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장막

[스크랩] 언약사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3) 서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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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사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③

빗치우스의 언약의 정의와 전개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한 약정이란 개념이 전혀 없다

<연재순서>
1. 서론적 고찰
2. 개혁신학의 언약개념의 이해와 전개☜
3. 언약체결이 하나님의 백성 되기로 한 약정임을 성경이 제시한다
4. 첫 언약은 행위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되기로 한 약정이다
5. 모든 언약체결은 하나님의 백성 되기로 한 약정으로 바꾸어야한다.
6. 결론

2. 개혁신학의 언약개념의 이해와 전개
2.4. 헤르만 빗치우스의 언약사상의 전개와 문제점들
헤르만 빗치우스 (Herman Witsius, 1636-1708)도 언약을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으로 전개한다.
(1) 언약이 최상 행복을 획득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님과 사람 간의 약정이라는 정의와 그 문제점
빗치우스는 먼저 언약을 정의하고서 언약에 대해서 전개해 나간다. 그는, 언약은 최상 행복을 획득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님과 사람 간의 약정이며 영원한 멸망의 위협도 포함하는데 이 위협에는 최상 행복을 무시하는 자가 받을 형벌을 포함한다고 정의하였다(The Economy of the Divine Covenants, I, 1693; reprinted 1990; 45). 즉 영원한 구원이 언약들에 의해서 사람에게 배정된다고 한다. 그럴 뿐 아니라 언약들은 일정한 조건에서 있어서 하나님과 합리적인 피조물에게 동등하게 합당하다고 주장한다(The Economy, I, 41).
빗치우스의 이와 같은 언약의 정의와 전개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한 약정이란 개념은 전혀 없다. 빗치우스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자마자 사람의 최상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이 언약을 맺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처음 사람을 창조할 때부터 완전하게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서 최상의 행복을 누리게 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따라서 빗치우스의 이 주장은 하나님이 처음 아담을 만드셨을 때 불완전하게 만드시고 다음 단계에 언약체결로 완전함에 이르도록 하셨다는 것을 뜻한다.

(2) 언약을 획득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의 공식화가 갖는 문제점
빗치우스는 언약에다가 세 가지 조건을 덧붙였다. 첫째는 영생에서 완전한 행복의 약속, 그 약속에의 권리를 얻기 위해서 사람이 획득해야 할 조건들의 지시와 처방 또 처방된 조건에 이르지 않는 자들에 대한 형벌제재이다. 언약당사자인 인간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선을 포용하고 요구한 조건들을 엄격하게 준수해야 한다. 또 그 조건을 어길 때는 저주에 자신이 해당함을 기꺼이 고백하게 된다(The Economy of Covenants, I, 46-47). 이것이 주와 언약에 들어가는 것인데(신 29:12; 느 10:29), 양심을 증인으로 제시하여 하나님의 언약이 의롭고, 하나님을 즐김에 이르는 이 방법이 매우 적합하다고 인정한다. 이 약속을 획득하는 데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언약을 범하는 자들이 받을 악들을 언약의 저주라고 하고(신 29:21), 이 저주가 언약을 범하는 자들에게 미칠 효과를 언약의 복수라고 한다(레 26:25; The Economy, I, 47). 따라서 빗치우스에 의하면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체결하시어서 영생과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셨고, 이 약속에 이를 조치들을 이행하지 못하는 자들은 형벌로 제재하기로 하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언약의 공식화는 창조주 하나님의 선한 의도에 어긋난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대로만 살아도 사람은 잘 살 것인데 더 나은 선을 주기 위해서 언약을 체결하고서 못 지킬 것을 전제하고 저주와 형벌을 강하게 제시하므로 언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의도와 언약체결의 정신에 어긋난다.

(3) 사람이, 하나님께서 제안하신 언약을 선택하고 거부하는 것으로 말하는 관점과 그 문제점
또 빗치우스는 언약 제안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들을 제시한다. 첫째는 하나님이 제안하신 모든 것을 수납하도록 하는 법 때문에 이 언약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그의 은혜를 내리시고 그 은택을 즐기도록 하는 조건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성 때문에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The Economy, I, 47). 그리고 인간은 언약의 약속을 획득하도록 명령을 받았으며, 약속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The Economy, I, 47).
그러나 이 언약의 약속을 사람이 거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언약체결의 정신에 합당하지 않다. 하나님이 선한 뜻으로 이런 언약을 사람과 체결하시어서 큰 선물을 주시려고 하셨으면 사람 편에서는 순종하는 것뿐인데 선택과 거부를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4) 사람이, 하나님께서 제안하신 언약의 조건을 잘 지킴으로써 언약의 당사자가 된다는 주장과 그 문제점
빗치우스는 언약의 당사자로 첫 번째 하나님을 두 번째 당사자로 사람을 지목하였다. 그런데 사람이 언약의 조건을 잘 지키면 언약의 당사자가 되고 조건을 범하면 협박받은 저주를 당하게 된다고 제시한다(The Economy, I, 46).
그러나 이 제시는 정당하지 못하다. 언약을 체결한 후에는 언약체결로 당사자가 되는 것이지 그 언약을 지켜야 언약당사자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약주의 말씀 안에 머무르므로 언약 당사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언약이 잘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이 언약을 파기하므로 저주받은 것은 언약체결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5) 은혜언약 당사자를 하나님과 사람으로 제시한 것과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이 목표에 도달하는 법이 서로 다른 것 대한 문제점
빗치우스는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의 두 가지로 나누고 행위언약은 행함의 법칙으로 구원에 이르고 은혜언약은 믿음의 법으로 구원을 획득한다고 제시하였다.
그러나 두 언약에서 언약 당사자는 동일하여 하나님과 사람이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은혜언약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택자를 대표하여 그리스도가 언약의 대표로 설정하였는데, 여기서는 그냥 하나님과 사람으로 제시한다. 그러면 은혜언약을 죄인과 체결하셨는가? 그것을 명시해야 한다.
영생의 약속도 동일하여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즐김에 성립한다고 하였다. 양 언약의 조건도 동일하여 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라고 제시한다. 양 언약에서 목적도 동일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의 영광이라고 빗치우스는 전개하였다.
그런데 문제점은 이것이다. 두 언약이 다 목표점이 같은 데 목표에 도달하는 법이 다르다. 그러면 처음부터 영생을 약속하고 두 번째 단계에서 영생에 이르도록 작정하고 하나님의 아들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영생을 얻게 하였다는 주장은 합당하지 않다.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에 맞지 않다.

(6)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에서의 중보자와 순종자에 대한 빗치우스의 주장과 그 문제점

치우스는 두 언약의 차이도 제시한다. 행위언약에서는 하나님이 최상의 율법수여자이시고 은혜언약에서는 선택된 죄인들에게 생명을 부여하신다고 주장한다. 또 행위언약에서는 중보자가 없으나 은혜언약에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행위언약에서는 완전한 순종이 요구되는데 사람이 그것을 성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은혜언약에서는 중보자가 완전한 순종을 수행하신다. 두 언약에서 언약의 순종자가 바뀐 것이 가장 크고 본질적인 차이라고 빗치우스는 주장한다(The Economy, 49).

그러나 행위언약에서는 하나님이 사람과 직접 언약을 체결하셨으므로 중보자가 필요 없고 은혜언약에서는 그리스도가 중보자이시므로 중보자가 있다고 제시하는 것은 바르고 정당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언약이 하나님이 사람과 행하시는 사역의 방식이면 언제든지 언약체결에는 중보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첫 언약에서도 중보자로 일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간의 연합의 중보자이시므로 첫 언약에서도 중보자로 일하셨다고 해야 정당하다.

또 첫 언약체결에서 완전한 순종을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아신 하나님이 그런 완전한 순종을 사람에게 요구하셨다고 공식화하는 것은 바른 언약의 설정이 아니다.

또 첫 언약에서는 순종은 인간이 하기 때문에 보상은 빚이지만 은혜언약에서는 순종을 중보자가 하기 때문에 영생은 중보자의 공로이어서 아무런 자랑이 있을 수 없다고 빗치우스는 말한다(The Economy, 49). 그러면 여기서 문제점은 순종을 인간이 하여 영생을 획득하면 어떻게 영생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서철원(한영신학대학교 석좌교수; 전 총신대 부총장)

출처 : 예장 서울노회 | 글쓴이 : 최정열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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