우 인간의 망막에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이상에서는 예술로서의 서예가 갖는 특징 [창작과정을 중심으로] 들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예술도 중요하다. 물론 감상하는 행위도 예술과정의 하나인 것이다.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정신적인 면을 알려고 노력하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이 상태에서 우리는 감상자의 마음이 이미 아름답게 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예술은 인간의 감정을 순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인간의 삶 속에서 예술가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은 감상의 부분만을 행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정신의 작용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은 다시 창조의 욕구를 북돋워 준다. 서예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많은 감상과정 중에 정신이 순화되고 이것이 창조 과정에 다시 영향을 주는 피이드 백 과정을 거친다. 감상의 과정과 창조의 과정은 떨어질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부단한 정진 속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이게 되며 구현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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