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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언약사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5) 서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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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교수] 언약사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⑤
 
하나님의 작정을 언약이라고 말할 뿐이다. 그런
언약체결은 발트의 신학 혹은 발트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지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2. 개혁신학의 언약개념의 이해와 전개
2.6. 발트의 새로운 언약사상


발트는 개혁신학의 행위언약의 근본 취지에 근거해서 인간의 앙양을 극대화한 언약개념을 창출하였다. 행위언약에 의하면 사람은 처음 창조되었을 때 임시적이고 잠정적이어서 완전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완전한 상태로 올리기 위해서 계명을 준수하면 영생하고 완전한 행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언약을 체결하였다.


이 전통적인 행위언약사상에 근거해서 발트는 언약을 하나님과 교제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이 교제를 위해서 하나님이 창조를 이루셨다고 주장한다. 창조하시므로 교제를 실현하기로 하셨다(Kirchliche Dogmatik, III/1, 2, 104-105). 하나님이 피조물과 교제를 갖는 것을 발트는 언약이라고 정의한다. 교제를 위해서 창조가 이루어졌으므로 창조가 언약의 외적 근거라는 것이다(KD III/1, 2, 104-105).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어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교제하시는 것으로 만족하신 것이 아니고 교제의 대상자에게 사랑을 베풀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작정하셨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자기의 생을 사시고 존재하신다(KD III/1, 2, 104-105).


발트신학의 핵심중의 하나는,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신적 존재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삼위일체는 사람이 만든 것이어서 그런 삼위일체를 경배한다는 것은 우상숭배라고 발트는 주장한다(KD III/1, 69, 204; KD IV/1, 69, 55). 하나님이 교제의 대상을 갖기 원하시는 것도 바로 이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어서 교제를 원하시지만 교제의 대상이 없으므로 교제의 대상을 만들기로 하신 것이다. 유일한 신적 존재가 피조물과 교제를 원하신다고(KD III/1, 208) 발트는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피조물과 교제를 시작하기도 전에 교제의 대상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인양하기로 정하셨다(KD IV/1, 56). 피조물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하는 일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기로 하시고 이 일을 영원에서 정하셨다(KD IV/1, 52, 46). 이 작정 때문에 인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이고 영원한 아들이다(KD IV/1, 46).


하나님은 사람과 언약을 맺어 교제하시고 그 교제의 대상자를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하는 일을 영원에서 작정하셨다(KD IV/1, 71).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을 영원에서 미리 정하셨기 때문에 이 예정이 창조와 섭리보다 앞선다. 발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존재에의 동참을 화해 혹은 구원이라고 하는데 이 화해가 만물의 시작과 전제이고 만물을 선행한다고 한다(KD IV/1, 51).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함 곧 화해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다(KD II/2, 101-102). 그런데 이 하나님의 존재에의 동참은 일부 사람들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류에게 타당하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시므로 모든 인류를 선택하셨다. 이 선택은 모든 인류로 다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선택하심을 뜻한다(KD II/2, 10, 20).


발트는 말하기를 신 존재에 동참을 이루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영원에서 미리 택하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를 선택의 일차적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가 만물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그가 만물의 처음 난 자이다(KD II/2, 112, 130, 160, 162). 하나님은 이런 선택결정을 만물창조 이전에 하셨다(KD II/2, 108, 109). 하나님은 화해예정을 모든 것에 앞세웠기 때문에 이 예정이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시작이고 마지막이다(KD II/2, 169)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피조물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는 것은 피조물이 전혀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다. 그러므로 이 선택은 은혜의 선택이다(KD II/2, 10, 13, 18, 20). 뿐만 아니라 발트에 의하면 이 선택은 일부 특정 사람들에게 국한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류를 다 포함한다. 모든 인류가 다 하나님의 존재에의 동참에로 선택되었다(KD II/2, 12, 29, 158)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선택교리가 복음의 총화라고 발트는 주장한다(KD II/2, 11, 13, 35, et passim).


발트의 신학에 의하면 하나님은 모든 인류로 다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도록 정하셨다. 이 동참을 구원이라고 발트는 말한다(KD IV/1, 7).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존재에의 동참을 위해서 혹은 더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존재에의 동참자로 창조하셨다(KD IV/1, 8)는 것이다. 이 존재동참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체결하셨고, 이 언약이 바로 화해 혹은 구원, 곧 하나님의 존재에의 동참의 전제(KD IV/1, 39)라고 발트는 주장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에의 동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고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인이 연합하였기 때문이다. 이 연합을 통하여 신 존재에의 동참으로 존재의 최고성취가 일어난다(KD IV/1, 7, 8, 14, 37). 즉 피조물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하므로 피조물의 한계선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조물의 한계성을 벗어나는 것은 사람이 지니는 것인데 지울 수 없는 특성이라고 발트는 제시한다(KD IV/1, 37, 44).


그러나 발트는 더 논의를 전개하여 피조물이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을 이루므로 피조물의 한계선을 벗는다고 한 후에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크고 궁극적이고 완전한 존재가 사람의 미래라고 한다(KD IV/1, 133).
그러나 발트가 주장한대로 하나님을 섬김에서 사람이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에 동참이 전혀 아니다.
발트는 언약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령하시거나 말씀하셔서 언약을 체결함에 대한 말이 없다. 단지 하나님의 작정을 언약이라고 말할 뿐이다. 그런 언약체결은 발트의 신학 혹은 발트의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지 실제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존재에의 동참을 그렇게 강조하여 존재의 성취라고 하는 것은 피조물의 한계선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발트는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의 존재에의 동참은 없고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완전하고 궁극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제시한다. 그런 존재가 어떤 존재인가? 그냥 처음 있는 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그렇게 대단한 말로 전개하였다가 허망한 말로 마친 것뿐이다.
-각주는 생략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출처: C I 온라인

출처 : 예장 서울노회 | 글쓴이 : 최정열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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