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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언약사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2) 서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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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 교수] 언약사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②

법을 지킬 수 있느냐 아니냐로 언약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지켰느냐 아니냐가 문제이다
법을 적극적으로 범하였기 때문에 언약을 범한 것이다


<연재순서>
1. 서론적 고찰
2. 개혁신학의 언약개념의 이해와 전개
3. 언약체결이 하나님의 백성 되기로 한 약정임을 성경이 제시한다
4. 첫 언약은 행위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되기로 한 약정이다
5. 모든 언약체결은 하나님의 백성 되기로 한 약정으로 바꾸어야한다.
6. 결론

2. 개혁신학의 언약개념의 이해와 전개

2.3. 콕체유스의 언약신학전개에 나타난 문제점들
17세기에 이르러서 언약사상이 체계를 이루었다. 이 일은 콕체유스(Johannes Coccejus, 1603-1669)가 이루어냈다. 그런데 콕체유스가 행위언약을 창세기에 근거해서 구성하였어도 모세의 율법과 혼합하여 조성하는 우를 범했다. 콕체우스의 행위언약에 관한 몇 가지 주장들과 그 주장 속에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행위언약이 하나님과의 교제와 의를 얻는 방식으로 제시되었다는 주장과 문제점
콕체유스에 의하면 의는 행위들에서 나오며,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길 혹은 의는 율법들을 행함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그는 주장한다(De Leer van het Verbond, Dutch Translation of Summa Doctrinae de Foedere et Testamento Dei, Kampen, 1990, 25).
그러나 첫 언약이 행위언약인데 의를 얻는 것은 시내 산 언약으로 주어진 과제이다. 그런데 벌써 율법을 지키므로 의를 얻었단 말인가?
2) 행위언약이 율법 책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라는 계명으로 알려진다는 주장과 문제점
이것은 모세 언약에 주어진 것인데도 첫 언약에다가 적용한다. 율법은 율법을 다 지켜야 의를 얻어 상을 받는 것이다. 율법이 의의 길이다.
그러나 첫 언약에는 선악과 계명 하나뿐이었다.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그냥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콕체유스는 행위언약과 율법준수를 혼동하고 있다.
3) 행위언약에서 준행할 계명들을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 판에 기록하였다는 주장과 문제점
물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될 때 행해야 할 계명들을 마음 판에 기록하셨다. 그러나 지금 논하는 행위언약은 적극적인 명령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양심의 법과 적극적인 명령을 혼동하면 안 된다.
4) 행위언약으로 아담은 의를 얻지 못하였으며 의는 새 사람에게 속한 것이라는 주장과 문제점
콕체유스는, 행위언약은 의를 얻도록 체결된 언약이라고 하고서 행위언약으로 의를 얻지 못하고 새 사람에게 속한다, 즉 새 언약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담은 행위언약을 받고서 그 계명대로 살았으니 의의 상태로 살았다.
5) 또 행위언약은 본성언약이어서 사람의 본성의 법에 의존한다는 주장과 문제점
사람이 의지와 지성을 가진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언약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De Leer, 32). 그러나 행위언약은 본성에 의해서 체결된 것이면 적극적인 명령으로 체결될 수 없다. 그런데 사실 행위언약은 적극적인 명령으로 체결되었다. 본성 자체 때문에 언약이 체결된 것으로 보면 행위언약은 체결될 필요가 없었다.
6)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언약관계가 된다는 주장과 문제점
아담은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에게 대한 바르고 참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런 지식을 갖는 상태를 언약관계라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구체적인 명령으로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체결하셨는가? 이런 제시는 콕체유스가 행위언약에 대해서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언약체결이 무엇인지를 모르고서 언약관계를 전개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으므로 언약을 체결했다고 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언약체결을 잘못 본 것이다. 법을 지킬 수 있느냐 아니냐로 언약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지켰느냐 아니냐가 문제이다. 법을 적극적으로 범하였기 때문에 언약을 범한 것이다.
7) 행위언약에서 영생의 약속이 행위들에서 나오지 않고 은혜에서 나왔다는 주장과 문제점
계명을 지키면 의를 얻고 이로써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행위언약의 기본신학이다. 그런데 행위언약에서 영생의 약속은 행위들에서 나오지 않고 은혜에서 나온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된 점이다.
8) 아담에게 약속하신 선은 의무에 근거해서 주시기로 한 보상이라는 주장과 문제점
콕체유스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하나님은 일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약속하실 때 순전한 호의로 하셨다고 주장한다(Ibid). 이런 혼란과 모순은 첫 언약을 영생을 위해서 사람에게 의무를 부과했다고 설정하므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첫 언약은 사람의 신분상승을 목적으로 체결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 되기로 한 약정으로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9) 행위언약에 나오는 생명나무는 그리스도를 지시하지 않는다는 주장과 문제점
콕체유스는 그리스도는 첫 언약의 중보가 아니고 은혜언약의 중보이기 때문에 생명나무는 그리스도를 지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나무가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을 지시한다는 것은 우연히 발생한 것 곧 언약이 변경되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아담이 행위언약의 제시대로 선악과 계명을 끝까지 지켰을 때 받을 영생은 그리스도에게서 나오지 않고 아담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아닌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된 주장이다.
10) 아담이 순정성의 상태에 있을 때 명해진 사항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그 자신으로부터 이것을 성취할 충분한 힘은 갖지 않았다고 하는 주장과 문제점
이 주장은 콕체유스의 행위언약 전개에서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행위언약 주창자들의 제시에는 하나님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언약을 체결하시고 그 언약의 계명을 지키면 영생을 주시기로 하셨다. 그런데 그것을 지킬 힘도 없는 것을 아신 하나님이 범죄하여 멸망하도록 하기 위해서 언약을 체결하여 결국 지킬 힘이 없기 때문에 계명을 범하게 하였다는 것이 된다. 콕체유스의 주장대로라면 하나님은 아담으로 계명을 범하여 멸망에 이르도록 하려는 뜻에서 언약을 체결한 것이 된다.
하나님의 언약체결의 뜻을 모르고서 신학을 전개하다가 보니 이런 모순을 산출하였다. -각주는 생략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서철원(한영신학대학교 석좌교수; 전 총신대 부총장) 

출처 : 예장 서울노회 | 글쓴이 : 최정열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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